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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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Seoul For All> #14
퀴어한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 : ② 공간을 엮어냅니다.
# 퀴어 도시계획 전문가 그룹?!, Planning Out
[그림 1] Planning Out의 SNS 계정
2016년 7월, 런던에서 설립된 영미권 퀴어 도시계획 전문가 그룹 ‘Planning Out’은 도시계획 관련 산업 전반에 걸쳐있는 500여 명의 LGBTQ+ 전문가들 간 네트워크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포럼입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구성원들이 각자의 직장 및 직업 생활에서 겪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도시계획 분야 내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LGBTQ+ 커뮤니티의 요구가 기존의 도시 정책 내 잘 수용되고, 가시화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장기적으로 관련된 도시계획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2019년 7월, 이들은 LGBTQ+ Planning Toolkit이라는 얇은 사례 모음집을 발표하고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해당 자료는 개별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내 LGBTQ+ 관련 장소 혹은 사업체와 관련된 촉진 및 보호와 관련된 계획을 세우고자 할 때 유사 사례를 참조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관련된 정책을 확산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데요. 이들은 왜 이러한 사례집을 발표하고, 관련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을까요? Planning Out은, 이번 사례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림 2] Planning Out이 발간한 퀴어 도시계획 사례집
Planning Out, 2019.07., LGBTQ+ Placemaking Toolkit, fieldfisher, London.
* 링크의 글을 참고하여 일부 의역 및 생략을 진행하였으니 참고바랍니다.
“가족결합제도와 도시계획 관련 법들이 지속적으로 개선됨에 따라 오늘날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많은 LGBTQ+ 사람들이 30-40년 전과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향후 20-30년 후 LGBTQ+ 사회가 직면한 주요 과제는 무엇일까요? Planning Out은, 지역 사회 내 관련 공동체가 LGBTQ+ 사람들의 행복을 보장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계획가로서 Planning Out은, LGBTQ+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자유롭게 축하할 수 있는 안전하고 매력적인 공간을 제공함에 있어, 도시계획 시스템과 관련된 건설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LGBTQ+ 관련 사업체들(클럽, 서점, 술집 등)은 관련된 시설과 서비스를 다양하게 제공함으로써 커뮤니티 내 일상 생활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내 전반적인 구조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림 3] UCL Urban Lab의 주요 연구 분야인 퀴어 기반시설 소개 페이지
한편, 최근 10년 사이 런던 내 LGBTQ+ 관련 사업체가 다양한 이유로 약 58% 폐쇄됨에 따라(UCL Urbanl Lab, 2018), 특정 장소 및 이벤트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LGBTQ+ 사람들의 유산(Heritage)이자, 세대 간 교육과 교류의 장소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례집은 LGBTQ+와 관련된 창조적·문화적 유산을 보호하고 진흥하기 위한 정책 및 의사결정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관련된 장소가 폐쇄되거나 재개발되는 것을 보호하고, 일시적인 행사나 축제를 개최함에 있어 다양한 형태의 행정 관련 지침을 제공하는 것에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Planning Out의 얇은 사례집은 아래과 같은 때로는 허무하게 여겨질지도 모르는 오랜 노력들이 선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퀴어기록저장소, ONE Archive Foundation
[그림 4] ONE 아카이브 소개 페이지
1952년 ONE Magazine의 출판사로 처음 설립된 ONE 아카이브 재단(One Archives Foundation)은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도서관과 협력하여 LGBTQ+와 관련된 역사, 예술, 문화를 수집, 보존, 보호하는 세계 최대의 퀴어 기록물 저장소입니다. 이 곳은 현재 다양하게 수집되고 있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와 관련된(LGBTQ+) 자료를 다양한 프로젝트, 프로그램, 전시회, 교육을 통해 전세계 퀴어 커뮤니티와 공유, 홍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2010년 ONE 아카이브 재단은 서던캘리포니아대 도서관에 관련 자료를 기탁했다.
