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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12 : 어려서 꿈꾸었던 동성애 타고
2026-11-06 오후 16:02:26
기간 10월 

 

 

[196호][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12

: 어려서 꿈꾸었던 동성애 타고

 

 

2026년 11월 2일, 성평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만든 '청소년동반자 활동매뉴얼' 가운데, 소위 "위기청소년"의 문제로 "성(성폭력, 동성애 등), 도벽, 약물 등의 비행"이 열거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 매뉴얼은 정부의 공식 상담 지침으로 배포되는 문건이었고, 이 문구에 대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비롯한 100여개의 단체와 정의당·진보당·녹색당 등의 진보정당들은 일제히 항의 성명·논평을 냈다. 문제가 불거지자 성평등가족부는 11월 4일 해당 내용을 즉시 수정하고 매뉴얼 내용을 보완·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동성애가 누군가에게 아무렇게나 함부로 호명되는 일은, 그래서는 안되는 것과 별개로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참으로 자주 행해지던 관행이다. 그 무신경과 무책임의 구도 속에 동성애는 영문을 모른 채 다른 것과 나란히 언급되고는 한다. 가령 동성애가 대체 성폭력과 무슨 상관이고, 동성애의 상위 범주인 성과 절도, 약물 사용은 서로 무슨 연관인지, 그 모든 것들이 비행청소년 할 때의 '비행'과는 또 무슨 연유로 엮이게 되었는지 아연하다. 그것들 모두가 어딘가 하면 안될 나쁜 짓으로 느슨히 묶인 거라는 심증이 들기는 해도, 그 열거의 정치에는 그것을 상회하는 의외의 계보가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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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청소년과 동성애는 아직도 어딘가 함께 묶이기 곤란한 단어처럼 여겨진다. 바로 그 곤란함에 맞서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태동이었다. 그 시절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주요 의제는 1997년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시행령에 청소년유해매체물로 명시된 '동성애' 항목을 개정하라는 것, 당시에는 이반시티만큼 접속자 수가 많았던 동성애 포털 사이트 엑스존을 2000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한 조치를 철회하라는 요구였다. 2004년 시행령의 해당 문구는 삭제되었지만, 엑스존은 2007년 대법원 판결로 결국 영구 폐쇄되었다. 

 

딴 건 몰라도 애들한테까지 동성애 묻히지 말라는 식의 여론에 인권운동은 초창기부터 그렇게 맞섰다. 그 정신이 이어진 것이 2012년 성소수자 학생 차별금지조항이 포함된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이듬해 처음 출범한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다. 모든 성소수자는 한 명의 예외 없이 청소년 시기를 거쳐왔고, 적어도 내가 감내해온 일들보다는 좀더 좋은 걸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운동이었다. 가장 예민한 의제에서 후퇴하지 않아야 그 운동이 운동으로 존립 가능하다는 준칙이 이런 역사로부터 나왔다. 

 

비단 동성애가 아니더라도, 청소년 인권은 그 나라와 그 사회가 지닌 인권 상황의 척도가 된다. 인권이 인간에게 마땅히 주어질 존엄의 권리일 때, 성인이 아닌 사람이면서 형사책임을 온전히 묻기 힘든 형사미성년자인 청소년에게 사회가 과연 어찌 대하는가의 문제는, 그 사회가 사유하는 인권이 정말로 그 이름대로 작동하는가의 여부를 판가름한다. 어떤 인간은 왠지 좀 덜 인간 같고 덜 인간이어야 될 것 같은 그 생각이야말로, 인권을 천부 인권이 아닌 조건부 권리로 만드는 장치다. 그렇게 왠지 덜 인간인 게 맞는 것만 같은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성소수자와 청소년이다. "위기청소년"과 "동성애"에 얽힌 첫번째 수수께끼의 답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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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같은 인간을 덜 인간으로 치부하는 관행과 장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어떤 사람이 뭘 했느냐의 여부를 넘어, 그 사람이 뭘 '할 것 같았다'는 이유로 모종의 인신구속을 명하는 것이다. 가령 학폭을 실제로 벌인 학생을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왠지 언젠가 학폭을 할 것만 같으니 그런 너를 징계하겠노라고 한다면, 그 학생은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합리화하는 법문이 한국의 현행법에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소년법의 '우범소년' 규정이다. 

