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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95호][기획] 친구 사이의 사람들 #3 : 사무국장 이종걸
2026-10-07 오후 15:35:41
기간 9월 

 

 

 

[195호][기획]

친구 사이의 사람들 #3 :

사무국장 이종걸

 

 

운영위원 인터뷰 기획 시리즈를 시작하며… from 소식지팀 여름


올해 친구사이는 창립 32주년을 맞았다. 그 긴 시간은 단체의 이름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들고 이곳을 찾아와 관계를 만들고 활동을 책임져 온 수많은 사람에 의해 쌓여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친구사이의 방향을 고민하고, 오늘의 친구사이를 함께 만들어가는 운영위원들이 있다. 그들 각자는 어떤 삶을 지나 친구사이에 도착했는지, 무엇을 마음에 품고 이곳의 활동을 책임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친구사이를 만들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모든 퀴어의 생존을 꿈꾸는 커뮤니티

“물방울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길 바라요”
 

- 친구 사이의 사람들, Between Friends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이종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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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만난 종걸님 (사진: 찰)

 

 


chingusai_logo.png 1. 서울 서울 서울
 

종걸: 요새 한 달 동안 다시 듣고 있는 가수가 조용필이에요. […] 조용필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는데, 노래가 너무 좋아요. 그중에 제가 엔딩곡으로 바이바이 하고 싶은 노래가 〈서울 서울 서울〉이에요.


이 노래에는 사랑했던 서울의 공간과 추억들이 있고, 그런 애잔한 공간을 떠나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게 지금 제 마음과 너무 비슷해서 그 노래를 많이 듣고 있어요.


노래 〈서울 서울 서울〉. 2023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문제에 항의하는 집회 뒤 행진하던 때, 종걸님은 종로에 들어서며 이 노래를 틀었다고 했다. 종걸님과 종로를 걸었다. 공연과 회의, 사람들이 모였던 기억들이 따라 나왔다.


종걸: 서울시청 관련 대응 회의를 할 때 다 우리 사무실에서 했거든요. (시청에서) 제일 가까우니까. […] 거기서 밤새 회의하기도 하고, (사무실의) 위치가 너무 중요해요.


익선동이 다르게 변해버려서 지금은 관광객 중심이 많이 됐어요. 이건 확실히 달라졌어요. 게이 업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이제는 이곳이 일반의 거리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게 너무 아쉽기도 하고요.


자주 못 보는 사람에게는 연락할 수 있지만, 거리는 다시 와야만 만날 수 있다.


여름: 종로의 어떤 모습이 제일 그리우실 것 같아요?


종걸: 저는 주말에 일찍 출근해야 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아침에 일정이 있으면 빨리 나올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7시, 8시에 나올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여기(종로)가 또 되게 느낌이 달라요. 그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애처롭게 집에 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보이는데 외로움이 느껴지거든요. 그런 외로움을 아침에 보는 건 […] 다른 느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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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악기상가 인근을 걷는 종걸님 (사진: 찰)

 


나는 종걸님께 영상편지를 남겨달라고 했다.


여름: 뭔가 모두에게 그냥 말로 쓰는 편지라고 생각하시면…. (종걸님이 빵 터졌다.)


종걸: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상근활동만 그만두는 거지 회원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서, 뭔가 작별의 느낌도 없어요. […] 저는 그게 세이 굿바이는 아니에요. […] 같이 하면 되는 거고, 다만 상근활동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이번 인터뷰는 종로의 식당에서 종걸, 찰, 달호님과 여름이 함께 식사하고, 거리를 걸으며 이루어졌다. 식탁과 길 위에서 나눈 이야기들의 모습을, 찰님이 사진으로 담아주셨다. 사진 촬영을 도와주신 찰님, 시간을 내어 인터뷰 자리에 함께해주신 달호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chingusai_logo.png 2. 오, 종로3가


종걸님이 처음 친구사이를 찾아온 것은 함께 노래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학에서 합창단 활동을 했던 종걸님은 해외의 게이 합창단처럼 함께 노래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지보이스의 모집 공지를 보았다.


종걸: 처음 3층으로 올라가면서 […] 너무 동아리방 같은 느낌이긴 했어요. 학교 동아리방 같은 느낌? 그리고 사람이 많지 않았고요.
근데 그 동아리방이라는 느낌이 저한테는 익숙해서, 그렇게 어색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친구사이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지보이스) 모임 때문에 갔었어요. 친구사이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느낌은 아니었고요.


