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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93호][커버스토리 "LGBTQ+ 정치 생태계, 그것은" #3] 무모한 용기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실험
2026-08-03 오후 18:14:11
기간 7월 

 

 

[193호][커버스토리]

["LGBTQ+ 정치 생태계, 그것은" #3] 

무모한 용기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실험

 

- RUN/OUT의 첫 1년을 돌아보며 -

 

 

지난해 8월 시작한 RUN/OUT 프로젝트의 1년간 파일럿 기간이 마무리되었다. 처음에는 이 계획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돌아보면 지난 1년은 하나의 완성된 계획을 실행한 시간이라기보다, 수많은 우연과 소개, 신뢰와 도움을 통해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어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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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
(왼쪽부터 박기진, 정재훈, 심기용, 박민영, 박태민, 이종걸)

 

 

1. 시작되지 않을 것 같았던 프로젝트
 

RUN/OUT을 처음 구상할 때만 해도 이 프로젝트가 정말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성소수자의 정치 참여와 대표성을 다루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분명했지만, 그것을 누가, 어느 조직에서, 무슨 자원으로 실행할 수 있을지는 전혀 분명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2024년 하반기였다. 한국에서도 성소수자가 정치에 참여하고, 후보가 되고, 공적 의사결정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자료를 찾아보고 구상을 정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함께 논의할 동료도, 사업을 맡을 조직도, 확보된 재원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프로젝트를 다짐했다기보다 혼자 품고 있던 질문에 가까웠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4년 9월, [171호][칼럼]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4 : 개똥 밭이 내 밭이라면(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4년 10월, [172호][칼럼]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5 : 다시, 신명나는 싸움판 준비(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4월, [178호][칼럼]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6 : 그렇게, 불안(정)(함)과 함께 살아가는 나날(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6월, [180호][칼럼] 딱, 1인분만 하고 싶어 #7 : 축제, 선거 그리고 2025년 6월의 서울(링크)


2025년 4월에는 이 문제를 성소수자 운동 단체와 함께 논의해보고 싶어 무작정 무지개행동에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누군가의 무관심 때문이라기보다, 성소수자 정치 참여라는 의제가 공동의 사업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언어와 구조를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필요하다는 생각만으로는 사람과 조직을 움직일 수 없었다.


오히려 전환점은 이 고민을 혼자 붙들고 있지 않기로 한 순간이었다. 2025년 5월, 친구사이 소식지팀 동료들에게 그동안 생각해온 내용을 꺼내놓았다. 정치에 관심 있는 성소수자를 모으는 일, 기존 출마자의 경험을 기록하는 일, 정치 산업 내에서 일하는 성소수자를 연결하는 일, 문화 콘텐츠를 통해 공동체가 정치에 다시 접근하도록 만드는 일이 처음으로 공동의 질문이 되었다.


2025년 6월, 이 구상을 소식지 팀원들과 함께 친구사이 사무국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당시 심기용 상근활동가가 지었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필요한 일이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아무런 예산도 인력도 없는 상태에서 대체 이것을 어떻게 시작하겠다는 것인지 묻는 표정이었다. 사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시 아무도 없었다.


이처럼 친구사이가 처음부터 완성된 계획이나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RUN/OUT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가능성이 명확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고 있지 않은 일이라면, 우선 우리라도 방법을 찾아보자는 결심에 가까웠다. RUN/OUT은 성공을 확신한 사람들의 사업이 아니라, 불확실하더라도 시작은 해보자고 마음을 모은 사람들의 사업으로 출발했다.


2025년 7월, 그 무렵 어디에서 지원을 받아 시작할지 고민하던 나에게 정성조 박사(당시 박사수료)가 하인리히 뵐 재단 동아시아 사무소의 김준태 민주주의 및 인권 담당관 님에게 제안서를 보내보라고 권했다. 이후 준태 님의 이메일로 7월 말 제안서를 제출했고, 적극적인 소통과 검토를 거쳐 8월 초 약 400만 원 규모로 8월부터 11월까지 첫 파일럿 지원이 확정되었다. 마침 성조와 나는 그 후 1년 사이에 서로의 박사학위를 마쳤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간이지만, 그때의 소개가 없었다면 RUN/OUT이 하나의 정식 프로젝트로 출범하는 시점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나 구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국외 사례부터 살펴보았다. 미국과 영국, 독일, 대만, 일본, 호주 등에서 후보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조직, 정당 내부의 성소수자 모임, 현직 정치인들의 초당적 연대, 보좌진과 당직자의 네트워크, 낙선한 후보가 다시 정치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를 조사했다. 눈에 띄는 정치인 한 사람의 성공 뒤에는 대체로 그 사람을 발견하고 연결하고 보호해온 조직과 관계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성소수자 의제가 공론장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는 제도 변화가 지속되기 어렵다. 정당과 의회, 행정과 선거처럼 공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공간 안에 성소수자 당사자와 공동체에 책임을 느끼는 정치적 주체가 일정한 규모 이상 존재해야 한다. 법률과 정책, 예산과 행정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자리에서 당사자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 반복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변화가 일회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는 가설이었다.


이것은 아직 한국에서 검증된 결론이 아니었다. 국가마다 정치제도와 정당 구조,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가 달랐기 때문에 국외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올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성소수자 정치인의 등장을 개인의 결단이나 우연한 선거 결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했다.


이에 따라 RUN/OUT은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정치 산업 내에서 일하는 LGBTQ+ 당사자를 발견하고 연결하는 것, 지방의회와 국회에서 성소수자의 민주적 대표성을 높이는 것, 그리고 정치 산업 종사자와 공동체 활동가가 공식적으로 만나 경험과 전략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목표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성소수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언제까지 개인의 특별한 용기와 희생에만 의존해야 하는가."


