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95호][기획] 레드라이프 인터뷰 : 작은 온기들이 새긴 무늬| 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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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기획]
레드라이프 인터뷰
: 작은 온기들이 새긴 무늬
| '레드라이프'는 HIV 감염인의 이야기를 통해 게이 커뮤니티와 우리 사회의 지금 모습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누구나 그렇듯, 감염인들도 다른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흔들릴 때가 있지만, 그래도 저마다 자기답게 사는 방법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솔직한 이야기를 게이 커뮤니티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아쿠아마린님을 만났습니다. '레드라이프' 는 친구사이 성소수자 자살예방센터 마음연결 내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프롤로그 - 마린을 만나다
박재경: 안녕하십니까. 성소수자 자살예방센터 마음연결 레드라이프에서 진행하는 HIV/AIDS 감염인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대화를 이끌어 나갈 박재경입니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기대가 되는데요.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쿠아마린: 네, 저는 아쿠아마린이라고 하고요. 그냥 '마린'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나이는 74년생, 53세고요. 성정체성은 게이입니다. 친구사이에서 마음연결, 퀴어들의 산책모임, 레드라이프 활동을 하고 있고요. 현재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고, 싱글입니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요.
박재경: 인터뷰 취지에 대해서는 사전에 안내해 드렸는데요, 인터뷰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신 이유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쿠아마린: 지금은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HIV/AIDS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감염된 지 올해로 23년째인데, 초기에는 무척 힘들었거든요. 이런 제 경험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1. 보리와 쿠키, 그리고 나

박재경: 네, 그럼 조금 말랑말랑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해요. 반려견 이름은 무엇인가요?
아쿠아마린: 보리, 쿠키입니다. 보리가 엄마고요, 쿠키가 아들이에요. 보리는 13살, 쿠키는 11살이에요.
박재경: 마린님보다 강아지들 나이가 더 많겠네요.
아쿠아마린: 그렇죠. 많죠. 이제 앞으로 우리 애들이 살날이 얼마 안 남아서...
박재경: 어떤 색깔을 좋아하세요?
아쿠아마린: 저는 하늘색이랑 보라색을 좋아합니다. 그냥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참 예쁘잖아요. 특유의 맑고 깨끗해 보이는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하늘색을 좋아해요. 그리고 보라색은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좋아합니다.
박재경: 숨겨진 야망이 은근히 드러나는군요. 마린님 삶에서 가장 열렬히 좋아하는 배우 한 분, 가수 한 분을 꼽으신다면 누가 있을까요?
아쿠아마린: 저는 배우나 가수를 두루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세상을 떠난 '장국영'만큼 좋아했던 배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수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김완선' 씨죠.
박재경: 오! '장국영'과 '김완선'이라니! 마린님이 그 두 분을 열렬히 좋아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아쿠아마린: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동시상영 극장에 뒷구멍으로 몰래 들어가서 <영웅본색>[1]을 봤어요. 주윤발과 장국영이 주연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장국영만 눈에 밟히더라고요. 얼마 뒤 TV에서 <젊음의 행진>[2]을 보는데 이선희 씨와 장국영의 합동 콘서트 소식을 보고, 바로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장국영 카세트테이프를 샀어요. 김완선 씨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팬이 된 연예인이에요. 박남정, 이지연 씨와 함께 인기를 누리던 시절 실제로 앞에서 본 적이 있는데, 몸에 딱 붙는 니트 원피스를 입은 모습에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박재경: 장국영 에피소드가 더 있잖아요.
아쿠아마린: 스무 살 무렵인가, 장국영이 은퇴 후 캐나다에서 돌아와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일하다 말고 영풍문고 팬 사인회장으로 갔어요.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줄이 너무 길어 사인은 포기하고 얼굴이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멀찍이 서 있었어요. 나중에 장국영이 행사장에 들어서는데 온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그전엔 열성 팬들이 왜 우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막상 저도 똑같더라고요.(웃음)
박재경: 취미는 뭐예요?
아쿠아마린: 헬스랑 필라테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도 좋아해요. 그리고 기분이 안 좋을 때 청소를 하는데, 집도 깔끔해지지만 마음도 같이 정리되는 느낌이라 스트레스가 풀려요.
그런데 사실 보리와 쿠키가 제게 청소할 거리를 계속 만들어주기도 해요. 이 새끼들이. 어머! 아니 얘네들이(웃음) 귀신같이 침구를 빨 때쯤 되면 항상 오줌을 싸놔서 본의 아니게 강제로 부지런해져요.
박재경: 듣고 보니 얘네들이 침구에 오줌을 싸서 마린님 정신 차리게 하는 거네요.(웃음)
아쿠아마린: 맞아요, 딱 그거예요(웃음) '침구를 오늘 빨아야 하나, 내일이나 모레 빨까?' 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보리가 와서 오줌을 쫙 싸놔요.
박재경: 그러고 보니 마린 님이 예전에 '친구사이' 사무실 창고를 딱딱 정돈해 주셨던 게 기억나요. 그런 정리정돈이 원래부터 몸에 밴 습관이신가요, 아니면 어머니께 혼나면서 배우신 건가요?(웃음)
아쿠아마린: 어릴 때 배운 건 아니고요.(웃음) 그냥 어지럽혀져 있는 게 싫어서 그때그때 치우는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해 보면 정리하는 게 귀찮으니까 애초에 어지르지를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옷도 개어 넣기보다 옷걸이에 하나씩 다 걸어두는 편이에요. 얇은 면티셔츠 한 장까지도요.
박재경: 집 구경 가면 볼 만하겠어요. 아휴, 무서워라.
