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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94호][기고] 예삿일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전시를 마치며
2026-09-04 오후 16:29:17
기간 8월 

 

 

[194호][기고] 

예삿일

—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전시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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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활동가는 본 전시의 종료를 어떻게 축하해주면 좋을지 물었다. 내 안에서 의미가 계속 바뀌어 온 전시, 그곳에 퀴어미술 전반을 둘러싼 온갖 평가가 찰나의 전시 하나에 몰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유난스럽게 축하한다면 ‘수많은 퀴어 작가들이 함께하는 전시’가 다시는 안 올 것만 같았다. 일부러 심드렁하게 굴고 싶다고 대답했다. 겸손보다는 자기주문에 가까운 일. 이런 일이 또 있을 거라고, 앞으로도 여러 번 보게 될 거라고 … 그러니까 무던하게 지나가고 싶었다. 그때는 다 같이, 지금보다 우리의 삶에 가까운 전시를 만들어볼 수 있는 형식을 고안하자고 말해야지 싶었다.

 

그다지 축하받지 못할 전시가 끝났다. 참여작가면서 이게 무슨 심보인가 싶다. 2026년 3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3개월간 열린 대규모 퀴어 전시《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에 많은 기대와 우려가 맴돌았다. 국내에 전례 없던 규모의 퀴어 전시가 열린다는 설렘과 변화에 주목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제도권 미술이 소수자의 조형문법을 환대한다는 제스처에 감동받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한편 74명의 퀴어 작가가 참여했다는 설명은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삶과 작업을 손쉽게 정리하는 문장으로 읽혔다. 때문에 자원이 마련되었다는 이유로 모이기만 하면 되는지, 호출된 기회에 흘러들면 그만인지, 퀴어라는 이름 아래 예술의 독립성과 각자의 맥락은 어디까지 남을 수 있는지, 커뮤니티를 소진시키며 열린 것은 아닌지 등의 의문이 일었다. 나는 아티스트 토크에서 ‘퀴어작가 74명을 소개할 수 있다면 어째서 옆 건물, 옆옆 건물을 대관하여 천 명의 작가는 초대하지 못했는가 … 양적인 스펙타클이 어떠한 불화를 수반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다만 비판과 애정은 서로를 취소하는 감정이 아니기에 냉담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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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잠시간 퀴어와 성소수자는 엇비슷한 의미로 쓰일 테다. 그중 비규범성을 담지하는 ‘퀴어’자 붙은 창작자들이 기획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마음일 리도 없다. 그러니 전시의 의미는 김선정 예술감독과 이용우 큐레이터, 선프라이드 재단이 기획한 범위를 넘어설 수밖에 없었을 테다. 공적인 교육보다 민간 아카이브를 통해 자신을 역사화하고 — 조형언어를 통해 사적 기록을 구성한 퀴어 작가들, 그리고 ‘작가들이 세계에서 자신의 일부를 찾을 수 있도록 유산을 열어준’ 퀴어 커뮤니티와 조력자들을 통해 가능한 전시였다. 서로를 정서적 지지체로 둔 퀴어 커뮤니티, 그 일부를 떼어다둔 것만 같던 감사함과 미안함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전시가 줄 수 있는 압축적인 이해와 총체적인 감각은 분명히 있었다. 74명의 개별 작업을 한 건물 안에서 연달아 통과하는 경험은, 흩어져 있었다면 결코 대번에 붙지 않았을 감각들을 이어붙인다. 관람객에게는 짧은 시간 안에 퀴어 서사의 스펙트럼을 훑을 기회일 테고, 그 서사의 재료를 내어준 당사자와 커뮤니티에게는 우리네 삶이 다시 한번 요약되고 재배치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훑어보자면 지하 1층에서 양승욱은 전시에 초대받지 못한 퀴어 작가들의 작업 사진을 붙여두며, 여러 감정 사이에서 연결되는 ‘우리’의 감각을 열어주었다. 데릭 저먼과 재훈, 차연서, 조현진, 어유슈이, 야광, 송세진, 이정식, 구자혜 등의 작업은 ‘퀴어의 파괴적인 회복’이라 부르고 싶은 장면을 만들었다. 회복을 매끈한 치유의 과정으로 제시하지 않고, 이미 훼손된 것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보다 한 번 더 부수거나 다른 방식으로 이어 붙이는 일이 회복의 형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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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으로 올라가 자연광에 뒤섞인 작품을 보게 되는 곳에서는 정서가 전환되었다. 1층의 이우성, 하지민, 민윤, 전우진, 김대운, 양승욱&우지양 등의 작업에서는 공적 제도와 사적 생존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희를 엿볼 수 있었다. 마련된 자리가 없으니 직접 판을 벌이고, 주어진 규칙을 비껴가며 놀 듯이 살고, 살아야 하니 노는 태도가 있었다. 제도 바깥에도 낭만은 있지만, ‘그 불안정함을 유희로 바꿀 여력이 있는 삶에게만 허락되는’ 낭만이라면 잔인하다. 혼인평등과 성별인정, 차별금지가 필요한 삶들은 왜 여전히 스스로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지도 함께 물을 수밖에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정은영, 오인환, 마크 브래드포드, 얀 보 등의 작업은 삶에 들러붙은 멍에가 퀴어를 수비적인 존재로만 정체화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정치와 문화, 지식과 미술의 질서를 바꾸어온 주체로 퀴어’를 위치시켰다. 