개인이 자신의 직업과 관계, 안전과 미래를 걸어야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속 가능한 구조가 아니다. RUN/OUT이 만들고자 한 것은 용감한 한 사람을 찾아 무대에 세우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성소수자라도 정치를 꿈꾼다면 준비되고 연결되고 보호받으며 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2. 정치를 다시 말하고, 프로젝트를 조직으로 만들다


첫 파일럿에서 RUN/OUT은 두 가지 실험을 계획했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 선거에 출마했던 성소수자 당사자를 만나 출마 과정과 이후의 삶을 듣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LGBTQ+와 정치라는 두 단어가 오랫동안 멀어진 상황에서 영화와 대화 같은 문화 콘텐츠를 통해 공동체가 정치에 다시 접근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두 실험의 결과는 달랐다. 우선, 과거 출마자를 찾고 만나는 일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누가 성소수자 정치인인지 확인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고, 연락이 닿더라도 많은 사람이 과거의 선거 경험을 다시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반면 2025년 8월부터 11월까지 네 차례 진행한 문화 콘텐츠를 통한 접근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반응했다.

 

2025년 8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친구사이에서 개최된「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다」에서는 진보당 손솔 의원실 선임비서관 윤재은, 정의당 전 대변인이자 서울시 광역비례 출마자 오승재, 정치싱크탱크 VALID 공동대표 배강훈과 함께 국회와 정당, 정책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이야기했다. 이 자리를 통해 정치 참여는 후보가 되는 일만이 아니라 보좌진, 당직자, 정책 연구자, 캠프 실무자처럼 제도와 의제를 움직이는 다양한 역할을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8월, [182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 RUN/OUT: 서로 다른 정치를 엮어내는 힘(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8월, [182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2] RUN/OUT: 참가자 후기 - 사적인 것이 정치가 된 순간(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8월, [182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3] RUN/OUT: 한국 정치의 벽을 무너뜨리다(링크)


9월에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정치싱크탱크 VALID에서 인플루언서 김규진, 정의당 대구 동구 기초의회 임아현 출마자와 영화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를 보았다. 출마는 정당과 선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관계와 직업, 일상을 바꾸는 선택이었다. 영화를 매개로 하자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등장인물의 두려움과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과 정치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9월, [183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4]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임아현·김규진 패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9월, [183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5]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참가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9월, [183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6] RUN/OUT 디자이너 기고: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운동(링크)


10월에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하인리히 뵐 재단 동아시아 사무소에서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 차해영 마포구의원, 전후석 감독과 「초선 CHOSEN」을 상영했다. 이 자리에서는 소수자 정치와 교차성을 다뤘다. 한 사람의 삶은 성별과 성적지향, 인종과 국적, 계급과 지역 가운데 어느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한 사람도 공동체 전체를 온전히 대표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완벽한 대표자를 찾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여러 사람이 정치에 진입할 수 있도록 대표성의 폭을 넓히는 일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10월, [184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7]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차해영·전후석 패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10월, [184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8]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참가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10월, [184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9] 일본 제25회 참의원 이시카와 타이가 인터뷰 : 0을 1로 만드는 운동(링크)


11월에는 서울 종로구에서 개최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신나는센터 김승환 님의 후원으로 2024년 말 미국 영화제에서 막 공개된 「State of Firsts(2025)」를 상영하고 일본 최초의 공개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이자 당시 6선 지방의원이었던 가미카와 아야, 박한희 변호사, 인플루언서 세레나(김도경 님)와 대화를 나눴다. 최초의 출마를 가능하게 하는 것과 한 정치인이 여섯 번의 선거를 통과하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정치인의 등장에 박수를 보내는 것에서 나아가, 공동체가 그 사람의 장기적인 정치적 생존을 어떻게 함께 만들 것인지가 질문으로 남았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11월, [185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0]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박한희·세레나 패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11월, [185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1]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참가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11월, [185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2] 23년 무소속 6선 당선의 기적: 트랜스젠더 가미카와 아야 의원 인터뷰(링크)


네 차례의 프로그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패널의 발언만이 아니었다. 행사를 기다리던 참가자들의 표정과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던 모습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정치 산업 내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 다른 나라의 성소수자 정치인이 선거를 통과해온 과정은 바다 건너 뉴스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상상할 수 있는 미래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와 패널들은 분명 정치의 문턱을 낮췄다. 정치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공통의 장면을 보고 질문할 수 있었고, 정당 가입이나 출마를 바로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과 정치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개별 행사의 성공이 곧 정치 참여의 확대로 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참가자가 행사 이후 어디로 이동할 수 있는지, 정치 산업 내에서 일해보고 싶은 사람을 누구와 연결할지, 출마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떤 학습과 경험을 제공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문을 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문 너머의 길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 한계를 넘기 위해 2025년 9월 말, 하인리히 뵐 재단 준태 님에게 성소수자의 정치 참여를 독립된 주제로 다루는 지방선거 직전 행사를 제안했다. 많은 재단의 기금이 11월 말부터 결산을 진행한다는 점, 국제적인 행사를 진행할 때 초청은 늦어도 6개월 전에는 마무리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개최되기 어려운 행사였다. 그러나 준태 님의 적극적인 의지로 기적적으로 11월 초 이 행사에 투입할 수 있는 예산이 확정되었고, 11월 말부터 국내외 정치인과 기관에 연락이 시작되었다. Global Equality Caucus 의장 Nick Herbert와 LGBTQ+ Victory Fund & Institute 대표 Evan Low를 비롯한 국내외 참석자들의 참여가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1월 초까지 순차적으로 확정되었다.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국회와 민주화운동기념관, 국제청소년센터를 포함한 장소, 국내외 패널, 통역과 번역, 숙박과 이동, 단체별 미팅을 함께 준비했다. 당시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었고, RUN/OUT에는 아직 전담 사무국도 없었다. 지나서 돌아보면 많은 것이 무리한 일정이었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1월, [187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3] RUN/OUT 2026 정치 축제 기록(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1월, [187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4] RUN/OUT 2026 정치 축제: 국내외 패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1월, [187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5] RUN/OUT 2026 정치 축제: 참가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1월, [187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6] RUN/OUT 2026 정치 축제: 축사 모음(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1월, [187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7] 미국 Victory Fund & Institute CEO 및 대표, 에반 로우 인터뷰(링크)


