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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호][기고] 광장의 기준과 인사(人事)
2025-07-31 오후 16:23:25
3024
기간 7월 

[기고]

광장의 기준과 인사(人事)

 

 

나에게 다정해줘/ 안 그럼 죽어버릴 거야/ 아무도 구할 수 없음/ 움직일 수 없음/ 뱃속에서 마취된 몸에 팔다리가 생김/ 죽겠다던 사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 아무도 구할 수 없음/ 사람은 계속 이어지고 있음 - 손미, 「이어지는 사람」, 우리가 이어져 있다고 믿어, 문학동네, 2024.

 

 

1. 차별과 무권리가 계속되는 노동

 

날이 무척이나 덥지요. 5분도 밖에 있고 싶지 않은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뙤약볕을 견디며 누군가는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집니다. 지난해 국회는 폭염 아래 일하는 옥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33도 이상의 폭염 시 2시간마다 20분의 휴식’을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위원 8명과 민간위원 17명으로 구성된 규제개혁위원회는,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는 이 최소한의 안전규칙마저 좌초시켰습니다. 결국 올해(5.15~7.8)에도 온열질환으로 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스물세 살의 이주노동자도 포함되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규제개혁위원회는 원안 그대로의 안전규칙 개정을 통과시켰습니다. 7월 17일부터 폭염 휴식권이 전면 시행되었는데요. 하지만, 택배와 라이더(배달) 등 특수고용과 플랫폼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안전규칙에 따라 보호받지 못합니다. 법으로부터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죠.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도, 아무리 법이 권리를 보장한들, 현실적으로 이를 요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한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일하던 현장에서는, 혹서기로 내국인들은 조기 퇴근한 반면, 이주노동자들만 정상근무를 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인종과 국적이 차별을 강화하고, 자본은 취약한 존재를 대상으로 집요하게 착취합니다. 그러므로 폭염과 같은 재난으로부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고용보험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세간에는 새 정부에게 기대하는 의제로 ‘노동’을 꼽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첫 노동부 장관으로 민주노총 출신의 철도노동자를 임명했고, 산재사망이 계속 발생하는 SPC삼립 공장에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대통령 방문 이틀 만에, SPC는 8시간 초과 야근 폐지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자본의 기만적인 기민(機敏)함에 허탈함이 밀려오지만, 건설노동자를 건폭(건설폭력배)으로 낙인하고, 화물연대 노동자의 파업을 ‘북핵 위협과 같다’라고 매도했던 윤석열과는 분명 다른 행보입니다.

 

하지만 이를 정부의 ‘노동존중’ 행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정부의 책임이 하나의 사업장을 해결하는 데 한정되고, 더하여 ‘대통령의 엄포’로 시정되는 일은 오히려 노동정책에 대한 왜곡을 불러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국민의 임금협상이라 불리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 10,320원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이는 2024년 대비 2.9% 인상한 것에 불과하고,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로는 그야말로 ‘최저’입니다. 윤석열 정부조차 첫해에는 5.0%를 인상했으니까요. 2024년 물가상승률 2.7%에 비교해 보면,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결정은 사실상 동결 나아가 삭감에 가깝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페이스북.jpg

 

▲ 7월 28일 노조법 개정안 환노위 통과를 앞두고, 노조법 개정안 후퇴 저지를 위해 양대노총과 시민사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사진은 '전국금속노동조합'.

 

 

새 정부의 ‘노동존중’에 대한 척도는 바로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에 있습니다. 산업의 변화와 함께 노동의 형태도 변화하였습니다. 바로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 외주·하청에 기반을 둔 노동이 생겨난 것이지요. 이들이 겪는 고용불안은, 곧 노동자의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상태에 놓이게 합니다. 그동안 노조법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를 보장하기는커녕, 노동자를 법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거나 노동권 행사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데 악용되었습니다. 국제노동기구 ILO에서도 한국의 노조법이 국제협약의 ‘제87호(결의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와,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 원칙 적용)’에 부합하지 않다며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스탠다드’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노동의 유연화는 여·야 구분없이 주창하지만, 정작 세계적 기준인 노동권 보장 앞에서는 여·야가 한마음으로 침묵합니다.

