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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93호][커버스토리 "LGBTQ+ 정치 생태계, 그것은" #2] 소진된다는 것, 그리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
2026-08-03 오후 18:14:23
기간 7월 

 

 

[193호][커버스토리]

["LGBTQ+ 정치 생태계, 그것은" #2]

소진된다는 것, 그리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
 

- RUN/OUT 힐링캠프 참여자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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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부터 친구사이 상근활동가로 RUN/OUT 프로젝트의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6개월을 넘겼습니다. 그 사이 조직화 리드로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작게는 북토크며 상영회 GV 대담의 진행과 사회를 맡고, 크게는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며 마주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스쳐 지나갑니다. ‘성소수자’와 ‘정치’. 아직 우리나라에선 낯선 두 단어를 한데 엮는 데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모이게 할 수 있었던 경로는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여느 공론장과 같이 일단 사람들을 모이게 하면 성소수자와 정치를 같은 주제 안에서 각자 생각해보며 다양한 발화가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의 이면에서, 저는 5월 말까지 적지 않은 소진을 겪었습니다. 6월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운영과 일본의 커밍아웃 정치인 오츠지 가나코 의원님의 방한 일정을 함께하고, 썸머프라이드시네마 <State of Firsts> 상영회와 2박 3일 일정의 <RUN/OUT 힐링캠프>를 진행하면서 유독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그 두 달 동안 사무실 옆자리 동료 태민은 제 얼굴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건넸습니다. 회복이라는 과제를 스스로 안은 채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여자분들을 볼 때도 소진과 회복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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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을 지속하면서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쉽지 않은 선거 운동을 치렀던 출마자 치혜, 서울시장 캠프에서 일한 직후 뼈아팠을 선거 결과에도 곧바로 전당대회 흐름을 읽고 다음 계획을 세우던 상우, 갑자기 생긴 변수로 지역구가 무투표 선거구에서 벗어났음에도 차근차근 선거운동을 계획하고 사람을 모으던 차해영 의원, 지방선거 힐링캠프에서 커밍아웃 지역구 출마의 어려움을 고백하며 여러 자기이해의 말들을 남겨주셨던 노동당 소경준 후보까지. 변수와 돌발상황으로 가득한 세상, 그중에서도 가장 변덕스럽고 내 뜻을 고스란히 펼치기 어려운 정치 현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주관을 지키며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는, 그 필요성과 사명감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 확신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 안에서 나를 지키는 일은, 그 필요성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필요성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면, 나를 여기 계속 살아있게 하는 것은 그와는 다른 무언가, 나의 삶에 대한 욕구, 나 자신에 대한 주관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저만의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다만 저와 함께 이 정치라는 공간에 발 딛고 있는, 혹은 발 딛으려는 모든 분들에게 이 질문 하나는 남겨두고 싶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 자리로 이끌었던, 무엇이 우리를 소진을 겪고도 계속해서 일어서는 동력으로 만들 것인가는, 아마 각자가 계속 찾아가야 할 몫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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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행정팀원 박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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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힐링캠프를 통해 많은 것을 내려 놓고 배우는 자세와 새롭게 도전하기 위해 수용하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 이미 쌓아 둔 것들을 가지고 도전하거나 가르치는 일만 해 왔던 저로써는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서울권의 퀴어 선거 참여자 분들이 각자의 선거팀 내에서 같은 퀴어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했던 이야기를 듣고 서울은 참 신기한 곳이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선거팀은 커녕 외부 유세중에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같은 퀴어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활동하는 지역이 더욱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비즈니스, 정치의 목적으로 이번 힐링캠프에 온 게 아니라 정말 쉬러, 소통하러 온 것 같아서. 모두가 솔직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해서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접하기는 굉장히 드물지 않을까 생각 될 정도입니다.