그럼에도 RUN/OUT 2026 정치축제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이전까지 RUN/OUT이 여러 행사를 기획하는 실험적 프로젝트였다면, 정치축제를 거치며 국내외 정치인과 활동가, 재단과 정당 관계자를 연결하고 하나의 의제를 제안하는 일종의 실체 있는 조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재정적 조건도 달라졌다. 하인리히 뵐 재단의 파일럿 지원과 동시에 여러 대사관과 해외 재단에 제안서를 보냈고, 뉴웨이즈(NEWWAYS) 박혜민 대표의 도움을 통해 Open Society Foundations와의 소통이 2025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차례의 검토를 거쳐 2026년 1월, 친구사이는 2027년 6월까지 50만 달러 규모의 General Funding을 확보했다. RUN/OUT만을 위한 단일 사업비는 아니었지만, 전담 인력과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할 수 있는 조건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2026년 2월 2일, RUN/OUT 담당 사무국이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지원과 계획은 커졌지만 친구사이 사무실에는 새 인력이 사용할 책상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제도와 대표성을 말하는 프로젝트가 앉아서 일할 자리를 마련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한 셈이었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1월, [187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8] 2025년 12월 뉴웨이즈(NEWWAYS) 부트캠프: 참가자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2월, [188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19] RUN/OUT 행사 참여자 응답을 통해 본 성소수자 정치 지형(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2월, [188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20] RUN/OUT 파일럿 프로젝트 기획팀 후기(링크)


정재훈, 박기진, 박태민, 총 세 명의 담당자는 이전의 삶과 일을 정리하고 자신의 시간과 진로 일부를 아직 성공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에 재배치해야 했다. 2월에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던 문제의식과 계획을 팀의 언어로 옮겼고, 3월부터는 각자가 하나의 영역을 책임지는 팀이라고 생각하며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다. 기진은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와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DAWOOM), 국회에서의 경험을 살려 조직화 리드로, 태민은 외국어 능력과 마케팅 전공을 살려 커뮤니케이션 리드로 배치되었다. 

 

한편, 2월 2일 사무국이 출범했을 때 6월 3일 지방선거까지는 넉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후보를 발굴하고 교육하며 지역 기반과 공천을 다지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이에 RUN/OUT은 직접 후보를 만들어내겠다는 과도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3월에 나눈 역할을 바탕으로 팀원 간 실무의 호흡과 협업 방식을 맞춰가며, 이미 출마(예정)자가 있는 지역에서 정치인과 공동체, 지역 의제를 연결하는 실험에 집중했다.

 

4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제 LGBTQ+ 출마자가 활동하는 지역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서울 마포구에서는 『사랑 대신, 투쟁 대신, 복수 대신』의 저자 심미섭과 함께 개인의 욕망과 정치 참여가 만나는 지점을 이야기했고, 부산에서는 임아현 출마자와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를 다시 보며 지역에서 공개적으로 정치를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나눴다. 여기에 올해 1월 정치축제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일본 다카이치 총리의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으로 참석이 불발된 일본 최초의 공개 커밍아웃 국회의원 오츠지 가나코의 경험을 서면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며, 한 사람의 등장이 어떻게 공동체가 스스로의 미래를 상상하는 계기가 되는지도 살펴보았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4월, [190호][커버스토리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 #1] 일본 제50회 중의원 오츠지 가나코 인터뷰 : 우리가 당연한 풍경이 될 수 있도록(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4월, [190호][커버스토리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 #2] 경상도,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그리고 임아현(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4월, [190호][커버스토리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 #3] 『사랑 대신, 투쟁 대신, 복수 대신』 그리고 심미섭(링크)

 

5월에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가 민주주의를 지켜온 방식과 정치 참여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았다. 서울 동대문의 노회찬의 집에서 열린 『태국 민주주의』 북토크에서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에서 시민과 소수자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저항하는지를 이야기했고, 부산 모퉁이극장의 「이반리 장만옥」 상영회에서는 지역의 퀴어 문화와 기억이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과정을 돌아보았다. 서울 마포구 언니네트워크 책방꼴에서는 과거 최현숙 캠프 구성원들과 함께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를 다시 보며 과거의 출마와 정치적 도전이 오늘의 성소수자 정치 참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살펴보았다.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서는 16일 서울 도심에서 성소수자 평등대회가 열렸고, 17일 성수동 도만사에서는 「SEOUL MAY DAY 2026: 다양성」 행사가 이어졌다. 선거 과정에서 반복되는 혐오 캠페인에 맞서고, 5·17을 성소수자 평등의 날로 새롭게 선언하며, 서울이라는 도시가 서로 다른 삶과 정체성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지를 함께 물었다. 이러한 장면들은 서로 떨어진 행사가 아니었다. 성소수자는 민주주의의 보호를 기다리는 소수자에 그치지 않고, 광장과 지역, 문화와 선거의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빈틈을 드러내고 그 경계를 넓혀온 시민이자 정치적 주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5월, [191호][커버스토리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1] 나아가기, 퇴출하기, 함께 하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5월, [191호][커버스토리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2] 오월에 만난 태국 민주주의와 이반리 장만옥(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5월, [191호][커버스토리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3]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그때 거기 있었다는 것(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5월, [191호][커버스토리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4] 서울을 바꿀 내일의 임팩트, 다양성(링크)

