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96호][기획] 친구 사이의 사람들 #4 : 신임 사무국장 심기용| 기간 |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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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기획]
친구 사이의 사람들 #4
: 신임 사무국장 심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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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 인터뷰 기획 시리즈를 시작하며… from 소식지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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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로서 말하는 연습
“커뮤니티에서 살게 해주세요”
- 친구 사이의 사람들, Between Friends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신임 사무국장, 심기용
기용님은 자신에게 “넌 뭐니?” 하고 묻는 인터뷰는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동안의 인터뷰에서는 주로 운동과 사업,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1. 나의 첫 이쪽 친구

여름: 저는 기용님의 첫 친구가 궁금해요. 기용님께 첫 이쪽 친구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있었는지.
기용: 되게 외로웠을 때 '금지된 사랑'이라는 카페에서 “전시 같이 가실 분”이라고 구했었는데, 자기 전시 보는 거 되게 좋아한다고 나온 친구가 있어요. 서로 되게 비슷한 처지였어요. 얘도 모임 정보가 없고 나도 정보가 없어서, 서로 만나가지고 말하기를 연습하는 사람이었어요. 게이로서 말하기. 내가 그런 말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예 없으니까. 얘를 딱 앉혀놓고 게이 친구로서, 게이가 게이로 대화하는 걸 연습했던 것 같아요. 되게 어색하게.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주변 친구들한테도 했지만, 친구들은 애초에 헤테로들이고. 성소수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여름: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바로 QUD(큗, 동국대학교 성소수자 중앙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아니면 그런 퀴어 동아리에 속하지 않았던 대학생 시절도 있으신가요?
기용: 저는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학과 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고, 동아리는 없었고, 같은 학교에서 저 이외의 다른 게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성소수자도 마찬가지고 되게 외로웠어요. 어플이 있었는데 무서웠어요. 시도는 해봤는데,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뭔가 일상적으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대학교에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퀴어 모임에 가려면 어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친구사이에 나가면 다 커밍아웃해야 될 것 같고, 뭔가 인권단체라고 하니까 좀 무서웠고.
그 무렵 학과에는 기용님이 게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여름: 그때 아우팅에 대한 공포는 없으셨나요?
기용: 놀라긴 했어요. 제가 게이라는 말이 퍼진 걸 보고. 물론 저희 사학과 선배들이든 동기들이든 후배들이든 게이인 저를 다 잘 받아줬어요. 근데 안 좋게 얘기하는 사람 몇 명이 있었어요. 근데 그게 좀 놀랐다 정도? 무섭진 않았어요. 저에 대해서 알아차렸던 같은 학교 레즈비언 누나가 있었는데, 그 누나가 저랑 한번 티타임을 갖자 그러더니 “너 나한테 할 말 없니?” 이런 얘기를 해가지고. 무슨 말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한 시간 동안 추궁당하다가, 아, 그 말을 하라는 거구나, 이거 뒤늦게 깨닫고.
그 자리에서 기용님은 사실 자신이 게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기용: 근데 그 누나가 대학교에 자기가 아는 게이 짱이 있다, 대빵이 있다. 그게 그 당시 대학교 중앙동아리는 아니었는데 게이 동아리가 있었어요. 거기의 대빵을 저한테 소개시켜 줘가지고, 그 형 통해서 동아리 가입했죠. 그 소모임에 가입한 게 2014년 11월이었어요.
여름: 처음 들어간 게이 소모임은 어떠셨어요?
