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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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친구사이X3670 GV" #2]
"종로3가의 게이를 담은 3670, 종로3가에서 게이들이 상영하다" 참가자 후기

누군가 제게 3670의 예고편을 보여줬을 때, ‘이 영화를 보면서 울고 말겠다는’ 계획이 바로 생겼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어미새가 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상대의 독립을 지켜보거나,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던 사람에게 더 이상 배울 게 없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좋게 보려 해도 멀어지거나, 미워 죽겠는데도 맴돌게 되는 그 기저에는 욕망이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도 시간이 지나서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남성과 남성의 성적 활력에서 출발했던 마음이 우리를 좌절하게 했지만, 자존심과 미련, 또 적당한 체면치레는 서로를 성장시키는 친구 사이로 남게 만들었을 테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너나 할 것 없이 겪으며 종로3가 게이/퀴어의 성장을 지속시켰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경험이 여전히 내 곁에 가까운 탓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쉽게 건조한 문장으로 옮기기 어려웠습니다. 3670을 관람하며 계획대로 울었고, 나를 닮은 타인의 삶을 곱씹고서야 진솔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랑을 줄 때 받아야 한다거나, 공감성 수치를 느낀다거나, 잘난 나의 친구가 함께할 때는 자랑스럽지만 나의 열패감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이 친구들의 리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 살 많은 형들에게서는 우리의 20대를 잘 담아내줘서 고맙다거나, 드디어 대중의 인정을 욕망하는 게이 영화를 벗어났다는 등의 말도 들렸습니다. 자신의 정동을 언어화하는 능력은 각자 다르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저 역시 철준이의 데뷔에 대해 곱씹었습니다. 많은 경우 이미 게이/퀴어로 정체화하고서 만난 우리들도, 정체화 이전에 놓여 있던 삶의 조건들을 말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준이가 탈북민 커뮤니티와 거리를 조절하고, 종로3가에서 게이 커뮤니티에 적응해 온 시간들. ‘데뷔의 시기’란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명료해지는 순간일 뿐만 아니라, 그 정체성 아래 아직 추스르지 못한 다른 삶의 조건들까지 포착되는 시기일 겁니다.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너희에 대해서 생각이 샘솟는 이 영화를 종로3가에서 꼭 보고 싶었습니다. 게이들이 가득한 종로의 극장을 상상했습니다.
친구사이 사무국장 종걸님은 개봉 전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먼저 3670을 보고 왔습니다. 저와 기용에게도 영화가 좋다고 말하며 영화의 앞으로를 관심 있게 살펴봤습니다. 그러던 중 종로3가에는 독립영화 상영관의 부재로 별도의 GV나 상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소중한 영화를 대관을 통해서라도 공동체 상영과 GV 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종로3가의 게이 관객들 기세를 보여준다면 상영하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라는 포부도 있었고요. 신속히 배급사 엣나인에 연락한 뒤, 호의적인 협력을 받으며 9월 12일의 행사 일정을 정했습니다. ‘종로3가의 게이를 담은 3670, 종로3가의 게이들이 상영하다’라는 문구로 8월 29일에 올린 행사 신청폼은 이틀 만에 160석이 매진되었고, 추가 신청 대기자만 110여 명에 달했으며 문의 연락이 끊이지 않아 다른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배급사를 통해 예매 폭주로 인한 상영관 변경이 필요하다는 말을 CGV피카디리 측에 전했지만, 더 큰 상영관이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소통 과정에서 피카디리도 3670 상영관을 두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고, 배급사 측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공동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진행은 망원댁TV와 라즈베리유니버스 클럽의 킴, 그리고 친구사이 대표 윤하가 맡았고, 박준호 감독과 조유현 배우, 김현목 배우가 참여했습니다. 평소에도 은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의 두 진행자가 인사를 나누는 동안 두 명의 배우가 친구사이 깃발을 흔들며 등장했습니다. 본 행사에서 배우들이 성소수자인권운동단체의 깃발을 흔드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라서인지 모두가 반쯤 놀란 듯한 환호를 보냈습니다. 진행자와 감독, 배우는 다정하게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조유현 배우는 이렇게 많은 남성들의 환호를 듣게 된 건 군대 이후로 처음인데 친근한 에너지를 받는다는 말로 웃음을 자아냈고, 김현목 배우는 덥고 습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나오는 끼스런 핑크색 기모 바지를 입고 와서는 GV 이후, 종로3가 6번 출구 앞 단체 사진과 친구사이 옥상 애프터파티가 기대된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박준호 감독의 말이었습니다. “탈북민 커뮤니티와 게이 커뮤니티에 비슷한 점이 있다. 