 

6월에는 5월의 질문을 뒤집어, 민주주의가 성소수자를 실제로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대표와 리더가 필요한지를 물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폭주를 막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이지만, 성소수자의 삶을 누군가의 선의와 관용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성소수자 당사자와 공동체에 책임을 느끼는 앨라이가 정당과 의회, 시민사회와 지역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적 언어와 제도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프라이드 엑스포에서 열린 「자긍심에서 민주주의까지」에서는 총학생회장과 공직선거 출마자를 비롯한 성소수자 리더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정치의 언어를 만들고 공동체를 대표해온 경험을 나눴다. 일본 최초의 공개 커밍아웃 국회의원이었던 오츠지 가나코와 한국 레즈비언·여성 퀴어 커뮤니티의 만남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성소수자 정치인이 실제로 존재하고 활동한다는 사실이 공동체에 어떤 상상력과 용기를 주는지를 확인했다. 친구사이에서 열린 게이 커뮤니티 리더 모임에서는 건축과 법률, 언론, 연구, 문화와 스포츠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해온 모임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체 안에서 축적된 관계와 전문성이 어떻게 공적 리더십과 정치적 역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이야기했다.

 

이러한 경험은 성소수자 당사자가 정치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보여주었다. 당사자성은 대표성의 출발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대표가 어떤 삶을 대변하고 자신의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며, 더 많은 사람이 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남기는가이다. 이처럼 6월의 프로그램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넘어, 경험을 공동의 언어로 바꾸고 다음 사람이 나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것이 성소수자 리더십의 책임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6월, [192호][커버스토리 "성소수자 지키는 민주주의" #1] 자긍심에서 민주주의까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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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6월, [192호][커버스토리 "성소수자 지키는 민주주의" #3] 함께 만들어가는 게이 커뮤니티를 상상하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6월, [192호][활동스케치 #2] 2026년 서울퀴어문화축제 친구사이 부스 서포터즈 후기(링크)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6월, [192호][활동스케치 #6] 일본 LGBTQ+ 정치 탐방기 (feat. 이시카와 타이가)(링크)

 

7월에는 선거 이후에도 성소수자 정치 참여자가 경기장 안에 남아 자신의 정치적 삶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State of Firsts」 상영회에서는 소수자 정치인이 공동체의 기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책임 사이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살아남는지를 이야기했고, 출마자와 캠프원, 정치 활동가가 함께한 힐링캠프에서는 선거 과정에서 겪은 긴장과 고립, 소진을 나누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관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RUN/OUT의 첫 1년을 평가하고, 후보의 등장뿐 아니라 준비와 보호, 선거 이후의 회복까지 함께 책임지는 정치 생태계와 향후 2년의 실행 방향을 정리했다.

 

  • 친구사이 소식지, 2026년 7월, [193호][커버스토리 "LGBTQ+ 정치 생태계, 그것은" #1] 그럼에도, 선수로 경기장 안에 남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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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활동을 거치며 RUN/OUT은 개별 행사를 운영하는 데서 나아가, 출마자와 정치 종사자, 공동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2025년 하반기가 RUN/OUT이라는 아이디어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면, 2026년 상반기는 그 가능성을 행사에서 조직으로 옮기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3. 첫해가 드러낸 지형: 사람은 있었지만 구조가 없었다


우선, 작년 하반기 RUN/OUT의 첫 번째 목표였던 과거 출마자 인터뷰는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 실패는 첫해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인터넷 기사와 선거공보물, 홍보 카드뉴스와 후보자의 이력을 모으며 과거 성소수자 당사자 또는 성소수자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출마했던 최현숙, 오김현주, 차해영을 비롯해 양범진, 박예휘, 조혜민, 김기홍, 곽수진, 최승환, 이효성, 임아현, 이민진, 임푸른, 류세아, 오승재 등 16명의 이름을 확인했다. 하지만 명단이 늘어날수록 누구를 성소수자 정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오히려 불명확해졌다.


대중에게 정체성을 공개해야만 성소수자 정치인인가. 성소수자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만 당사자 여부를 밝히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반대로 정체성은 공개했지만 공동체와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을 공동체의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더 큰 문제는 어렵게 연락이 닿은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과거의 선거를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아가, 출마는 더 이상 이들에게 자랑스럽게 회상할 수 있는 도전으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 낙선과 정당 내부의 갈등, 캠프에서의 고립, 경제적 부담과 관계의 단절,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받은 공격이 함께 남아 있었다. 성소수자로 출마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반복해서 설명하거나 해명해야 했던 경험, 가족과 사생활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담도 더해졌다.


출마할 때는 모두의 후보였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공동체가 한 사람의 출마를 자신의 역사와 성취로 기억한다면, 그 출마가 남긴 상처와 이후의 삶까지도 일정 부분 공동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성소수자 공동체는 후보의 존재를 운동의 성과와 자긍심으로 기억했지만, 선거 이후 후보가 감당해야 했던 생계와 관계, 정서적 소진과 정치적 진로를 함께 책임질 구조는 거의 만들지 못했다. 


이 경험을 통해 RUN/OUT은 출마를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긴 과정으로 보게 되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당과 지역을 선택하며, 공천을 준비하고, 커밍아웃의 범위를 결정하고, 선거를 치른 뒤 당락의 결과와 이후의 삶을 감당하는 전 과정에 서로 다른 지원이 필요했다.


