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93호][기획] 친구 사이의 사람들 #1 : 소식지팀장 정재훈| 기간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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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기획]
친구 사이의 사람들 #1
: 소식지팀장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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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 인터뷰 기획 시리즈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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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데이터에서 삶의 다양성까지
“도시는 새로운 사람이 계속해서 들어와 살 수 있어야 해요”
- 친구 사이의 사람들, Between Friends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팀장 / RUN/OUT 프로젝트 리드, 정재훈
재훈님은 도시를 사람의 움직임으로 읽는다. 그에게 통근은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을 어디에 놓을지 결정하는 도시 계획의 가장 기본적인 논리다.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위치 데이터를 연구한 그는 국회 보좌진과 선거캠프를 거쳐 현재는 친구사이에서 태민, 기진과 함께 RUN/OUT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도시에서 시작한 질문은 그가 서울에서 살아남은 방식과 정치에 들어가게 된 이유, 친구사이라는 공동체에서 꿈꾸고 싶은 것들로 이어졌다. 동시에 영화를 통해 지금의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과 평범한 삶에 대한 오래된 소망을 들여다보았다.
1. 사람이 계속 들어올 수 있는 도시
재훈님이 친구사이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17년이다. 당시 소식지팀장이던 터울의 제안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도시와 성소수자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는 「Seoul for All」을 연재했다. 위치 데이터를 연구하던 대학원생의 시선은 서울에서 누가 보이고, 누가 기록되지 않는지를 묻는 글로 이어졌다.
여름: 「Seoul for All(모두를 위한 서울)」기획글을 쓰면서 친구사이 소식지팀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 글을 쓰게 되셨나요?
재훈: 익선동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2016년 상반기 학부 과정을 7학기 차에 수료해서, 졸업 전 하반기에 마지막 한 학기가 남아 있었어요. 그렇게 대학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우연하게도 당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기 전 익선동에서 도시재생 활동가를 서울시에서 채용하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더 고민하지 않고 지원해 일하게 되었어요. 제가 학부에서 전공한 도시계획이 실제 현장에서는, 특히 당시만해도 게이들만의 메카였던 종로3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종로3가 익선동은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었어요. 그러한 현장에서 주민과 상인,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도시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단순히 공간을 쓸모있게 정비하거나 새로운 가게를 들이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 같은 변화도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공간에서 밀려나는 일이 될 수 있었죠. 도시계획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실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도 느꼈고요.
이후 도시계획 석사과정에 진학했는데, 안타깝게도 이 분야에서는 성소수자의 삶은 단순한 '존재함' 수준에서조차 다뤄지지 못했어요. 서울에는 분명히 성소수자들이 살고 있고 관계와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계획의 언어 안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지 정립조차 되어있질 않았죠. 그렇게 종로3가에서 경험했던 질문이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소식지로의 연재로도 이어졌던 것 같아요. 흔히 도시를 모두를 위한 곳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그 ‘모두’는 누구인지 묻고 싶었어요.
석사과정 2학기 즈음이었을까요? 하염없이 질문이 쌓여나갈 때, 마침 당시 소식지팀장이었던 역사학자 터울 님이 익선동과 성소수자를 주제로 글을 써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었고, 그렇게 「Seoul for All」을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연구하던 위치 데이터도 비슷한 의미가 있었어요. 데이터가 사람의 삶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이동과 생활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도 그때는 논문을 쓰는 일과 소식지에 글을 쓰는 일이 아주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둘 다 도시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고, 그 삶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었으니까요.

2026년 2월 박사학위 졸업식에 참석한 재훈 님
여름: 저는 그중에서도 위치 데이터를 다룬 글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석사부터 박사까지는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하셨나요?
재훈: 제가 석·박사 과정에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주제는 위치 데이터였어요.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통신망이 바뀌면서 사람들 개개인의 이동을 이전보다 촘촘하게 볼 수 있게 됐잖아요.
박사학위 논문에서는 그 자료를 활용해 소득이 있는 60세 이상 사람들의 통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연구했어요. 논문의 질 자체는 많이 부끄럽지만, 논문 주제는 비교적 현실적인 기준으로 골랐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주제, 대한민국이 해결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문제를 다루고 싶었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앞으로 고령자가 훨씬 많아질 테니까요.
재훈님은 2019년 석사논문 「위치기반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울시 활동인구 유형 및 유형별 지역 특성 분석」에서 서울의 생활인구 데이터를 연구했다. 2026년 박사논문 「위치기반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도권 고령 인구의 통근 패턴 및 영향 요인 분석」에서는 일하는 고령 인구의 통근 특성과 그 영향 요인을 분석했다.