기용: 저는 일단 해방감이 너무 크고, 너무 행복했어요. 너무 외로웠거든요. 진짜 너무너무 해방감이 들었고, 다만 저는 커뮤니티에 적응하기에 딱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저는 지금도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냥 퀴어 커뮤니티 생활 경력이 쌓였고, 이 경력이 충분한 자원이 되는 거죠. 다른 어떤 커뮤니티 구성원들하고 말을 할 수 있는 구력이 생긴 거죠. 제가 20대 초중반에 진짜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한 달에 책을 다섯 권에서 여섯 권, 일곱 권씩 읽었으니까. 되게 두꺼운 철학책들. 물론 수업을 잘 안 들었지만, 그냥 도서관에서 책벌레였어요. 그렇게 책만 읽는데 심지어 관심사도 철학이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관심사가 이거고. 제가 음악도 걸그룹 안 듣고, 옛날 가수 듣고 옛날 노래만 좋아하고. 그러니까 모임 참석하는 그런 게 너무 좋은 것과 별개로 나한테 다른 퀴어 분들과 교류할 언어가 없고, 적응할 수 있는 접점 같은 것도 너무 적고.
여름: 아이돌 노래는 잘 안 들으시는 편이신가요?
기용: 저는 아이돌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저는 보컬리스트 중심의 아티스트들, 뮤지션들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한영애 좋아했고, 장기하도 좋아했고, 김창완도 좋아했고, 아니면 발라더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밴드들. 아이돌이 제공하는 EDM 음악이나 일렉트로닉 음악들, 댄스 음악들이 저한테 그냥 좀 멀었어요. 저는 춤이랑 애초에 멀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사람들이 잘 다가올 수 있게 나를 파는 거에도 능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너무 없는 거예요. 모임에 나와가지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막 저랑 친해지려는 사람들이 나비처럼 모여들고, 이런 케이스가 저는 아니었기 때문에.
여름: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그러면, 모임 시간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기용: 거기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버텼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그 자리에 앉아 있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제가 재미없어 보이는데도. 아니에요, 저 재밌어요, 저 계속 이 자리에 나오게 해주세요. 저한테 되게 처절한 생존인 거예요. 커뮤니티에 나오는 게 그 순간만큼은 숨 쉬는 거 같았거든요.
2. 잘 사랑하기, 잘 사랑받기

여름: 그럼 이제 그 소모임 안에서 일상을 엄청 많이 공유하고 떠들고, 그런 친구를 사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기용: 집단이었어요, 그 동아리. 한 명이 아니라 모였을 때 내 퀴어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집단이 되어줬고. 아직도 그 사람들, 그 언니들한테 너무 감사해요. 그 소모임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내 인생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하고 진짜로 일대일로 만나도 티키타카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요. 집단에서는 여러 사람들 사이에 묻혀갈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티키타카 할 수 있는 매력이 없어도 되잖아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이랑 딱 핏한, 티키타카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또 찾았던 것 같아요.
여름: 첫 친구 말고 그런 핏한 친구를 처음 만난 곳은 어디였나요?
기용: 저는 그게 QUD(큗, 동국대 성소수자 동아리) 회장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게이 동아리 1년 활동한 이후에 협의를 통해서, 우리도 좀 게이 동아리가 아니라 성소수자 동아리, 다른 대학교에서처럼 좀 포괄적으로 나아가보자 해서. 그때 제가 QUD을 만들었죠. 다른 대학 퀴어 동아리 회장들하고 교류하면서, 그중에서 저랑 맞는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여름: 다른 학교 친구군요?
기용: QUD 동아리 회원들은 내가 책임져야 되는 의무감 같은 거, 책임감이 있어야 돼가지고 살짝 [...]. 2016년 이후부터 제가 지금 대안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왔던 과정이 좀 있어요.
여름: 기억에 남는 가장 좋은 추억이 있나요?
기용: 한 친구가 아팠을 때 약을 사러 갈 힘이 없다길래, 다른 친구랑 같이 가서 약을 사주고 잘 회복하라고 해줬던 기억이 있는데. 그 친구를 돌보러 가는 길, 그때 기억이 되게 좋아요. 내가 뭔가 나의 원가족이 아니라, 내가 될 수 있게 선택한 나의 사람들을 내가 돌볼 수 있고. 내가 그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다는 그 감각을 줬던 게, 되게 좋았던 부분이에요.
