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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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동성혼의 현장' #1]
퀴어 웨딩의 특이점 : 한가람 웨딩플래너 인터뷰
1. <퀴어 커플을 위한 결혼식의 모든 것 : 퀴어 웨딩 A - Z> 2. 퀴어 웨딩 플래너가 경험하는 성소수자 혐오 3. 퀴어 웨딩과 헤테로 웨딩의 차이 4. 야외, 스몰, 프라이빗, 파티 웨딩 5. 결혼식 관습에 드러나는 성별이분법과 남·여 젠더 위계 6. 퀴어 웨딩의 성별 비순응 7. 이경-하나 커플 결혼식과 퀴어 웨딩 플래닝 8. 퀴어 웨딩에 얽힌 아우팅 방지와 커밍아웃 경험 9. 퀴어의 다양한 결혼식, 가족이 아닌 당사자간의 결합 10.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 중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의 경향 11. 동성혼의 욕망, 경사와 세레모니에 대한 욕구 12. 성소수자 외 사회적 소수자의 결혼에 대한 상상과 실천 13. 대중운동으로서 동성혼과 서비스 산업으로서 동성혼 14. 퀴어에 이르러 비로소 새로워지는 결혼의 속살 15. 서비스 노동의 관점에서 본 웨딩 산업 16. 퀴어 소비자의 낯섦과 퀴어 노동자의 강점 17. 결혼의 퀴어링, 퀴어 대중과 퀴어 소비자의 만남 |
▲ 한가람 웨딩플래너. 2024.3.14. 친구사이 교태전.
1. <퀴어 커플을 위한 결혼식의 모든 것 : 퀴어 웨딩 A - Z>
터울 : 반갑습니다. 친구사이 소식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인터뷰는 퀴어 웨딩에 관한 내용으로 준비했습니다. 성소수자 웨딩, 성소수자와 결혼의 의외의 만남일 수도 있고 예정된 만남일 수도 있는 이 이슈를 가지고, 거기에 최전선에 서 계시는 분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성소수자 친화적인,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수행하는 웨딩을 계획하고 이끌어나가는 웨딩 플래너 분을 모셨습니다. 간단히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가람 : 저는 친구사이 회원명은 핫가람이라고 하고요. 웨딩 플래너로 일하고 있는 한가람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웨딩플래너협회 소속으로 있고, 프라이드웨딩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소수자에게 열려있는, 배리어프리한 웨딩 문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터울 : 4월 초에 텀블벅이 마무리되는, 성소수자 웨딩, 퀴어 웨딩 관련해서 책이 나올 거라고 알고 있는데요. 거기에 글을 실어주셨어요.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한가람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라는 단체에서 제안을 주신 거고요. 센터에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실용서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데, 제가 그 두 번째 시리즈의 저자로 참여하게 되었고요. 책 제목은 <퀴어 커플을 위한 결혼식의 모든 것 : 퀴어 웨딩 A - Z>입니다. 큐라이프 총서의 첫 번째 시리즈는 장기 커플을 위한 법률 관련된 책으로 변호사분이 쓰셨고, 두 번째 시리즈는 말씀드렸듯 제가 참여한 성소수자들의 결혼과 관련된 실용서이고, 다음으로는 성소수자 의료와 관련한 이슈, 이렇게 시리즈로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요즘에 트위터든 어디든 성소수자 결혼식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 화두로 제가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집필 기간은 1년 반 정도 걸렸는데, 책 쓰는 게 처음이다 보니까 글이 지연된 부분이 있어서, 오랫동안 기다리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드디어 오는 4월 초에 책이 출간되어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터울 : 네, 많이들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한가람, 『퀴어 웨딩 A - Z』, 큐라이프센터, 2024(근간).
2. 퀴어 웨딩 플래너가 경험하는 성소수자 혐오
터울 : 그러면 인터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서요. 퀴어를 포함한 웨딩 플래너 사업에 몸담고 계시는데요. 언제부터 웨딩 플래너를 꿈꾸셨고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가람 : 사실 웨딩 플래너를 꿈꾼 적은 한 번도 없었고요. 어쩌다 보니까 이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고. (웃음) 웨딩 플래너로 일한 지는, 2021년 5월부터 제대로 일을 하게 되었고요. 제가 군대를 굉장히 늦게 갔다 왔는데, 군대를 전역하고 새로운 일을 알아보던 중에 웨딩 산업에 관심이 생겨서, 바로 교육을 신청했고 교육이 끝나자마자 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웨딩플래너협회는 인터넷으로 '웨딩 플래너'를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교육 단체였어요. 여기서 일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한국웨딩플래너협회(한플)의 경우 다른 회사들처럼 회사에서 강요하는 어떤 수익·지향·시스템에 구애받지 않고, 좀 느슨한 프리랜서들의 조직 같은 느낌이다 보니까, 여기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성소수자, 장애인, 이런 사회적 소수자들의 웨딩을 제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풀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한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터울 : 그러면 일을 하기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실제로 그런 다양성에 대한 욕구들이 잘 관철된 편이세요?
한가람 : 저는 입사를 하고 교육이 끝나고 바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담당 이사님한테 전 사실 성소수자 웨딩을 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라고 얘기드렸는데요. 담당 이사님께서 별로 놀라지 않으시고 아, 되게 멋있는 일 한다, 나도 주변에 그런 관련 사례를 했던 플래너들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터울 : 사례가 있었군요, 이전에도.
한가람 : 네, 예전에도 한두 건씩 주변에서 했다는 사례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런 모토로 업계에 바로 들어왔다고 하는 사람을 보니까 너무 신기하고 반갑다, 혹시 궁금한 게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 열심히 도와주겠다, 라고 말씀하셔서 되게 신기했던? 그리고 이미 웨딩 업계에 앞선 성소수자 결혼의 사례가 있었다는 데에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터울 : 이전에 사례가 있기는 해도, 성소수자 웨딩을 프라이드 웨딩이라는 브랜딩으로 내세워 공개적으로 사업을 한 경우는 제가 알기로 한국 최초이신 것 같거든요. 혹시 웨딩 플래닝을 의뢰하시는 전체 고객들 중에 성소수자분들이 몇 퍼센트 되는지가 궁금해요.
한가람 : 우선 제가 진행하는 전체 고객 중 성소수자 커플의 비율은 약 5분의 1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고요.
터울 : 그러면 이성애자 의뢰인들 중에, 이 프라이드 웨딩은 성소수자 웨딩을 함께 한다고 아는 경우가 많으세요?