그냥 우리끼리 모여서 잘 살면 안 되는지가 자주 딜레마가 되곤 한다”는 말이었고, 그럼에도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등장인물의 설정이 뭉클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덧붙여 커밍아웃을 항상 당사자의 과제로 간주하는 풍토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아니, 꼭 말해야 알아?”라는 발언으로 관객들을 웃게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장면이 ‘커밍아웃 없는 커밍아웃 장면’이었고, 적절한 문제의식과 명료한 돌파 방식에 쾌를 느꼈습니다. GV 종료 후, 배우와 감독은 종로3가 6번 출구 앞으로 이동해 친구사이 회원분들, 관객분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보기 좋은 사진을 위해 모두가 잠시 우산을 접고 포즈를 취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친구사이 사무실 옥상에서 진행한 애프터파티에는 특별한 손님 두 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용 활동가의 감사한 지인 디제이 미로님은 파티 타임라인에 맞춰 다채로운 음악을 선별해 틀어주셨습니다. 또 민영 활동가의 지인이자 영화 3670에서 술번개 방장으로 출연했던 나경호 배우님이 등장하자 애프터파티의 분위기는 금세 술번개 같은 느낌으로 바뀌었습니다. 두 손님의 등장은 이곳이 커뮤니티임을 체감하게 했습니다. 회원들에게는 익숙한 친구사이 옥상에서 영화 관계자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인상 깊어 보였고, 친구사이 사무실을 처음 방문한 분들은 “이렇게 종로3가의 중심에 친구사이가 있었다니”, “아니 인권단체라고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힙하잖아” 같은 감탄을 내비쳤습니다. 그사이 소문이 난 것인지 배급사 엣나인을 통해 변영주 감독, 이해영 감독, 박상영 작가, 김도훈 평론가 등이 잠시 들러도 되는지를 물어오기도 했습니다.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 속에서 조유현 배우는 영화의 술번개 장면을 재연하며, 이렇게 관객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에 애프터파티가 너무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김현목 배우는 자신이 술번개 연기를 하기 전에 오늘 이 자리를 먼저 보고 경험했더라면 더 생생한 연기를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말로 사람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종걸님과 저는 흥과 끼가 새는 술번개 연기보다, 서먹하고 긴장된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는 술번개 연기가 오히려 좋아 보였다고 귓속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점점 커지는 음악과 웃음소리, 거세지는 빗속에서 행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날, 옆 건물 옥상까지 걸쳐 설치된 방수천막을 철거하며 전날 밤을 떠올렸습니다. 종로3가에서 3670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 객석을 꽉 채운 게이/퀴어 관객을 보고 싶다는 마음, 또 일대를 터전으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단체의 공간과 사람들을 보이고 싶은 마음. 그러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였던 밤이었습니다. 한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가로세로 10미터 크기의 무거운 방수천막이 바람과 비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고, 곳곳의 물고임을 버티도록 깃발용 깃대가 지지대 역할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비가 거세질수록 천막의 고인 물을 찾아 해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사무국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일손에 좌절하고 있을 때, 말없이 도와주던 게이/퀴어 커뮤니티의 따뜻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밤은 한 편의 영화를 둘러싸고 지역 커뮤니티가 서로를 확인한 자리였습니다. 3670이 건넨 질문과 위로를 기억하며, 친구사이는 종로3가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상영하고 기록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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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상근활동가 / 민영

술번개에서 한 표도 받지 못한 어느 날. 다음부터는 너와 표 두 개 중 하나는 꼭 서로에게 줘서 0표 아가씨만은 면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더랬지. 그런데 아뿔싸. 오늘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두 명이 있네. 너에게 할당된 안전빵 표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보냈어. 네가 괜찮다고 할 줄 알았거든.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한 표라도 줬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너는 0표 아가씨를 피할 수 없었고, 그 밤이 내가 널 볼 수 있던 마지막 날이 되었어. 너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해.