 

비정규직 제도 도입과 정리해고가 확산되던 2003년부터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노조법 개정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3년, 민주당은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노조법 개정안은 끝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이 다시금 사회개혁 과제로 등장하였습니다.

 

문제는, 민주당이 제출한 기존의 노조법 개정안도 한계가 많았던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노조법 2조 1항인 노동자 정의 확대 조항이 빠지면서 여전히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를 ‘노동자추정조항’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내용이 빠진 것입니다. 또한, 노조법 개정의 별칭인 ‘노란봉투법’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법의 핵심은 기업의 손해배상가압류(손배가압류)로부터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보장하는 일이었습니다. 파업했다는 이유로 때려진 수십억의 손배가압류는 노조를 무력화하고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통을 안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민주당의 개정안에는 손배가압류 금지가 아니라 ‘제한’으로 수정되었을 뿐입니다.

 

올해 7월, 정부 주도 아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이 논의되었습니다. 노동쟁의의 범위를 축소하고 개정안 시행을 1년 이상 유예하는 등, 이전보다 후퇴한 내용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양대노총과 시민들은 노조법 후퇴시도를 저지하고자 국회 앞에서 농성과 집회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정부의 수정안을 철회시켰고, 노조법 개정안은 오는 8월 4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 통과예정인 노조법 개정안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 노동자추정조항과 손해배상 금지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차별과 무권리 상태의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더욱 치열한 싸움이 필요한 것이지요.

 

 

2. 차별금지법을 향한 반복된 갑질

 

새 정부의 출발에서도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망언이 이어졌습니다. 퀴어-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이재명 정부에게 광장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지만, 이에 대해 대통령은 묵묵부답입니다. 오히려 “동성애는 모든 인간이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라고 말했던 국무총리 후보자 김민석은 지난 발언에 대한 사과와 철회 없이 버젓이 국무총리에 임명되었습니다. 더욱 해괴망측한 일은,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참석했던 여야 국회의원 13명(민주당 7명, 국민의힘 5명, 조국혁신당 1명) 모두, 김민석 후보자의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선동을 바로잡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7월 3일, 새 정부 취임 30일을 맞이하여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본인이 밝힌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사회적 대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예정인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가볍게 웃으며 “안 할 걸 그랬어요”라고 답합니다. 이후, 일에는 “경중선후”가 있다며 차별금지법보다 “민생과 경제가 더 시급하다”라고 답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치하더라도,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온 “사회적 대화”조차 나서겠다고 확언하지 않았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마다 민주당은, ‘사회적 합의’, ‘사회적 대화’를 내세우며 법 제정을 지연시켰습니다. 무려 18년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지금도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핑계는, 정확히는 국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를 드러내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미 2021년 시민 10만 명 이상이 차별금지법 제정 국회 청원에 참여했고, 88.5%의 국민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존재합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본인들이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의지 없음’은 바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반복되었습니다. 강선우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전부터 보좌관을 향한 갑질과 도덕성 문제로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강선우 후보자는 차별금지법과 비동의강간죄, 생활동반자법 등에 대해 여가부 장관으로서 제도 마련에 책임지기보다, ‘나중으로 미뤄버리는’ 보수적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개인의 자질에서부터 정치적 책임까지, 소외와 차별에 대한 감각이 누구보다도 필요한 여가부 장관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동안 민주당 정부에서 여가부 장관 임명이 문제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여가부 장관 내정을 둘러싼 논란은, 이재명 정부의 소수자 인권과 젠더차별에 대한 해결 의지를 확인하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여론이 달라지길 기대하며 강선우 후보자 임명 기조를 유지했던 정부의 태도에는, 여가부 장관 기준이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보장과 차별 해소에 있기보다도 ‘여론’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모순을 확인합니다. 정부의 기준이 된 이 ‘여론’은, 광장의 투쟁을 거치면서 어느 때보다도 차별에 대한 예민함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광장정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범위를 결정하는 권력에 맞섰고, 이번 여가부 장관 낙마 과정에서 소수자 인권과 젠더차별에 대한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하여 여성단체 공동성명.jpg

 

▲ 92개 여성단체는 강선우 여가부 장관 후보자 임명 철회를 촉구하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사진은 '한국여성의전화'.  

