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95호][활동스케치 #4] 함께 기억되고 싶은 밤 — 2026 재회의 밤 후기| 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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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활동스케치 #4]
함께 기억되고 싶은 밤 — 2026 재회의 밤 후기

애인과 부모님과 함께 해외에서 열흘을 보내고 돌아온 날, 캐리어를 끌고 급히 친구사이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은 쉬라는 만류도 있었지만 재회의 밤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날은 명절 같은 것이어서, 몸이 힘들다는 사정만으로는 발길을 돌리기 어려웠다. 명절에 얽힌 난처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평소에 명절을 챙기지 않던 내게는 유독 의무감을 갖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9월 23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사정전에서 재회의 밤이 열렸다. 먼저 떠난 친구사이 회원들과 우리의 친구들을 애도해온 자리는, 함께 추모할 사람이 있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을 맞이했다. 고인의 사진과 간소한 제사상을 앞에 두고, 각자가 기억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눴다. 진행을 맡은 종걸 님의 말 사이사이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고인의 생애가 흘러들었다. 같은 사람을 알고 있어도 함께 보낸 시간은 저마다 달랐다. 그 말들은 고인을 향한 친근한 핀잔 같았고, 뒷담을 듣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사랑스러웠다. 먼저 떠났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던 사이마저 종료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언뜻 그 사실이 무섭기도, 웃기기도, 따뜻하기도 했다.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어떤 말을 전하고 싶고, 조금은 놀리고도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을 소개하다 빠뜨린 부분을 함께 있던 사람들이 보태는 모습을 보며, 커뮤니티가 된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렇게 매년 보게 되는 얼굴들과, 만나본 적이 없어도 조금씩 아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날 처음 찾아온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여러 사람이 훗날 재회의 밤에서 자신이 기억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사진으로 소개될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고인을 만나러 온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일이 묘했다. 나는 그 상상이 죽음을 미리 당겨보는 슬픔이나 예고보다는, 이 커뮤니티에서 기꺼이 함께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고 느꼈다. 내 삶도 이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의 일부여도 좋겠다는 마음. 처음 찾아온 자리에서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나중에 내 소개가 조금 틀리더라도 곁에서 꿍시렁대며 정보를 정정해 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싣는 김종환 활동가의 후기에는 크게 아팠던 시절, 곁의 사람들에게 힘을 얻어 다시 돌아온 시간이 있다. 박태민 활동가는 오래도록 노동으로 치렀던 명절과 제사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발견한다. 내가 유독 의무감을 갖고 싶었던 것도 이 만남을 이어가는 일이었을 테다. 재회의 밤에 이야기를 나눴던 분들이 또 내년에 이 자리로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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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박민영

2026년 9월, 재회의 밤에 참석했다. 커뮤니티에서 먼저 떠나신 분들의 사진과 간소한 제사상을 준비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참석하는 자리에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떠나보냄을 추억하고 애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애도와 추억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마음과 진솔함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후기를 나누면서, 서로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에 나도 깊이 공감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병원 생활을 하며 크게 아팠던 경험, 실제로 죽음에 이를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곁에 친구와 가족이 있어 더욱 힘을 내어 재활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재활을 거쳐 다시 사회로, 친구들과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그렇게 생각하니 '재회의 밤'이라는 이름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각자의 떠나보냄을 이 시간을 통해 함께 추억하고 애도하며, 그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자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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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김종환

친구사이에서 통역을 맡다 보면, 친구사이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전하고 그 안의 사람들을 소개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데도 아는 사이 같고,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평소와 달리 어둑해진 사정전에 앉아, 간간이 향을 피우고 그들이 남긴 흔적을 넘겨 보며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속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들려주는 일화에 함께 웃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나도 저 발표 자료에 올라가려나. 친구사이 상근활동을 하셨던 박태민 님입니다, 손이 참 예쁘셨습니다, 하고 소개받으려나. 그럼 내 사진은 뭐가 들어갈까. 익숙한 죽음을 이토록 다정하고 따뜻하게 마주하는 건 처음이라, 낯설었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던 나이를 지나, 제법 칼질을 하고 불을 다룰 줄 알게 된 무렵부터 나는 종갓집 종손으로서 두 달에 한 번씩 차례상과 제사상을 차려 냈다. 그런 나에게 명절은 명절 증후군의 다른 이름이었고, 또 다른 의미의 노동절이었다. 명절 증후군을 앓는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을 지나 처음으로 자유로운 명절을 맞고 나서야 깨달았다. 명절, 그리고 제사라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래, 이 모든 건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거구나.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뻔한 표현이, 뻔해질 만큼 수없이 쓰여 온 이유가 이런 거였구나. 재회의 밤. 떠난 이들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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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리드 박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