여름: 그중에서도 왜 통근을 연구하셨나요?
재훈: 제가 공부한 도시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근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을 배치하는 가장 큰 기준이기 때문이죠. 어느 지역에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있어야 하는지, 그것들을 분산해야 하는지 집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논리가 통근이에요.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 자체가 통근과 연결돼 있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통근 논리와 중위 연령이 60세인 30년 뒤의 통근 논리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방정식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고령자가 더 많아지는 사회에 맞춰 도시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여름: 결국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이동할 수 있느냐가 도시의 모습도 바꾸는 거네요. 그렇다면 재훈님이 보시기에 도시가 계속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재훈: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밀려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도시 공간 자체가 밀집과 경쟁을 전제로 작동하니까요.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쟁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도시가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이 계속해서 들어올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아래쪽의 안전망이 탄탄해야 하죠. 값싼 집이 많아야 하고, 가능하다면 그 집의 질도 좋아야 하고요.
이미 잘사는 사람을 더 잘살게 만드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정말 다양한 가난한 사람들이 서울에 들어와 자기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조건 가운데 하나가 통근이라고 봐요. 반드시 서울 한복판에 살지 않더라도 무리 없이 이동하고, 일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2. 그들의 논리 안에서 살아남기
재훈님은 충청도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빠르게 익혀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여름: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오셨다고 들었어요. 당시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재훈: 사실 제가 대학에 진학할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을 선택한 기준이 조금 특이했어요. 제 수능 성적으로 4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생활비가 나오고, 기숙사가 무료인 곳을 찾았어요. 마침 중앙대학교가 두산에 인수된 뒤 장학 제도를 크게 확대하던 시기였어요. 등록금 전액과 한 학기 생활비 200만 원, 기숙사 무료 조건을 받을 수 있어서 그곳에 갔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모든 생활을 해결하기는 어렵잖아요. 한 학기 200만 원이면 넉 달 동안 한 달에 50만 원 정도니까요. 그래서 나름 학부에서 유명한 공모전 헌터가 됐어요. 대회에 나가면 상을 곧잘 탔고, 그 상금이 제 생활비이자 용돈이었어요. 그냥 제가 살아남는 방식이었죠. 대학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학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고, 연구실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내면서 돈을 벌었어요.
여름: 성과를 만드는 일이 연구를 위한 과정인 동시에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던 거네요. 그런 생존 방식은 재훈님에게 무엇을 남겼나요?
재훈: 어렸을 때 집이 가난했거든요. 단적으로 토익이라는 영어시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학에 와서 알게될 정도로 사교육과도 멀었구요. 그러다 보니 서울에 와서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어떻게든 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아집이나 고집이 생긴 것 같아요.
한편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성향이 무언가를 뚫고 나갈 때 쉽게 지치지 않는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요즘에는 “왜 나는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려고 하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렸을 때의 가난이 제 삶의 핵심적인 기억 가운데 하나가 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어요. 이미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돼버렸는데요. 저한테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재능이라면 재능일 수도 있겠죠.
재훈님은 2022년부터 친구사이 소식지에 「딱, 1인분만 하고 싶어」를 연재했다. 커밍아웃과 가족, 서울살이의 현실, 정치권에서의 경험을 돌아보며 개인의 생존기를 서술한 에세이다. 제목에 담긴 ‘1인분’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자기 몫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는 바람에 가까웠다.
여름: 그렇게 성과를 통해 살아남아야 했던 공간에서, 커밍아웃한 도시공학 대학원생으로 지내는 일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재훈: 도시계획이라는 분야는 이과도 아니고 문과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어요. 사회과학이면서도 교통체증이나 도시 현상을 분석할 때는 물리학의 이론을 가져오기도 하고요.
그만큼 제가 있던 곳은 공대 남성 중심의 공간이었고, 연구 분야도 부동산 개발과 가까워서 자본의 논리가 굉장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곳이었어요. 그런 곳에서 저는 커밍아웃하고 지냈죠. 제가 어떤 연구 주제를 가져가면 “게이니까 저런 것에 관심을 갖지”, “왜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해? 그냥 평범하게 생각하면 되지” 같은 반응을 들을 때가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을 계속하게 됐죠. 강자의 관점에서 상대를 설득하고, 제 말이 왜 타당한지를 설명하는 연습이요.
차라리 사회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했다면 이렇게까지 자기검열이 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헤테로 공대 남성들이 당연한 공간에서 제 나름대로 “이것이 맞다”고 주장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어력이 늘어난 것 같아요.
여름: 그런 반응을 마주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연구를 인정받게 만들어야 했잖아요. 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하셨나요?