선거 참여자, 정치인으로써 이런 힐링 프로그램을 지원받고, 내부에서 교류를 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정말 초당적이고 초이념적인 교류였고, 정치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성소수자들이 그간의 긴장을 내려놓고 진실된 나 자신으로써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경험은 앞으로의 정치생활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고군분투하는 성소수자 정치 활동가들에게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세지를 전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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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파주시 기초의원 출마자
노동당 
소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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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해야 하는 일정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 관계 속 갈등으로 인해 몸을 돌보고 단련할 시간조차 없을 때, 저는 더 불안해지고 감정적으로 흔들린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지난 선거에서도 비슷한 시간을 보냈지만, 잠시나마 명상과 요가, 그리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다시 요가와 스트레칭을 시작하면서, 결국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몸을 돌보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몸을 돌보는 일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고 나다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는 조금씩 쉬어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일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캠프에서 처음 만난 분과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그분이 제게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일을 덜 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었는데, 그 한마디 덕분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에너지가 많다'는 칭찬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고 야박한 것은 아닐까요. 서로를 조금 더 격려하고 인정하는 일이 결국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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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자신의 정체성을 잊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당 안팎에서 입장을 정하고, 설득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작은 정당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이 크다 보니, 다양한 사안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그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제게 중요한 정체성과 제가 왜 정치 활동을 시작했는지를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 성소수자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느꼈던 에너지와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각났고, RUN/OUT 분들과도 앞으로 조금 더 깊이 소통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제가 조금 더 편안해진다면, 가족과 정치의 관계 속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들도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프로그램도 지금처럼 대화 중심으로 이어가되, 가볍게 교외로 캠핑이나 글램핑을 가거나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형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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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 광역의원 출마자
사회민주당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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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잠을 잘 잤다. 손님으로 런아웃 힐링캠프에 참여해서 그런 것 같다. 캠프는 나를 있는 그대로 환영해주었다. 퀴어들의 천국인 보스턴에서 돌아온 지 5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정치인이 되고 싶었고 성소수자 권리 증진을 위해서 내 나름의 방향을 찾는 중이었다. 당사자 정치보다는 연대 정치에 뜻을 두었다. 퀴어가 아닌 이들이 성소수자들의 정치적 권리에 연대하는 모습을 나를 통해 배우길 바랐다. 물론 커밍아웃을 감행한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 포함이다. 나는 이따금씩 묻는 이들에게 미국의 분위기는 어떻고 하버드에서 어떻게 성소수자들을 보호하는지 설명했다. 

 

그렇게 몇년을 살다가 아주 오랜만에 성소수자들을 만난 것이었다. 심지어 나처럼 정치와 선거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선거 기간 초등학생들에게 담배 핀다고 타박 받은 참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찬란함에 기뻤다. 당장 아이를 키우지 못 하는 게이 정치인과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류라니. 이 나라의 성소수자 혐오는 막연하다. ‘성소수자가 가시화되면 내 자식도 퀴어가 되는 것 아니냐,’ 마치 흡연이나 유흥업에 대한 경계와도 같다. 그 애들이 후보의 성적지향에 대해서는 몰랐겠지만 그저 자기들 부모에게 배운 것처럼 길에서 담배 피고 있는 후보에게 한마디 핀잔을 날린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게이 정치인에게 남자 만나지 말고 여자 좋아하라고 타박주게 될까? 나는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는 게 목표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의 성적 지향이나 누군가를 사귀는 일은 잠깐 스트레스 풀러 가는 흡연이나 유흥업소와는 질적으로 다른 일이라고. 서로 사랑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의 진지함 만큼이나 성소수자들도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경계를 긋고 싶다. 