아쿠아마린: 예전엔 친구들이 저희 집에 잘 안 오려고 했어요.(웃음) 머리카락 한 가닥만 떨어져도 접착 테이프로 바닥을 밀어댔거든요. 친구들이 "네가 그렇게 유난을 떠는데 어떻게 편하게 가냐"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는 친구들이 있을 때는 좀 덜 치우고, 다들 돌아가고 나면 그때부터 제대로 대청소를 시작해요(웃음)
박재경: 깔끔하구나! 보리, 쿠키가 13살, 11살이면 사실 굉장히 긴 시간 동안 같이 살아온 거잖아요. 어떻게 같이 살게 되었나요?
아쿠아마린: 사실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전 애인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네가 책임지고 관리할 거면 데려와라"는 조건을 걸었죠. 그렇게 데려온 아이가 지금의 '쿠키'예요. 쿠키는 전 애인 친구의 반려견 '보리'가 낳은 새끼였어요.
막상 데려오고 보니 전 애인이 관리를 잘 안 해서, 제가 목욕시키는 법, 밥 주는 법을 하나하나 물어봐 가며 직접 돌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푸들이 워낙 똑똑해서인지 쿠키가 저에 대한 집착과 분리불안이 심해지더라고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엄마 강아지가 곁에 있으면 분리불안이 덜해진다고 하길래, 보리의 원래 주인에게 한 달만 같이 있게 해달라고 사정해서 데려왔어요. 그런데 나중엔 그 친구가 보리까지 그냥 키우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설상가상으로 전 애인과 헤어지면서 강아지들을 데려가라고 했더니, "쿠키랑 보리가 나보다 형을 더 좋아하잖아. 그냥 형이 키워"라며 두고 가버렸어요. 이제는 제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가족이에요.
2. 한 끼의 밥이 건네준 격려
박재경: 처음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겪으셨던 일들이나, 이후 HIV가 마린 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듣고 싶어요. 2002년 전에 HIV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쿠아마린: 그때만 해도 HIV/AIDS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딱 두 가지였어요. "걸리면 무조건 죽는 병이다", 그리고 "피부에 흉측한 반점 같은 게 생긴다." 제가 아는 정보가 딱 그 정도뿐이었어요.
박재경: HIV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말씀이네요. 처음 감염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아쿠아마린: 항문에 뭐가 만져져서 동네 항문외과를 찾아갔어요. 원장이 보더니 "이거 곤지름(콘딜로마)이고 수술을 해야 하니 일단 피부터 뽑아라" 하더라고요.
일주일 뒤 결과를 보러 갔는데,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원장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심지어 욕설을 섞어가며 "감염인 새끼가 누구 병원 망하게 하려고 여기 왜 왔냐, 빨리 나가라!" 하고 고함을 쳤어요. 그때 알게 됐어요.
박재경: 진짜 너무하고, 한심하다. 그 의사.
아쿠아마린: 네, 그때 정말로 너무 놀랐고 무서웠어요. 거기가 2층이었는데 1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왜 영화를 보면 회상할 때 막 옛날부터 필름이 착착 지나가잖아요. 그러다가 머릿속에 엄마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나 이제 정말 죽는 걸까? 어떡하지? 우리 엄마는 어떡하지?' 이 생각만 하면서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왔어요. 그리고 병원 옆 골목길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박재경: 그러면 콘딜로마는 그때 치료를 못 받은 거네요.
아쿠아마린: 네, 1년 뒤에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박재경: 그때는 그런 의사가 태반이었을 거라, 감염인들이 참담한 대우를 받았을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이 이후 병원 진료나 보건소 등록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아쿠아마린: 그때는 HIV에 대한 지식 자체가 없었어요. 한 2주쯤 지났을 때 보건소에서 전화가 와서, 직원이 "얼마 전에 어느 병원 방문하지 않으셨냐, 한번 내방해 달라"고 하기에 찾아갔고, 그제야 제 상태를 제대로 알게 됐죠. 이후 보건소에서 다시 혈액 검사를 진행했고, 결과가 나올 때쯤 다시 방문해서 제 질병에 대해 공식적으로 안내를 받았어요. 그때 저를 담당했던 보건소 직원분과 아주 특별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웃음)
박재경: 뭔지 궁금하네요.
아쿠아마린: 두 번째 방문했던 날인데 노원구 보건소 앞에서 담당자분이 갑자기 근처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자는 거예요. 그때가 2003년인가 그랬는데, "에이즈에 걸리면 무조건 다 죽는다", "문란한 사람만 걸리는 더러운 병이다" 같은 혐오가 당연한 시절이었거든요. 치료제 정보도 전혀 없었고, 혹시 나 때문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 "저…… 제가 담당자님하고 같이 밥 먹어도 되는 건가요?" 하고 물어봤던 기억이 나요.
박재경: 담당자분이 뭐라고 답변하셨어요?
아쿠아마린: "아이, 뭐 어때요, 상관없어요!" 하고 아주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식탁 위에 나온 찌개 냄비에 숟가락을 푹 넣고 떠 드시면서, 같이 먹자고 하셨어요. 그 순간의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박재경: 그 시절에 편견 없는 태도를 보였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아쿠아마린: 지금 생각해보니 눈물이 핑 도네요. 그래서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박재경: 그럼 보건소에서 결과 확인하고 감염내과에 바로 갔나요?
