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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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2023년 친구사이 교육팀
: 상반기 정기프로그램 '벌거벗은 Q' 후기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인 6월, 친구사이 교육팀에서는 각 분야 전문 활동가들과 함께 퀴어 이슈를 벌거벗겨 보고자 상반기 정기 프로그램 <벌거벗은 Q – 우리가 미처 몰랐던 주변 이야기들>을 마련했습니다. 게이 커뮤니티와 관련해 ’퀴어 페미니즘‘, ‘성별이분법’, ‘문란한 섹스’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요. 많은 분들이 신청하셔서 각각 관심있는 분야의 강의에 참여하여 다들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질문도 해주시면서 관심을 보여주시는 등 매우 활기차고 열띤 시간이었답니다.
소중한 강의 진행해주신 강사님들, 원활한 내용 전달에 도움 주신 문자통역사님,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참여자 중 몇 분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 친구사이 교육팀장 크리스 |
<게이 커뮤니티와 퀴어 페미니즘> 강의 후기 -
종태원의 시간 안에 놓인 퀴어와 미래
“오늘도 안 팔렸다...!”
주말에 종로 나갈 날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30대 게이가 되었다. 토요일이면 경건한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고, 해가 질 무렵 이날만을 위해 아껴둔 옷을 개봉한다. 팔리기 위해서는 매력적이어야 한다. 나름 학부 때 맑스의 정치경제학 좀 공부했다고, 사람(?)인 나를 상품화하는데 멈칫하기도 하지만, 종로3가에 들어서면 걸어다니는 ‘상품’을 자처한다. “보아라 게이들아, 내가 왔노라!” 게이에게 눈을 맞추기 바쁘고 안기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문제는 매번 장사에 실패하고 홀로 쓸쓸히 귀가하는 데 있을 뿐이다.
6월 9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친구사이’ 사정전에서 <게이 커뮤니티와 퀴어 페미니즘 : 종태원에서 팔리는 일에 대하여>라는 강연이 열렸다. ‘종태원에서 팔리는 일’이라는 부제만 보면 ‘화장법’이라도 가르쳐줄 것 같지만, 오히려 따로도 벅찬 ‘퀴어’와 ‘페미니즘’이 무게감 있게 놓여있다. 나만 못된 심보를 가졌던 것인지 똑똑한 게이들이나 구경할 심산으로 강연을 신청했는데, 참가자 모두 굉장한 집중력을 보였다. 그것은 아마 강연자가 게이로서 세상과 부딪히며 꽉 쥐었을 고민이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팔림’의 계보와 겹쳐지는 애환
종태원은 과거 ‘성매매 집결지’였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는 이성애(정상성) 규범 아래 ‘퀴어’를 벽장 속에 가두었고, 여성에게는 순결성을 강요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가부장제 정상성에 어긋나는 존재로서 사회적 낙인과 통제에 시달려야 했다. 국가는 외국 군대의 성욕과 외화벌이를 위해 성산업을 관리하면서도, 한편으로 억압하면서 스스로 가부장제 정상성에 권위를 부여했다. 현재는 종로3가에서 성매매 집결지를 찾기 어렵다. 1960년대 국가 권력이 정화를 목적으로 철거했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들이 일궈온 장소를 대책도 없이 빼앗겨야 했다.
성매매 집결지 철거로 빈 공간이 된 종로3가에는 빈민촌이 들어섰고, 퀴어업소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 본래 성매매 여성들뿐만 아니라 몸을 파는 남장/여장한 퀴어들이 종로3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가부장제 정상성에서 벗어나 타락한 섹스를 수행했던 성매매 여성들과 퀴어들은 자신들을 적대하는 세계에서 차별을 겪고, 중심에서 밀리고 밀려 종로3가에서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과거 붉은 불빛을 밝혔던 종로 거리는 이제 수백 개의 퀴어업소들이 밝히는 무지갯빛으로 채워졌다. 게이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비하했던 표현인 ‘갈보’를 뒤집어 스스로 ‘보갈’이라 부르며, 상대에게 끈적한 눈빛을 보내고 골목에서 입술을 섞는다. ‘팔리고 싶다’라며 기갈 지게 웃어대는 게이의 문화에는 시간으로부터 전달된 성매매 여성들의 애환이 겹쳐있다.
유산에만 머물지 않는 퀴어의 PRIDE
게이에게도 문화적 계보와 역사적 축적이 있다는 사실은 외로움을 묘하게 달래준다. 하지만 유산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종태원’은 이성애 중심의 문화와 다른 결을 내며 퀴어만의 유쾌함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스스로 ‘팔리는’ 데에 초점을 둔 게이들과 달리, 사회문화적으로 이성애 남성들은 성구매자로 위치되어 있다. ‘버닝썬 사건’만 봐도 이성애 남성들이 찾는 클럽에는 성매매 알선이 존재하고, 성폭행과 불법촬영까지 얽혀있다. 이와 다르게 게이클럽은 걸그룹 노래에 자신의 끼를 맞춰 흔들어 젖힐 뿐이다. 굳이 문란하다면 웃통 정도 까는 것밖에 없다.