 

정치인들은 우리나라를 사랑한다. 성소수자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선거에 출마하며 나서는 이들은 분명 무언가에 대한 분노와… 열정과… 나라를 바꾸겠다는 숭고함이…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성소수자가 아니고 이들은 정치인들과 2년에 한번씩 투표로 거래를 한다. 성소수자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무엇을 주는가? 첫번째가 나와 성적지향이 다른 이도 나만큼 나라를 걱정하는구나, 동질감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다름을 거부하고 혐오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는 데 연대하는 것이 두번째요, 이 모든 과정이 정치임을 실감하는 게 세번째일 것이다. 정신과 정신이 계속해서 이어짐은 우리나라 독립과 민주화 피의 역사로 남았다. 아이는 없지만 성소수자로서 삶을 이어가며 정치하는 런아웃 구성원들 먼 미래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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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강북구 광역의원 출마자
개혁신당 앨라이 모임 
문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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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OUT 힐링캠프 참여는 미처 갈무리되지 못한 선거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밀린 회사 일정과 개인적 약속들을 해치우는 사이, 정작 선거 기간 동안 배운 것들이나 그때의 감정에 대해서는 정리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템플스테이에서 열린 집단상담 세션 가운데 앉아있다가, 제가 그 시간을 한 번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첫 출마였습니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다음 일정이 계속 밀려왔고, 끝나고 나서는 곧바로 다음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힐링캠프에서의 이틀은 그 미뤄둔 시간을 처음으로 꺼내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각자가 겪은 일들, 그리고 소수자 정체성을 안고 그 과정을 통과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듣는 경험은 흔치 않습니다. 자료로 읽는 것과 사람의 말로 듣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또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풀어낼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주는 힘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부연하지 않아도 생기는 공감대가 기꺼웠습니다. 정치를 하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늘 누군가를 이해시키기 위한 형태로 다듬게 되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자리에 있어 본 것이 오랜만이었습니다.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이 길을 가려고 하는지를 조금씩이나마 꺼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소속 정당이 달라도 서로가 이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나눌 때, 거기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낼 때, 하나의 공통점 빼고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왜 연대해야 하는지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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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의 형식이 템플스테이였다는 점도 돌아볼수록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낙선한 후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나 계획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입니다. 도시에서 반나절짜리 워크숍으로 열렸다면 저는 아마 그 앞뒤로 일정을 붙였을 것이고, 끝나자마자 다음 장소로 이동했을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이틀을 통째로 비워두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비로소 속도가 줄었습니다. 그렇게 속도가 줄고 나서야 어떤 길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출마를 마친 뒤 제 마음속에 남아 있던 질문은 다음이 있을까, 였습니다. 이번 캠프에서 얻은 답은 '혼자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도전을 준비하는 마음이 이전보다 가벼워졌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서로를 살피고 이야기 나누며 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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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 광역의원 출마자
기본소득당 
노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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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가 끝났다. 머리를 쥐어짜며 기획안을 쓰고, 이른 아침마다 이어지던 보고. 보고가 끝나면 다시 수정해야 하는 기획안, 현안이 생길 때마다 작성해야 하는 논평, 기자들을 만나 정보를 듣고 대응계획을 마련하는 일까지. 3월 경선부터 6월 3일 투표일까지, 밤낮 없이 달려온 3개월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선거가 끝나면 늦잠도 자고, 밀린 OTT 드라마를 보며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거 이후 마주한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머리를 비우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의 용주사로 향했다. 그곳에는 직접 후보로 출마했던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누군가의 당선을 위해 스태프로 뛰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차별금지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했던 후보의 이야기, LGBTQ+ 구성원이 많았던 어느 캠프의 이야기. 선거 기간 동안 각자가 마주했던 경험을 나누며 첫날을 보냈고, 둘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치인은 속마음을 표현하면 안 된다."