한가람 : 검색해서 아시는 경우가 많아요. '한가람 플래너'를 검색했을 때 일반적으로 웨딩 카페나 웨딩 게시 블로그나 이런 데 올라오는 일반적인 글들 외에 기사가 많이 뜨거든요. "성소수자 예비부부, 결혼준비 겁먹지 마세요" 같은 한겨레 기사라든가, 닷페이스 등의 매체 기사라든가, 이런 게 많이 떠서, 플래너님 되게 멋진 일 하시네요, 이렇게 연락 주셔서 반갑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오히려 이런 걸 통해서, 제 친구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는데 너무 반가워요, 너무 더 좋아요,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또 제 고객 중에 예술 관련, 글 쓰는 분이 계신데, 그분께서 플래너님 너무 멋있으시다고, 사실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인데 전에 썼던 책 중에 BL 소설 글쓰기 관련 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혹시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으면 소개시켜주겠다고 하신 분도 있었어요.
터울 : 언뜻 생각하기에는 혹시나 이성애자 고객들 중에 퀴어 묻었다고 계약을 안 한다든지, 이런 데인줄 몰랐다든지, 이런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보다는 잘 받아들이는 이성애자분들이 많으셨다는 얘기인 거죠?
한가람 : 네, 애초에 그런 걸 좀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데 대한 혐오가 적었고, 사람들도 되게 잘 받아주시고, 걱정이나 클레임보다는 응원이나 더 좋다는 반응이 많아서, 저 스스로도 좀 놀랐던 부분이 있었어요.
터울 : 의뢰인이나 클라이언트의 경우를 얘기해 주셨는데, 웨딩 플래닝을 하다 보면 제휴 업체, 파트너 업체도 만나실 테고, 기존의 결혼 관련 업체들과도 당연히 인맥을 맺고 일을 해나가실 텐데요. 그런 경우에 물론 환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혐오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사건들이 있었는지 좀 궁금해요.
한가람 : 웨딩 플래너라는 것은 중간에서 중개인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들 대신에 업체를 예약하고 체크하고 해야 될 사항들이 되게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업체로부터 혐오 발언이나, 이건 좀 안 될 것 같다는 거부를 들었을 때도, 저희가 그걸 대신 받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례들이 좀 있을 것 같은데요.
먼저 말씀드리면, 웨딩 업체에서 거부하는 사례는 실제로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그 중에 좀 있다고 하면, 웨딩홀의 경우에는 거부하시거나, 아니면 혐오인지 모르고 하는 혐오 발언들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그런 것도 저희한테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아요. 기본적으로 웨딩 플래너는 자신들에게 고객들을 소개해 주는, 웨딩 업체의 마케팅을 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파트너로서 관계가 있어서 그리 강한 말씀을 하지는 않으시지만,
실제로 웨딩몰에서 했던 멘트들을 몇 개 알려드리면, 어떤 웨딩홀의 경우에는 자기들 주변에 해외 대사관 분들이나 외국에서 유명한 인사분들이 많고, 그런 관련 행사를 많이 해서 실제로 퀴어 커플의 예식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어떤 웨딩홀의 경우에는, 예전에 한 번 성소수자 웨딩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위쪽 분들께서 더는 안 받는다, 하면 안 된다고 하셔서 거부당한 사례도 있었고요. 그리고 처음에는 문제될 것 없을 것 같은데요, 한 번 더 확인해 볼게요, 하시고 확인해 보더니 저희 대표님께서 그런 건 좀 어렵다고 하시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나중에 다시 연락 온 적도 있어요. 특히 웨딩홀 쪽에서 이런 일이 잦은 편이고요.
그리고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업체 등 다른 업체들에서는, 어느 스튜디오에서 예전에 퀴어 커플을 진행했던 사례가 있었는데, 그 뒤로 거기 대표가 게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그런 게 약간 부담스러워서 지금은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다, 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터울 : 웨딩홀은 주로 대형 업체잖아요. 그런 곳에서 뭔가 윗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게 감지될 때 성사가 안되는 경우들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체들에서는 좀더 퀴어에 호의적인 부분이 있을까요?
한가람 : 기본적으로 스몰 웨딩의 경우에, 코로나 거리두기 기간 동안에 굉장히 시장이 크게 형성된 적이 있었는데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후로는 이 스몰 웨딩에 대한 수요가 옛날보다 많이 적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고객을 갈구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스몰 웨딩 업체의 경우에는 퀴어 웨딩 고객을 제가 데려갔을 때, 자기들이 해본 적은 없지만 너무 좋다고, 이런 고객들이 있는지 몰랐다고, 반색을 표하면서 좋아하시는 분들을 많이 봐서, 이쪽이 새로운 시장이겠구나, 그런 가능성을 오히려 본 것 같았습니다.
터울 : 네, 참 성소수자 결혼 얘기하면서 먼저 혐오 얘기를 꺼내게 되는 게 우리의 슬픈 현실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중요한 얘기 잘 들어봤고요.
"퀴어 커플의 결혼식은 상담도 훨씬 길고, 계약 후에도 업체와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하객 수가 많지 않아 큰 웨딩홀을 대관하지 않기에 거래 금액도 상대적으로 적다. 당분간은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가람씨는 생각한다. '저도 퀴어 웨딩에만 전념하고 싶죠. 하지만 이것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어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해요.'" |
3. 퀴어 웨딩과 헤테로 웨딩의 차이
터울 : 주제를 좀 바꿔서, 이성애자 결혼과 성소수자 결혼이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가 좀 궁금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보통 이성애자 결혼의 전범들이잖아요, 드라마든지, 우리가 가본 예식장의 경우라든지. 성소수자 결혼을 본 경험은 많이 없기도 하고 실제로 사례도 많지 않기도 하고요. 그래서 뭔가 성소수자 결혼의 경우 챙겨야 될 게 되게 많겠다는 생각이 그냥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도 좀 들거든요. 실제로 웨딩 플래너를 하시면서 실무적으로 접근하셨을 때는 어떠실지 궁금해요.