여름: QUD 회장직을 수행하시면서 기용님을 많이 변화시킨 어떤 사건이라든가, 가장 기억에 남는 회원이 있으신가요?
기용: 동아리 경험을 통해 든 저의 생각은, 우리가 잘 사랑하고 잘 사랑받는 법을 모르는구나. 그래서 제가 동아리원들하고 맨날 하던 얘기가 좋은 성소수자가 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자, 라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서 퀴어 정체성별로만 구분하지 말고, 우리 어쨌든 비슷한 처지의 성소수자 동아리원으로 서로 경험하고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누구는 게이여서 나랑 다르고, 누구는 트랜스젠더여서 나랑 다르고, 누구는 레즈비언이어서 나랑 다르고 공감할 수 없고 이게 아니라. 내 애인한테만 잘하지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 잘 교류했으면 좋겠다.
그때는 제가 QUD 회원들한테 되게 마음을 많이 썼던 때고, 서로 많이 마음을 썼던 때고. QUD 동아리를 하면서 성 정체성을 어떻게 넘어서고, 서로의 관심사, 성적 지향, 남자가 좋아, 여자가 좋아, 나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서 이해받을 수 있어, 없어, 이런 거 중요하지만.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걸 넘어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관심을, 어떻게 우리가 서로 가질 수 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학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3. 우리가 함께할 울타리

함께할 사람들을 만난 대학 시절에서, 그보다 앞선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여름: 언제 정체성을 인식하셨나요?
기용: 저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남자를 좋아했고, 또래 친구들도 다 남자애들만 보이고 그랬는데. 언어적으로 내가 동성애자다, 내가 게이다, 내가 사회적 소수자다 이렇게 인지한 거는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동성애 찬반 토론을 시켰거든요. 근데 그 반대 토론자가 수업 시간인데 동성애자는 바퀴벌레다, 공적인 자리에는 나오면 안 된다고, 알아서 쥐죽은 듯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약간 이런 식으로 혐오 발언을 막 쏟아내는데 선생님은 전혀 제재하지 않고 제가 상처투성이가 된 거죠. 물론 선생님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책도 선정하시고 트랜스젠더 에세이 같은 것도 막 읽게 하고 이러긴 했는데. 진짜 그 아이의 발언은 잊혀지지가 않는 거죠. 제가 너무 크게 상처를 받고 내가 이렇게 공격당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때 정체화한 것 같아요, 언어적으로.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 있기는 되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미 BL을 많이 읽고 이랬는데. 그게 나라고 잘 안 받아들여졌던 거죠. 그게 내가 퀴어로서 살아갈 삶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디폴트였던 거죠. 나를 잘 몰랐던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 이성과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가, 아니구나라는 걸 그때 좀 느꼈던 것 같아요.
여름: 어릴 적, 기용님의 장래희망은 뭐였어요?
기용: 저는 어렸을 때 꿈은 대통령이고, 그다음 꿈이 변호사였고, 그다음 꿈이 시민활동가였고, 그다음 꿈이 기자였고, 그다음에는 인문학자였는데. 근데 이 근간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 구성원들이 다 같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감정적 울타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거죠.
여름: 그럼 20대의 기용님은 어땠나요?
기용: 20대 초중반에 항상 제가 고민하고 있는 노동운동이 말하는 마르크스주의라는 게 너무 인간중심적이지 않나. 자원이 넘쳐나서 잉여 자원이 많아지면 그걸 어떻게 분배하는가의 문제가 될 거야. 근데 그럼 그 과정에서 생태계는 어떻게 해? 그렇게 생산력이 굉장히 고점을 찍을 때까지 망가지는 지구 자연은 어떡하지? 그리고 자원이 분배된다고 하더라도 차별의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데.