아쿠아마린: 아니요, 대학병원 감염내과에 가기까지 한 5개월이 더 걸렸어요. 담당자분이 면역 수치가 너무 낮으니 어서 진료를 보라고 재촉을 했는데, 마음이 도저히 안 따라주더라고요. 괴로움을 잊으려고 매일 술을 마셨고, 취한 채 출근했다가 회사에서 술이 좀 깨면 다시 또 술을 마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어차피 죽을 거면 나 하고 싶은 거라도 한번 해보고 죽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감염내과에 갔고 콘딜로마 치료도 받았어요.

3. 아픈데도 병원 가기가 무서워요.
박재경: 감염인으로서 병원을 이용할 때 어땠어요?
아쿠아마린: 아무래도 병원에 감염 사실을 얘기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조금 아픈 건 무조건 참았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면 그냥 약만 지어 온다든가, 피검사한다고 하면 무조건 다른 병원으로 갔어요.
박재경: 조금 아픈 건 무조건 참았다는 말씀이 가슴 아프네요.
아쿠아마린: 예전에 치과에 오는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HIV 전수 검사를 하겠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었잖아요. 당시 아랫니 사랑니를 뽑아야 돼서 동네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대학병원을 가라고 해서 서울대 치과병원에 갔는데, 감염인은 한 달 반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예약하고 다시 방문을 했어요. 예약된 층으로 갔더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라고 했고, 아래층에서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라고 하며 서로 떠넘긴 거죠.
참다못해 "그럼 도대체 어디서 치료를 받아야 하냐?"며 항의를 했더니 아래층에서 간호사도 없이 전공의인지 인턴인지 모를 의사 한 분이 오셔서 혼자 치료를 하는 거예요. 한참 수술이 진행되는데, 지나가던 수간호사로 보이는 분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더니 "어머, 왜 선생님 혼자 하고 계세요?"라고 물으니 "아무도 안 온대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제가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안 온 거예요. 결국 수간호사분이 곁에서 도와서 겨우 사랑니를 뽑았어요. 그때는 그게 의료 차별인지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이게 의료 차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박재경: 감염인을 진료에서 배제하거나 소극적으로 치료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감염주의 원칙>이 분명히 있는데, 참 안타깝네요.
4. 애들 밥부터 사줘야겠다
박재경: 사실 게이 커뮤니티도 아름답지만은 않아서 부정적이었던 경험들도 있었을 거 같아요.
아쿠아마린: 감염인으로 견디기 힘든 건,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이겠죠. "사람들이 대놓고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내지는 않는데, 은연중에 표출되는 감정들이 있거든요." 일반 게이 모임이나 단체에 갔을 때, "저 사람이 감염인이래" 하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것들, 그리고 그 뒤로 알게 모르게 저를 대하는 눈빛과 거리를 두는 미묘한 행동들. 그 정도요.
박재경: 아휴... 연애는 어떠셨어요?
아쿠아마린: 힘들었어요.(웃음) 감염 초기에, 제가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별을 겪은 게 네 번 정도 있어요. 사귀면서 감정이 깊어져 믿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버린 사람도 있었고, 제가 매일 약을 챙겨 먹으니까 무슨 약인지 의심하다가 몰래 가져가서 인터넷으로 확인해보고 그대로 이별을 통보한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그때는 "내가 연애를 하지 말아야 되나"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박재경: 흥! 복덩이를 놓쳤네요.
아쿠아마린: 그럼요, 맞아요! 저를 놓친 건 '금덩어리'를 놓친 거죠.(웃음)
박재경: 최근에야 방송이나 언론 매체에서 비교적 HIV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과거 언론이 감염인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곤 했는데, 이게 마린님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 같나요?
아쿠아마린: 감염 초기에는 제 상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나만 조심하면 되지, 남들에게 안 걸리면 그만이야' 같은 생각으로 덤덤하게 지냈거든요.
언젠가 뉴스에서 원주였는지 의정부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감염인 여성분이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자극적인 보도가 며칠 동안 계속 나오는 거예요. 며칠 내내 가게 TV에서 반복되는 뉴스와 손님들의 혐오 섞인 말들을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세뇌가 되어버리더라고요. '아, 나는 정말 죽어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
제가 원래 자존감이 낮은 편이 아니었는데도, 평소처럼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하는데 문득 '그냥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딱 들더라고요. 방송에서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당사자인 저는 그게 너무 가혹하고 힘들었어요.
박재경: 그걸 어떻게 넘어갔어요? 되게 힘드셨을 것 같은데.
아쿠아마린: 그때, 보리와 쿠키 때문에 차마 죽을 수가 없었어요. '보리하고 쿠키를 내 허리에 묶고 한강으로 가서 뛰어내리면 다 같이 끝낼 수 있을까?' 그런 극단적인 상상까지 하다가, 갑자기 '아니야, 그러다가 만약 나는 죽었는데 이 아이들은 안 죽고 살아남아서 남겨지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드니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고 "그냥 얼른 집에 가서 우리 애들 맛있는 거나 잔뜩 사줘야겠다." 이랬던 것 같아요.
5. 하루 형이 가르쳐 준 것들
박재경: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감염인 커뮤니티 '뉴퓨처 프렌즈'를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요. 감염되고 얼마 만에 가신 거예요?
아쿠아마린: 한 2~3년 정도 걸렸어요.
박재경: 왜 그렇게 늦게 간 거예요?
아쿠아마린: 2년 정도 지나니 안정기가 찾아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생각이 나는 거죠. '나 말고도 또 다른 감염인이 살고 있지 않을까?' 그 길로 인터넷 검색창에 '에이즈'를 쳐보았고, 다음 카페가 나왔던 거죠. 그 카페에서 하루형이랑 친구들을 알게 됐어요.
박재경: 오프라인 모임에 처음 갔을 때 어땠어요?