 

정치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누구나 한 번쯤 듣게 되는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내 마음이 이토록 지쳐 있고 망가져 있는 줄조차 몰랐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응원했다. 힐링의 시간이 끝난 뒤, 나는 다시 전당대회 캠프로 들어왔다. 오후 6시가 지나면 에어컨이 꺼지고, 밤 10시가 지나면 엘리베이터마저 멈추는 여의도의 어느 사무실에서 다시 낮과 밤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2박 3일 동안 용주사에서 보낸 시간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우리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바쁘고 치열하지만, 전보다는 덜 힘들다. 함께 버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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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지자체장 후보 캠프원
더불어민주당 
차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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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에게 처음 한 질문, 앨라이도 함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기획 의도에 맞지 않는 불청객이 될까봐 나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염치와 궁금함의 줄다리기는, 환영한다는 재훈의 말에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지리했던 회계를 마감한 다음 날 아침 일찍 몸을 일으킬만큼 나는 설렜다. 나의 경우는 파트너의 출마를 도와 사무장을 맡은 경우인데, 서로 마음 상하기 쉬운 선거 캠프에서 관계의 흔들림 없이 선거를 마친 경험이 다른 참가자들에게 색다른 인사이트였을거라고 상담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조금 창피했지만 커뮤니티에 무언가 기여했다는 마음에 뿌듯했다. 

 

성혁 님과의 만남도 개인적으로 무척 즐거웠다. 다른 LQBTQ 커뮤니티에서 온라인으로만 알고 지내던 분이었는데, 힐링캠프에서 우연히 만났다. 소수자라는 씨줄에 정치라는 날줄이 엮이니 더욱 강력하게 연대할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룸메이트였던 태민 님과의 대화도 크게 기억에 남는다. 성별 방 분리에 대해서 내가 질문을 던졌고 굉장히 편견 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조잘조잘 떠들 수 있었으면 더 즐거웠을 텐데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타이트하게 짜여 있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나 빼고 서로가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나름대로 잘 녹아 들어갈 수 있었고, 어색한 사람 없이 잘 마쳤다고 자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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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의원 후보 캠프원
더불어민주당 
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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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출마를 했거나, 캠프 관계자였거나, 그 밖의 여러 이유로 정치에 몸담아 온 사람들이 모였는데, 정책에 대한 토론도 언쟁도 없었습니다. 이번 선거 과정과 그간의 정치 생활 안에서 각자 느낀 점과 고충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우리는 어느새 서로의 편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서는 다르지만 회사는 같은 동료 같은 느낌이랄까요.

 