영화 3670을 보면 우리의 어린 날들이 기억난다. 잔디밭에 누워 나무에 걸터앉은 구름을 바라보던 그런 푸른 날들은 아니고… 종로 포차에 앉아서 말 많았던 언니들과 일 많았던 친구들, 탈 많았던 동생들, 강렬함 속에서 지지고 또 지졌던 우리. 3670, 재밌었다. 그랬던 우리와 같아서 사랑스러웠고, 창피했다. 영화 말미에 조금 더 단단해진 철준이는 성장했지만, 단단해진 만큼 뜨겁고 아픈 감정은 옅어지기에 마음 한켠 짠함이 남았다.
뒷풀이 자리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처음 방문하신 잘생긴 분들과 맥주 한 잔 마시며 영화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너희들이 아주 많이 생각났다. 언제든지 돌아오시라. 우리의 3670인 7942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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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 길


고백합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매진 임박했다는 문자에 등 떠밀려 갔어요. 왜 이렇게 벌써부터 열광들일까? 얼마 남지 않은 인원 제한에 재빨리 신청했습니다.
종로 한복판 CGV에 모인다니 기분이 오묘했습니다. 일반 상업 영화관에 떼거지로 몰려드는 160명의 게이들의 모습이 진풍경이었습니다. 참 재밌는 영역탈환전 아닌가요. 아무튼, 개의치 않고 남자 얘기를 하며 은밀히 남자 훑기에 탐닉하는 게이들의 모습에 속으로 피식거리며 영화 시작을 기다렸습니다.
영화는 탈북자 게이가 종로를 중심으로 게이커뮤니티에 뿌리를 내리려는 고군분투를 다룹니다. 종로와 이태원의 익숙한 풍경들과, 그 세계 안에서 겪는 갖가지의 부침들. 무엇 하나 직접 겪어 보지 않은 게 없어서 저릿한 마음으로 관람을 마쳤습니다. GV까지 마친 후, 감독님과 배우분들까지 함께 애프터파티를 즐겼습니다. 막차를 타기 위해 먼저 일찍 일어났지만, 배우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 수다 삼매경인 모습, 박수와 함성 소리들까지, 친구들의 SNS를 보니 그 흥이 끝까지 죽지 않았나 봅니다. 사진과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졌습니다. 여운을 즐기다 보니, 행사 시작 전부터의 열광이 이해됐습니다. 건전한 연결감. 종로의 후미진 술집도, 이태원의 어수선한 클럽도, 상품 고르듯 사람을 고르는 어플 아닌 일상의 평범한 공간에서 건강한 공간과 시간을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감. 이게 바로 행사의 폭발적인 인기의 이유 아니었을까요? 오프라인 게이 커뮤니티에 나온지 8년 째지만, 언제나 몰래 숨어서 특정한 시간과 기간에만 모습을 드러내야만 하는 게 여전히 답답합니다. 영화와 뒤풀이나 재밌게 즐기고 오자 싶었지만 막상 소위 ‘일반’들의 공간에서 일면식도 없지만 같은 게이들과 점잖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만으로 더 깊은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과도한 억측이겠지만, 행사에 참여한 우리의 게이들이 실제로 그런 마음이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이런 건전한 만남이 더 확대되길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 힘써 주신 친구사이 관계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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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 모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GV에서 감독님께서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와, 그것을 곱씹으며 제가 손을 들어 질문할 기회를 가졌던 일이어서, 글로 남겨봅니다.