그전에도 PC통신으로 다른 게이들을 만나고, 번개 모임에 나가고, 이태원에 가보았다. 흑인 음악을 좋아해 관련 모임에도 나갔다. 다만 모든 자리가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종걸: 이태원에 갔을 때는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외모를 잘 꾸미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 거리감을 느꼈던 부분이 없지 않았어요. 오히려 합창단이 좀 더 저한테 맞았던 것 같아요. […] 그리고 이제 친구사이에 그때 나가보니까 저보다 형들이 많았죠.


그러니까 (그분들한테) 조금 더 의지할 수 있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편했던 것 같아요. 제가 이야기를 많이 하기보다는 듣는 걸 많이 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때 사람들하고 친해지는 게 더 편했던 것 같아요.


대학 합창단에서도 노래하고 뒤풀이를 했다. 그런데 종걸님은, 지금은 대학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내지는 않는다고 했다.


종걸: 대학교 때 동기라는 끈끈함은 있지만, (그 친구들에게) 정체성을 이야기한 경험이 없어서 미안하기도 해요. 그 이후에라도 이야기했으면 좋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뭔가 주저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 친구한테는 나중에 (정체성에 관해) 말을 했던 것 같아요. 후배였는데, 거부 반응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반응을 제가 예상하고 말을 안 한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부터 (대학) 합창단에는 연락을 안 하고, 대학하고도 자연스럽게 멀어졌어요. (친구사이) 활동하면서 후회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데, 아쉬운 건 있어요. (그때 그 대학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만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갈 일이 없기도 하고...


종걸님은 지보이스를 찾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무대에 섰다.


종걸: 지보이스가 11월 초에 모였는데, 한 달 뒤에 공연이 있었어요. 큰 무대였어요. […] 그때 인권 콘서트 장소가 장충체육관이었어요.
 

2003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인권 콘서트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를 했다. 다들 자리가 끝나도 함께 있고 싶어, 한 회원의 집으로 옮겨갔다.


종걸: 사람들이 계속 같이 놀면 헤어지기 싫잖아요. 늦게까지 더 놀고 싶은데, 그 형이 자취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집에 갔던 거죠. 그 집에서 사람들끼리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데, 그 추억이 너무 좋았던 거예요. 퀴어 커뮤니티 사람들하고 이 정도까지 친밀하게 놀았던 경험이 잘 없었던 거예요. 물론 있었지만 찰나적이었고, (이번에는) 내가 어떤 패밀리 안에 들어가 있는 그런 느낌?
 

기존에 일반 합창단을 할 때도 물론 노래를 한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하지만 내 시선으로, 나를 솔직하게 노래한다는 경험은 그만큼(지보이스에서만큼) 없었던 것 같아요. (인권 콘서트 공연 뒤풀이에서) 끝까지 밤새 이야기하고, (친구사이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지내는 게 너무 좋았고 소중했던 경험이에요.


2006년 지보이스 첫 정기공연을 마친 날에는 뒤풀이를 하러 종로3가로 이동하는데 눈이 내렸다. 단원들은 노래 〈오, 샹젤리제〉를 개사한 노래 〈오, 종로3가〉를 함께 부르며 걸었다.


종걸: 그때 너무 해방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퀴어문화축제에서 행진하는 것 못지않게, 그 순간 종로는 우리 것 같은 그런 느낌?


공연장 밖에서도 노래는 이어졌다. 종걸님과 함께 걷던 종로에서, 그보다 오래전 같은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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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종걸님 (사진: 찰)
 

 

대학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하던 시기, 종걸님은 라디오 PD를 진로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사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친구사이에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종걸: 라디오 PD가 좀 되고 싶었는데, 거기에 집중을 잘 못했어요. […] 여기(친구사이 활동)에 더 몰입하고 관심을 갖게 되니까, 사실 제대로 준비를 안 한 거죠. 근데 여기(친구사이)에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볼 공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기니까 좋았던 것 같아요.


종걸님은 운영진 제안을 받아 2005년에는 친구사이 총무를 맡았다.


여름: 그렇게 (운영진) 제안을 받아도 다들 거절을 많이 하실 텐데요. 종걸님은 ‘내가 할 차례인가 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맡으셨던 것 같아요.