아쿠아마린: 떨리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죠. 나 말고 또 어떤 감염인들이 있나 했는데, 같이 술 한 잔 먹으면서 얘기를 하는데 너무 좋았어요. 나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재미있게 놀 수 있구나.
박재경: 약간 해방감이 있었겠네요.
아쿠아마린: 이게 해방감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동족을 만난 듯한 느낌.
박재경: 방장 하루 형과는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거예요?
아쿠아마린: 아무래도 처음 이쪽 사람을 만난 거였고,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애인과 헤어질 때마다 하루형에게 연락해서 택시를 타고 종로로 갔어요. 그 당시 하루형이 혜화에 살 때인데 나와서 막 달래주고, 하루형네 집으로 가곤 했죠. 거의 매일 평일 저녁에 만나서 같이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주말엔 같이 여행도 가고, 하루형네에서 파티도 많이 열었어요. 그 당시 제가 HIV 감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하루형이 되게 많이 알려줬어요.
박재경: 그때 하루형이 알려주셨던 것 중에 기억나는 게 있나요?
아쿠아마린: 일단 약 먹는 법부터요. 그때는 '칵테일 요법'이라 해서 약이 되게 독했어요. 약을 먹으면 토하고 이랬었는데, 형이 그럴 때는 '유산균을 먹어라', '음식은 뭘 먹어야지 좋다', '아플 때는 어떻게 응급처치를 해서 병원을 가야 된다'는 이런 방법들 되게 많이 알려줬어요.
지금은 의학이 발전해서 정말 너무 좋아졌죠. 요즘에는 하루에 알약 한 가지만 먹거나 2개월에 주사 한 대만 맞으면 되는데, 23년 전에는 아침, 저녁으로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이 한 열 몇 가지가 돼요. 제가 처음 그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을 때, 이틀을 못 걸어 다니고 그냥 누워만 있었어요. 속이 뒤집어져서 계속 토가 나오는데, 그래도 살기 위해 약은 먹어야 하니까 밥을 몇 숟가락 겨우 밀어 넣고 또 약을 먹으면 전부 토하고.
특히 밤마다 먹어야 했던 노란색 알약 세 개짜리가 있었는데, 그걸 먹으면 밤에 막 악몽을 꿔요. 악몽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면 멍해져 있는 거예요. 머리가 완전히 포맷된 것처럼 멍하고 몸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놓은 것처럼 축 처져 있었고요. 그 상태로 매일 회사에 출근을 했으니, 오전에는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 못해 일을 거의 할 수가 없었고 오후 늦게서야 겨우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식이었어요.
박재경: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미안하네요. 패밀리가 꾸려지는 게 쉽지 않은데 어떤 계기로 친해지게 된 건가요?
아쿠아마린: 카페 초창기에는 인원이 많지 않다 보니, 그때 모였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그때 같이 공감하고 나눴던 것들이 여전히 남아서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 같아요.
그 시절 정모에 가면 광장시장에 자주 갔어요. 모여서 전 부치는 할머니들이 있는데, 그 옆에 김치 파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파김치나 열무김치를 5천원치 사서 전이랑 막걸리 안주로 먹고,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포장마차에서 가자미튀김에 막걸리를 더 마셔요. 그리고 건너편 종합시장 닭 한 마리 집으로 가서 소주로 바꿔 마시고, 근처 생선구이집 다락방에서 수다를 떨다 10시쯤 가게가 문을 닫으면 나와서, 청계천을 따라 종로까지 걸어가서 단골 가라오케에서 맥주로 입가심을 했어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만나면 결국 하루형네로 가서 다음 날 하루형이 끓여 준 해장국까지 먹었어요.
박재경: 하루 형에게서 엄마의 냄새가 나네요. 그 시절 그런 관계가 그 당시 마린님 삶에 어떤 의미였나요?
아쿠아마린: 제가 하루형을 만난 게 30대 초반쯤이에요. 어릴 때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고2 때부터 혼자 나와서 살다가 엄마랑 산 지도 몇 년 안 됐을 때거든요. 그 전까지는 거의 혼자 살았기 때문에 하루형이 우리 친형보다 더 형 같은 느낌이고, 패밀리들도 정말 내 동생보다 더 동생 같고 가족같이 느껴져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박재경: 감염되기 전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였겠네요.
아쿠아마린: 네, 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원래 혼자 있는 걸 되게 좋아해서 누구를 만나거나 같이 여행을 다닌다거나 그런 게 없었어요. 그냥 일, 집만 오갔고, 빌딩 숲을 되게 좋아해서 주말에는 혼자 여의도 빌딩숲을 가서 한참 걷다가 들어오고 그랬었거든요.
박재경: 하루 형이 엄마 같은 느낌 말고도, 특별히 본인한테 소중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런 게 더 있을까요?
아쿠아마린: 그 시절에는 하루 형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같은 동네로 이사까지 하고, 30대에 살아가는 법을 하루 형이 다 가르쳐 준 셈이나 다름없어요.
박재경: 혹시 하루형이 마린님에게 했던 이야기 중에 지금도 따르고 있는 게 있나요?
아쿠아마린: 하루 형이 옛날부터 그런 이야기를 참 많이 했어요. "우리는 무조건 주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우리 같은 감염인들은 사회적 낙인 때문에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형은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간에, 일단 무조건 친해져 둬라"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래야 네가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너 역시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요. 그래서 제 주변에 항상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박재경: 옆에서 보고 있으면, 하루 형 말씀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고 보니 10년 넘게 마린님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누구랑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쿠아마린: 저는 사람들과 웬만해서는 잘 싸우지 않아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기면 몇 번 이야기를 꺼내보고,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냥 조용히 인연을 정리해요. 어쩔 수 없이 봐야 되는 상황이면 그냥 업무적인 것만 하는 편이에요.