저도 성소수자였으니까 그 인식이 있었고. 거기에 답답함을 느낄 때쯤에 교보문고를 갔는데, 우연히 신승철 선생님의 책이 보인 거죠.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 엄청 공격적인 책 이름이잖아요. 딱 보는데 저랑 생각이 너무 똑같아서 이 책을 읽고 신승철 선생님한테 가서,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렸어요. 제 은사님이신 신승철 선생님이 생태철학을 하시는 분이었고 소수자 철학을 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저한테 철학을 사사를 많이 해주셨었습니다.
여름: 생태주의에 대해 그때 알게되신 건가요?
기용: 생태주의라는 말은 『녹색평론』이라는 책을 통해서 배웠어요. 김종철 선생님이 「간디의 물레」라는 글을 쓰셔가지고. 근데 제가 그 글이 너무 좋았던 거예요. 그래서 김종철 선생님이 쓰신 책들을 따라가다 보니까 『녹색평론』을 만나게 되고, 『녹색평론』을 통해서 생태주의를 배우게 되고.
여름: 친구사이에 와보니까 상근활동가 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요즘에 하는 고민은, 그렇다면 인권운동이란 뭔가, 이런 고민을 좀 하고 있거든요. 제가 그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전직 이런 거라고 하면 좀 웃기지만 게임 속에서 전직하듯이 내가 전직하면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거지? 물론 전직하지 않고 그냥 초보자로 계속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계속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정의가 지금 계속 바뀌고 있는데. 기용님이 생각하시는 인권운동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기용: 저는 인권운동가 혹은 인권활동가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제가 내리는 인권활동가의 정의는 사람이 사람을 믿게 하는 경험을 기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권이라는 말은 세계인권선언에서 얘기하듯이 결국은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얘기인데, 그거 자체가 되게 추상적인 말이긴 하지만. 어떤 삶은 살고 싶지 않다는 거거든요. 도저히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보편적으로.
그런 우리가 보편적인 삶을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서 활동하는 거고,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고 그 인권의 어떤 체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거든요. 애초에 인간을 믿지 않고서는 하나 마나 한 일이에요, 인권운동은.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의 권리를 지키고 내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고, 이런 신뢰의 관계를 구축하자고 제시하는 일인 거예요.
서로를 믿는 삶이 인간에게 가능하다는 걸 계속 얘기하는 사람이 인권활동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음을 기획하는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 하면서 제가 자주 걱정하게 되는 것은 이 사회에 괜찮은 사람들이 너무 없으면 어떡하지, 그 걱정에 가까워요. 선한 사람들, 여기서 말하는 선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어떤 자원을 나누고 돌보려고 하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할 때, 그런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너무 적으면 어떡하지를 더 많이 걱정하는 것 같아요.
여름: 선한 사람들이 사회에 너무 적어지거나 많아졌을 때, 기용님이 걱정, 혹은 기대하시는 변화가 있는 건가요?
기용: 저는 일단 사회에 선한 사람들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제 감각적으로 느꼈을 때. 근데 그 선한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되게 없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그걸 어떻게 확인해야 될지는. SNS도 너무 사람의 추악한 면에만 관심이 있거나, 어쨌든 선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조명하는 데 별로 재미가 없잖아요.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들이 별로 없다는 게 저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선한 사람들은 많다, 그러면 그 선한 사람들과 더 많은 일을 도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 만나고 싶고. 그 선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어디서 어떻게 마주해서 어떤 일을 같이 할 건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4. 2026년 10월, 사무국장 심기용

회원들이 드나드는 친구사이는 상근활동가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기용님은 이제 사무국장 직을 수행한다.
기용: 친구사이가 적자 구조이기 때문에 이걸 잘 극복해서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갉아먹히지 않고, 조금 더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구조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지금의 상황을 재정적으로든 운동적으로든 커뮤니티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뭔가 타개할 수 있을까 해서 항상 고민을 하고 있고.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잘 안되면 어떡하지에 대한 불안감도 분명히 있고, 그거는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거에서 계속 나오는 것 같고.