2026년 지방선거 이후 진행한 회복 프로그램은 이 문제에 대한 첫 번째 응답이었다. 선거를 치른 사람에게 곧바로 평가나 다음 계획을 요구하지 않고, 공격과 고립의 경험을 안전하게 말하며 자신의 정치와 삶을 다시 결정할 시간을 제공하려 했다. 규모가 크거나 완성된 체계는 아니었지만, 후보를 공동체의 목표를 위한 자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실험이었다.


둘째, 동시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이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정치 참여자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RUN/OUT은 공개된 정보와 당사자가 공유에 동의한 범위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지역과 정당에서 출마한 17명의 LGBTQ+ 당사자와 그 가운데 4명의 당선자를 확인했다. 그 밖에도 정당과 의원실, 선거캠프에서 정책과 조직, 보좌와 홍보, 자원활동을 담당하는 많은 LGBTQ+ 당사자가 있었다.


이들은 진보정당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여성의당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정치적 공간에 분포하고 있었다. 물론 정당의 공식 입장과 당사자의 존재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소수자 의제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정당 안에도 성소수자 당직자와 보좌진, 당원이 있었고, 성소수자 인권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정당에서도 당사자가 안전하게 성장하고 공천받을 수 있는 경로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셋째, 일부 정당 안에는 당사자들이 개인적 친분을 중심으로 만든 모임이 있었다. 서로의 정체성을 알고 식사하거나, 조직 내부의 정보를 조심스럽게 나누며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였다. 그러나 친목과 정치적 인프라는 같지 않았다. 누군가의 소개가 없으면 접근하기 어렵고, 핵심 인물이 떠나면 관계가 사라질 수 있으며, 아우팅과 정보 유출에 대응할 공통의 원칙도 없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OUT Assembly가 시작되었다. 국회와 정당, 지방의회, 언론과 대관, 캠프 등에서 일하는 LGBTQ+ 당사자가 자신의 소속과 정체성이 밖으로 알려질 위험 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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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Assembly의 첫 번째 목표는 공개적인 가시화가 아니었다. 정치 산업 안의 당사자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적 고민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거치며 RUN/OUT이 이해하는 커밍아웃의 의미도 달라졌다.


RUN/OUT에게 정치적 커밍아웃은 반드시 언론과 대중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LGBTQ+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적 고민을 드러내고,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 속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함께 만드는 지속적인 과정에 가깝다.


대중적 커밍아웃은 여전히 큰 위험과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과 같은 시점의 공개를 요구할 수는 없다. 정당과 직업, 가족과 경제적 조건에 따라 공개의 비용은 다르다. RUN/OUT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더 용감해지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덜 필요로 하는 정치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시화의 목표 역시 사람의 이름을 더 많이 공개하는 것에서, 안전한 관계와 동료 지원의 기반을 만드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했다.


넷째, 첫해는 성소수자 운동의 정치와 대표성의 정치가 같지 않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오랜 기간 성소수자 운동은 차별과 권리의 언어를 만들고, 사람을 조직하며, 국가와 정당에 변화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대표성과 통치의 정치는 후보를 공천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며, 법률과 예산,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다른 종류의 역할을 요구한다.


운동의 정치는 권력에 요구하는 정치이고, 대표성의 정치는 권한을 가지고 결정하는 정치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더 현실적이거나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는 뜻이다. 


성소수자라는 당사자성만으로 좋은 정치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당사자 정치인은 공동체와 무관하게 행동할 수 있고, 자신과 다른 소수자의 권리를 외면할 수도 있다. 반대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공동체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RUN/OUT이 지향하는 대표성은 단순한 정체성의 일치에 그칠 수 없다. 정치인이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자신의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며, 비판과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다섯째, 정치 진입의 계급적 문턱도 분명했다. 정치 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서울과 수도권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 불안정한 초기 경력과 낮은 보수, 장시간 노동을 감당할 경제적·생활적 여유, 학력과 직업,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출마에는 시간과 비용, 가족과 직장의 이해, 정당 내부의 추천자, 언론 노출과 공격을 견딜 안전망까지 요구되었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후보의 숫자만 늘리면, 성소수자 대표성 안에서도 기존 사회의 계급과 지역 불평등이 반복될 수 있다. RUN/OUT이 이미 정치 산업에 가까운 사람을 연결하는 조직에 머물 것인지, 정치 진입에 필요한 자원을 더 많은 사람에게 분배하는 조직이 될 것인지가 중요한 전략적 질문으로 남았다.


게이 남성의 공개적인 출마와 정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적게 관찰된 이유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실제 참여 의향이 낮은 것인지, 정치 산업 안에는 존재하지만 공개하지 않는 것인지, 게이 커뮤니티가 정치 참여를 자긍심과 공동체적 기여의 방식으로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것인지는 추가적인 조사와 대화가 필요하다.


이처럼 첫해에 발견한 것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미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도, 정치인이 되고 싶지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선거 이후 혼자 남겨진 사람도 있었다. 부족했던 것은 이들을 하나의 정치적 가능성으로 발견하고 연결하며, 준비와 실패와 회복을 함께 감당할 구조였다.

 

 


4. 무엇이 작동했고, 무엇이 부족했는가


RUN/OUT의 첫해 성과를 행사 횟수나 참가자 수, 만난 정치인과 기관의 이름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첫해 안에 RUN/OUT이 직접 발굴한 후보와 당선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실패를 판단할 수도 없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동료를 만나고, 정당과 캠프에서 경험을 쌓으며, 출마와 공천을 검토하기까지는 여러 해가 필요하다. 첫해에 직접 확인한 것은 최종 성과라기보다 그 성과가 가능해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었다. 