박재경: 마린님이 후배 감염인들에게 서로 연락처를 나누고 챙기라고 많이 얘기했잖아요. 그런 모습을 하루 형이 본다면 어떠셨을까요?
아쿠아마린: 하루 형이 보았다면, 분명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형이 이 세상에 없지만, 만약 아직 제 옆에 계셨다면 더 많은 조언과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셨을 것 같아요. 지금 동네에서 성소수자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다 그런 맥락인 것 같아요. 하루 형의 영향력을 저는 또 저만의 색깔로 키워나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6. 나를 바꾼 시간들
박재경: 사전인터뷰에서 "내가 감염된 것이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었다"고 하셨어요. "제2의 인생 살기"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아쿠아마린: 사실 감염되기 전에 저는 동성에게 끌리기는 했지만, 동성애자라는 자각은 없었어요. 매일 회사, 술에 빠져 살고, 여자친구를 한 번에 아홉 명까지 만나보기도 했어요. 그때는 저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그냥 다 갖기 쉬운 것들이잖아요.", "친구들도 마음에 안 들면 버리면 되고, 여자들도 마음에 안 들면 버리면 되고, 술이야 뭐 파는 데는 많으니까", "또 외모도 반반하고."(웃음)
그러다 우연히 만난 형과 사귀면서 섹스를 하게 되었고 항문에 콘딜로마가 생겨서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에이즈에 걸리면 무조건 다 죽는다'는 공포밖에 없어서 몇 개월 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면, 내가 하고 싶었던 거라도 마음껏 해보고 죽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 길로 미뤄두었던 헬스와 일본어 공부를 곧장 시작했어요.
일본어를 꼭 배우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파이널 판타지 7〉이라는 게임이 있었거든요. 한국어판도 영어 더빙판도 있었지만, 주인공의 감정과 대사 맛이 일본판 외에는 도저히 실감이 안 나는 거예요. 이 게임을 깨려면 무조건 일본어를 배워야겠다 싶었죠. 주변에서는 곧 죽을 사람이 헬스 해서 뭐 하냐고 했을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운동을 하니 진짜로 몸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그리고 일본어를 독학해서 한 달 만에 〈파이널 판타지 7〉을 끝냈는데,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거의 탑급에 드는 수준이에요.(웃음)
게임과 운동을 계기로 회사에 다시 다니고 점점 저를 바꿔 나간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하루 형을 만났고, 다른 감염인 친구들과 연결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박재경: 내 삶이 바뀌고 있구나라는 걸 언제쯤 느꼈던 것 같아요?
아쿠아마린: 제가 '뉴퓨처 프렌즈'의 운영진을 맡게 되면서, 새로 확진을 받은 동생들과 친구들이 제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곤 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대처하면 다 괜찮아진다며 안내해줬어요. 그 친구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를 챙겨주고 도울 수 있는 존재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내가 변해가고 있구나 생각했던 거 같아요.
박재경: 오랜 기간 모임 운영자로서 활동하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끌었다면, 권력이나 돈의 유혹을 다시 느끼셨을 거 같아요. 그런 유혹은 없었어요?
아쿠아마린: 돈 문제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웃음) 그런데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모임에 새로 들어온 예쁜 친구가 있으면 운영진이라는 이유로 그 친구 옆자리에 붙어 앉았던 거? 그게 권력이었던 것 같아요.
박재경: 연애관은 어떻게 변했나요?
아쿠아마린: 한 사람만 꽉 잡고 살자.(웃음)
박재경: 그런데 실천은 좀 다르지 않나요?
아쿠아마린: 애인이랑 그거랑은 다른 거죠. 애인이랑 섹파랑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박재경: 애인한테 많이 퍼주는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어떠세요?
아쿠아마린: 퍼주었다기보다는, 그저 같이 동거하고 살아가면서 서로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 나간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게 우연히 큰돈이 생기면, 귀신같이 꼭 그때마다 애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더라고요.(웃음)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갚으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빚을 대신 갚아준 건데…… 결국 돌려받지 못한 채 연애가 끝이 나곤 하더라고요. 주위에서 제 사주를 보더니 '평생 돈을 모으지 못할 사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박재경: 파트너 입장에서 좋을 거 같은데요.
아쿠아마린: 많이 오세요.(웃음)
박재경: "제2의 인생 살기"가 다른 영향도 미쳤나요?
아쿠아마린: 아까도 말했지만 화를 안 내는 게 아니고, 저도 사람인지라 화가 날 때가 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 어떤 모임이나 사람 사이에서도 트러블을 만드는 게 싫거든요. 그래서 누군가와 오해가 생기면 제가 먼저 사과를 해요. 어떻게 보면 공동체적인 태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저를 위해서일 수도 있죠. 사소한 거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
박재경: "사소한 거에 목숨 걸지 말자."란 깨달음이 있었다는 거네요. 내 삶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다고 깨닫게 된 순간들이 있나요?
아쿠아마린: 자주 깨닫죠. 모임 갔다가 기분 좋게 집에 들어왔다든가, 집에 있는데 모임이 기다려진다든가, 그냥 내가 행복하다는 걸 느낄 때가 있잖아요. 가끔 집에 있으면 고즈넉하다는 그 느낌 있잖아요.
박재경: 고즈넉은 외로운 거와 다른가요?
아쿠아마린: 외로운 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 너무 좋다". 막 이런 거 있잖아요.