감독님이 영화를 제작하는 시기에 코로나가 겹쳐 있었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당시는 킹 클럽 방문자 중에 확진자가 있었고, 동선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이쪽 문화가 전염병 확산의 원인인 것처럼 마녀사냥과 같은 여론이 번져나갔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특유의 게이문화인 술번개, 단톡방, 이태원 클럽과 같은 우리의 모습들이 꼭 이야기 되어야할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그러나 동시에 이런 문화들을 어디까지, 어떤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흔히 ‘종태원’이라 불리며 우리가 향유해 온 이 특별한 일상은 그 자체로 아픈 기억을 동반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척 활기차고 소중합니다. 이런 문화가 단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만 유지된다면, 그 일상은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공론화하는 과정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감독님의 영화는 우리의 다른 모습을 대중들이 마주할 때 좀 더 수긍할 수 있도록, 섬세하고 세심하게 장면들을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들과 함께 좋은 영화를 제작해 주셔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게 되는 벅찬 감정들을, 배우와 감독님이 있는 자리에서 함께 바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영화 후기를 나누기 위해 공감해줄 이쪽 사람들을 찾아 배회하는 수고를 덜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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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 용

영화 3670을 개봉일이었던 9월 3일에 처음 보았다. 사는 곳과 그나마 가까운 경기도 한 중소도시에서 상영관을 찾을 수 있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보았다. 육안으로는 충분히 보았지만 미디어를 통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종로 뒷골목의 삶이 스크린에 넓게 펼쳐지는 것이 생소했고, 당황스러웠고, 이내 개운했다. 이쪽 생활의 면모가 세밀하게 담겨서 몰입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몇 가지 장면에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만 그곳에서조차 나는, 내 바로 앞줄에 나란히 앉은 4인 가족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들은 이게 무슨 영화인 줄 알고 온 걸까? 가족끼리 간만에 영화나 볼까, 하며 시간이 맞는 영화를 대충 고른 게 아닐까? 호모포빅 가족이 어쩌다 찾아온 것이라면 첫 장면부터 힘들었을텐데(궁금하시면 영화 꼭 보세요!), 그래도 버티고 앉아있었으니 프렌들리하다고 봐야 하나?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상영관 불이 켜지면 먼저 후다닥 나가야 하나, 하고 잠시 생각했다. 여느 퀴어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긴장감이 되풀이되었다.
친구사이와 함께 피카디리에서 두 번째로 본 3670은 훨씬 무장해제된 상태로 볼 수 있었다. 극장 가득히 사람이 있었음에도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적나라한 잭디 메시지가 나온 장면을 보며 소리를 내어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고, 잘생긴 남자가 나왔을 때 애써 숨을 참을 필요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음에도 마음을 놓고 영화관을 점유할 수 있었다. 친구사이가 쳐준 울타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GV에서는 배우들이 친구사이 깃발을 들고 등장하는 팬서비스를 해주질 않나.