한가람 : 우선 퀴어 웨딩과 헤테로 웨딩이 뭐가 다른가라고 했을 때, 정말 크게 보면은 별다를 거 없어요, 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하나하나 다른 게 너무도 많기 때문에, 챙겨야 될 걸 한두 가지로 꼽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우선 상담부터 얘기하면, 퀴어 웨딩 고객의 경우에는 결혼에 대한 정보량 자체가 굉장히 적으세요. 헤테로 고객들은 결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주변 지인분들 중에 결혼을 한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주변에 물어보고 플래너도 찾고 업체들도 찾고 해서 정보를 듣고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오시는 경우가 많은데, 퀴어 웨딩 고객들은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인터넷 검색해도 잘 안 나오고, 심지어 커밍아웃한 친구라 하더라도 그분들 중에 퀴어 웨딩을 한 경우도 많지 않아서, 물어보면 모른다는 답변만 듣게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상담 오실 때 웨딩 관련해 가지고 있는 지식 자체가 거의 없으세요. 그래서 처음부터 모든 걸 하나하나 설명해드려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렇게 아는 게 없이 오시는 데다가, 퀴어 웨딩 고객의 경우에는 결혼에 대한 상상력이나 욕망이 되게 구체적인 경우가 많으세요. 그래서 "제가 옛날부터 <섹스 앤 더 시티>를 봐서 야외 웨딩을 꿈꿨어요, 저는 이런 결혼을 하고 싶어요", 이렇게 가져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정보량이 너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욕구를 가져오시기 때문에, 실제로 생각하시는 예산이랑 고객이 생각하는 방향이 너무 안 맞아서 결국 좌절하시고, 저 조금만 돈 모아서 올게요, 하는 분들도 되게 많은 편이고요.
그밖에도 구체적으로 다른 점들을 하나하나 꼽자면, 퀴어 웨딩 플래닝을 할 때 저희는 의상부터 달리 챙겨야 되고, 거기에 결부되는 두 분의 성향부터 챙겨야 돼요. 예를 들어 게이 커플의 경우, 외적으로는 남성 패싱이 명확히 되고, 두 분 다 정장을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별로 챙겨야 될 게 없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촬영 때, 또는 식에서 부케를 몇 개 들 건지, 어떤 분이 리드하는 역할을 할 건지, 이런 성향 차이에 따라 그런 걸 다르게 하길 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레즈비언의 경우에는, 흔히 스테레오 타입이라 불리는 펨·부치 커플의 경우에는 정장·드레스를 입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둘 다 드레스를 입는 경우도 계시고, 아니면 둘 다 정장을 입는 경우도 계세요.
그러니 일반적으로 헤테로 커플이라면 처음부터 여쭤보지도 않았을 것들, 그런 예복에서부터 하나하나를 신경써야 되죠. 그리고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하셨냐, 부모님은 식에 오시냐, 하객들의 비중은 어떻게 되시느냐, 부모님이 오신다면 부모님 친구분들은 얼마나 오시냐 등등, 되게 따져물을 게 많기 때문에, 상담 때부터 모든 것들을 체크해야 되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좀 안타깝지만, 저도 돈을 벌어야 되는 사람이라서, 퀴어 커플의 경우 앞서 말씀드렸듯 추가로 해야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디렉팅비를 따로 받고 있어요. 그렇게 개별적으로 커스터마이징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그런 부분 때문에 좀 일반적인 예식과는 다르게 추가로 식순을 넣거나, 추가 상품을 구입해야 된다거나, 이런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아시면 좋을 것 같아요.
터울 : 고려해야 할 것들 중에 대표적인 게 퀴어 커플들의 호칭일 텐데, 저희 퀴어는 또 인칭대명사가 중요하잖아요. 헤테로들은 신랑-신부가 보통일 텐데, 신랑-신랑일 수도 있고 신부-신부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것 같거든요. 실제로 부딪혀 보셨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한가람 : 우선은 웨딩 업체에서도 호칭을 어떻게 할까를 제일 먼저 물어보시더라고요. 일반적으로는 그럼 이름을 부르면 좋지 않아? 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 웨딩 업체는 하루에도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하고, 매일매일 고객들이 달라지고 하기 때문에, 이름으로 했을 때 오히려 더 헷갈려하고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을 수 있어요. 그래서 고객들한테 미리 언질을 드리고, 이렇게 불러드리면 될까요, 이렇게 제가 먼저 체크를 한 다음에 웨딩 업체 쪽에 전달드리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보통 나이 차이가 있는 커플의 경우에는 형-동생, 언니분-동생분, 이런 식으로 나이에 따른 차이로 불러드리는 편이고요. 동갑일 경우에는 키 차이나 체격 차이로 나눠서, 큰 신부-작은 신부, 이런 식으로 호칭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진짜 애매한 경우는 그냥 고객님으로 하시고, 눈빛으로 소통해달라고 말씀드리는 경우도 있어요. 기본적으로 웨딩플래너가 현장에 같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소통은 되는 편이라 그렇게 말씀드리고, 또 고객들께도 미리 안내를 드려요. 실제로 펨-부치 커플의 경우에는 작가님들이 은연 중에 신랑-신부라는 말을 계속 하기도 해요. 물론 작가님들도 주의를 하신다고 하고 얘기를 하는 건데, 업체 측에서는 이게 너무 입에 붙어 있다 보니까 실수할 수 있다, 라는 부분을 제가 퀴어 고객들한테 미리 말씀드리고, 혹시라도 실수하면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 달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시다, 라고 하면 고객들도 이해하고 넘어가시는 편이긴 합니다.
터울 : 알겠습니다. 디렉팅비를 왜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신 것 같네요.
▲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2013.9.7. 청계천 광통교. @김대현
4. 야외, 스몰, 프라이빗, 파티 웨딩
터울 : 성소수자에게 선호되는 결혼의 형태로 야외, 스몰, 프라이빗, 파티, 4가지를 들어주셨는데요, 이 4가지가 다 비용이 추가되는 요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업계에 계신 분이면 너무 당연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이게 돈이 왜 들어? 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살짝 친절하게, 이 4가지가 왜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가람 : 이걸 고객들께 설명드릴 때 가장 편하게 설명드리는 방식이 있는데, 우선은 옷으로 설명을 드려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성품 옷들, SPA 브랜드, 이런 데서 옷을 사는 거랑, 특별하게 맞춤 제작된 옷을 사는 거랑, 비용의 차이가 있는 거다, 라고 설명드리고요. 모든 상품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모든 상품, 서비스, 재화가 다 마찬가지인데, 기존에 이미 시스템화 되어있는 양산형 방식은, 어느 정도 책정된 저렴한 가격이 있어요. 시스템화된 가격이 있는데,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스페셜한 상품의 경우에는 비용이 추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재화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웨딩홀에서 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가장 저렴한 건 다들 이해하실 거예요. 대신에 야외식, 스몰 웨딩, 프라이빗, 파티 형식, 이 모든 것들이 남들이 많이 하지 않고 좀 특별하게 신경 써야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모두 스페셜 웨딩의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비용이 드는 것도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면, 이제 일반적으로 웨딩홀에서 하는 예식의 경우에는 하루에 그 예식장에서만 6~7팀이 예식을 쭉 진행하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비용은 그 모든 예식팀이 n분의 1을 하는 방식으로 지출된다고 보시면 돼요. 심지어 거기에 있는 음식이라든가 생화 장식이라든가 인건비까지도 n분의 1로 되는 건데, 프라이빗 예식의 경우, 해당 시간대의 그 공간을 통째로 대관해야 되는 거고, 특히 야외 예식의 경우에는 원래 예식을 하지 않는 장소라면 거기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되고,
터울 : 모든 제반 시설이 새로 들어가야 되는 거군요.