종걸: 그러니까 내 차례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런(운영진) 제안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친구사이 회원들이 모이는 공간도 달라졌다. 처음 찾아갔던 작은 사무실에서 더 넓은 곳으로 옮기기 위해, 회원 한 분이 주변의 빈 사무실을 계속 살폈다고 했다.


종걸: 사무실이 너무 좁고 오래돼서, 좀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가자고 했어요. 그러면서 2006년 5월에 지금의 사무실로 옮겼죠.


사무실을 찾는 일부터 돈을 모으는 일까지, 누군가 맡아야 할 일들이었다. 2006년과 2007년에도 종걸님은 대표로서 친구사이의 일을 맡았다. 낮에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인권침해 사건에 대응할 일이 늘었고, 지보이스 합창단이 무대에 서기 위해서도 연습 외에 많은 손이 필요했다.


종걸: 지보이스 공연을 하려면 연습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공연을 준비할 실무적인 일들이 더 많이 필요한 거죠. 공연장을 잡는다든지, 연습 준비를 한다든지, […] 기금(지원 신청서)을 작성한다든지, 돈을 집행한다든지. 이렇게 다 자잘한 일들이에요.


종걸님은 다른 진로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친구사이 일을 하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선배 회원들이 기금을 마련하고 후원회원을 모집하며 친구사이에서 일할 조건을 만들어주었고, 2009년 상근활동을 시작했다.

 

 


chingusai_logo.png 3.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사랑 또 사랑이었네
우리라면 좋았을 시간 동안
하늘에 고백한 사랑 원망이 되어
세상을 향해서 눈 흘겨본다면
단 한 번만 불러 세워서 비웃는다면
...
세상아 내 아름다움 찬양하라 ...
— 지보이스,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가사 전문

 


함께 노래하고 지내온 시간은 영화 《위켄즈》에도 담겼다. 친구사이 20주년을 준비하며 지난 활동을 돌아보던 때, 지보이스의 10주년 공연을 중심으로 친구사이 이야기를 담는 다큐멘터리가 구상되었다. 영화 《위켄즈》에는 무대뿐 아니라 지보이스 단원들의 관계와 속내도 담겨 있다. 카메라 앞에서 회원들은, 어떻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종걸: 그 속내를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죠. 저도 그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막상, 좋은 이야기만 하게 되는 거죠.
방송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만 하게 되는 그런 느낌? […] 처음에는 그랬던 건데. 그게(카메라 앞에서 속내를 이야기하는 게) 가능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거죠.


예를 들어서 촬영하는 감독은 우리랑 친했던 사람이에요. 그분도 지보이스에서 활동했었던 사람이어서, (우리가) 감독과 거리감이 없었어야 하는 건데요.


영화 《위켄즈》에선 음악감독 재우님(활동명 코러스보이)의 연출과 단원들이 좋아하는 표현 방식이 만나 무대가 만들어진다.


종걸: 우리가 전문 합창단은 아니었기 때문에 […] 다양한 걸 보여줘야 사람들한테 대중적으로 호소가 되잖아요. 그만큼 게이 합창단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걸 많이 했죠. 물론 우리 이야기를 담은 우리 노래, 창작곡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고요.


그러면서도 유머나 재치를 잊지 않고, 위트를 잃지 않는 (공연을 하는 거죠). […] 그런 게 또 우리한테 재미있었잖아요. 그러면서 드랙도 많이 하고요. 저도 막 이렇게 풀로(한 곡 내내) 잘 춘다기보다는, 하여튼 치고 빠지는 걸 좀 잘했던 것 같아요. […] 가령 중간중간에 드랙을 해서 한 번씩 쇼걸처럼 이렇게 나온다든지.


그 무대는 지보이스의 정기공연장 밖으로도 이어졌다. 다른 투쟁의 현장에 가서 노래하는 일을 단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종걸: 우선은 (우리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문제였죠. 야외 공연 같은 경우에는 그런 어려움도 있었어요. ‘왜 우리가 거기서 노래해야 하나’, ‘왜 우리가 이런 의제를 지지해야 하지’ 하는 고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커밍아웃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의제도 아닌데 왜 그런 의제(의 현장)에 가야 하나’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죠.


(연대 공연을) 왜 하는지, 왜 필요한지를 그때마다 계속 설명했어요. 공연 제안을 받으면 연습 전에, 그 공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한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요.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고,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노래했다. 단원들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랜 투쟁 동안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는지 궁금해했다.


