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연도별 기사
[189호][활동스케치 #2] 트랜스 엑스포 2026, 유채색 옷을 입은 친구사이
2026-04-03 오후 16:14:44
18
기간 3월 

 

 

[189호]

[활동스케치 #2]

트랜스 엑스포 2026,

유채색 옷을 입은 친구사이

 

 

 

KakaoTalk_Photo_2026-04-02-16-26-22.jpeg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신청했다는 제1회 트랜스 엑스포.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이 주최·주관하고, 무지개교실,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 여행자, 커뮤니T,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 트랜스해방전선,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팀이 공동주최한 이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행사였던 듯하다. 쉽게 흘러드는 미디어만 보다 보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우리에게도 비빌 언덕이 있고 기댈 어깨가 있다. 파티도 있다. 친구사이는 트랜스 커뮤니티의 온기를 체감하고 활기를 확인하는 이 자리에 한 부스를 맡아, 웰컴드링크를 나누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행사 전날인 20일 밤에는, 지난해 교육팀에서 친구사이 안에서 트랜스 회원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진행한 교육 「우리는 혐오를 벗어나」 때 만들었던 로고를 다시 열어보았다. 라벨지에 프라이드 컬러의 꽃, 트랜스 프라이드 컬러의 원, 논바이너리 프라이드 컬러의 삼각형, 게이 프라이드 컬러의 무지개 로고를 인쇄해 종이컵에 하나씩 붙였다. 행사 당일인 21일에는 오전부터 집에서 3시간 동안 드립커피 100인분을 내렸고, 행사장에 도착해서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보내주신 자몽청으로 자몽에이드 120인분을 만들었다. 현장에 정수기도, 제빙기도 없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얼음 10kg, 생수 1.5L 18병, 그리고 각종 집기를 챙기니 40kg이 넘는 짐이 되었다. 근력은 전혀 없지만, 트랜스 엑스포의 기운을 받아 기적적으로 힘을 내어 짐을 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날, 따뜻한 인사와 음료를 건넬 친구사이 지보이스의 슈가와 친구사이 마음연결의 예진이 도착하자마자, 상근활동가는 체력 회복을 위해 잠시 주방 뒤에 숨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KakaoTalk_Photo_2026-04-02-16-27-59 001.jpeg

 

 

잠깐의 그로기 상태에서 다시 화사함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슈가와 예진의 의상 덕분이었다.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 예진은 베이비 핑크색의 사랑스러운 옷을, 슈가는 하늘색의 청량한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나도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지, 웰컴드링크를 나눠주던 두 사람에게 의상의 구매처를 묻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음료를 받으면서도 환대를 어색해하는 사람, 오늘만 기다린 사람처럼 엄청난 수다를 늘어놓는 사람, 음료를 두 잔 세 잔 마셔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사람까지, 여러 얼굴을 만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스몰토크를 나누다가 왈칵 눈물을 쏟은 분이었다. 당황해서 무슨 일인지 묻자,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고, 고민을 나눌 사람도 없어서 이런 자리가 너무 필요했는데, 와보니까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난다”고 답해주셨다. 능청스러운 예진은 가방에서 마음연결 명함을 주섬주섬 꺼내,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전화하라며 그분 손에 쥐여주었다. 제때 명함을 꺼낸 예진의 센스에 감탄하며 어깨를 여러 번 쳤다. 행사장 입구 근처에 있던 터라, 그분은 오가며 우리에게 여러 번 인사를 건네주셨다.

 

 

KakaoTalk_Photo_2026-04-02-16-27-59 002.jpeg

 

 

마음연결의 말루님, 재경이형 등 친구사이 회원들도 행사장을 찾아주셨고, 일찍 도착한 규민님은 일손이 부족하지 않은지 먼저 물으며 웰컴드링크를 나눠주고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일을 함께해주었다. 규민이 합류하자, 웰컴드링크를 건네는 순서와 어떤 식으로 인사를 건네면 좋을지 매뉴얼을 정하는 슈가의 모습도 든든했다. 트랜스 엑스포 현장의 열기 덕분이었는지, 먼저 와서 손을 보태준 분들 덕분이었는지, 12시에 시작한 웰컴드링크는 서너 시간 만에 250잔이 모두 소진되었고 우리는 정리에 들어갔다. 그제야 주방 밖으로 나와 트랜스 엑스포 현장을 둘러보며 무엇이 있는지, 누가 왔는지를 다시 살폈다. 각 부스와 사람들 모두 서로의 대화와 현장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멀리 있는 지인에게도 눈인사만 건넸다. 정리를 마치자마자 읽고 싶었던 만화책을 빠르게 찾아 읽는 슈가, 화장을 고치는 예진, 무지개행동 굿즈 판매 자리로 옮겨간 기용,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던 규민과 함께 그렇게 트랜스 엑스포의 하루가 지나갔다.

 

저녁 일정이 있어 먼저 나오는 길이었는데도, 반나절이 이 정도로 보람차면 저녁 일정쯤은 없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고는 또 새벽까지 친구들과 노는 밤을 보냈다. 트랜스 엑스포에서 서로 만난 사람들도, 그 자리가 충만했던 만큼 바깥에서의 시간까지 이어가며 서로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약간 피곤하고, 자주 흥이 나는 일상을 함께 보내고 싶다. 근데 이거 내년에도 열리는 거죠?

 

 

lineorange.jpg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박민영

 

 

 

KakaoTalk_Photo_2026-04-02-16-28-00 005.jpeg

 

 

3월 21일, 트랜스 엑스포의 날짜는 공교롭게도 데미안 허스트 전시 시작일과, BTS 광화문 공연이 겹치는 날이었다. 기용님께서 사람이 많아서 일찍 오는 게 좋으실 거라고 했기에 일찍 출발하였다. 그리고 친구사이 회원분들과 함께 웰컴 드링크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보통 한국은 스몰토크를 하는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난 방문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표하고 스몰토크를 무척이나 나누고 싶었다. 들어오시는 방문객들에게 크게 인사를 하고, 그들의 옷, 타투, 악세서리 등에 반가움을 표하며 스몰토크를 하였다.

 

사실 그 자리에서 무척이나 신났던 것은 무채색, 아니라면 적당히 꾸민 것처럼 보이면서 눈에 너무 띄지 않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을 밖에서 계속 보다가, 그리고 나도 그렇게 있다가, 유채색의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방문객들의 옷이 형형색색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훨씬 바깥보다, 유채색의 존재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불협화음이 여기에서는 더없이 조화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그 자리에서 자유를 느꼈다. 바깥에서 날 옥죄는 압력들이 이 공간에서는 그래도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채색의 존재들과 함께하기에, 나도 이 자리에서는 다 같이 유별날 수 있는 느낌이었다. 비록 바깥에서는 무채색으로 존재해야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색깔을 빛낼 수 있었던 느낌이랄까.

 

그 날, 수많은 사람들은 데미안 허스트 전시와 BTS 광화문 공연을 보러 갔다. 그러나 난 그 자리에서 다른 친구와 이 자리에서 더 예술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지 않냐고 하였다. 예술은 균열에서 발생한다. 자본과 위신, 국격에 얽매이지 않는, 온갖 움직임이 꿈틀거리는 이 곳에서 예술은 벌어지고 있었다.

 

 

lineorange.jpg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 박규민

 

 

donation.png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