사찰에서 템플스테이와 병행한 이번 힐링캠프에는 담당 스님과의 차담 시간과 명상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참석 인원의 특성상 우리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걱정과 기대가 함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스님께서는 본인의 투자 자랑,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것이 애국이다 등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힐링을 하러 왔다가 데미지를 입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서 슬기롭게 다른 주제를 제안하며 대화를 무마하는 한 참가자와, 그 분위기를 함께 느끼고 반응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아, 역시 어려움도 함께 겪으면 나아갈 길이 보이고 추진력을 얻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정치 배경을 가지고 모여 2박 3일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같은 편'이었습니다. 정치 안에는 학연, 지연, 군대, 출신 업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정체성이나 구심점을 중심으로 모인 이익 결사체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체성 가운데 가장 근원적이라 할 수 있는 성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모임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데, 왜 그런 결사체는 없었을까. 아마도 함께 지켜야 할 '이익'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의 정체성에 대해 가진 사랑은, '이익'이라 부를 만큼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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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 
한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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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거나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치를 한다는 것이 외로운 일임을 알았다. 특히 청년의 경우 정당 안에서도, 사회적으로도 견고한 지지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더욱 혼자서 고군분투하게 되는 것 같다. 얼핏 생각해도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라는 무대에 이름과 얼굴을 내놓는 사람들에게는 그 과정이 더욱 지난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세상 전면에 나서는 일이고, ‘성소수자’라는 특성은 대체로 우리 사회가 숨기려고 드는 것이니까….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기까지 내면에서 고민과 갈등이 많았을 테고, 출마를 결심한 이후로는 외부와 조율해 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런아웃에서 여는 힐링캠프가 반가웠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선거를 치르며 고생했을 사람들을 혼자 두지 않고 커뮤니티에서 자발적으로 이들을 모아 쉴 자리를 만든다는 기획 취지에 공감이 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당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출마하기 위한 과정과 선거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과 온전히 터놓고 대화하며 이해받기는 어렵다. 공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사람들, 비슷한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 필요하다. 런아웃이 힐링캠프를 통해 만들어준 자리가 그런 자리라고 생각했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과 정치라는 목표를 가진 유사한 사람들을 모아서 서로 대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힐링캠프에 함께하는 상담사 중 한 명으로 참여하기로 하고 다른 상담사 선생님들과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 집단이 상담을 처음 시작하는 여느 집단들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 주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리를 펼쳐놓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런아웃에서 만들어준 자리가 그만큼 편안하고 반가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선거 동안의 경험이 얼른 꺼내놓고 싶을 만큼 괴롭고 외로웠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힐링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그 자리에 내가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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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개인상담이나 집단상담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일정이 없는 빈 시간에도 사람들은 큰 방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거 동안 겪었던 일, 그 과정에서 부딪혔던 어려움,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큼은 반드시 해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앞으로의 계획… 이렇듯 좌절했던 경험과 비장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출마 과정에서 친해진 동네 사람들 이야기, 연애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금세 가까워졌다. 힐링캠프 초반에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홀로 있는 것처럼 내내 표정이 어둡던 참여자가, 두 번째 날 밤 사람들 틈에서 활짝 웃는 얼굴을 보였던 것이 기억이 난다. 지방선거를 거치며 고립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 2박 3일을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힐링캠프를 마친 후에도 이 연결감이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너도 나도 다음에 또 보자고, 집에 초대하겠다고 나섰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정당을 초월해서 동료가 되었다고 느꼈다. 도전하는 사람들이 부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자리를 만들고, 초대해준 런아웃과 함께해준 참여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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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RUN/OUT 힐링캠프 협력
임상심리전문가 
배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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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를 마치고 돌아와 후기를 작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한동안 고민이 깊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각자의 세상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들의 모습을 고작 몇 마디의 말로 쉽게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런아웃’에서 만난 그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고 멋있게 자신의 뜻을 펼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치열한 현실 정치의 벽 앞에서 어딘가 외롭고 쓸쓸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남긴 그 강렬한 인상이 제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아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맴돕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곰곰이 그 시간을 복기하다 보니, 문득 그 모습이 한로로의 노래 ‘입춘’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삶의 전부를 쏟아부어서라도 목소리를 세상에 내고자 하는 모습이, 겨울이 지나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피울 수 있게 도와달라’는 가사와 연결되어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거대 정당이든 소수 정당이든, 각자의 위치에서 외치는 ‘퀴어’라는 색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런아웃 캠프에서 지켜본 그들은 무척이나 단단하고 유능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고 자신감있게 표현할 줄 알았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정해진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 훌륭함 이면에는 매 순간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내야 하는 지난한 소모의 과정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디 그들이 이 거친 여정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그리하여 그들이 말한 바대로 오래오래 정치를 이어가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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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셋째 날 아침,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로 바닥이 축축하게 젖었습니다. 다음 일정을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기던 중, 문득 젖은 돌 틈 사이로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무 예쁘고 대견해 급히 사진을 찍었는데,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꺼내 본 그 사진 속에서 그날 만난 참여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였습니다.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노래 ‘입춘’의 가사처럼, 차갑고 거친 정치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아슬하게 고개를 내밀고 서 있던 청년 정치인들. 청년이자 퀴어라는 다중의 교차성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들이 지치지 않고 마음껏 피어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수많은 지지자의 다정한 ‘봄인사’와 연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봄이 되어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이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바라는 세상이 머지않아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부디 그들의 정치가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피어 있기를, 이 벅찬 봄날이 지난 후에도 오래도록 빛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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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RUN/OUT 힐링캠프 협력
전문심리상담사 
장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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