종걸: 같이 싸워본 사람들이 싸워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그 싸움이) 얼마나 간절한지 아는 것처럼요. […] 그런 현장에 갈 필요성도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지만, 저는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이걸 부정하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요. 저는 이걸(연대하는 활동을) 친구사이에서 처음 배운 거예요.


영화 《위켄즈》에는 2013년 9월 7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린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당시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의 공개 결혼식이 담겨 있다. 축하 공연 중인 지보이스를 향해 한 남성이 오물을 뿌린다.


종걸: 저도 현장에 있었지만, 그런 일을 경험한 단원들을 우선 추스르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화도 나고요. 그런데 좀 이해가 안 가잖아요. 왜 그런 행동을 할까. (그런 공격이) 도저히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공격을 받는다고) 우리가 할 일을 안 할 것도 아니고, 갑자기 이성애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남의 잔치에 깽판치는 건데.


영화 《위켄즈》의 또 다른 장면에서는 종걸님이 서울시청 위층에서 중앙 로비를 향해 현수막을 내린다.


종걸: 혼자 한 건 아니고 세 명이 같이 있었어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퍼포먼스고, 중요한 행동의 현장이에요. 그래서 그런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저기(시청 위층)로 빨리 올라가려고 했죠. […] 어떻게든 올라갔어요. 마지막에 경비가 왔어서 끌고 갔어요. […] 그렇다고 해서 연행하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쉽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누군가는 했어야 했어요. 활동가들 사이에서 제가 하겠다고 했던 것 같아요.


2014년 종걸님은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만드는 시민위원으로 참여했다. 총칙과 차별금지 사유를 놓고 논쟁했고 시민위원회에서는 안이 통과되었지만, 서울시는 헌장을 선포하지 않았다.


종걸: 시민제정위원회에서 제정은 됐지만, 선포할 권한이 있는 (서울)시장이 선포를 안 해서 결국 헌장이 만들어지지 않았죠. 다들 너무 분노해서 (농성장에) 왔어요. […] 토요일, 일요일에도 많았지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평일에도 그 주변에서 일하는 LGBT 당사자들이 많이 왔어요. 이런 상황이 알려지니까, 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거죠). 결과적으로 […] 선포를 하지 않았죠.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을 내어 농성장에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남아 있다.


여름: 아, 이거는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해서 조금 사회를 변화시켰다, 그런 생각이 드실 때가 있나요?


종걸: 이런 질문 나올 때 되게 난감해요. […] 변화가 많죠. 시민들은 성장하고 있고 의식이 성장했던 게 있으니까.


종걸님은 시민들의 변화와 백래시를 함께 이야기했다. 제도가 바뀌지 않는 책임을 시민들의 인식에만 돌릴 수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종걸: 오히려 이런 행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자신들의 권력 문제로 보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켜온 사람들의 책임이거든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그걸 해결하지 않고 항상 연기하고, 미루고, 회피해온 거죠. (이 문제를) 갈등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갈등이 아니라 부당한 불평등의 문제였던 건데요.


정부와 행정 조직들은 그걸 계속 눈감고 외면해왔어요. 그나마 사법 쪽에서는 우리 이야기를 조금 더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데요. 행정이나 입법은 전혀 변화하지 않아요.


이야기는 성소수자 관련 제도에서 돌봄과 고립, 외로움으로 넓어졌다. 종걸님은 거대 정당의 책임과 소수 정치가 불리해지는 구조를 짚으면서, 연대에 대한 고민도 이야기했다.
 

종걸: 연대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도 실리를 챙겨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는 이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충분히 동의해요. 그런데 실리를 챙기는 문제를 떠나서, 우리만의 실리를 채운다고 해서 가능한 현실일까?


노래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에서 종걸님이 짚은 것은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였다.
 

종걸: 우리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관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항상 분노하고 세상에 맞서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내가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주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그런 관점을 갖는, 이런 언어가 있다는 게 되게 다른 것 같거든요.


이 노래(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를 들었던 사람도 그런 걸 느꼈을 것 같아요. 사회나 세상의 어떤 억압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며 당당함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가사나 노래가 있다는 건, 인생의 큰 힘인 것 같아요.
 