박재경: "제2의 인생 살기"는 사람들로 점점 풍성해지는 느낌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7. 경계가 허물어지는 자리
박재경: '친구사이'나 아니면 다른 인권 활동, 커뮤니티 속에서 마린님의 활동이 굉장히 활발해요.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아쿠아마린: 2015년인가? 당시 '친구사이' 대표였던 나미푸가 제안해서 UN에서 발주한 한국인 HIV 낙인지표 조사[3]였어요. 당시 뉴퓨처 프렌즈 활동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참여했던 게 처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 달 정기모임에서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연결(이하 '마음연결')을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됐고, HIV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 모임 '가진사람들' 활동도 하고, 아이샵[4]에서 동료교육 요원 활동을 하면서 뭔가 좀 더 많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지개행동[5]에서 개최한 성소수자 아카데미 교육도 받으면서 활동을 넓혔던 것 같아요.
박재경: 직장, 카페 운영, 단체 활동까지 병행하려면 시간과 열정이 많이 필요했을 텐데, 그렇게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아쿠아마린: 카페 친구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요. '마음연결'에 합류하고 싶었던 진짜 계기가 뭐냐면, 확진을 받고 카페에 가입한 초기 감염인들이 처음에는 정말 자살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데 당시 제가 전문적인 지식이나 상담 기술이 없다 보니,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냥 "지금은 좀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버텨봐. 한 몇 달 지나면 정말 거짓말처럼 다 괜찮아져.", "많이 힘들면 언제든 연락해. 같이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 마시자." 이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거든요.
박재경: 마음연결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아쿠아마린: '마음연결' 활동을 하면서 제 격려나 보살핌의 방식이 달라졌어요. 옛날 같으면 그저 막연하게 "괜찮아! 조금만 기다리면 다 지나가!"라고 말해주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많이 힘들지? 지금 내가 네게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게 뭘까?" 하고 먼저 물어보게 되었어요. "오늘 형이랑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놀자", 아니면 "혼자 있기 힘들면 우리 집에 와서 잠깐 같이 있을래?" 이런 식으로 바뀐 것 같아요.
박재경: "우리 집에 잠깐 와 있을래"는 진짜 큰 결단인데요. 도와주었던 카페 회원 중에 기억나는 분이 있나요?
아쿠아마린: 20대 초반의 한 친구였어요. HIV 감염 사실이 집안에 알려지면서 가족들에게 쫓겨나서 당장 갈 데가 없는 거죠. 그때 저도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 있으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하는 절차 다 밟아줄 테니까, 그때까지만 같이 지내자" 얘기를 하고 그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약 2개월 정도 함께 살았어요. 같이 지내는 동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대신 해주고, 서울대병원 사회복지팀에 연계시켜서 진료를 받게 해 주었어요.
박재경: 몇 년 전 '퀴어들의 산책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트랜스젠더 중심 사업이라 단체 내에서도 물음표를 던지는 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3년째 운영진을 하고 계시잖아요. 활동하면서 트랜스젠더나 고립 상황에 있는 퀴어를 만나며 새롭게 고민하게 된 지점이 있나요?
아쿠아마린: 예전에는 제가 게이이다 보니까 게이들밖에 안 보였어요. 간혹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아는 지인들도 몇 명 있긴 했지만, 솔직히 그분들의 삶과 아픔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친구사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내가 다 알진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산책모임을 시작했던 거거든요. 거기서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힘들었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분들은 저분들대로 나름의 힘듦이 있는데,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 되게 많다는 것을 함께 느꼈어요. 그래도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큼은 내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박재경: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던 계기가 있나요?
아쿠아마린: 트랜지션을 하나둘 해나가면서 산책모임에 참여했던 새벽님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처음에 약간 어색해서 말 붙이기도 힘들고 이랬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쌓이다 보니 그냥 새벽의 모든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어느 순간 제 경계가 허물어진 거죠. 그러면서 다른 트랜스젠더분들에 대한 낯섦도 없어진 것 같아요. 신림동 게이 업소에는 레즈비언분들이 많이 오거든요. 예전에는 옆에서 술 마시는 것도 싫어하고 이랬었는데, 지금은 친구가 됐어요. 그런 식으로 경계가 허물어지는 거 같아요.
박재경: 마음연결을 10년 넘게 해오셨는데, 이 활동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쿠아마린: 처음에는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거니까 힘들어도 열심히 했었던 것 같은데, 지나서 돌아보니 제가 많이 바뀌어 있더라고요. 활동하기 전 제 성격은 참 엉망진창이었는데, 지금은 참을성도 생기고 누군가를 걱정도 하고, 배려도 하고, 챙겨주고, 이런 것들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8. 같이 나누면 가벼워지는 것들
박재경: 친구사이나 마음연결 활동에서 갑자기 HIV 감염인이라고 커밍아웃을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감염인이라고 밝혔던 어떤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아쿠아마린: 제가 '친구사이'에서 처음 감염 사실을 밝혔던 건, 정기모임 때였던 것 같아요. 당시 한 회원분이 먼저 자신이 HIV 감염인임을 고백하셨는데, 그분이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게 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뒤이어 바로 감염인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어차피 우리가 나누어야 할 짐이라면, 같이 나누어 갖는 게 훨씬 좋잖아요. 그리고 혼자서 외로워하는 것보다, 차라리 둘이서 같이 외로워하는 게 외로움의 무게를 줄이는 법이니까요. 그 뒤에 마음연결 무지개돌봄 강사교육을 받으면서도 감염인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마음연결 안에도 감염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박재경: 떨리지는 않았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나왔나요?