한가람 : 네, 모든 시설과 모든 재화, 모든 서비스가 오로지 우리 팀만을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이 지출돼야 하는 거기 때문에, n분의 1이 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지출해야 되는 비용이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터울 : 알겠습니다. 상대적으로 퀴어 웨딩이 헤테로 웨딩에 비해 하객이 적거나 할 가능성이 높을 텐데, 거기에 따른 추가 비용의 부분은 있을까요?
한가람 : 하객이 적어서 비용이 올라가는 건, 큰 웨딩홀이랑 작은 웨딩홀의 차이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파이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식재료를 얼마나 많이 구입한 다음에 얼마나 시스템화된 공정에서 음식을 만드느냐, 대형 급식과 자그마한 식당에서 나오는 그런 산업의 규모의 차이에서 발생되는 비용 차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터울 : 그래서 아무튼 적잖이 돈이 든다,
한가람 : 적잖이 돈이 더 들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
터울 : 알겠습니다.
"여성을 인간이 아니라 '주부'로 만들고 선택한 사회는 병들거나 아니면 미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 왜 이들[가정주부 여성]의 신경이 불안정한 것일까? [...] 이들은 대체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고등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비범한 재능과 능력을 개발시켰다. 그런데 교외에서 지금 누리고 있는 가정주부로서의 삶은 자신들의 재능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들의 목소리는 또렷하지 못했고 단조롭거나 신경질적이고 민감했다. […] 18세에서 44세까지의 [미국의]젊은 주부들은 출산 우울증뿐 아니라 모든 정신의학적, 심리적 질병이 점점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 […] 실제로 주부들이 살고 있는 집은 일종의 안전한 포로수용소가 아닌가? [...]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 베티 프리단, 김현우 옮김, 『여성성의 신화』, 갈라파고스, 2018[1963], 414, 420, 510, 531쪽. |
5. 결혼식 관습에 드러나는 성별이분법과 남·여 젠더 위계
터울 :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친구사이가 운동 단체이다 보니까 여러 고려해야 할 점들이 생기게 되는데요. 세상에는 결혼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혼에 비판적인 사람도 있고, 결혼 제도가 가진 여러 구조적인 한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것들 중 하나가 아까 얘기 나눴던 성별 이분법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 남·여 젠더 위계가 있을 것 같아요. 보통 결혼식은 '신부의 행사'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고, 그런 맥락에서 기존의 결혼 관습이 구성된 부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웨딩 산업에 종사하시는 입장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 조금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한가람 : '결혼은 여성의 것이다'라는 인식들이 많은 대중들에게 있는데, 실제 산업에서도 이게 현실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실제로 결혼에서 남성들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는 편이기는 해요. 기본적으로 인식 자체가 신부들이 결정하는 거다, 신부 마음에 들어야 된다, 신부만 마음에 들면 된다, 신랑은 돈만 내면 된다, 라는 식으로 좀 프레임화 되어 있다? 약간 이렇게 농담식으로도 말하기도 하는데,
터울 : 실제로도 그렇단 말씀이신 거죠? 어느 정도는.
한가람 : 실제로도 그런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요즘에는 점점 신랑들도, 남성들도 꾸미는 걸 좋아하고 신경 쓰는 걸 좋아해서, 함께 상의해서 결정하는 부분이 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거나 비용을 많이 지출해야 된다거나 신경 써야 되는 것들은 대부분 신부들의 영역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터울 : 웨딩 때 수트보다 드레스 관련 비용이 훨씬 비싸다고 들었거든요. 관장하는 업체의 수도 후자가 훨씬 많고 다양하고,
한가람 : 좀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신랑들이 보통 입는 정장보다 신부들이 입는 드레스에 대한 비용이 훨씬 크게 지출되는 게 맞고요. 메이크업의 경우에도 신부 메이크업이 주이고, 신랑 메이크업은 서비스 개념이다,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신부들은 메이크업 할 때 기본적으로 3시간을 잡는다고 하면, 신랑은 계속 대기하다가 그냥 1시간만에 빠르게 스태프들이 메이크업 해주고 머리 마무리하는 식으로 되는 게 대부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웨딩 상담할 때 제가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있는데, 상담할 때 신랑들이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있어요. 보통 플래너들이 신부 눈치만 보고 신부한테만 의견 물어보고 신랑 의견은 별로 듣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터울 : 이 경우는 성소수자의 경우에도 그런 건가요?
한가람 : 신부-신랑의 구도가 적용되는 모든 경우에요. 헤테로 커플들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신랑까지 상담할 때 되게 많이 챙기는 편이에요. 제가 남자 플래너라 그런 것도 있지만, 그렇게 신랑도 같이 챙기다 보면 "제가 상담 많이 받아봤는데 신랑 의견 물어봐 주신 곳은 여기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저는 더 믿음이 갔어요, 더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 식으로 계약 결정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확실히 웨딩 산업 자체가 좀 신랑들이 소외된? 그러니까 남성들이 소외된 산업이구나, 라는 것들을 그럴 때 느끼는 것 같아요. 신랑들이 들러리가 된다는 게, 기본적으로 드레스샵의 경우나 아니면 촬영할 때도 독사진을 신부들만 찍을 때가 훨씬 많고, 업체 실장님들도 신랑님은 잘 호응해 주세요, 라고 약간 관객처럼 대하는 태도들이 많은 것 같아요.