종걸님은 그 힘이 지보이스나 성소수자에게만 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다른 억압을 겪은 사람도 자기 이야기로 들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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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담장 앞에 선 종걸님 (사진: 찰)

 


chingusai_logo.png 4. 북아현동 가는 길

 

아 우리 아직은 할 말이 많은데 ...
— 지보이스, 〈북아현동 가는 길〉, 가사 전문

 

 

오래 함께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과 술 마시고 놀던 시절을 떠올렸다. 종걸님은 한때 수영 모임 마린보이를 마치고 지보이스 연습에 갔다가 뒤풀이까지 하는 일요일을 보냈다.


종걸: 어떻게 보면 가장 젊은 시기에 […] 저는 (친구사이) 사람들과 노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죠. 같이했던 친구들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아요. 그 시간을 같이 보낸 거예요.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을 어디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 자살예방센터 ‘마음연결’에는 사별 경험을 나누는 자조모임이 있다.
 

종걸: 그 경험(사별 경험)을 충분히 이야기하는 자조모임을 (마음연결에서는) 갖고 있어요. 자조모임의 운영 방침은 충분히 이야기하시라는 거예요. 우리가 (특정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시라고 하거든요. 그런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너무 없으니까, 저는 이런 다양한 자리를 마련하는 게 우리(친구사이)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자조모임에서는 참가자의 말이 멈춰도, 바로 다른 질문을 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했다. 본인이 계속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는 방식이다. 소수자 각자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은 여러 모습으로 찾아온다.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온 뒤 힘들어져 연락하는 사람도 있었다. 종걸님은 혐오에 노출되는 일이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종걸: 사실 그것(혐오 공격) 때문에 자기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런 (혐오 공격의) 영향이 더 심각한 것 같아요. 퀴어문화축제 이후에 오히려 연락이 올 때가 많아요. […] 우리(친구사이)는 자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퀴어들의) 자리가 계속 공격을 받고 부침을 겪더라도,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그 누구도 만들지 않으니까요.


그 자리가 대중적인 자리일 수 있겠지만, 꼭 그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퀴어 본인이) 자기에게 소중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조그만 자리라도 (누군가) 마련하는 게 너무 중요해요.
 

종걸님은 모두가 자신도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종걸: 중요한 건, 나도 언젠가 그렇게 취약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예요.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거잖아요. (모든 퀴어분들이) 자기가 항상 이렇게 에너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잖아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게, 또는 자신의 나약함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런 건 아니에요.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그런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시고, 도움을 요청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꼭 마음연결이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친밀한 관계나 커뮤니티, 취미처럼 각자에게 힘이 되는 자원을 갖고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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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대답을 고민 중인 종걸님 (사진: 찰)

 

 


chingusai_logo.png 5. 무지무지 무지개

 

무지개 뜬 날에도 비오는 날에도 ... 살고 싶을 뿐 ...
그냥 나답게 살고 싶을 뿐 ...
— 노래 〈무지무지 무지개〉, 가사 전문(새길포럼 강연 슬라이드)

 

 

종걸님은 팟캐스트 《게이PC방》 81회에서 친구사이의 캠페인 문구 ‘우리가 잘 노는 게 인권운동’을 소개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종걸님은 그게 친구사이 회원들이 해온 이야기라고 했다.


종걸: 커뮤니티에서 자유롭게 놀면서 문화가 생기고, 거기서 우리한테 에너지의 동력이 되는 것들이 나왔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커뮤니티가 있어야 그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다양한 생각이 나와요. 그럴 때 어떤 에너지가 응축되고, 무엇을 하자, 무엇을 해보자는 꿈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꿈을 갖고 모여 있는 곳이어야 (인권) 운동도 생기고요.


저는 꿈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사실 친구사이에 나와서 그런 것(꿈)을 실현할 기회를 제공받기도 하고, 같이 만들어가기도 했던 것 같거든요. 그게(함께 이루고 싶은 꿈이) 동성혼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다양하게 있을 거예요. 정말 멋진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것도 있을 수 있고요.


친구사이는 친목단체일까, 인권운동단체일까. 친구사이 바깥의 사람들에게 지금의 친구사이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종걸: 친구사이라는 이름 자체가 친목단체처럼 (들리잖아요). […] 친목이라는 게 결국 공동체일 텐데요. 그 현장(퀴어들이 만나는 자리)을 마련하는 게 쉬운 사업은 아니에요. 선명하지 않죠. 뭔가 성과가 있는 것 같지 않고요. 오히려 그 일에는 에너지도 많이 쓰이고, 기획도 계속 필요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회복을 위해, […]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회복을 도울 수 있는 것이 필요해요. 그게 (친구사이가 하는) 마음연결 사업이니까요. 우리(퀴어)가 필요한 목소리를 내야 할 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부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일. 성소수자 정치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런아웃도 그 커다란 의제 안에 있다.


