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93호][커버스토리 "LGBTQ+ 정치 생태계, 그것은" #1] 그럼에도, 선수로 경기장 안에 남는다는 것| 기간 | 7월 |
|---|
[193호][커버스토리]
["LGBTQ+ 정치 생태계, 그것은" #1]
그럼에도, 선수로 경기장 안에 남는다는 것
- 썸머프라이드시네마 <State of Firsts(2025)> 상영회 참가자 후기 -

안녕하세요? 상근활동가 6개월차를 막 지나고 있는 태민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친구사이에 합류할 때에 저를 주춤하게 했던 건 인권운동을 업으로 삼는 것도 친구사이가 게이인권운동단체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첫 사회 경험을 RUN/OUT으로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왜? RUN/OUT이 불안해?" 라고 많이 반문하시는데요.
사실 그 반대였습니다. 탄탄하고 촘촘하게 짜인 청사진을 보면서 아, 이거 괜히 초짜인 내가 하겠다고 덤벼도 되나? 싶었거든요. 다행인 건, 정해진 것이 없고 모든 걸 만들어나가야 하는 RUN/OUT의 특성과 하고 싶은 게 많고, 재밌어 보이면 신나서 열심히 하는 저의 성향이 잘 맞아떨어져서, 초심자의 행운일지 아니면 운명일지 아직까지는 여차저차 잘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름 잘 하고 있나 봐요. (하하!)
RUN/OUT의 활동들이 쌓여가면서, "런아웃? 이 뭐에요?" 에서 "런아웃 왜 해요" 로, 그게 뭐냐는 질문을 지나 이제 그거 왜 하냐는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성소수자 정치인이 필요하니까 하는 당연한 말은 치우고, 그래서 왜 이 일을 지금 네가 하고 있냐는 말. 매 순간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왜 이 일이냐는 질문에는: "..재밌어 보여서."
왜 지금이냐는 질문에는: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데?"
같은 불친절한 대답만 하다가 "왜 너냐"는 질문에는 "그럼 너도 같이 할래?" 하게 됩니다.
이게 뭐냐면, 같이 하자고, 정확히 말하면 같이 놀자고 말하는 거에요. 노는 기분으로 일하고 있거든요. 진짜에요.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이라는 아주 크고 원대한 꿈을 바라보면 괜히 기가 죽더라고요. 우리는 분명 그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도요. 그래서 더 애써 멀리 보지 않으려고 하고, 놀이처럼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오늘 내가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작은 결과물들을 내는 데에 힘을 쏟고 있어요. 인권 운동 뿐만 아니라 정치도, 아니 사실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지금의 일을 하는 것. 오늘을 사는 것. 동료들을 바라볼 때에도 나도, 너도, 우리도 전부 각자의 일을 그냥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거지. 라고 공통의 감각을 공유하는 것. 지칠 때, 서로를 응원하고 힘을 북돋아주기보다는(그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근본적으로 일이라는 건 사람을 지치게 한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으면 됐다, 싶어요.
그리고 진짜 지칠 때, 쉬겠답시고 템플스테이까지 가서 몰래 치킨 먹으러 도망나오는 재미 정도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신기하게,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선뜻 다른 사람들에게 “같이 놀자고”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어요. 거절 당하고, 괜히 모난 이야기를 들어도 기죽지 않고 입 삐죽대지 않고 다음에 또, 한번 더 놀기 신청하는 명랑한 사람으로 지내는 게 요즈음의 목표입니다. 다음 달도 어김없이, 놀기 신청하러 올게요!
![]()
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리드 박태민

올해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에서 <State of Firsts(2025)>를 보고, 상영 후 GV 패널로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저릿했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 최초의 공개 트랜스젠더 연방 하원의원인 사라 맥브라이드의 선거와 당선 이후를 따라갑니다. 하지만 단순히 ‘최초’라는 기록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아니었습니다. 사라 맥브라이드가 정치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과 공직자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균형을 잡아가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지역에서 커밍아웃한 정치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장면들이 더욱 깊이 다가왔습니다. 사실 지역 정치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주민들은 제가 성소수자인지보다 지역을 위해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인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민원을 해결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생활 속 불편을 개선하는 것. 결국 주민들은 정치인을 ‘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지역에서는 ‘성소수자 정치인’보다 ‘지역에서 일하는 정치인’이라는 감각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진영 논리에 갇히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영화 속 사라는 의회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 사용을 둘러싼 공격을 받고, 존재 자체가 정치적 논쟁거리가 됩니다. 한 사람의 인권과 존엄마저 정치적 계산의 대상이 되는 모습은 참 씁쓸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도 떠올랐습니다. 정치는 때때로 사회적 약자를 가장 먼저 갈등의 중심에 세웁니다. 지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가 거대한 정치 구호가 되었던 것처럼, 복잡한 사회 문제를 특정 집단에 대한 찬반으로 단순화하고 갈등을 키우는 방식이 반복됩니다.

