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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94호][활동스케치 #2] 벨기에, 프랑스 LGBTQ+ 센터 탐방기 : 우리가 함께 간다면
2026-09-04 오후 16:30:09
기간 8월 

 

 

[194호][활동스케치 #2]

벨기에, 프랑스 LGBTQ+ 센터 탐방기
: 우리가 함께 간다면

 

 

월드프라이드에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

 

새로운 세대와 함께 가는 것,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자리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그런데 암스테르담에서 여러 프로그램과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그 질문은 조금 더 커졌다. 성소수자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끼리 더 잘 모이는 것만을 뜻할까. 우리가 만든 조직과 공간은 앞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사회와 정부는 그 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답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그래서 월드프라이드 일정을 마무리한 뒤, 곧장 한국으로 돌아오는 대신 기차를 탔다. 벨기에 브뤼셀과 프랑스 파리의 성소수자 커뮤니티 센터들을 직접 찾아가 보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단체들은 어떤 공간을 만들었는지, 여러 단체는 어떻게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가는지, 정부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한 질문을 들고 브뤼셀과 파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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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하우스 브뤼셀(Rainbowhouse Brussels)은 2001년에 설립된 문화, 페미니즘, 스포츠부터 청소년, 시니어 단체까지 70개 넘는 LGBTQ+ 단체가 입주한 우산조직이자 연합체 모델이다. 벨기에의 무지개행동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제 사무실에서 칵테일을 파는..) 시작은 한국으로 치면, 부산 정도 되는 벨기에의 도시인 안트베르펜(Antwerpen)에 LGBTQ+ 커뮤니티 센터 로즈 하위스(Roze Huis)가 생긴 걸 보고 브뤼셀도 자체 공간을 만들자! 하는 목표 아래 1999년 브뤼셀 시와 성소수자 단체 연합이 협상하기 시작했고 2002년 10월 공식 개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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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하우스에서 5년 넘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띠오젠(Theogene)과 함께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저녁 6시부터 여는 협동조합식 바가 건물 지층에 있고, 회원단체와 자원활동가들이 돌아가며 운영한다. 주변 대학생들도 취업 혹은 졸업을 위해 의무 자원봉사시간을 채워야 해서 LGBTQ+ 당사자 여부와 상관없이 많이들 봉사하러 온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화요일 저녁은 보드게임 데이로, 관광객들이나 지역 LGBTQ+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방문해 함께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일이라서인지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여유롭게 다양한 대화를 띠오젠과 나눌 수 있었다. 지금 돌아 보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띠오젠의 파트너가 우연히 레인보우하우스에 들렀는데, 딥한 키스와 스킨십을 공개적으로 하는 광경에 이것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혼인평등을 이룬 나라의 모습인가, 하고 심히 당황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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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텔 켈(Tels Quels) 건물의 입구

 

 

브뤼셀에서의 둘째 날, 레인보우하우스 브뤼셀의 옆집에 있다가 이사간 텔 켈(Tels Quels)에 방문했다. 텔 켈은 1979년 활동가 소모임에서 출발해 지금은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수자 단체 중 하나로, 사회복지팀 3명, 평생교육팀 5명으로 총 8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교육팀의 멜라니(Melanie)가 텔 켈과 벨기에의 성소수자 인권운동, 정치 대표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주었다. 평생교육팀은 성소수자 관련  교육 도구, 인식개선 자료와 설문조사 제작 등의 업무를 맡고 있고 사회복지팀은 1차 지원 기관으로, 성소수자 여부와 무관하게 망명 신청자, 커뮤니티를 찾는 청년 등 모든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요즈음 벨기에의 LGBTQ+ 당사자들은 주로 어떤 상담을 하는지 물어보니, 상당수는 동성 부부의 입양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아웃팅과 같은 위기 대응이나 자살예방 상담에 익숙해 있던 내게는 기분 좋은 놀라움이었다.
 