재훈: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았죠. 저도 어렸고, 지금 생각하면 연구도 허술했어요. 그런데 계속 연구하고 같은 방식으로 설득하려고 하니까 그 사람들도 조금씩 이해의 범위를 넓혀가더라고요. 조금 나쁘게 표현하면, 전형적인 공대 남성 연구자들은 외부에서 인정받은 성과에 약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가서 상을 받아와야겠다”고 생각했죠. 학술대회에서 상을 받고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방식으로 제 말을 인정하게 했어요.
그들의 법칙 안에서는 그것이 인정받는 경로였죠. 그들의 논리 안에서 살아남고, 그 논리로 상대를 누르는 방법을 계속 습득한 거죠. 물론 저는 이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성과로 압박하고 굴복시키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일 수도 있으니까요.
3. 연구에서 정치와 공동체로
재훈님은 도시 연구와 정책 R&D를 거쳐 국회의원실과 선거캠프에서 일했다. 연구 결과가 제도와 정치의 선택을 거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연구자의 자리에만 머무르기 어렵다고 느꼈다.
여름: 정치 산업으로 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재훈: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연구자로 남거나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도시계획은 주택이나 부동산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 정권에 따라 전체 방향이 크게 흔들려요. 어제까지는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내일부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일도 생겨요. 제가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동안 정부가 여러 번 바뀌었고, 부동산 정책도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봤어요. 교수와 연구자는 그대로 있는데 정치인만 바뀌고, 연구자는 새로 온 정치인이 원하는 말을 따라 해야 하는 거예요. 그때 “내가 연구자로 살면 결국 정치인이 원하는 말만 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쉽게도 저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내가 정치 산업 안에 들어가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뛰어든 거죠.
여름: 그 선택에서는 어떤 정체성이나 경험이 가장 크게 작용했나요?
재훈: 외부에 설명할 때는 성소수자 정체성이 이유였다고 말하는 것이 편해요. 그게 가장 쉽게 이해되는 직관적인 설명이니까요. 너무 복잡하게 들어가면 제가 살아온 과정을 시시콜콜하게 전부 설명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대학원에서 커밍아웃한 연구자로서 형성된 페르소나, 서울의 도시계획을 전공한 지방 출신 상경인으로서의 페르소나가 훨씬 더 크게 작용했어요. 어떤 정책이 만들어지고, 또 그 정책으로 도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유도하는 원초적인 과정에 직접 개입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선택이 정해졌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시에는 국민의힘을 선택할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정치권을 경험하고 나서야 성소수자로서의 삶과 제가 하고 싶은 정치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알게 됐어요.
RUN/OUT은 성소수자 당사자가 정치라는 곳을 상상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정치권 안팎의 성소수자들을 연결하고, 대화하는 자리를 만드는 친구사이의 정치 생태계 조성 프로젝트다. 지난해 친구사이 소식지의 커버스토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출범을 알린 RUN/OUT 프로젝트는 현재 출마자뿐만 아니라 보좌진과 당직자, 선거캠프 실무자, 정책 연구자와 활동가 등 ‘정치’라고 불리는 산업군에서 종사하는 성소수자들을 가시화하고 있다.
여름: 지금은 친구사이에서 RUN/OUT 프로젝트를 맡고 계시기도 해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재훈: 저는 솔직히 정치가 무서워요. 제대로 된 사회 경험도 없이 대학원에만 있다가 정치권에 갔어요. 어떻게 보면 너무 나쁜 것을 너무 빨리 배워버린 것 같아요. 이 모든 과정이 무섭죠. 무서운데도 용감한 척해야 하고, 너무 잔인한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에게는 희망찬 이야기를 해야 해요. RUN/OUT은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프로젝트인 것 같아요.
어느 날 이 문제로 고민하다가 한 분께 조언을 구한 적이 있어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요? 저는 여기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어요. 그분이 “그 모든 일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 재훈 씨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결국 제가 먼저 빠져나갈 수는 없다고 느꼈어요. RUN/OUT이 처음 목표로 했던 것을 모두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잘 마무리되는 길은 만들어내야죠. 그건 결국 지금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다음 삶에 잘 자리 잡도록 돕는 것도 제 책임이고요.
여름: 그렇다면 지금 재훈님에게 친구사이는 어떤 곳인가요? 또 소식지팀장으로서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재훈: 예전에는 친구사이에 소식지 팀원으로 한 달에 한 번 회의로 나왔어요.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 농밀하게 활동한 적은 크게 없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친구사이는 저한테 교회 같은 곳이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와서 “아, 내가 성소수자지”라고 확인하는 곳이요.
한편, 제가 팀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친구사이 소식지 사진에 이 시대에 친구사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기록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최대한 사람들의 얼굴을 내보내면서 여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이 오늘의 친구사이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전달하고 싶어요.