아쿠아마린: 정기모임에서 할 때는 떨었죠. 솔직히 속으로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웃음)
박재경: 패밀리라 부르는 친구들 중에는 감염 사실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성소수자 서사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해 가까운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감염 사실을 밝히지 않아 친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으세요?
아쿠아마린: 만약 20년 전 같던 시절이었다면, 저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치료제와 U=U[7]와 같은 의학 정보가 있고, 찌개를 나눠 먹거나 살을 맞대고 산다고 감염되는 게 아니잖아요. "HIV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다 같은 존엄한 사람이다. 특별히 다를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말을 못 하고 혼자 앓는 건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나만의 '답답함' 때문이거든요. 침묵할 수밖에 없는 데는 다 깊은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실제로 제게 어느 날 한 동생이 다가와 말한 적이 있어요. "형, 그동안 아팠다면서요! 미안해요, 내가 그것도 모르고 형을 제때 못 챙겼어요."라고요.
9.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것
박재경: 패밀리, 마음연결, 산책모임까지 사람들을 정말 자주 만나시는데, 특히 20~30대 분들과도 잘 어울리시더라고요. 젊은 세대와 어울리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있나요?
아쿠아마린: 일단 외모죠.(웃음) 젊어지려고 노력을 하죠.
박재경: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셔야 독자분들이 팁을 얻죠.
아쿠아마린: 아휴, 일단 지갑을 열고 돈을 좀 써야 하고요, 무엇보다 내 마음부터 젊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새로운 음악을 빨리 캐치하는 편이에요. 신곡을 한두 번만 들으면 멜로디를 금방 기억하거든요. 가사까지 완벽히 외우진 못해도 흥얼거릴 정도는 돼요. 나름 센스가 좀 있는 것 같아요.(웃음) 덕분에 대화할 때 이야기를 잘 받아주고 이끌어가기도 하고. 아무래도 연예인 이야기나 아이돌 좋아하잖아요. 요즘 최신 영화들이 뭔지도 알고 있어요. 다 보지는 않아도 줄거리는 다 한 번씩 봐줘야 된다는 거.(웃음)
박재경: 노력을 많이 하시는 거네요.
아쿠아마린: 근데 저는 이걸 노력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요즘 주변에서 관심 갖고 있는 것들이 뭔지 한 번쯤 그냥 기사로 훑어보는 거죠.
박재경: 패밀리 친구들이 신림 쪽에 모여 사는 걸로 아는데, 몇 명 정도예요?
아쿠아마린: 언제든 전화해서 "야, 나와!", "커피 한잔 마시자", "밥 한 끼 먹자"고 편하게 말할 수 있고 불러낼 수 있는 친구들이 한 10명 정도는 있는 것 같아요. 일본영화 중에 〈메종 드 히미코〉[6]라고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있거든요. 나이 든 분들이 한 곳에 모여 사는 이야기인데 그 영화처럼 친구들끼리 "우리 나이 들면 돈 모아서 서울 근교에 정원 딸린 예쁜 주택 하나 매매해서 다 같이 모여 살자!" 이야기해요. 이제 정말 돈만 열심히 모으면 될 거 같아요.
실제로 신림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네 매장에 모여 주기적으로 같이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고 파티도 열곤 하는데요, 많이 만날 때는 한 달에 스무 번도 넘게 뭉칠 때가 있어요.
미리 약속을 잡지 않더라도, 혼자 단골 바에 앉아 있으면 한 명씩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집에 있으면 "지금 바에 형 '식'이 나타났으니까 빨리 와!" 하고 전화가 오기도 해요.(웃음) 주말이면 모여서 항상 같이 밥을 먹어요.
박재경: 공동체 주택을 만들고 싶다는 꿈! 꼭 실현하기를 바랄게요. 그럼 주로 언제 쉬어요?
아쿠아마린: 그냥 틈틈이 쉬어요. TV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강아지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제가 원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는 일에 에너지가 전혀 소모되지 않는 성격이에요. 어떻게 보면 오히려 힘을 얻는다고 할까? 좋은 만남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에너지가 충전이 돼요.
가끔 그럴 때가 있어요. 달력을 보다가 '어? 이번 주에는 왜 약속이 아무것도 없지?' 가끔 그렇게 주말 일정이 텅 비어 있으면 문득 "내가 혹시 중요한 모임을 깜빡 까먹은 거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할 때도 있어요.(웃음)
박재경: 어머님과는 어떻게 지내세요? 최근에 나눈 대화는 무엇인가요?
아쿠아마린: 저희 가족은 평소에 유난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챙기거나 전화를 돌릴 필요가 전혀 없어요.(웃음)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거나 보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제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찾아오거든요.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오시는데, 식당 이모님들과도 워낙 친하시고 동네 분들과 계모임을 하실 때도 꼭 제 가게로 모이시곤 해요.
그런데 모임이니 뭐니 하는 건 핑계고, 쉰이 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둘째 아들이 걱정되니까, 손수 만든 밑반찬 바리바리 싸 들고 제 얼굴 한 번 더 보러 오시는 거라 생각해요.
박재경: "제2의 인생 살기"는 10년 후쯤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 것 같나요?
아쿠아마린: 아마 그때도 '마음연결'이라든가 성소수자·감염인 단체 활동을 여전히 하고 있을 거고, 패밀리들도 늘 변함없이 제 곁에 머물고 있겠죠. 아마 이런 유대감이 지금보다 훨씬 더 두꺼워지고 커져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박재경: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초기에도 힘들 수 있고, 사실은 10년, 20년 지나도 또 새로운 도전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힘들어하는 감염인에게 해 주고 싶은 어떤 메시지가 있을까요?