총괄자로서의 신뢰를 받고 싶은데. 사람들이 나한테 의지할 수 있게끔, 나를 봤을 때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으면 좋겠는데. 같이 불안해하고 있고 이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33살이라는 나이도,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어린 거는 불리하다고 생각하니까요. 33살의 사무국장이 된다는 거, 어떤 업무 환경에서의 장이 된다는 거, 한 팀장도 아니고 심지어 사무국장이 된다는 게 좀 많이 걱정이 됐어요.
여름: 어떤 식으로 기용님의 회복 탄력성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기용: 저 그냥 눈을 꼭 감고 참는 것 같아요. 안 좋은 습관인 거를 알지만, 아직 다른 방법을 못 찾았고, 개인적인 명상으로 많이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산책을 한다든지 도시의 야경을 본다든지. 사람마다 각자 그걸 소화하는 방법이 생기는데, 저는 정확히 말하면 그게 없어요.
저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걸로 푸는데, 이 사무국장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한 주제는 사실 다른 사람한테 하소연을 해도 해결책을 줄 수 있거나,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잘 아니다 보니까 쉽게 해소할 수가 없어요. 제가 찾아낸 방식은 세계관을 여러 가지 둬야 된다. 인권활동가로서의 세계관이 있다면, 그전에는 밴드가 있었거든요. 음악을 하는 나로서의 세계관을 환류시켜서 잠깐이라도 '다른 세계에 있는 나'가 되는 것이 중요했는데, 밴드가 멈춤으로써 문제가 생겼어요.
사실 사무국장이 되면서 세계관을 환류시킬 시간이 없어요. 지금 그냥 상근활동가들이 물리적으로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애인하고 시간을 빼면 거의 없을 거라서. 그것도 너무 미안해요. 애인한테도 이런 얘기를 잘 못해요. 한 번씩 하긴 하지만 그 친구의 일은 아니잖아요.
기용님은 2024년 소식지 기고에서 폴리아모리를 지향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름: 폴리아모리의 연애는 어떤가요? 주변에서는 어떤 질문을 제일 많이 받으세요?
기용: 사람들이 폴리아모리의 일반적인 삶의 양식이 있다고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 괜찮아? 저건 괜찮아?” 이렇게 물어보시거든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시면서 “이런 상황은 어때? 저런 상황은 어때?” 이렇게 질문을 하는데. 합의의 형식에 따라서, 합의의 내용에 따라서 폴리아모리는 정말 수천수만 가지의 양상이 있을 수 있어요. 저는 섹스는 자유롭고, 연애는 신중하고 기존 연인 관계와 충분히 대화와 합의를 통해서 추가되도록 하자는 합의를 맺고 있어요. 플러팅 환영합니다.
기용님은 2024년 소식지에 쓴 연극 〈와이프〉 후기에서 한때 연극배우를 준비하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진학을 꿈꿨다고 밝혔다.
여름: 요즘, 물론 시간이 없으시겠지만, 연극에 참여하신다든지 관련된 취미를 뭔가 하시는 게 있나요?
기용: 전에 연극을 좋아했던 이유가 제가 이야기 속에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 속에서 내가 그거를 몰입하고 있을 수 있잖아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게 저는 되게 즐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되게 좋아하고.
연극은 어쨌든 저의 몸을 이해해야 되고 남의 몸을 이해해야 되고, 배우의 특이성에 따라서 연극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나의 특이성과 텍스트가 가지는 보편성이 결합되는 되게 재밌는 무대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글도 쓸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쓰고, 활동보고, 사업보고 하는 거 제외하고 글을 안 써서.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없어요. 나의 몸과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정말 현저히 부족해요. 사진을 좀 생각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보다 도시 야경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여름: 어디가 제일 자주 가는 곳이에요?
기용: 남산도 좋아하고, 남산에서 보는 서울을 되게 좋아하고. 저는 근데 그냥 야경이 좋아서 그냥 옥상도 좋아해요. 종로에 티퍼런스 카페 옥상도 있는데, 그 옥상에서 보는 밤에 익선동도 좋아해요.