종걸: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소통하고 유통할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 해요. 취약해질 때나,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이런 (체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거죠. […] 그런 (한 명의 퀴어), 물방울 한 방울이 지탱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해요. 이런 물방울이 좀 더 커가면 큰 강줄기가 될 수 있고요.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만나고 설명을 좀 해야 되는데 이게 쉬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선두에 나서서 집회나 시위를 이끌고 구호를 외치는 활동가들도 있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해요. 항상 그런 활동만 있는 건 아니죠.


커뮤니티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커뮤니티 당사자를 만나 설득하고, 자리를 만들고, 같이 활동할 수 있게 기획해요. 이런 사람들이 많은 거죠.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드러나는 것보다 자리를 마련하는 것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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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질문에 답변 중이신 종걸님 (사진: 찰)
 

 

공연장을 구하고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일,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만날 자리를 마련하는 일. 그런 일들을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여름: 종걸님이 지금까지 책임을 내려놓지 않고 어떻게 이렇게 길게 해오실 수 있었는지, 저는 그런 걸 많이 배우고 싶어요.


종걸: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거예요. 조직이 없으면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제가 그 안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직도 배려한 부분이 있고요. 일만 계속 생각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보면 너무 다양한 조직이니까요. 노래도 하고, 1년에 다양한 행사들이 있으니까요.


여기(한 활동)에서 힘들면 여기(조직 안의) 사람들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고, 또 힘들 때 (조직 안의) 다른 쪽에서도 (그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거죠. 항상 (제가) 최전방에 있는 마음가짐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조직 안의 다양한 그룹에서 (위로를 받으며) 그런 (어려움을) 조금 해소했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친구사이든 인권운동 안에서든, 동료들과 같이 고민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죠. 제가 뭔가 특출나서 그런 건 아니에요. 다들 힘들고, 힘들었던 부분이 있고요.

 

 


chingusai_logo.png 6. 나에게 가는 길

 

한 걸음, 또 한 걸음, 모두 다 함께 걸어요
웃고, 떠들고, 뛰고 춤추면서
...
오늘 여기서, 나는 나에게 나를 부르네 ...
— 지보이스, 〈나에게 가는 길〉

 


여름: 최근에 종걸님이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해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종걸: 재경이 형한테 (그렇게 느낄 때가) 많은데, (재경이 형은) 되게 섬세하게 바라보시죠. (제가 보내는) 신호들을 잘 놓치지 않으시고요. 사람을 너무 좋아하시는 거죠. 사랑하시고요. 제가 그걸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어쩌면 그걸 배운 거죠. ‘어떻게 살아야 될까.’ 물론 똑같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배운 거예요).
 

종걸님은 재경님뿐 아니라 과거 함께 활동했던 정남님, 재우님, 가람님도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로 꼽았다. 그리고 지금 종걸님이 가장 마음을 쓰는 사람들은 현재 함께 일하는 상근활동가들이었다.
 

종걸: (상근활동가들은) 제가 가장 신경 쓰는 사람들이죠. 사실 제가 신경 써야 할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 (동료들이) 이 순간에 이 커뮤니티와 활동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내준다는 게 너무 고맙죠. 

 

그 마음이 있다고 해서 일할 조건까지 저절로 갖추어지지는 않았다. 종걸님은 2010년 친구사이 커밍아웃 인터뷰 「이종걸: 벅차게 육탄공세」에서 상근자에게 일이 집중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모습이 다른 회원들에게 상근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주는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털어놓았다. 그때의 걱정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물었다.
 

여름: 여전히 상근활동가들의 업무 강도가 너무 높나요?


종걸: 예전에는 자원이 한정돼 있어서 인원을 많이 둘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한 사람이 올라운드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죠. 아직도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요. 확실히 예전보다 문명의 이기는 많지만 일이 줄어드는 느낌은 아니에요. 사람이 많아진다고 내 일이 줄어들지는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어느 하나에 조금 더 파고들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없는 거죠. 