아쿠아마린: 이런 옛말이 있잖아요. '참으면 결국 병이 된다'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야 해요. 지금 무슨 일 때문에 괴로워하는 감염인에게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라. 후회 없이." 지금 그 아픔의 무게를 충분히 마주하고 느껴야, 다음번에는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웃고 싶을 때는 또 마음껏 웃어야 해요. 그래야 내 삶에서 진짜 기쁨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거든요.
박재경: 마린님의 이야기가 감염인을 넘어서 퀴어 공동체에 위로가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오늘 인터뷰는 어떤 경험이었던 것 같으세요?
아쿠아마린: 그냥 수다를 떤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가 누군가한테는 힘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한테는 아무 느낌이 없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감염인으로서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건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박재경: 독자분들도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 후에 우리가 마린님께 편지를 쓸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이건 회의에서 결정되겠지만 사람들을 초대해서 예식으로 진행해 보는 실험적인 걸 하고 싶어요. 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인터뷰를 마치도록 할게요.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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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이프'는 HIV 감염인의 이야기를 통해 게이 커뮤니티와 우리 사회의 지금 모습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누구나 그렇듯, 감염인들도 다른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흔들릴 때가 있지만, 그래도 저마다 자기답게 사는 방법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솔직한 이야기를 게이 커뮤니티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레드라이프는 2027년, 감염인들이 서로 만나 경험을 나누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자조모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는 12월 5일(토)에는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아쿠아마린 님을 모시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려 합니다. 자세한 일정과 장소는 추후 공지로 안내드리겠습니다. |
주석
[1] 영웅본색
1986년 개봉한 홍콩 누아르 영화로, 한국에 홍콩 느와르 신드롬을 촉발시킨 작품이다. 조직의 배신으로 몰락한 암흑가 두목 송자호와 그의 동료 소마가, 경찰이 된 자호의 동생 아걸과 얽히며 벌어지는 의리와 비극적 운명을 그렸다.
[2] 젊음의 행진
1980년 9월 21일부터 1994년 2월 19일까지 방영된 KBS의 청소년·젊은이 대상 음악 방송 프로그램. 대학생과 젊은 층을 주 타깃으로 하여 당시 유행하던 가요와 댄스, 대학 서클 공연 등을 선보이며 1980년대의 자유로운 청년 문화를 대변했다.
[3]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The People Living with HIV Stigma Index - South Korea)'는 HIV 감염인이 직접 조사원으로 훈련받아 동료 감염인을 심층 면접·설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조사다. 한국 HIV 감염인이 느끼는 '내재적(내적) 낙인'이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심각하다는 점을 핵심 발견으로 제시했으며,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에이즈 혐오와 성소수자 편견이 감염인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양상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자료로 평가받는다.
[4] 아이샵
사단법인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운영하는 국내 최초이자 대표적인 성소수자 특화 HIV/AIDS 예방 및 상담 센터. 명칭은 'Ivan Stop HIV/AIDS Project'의 약자이며, 무료 익명 검사(HIV, 성병), 예방 및 교육, 전문 상담과 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센터, 서울 이태원센터, 부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5] 무지개행동
국내 최대 규모의 전국 단위 성소수자 인권운동 연대체.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 발의 과정에서 '성적 지향'을 비롯한 7개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하자 이에 대응해 결성된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을 모태로 2008년 5월 17일 정식 출범했다. 2025년 3월 26일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으로 단체명을 변경했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혼 법제화, 성별인정법 제정 등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6] 메종드 히미코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5년 일본 영화. 게이 아버지를 원망하던 딸 사오리가 은퇴한 게이들의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이들과 소통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혈연 중심의 가족을 넘어 서로를 보듬어주는 대안적 공동체의 모습을 잔잔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7] 알고 나면 보이는 U=U: HIV/AIDS,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U=U는 '바이러스 미검출(Undetectable)이면 전파 불가능(Untransmittable)'하다는 뜻의 글로벌 의학 캠페인 및 선언이다. PARTNER, Opposites Attract 등 대규모 임상 연구를 통해 미검출 상태의 감염인이 콘돔 없이 성관계를 가져도 바이러스가 전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음이 증명되었으며, 세계보건기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유엔에이즈계획 등 전 세계 보건 의료 기관이 공식 지지하고 있다. HIV 감염인을 '위험한 전파자'로 보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으며, 감염인들이 전파에 대한 불안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연애, 결혼, 출산을 하며 건강한 일상을 누리는 데도 기여했다. 다만 주사기 공동 사용, 수혈, 모유 수유 등의 영역에서는 전파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U=U 공식이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참고자료
오마이뉴스 (2022.05.12) ‘영웅본색‘ 당시 장국영, 주윤발보다 유명했던 남자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833905
주간경향 (2018.04.30.) 젊음의 행진, 1980~90년대 향수 ‘추억의 행진’
https://weekly.khan.co.kr/article/201804301432041#ENT.
한겨레 (2017.07.17.) [시론] HIV 낙인지표조사, 감염인의 성장 이야기/정욜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3165.html
사단법인 아이샵 공식홈페이지 ishap 소개
https://ishap.org/content/about_01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공식홈페이지
경향신문 (2006.01.10.) 영화리뷰 - ‘메종 드 히미코’
https://www.khan.co.kr/article/200601101644391#ENT
서울시 감염병 전문가 칼럼 (2026.05.08.) - 알고 나면 보이는 U=U: HIV/AIDS,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https://news.seoul.go.kr/welfare/archives/5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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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자살예방센터 마음연결
센터장 박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