GV에서 직접 감독과 배우들을 마주하니 이 영화가 내 현실과 훨씬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영화 내내 흥미롭게 관찰했던 것은, 각 배우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신이 맡은 배역의 언어를 소화하는지였다. 이북 언어든 사투리든, 하나의 살아 있는 언어 체계를 원래 쓰지 않던 배우가 오롯이 소화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찐 방언 구사자들이 이른바 ’미디어 사투리‘에 대해서 신랄하게 코멘트하는 비평 영상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이 거리감을 시청자들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이의 언어도 외국어 같다고, 혹은 사투리 같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심지어 내가 그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검열하고 평가하며, 이쪽 친구들과 설끼네 배운 끼네 어쩌네 하며 평가를 주고받아왔으니까. 어디 내보일 말이 아님에도 이렇게 평가할진대, 헤테로일지 뭐일지 알 수 없는 배우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잣대로 보았을 것이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으나, 배우들은 자신의 색을 많이 탈색하지 않고도 무리 없이 게이어를 소화해 냈다고 생각한다. GV에서 감독님의 말을 듣고 그 의문이 약간은 풀렸다. ”배우한테서 조금이라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헤남 느낌이 나면, 다 짤랐어요. 그리고 남은 게 지금 이 배우들이었어요.“
친구사이 사무실 루프탑와 술집에서 새벽까지 이어졌던 애프터파티도 매우 즐거웠다. 커뮤니티가 넓게 천막을 쳤을 때 무엇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행사였다. 실제로 루프탑에 당일 비가 많이 와 천막을 치고 술을 마셨다. 친구사이 상근자들의 수고로 루프탑이라는 공간을 포기하지 않고도 빗소리를 들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끔씩 천막에 고이는 물을 주기적으로 걷어내며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보냈는데, 상근자들뿐 아니라 친구사이 회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그 일을 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발휘하고 있는 공동체성을 잘 보여주었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3670이라는 영화, 영화가 모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다이나믹은 그날만 느낄 수 있었던 고유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사회가 포용적으로 바뀌어 퀴어 영화를 여느 중소도시의 상영관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다시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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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 플로우

<당산 양푼이동태탕 대충 6-7시> : 언제 처음 종로에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데뷔곡이 뭔지도 모른다. 이쪽 친구를 이십대 중반이나 되서야 사귀어서 그런지 괜스레 처음이 아닌 척을 하고 다녔다. 트위터에서 본 곳들을 보고 지나칠때마다 아는 척을 하며 다녔다. 그래서일까 처음에 대한 기억이 없다. 늦게 나온 게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소위 말하는 설스러운 게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설스러운건 스무살이 그래야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십대 중반은 농염함과 설스러움. 그 사이 미묘하고 균형이 맞는 적절한 끼를 내뿜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스럽지 않으려고 할 때 가장 설스럽다는 걸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3670>을 보기전에 트위터에서 몇몇 감상평을 보게됐다. 이정도까지 우리네 이야기가 나와도 될까 하는 얘기가 반, 드디어 섹시러브에서 벗어난 진짜 끼를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반이었다. 이제 서른 중반이 돼서 머리가 더 커진 탓인지 장면마다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 장면은 꽤나 재현이 잘 됐네’ ‘엥? 저것도 설끼아닌가’ 이러는 걸 보니 아직도 난 설스럽지 않으려고 할 때 가장 설스럽다는 걸 잘 모르는 거 같다.
영화를 보며 철준에게도 영준에게도 공감을 했는데(아쉽게도 현택에게는 공감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내가 종로에 처음 나가던 시기를 떠올리게 됐다. (지금도) 설스러운 내 시절을 떠올리며 말이다. 설스럽다는 것은 참 묘한게, 부족함과 동시에 어떤 간절함, 주류에 끼고 싶음 그런 것들이 추가되어서 그야말로 안타까움과 동시에 조롱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친한 친구는 내가 설스럽게 웃기려고 할때 ‘언니, 지금 설스러워’ 라고 충고를 하고 내 얼굴은 빨개진다.
영화에 조금 더 집중하자면, 나는 영준을 보며 공감성 수치를 많이 느꼈다. ‘저거 다 티 나는데…’ ‘아, 제발. 저러지 말지…’ 내가 속한 모임에서 분명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다들 편하게 지내는데 한번씩 드는 마음들. 얘네들도 나를 친구로 생각할까? 내가 없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난 편하게 3671 다음에 3672를 칠 수 있을까?
“오늘 동찌 ㄱㄱ?”