▲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2013.6.11. @한겨레 김명진 기자
6. 퀴어 웨딩의 성별 비순응
터울 : 사실 결혼식에서 여성 쪽을 더 연극적으로 위해주는 관습이, 어떤 의미에서는 (퀴어는 모르겠지만)헤테로 커플의 결혼식에서 기혼이 된 후에 겪을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을 마치 그 식에서의 대접을 통해 보정해주는 듯한 기능을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것도 엄밀히 얘기하면 남·여 젠더 위계에 의거한 관습일 텐데요. 여기까지가 기존의 헤테로 결혼의 얘기였다면, 그럼 퀴어 커플의 경우 만약 당사자들이 이런 관습을 따르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플래너의 입장에서는 아까 얘기했던 디렉팅의 부분들이 더 많이 개입하게 되겠군요. 그게 여-여든지 남-남이든지,
한가람 : 그래서 기본적으로 저는 안내 페이지나 이런 걸 만들 때, 굳이 여기는 신랑 신부라는 표현을 써야 될까, 하는 경우에는 예비 부부라고 워딩을 다르게 한다거나,
터울 : 뉴트럴한 언어를 쓰는 거군요.
한가람 : 네, 뉴트럴한 언어. 제 고객 중에 신랑-신부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런 중립적인 표현을 최대한 쓰려고 하는 편이고요. 그리고 신랑들, 일반 헤테로 커플에서도 신랑들이 소외될 수 있는 부분들도 좀 잘 챙겨가지고, 혹시 신랑님도 원하시면 이렇게 같이 해보세요, 라고 많이 제안드리는 편이에요. 신부만이 아니라 신랑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되게 많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같이 챙기는 편이고,
또 제가 게이 커플이나 레즈비언 커플이나 다양한 커플들을 하다 보니까, 꼭 여성이나 신부 위주의 식만이 아니라, 좀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입체적인 경험들이 많아지고, 한쪽의 성별만이 아니라 다양한 성별들이 다양한 경험에서 할 수 있는 방향들을 많이 찾는 편인 것 같아요.
터울 : 이경-하나 부부 결혼식에서도 얘기 나오겠지만, 레즈비언 커플이 둘 다 드레스 입지 않고 수트 입은 거 참 멋있더라고요. 그런데 레즈비언 커플의 경우 두 분 다 수트를 입는 경우가 많은지 궁금해요.
한가람 : 우선 수트를 두 분 다 입는 경우를 비율상으로 명확히 정리할 수는 없어요. 저도 레즈비언 친구들이 되게 많은데, 그래서 보통 드레스-정장이 제일 많지 않아? 라고 제 친구들이 많이 물어보는 편이긴 한데요, 실제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터울 : 아 그래요?
한가람 : 이게 비율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각자 각자가 그냥 원하는 대로 입으세요. 그래서 어느 게 더 많아요, 어느 게 더 적어요, 라는 게 매년 비율이 달라질 만큼 다양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 그래서 어떤 비율로 나누기는 쉽지 않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터울 : 게이 커플의 경우, 저는 2013년에 김조광수·김승환 결혼식 때 웨딩 사진 중에 둘 다 드레스 입고 찍은 사진이 있었거든요. 저는 그 사진 하나가 그 결혼식의 중요한 면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 게이 커플 중에서 그렇게 두 분 다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은 경우가 있었는지가 궁금하네요.
한가람 : 저는 아직 한 번도 없었어요. 주변에서도 본 적이 없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경우에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게 두 분의 결혼식이기도 했지만 어떤 운동사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행사였고, 두 분도 거기에 의의를 많이 두신 것 같거든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건 한편으로 개인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그 개인적인 행사에서 본인이 운동가가 아니라면 그런 부분을 의식적으로 드러낼 필요까지는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아직까지 제 고객이신 커플 중에서는 그런 분들은 없었던 것 같아요.
터울 : 물론 게이 커플이 둘 다 수트를 입는 게 그 자체로 잘못됐다거나 한 것은 아닌데, 그래도 좀더 한 발짝 나가면 그 식의 의미가 더 커지는 건 분명하니까, 혹시나 여쭤봤던 거고요.
한가람 : 아직 제 고객 중에 크로스드레서라든가 드랙퀸이라든가, 이런 고객이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결혼을 꿈꾸는 퀴어들이 좀더 많아지고, 저한테도 그런 고객이 생긴다면 그런 커플이 있을 수 있겠다, 이렇게 항상 열어두는 부분이라서, 그래서 저도 게이 커플분들한테 물어는 봐요. 혹시 의상 어떻게 하실 거예요? 라고 물으면 되게 좋아하시고 웃으시는데, 아직까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터울 : 알겠습니다. 왠지 조만간에 그런 사례를 볼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보면서, (웃음)
▲ 이경-하나 결혼식. 2024.1.13. @포토그라피_단
7. 이경-하나 커플 결혼식과 퀴어 웨딩 플래닝
터울 : 그러면 성소수자 웨딩 플래닝의 속살로 좀더 본격적으로 뛰어들도록 하겠습니다.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곽이경-김하나 레즈비언 커플 결혼식에 웨딩 플래너로 활동하시고 식에도 동행하셨는데요. 이 결혼식이 통상의 성소수자 부부 결혼식과 같았던 점도 있을 거고 다른 점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준비하시고 동행하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가람 : 우선 두분의 경우에는, 결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을 해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말하는 것보다도, 두 분의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하나의 완성된 행사로 만들 수 있게 도움을 드렸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요.
실제로 이경-하나 커플의 경우 헤테로 커플이나 다른 퀴어 커플들 진행하는 거랑 크게 다를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두 분은 오래 만난 장기 커플이었고 앞으로의 관계를 준비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점에서 오히려 다른 장기 커플이랑 비슷한 점은 있었던 것 같아요.
터울 : 제가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못 갔는데, 제가 듣기로 결혼식 막바지에 사진 촬영할 때 각 운동 섹터별로 촬영을 했다든지, 그래서 전반부는 결혼식이고 후반부는 살짝 집회처럼 진행된 부분도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한가람 : 이경-하나 커플이 초반에 저한테 상담을 했을 때, 결혼식을 너무 집회처럼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좀 다른 방식으로 결혼식을 하고 싶은데 상상력이 부족하다, 아이디어가 없느냐, 라고 저한테 문의를 주셨어요. 이경은 실제로 민주노총에서 상근 활동을 오래 한 중앙 상근자고, 하나도 이경과 계속 만나면서 관련된 활동을 많이 했던 사람으로서, 좀 그런 식의 행사 방향과 기획이 머릿속에 편하게 자리잡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걸 빼는 작업을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터울 : 운동 단체 행사처럼 보이는 어떤 요소들을?