 

우범소년은 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소년이 아니라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소년을 일컫는다. 이 대목에서 처음에 언급된 '비행'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비행(delinquency)'은 법정 '범죄(crime)'와 다르고, 비행은 곧 범죄로 연결될 것만 같은 잘못된 행동 일체를 뜻한다. 하여 비행은 범죄보다 그 범주가 넓은 (소년법상)"반사회적 행위"를 뒷받침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범죄뿐만 아니라 비행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무슨 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소년법의 우범소년 개념이 법문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 우범소년에 대한 형사법적 조치다. 우범소년에게 가해질 수 있는 여러 제재들 중 하나가 바로 1~10호에 이르는 보호처분이고, 이들 조치 가운데에는 보호관찰과 더불어 소년원 및 보호시설·복지시설에 가두는 일이 포함된다. 이렇게 명확한 위법행위와 형사책임이 아니라, 장래의 위험성·개연성을 대상으로 그에 대한 예방적 조치로서 발동되는 형사제재를 통틀어 보안처분이라 한다. 이렇게 형벌이 아니고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발상이 곧 "위기청소년"과 "동성애"에 얽힌 두번째 수수께끼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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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할 것 같은' 이를 '예방'과 '보호'를 명목으로 처벌하는 보안처분의 대표적인 대상이 앞서 언급한 소년범 및 우범소년이다. 이외에도 행위의 개연성만으로 누군가를 처벌하게 허용한 법들이 바로 '사상범', 즉 '빨갱이' 혐의를 받은 이들에 대한 치안법령들이다. 국가변란 획책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증명되지 않아도, 단체 가입 등 그 개연성만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해놓은 국가보안법의 법리가 대표적이고, 1975년 만들어졌다가 1989년 위헌 결정된 사회안전법의 '사상범' 대상 보안감호가 그랬다. 

 

이러한 사상범 구금 외에도 보안처분에 해당하는 조치는 많았다. 검사의 영장과 법원의 판결로 명토박히는 형벌을 제외한 대부분의 형사처분과 행정처분이 대체로 여기에 들어간다. 1999년 이전까지 모자보건법 법문에 존재했던 '우생학적 사유'에 의한 강제불임수술 조항도 보안처분에 포함된다. 1980년 법제화되어 2005년에서야 위헌 결정된 사회보호법상의 보호감호와 그를 위해 지어진 청송보호감호소는, 전과 2범 이상의 누범, 즉 일반 형사범에 대한 보안처분이었다. 1961년 제정되어 2004년 폐지된 윤락행위등방지법상의 '요보호여자' 보호지도소 수용 또한 보안처분의 일종이다. 여기서의 요보호여자는 성매매를 한 여자가 아니라 성매매를 '할 것 같은' 여자를 뜻했다. 

 

1957년 제정되어 1989년까지 유지된 약물사용자에 대한 마약법상 강제수용도 대표적인 보안처분에 들어간다. 이는 약물사용자에 대한 치료보호 및 치료감호 처분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살아있다. 더불어 한국에는 시행된 바 없지만, 보안처분의 원류격인 나치 독일에서 시행된 남성 동성애자 거세 조치 또한 이 보안처분에 포함된다. 당시 성적 지향이 적발된 남성 동성애자들은 "국가와 민족의 적"이자 "반사회분자"를 대상으로 시행된 "예방구금"에 처해졌고, 그들은 곧 계속수감과 거세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다. 이 조치에 희생된 남성 동성애자들은 약 800명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위기청소년"과 "약물 등의 비행"과 "동성애"에 얽힌 세번째 수수께끼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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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그 수가 줄었으면 좋겠고, 있더라도 얼굴 들고 저자거리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일들의 전모가 이러했다. 얼핏 별 관계가 없는 것들이 나열된 것 같아도, 그렇게 무신경하고 무책임하게 나열된 것들과 그들을 향한 조치들은 분명 일정한 신경과 특정한 책임을 함유했다. 한국 정부의 공식 문건에 수록된 "위기청소년"과 "성(성폭력, 동성애 등), 도벽, 약물 등의 비행"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예방되고 근절되었으면 하는 "반사회적" 존재·행위의 호명과, 그들을 향해 보안처분이 구사하던 열거의 정치가 다시금 성찰없이 반복된 결과다. 그렇게 일반 형사범의 일종인 절도범은 청송보호감호소에, 약물사용자는 보호시설과 국립법무병원에, 우범소년은 감화원과 소년보호시설에 수용되었고, 과거 나치 치하 남성 동성애자들은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고환이 적출되었다. 