월요일 오후 3시쯤이 되면 4명이 있는 한 카톡방에 누군가가 말한다. 다들 주말 동안 그렇게 마셔놓고 또 월요일이 되면 좀이 쑤시나보다. 그렇게 친구들과 난 언제, 어디서 보자는 얘기도 없이 대충 6-7시에 당산 양푼이동태탕 앞에서 모인다. 3672를 말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종로3가 6번출구 7시가 아닌 당산 양푼이동태탕 대충 6-7시가 있다. 그게 대충 내 종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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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게이모임 GARCH / 김정민

영준이 손에 이끌려 종로에 처음 가던 철준이처럼. 또 새로운 탈북민 친구를 종로로 데려가던 철준이처럼. 제 이십대도 게이친구들과 손잡고 손잡는 연쇄의 과정을 거쳐 종로가 고향이 되기까지의 시간이었습니다. 3670를 보며 그 시간을 따뜻하게 회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종로에서 3670를 볼 수 있게 노력해준 친구사이에 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친구사이가 마련해준 옥상파티가 종로의 따뜻함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듭니다. 소중한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준아, 철준아, 행복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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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공계게이연구자모임 기묘한연구소 / 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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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11월
[185호][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52 : 제10호 문집 발간 기념 낭독회 및 총회
[소모임] 책읽당 읽은티 #52 : 제10호 문집 발간 기념 낭독회 및 총회 책읽당은 11월 한달 간 낭독회와 총회라는 두 가지 큰 행사를 치렀습니다. 11월 1일에는 책...
기간 : 11월
[185호][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52 : 정기공연, 그리고 그 이후
[소모임] 이달의 지보이스 #52 : 정기공연, 그리고 그 이후 1. 2025 지보이스 정기공연 : Why We Sing 2025 지보이스 정기공연 <Why We Sing>이 많은 분들의 성원...
기간 : 11월
[185호][기고] 온 시간대로 비추는 삶 — 인구주택총조사, 동성 배우자 관계의 통계적 인정을 지켜보며
2025년《아트인컬처》12월호에 「‘모두’의 결혼, 우리는 부부다 — 2025 인구주택총조사 동성 부부 입력 허용, 미술계의 변화는?」라는 제목으...
기간 : 11월
친구사이 2025년 10월 재정보고 *10월 수입 후원금 정기/후원회비: 12,983,361 일시후원: 1,738,614 사업 지보이스: 3,550,000 재회의밤: 810,000 웰컴데이: 1,2...
기간 : 11월
친구사이 2025년 10월 후원보고 2025년 10월 정기후원: 655명 2025년 10월 신규가입: 15명 10월의 신규 정기 후원회원 강*구, 김*준, 김*훈, 김*준, 김*환, 박*...
기간 : 11월
[185호][알림] 2026년 대표 및 감사 선출 결과 공고
2026년 대표 및 감사 선출 결과 공고 일시: 2025년 11월 29일 오후 7시~8시 30분 장소: 서울 종로3가 낙원상가 5층 엔피오피아홀 (1) 2026년 감사 선거 (감사 2...
기간 : 11월
[185호][알림] 2025 친구사이 HIV/AIDS 문화의 밤 (12.5.)
2025 친구사이 HIV/AIDS 문화의 밤 친구사이는 매년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자체적인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HIV감염인의 인권을 상징하는 빨강...
기간 : 11월
[184호][이달의 사진] 우리가 잘 노는 게 인권운동
2025년 11월 1일 토요일, 이태원 참사 이후 3년만의 할로윈이 돌아왔다. 참사 현장에는 추모의 뜻을 담은 포스트잇과 꽃들이 놓였다. 이태원로에는 종종 행인들...
기간 : 10월
10월 친구사이 : 웰컴!! 추석 명절과 개천절, 한글날 등 공휴일로 10일에 가까운 연휴로 시작했던 10월이었습니다. 친구사이는 ‘재회의밤’으로 그 1...
기간 : 10월
[184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7]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차해영·전후석 패널 후기
[184호] [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7]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 차해영·전후석 패널 후기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리 대단하...
기간 : 10월
[184호][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8]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참가자 후기
[184호] [커버스토리 "RUN/OUT 프로젝트" #8] 커밍아웃 성소수자 정치인 가능성 찾기 : 참가자 후기 친구사이는 성소수자 정치의 가능성을 찾아 나...
기간 :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