앞선 층에서 파손된 삶 위에 판을 벌였다면, 이곳에서는 판의 규칙 의심하는 일이 전면에 놓였다. 한쪽에서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적 주체로서 성소수자들이 외치는 구호가 들렸고, 다른 쪽에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이름으로 쓰인 향가루가 타들어갔다. 청각과 후각으로 이어진 두 축이 전시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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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30여 년간 발행한 소식지를 재구성한 아카이브 작업이 놓인 3층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기록과 장르, 커뮤니티의 자원을 활용해 퀴어 미술을 구성하는 방식이 두드러졌다. 박민영, 문상훈, 이반지하, 홍민키, 전나환 등의 작가들은 자기 안으로 잠길 줄 아는 동시에, 그 끝에서 건져 올린 자원을 타인과 나누고 다른 이가 내어준 자원을 다시 자기 방식으로 번역하는 창작자들이었다. 선배님, 언니라고 부를 법한 대상들이 남긴 문장과 이미지, 대중문화와 장소, 인터넷 문화, 운동의 기록과 관계를 가져와 자기 위치를 만들었다. 유산은 고스란히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오해되고, 복제되고, 유실되고, 새로운 번역자를 필요로 하며 이어졌다. 우리에게 역사가 없다는 말도 어느 정도 진부해졌다는 사실과, 동시에 그 ‘역사’가 정말 우리의 역사인지 반문할 수 있을 만큼 커뮤니티의 자의식도 쌓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그 사이에 놓인 김경묵의 좁은 독방은 이 모든 관계망으로부터 단절되는 시간이 성소수자에게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절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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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과 층 사이 수많은 행간이 있는 전시에서, 활동가이자 작가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역사학자 김대현과 성소수자인권운동 활동가 심기용이 협력한 〈아카이브 테이블, 32편의 글〉(2025)은 친구사이 소식지 2,240편 가운데 32편을 선별한 작업이다. 그 선별 과정부터 이 아카이브가 비선형적이고 주관적인 목소리, 한 공동체의 형성에 관한 부분적인 지식으로 향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를 자신의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테고, 아니라면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역사에 한 편 두 편을 끼워두어도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무엇보다 반가운 관객 한 명을 만났다. 얼굴도 이름도 남아 있지 않은 글 「동성애자들이 노동법 투쟁에 나선 이유는」(『친구사이 소식지』 14호, 1997년 2월)의 필자가 전시가 마무리될 무렵 우연히 자신의 글을 발견했고, 이후 친구사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30년 전 성소수자가 노동 투쟁의 현장에서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말했던 기록이 전시장을 거쳐 다시 그 글을 쓴 사람을 현재의 커뮤니티에서 만나게 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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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시장에서 지인들에게 도슨트를 해주며 “퀴어 커뮤니티는 전시가 설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전시의 의미를 증식하고 수정할 주체”라고 말했다. 커뮤니티에게 해석의 힘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 힘은 한 번도 미술관이나 작가의 소유였던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전시가 붙인 설명보다 먼저 자신의 기억으로 작품을 읽고, 잘못 놓인 관계를 알아보며, 빠진 이름과 장면을 덧붙일 수 있다. 전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다른 기억과 판단이 한동안 맞붙을 자리를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시작된 감각이 각자의 삶과 관계로 흩어져 계속 수정된다면, 전시는 종료된 뒤에도 제 몫을 하는 셈이다. 나는 다음 대규모 퀴어 전시가 열리기까지, 전시 바깥에서 서로에게 인접한 커뮤니티를 잘 돌보고 가꾸며 지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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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참여 작가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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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데이즈드 코리아』 2026년 8월호의 프라이드 기획 ‘PRIDE MAXXING’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되었으며,

원고 일부가 잡지에 게재되었습니다. 친구사이 소식지에는 잡지 지면에 담기지 않은 내용을 포함한 원문 전체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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