 

회계와 인사, 홍보와 기획을 두루 맡는 동안 자신의 전문성과 이후의 삶을 준비할 시간은 부족해진다고 했다. 종걸님이 외부 연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무실의 실무를 맡아준 낙타님의 역할이 있었다. 그 동료에게도 자신의 삶을 찾아갈 전망이 필요했다.
 

종걸: 본인(낙타님)이 하고 싶은 걸 지금 찾아가고 있는 건데, 계속 여기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동하면 전망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는 구조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게 필요하고, 자원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 구조를 만들어가는 게 너무 중요하죠.


(사람들은) ‘성소수자 운동은 아직도 마케팅을 못하는 것 같다’, ‘홍보를 못하는 것 같다’고 이해하는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회사와 비교할 수는 없어요. 물론 조금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초반에 활동할 때 “왜 그렇게 홍보 전략이 없나”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사실.
 

여름: 너무 섭섭하셨을 것 같아요.

 

종걸: 세상은 계속 변해가고, 조건은 바뀌고, 우리도 계속 새로운 조건에 맞춰야 하는데, 자원은 한정돼 있고요. 사회단체나 인권단체에 후원하는 것에 대한 인식은, 그게(후원금이) 그 사람(활동가)에게 쓰인다는 것, 운영비에 쓰인다는 것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있어요.
 

종걸님이 활동을 오래 지속하는 방법으로 이야기한 것 중에는 거리 두기도 있었다.
 

종걸: 거리 두기가 사실 너무 중요해요. ‘내가 헌신한다’, ‘내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내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큰 오만이고, 어떻게 보면 너무 큰 자신감 같아요.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요. 결국 이게(활동이) 우리한테 중요한 미션이긴 하지만, 나의 건강이나 삶보다 앞서는 건 아니라고 항상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 점점 생기는 것 같아요. 그걸 빨리 파악해야 어디서 발을 빼야 할지, 언제 힘들다고 이야기해야 할지 알 수 있는 거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도 예전과 달라졌다고 했다. 종걸님 자신은 원래 속으로 삭이는 편이었다. 많은 시간을 쏟는 회원들을 보면 걱정되지만, 본인이 체감하기 전에 쉬라고 말하면 잔소리가 될 수 있다는 어려움도 있었다.
 

여름: (건강을 위해) 뭘 중단하셨어요?
 

종걸: 저요? 지보이스를 중단했던 건 일요일에는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 ‘밤은 새지 말자.’ 정말 긴급하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밤새우지 말자. […] 밤새운다고 좋은 건 하나도 없고,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이건 제 경험, 저한테 국한된 거예요.


2018년 정기공연을 마지막으로, 종걸님은 이듬해 공연을 준비하던 중 지보이스를 쉬겠다고 말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종걸님은 이제 상근활동을 마무리한다. 종걸님에게 이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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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팀원들과 함께 종로를 걷는 종걸님 (사진: 찰)

 

 

종걸: 제가 한 10여 년 활동하면서 (본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진 것 […] 같아요. 생태계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의 변화요. 운동하는 사람들도 다양해지고 있고요. 그 흐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 말고도 있지 않을까. 인권운동에는 최전선에서 같이 활동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게 아닌 부분을 찾아보는 것 중 하나가 지역이기도 해요.
 

종걸님은 곧 서울을 떠나 이사한다. 새로운 도시는 종걸님이 제대 뒤 본가에서 지내던 때, 자주 놀러 가던 곳이었다. 최근에도 명절이나 연말에 쉬러 갔다. 먹거리도, 구도심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점도 좋았다고 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아직 정해두지 않았다.
 

종걸: 사실 상상은 많이 하고 있지만, 아직 정해진 계획은 없어요. […] 정말 온전하게 쉴 수 있으면 너무 좋겠어요. 지역에서 뭔가를 하려고 해도 그 지역 생태계를 모르면서 그냥 뛰어들 수는 없어요. 그것도 오만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울에서 (활동을) 했다는 건 서울의 조건에서 했다는 거지, 지역은 기반도 조건도 정말 다를 거예요. 제가 그 안에서 경험도 없으면서 그냥 뭘 하겠다는 것도 오만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


종걸님은 우선 쉬고, 배우고, 지금까지의 활동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디로 이사를 갈지, 며칠 전 집을 보고 왔다고 했다.