누군가는 그 갈등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고,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방어해야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도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사라는 지역구 전체를 대표하는 연방의원입니다. 동시에 미국 최초의 공개 트랜스젠더 의원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역을 대표해야 한다는 책임과, 트랜스젠더 의제를 대표해 달라는 사회의 기대를 동시에 짊어집니다.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성소수자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성소수자 의제에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받기도 하고, 동시에 지역구 주민 모두를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더 넓은 책임도 함께 지고 있습니다. 그 두 역할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하지만, 그 균형을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선수로 경기장 안에 남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경기장 밖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과, 실제로 경기장 안에서 협상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사라는 그 어려움을 견디며 끝내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제게는 무엇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는 또 하나의 중요한 현실도 보여줍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시대에도, 동시에 미국 최초의 공개 트랜스젠더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했습니다. 혐오와 변화는 같은 시대에 함께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오히려 ‘정체성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라 맥브라이드는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당선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역을 대표할 정치인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가장 큰 희망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GV에서는 조금 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쉽지 않았습니다. 정치인으로 살아오며 품어왔던 고민들이 영화 속 장면들과 너무 많이 겹쳐 보여 어느새 감정이 앞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한 번 확신했습니다. 좋은 정치는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어 승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넓혀가는 일이라는 것을. 저도 지역에서 주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성소수자 정치인으로서,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제 역할을 해나가겠습니다.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마포구 기초의원 당선자
더불어민주당 차해영

썸머프라이드 시네마 《State of Firsts》 GV 패널로 불러주신 덕분에 귀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 이 영화는 '정체성으로 정치한다는 것'의 복잡함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스스로 바로 서는 일과, 어떤 정체성으로 인해 무언가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같지 않습니다. 사라 맥브라이드에게는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방의원이라는 상징만큼이나 많은 기대가 쏟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사라는 자신을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단어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자신의 지역구 '델라웨어'였습니다. 트랜스젠더 정치인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대변해야하는 시민들의 이해관계를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선 이후 의회 화장실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을 때에도, 그녀는 주택과 양육비 같은 사람들의 절박한 문제들을 흔들림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만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의제와 지역을 두고 정치해야한다는, 소수자 정치인이 주로 직면하게되는 상황에 대해 오래 곱씹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의원은, 자신이 가장 온전한 상태일 때 비로소 가장 강한 힘을 낼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건넵니다. 적대적인 환경에서 소진되지 않으려면 자기 돌봄과 그것을 받쳐주는 연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런 힘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곳곳에 숨어 있던 동료들을 마주했습니다. 당이 다르고 지향이 달라도 서로를 지지할 수 있다는 것, 오래 함께 걷기를 포기하지 않을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더 다양한 성소수자가 정치의 자리에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라는 공통점 이외엔 저마다 너무 다른 존재들이기에, 누구도 다른 누구를 온전히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지향과 비전을 지닌 소수자 정치의 가능성을 그려보며, 끝까지 함께해 주신 관객 여러분, 그리고 썸머프라이드 시네마 운영진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 광역의원 출마자
기본소득당 노치혜

<STATE OF FIRSTS>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계속 마음에 남았던 건 외부의 공격이 아닌 내부, 즉 "같은 편"이라고 여겨지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로 인해 힘들어하던 세라 맥브라이드 의원의 모습이었습니다.
흔히 '좌파' 혹은 진보라 표현되는, 인권과 환경 등 소외된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늘 완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실수로도 집단 전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떻게 사진이 찍힐지 모르니 언제나 당당하게 웃어야 하고, 빈틈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맥브라이드 의원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렇게 늘 "완벽함"과 "무결함"을 추구하는 건 매우 힘이 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세상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언제나 옳은 선택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애초에 마땅한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동시에 "같은 편"을 욕먹이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노력하며 늘 살얼음판을 걷는 세라 맥브라이드를 보며 우리에겐 조금 더 포용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맥브라이드 의원에게 '종전에 대해 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 '왜 트랜스젠더를 차별하는 국회의 룰을 따르겠다고 하느냐'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세라 맥브라이드는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퀴어 정치인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맥브라이드는 지역을 대표해 선출된 의원입니다. 한 사람이 지역 사회를 챙기는 동시에 모든 퀴어, 환경, 전쟁 이슈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당장 눈앞의 과제 하나에만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테니까요.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짊어지려다가는 결국 소모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쉽지만 선택과 집중은 필수적인 일이죠.
의원을 비판하는 이들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기준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우 정치인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그럼 그렇지' 하고 넘어가면서, 소수자 진영의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완전무결"함을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차별으로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며 지금 소수자 커뮤니티에 필요한 것은 엄격한 평가보다는, 지원과 응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실제 정치에 뛰어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도 한국의 꽉막힌 정치판을 바꿔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쉽지는 않아도 조금씩 바뀔지도 모르겠다, 하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더 퀴어로서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퀴어 정치인 분들의 행보를 더 응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영화와 프로그램 기획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연세대학교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
대표 이규리

퀴어가 아니였다면 그 전까진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정치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일이 있었을까. 영화는 ‘성소수자’ 정치 영화보다는 성소수자 ’정치‘ 영화에 조금 더 가까웠다. 트랜스젠더이지만 델라웨어 주를 대표하는 선출직 공직자이고, 더 높은 직위의 선출직 공직자에 도전하는 공직후보자이기에 세라가 갖는 고민, 카메라는 그 고민들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있었다. 활동가와 선출직 공직자는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하는 모습과, 유권자들과 만나면서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들, 그리고 연방 하원 의장의 화장실 사용 금지 결정에 결국 승복하는 모습에서 그 고민이 드러났다.
영화 이후 이뤄진 GV에서 차해영 의원이 언급한 governance이 이런 맥락에서 떠올랐다. 결국 성소수자의 권리가 제도권 정치에 편입되기 위해선, 제도권의 정당들이 그 요구를 받아줄 동기가 있어야 한다. 여론의 압박이든, 정치권의 합의든. 그런 면에서 의원직 유지와 입법권 행사라는 실리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유예할 수밖에 없었던 세라의 결정을 이해한다. 세라의 결정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보 후퇴가 되길 바란다.
언젠가는 한국어로 제작된 한국판 <State of Firsts>를 보기를 희망하며.
![]()
동국대학교 성소수자 중앙동아리 큗 QUD
회원 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