그런 기록이 한동안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행사의 결과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는지를 남기고 싶어요.
4. 나를 놓지 않기 위해
여름: 지금까지 이야기한 삶은 계속 무언가를 견디고 책임져 온 시간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재훈님을 다시 자신만의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버릇이 있나요?
재훈: 저는 같은 영화를 어릴 때부터 계속 돌려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매트릭스》는 1편을 가장 좋아하고, 1995년 극장판 《공각기동대》도 좋아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과 디즈니 영화도 몇 편 좋아하고요. 집중해서 영화를 감상하지는 않아요. 이미 모든 장면을 알고 있잖아요. 영화의 대사에서 떠오르는 제 생각을 계속 곱씹으면서 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잖아요. 어렸을 때의 기억이나 지금의 이름 같은 몇 가지를 이야기해요. 그런 장면을 보면 “나는 지금 무엇을 통해 나를 인식하고 있을까?”를 생각해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가지고 저 자신에게 다시 질문하는 거죠.
조금 더 설명해보자면, 인생에서 딱 한 번 제 삶을 구성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적이 있어요. 20대 중반에 대학도, 관계도 다 지겨워져서 갑자기 휴학하고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9개월 정도 일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 뒤에 《매트릭스》와 《공각기동대》가 더 좋아졌어요. 지금은 제가 당장의 삶을 다시 전부 놓아버리지 않도록, 지금의 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가 서 있는 현실이 어디인지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계속 되새기는 것 같아요. 저만의 빨간약인 셈이죠.
시로는 심보선 시인의 「사랑은 나의 약점」이라는 시를 한동안 좋아했어요. 당시 저는 시를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독서모임에서 어떤 친구가 심보선 시집을 가져와 낭독했어요. 그때 들었던 어떤 문구가 계속 맴돌았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왜 이 목소리들을 말할 수 없는지를 묻는 듯한 대목이 있었어요. 그 감각이 지금까지도 항상 제 마음 안에 담겨있는 것 같아요.
결국, 그 모든 일이 지금의 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냥 그 모든게 제 삶인 거죠.
시인이여, 노래해 달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나의 머지않은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모르는 나의 일생에 대해.
나의 슬픔 사랑과 아픈 좌절에 대해.
그러나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에 대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 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 달라.
- 심보선, 「사랑은 나의 약점」中 일부 -
여름: 영화를 보며 자신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확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범한 삶을 오래 바라왔다고 하셨어요.
재훈: 저라고 왜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겠어요. 가끔은 억울해요. 제가 상상하는 일상은 주말이 있고, 저녁 여섯 시에 퇴근하고, 집에서 저녁을 해 먹는 삶이에요. 다중우주 어딘가에는 그런 선택을 한 제가 살고 있으면 좋겠어요.
RUN/OUT을 시작할 때도 그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박사를 마치고 연구기관에 들어가는 것이 제가 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삶처럼 느껴졌거든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은데, 내가 이것을 너무 말도 안 되게 걷어차버리는 것은 아닐까.” 솔직하게는 여전히 그런 고민이 있어요.
그런데 또 “나는 언제쯤 평범하게 살까”라고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말하는 평범한 삶 자체가 환상일 수도 있잖아요. 교과서에 나오는 4인 가족의 삶부터 실제로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범한 삶이 아닐 수 있고요.
여름: 그렇다면 궁금해지네요. 지금 재훈님을 가장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재훈: 제 부모님이에요. 사실 제가 저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보다 부모님이 저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 부모님은 정말 삶이 파란만장했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자기 자식만큼은 평범하기를, 그리고 평범하게 살기를 얼마나 바랐겠어요. 그럼에도 이런 자식마저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죄송한 분들이 제 부모님입니다.

2019년 6월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 당시 어머니와 재훈 님 (사진: 터울)
여름: 그럼, 지금 재훈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재훈: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어떤 한 사람이나 가치라기보다, 삶이라는 것의 찬란한 다양성이에요. 사람마다 삶이 참 다르잖아요.
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어떤 사람이 그것을 겪느냐에 따라 각각의 사건이 삶에 들어오는 형태가 달라요. 각자가 놓인 조건도 다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다르고, 그 두 가지가 다시 곱해지니까 삶은 더 다양해지고요. 저는 사람 자체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살아갈수록 각각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점점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저 사람도 저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이해하게 되는거죠.
옳고 그름의 잣대만으로 판단하면 모든 것이 쉬워져요. 하지만 삶을 그렇게 판단하는 순간 놓치게 되는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백억 명의 인류가 있다면, 백억 개의 삶이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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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팀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