[그림 5] “바를 해방하라!, 퀴어들의 밤시간, 운동, 그리고 공간 만들기” 전시
2019년 10월, 이들은 LGBTQ+ 들의 야간활동공간(Nightlife)을 주제로 “바를 해방하라!, 퀴어들의 밤시간, 운동, 그리고 공간 만들기(LIBERATE THE BAR! QUEER NIGHTLIFE, ACTIVISM, AND SPACEMAKING)”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조명하는 멀티미디어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스톤월 폭동 50주년을 맞아 개막된 이 전시회는 신문과 사진, 전단지, 비디오와 같은 기록 자료물을 통해, 미국 전역의 LGBTQ+들의 저항과 운동 공간이었으며 동시에 해방 공간이었던 관련 공간과 이벤트들을 살펴봄으로써,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퀴어와 트랜스젠더들의 투쟁과 승리를 살펴보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어떻게 저런 자료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을까요? 모든 것이 기록되고, 데이터화되는 오늘의 시대도 아닌데, 1960-1970년대의 기록물들은 어떻게 누군가에게 ‘기록물’로 인식되었으며,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어떻게 그 기록물들을 지금까지 전달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생각’과 ‘노력’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보다 더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의 시각에서, 우리의 공감대에서 이해하고 엮어낼 수 있는 힘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까요.
* 아마, 이후에 기록에 흥미를 지닌, 혹은 이를 전공하는 누군가가 이에 대한 글을 진행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 LA 일대 150년의 퀴어커뮤니티 역사를 훑다, 퀴어맵(QUEER MAPS)
[그림 6] 미국 LA일대 800여개 퀴어한 공간들의 기록을 담은 퀴어맵 페이지
바로 저번 달이죠. 2019년 11월, 미국 LA에서 거주하는 Chris Cruse와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Nightlife Organizers들은 ONE Archive 등의 기관과 협력을 통해, 1871년부터 올해까지 약 150년에 걸친 기간 동안 지역 내 분포해있던 약 800여 개의 술집, 나이트클럽, 단체, 종교기관 등 역사적인 LGBTQ+ 장소들을 인터렉티브 맵 상에 투영하고 이를 공개했습니다. 2017년 LA에 남아있던 마지막 레즈비언 바가 폐쇄됨에 따라, 미국 전역의 도시에서 관련 장소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지금, 이들은 왜 이러한 자료를 공개했을까요?
Cruse는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 이후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곳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현재 열려 있는 퀴어 친화적인 장소들을 계속해서 후원하고, 관련된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죠.“
물론, 이들은 첫째, 대부분의 기록물들은 당시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다는 점. 둘째, 기록물에 기록되지 않은 장소 외에도 매우 많은 장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셋째, 대부분의 기록물은 백인 게이 남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섹슈얼리티적, 민족적 특성을 지닌 장소들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는 점. 넷째, 이러한 목록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일반화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 등 기록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더욱 다양한 기록과 연구들이 시행될 수 있어야함을 주의해야함도 강조하고 있죠.
그렇다면, 영미권과 비교했을 때, 한국 혹은 서울은 어떤 상황일까요?
# 서울에서 퀴어, 공간, 기록하기?!?
오늘날, 한국 그 중에서도 서울에 대한 퀴어 공간에 대한 기록물은 해외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술집, 클럽 등 유흥 시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물들은 다음과 같은 배포한 주체자가 명확하지 않은 과거의 비공식적인 전단지를 비롯해서, 일부 사회학 혹은 지리학 중심의 논문, 그리고 최근 주체자가 어느 정도 명확한 전단지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 동성애자에이즈예방센터 iSHAP 등을 통해 일부 구체적인 위치가 포집된 바 있지만, 현재 관련된 기록물에 접근하는 것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을 통해 과거의 기록물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수월합니다.