한가람 : 네. 그래서 어느 단체에서 현수막을 가져와서 달면 어떠냐 했다는 얘기 듣고 안 된다, 거부해라, 이렇게 자른 것도 있었고요. 중간에 구호가 좀 들어가면 어떻냐, 라고 했을 때, 그 구호는 마지막에 하셔라, 중간에 들어가지 않게 해라, 라는 얘기도 했었고. 그러면서 식을 구성할 때 1부는 결혼식 느낌으로, 2부는 다 함께 즐기는 문화제와 정치적 의미가 드러나는 행사 느낌으로 나누자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서, 하나의 세레모니 형태의 결혼식, 그리고 모두가 함께 하는 신나는 아젠다의 장, 이렇게 2개 파트로 나눴던 것 같아요. 이경-하나도 그게 맞는 것 같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고 그림도 예쁠 것 같다, 라는 것에 동의를 해주셔서, 그렇게 큰 두 개의 테마로 나눴던 기억이 있고요.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6색 무지개가 너무 뚜렷하게 크게 보이는 것을 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해요. 성소수자에 대한 상징들이 들어가더라도 어떤 메타포로, 은유적으로 들어가면 더 좋지 않을까, 예쁘지 않을까,
터울 :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상징들이,
한가람 : 네, 그렇게 제안을 했었고. 이경-하나도 거기에 동의를 해서, 좀 간단한 아이템으로 자그맣게 넣는 방식으로 진행했던 게 있었고요.
터울 : 활동가들이 좀 그런 것 같아요. 사적인 세계와 사적인 실천·욕구들을 운동 이외의 언어로 얘기하는 걸 어색해해요. 왜냐하면 퀴어퍼레이드도 그렇고, 퀴어들은 사적인 것들이 곧 운동으로 활용되는 천혜의 조건이자 저주를 겪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어찌 보면 그런 것들에서 살짝 벗어나서, 결혼식을 너무 집회처럼 만들지 않으려는 고려를 웨딩 플래너로서 수행하셨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하네요.
한가람 : 맞습니다. 그리고 이경-하나가 처음에는, 본인들이 직접 식 중에 이 결혼식을 왜 고민하게 됐는지 말하려고 했었어요. 약간 멘트를 길게 해서. 그런데 저는 그럴 필요가 없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다, 그걸 직접 말하지 말고 오히려 이 결혼을 축하해 주는 다양한 소속의 사람들이 직접 말로 하게 해라, 그래서 이경이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던 가족분들이라든가, 아니면 그 둘의 관계를 오랫동안 봤던 사람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이 결혼을 축하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이미 모두가 알고 있을 이 결혼식의 의의를 굳이 결혼하는 당사자가 스스로 말할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 입에서 그게 들리도록 하자, 그게 더 메시지로도 흐름으로도 더 예쁠 거다, 라는 것에 동의를 얻어서 그렇게 식순을 정리했던 점이 있었죠.
터울 : 중요한 역할을 하셨네요. 저는 그 식에는 못 갔지만, 기록 사진이나 다녀온 감상이 엄청 많이 SNS에 떠서 보게 됐는데요. 제가 알기로 이렇게 성소수자 결혼식이 하객들까지 전부 다 오픈해 진행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들었거든요.
한가람 : 기본적으로 성소수자, 퀴어 웨딩의 경우에는 그 당사자의 정말 친한 지인들만 오기 때문에, 하객들은 생각보다 아우팅의 걱정을 그리 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거기서 찍는 사진이 유출되지 않도록, 다른 데 올라가지 않도록 충분히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문제가 없는 편이기는 해요. 그래도 거기에 대한 주의는 미리 기울일 필요가 있죠. 그래서 보통 모바일 청첩장의 경우에는 이 링크를 다른 데 올리지 말아달라, 라고 한다거나, 당일 결혼식 사회자도 오늘 여기서 찍으신 사진은 어디에 올리시면 안 된다, 또는 오늘 여기서는 하객분들께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오로지 전문 사진가만 사진을 찍는 식으로 진행하겠다라는 식으로,
터울 : 퀴어퍼레이드처럼,
한가람 : 퀴어퍼레이드처럼, 여기 있는 사람들의 신상이 유포되지 않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하는 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객들이 당일 느끼는 아우팅에 대한 불안감 같은 건 없는 편이긴 한데, 오히려 다른 쪽으로 약간 하객들끼리 성소수자임을 알아채게 되는 경우는 있어요. 예를 들면 서로 커밍아웃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당일 하객으로 와서 너 여기 왜 있어? 라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고요. 그리고 친한 헤테로 지인과 친한 퀴어 지인이 여기서 만나서, 어, 너 뭐야? 이렇게 만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걸 통해서 얘 앨라이구나, 라는 식으로 더 편해진 경우도 있었고요. 이렇게 다양한 만남이나 추가적인 커밍아웃을 하는 경험들은 있어도, 아우팅의 우려를 막 엄청 걱정하거나, 예식 이후로 문제가 생겼다고 하는 사례는 아직까지 제 결혼식에서는 발견을 못한 것 같아요.
터울 : 이경-하나 커플의 경우에는 아예 그 당일 결혼식 현장 사진을 참석자들이 찍어서 공유하더라고요. 퀴어 웨딩의 경우 그렇게 진행된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거든요.