 

사회가 무너지면 저따위 것들까지 고개를 들게 되리라는 식으로 동성애가 소환되는 것은 성소수자에게 달가울 리 없고 바람직할 리도 없다. 다만 그 호명의 현실이 만든 상처가 때로는 세상의 불의를 바로 보게 만든 처연한 힘으로 작용했다. 누군가 우리를 무책임하게 열거한다면, 반대로 우리는 그렇게 열거된 그대로 연대해 되갚아주겠노라는 것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인권운동의 전략이었다. 그건 상황이 포시러워서가 아니라 당장 손뻗어 잡히는 지푸라기같은 자원이 바로 그러한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비행이었고, 한때는 위기였으며, 한때는 '애새끼'들과 '약쟁이'의 짓과 진배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바로 동성애였고, 운동은 다만 그 구도가 그 자리에 있었기에 그것을 역으로 활용했을 따름이다.

 

동성애자면 동성애 운동만 할 것이지 왜 청소년 인권과 약물사용자 인권과 남의 '빨갱이' 인권까지 챙기냐고 게이판의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볼 수 있겠다. 첫째로 우리를 그렇게 나열한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억압한 쟤네들이 먼저다. 둘째, 그렇게 쇠꼬챙이 꿰듯 억지로 나열된 채 옆에 붙어 서로를 확인하던 경험은 의외로 힘이 세다. 연대는 애먼 교양과 PC가 아니라 그런 피치 못할 경험들 위에 서 있다. 식남의 얼굴에 정액을 쏟은 동성애자의 불알이 오늘 비로소 안전한 까닭에는, 그렇게 게이도 아닌 여러 현장과 존재의 얼굴이 묻어있다. 그것은 내가 알아채기 이전에 이미 거기에 있고, 거기에 있으니 다만 그 있음의 도리를 다하자는 것이 운동의 권유다. 말하자면 남들에 의해 함부로 놓인 우리의 존재 조건을 우리라도 함부로가 아니게 대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한번 그렇게 취급돼본 사람의 손끝에 애써 얻어걸린 한 줌의 존엄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을 지나쳐 마지막 게이트다.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하고 있되, 이럴 땐 침착해, 좀 자연스럽게 굴면 된다. 

 

 

 

* 이 글을 쓰는 데 다음의 책과 글을 참고했다
김학이, 『나치즘과 동성애 : 독일의 동성애 담론과 문화』, 문학과지성사, 2013.
김대현, 「일본의 우생학에서 미국의 우생학으로 : 해방 이후~1950년대 한국의 소년범죄 담론」, 『역사문제연구』 49, 역사문제연구소, 2022.
김대현, 『성 규범의 지식·제도와 반사회성 형성, 1948~1972』, 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3.
김대현, 「우생학·정신분석학의 '비행' 및 '퇴행' 개념을 통한 시설화의 논리 : 미셸 푸코의 논의를 중심으로」, 『학림』 56, 연세사학연구회, 2025.
김대현, 「인간의 품격, 생존의 흉터, 무명(無名)의 예감 : ‘비상행동’ 주최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참여자의 민중과 소수자 정동」, 『기억과 전망』 5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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