[그림 7] 왼쪽부터 차례로, 보릿자루, 이서진(2007)의 논문, 플래그 2호
그리고 최근 이러한 기록물들을 바탕으로, 퀴어들의 기록에 관한, 그리고 그러한 기록물들이 담고 있는 과거의 공간에 대한 전시·세미나 등이 다양하게 이뤄졌습니다. 비록, 기록물의 절대적인 양과 질에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영미권과 비슷한 시기에 다음과 같은 전시들이 이뤄진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림 8] 합정지구에서 이뤄진 《퀴어락》 전시
첫째, 서울에 기반을 둔 작가들이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수개월 간의 조사를 바탕으로 제작한 신작으로 이루어진 《퀴어락 ;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탐방기》은 과거 ”한국의 퀴어들이 역사에서 삭제되는 결과를 낳았던 담론적, 학술적 폭력에 저항함으로써, 편향된 한국(미술)사의 규범과 학술 제도가 설파해 온 좁은 관점을 극복“하고자 한 전시입니다.
한국에서 제작되고 수집된 퀴어 출간물, 자료, 영상물, 글과 그림 등 퀴어락의 소장 자료를 연구 조사하는 데에서 출발하며, 그래픽 디자인, 조각, 설치, 영상, 패션 등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독창적인 타임라인을 그려내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림 9] 신촌과 종로 일대 퀴어 공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둘째, 오늘날까지도 성소수자 집단의 안식처로 기능하고 있는 종로와 신촌에 대한 공연·세미나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좌측의 《덴 앤 나우 ; 관련 후기 링크》 https://twitter.com/thennnownext 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수도권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퀴어 여성이 자신들이 지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누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과거 신촌 공원을 비롯한 레즈비언들의 공간이 어두웠던 흑역사로 읽히는 것이 아닌, 우리들의 또 다른 찬란한 역사로 읽혀지길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우측의 《선게이서울 ; 관련 후기 링크》 https://www.facebook.com/gvoiceseoul/ 은 최근 익선동의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는 종로삼가 일대 게이커뮤니티의 상황을 바탕으로 소수자 집단에게 공간이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공간인지 살펴보고, 위협에 맞서 더 높고 뾰족한 담을 쌓기보다 더 낮고 투명하고 유연한 울타리를 만들 수는 없을지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두 자리의 행사에서 나온 질문은, 단적으로 우리의 역사란 무엇일지, 그리고 각각의 섹슈얼리티에 따라 처한 위계의 차이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질문이 지금의 우리에게, 혹은 더 이후의 퀴어 커뮤니티에게 어떤 방향을 안내해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혐오의 시선에 상처받는 사람들, 경계를 정하여 숨어들려는 사람들과 더 밝은 곳으로 나오려는 사람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의 공간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필요할까요?“ -선게이서울, 2019- |
“종로, 이태원은 게이 동네라고 하면서 신촌, 홍대는 왜 레즈 동네라고 불려지지 않는가. 왜 우리의 땅과 기억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 -덴 앤 나우, 2019- |
[그림 10] 퀴어 공간의 기록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N개의 공론장
마지막으로 2019년 12월,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청년허브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 # 팀 서울퀴어콜렉티브와, 약 30명의 참가자 및 퍼실리테이터, 그리고 앞의 세 행사를 주최한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의 상근활동가 “루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모임 지보이스 단장 “박의석”, 언니네트워크의 2019년 운영지기 “우야해영”이 모여, ‘퀴어한 공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공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연 2019년의 12월 1일, 이 날의 공론장에서는 어떤 논의들이 오고 갔을까요? 각각의 참여자들은 이 날의 행사를 통해 각자의 퀴어 공간에 대해 어떤 좌절을 혹은 조그만 희망을 안고 돌아갔을까요? 물론, 때때로 힘이 부치는 날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그나마 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뿐이어서, 내가 배운 학문 분야는 도시계획이어서 가질 수 있는 한계점에 좌절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일 때, 그렇게 모여서 이에 대해서 논의하고, 때때로 각자의 자그만 능력을 공유할 수 있을 때,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지는 않을까 희망을 걸어봅니다. 더 많은 만남과 경험이 공유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러한 공유가 기록으로서 남아 전달될 때, 분명 누군가는 이를 통해 지금의 우리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돌파구를 생각해볼 수 있을테니까요.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