5. 2026년 10월, 친구사이

2026년 상반기, 친구사이는 한국에 사는 성소수자들이 영어로 대화하며 친구를 만나는 시범 모임 ‘잉구사이’를 시작했다. 한국어가 서툴던 시절 친구사이에서 환대를 경험한 회원 션이 윤하 대표와 함께 구상한 모임이다. 첫 모임에는 한국인과 외국인 참가자 25명이 모였다.
여름: 잉구사이 관련해서 좀 여쭤보고 싶어요. 저도 신청하고 싶은데 지금 신청 창이 안 보이더라고요. 이미 다 마감이 된 건지, 대기자가 엄청 많다고 해가지고.
기용: 기본적으로 지금 세션이 열릴 때마다 대기자를 구하는 쪽이고.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멤버들을 구하고 싶어가지고 막 더 계속 오픈해서 여는 건 아니고, 세션이 딱 열렸을 때. 그래서 좀 타임어택이었죠. 잉구사이 같은 경우는 파일럿을 좀 진행했던 거였고, 이제는 본 사업을 본격적으로 정식적인 사업으로 전환하고 진행하는데. 거기 오셨던 멤버들 중에서 코어 멤버들을 따로 구하고, 지보이스의 운영위원들이 있는 것처럼 책읽당의 운영진이 따로 있는 것처럼 잉구사이에도 운영진을 두려고 하고 있어서.
여름: 지금 초반이라 운영진이 없는 거면 다른 상근활동가분들이 그 역할을 맡고 계시는 건가요?
기용: 일단 상근활동가들이 실무를 좀 돕고. 기본적으로 션 님이 지금 브랜딩, 멤버 관리, 당일에 퍼실리테이팅 같은 걸 다 하고 있어요. 사업의 기획이나 이런 것부터 해가지고. 그래서 혼자 지금 되게 많이 고생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죠. 기본적인 세팅 준비라든가 저희가 사무국에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돕고 의사결정을 같이 하고 있는데.
모임 하나를 여는 데에는 기획과 참여자 관리, 당일 진행까지 여러 일이 따라붙었다.
여름: 소모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거랑 사업 단계 사이에는 제도적으로 몇 회 이상, 몇 명 모임, 이런 게 있나요?
기용: 확실히 다른 것은 운영위원이 되어야 해요. 소모임의 대표나 소모임장이 운영위원을 같이 해야 돼서. 운영위원까지 여력이 있어야 소모임으로서 지위를 공식적으로 획득하는 구조인 거고, 지금 정관상으로 그런 건데 이게 부담스럽긴 하거든요. 매월 운영위원회에 나와서 친구사이 전반의 운영에 대해서 동기화를 받고, 이렇게 해야 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친구사이 운영이 상근활동가가 더 많이 늘어나면서 좀 더 전문적으로 변화했고, 알아야 되는 정보값이 되게 많아졌어요. 하루에 와서 그걸 다 알려고 하면 어려운 거고, 사전에 공유한다고 해서 그 문서를 다 학습하고 맥락을 다 알고 하는 게 어렵죠.
여름: 생각보다 소모임을 새로 만든다는 게 사람만 모여서 되는 게 아니고, 그런 지점이 필요하다는 건 몰랐던 사실인 것 같아요.
기용: 소모임을 만드는 건 좋지만 결국 친구사이의 가치와 비전과 함께하는 소모임이어야 되는 거고. 친구사이는 회원들이 만들어가는 단체인 거죠. 친구사이는 세 가지 핵심 브랜드 마음연결, 런아웃, 그리고 금토일은 친구사이가 있어요. 마음돌봄 사업, 정치 생태계 사업, 커뮤니티 사업을 하고 있죠. '금토일은 친구사이'는 수많은 사업들, 지보이스, 책읽당, 잉구사이, 언니의 분장실, 그 외에 또 정기모임, 웰컴데이, 송년회, 어떤 행사, 이벤트 행사들,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어요.
