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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95호][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61 : 2026 정기공연 '무지개 빛 날' 미리보기
2026-10-07 오후 15:34:06
기간 9월 

 

 

[195호][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61

: 2026 정기공연 '무지개 빛 날'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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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자꾸 오늘 하루를 생각하게 된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보다, 오늘 옆에서 누가 웃었는지, 누가 음을 틀렸는지, 누가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공연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보다. 사실 공연 준비라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들쑥날쑥하게 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틀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부르는 이야기가 객석에 잘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번 무대에서 부르는 것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우리의 하루다.

 

아침에 회사에 가서 동료가 묻는다.

“주말 잘 보냈어요?”

 

별것 아닌 질문인데 가끔 대답하기가 어렵다. 연인과 함께 보냈다고 말하면 될 것을, 누구와 있었는지 적당히 다른 말로 바꾸기도 한다. 어디 다녀왔냐는 질문에는 장소만 이야기하고, 누구와 갔냐는 질문에는 웃으며 얼버무린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도 든다. 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해야 할까. 

 

말할까. 말하지 말까.

아침에 말할까, 저녁에 말할까.
편지로 말할까, 밥 먹다가 말할까.
큰 소리로 말할까, 눈물로 말할까.

 

혼자 있을 때는 수십 번도 더 연습했던 말을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 하면 목구멍에서 걸린다.

이기적인 마음일까.
상처 주는 일일까.
괜히 말했다가 후회하면 어떡하지. 

그러다 또 아무 말도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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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가슴에 묻고 사는 건 너무 쓸쓸한 일인데. 어렸을 때는 사랑도 노래도 참 쉬웠던 것 같다.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는 줄 알았다. 누군가를 보고 가슴이 뛰면 그게 사랑인 줄 알았고, 노래가 좋으면 큰 소리로 부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사랑에도 눈치가 필요하고, 노래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학창 시절의 어느 여름날처럼, 창밖의 나뭇잎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만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도 있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곱게 접어 서랍 한구석에 넣어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기도 했다. 그런 마음들이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길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면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이제 다시 시작해볼까.’ 

조심스럽게 사랑을 다시 노래해볼까.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오는 것 같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되는 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또 마음을 빼앗기는 날. 알면서도 빠져드는 사랑이 있고, 수천 번 아파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아마 우리는 그렇게 또 살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고 지쳤을 때 전화를 하라고, 작은 마음 하나를 내밀어준 사람. 그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아픔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입버릇처럼 동지라고, 친구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끔은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잘 지내고 있냐고.

그때 고마웠다고.

나도 이제는 네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고.

 

우리가 살아온 시간에는 분명 혼자 견뎌낸 밤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혼자였던 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옆에 앉아주었고, 누군가는 말없이 안아주었고, 누군가는 술자리에서 별것 아닌 농담으로 나를 웃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나누어 가졌다. 지보이스 연습실에 있으면 그걸 더 자주 느낀다. 참 이상하다. 음치도 있고 박치도 있고 몸치도 있다. 어떤 날은 음이 안 맞고, 어떤 날은 박자가 엇나가고, 어떤 날은 한숨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도 난다. 그런데도 계속 부른다. 노래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늘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는지. 기분이 좋은지, 일이 힘들었는지, 연애가 잘되고 있는지, 어제 울었는지. 마치 랜덤 비빕밥처럼,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섞어본다. 이상한 재료가 들어가도 괜찮다고, 한번 비벼보자고. 그러다 보면 정말 이상하게도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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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와 네 목소리가 섞이고,
내가 못 내는 소리를 누군가 내주고,
내가 놓친 박자를 누군가 잡아주고,

그렇게 한참 비비고 나면 어느 순간 우리만의 소리가 된다.

 

아마 합창은 그런 것 같다. 혼자 잘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끝까지 함께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는 자꾸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잘할 수 있을까. 함께 갈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의 아픔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은 가끔 축축 늘어지고 미래는 잘 보이지 않는다.누군가의 빈자리가 오래 남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했던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음을 모아본다. 내 손을 잡아달라고.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함께 가자고. 이 길의 끝에서 다시 만나 웃자고.

 

아마 우리는 앞으로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실수도 할 것이고, 때로는 서로에게 서운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끝이라 생각한 순간에도 다시 시작은 찾아오니까. 가끔은 그냥 다 잊고 춤추고 싶은 날도 있다. 세상에는 우울한 일이 너무 많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그럴 때 음악이 시작되면 잠깐 다른 사람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몸을 음악에 맡기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잠시 내려놓고.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만큼은 “바로 네가 맞아. 너도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다. 조금 우스꽝스러워도 괜찮고, 폼이 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일어나서 움직이면 된다. 우리가 오랫동안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 순간만큼은 우리 마음대로 가져와도 된다.

 

웃을 자유.
사랑할 자유.
노래할 자유.
춤출 자유.

 

공연을 준비하면서 자꾸 하루를 생각한다. 특별한 하루 말고, 정말 평범한 하루.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하고,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락하고,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잠드는 하루.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하루. 그런데 우리에게는 가끔 그 당연한 하루를 위해 작은 거짓말이 필요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함께한 시간을 바꾸고. 어떤 자리에서는 당당하게 나를 소개하면서도, 어떤 자리에서는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다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상처도 가지고 왔고, 사랑도 가지고 왔고, 실패도 가지고 왔고, 웃음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들고 연습실에 모였다. 작은 점처럼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선이 되고, 그 선들이 모여 그림이 되듯이. 우리의 하루도 그렇게 모였다. 공연 날에는 아마 긴장할 것이다. 첫 음을 내기 전 손에 땀이 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가사를 까먹을지도 모르고, 예상하지 못한 실수도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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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냥 노래하려 한다.

잘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여기까지 살아온 우리를 위해서.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조금 꺼내놓기 위해서.
고마웠던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기 위해서.
아직 아픈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에게
잘 버텨왔다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조금 더 살아보자고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노래한다.
우리가 퀴어라서.
우리가 서로를 만나서.
우리가 아직 사랑하고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하루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다시 평범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월요일이 오고, 출근을 하고, 또 누군가가 묻겠지. “주말 잘 보냈어요?” 그때는 조금 덜 망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아무것도 바꾸어 말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고,내 이름으로 내 삶을 이야기하고, 그저 웃으며 “네, 잘 보냈어요.” 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하루가 올 때까지. 아니, 그런 하루가 올 수 있도록.오늘도 우리는 함께 노래한다. 하루는 작고 평범한 점 하나지만, 그 점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이 되니까.

 

당신의 하루에도
부디 당신의 목소리가 온전히 담겨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노래를 듣는 동안 만큼은
우리의 하루와 당신의 하루가
잠시 같은 노래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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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지보이스 단장 
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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