같은 건물에 무지개 건강센터(Maison arc-en-ciel de la santé)도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 센터는 성소수자만이 가지는 특정한 건강 수요에 알맞은 "포용적이고, 통합적이고, 교차적인" 의료를 표방하며 2명의 의사, 2명의 심리학자, 1명의 간호사가 상주하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벨기에 최초의 성소수자 커뮤니티 특화 건강센터이며 브뤼셀시, 벨기에 연방 차원에서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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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켈 평생교육팀 소속의 멜라니(Melanie)와 함께

 

 

텔 켈은 1981년부터 매년 10월경 상영회, 컨퍼런스, 퀴어 마켓, 슬램·글쓰기 워크숍, 라디오 청취 세션 등이 합쳐진 일주일 가량 이어지는 축제를 열고, 이 행사 또한 브뤼셀시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당사자인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보니 그들과 개인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LGBTQ+ 혹은 앨라이 정치인들이 자문을 요청할 때마다 협력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답했다.

 

잠깐 벨기에의 성소수자 정치인들은 누가누가 있는지 짚어보자면 - 국가 차원에서 기록된 최초의 성소수자 정치인은 엘리오 디 뤼포(Elio Di Rupo)로, 1987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6년 자신을 따라다니며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집요하게 묻는 기자에게 "맞는데 어쩌라고(Yes, so what?)"라고 되받아치며 커밍아웃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후에도 정부 수반을 2024년까지 세 차례 역임한 바 있다. 페트라 더 쉬터르(Petra De Sutter)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부총리 겸 연방정부 공공행정장관으로 취임하며 유럽 최초의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국가 각료가 탄생하기도 했다. 외에도 2012년 브뤼셀 정부 각료를 지냈던 브뤼노 드 릴러(Bruno De Lille), 브뤼셀 정부 각료이자 2009년 플랑드르 정부 교육장관으로 취임한  파스칼 스메트(Pascal Smet) 등 연방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에도 성소수자 정치인들이 곳곳에 각자의 신념과 철학에 따라 제도정치의 곳곳으로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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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다니엘 다리의 전경

 

 

브뤼셀 운하를 가로질러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수잔 다니엘 다리다. 수잔 다니엘은 1918년 브뤼셀 출생으로, 본명은 쉬잔 드 퓌(Suzanne De Pues)이고 다니엘은 예명이다. 1930년대부터 브뤼셀 게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활동가였다. 1953년 벨기에 최초의 레즈비언·게이 단체인 '벨기에 문화센터(CCB)'를 창립했고 이 센터가 벨기에 성소수자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지만 게이 중심 운영진 안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다니엘은 심한 성차별을 겪었고, 단체를 만든 지 1년 만에 이사회에서 물러나고 퀴어 커뮤니티를 떠난다. 이후 브뤼셀 시가 진행한 온라인 시민 투표를 통해 수잔 다니엘 다리로 이름이 정해졌고, 이 다리는 서로 다른 공동체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의 중요성과 누구나 공공 공간에서 자기 자신일 권리가 있다는 것,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여성들이 마침내 마땅한 가시성을 얻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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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다니엘 다리 위에 있는 수잔 다니엘 명판

 

 

널리 알려진 기념비적인 장소는 아니지만, 브뤼셀 게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여성 활동가라는 점에서 게이인권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상근활동가인 나의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져 꼭 방문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이 어쩌다 게이인권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냐 물어보면 “여성할당제”로 취업했다고 농담하고는 하지만, 사실 내가 맡고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역할도 친구사이의 사업과 성명, 비전에 비남성으로서의 시선과 의견을 더하고 레즈비언 혹은 여성 커뮤니티와 친구사이 간의 연결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사이에 어리고 핫한 팸이 들어왔다고 이미 소문 다 나서 무를 수 없다.) 게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인권단체에서(그리고 상당수 그들의 후원으로 굴러가는 단체이기도 하다) 여성과 비남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도 사람인지라 친구사이라는 조직 안에서 환대받고 싶고, 모두에게 호감일 순 없겠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고 싶은 마음에 괜히 초 치는 말을 하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때때로는 괜한 겁을 집어먹기도 한다. 그런 마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할 때 나보다 더 격하게 동의해주는 친구사이 회원분들의 모습을 보면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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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LGBTQI+ 센터의 활동가, 피에르(Pierre)와 폴(Paul)과 함께