한가람 : 웨딩 업체가 SNS에 퀴어 웨딩 당사자의 얼굴을 오픈해도 된다고 허락한 고객은 이경-하나가 저도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SNS에 올릴 수 있었고, 또 이경-하나의 경우 SNS에 올리는 게 불편하지 않았던 게, 거기에 오신 헤테로 하객들도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퀴어인지 그냥 인권단체 사람인지 헤테로인지 그냥 지인인지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그냥 퀴어 프렌들리한 모든 사람들이 모인 듯한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그런 부담들이 좀 적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 모인 분들도 하객들의 얼굴을 조심해서 안 보이게 하는 식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는 분들이 많아서, 좀 그런 부담감이 적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면서 사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결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어도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죠. 성소수자 가정이 어떻게 살고 사랑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성소수자 부모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성소수자 가정을 사회에 더 많이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 궈(郭) 마마, 「성소수자의 부모는 귀인이 될 수 있어요」,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 강영희 옮김, 『비 온 뒤 맑음 : 사진과 이야기로 보는 타이완 동성 결혼 법제화의 여정』, 사계절, 2022[2021], 229~230쪽. |
8. 퀴어 웨딩에 얽힌 아우팅 방지와 커밍아웃 경험
터울 : 사실 두 분이 예전부터 커밍아웃을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하셨기 때문에 그런 그림이 가능했던 게 있는데, 저희가 항상 얘기하는 것이 커밍아웃은 너무 중요하지만 모두가 커밍아웃하고 살 수 없고, 커밍아웃을 못하는 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강조이거든요. 그래서 성소수자 부부가 결혼식을 하게 될 때, 당사자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경우 주의해야 할 여러 변수들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어떤 경험들이 있으셨는지,
한가람 : 우선 퀴어 웨딩에서 주의해야 될 사항은 굉장히 많은데요. 대표적으로 청첩장이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이걸 여쭤보시거든요. 본인이 다니는 직장에다 신혼여행을 위한 휴가를 받으려면, 딱히 어떤 서류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 청첩장이나 웨딩 계약서 정도를 증빙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는 회사에 제출할 청첩장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여기에는 이름 대신 이니셜이 들어간다거나, 아니면 상대 파트너 이름을 가명으로 작성한다거나 해서, 헤테로 커플로 패싱될 수 있을 만한 그런 요소들을 집어넣고, 그리고 가족 친지만 참여하는 작은 결혼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식장과 장소를 적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거기다가 축의금 계좌번호만 쓰는 거죠. 그렇게 직장 동료들한테 뿌리고, 작은 결혼식 한다고 한 다음에 지금까지 뿌렸던 축의금만 돌려받는 그런 사례들도 있고요.
터울 : 그렇게 청첩장을 이중으로 찍는 경우들이 헤테로 결혼식에도 흔한 편인가요?
한가람 : 헤테로들도 청첩장을 여러 종류로 뽑는 경우가 많아요. 이유가 뭐냐면, 이렇게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까지는 아닌데, 그 밑에 최소한의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는 많아요. 가령 부모님용 청첩장과 본인용 청첩장은 밑에 들어가는 계좌번호가 바뀌어요. 이렇게 요즘 청첩장의 경우에는 커스터마이징해서 여러 개로 바꿀 수 있는 식으로 뽑기 때문에, 퀴어들도 이런 방식을 활용하기만 하면 되어서 크게 부담되는 방식은 아니다, 비용이 추가적으로 많이 드는 방식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또 퀴어 커플의 모바일 청첩장의 경우에는, 여기에 본인 얼굴이 드러난 사진을 잘 올리지 않으세요. 혹시라도 이 링크 하나로 다른 사람들한테 자신의 퀴어 정체성이 노출될 수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보통 올리지 않는 편이세요. 그래서 모바일 청첩장에 사진을 올리지 않고, 대신 두 분을 그린 일러스트 이미지를 올린다거나, 아니면 손만 들어 있는 사진을 올린다거나,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니셜만 넣는다거나, 닉네임을 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우팅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하는 편이에요.
터울 : 성소수자 결혼식이 헤테로랑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쭉 얘기 나눠보고 있는데요. 제일 커밍아웃이 어렵고 그 식에 모시기 어려운 분이 아무래도 양가 부모님과 친족분들이신 것 같은데요. 이때까지 진행해 보신 성소수자 당사자 결혼식들 중에 양가 부모님이나 친족분들이 실제로 오시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하거든요. 헤테로들은 보통 거진 다 오시죠?
한가람 : 대부분 오세요.
터울 : 그런데 퀴어들은 어떤지가 좀 궁금하네요.
한가람 : 퀴어 웨딩의 경우에는, 양쪽 다 오시지 않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어요. 생각보다 드물고, 제 고객님들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당사자분들 중에 한쪽은 부모님들이나 주변에 어느 정도 친한 지인들한테 오픈한 퀴어인 경우가 많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한쪽이라도 부모님들이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 경우가 제일 많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 양쪽 다 부모님이 오시는 경우는 종종 있으세요. 그래서 비율상으로 보면은 양쪽 다 오시지 않는 경우가 제일 적고, 한쪽만 오시는 경우가 더 많고, 두 분 다 오시는 경우도 생각보다 적지 않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요.
그런데 되게 재밌는 건, 상담받을 당시만 해도 한쪽만 오신다, 라고 하는 비율이 우선 제일 많아요. 그런데 결혼식을 앞두고, 플래너님 저 커밍아웃 했어요, 그리고 부모님 오신대요, 이렇게 중간에 바뀌어서 양쪽 부모님이 오시는 경우가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갑자기 혼주 메이크업을 추가로 예약한다거나 하는 사례가 많다고 볼 수 있어요. 퀴어 웨딩의 친족 참석 비율은 이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 우리 사회에서의 결혼은 특히 여자의 경우 부부간의 애정의 관계이기에 앞서 시가 식구와의 지배·복종의 관계, 신부의 시부모에 대한 절대적 무조건적 복종과 봉사의 관계였다고 규정할 수 있다. 결혼을 못할 수는 있어도 안할 수는 없는 한국 같은 결혼에의 압력이 강한 사회에서는 명백한 동성애는 대단히 보기 드물게 될 것이다." - 한동세, 「한국인의 성도착증」, 『신경정신의학』 9(1), 대한신경정신의학회, 1970, 30~31쪽. |
"한국 사회의 경우 신전통주의적 유교 가족문화의 보편화[는] […] 그 물적·인적 기초의 결여가 심각한 딜레마를 초래했다. […] 결국 여성의 경우 생산노동자로서 그리고 현모양처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요구받게 됐다. […] |
"게이 여성과 남성들은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는 대다수의 이성애자보다 앞서간다. 오늘날 관계라는 용어가 개인 생활에 적용될 때 갖게되는 의미에서 말이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은 전통적으로 정해진 결혼의 틀에서 벗어나 파트너가 비교적 평등한 조건 속에서 '친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 앤소니 기든스, 배은경·황정미 옮김, 현대 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 친밀성의 구조변동, 새물결, 1996[1992], 45쪽. |
9. 퀴어의 다양한 결혼식, 가족이 아닌 당사자간의 결합
터울 : 퀴어들이 다양한 만큼 퀴어들의 결혼식도 다양한 형태이지 않을까, 라는 어렴풋한 상상을 하게 되는데요. 실제로 보시면서 어떤 형태의 퀴어 결혼식이 있었는지를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가람 : 성 정체성, 성 지향성의 경우, 게이 커플, 레즈비언 커플 말고도 트랜스젠더 커플도 있었고요. 그리고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커플들의 결혼식도 있었어요. 트랜스젠더 커플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트랜스젠더 동성 커플은 저한테 의뢰해주신 분은 없었어요. 한쪽이 트랜스젠더고 한쪽이 시스젠더인데, 두 분이 이성애자 커플로 패싱되는 경우는 있었어요. 그래서 그 식에서는 하객분들 중에서도 당사자가 퀴어인 걸 아는 하객들도 있었고, 퀴어인 걸 모르는 하객들도 있었어요.