퀴어업소는 ‘항문섹스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온 게이들’에게 사람으로서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얼굴을 숨기고 은밀하게 탐하기 바빴던 게이들은 퀴어업소 덕분에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이름과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이성애 규범의 시선으로부터 블랙수면방이 문란함으로 덧칠되었지만, 그곳이야말로 퀴어들이 안전한 섹스를 확보한 공간이다. 수면방 곳곳에는 콘돔과 젤이 배치되어 있고, 원하지 않은 상대와는 섹스를 거부할 수도 있다. 돈만 쥐여주면 성폭력도 정당화하는 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최현숙 선생님은 블랙수면방을 두고 “문란은 고사하고 착해빠졌다”라고 평했다. 퀴어의 성적 활력은 성적 동의의 문화를 축적하고 있다. 종태원은 더는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도망친 공간만이 아니라, 성평등 지향의 문화를 정착하고 수행하는 퀴어의 주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강연을 들으면서 나와 성매매 여성들의 삶이 겹쳐졌고 종태원이라는 공간에서 꽤 두터운 시간으로 서로 공명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로 시작된 시선이 타자로 옮겨졌고, 그렇게 지워질 운명에 처했던 존재들은 서로를 지켜주는 단단한 그물망을 조직하였다. 올해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불허되었을 때, 이동권 투쟁 중인 장애인 선생님은 ‘장애인을 시설 속에 가두고, 퀴어를 벽장 속에 가두’려는 국가 권력을 호되게 비판해주었다. 시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을지로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마쳤을 때, 반론권마저 박탈당한 채 성매매 집결지 폐쇄 통보를 받아야 했던 성노동자들이 생각났다. ‘소수’는 ‘다수’에 비해 약하다. 하지만 소수이기에 가능한 공감과 이해는 분명 넓고 깊은 연대를 실천해왔다. 우리 존재 자체가 이미 정상성으로 위계화 된 세계를 균열내고 있다. 이제 내 곁에 수많은 타자와 연결됨으로써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세계를 전복하자. 그것이 바로 퀴어 페미니즘의 전략이다.
* 읽어볼 자료
김대현, 「게이와 페미니즘」, 『문화과학』 104, 2020,
김대현, 『세상과 은둔 사이』, 오월의봄, 2021.
최현숙, 「방역당국은 섹스를 금하라」, 『경향신문』, 2020.5.22.
친구사이 회원 / 람
<게이 커뮤니티와 성별이분법> 강의 후기
친구사이라는 단체를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활동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스스로가 LGBT와 퀴어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고,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교육팀에서 기획한 교육들을 들으면서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강의를 신청한 것은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에서 활동하시는 활동가이기도 하지만, 논바이너리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나는 논바이너리가 아니지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지 않아서 강의를 신청했다.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남성인지 여성인지로 구별된다. 우리 사회는 범주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고 또 강요하고 있다. 또한 사람을 성별로서 두 집단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강사인 정숙조신님의 말처럼 사람을 깔끔하게 두 집단(성별)으로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성별이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성별 표기에 대한 불필요성을 본인도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고,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할 때에도 “저는 포기했다.”라고 표현할 만큼 불편한 사회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친구사이 회원 / 유우지
<게이 커뮤니티와 문란한 섹스> 강의 후기
처음에는 ‘문란한 섹스’라는 주제로 강사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참여자들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했다. 먼저 강사님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특유의 발칙한 유머와 잔잔한 입담이 참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안 그래도 ‘섹스’ 얘기만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는 우리네라 그런지, 누구 하나 폰도 보지 않고 강의 내내 진지함과 웃음 사이를 넘나들었다. 또한 강사님의 문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침없는 자기노출은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방해되는 진입장벽을 많이 허물었다. 낯설고 파괴적인 섹스가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그런 의미를 담게 됐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교적 두툼한 자료 2개를 준비해주셔서 교재 바탕의 수업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되려나 싶어 경직된 분위기일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듣는 내내 굉장히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란한 섹스는 나다운 삶을 위한 선택 중 하나다!
사실 ‘문란한 섹스’라는 제목만 보고는 막연하게 다양한 성생활의 방법론을 소개하는 강의 같다고 예단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섹스는 자기 자신을 맘대로 사용하고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자, 삶을 살아가는 나만의 태도를 반영하는 일종의 철학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섹스에 대한 해석은 나의 경험과 결이 달라 색다른 반향으로 다가왔다. 나는 저 남자랑 자고 싶다는 끌림과 꼴림이 생기면, 뇌를 비우고 그저 그와 한 침대에 눕기 위한 여정만을 시작할 뿐이었다. 여기에 특별한 신념이나 철학이 담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편 우리 게이들의 섹스엔 항상 HIV 이슈가 동반되기 때문에, 철학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PrEP(노출 전 예방요법)이라는 의학적 발전이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고질적인 차별과 혐오의 사회 속에서 숨통을 트게 하는 초석이자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된다(강사님은 PrEP의 유통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말씀해주신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회가 만든 기준에 의구심을 품어보자!
어디까지가 규범적이고 어느 선까지 문란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가 지칭하는 문란함이 정말 모두에게 문란한 것일까? 이번 강의는 이러한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고 외칠 수 있는 내공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 내공의 여부가 곧 내가 원하는 삶을 맘껏 향유할 수 있는 힘으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취약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낙담과 좌절을 겪은 강사님과, 하자 있는 외모와 성적 지향성 때문에 친구도 애인도 못 사귈 것이라고 치부했던 나는 동일한 상처(사회가 만든 기준에 나를 맞추다가 생긴 부작용)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세상 모든 기준에 의구심을 품어보자! 나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달라도 되는 고유한 가치라는 사실을 통해 더 퀴어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친구사이 회원 / 참둘기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하반기에 있을 교육에도 많은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