우선, 가장 분명하게 작동한 것은 문화 콘텐츠였다. 영화와 개인의 서사는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의 삶과 정치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정치의 직업과 실무를 다룰 때는 보좌진과 당직자, 정책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모였고, 대표성과 운동을 논의할 때는 활동가와 고관여층이 반응했다. 출마자의 삶을 중심에 놓았을 때는 정치 행사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이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프로그램에 모으기보다 서로 다른 정치 참여의 입구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입구 이후의 경로는 약했다. 문화행사의 참가자가 정치교육으로, 정치교육의 참가자가 캠프 경험으로, 행사 참여자가 출마를 검토하거나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동하는 경로도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각 사업은 하나의 파이프라인보다 개별 프로그램으로 존재했다.


둘째, 국제 네트워크와 재원은 예상보다 빠르게 확장되었다. 하인리히 뵐 재단의 파일럿 지원은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었고, OSF의 General Funding은 전담 인력과 장기계획을 가능하게 했다. Global Equality Caucus와 Victory Institute 등과의 관계는 해외에서 축적된 후보 교육, 현직자 네트워크, 선거 이후 지원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했다.


그러나 국제적 인정과 국내의 정당성은 같지 않다. 해외의 기관이 RUN/OUT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국내 공동체가 자동으로 사업의 방향과 운영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관계와 재원이 확대될수록 친구사이 구성원과 국내 활동가, 참가자에게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를 더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셋째, 정치 산업 종사자 네트워크도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보여주었다. RUN/OUT은 정치 산업 안에 이미 여러 당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OUT Assembly를 통해 정당과 직종을 넘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로 전환하기 위한 정보보호와 아우팅 대응, 정당 간 갈등과 차별적 행동을 다루는 원칙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과거 출마자의 경험을 기록하려던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사업계획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한 미달성이었다. 그러나 그 실패는 후보 발굴보다 관계와 신뢰, 선거 이후의 회복체계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전략적 전환을 가져왔다. 대표성 확대 역시 아직 성과라고 말하기 어렵다. 2026년 지방선거에서 출마자와 당선자, 캠프 관계자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직접 장기간 소통한 후보가 공천과 선거에 진입한 것은 아니었다. 


넷째, 첫해의 속도를 가능하게 한 단순한 의사결정 구조도 양면적이었다. 실무 책임자가 명확하고 친구사이라는 단일 조직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빠르게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정치축제와 국제 네트워크, 전담 사무국과 지방선거 프로그램이 짧은 기간에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구조 덕분이었다.


하지만 관계와 정보, 기획의 배경과 판단이 특정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새로운 팀원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지식과 권한을 나누는 일은 실행 속도보다 뒤로 밀렸다. 첫해의 속도는 성과였지만, 구조는 아니었다.


다섯째, 참여자의 계급적 다양성도 충분하지 않았다. 프로그램과 네트워크는 주로 서울과 수도권, 정치 산업이나 시민사회에 이미 일정한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기 쉬웠다. 지역 거주자, 생계와 돌봄 부담이 큰 사람, 정당과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같은 방식으로 열려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분명, 첫해에 RUN/OUT이 증명한 것은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정치인의 등장을 RUN/OUT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아니다. 대신 성소수자 공동체 안에 정치 참여와 대표성을 말하고 싶은 수요가 있다는 것, 정치 산업 안에 이미 다양한 정당과 직종의 당사자가 존재한다는 것, 문화 콘텐츠가 정치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것, 후보를 세우는 것만큼 준비와 보호, 회복의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RUN/OUT이라는 사업이 실제로 실행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어느 정도 답했다. 사람들은 모였고, 관계는 시작되었으며, 국내외의 자원도 연결되었다. 그러나 RUN/OUT이 한국의 성소수자 공동체의 민주적 대표성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아직 답하지 못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RUN/OUT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시간이다.

 

 


5. 2028년을 향해: 행사에서 경로로, 용기에서 구조로


다음 단계의 RUN/OUT은 새로운 행사를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프로그램과 관계를 하나의 정치 참여 경로로 연결해야 한다. 2028년은 단지 다음 국회의원 총선이 열리는 해가 아니다. 첫해에 발견한 사람과 관계, 시행착오와 질문이 실제 정치적 대표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시점이다.


① 관심에서 출마 이후까지 하나의 경로를 만든다


분명, 정치인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을 형성하고, 정치의 구조와 직업을 배우며, 동료 관계를 만들고, 캠프와 정당에서 현장을 경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보좌진과 당직자, 정책 연구자와 캠페인 전문가로 성장하고, 일부는 출마를 검토하게 된다.


출마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왜 정치를 하고 싶은지, 어떤 지역과 정당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가족과 직장, 생계와 커밍아웃의 조건은 어떠한지를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출마를 결심하게 하는 것만큼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책임 있는 후보 준비다.


공천과 선거 단계에서는 지역 기반과 정책, 선거자금과 캠프, 메시지와 언론 대응이 필요하다. 성소수자 후보에게는 아우팅과 혐오 공격, 가족과 사생활 노출에 대응하는 별도의 보호체계가 더해져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에는 낙선한 사람은 다시 도전하거나 다른 정치적 역할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당선한 사람에게는 의정활동과 재선, 공동체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위한 기반이 필요하다.


② 후보가 아니라 정치 생태계를 만든다


모든 참가자를 후보로 만들 필요는 없다. 후보 한 사람의 선거에는 지역 조직가, 정책 연구자, 홍보와 메시지 담당자, 후원자, 법률과 회계 전문가, 캠프 실무자와 보좌진이 필요하다. 후보가 반복해서 등장하려면 그 주변의 정치 생태계가 먼저 두꺼워져야 한다.