마음연결, 런아웃, 금토일은 친구사이, 이 세 가지 사업의 공통적인 전제가 뭐냐면, 세 사업 모두 커뮤니티 사업이에요. 친구사이는 커뮤니티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얘기해요. 물론 친구사이가 말하는 '커뮤니티의 힘'이라는 게 직관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커뮤니티가 잘 구축이 돼 있어야 정치인도 나오고, 회복할 수 있는 관계망의 토대가 되고. 그리고 우리 퀴어가 만나고, 우리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이 스토리텔링은 있는데 이 커뮤니티의 힘에 대해서 다른 분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이걸 잘 전달하기 어려운 것도 있어요. 친구사이가 근 10년 안에 가장 후원자가 많이 나왔던 게 영화 《위켄즈》를 개봉했을 때인데, 영화 《위켄즈》를 보면 왜 우리한테 커뮤니티가 필요한지, 성소수자들한테 커뮤니티가 필요한지, 게이 커뮤니티가 어떤 힘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되게 잘 보여주거든요.
그게 사람들을 되게 많이 움직였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그 이후에 그러면 그거를 영화가 아닌 방식에서는 어떻게 풀어낼 것이며, 그걸 어떻게 더 많은 후원자들에게 이 커뮤니티의 힘에 대해서 얘기할 것이며. 이런 것들을 잘 전달하는 방식들을 연습을 많이 못 해온 것 같아요. 제가 들어오기 전에도, 제가 들어온 이후에도. 이제 그거를 올해부터 연습해 나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퀴어 커뮤니티의 필요성과 힘을 체감할 수 있도록 더 역할하고 싶어요.
여름: 기용님의 이전 소식지 기고문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신 분들이 친구사이에 방문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의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기용: 저는 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유흥문화는 발달했고, 만남을 위한 커뮤니티 업소를 토대로 한 여러 가지 문화적인 터전들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터전을 통해서 어떤 집단의식, 사회적 수준의 집단의식이 발달해왔는가. 그런 역사를 게이 대중이 갖고 있는가, 혹은 성소수자 대중이 그런 걸 갖고 있는가 하면 저는 좀 비관적이거든요.
코로나 이후에 이 의식의 세대 차이가 엄청 심해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권운동도 커뮤니티를 제대로 조직해내지 못하면 계속 괴리된다고 생각하는데. 헌신적인 소수의 운동이 되기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데, 이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가 하나 고민이고.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어요. 커뮤니티의 유대감이나 문제의식이 퍼질 수 있는 판 자체가 없으면, 판 자체가 부실하면, 지금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제시하는 변화들을 설득할 대중조차 없는 거예요.
저는 커뮤니티 안의 사랑과 연대와 우정이 확산되고, 커뮤니티 안에서 우리를 '우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결속이 강해져야 하고, 당연히 LGBTQ+ 모두를 아우르는 커뮤니티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감히 친구사이가 회원 구성이 어떻게 되어야 되는가에 대한 의견이 있지는 않아요. 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원칙은 친구사이가 모든 성소수자들, 구성원들이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성정체성이 동질한 집단끼리 모이는 게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게이가 게이랑 만나고 싶은 거는 또 당연한 욕구이기도 하고, 여성 퀴어가 여성 퀴어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 여성 퀴어들을 좀 더 동질한 집단으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고. 저는 기존에 있던 모임들이 정체성별 커뮤니티의 성격을 버려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종로의 게이 커뮤니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친구사이가 있는 것처럼, 커뮤니티가 변화하면 단체도 변화할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저희는 커뮤니티 단체이기 때문에 단체 구성원이 바뀌면 그 바뀐 거를 또 반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거는 만들어 나가야 되는 역사고, 그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결과값이지. 억지로 조직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친구사이가 결국 지향하고자 하는 커뮤니티의 방향성은 이 커뮤니티가 더 넓고 포용적이고, 퀴어한 삶들을 이해할 수 있게끔 관계망을 더 확장하고 유대감을 더 넓혀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열린 자세로 있다 보면 친구사이 구성원들이 변하지 않을까? 친구사이 내 여성, 트랜스젠더, 그리고 외국인,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이미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변화는 시작되고 있고, 작게는 친구사이 회원, 넓게는 게이 커뮤니티가 다양한 얼굴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6. 나의 은사님

기용님의 스승인 신승철 선생님은 생태철학과 공동체를 연구하며 소수자들과 연대했던 철학자이자 활동가였다. 2023년 7월 별세하셨다.