터울 : 패싱이 성공한 거군요.
한가람 : 심지어 헤어 메이크업까지 받으시니까 패싱이 너무 완벽하게 성공하셔서, 그렇게 하객들이 서로 약간 아는 사람들만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그런 예식의 형태도 있었고요.
그리고 논바이너리 커플의 경우에는, 여기도 오픈 가능한 커플이라서, 엔진-콘딕이라고 활동가 커플이 있었는데, 여기는 한쪽이 젠더퀴어이시고 한쪽은 시스젠더인데, 둘 다 이성애자 커플로 패싱되게 쉬운 분들이지만 여기에 오는 대부분의 하객들은 이 둘이 퀴어인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분들의 경우에는, 결혼식에 온 하객들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했었어요. 지금 여기에 오신 하객분들 중에 퀴어들이 굉장히 많고, 혼인 신고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하객들이 많은데, 우리는 한국에서 법상으로는 남성-여성이기 때문에 어쨌든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었고, 이 혼인 신고를 통해 신혼 부부 관련 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근데 이런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여기에 온 많은 하객들께 위로와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걸 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싸우겠다, 오늘 주신 이 축의금으로 앞으로 기반을 잘 마련해서 더 열심히 싸우겠다, 이런 멘트를 하셔서, 하객들한테 소소한 감동과 재미를 줬던 그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터울 : 훌륭하네요. 그 밖에도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결혼식, 이를테면 커플이 들어오고 양가 부모님 화촉 밝히고 행진하고 끝나는 것 이외에, 혹시 다른 형태나 다른 식순이나, 특히 식순의 경우 퀴어라면 좀 유동적인 부분이 있지 않을까, 특이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들기는 하거든요.
한가람 : 이건 결혼식의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갈리는 것 같아요. 헤테로들 결혼식의 경우에는, 실제로 신랑 신부가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거기 조연들은 부모님이고 가족들인데, 이 조연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주연과 조연과 엑스트라들 모두가 조화롭게 움직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웰메이드, 완성된 식을 구성하는 것이 헤테로 결혼식의 목표라면, 퀴어 웨딩은 주연이 되게 명확해요. 조연의 비중이 굉장히 적은, 정말 주연 중심의 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터울 : 그러니까 친족이 오신다 하더라도,
한가람 : 네. 그에 비해 퀴어 웨딩은 결혼하는 당사자가 명확한 주인공이에요. 그리고 여기에 가족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헤테로 결혼식과 퀴어 웨딩의 가장 큰 차이점은, 헤테로 결혼식이 신랑-신부의 부모님과 가문의 결합, 그걸 축하해 주는 하나의 큰 행사라고 한다면, 퀴어 웨딩은 결혼하는 커플 둘, 이 둘의 스토리와 둘의 결합을 오로지 축하하는, 그런 내용 위주로 구성된 행사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화촉 점화나, 심지어 부모님 입장까지도 안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부모님은 그냥 애초에 자리에 앉아 계신 경우도 있고, 식순 자체가 그냥 퀴어 웨딩 당사자의 입장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요. 어찌 보면 부모님은 그냥 들러리인 거예요, 나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나를 낳아주러 온 사람이 여기에 앉아 있고, 우리를 축하하러 왔다, 라는 정도로 그분들의 역할이 그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런 식으로 결혼식의 모든 식순들이 퀴어 웨딩 당사자들을 위해 구성되어 있다, 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터울 : 성소수자들 중 게이 커플 결혼식의 경우 기억에 남는 식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한가람 : 한 게이 커플의 경우에는, 한쪽은 가족들한테 어느 정도 오픈을 해서 많이 지지받는 상황이었고, 한쪽의 경우에는 오픈하지 않고 대충 그냥 가족들도 이미 알지 않을까요, 정도로만 돼있는 상황이었는데요. 결혼을 결정하시고 고민을 엄청 많이 하시다가, 설 명절에 가서 완전하게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고 하셨어요. 결혼 얘기도 그 때 말씀하신 거예요, 결혼식 얼마 안 앞두고. 저 다음 달에 결혼해요, 오세요, 라고 하고 도망가셨대요. 그런데 나중에 잘 얘기가 돼서 결국 식에 오시기로 하셨고, 동생분도 오시기로 했고. 그때 동생한테 넌지시 물어봤대요. 혹시 네가 나의 화동을 해줄 수 있냐, 라는 얘기를 듣고, 동생분도 아니 화동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 라고 하셨는데, 커플 양쪽이 둘다 남동생이 있으니 내 결혼식에 이 둘이 와서 우리의 반지를 같이 전달해주면 좋겠다, 난 그럼 너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러셨는데. 동생분이 그걸 흔쾌히 받아주셔서, 결혼식 때 게이 커플의 남동생 두 분이 예물 화동을 해주셨어요.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이 경우가 기억나는 재밌었던 식순 중의 하나였던 것 같아요.
터울 : 가족 간의 결혼이 아니라, 당사자, 배우자들끼리의 결혼이라는 점이 더 확 살 수 있는 것이 퀴어 웨딩의 특징이라는 게 흥미롭네요. 어찌 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 결혼의 의미가 다시금 새로워지고 쇄신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싶은데요.
한가람 : 여기에 추가로 말씀드리면, 식에 오신 하객분들이 감동을 많이 하세요. 실제로 퀴어 당사자인 하객분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식에서의 모습을 보고 저렇게 가족한테 지지받고, 심지어 하객들 중에 저 커플이 커밍아웃을 언제 했고 두 사람의 연애 스토리가 어땠는지 미리 알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을 떠올리면서 그 식 자체를 보시고 감동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헤테로 웨딩에서 화동이 들어간다고 했을 때, 아기들이 화동을 하는구나, 귀엽다, 재밌다,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퀴어 웨딩의 경우는 여기에 있는 식순 하나하나가 하객들한테 새삼 의미 있는 것들로 전달될 수 있어서, 하나하나 밀도 있는 예식의 식순으로 가닿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터울 : 네, 제도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던 사람들이 뭔가 그동안 꿈꾸지 못했던 것들에 진입했을 때, 그것들 본래의 의미가 하나둘씩 살아나는 측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