이미 정치 산업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성장도 지원해야 한다. 정치 산업의 초기 경력은 불안정하며, 보좌진과 당직자는 선거 결과와 정치인의 거취에 따라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이들이 경험을 축적하고 책임 있는 위치로 이동하지 못한다면 정치 산업 내 성소수자는 언제나 초기 실무자 수준에 머물 수 있다.


LGBTQ+ 정치 생태계는 안전한 친목을 넘어 채용과 캠프 참여, 정책과 홍보 협업, 선배 실무자의 경험을 연결하는 초당적 정치적 생태계로 발전해야 한다. 여기서 초당성은 정치적 차이를 말하지 않는다는 뜻도, 모든 입장과 행동을 무조건 용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정당의 구성원이 만나되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 성소수자의 삶과 안전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은 공유해야 한다.


③ 정치 진입의 문턱을 낮춘다


RUN/OUT이 이미 정치에 가까운 사람만 연결한다면 기존 정치의 계급적 문턱을 재생산할 수 있다. 대표성 확대는 이미 준비된 엘리트를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준비될 수 있도록 자원을 분배하는 일이어야 한다.


정치교육도 기초와 심화 과정으로 구분해야 한다. 비공식 인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를 더 투명하게 제공하고, 정치적 언어에 이미 익숙한 사람뿐 아니라 처음 접근하는 사람도 자신의 속도로 역량을 쌓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마다 커뮤니티의 규모와 아우팅 위험, 정당과 시민사회의 관계가 다르다는 점에서, 수도권 외 지역의 정치 참여 경로는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책임질 주체를 세워야 한다.


게이 남성의 정치 참여 역시 별도의 조사와 조직화 과제로 다뤄야 한다. 지금까지 RUN/OUT이 공개된 정보와 당사자의 동의를 바탕으로 확인한 출마자 가운데, 공개적으로 게이 남성임을 밝힌 후보는 극히 적었다. 이것이 실제 정치 참여 의향의 차이를 의미하는지, 정치 산업 안에는 존재하지만 공개하지 않는 것인지, 혹은 출마와 커밍아웃이 결합할 때 예상되는 위험이 다른 집단보다 크게 인식되기 때문인지는 아직 충분히 알 수 없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 가설적인 수준에서만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일부 성소수자 혐오 담론에서는 남성 간 관계와 성행위가 반복적으로 핵심 표적이 되어왔다. 동성 간 관계를 성적 행위로만 환원하는 표현, HIV/AIDS와 게이 남성을 결부시키는 낙인, 군대와 남성성을 둘러싼 공포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가부장적 남성성의 규범과 이성애 결혼·혈통 재생산을 정상적인 생애의 기준으로 삼는 가족주의, 남성에게 부과되는 군사적·사회적 역할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게이 남성이 공개적으로 출마하는 것은 개인의 성적지향을 밝히는 일을 넘어, 남성성·가족·군대·성행위에 관한 사회적 편견 전체와 마주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정체성이 정책과 역량보다 먼저 평가되고, 후보자의 사생활과 성적 행위가 정치적 공격의 대상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직장과 가족, 기존의 사회적 지위를 잃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정치 참여와 공개 출마를 가로막고 있을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 커밍아웃 게이 후보가 적었다는 사실만으로 게이 남성의 정치적 관심이나 역량이 낮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게이 남성에게 더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실제 정치 참여 의향과 정당 경험, 커밍아웃의 범위, 직장과 가족에 대한 부담, 정치적 노출이 가져올 위험을 먼저 들어야 한다. 각자가 가진 위험과 자원의 차이가 정치적 가능성의 차이로 고착되지 않도록 별도의 참여 경로와 보호체계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④ 글로벌 네트워크와 재원을 국내 역량으로 전환한다


첫해에 형성된 국제 네트워크는 중요한 자산이지만 해외 정치인과 기관을 만나는 일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후보 교육과 캠페인 실무, 현직자 네트워크 운영, 혐오 공격 대응, 낙선자의 회복과 재도전처럼 국내에 실제로 필요한 영역으로 협력을 구체화해야 한다. 


해외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이 개인적인 경력과 네트워크만 얻고 끝나지 않도록 보고서와 교육, 멘토링을 통해 경험을 공동체에 환류해야 한다. 외부재원도 얼마나 많이 확보했는가보다 그 재원을 통해 무엇이 공동체 안에 남았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적 인정은 국내의 정당성을 대신할 수 없다. 친구사이 구성원을 비롯한 국내 성소수자 공동체와 사업의 방향과 결과를 공유하고 검토받아야 한다.


⑤ 2028년의 목표를 단계별로 측정한다


“국회의 1%”는 RUN/OUT의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목표다. 국회의원 300석의 1%는 세 석이다. 그러나 세 명의 당선자만을 성패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당선은 공천제도와 정당의 전략, 선거구와 정치 상황처럼 RUN/OUT이 통제할 수 없는 여러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2028년 목표는 결과지표와 과정지표로 나누어야 한다. 결과지표에는 실제 출마자, 공천 진입자, 당선자와 당선 가능권 후보가 포함될 수 있다. 과정지표에는 정치교육 참여자, 캠프와 정당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 잠재적 후보로서 준비를 시작한 사람, 지역과 정당별 네트워크, 후보 지원과 회복체계의 구축 여부가 포함되어야 한다.