종걸: (서울을 떠나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 하나는, 게이로서 (서울에) 살면서 가질 수 있는 익명성을 제가 포기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어느 동네에서 어떤 집에 살 것인가를 고르는 데에는, 게이로서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며 생활할 수 있을지도 관련되어 있다. 부모님께 종걸님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일도 남아 있다. 아직 직접 커밍아웃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아시는 것 같다고 했다. 이사할 시기가 되면 정체성에 대해 말하게 될 수도 있다고, 종걸님은 말했다.


여름: 마음이 어떠세요? 드디어 말한다는 해방감이 있으세요? 아니면 아직도 많이 무거우세요?
 

종걸: 게이 정체성을 (말한다는) 느낌보다는, 제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이야기하는 맥락인 것 같아요. 제가 하는 활동을 조금 더 떳떳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데 대한 아쉬움이나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 그런 부분에 대해 미안함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부모님께) 잘 설명해드리는 게 필요한 일 같은데, 그게 앞으로 남은 과제인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종걸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던 기억에는 아버지의 이발관이 있다. 가게의 잡지와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에서 남성에게 시선이 갔다. 영화 《투 문 정션》의 광고 이미지도 기억했다.


종걸: 이런 게(남성에게 마음이 가는 경험이) 쌓이고 쌓이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후반부터 저를 그렇게 (게이로) 정체화했던 것 같아요.


종걸님께 당시 누구에게 마음이 갔는지 묻자, 또래보다는 선배가 좋았다고 했다. 지금의 종걸님은 어떤가?
 

종걸: 점점 제가 나이가 드니까, 지금은 연상보다는 연하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종걸님은 2024년 팟캐스트 《게이PC방》 82회에서 게이 버전 《나는 솔로》가 생기면 신청하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같은 마음인지 종걸님께 여쭸다.
 

종걸: 그런 프로그램(연애 프로그램)에 […]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이 나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이런 커뮤니티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출연하겠다는 건) 우스갯소리고요. […]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주는 유튜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재미가 중요하잖아요. 제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생각만 했던 건데,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좀 보이고 가시화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도시에서도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종걸님이 직접 새로운 모임을 시작할 에너지는 지금 부족하지만, 누군가 마련한 모임에 참여하거나 연습할 공간을 내어주는 모습은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종걸: 누군가 (합창 모임을) 해놓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제가) 공간을 마련해서 여기서 연습하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최근에는 영화 《위켄즈》의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따라 부르다가 다시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종걸님이 상상하는 앞으로 함께할 관계의 형태는 무엇일까?


종걸: 저는 연애를 해서 같이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건 아니에요. 보통 연애를 하더라도 친구 같은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나이 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 주말에 계속 보는 관계는 어떨까. 아니면 제가 공간을 만들어 (함께 공동체를 꾸릴 커뮤니티) 사람들을 불러오든가. 그런 게 더 가능해요.


그게(그런 관계와 공간을 만드는 게) 오히려 저한테 꿈인 것 같아요. 그걸 알아보러 가는 것도 있는데, 너무 결정해놓고 가지는 말자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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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를 걷는 종걸님 (사진: 찰)

 

 

chingusai_logo.png 종걸이 바라보는 종걸


글쎄다. '정말 애썼다'라는 말만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마도 주변으로부터 그 말을 많이 들을 것 같다. 


정말 애 많이 썼는데 조금 더 활동해서, 이루고자 했던 변화와 목표의 순간을 마주했었으면 어떻겠나고 말려도 보고 싶기도 한데, 지금 상근활동을 종료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아 더 붙잡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반성, 앞으로 마주해야 하는 시간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일 것이다. 이제는 그 순간들을 현재와 좀 더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이 결정에 대한 책임 역시 종걸의 몫인 것을 알기에, 존중하고 이해하며 잘 배웅해야겠지 싶다. 아직까지 말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면 잘 정리해보시고, 들려주길 바란다. 고맙다. 

 

 

chingusai_logo.png  여름이 만나 본 종걸


종걸님을 종걸이 형이라고 부르게 되기 전에, 친구사이에서 종걸님을 자주 뵙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나는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종걸님이 퀴어 커뮤니티를 위해 기여해온 많은 활동들, 이번 글에 미처 담지 못한 평등길 걷기, 단식 투쟁을 포함한 많은 기사들을 읽으며 너무나도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먹먹함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거리로 뛰쳐나가 연대하고 지지해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친구사이 모임에 더 많이 나와서,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싶다. 그러다 보면 오랜만에 종걸님을 뵀을 때, 자연스레 종걸 언니라고 부르는 날이 오게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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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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