여름: 2023년 소식지에 쓰신 글 「사랑은 이기지 않는다」에서 신승철 교수님과 사랑에 대한 논쟁을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게 '사랑은 이길 수 있다'와 '사랑은 이기지 않는다'의 그런 간단한 논쟁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조금 더 자세히 여쭤보고 싶어요.
기용: 선생님이 말하는 사랑은, '하게 하는 거'였어요. 하게 하는 거. 무언가를 하게 하는 거 자체가 사랑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사랑이란, 대상이 기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냐는, 좀 쉽게 얘기하면 그런 거였어요. 그러니까 모든 욕망을 다 용인하자라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서 고양이가 배가 고파, 밥을 먹고 싶어. 그럼 밥을 먹도록 하고, 고양이가 테이블 위에서 놀고 싶어. 그럼 놀도록 하고. 이 흐름을 되게 유연하게,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만들어내는 거. 어떤 관계망 안에서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을 하셨는데.
그러니까 차별이나 혐오는 사랑이 아닌 거죠. 왜냐면 뭘 못하게 하는 거니까.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되는 흐름을 막아버리는 거니까. 제가 이해하는 선생님의 사랑은 그래서 하도록 하는, 하게 하는, 촉발하는 어떤 사랑인데. 근데 제가 처음에는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류애를 생각했던 것 같고, 그래서 뭔가 그런 선한 마음의 동기들이 가만히 있어도 이기는 거냐, 이런 식으로 싸움을 많이 했죠.
여름: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혹시 은사님께서 던져주셨던 메시지가 있는지.
기용: 신승철 선생님 철학의 핵심은 지금 이 순간에, 아까 얘기한 욕망의 흐름을 잘 가꾸는 거예요. 지금 여기서 뭔가 이런 종류의 흐름이 일어난다면, 지금 이 순간 이 흐름에 더 신경 쓰고, 그걸 잘 가꿔나가고.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잘 가꿔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미시적인 관계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셨던 분이고.
되게 작아 보이는 어떤 사랑의 장면들이 힘을 가지게 되면, 그러니까 잘 굴러가면 세상이 바뀌는 건데,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사실 거기까지다.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가 가진 여러 가지 관계망이나 이런 것들의 미시적인 흐름들을 더 많이 잘 가꾸어나가는 거에 많이 힘을 썼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에 힘이 된다, 그렇게 살아가는 너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그 얘기를 되게 많이 하셨어가지고 그 생각을 많이 하죠. 신승철 선생님한테 사랑에 대해서 맨날 반문했지만, 지금은 저도 선생님이 말하는 사랑의 힘을 믿어요. 살아 계셨다면, 달라진 제 생각을 전해드렸을 텐데. 제 곁에 계신 분들과 사랑을 잘 나누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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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좋아하며 영웅이 되고 싶었던 10대를 지나서, 20대 때 퀴어 커뮤니티를 경험하고, 그저 우리 공동체 중 어느 누군가 정도로 살고 싶었던 거 같다. 난 그런 변화가 좋다. 친구사이 상근활동으로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일은 20년 채우고 이 활동을 이어나갈 사람에게 맡기고, 그 뒤의 기용은 그때 생각하는 것으로 하자. 인권운동에 대한 사명감 말고, 일상의 즐거움도 충분히 잘 탐닉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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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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