 

 

새 정부 출범 50일이 지납니다. 대통령의 제스처 하나하나가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때입니다. 저는 그 지지율을 보며, 오히려 ‘내란 이후 다른 세상’을 바라는 민중의 열망으로 읽고 싶습니다. 한편, 광장의 기준에 미달한 인사들을 낙마시켰던 시간에서도 도도히 흐르고 있는 광장정치의 의지를 읽고 싶습니다. 우리의 광장은 내란극복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더욱 나은 민주주의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각오야말로 광장정치 본연의 이유였습니다. 사회대개혁에서부터 체제전환에 이르기까지, 광장정치는 대통령 한 사람을 바꾸는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새 정부가 일정 정도 실현할 개혁에 박수칠 준비를 하기보다, 그 개혁에 자리 잡은 보수성을 고집스럽게 지적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 일이,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권력에 대한 기대가 아닌 ‘한계’를 읽는 작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또는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주리라는 기대로부터 거리를 둬야 합니다. 새 정부의 방향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다르다는 ‘한계’를 분명히 할 때, 그 한계를 딛는 싸움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때서야 미래를 위한 싸움을 함께할 자신과 동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를 목청 터지게 불렀던 지난 겨울 광장을 떠올려봅니다. 너무 추웠지만, 여전히 따뜻함을 남겨주는 광장입니다. 그래서 빼앗기고 싶지 않고, 권력이 절대 빼앗을 수도 없는 광장을 끊임없이 상상해봅니다.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아, 동료들의 안부를 묻지 못했습니다.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재난의 시대, 어디에 있든 동료들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이재명, 차별금지법 또 미루기 “민생·경제 더 시급”>, 《여성신문》, 2025. 7. 3.

<‘폭염’ 한국인 낮 1시 퇴근... 이주노동자만 4시까지 일 시키다 사망>, 《한겨레》, 2025. 7. 9.

<“윤석열 정부 첫해에도 5%는 올렸다”…노동계, 이재명 정부 첫 최저임금 중재안에 반발>, 《한국일보》, 2025. 7. 9.

<[성명] 폭염에 이미 노동자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뒤늦은 규제개혁위원회 폭염 규칙 통과에 환영만 할 수는 없다>, 《민주노총》, 2025. 7. 11.

<차별금지법 리부트>, 《한겨레》, 2025. 7. 17.

<[입장] “하라면 하지 말이 많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여성가족부 장관 자격없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25. 7. 21.

<“동성애 혐오가 여가부 장관 역량?”···강선우 임명 기류에 여성계 반발 확산>, 《경향신문》, 2025. 7. 21.

<폭염 속 노동자 사망, 뒤늦게 통과된 안전보건규칙의 의미>, 《오마이뉴스》, 2025. 7. 22.

<갑질에 가려진 ‘퇴행’… “강선우는 부적격”을 외치는 또 다른 이유>, 《한겨레》, 2025. 7. 22.

<총리·장관·수석·인권위원 후보자들까지 ‘성소수자 혐오 논란’···“차별금지법 있었다면”>, 《경향신문》, 2025. 7. 24.

<여성단체들은 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할까?>, 《여성신문》, 2025. 7. 25.

<투쟁으로 쟁취한 노조법 2.3조 개정, 한계를 넘어 더 나아가자.>, 《노조법2.3조 개정 운동본부》, 2025.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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