 

 

브뤼셀에서 훌쩍 파리로 넘어가, 파리 LGBTQI+ 센터에 방문했다. 피에르와 폴 모두 소식지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을 때 조금 망설이는 듯 싶더니 흔쾌히 사진을 함께 찍어 주었다. 본인들 이름이 민수와 민석이 정도 되는 매우 흔한 이름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파리 LGBTQI+ 센터는 2023년 기준으로 연간 방문자 17,000명, 워크숍·행사 참가자 12,200명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친구사이가 대략 연 2,400명 정도가 방문하고 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우리의 5~6배 정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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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LGBTQI+ 센터 2층에 자리한 공동 우편함

 

 

파리 LGBTQI+ 센터는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총 3개층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지하는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클럽 파티, 영화 상영회, 포트럭 파티 등의 이벤트를 연다고 한다. 친구사이의 교태전인 셈이다. 앰프와 마이크 선, 접이식 의자와 책상이 한쪽에 쌓여 있는 모습과 한쪽 벽에 공간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나가자는 메세지가 적혀 있는 포스터를 보면서, 전세계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건 똑같군, 생각했다. 2층에는 사무실과 한 쪽 벽을 차지하는 우편함이 있다. 파리 LGBTQI+ 센터 또한 109개 성소수자 단체가 가입해 있는 연합체인데, 여러 이유로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주소를 공개하지 않는 단체들에게 우편함을 임대해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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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LGBTQI+ 아카이브센터(Centre d'archives LGBTQI+ Paris Île-de-France)를 소개해 주고 있는 센터장님.

 

 

파리 LGBTQI+ 아카이브센터(Centre d'archives LGBTQI+ Paris Île-de-France)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센터는 프랑스 최초의 게이 잡지 『게 피에(Gai Pied)』 창간인의 이름을 딴 '장 르 비투(Jean Le Bitoux) 홀'에 있다.  총 약 1만 점의 자료와 영상물을 보관하고 있고 정식 출판되지 않은 보고서, 논문, 팸플릿, 단체 발간물 등을 회색문헌으로 범주화하여 따로 수집하고 있다. 친구사이 교태전에도 <선게이 서울>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만 가득한 서가가 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2040년의 친구사이를 방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센터는 당시 아카이빙 프로젝트로 2002년 파리시의회가 보조금을 승인하며 시작됐지만, 게이 남성 중심으로 기울었다는 내부 비판이 단체들에서 제기되며 중단되었다. 브뤼셀에서 봤던 수잔 다니엘의 이야기가 겹쳐 보이며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균형감각은 커뮤니티 내부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계속해서 노력해가며 유지해야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17년 영화 〈120BPM〉이 나오면서 1989년 파리의 HIV 확산과 액트업 파리(ACT UP PARIS) 같은 단체의 활동사에 관심이 되살아났고, 이를 계기로 프로젝트가 다시 추진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온라인 카탈로그도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방문해 보셔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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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성소수자 커뮤니티 센터들을 방문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정부와 동등한 위치에서 행사와 사업을 함께하는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었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혜택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인지하고, 이러한 형태의 복지가 필요함을 인정하고 자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하는, 행정적이고 제도적인 의미에서의 가시화도 내포한다. 암스테르담의 월드프라이드도 시정부 차원에서 열린 행사였고, 텔 켈 뿐만 아니라 레인보우하우스 브뤼셀, 파리의 LGBTQI+ 센터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성소수자 권리의 증진을 떠올릴 때 성소수자 정치인의 당선, 혹은 상징적인 법제화 같은 큰 일들만 상상하고는 하지만, 어쩌면 정부가 우리를 함께 가는 파트너이자 조력자로 인지하고,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 혹은 커뮤니티 단체들과 함께 협업해나가는 일상의 모습이 결국에는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결론일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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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리드 
박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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