정치에 관심을 표현한 사람과 실제 출마를 검토하는 사람을 같은 후보군으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초기 관심자, 현장 경험자, 정당 내 역할 보유자, 출마 검토자, 공천 준비자, 공식 후보를 구분해 파악해야 한다. 측정은 사람을 사업의 성과로 소비하기 위한 일이 아니다. 어떤 방식에 자원을 더 투입하고 무엇을 중단할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반이다.

 

⑥ 개인의 용기를 조직의 역량으로 전환한다


RUN/OUT의 첫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실무 책임이 명확하고 의사결정이 단순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기획하고, 관계를 만들고, 결정하고, 문제가 생기면 직접 해결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RUN/OUT이 중장기적인 조직의 사업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과 관계, 판단 기준을 팀과 친구사이의 공동 자산으로 이전해야 한다. 개인 휴대폰과 이메일에 기록되어 있는 연락처를 넘어 왜 그 관계를 만들었는지, 어떤 사업을 왜 선택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까지 기록되어야 한다.


각 담당자는 업무만 나누어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판단할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전략적 결정은 사무국과 친구사이의 운영구조 안에서 검토되고, 그 결과가 구성원과 공동체에 설명되어야 한다. 친구사이 역시 RUN/OUT을 외부재원으로 운영되는 별도의 프로젝트처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RUN/OUT이 친구사이의 이름과 역사, 공동체적 신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만큼 성과와 위험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


동시에 RUN/OUT은 친구사이의 기존 경계를 넘어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과 논바이너리, 서로 다른 지역과 세대, 정당과 계급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친구사이가 최종적인 책임을 지되 정치 산업 종사자, 출마 경험자, 지역 활동가, 다른 성소수자 단체와 연구자가 사업의 방향을 점검할 수 있는 외부 참여구조도 필요하다. 단일 조직의 기동성과 다양한 공동체의 참여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후보의 소진을 말하면서 책임자의 소진을 정상적인 운영방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새로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기존 계획 위에 일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미루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해야 한다. 책임자는 더 많은 열정을 요구하는 사람인 동시에, 조직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거절하고 구성원의 시간과 삶을 보호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책임자로서 내가 가진 기준은 분명하다. RUN/OUT의 성공은 프로젝트 책임자가 계속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상태로 증명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모든 일이 의존하지 않고, 누군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관계와 사업이 지속되는 상태가 RUN/OUT이 조직으로 성장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일 것이다.


⑦ 무모한 용기에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딱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어디에서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는 이 일이 친구사이의 사업이 될 수 있을지 알지 못했고, 더 이전에는 성소수자의 정치 참여와 대표성이라는 질문을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첫해를 지나며 모든 질문에 답한 것은 아니다. 누가 공동체의 대표가 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당사자들과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 후보를 어떤 기준으로 지원하고 어떤 책임을 요구해야 하는지는 더 논의해야 한다. 지역과 계급의 문턱을 낮추는 일, 정치 산업 내 당사자를 보호하면서 이를 실질적인 정치적 협상력으로 연결하는 일도 계속 실험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확인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정치 참여가 어려운 것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정당과 의회, 캠프와 지역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었고, 정치인이 되고 싶지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과거의 선거를 견딘 뒤 혼자 남은 출마자와 누군가의 정치적 도전을 함께 만들고 싶은 공동체 구성원도 있었다.


부족했던 것은 이들을 발견하고 연결하며, 준비와 실패와 회복을 함께 감당할 구조였다. 첫해의 무모한 용기는 RUN/OUT을 출발하게 했다. 하지만 앞으로 RUN/OUT을 움직여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무모함이 아니다. 역할과 권한을 나누는 팀, 출마와 선거 이후까지 관계를 이어가는 공동체, 정당과 지역을 가로지르는 네트워크, 잘못된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후보가 되고, 누군가는 캠프를 만든다. 누군가는 정책을 연구하고, 누군가는 후원자를 모은다. 누군가는 정당 안에서 길을 열고, 누군가는 공동체에서 비판과 지지를 이어간다. 누군가는 선거를 치른 사람의 곁에 남아 다시 살아갈 시간을 함께한다. 그 역할들이 연결될 때 한 사람의 출마는 더 이상 개인의 예외적인 용기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수 있다.

 

2028년 ‘국회의 1%’는 세 명의 이름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이 지식과 관계, 시간과 자원을 나누어온 정치적 기반까지 포함해야 한다. 당선된 사람뿐 아니라 낙선한 사람도 정치에 남을 수 있고, 후보가 되지 않은 사람 역시 정치의 중요한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지난 1년은 시작되지 않을 것 같았던 프로젝트를 실제로 출발시키고, 한국에서도 이러한 정치 생태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과제는 그보다 더 어렵다. 누군가의 특별한 용기와 희생에 기대지 않고도 다음 사람이 나설 수 있는 구조, 성소수자가 자신의 삶 전체를 걸지 않고 공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의 무모한 용기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RUN/OUT은 더 많은 사람의 관계와 역할, 공동의 책임으로 움직이는 정치적 생태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직 이름조차 분명하지 않았던 가능성을 함께 믿어주시고, 질문과 관계, 시간과 자원을 나누어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 마음들이 모였기에 RUN/OUT은 하나의 구상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이제는 확인한 가능성에 이름을 붙이고,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갈 시간이다. 혼자 품어온 정치적 질문이 있다면 언제든 RUN/OUT의 문을 두드려주시길 바란다. 우리는 서로에게 질문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걸어갈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RUN/OUT의 다음 발걸음이 궁금하다면 ‘친구사이 회원가입’을 통해 계속 연결되어주시고, 새로운 정치 생태계를 함께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면 아래의 ‘친구사이 후원하기’를 통해 이 길의 디딤돌이 되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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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프로젝트 총괄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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