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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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1]
故 임보라 목사 서거 추모 성명·논평 일람
2022년 2월 3일, 성소수자의 오랜 벗이자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 곁을 지키셨던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비통함 속에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하는 각계 각층의 성명과 논평을 모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편집자 주 |
길찾는교회 (2023.2.4. 22:00)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이 슬픈 소식을 전해들은 모든 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싶습니다. |
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 CCPS (2023.2.4. 22:09)
이 땅의 소수자와 함께 하셨던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해방세상에서 다시 뵐 수 있길 기도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
대한성공회 자캐오 신부 (2023.2.4. 22:18)
제가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흔들림 없는 제 편이었던 임보라 목사님. 저도 항상 당신 편이었음을 기억해 주세요. 이제 당신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빈자리를 느끼며 살아갈 많은 길벗들의 편이 되어 또 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
레스보스 윤김명우 (2023.2.4. 22:23)
故 임보라 목사님, 성소수자 편에서 항상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주님 곁에 편안하시고 하늘 나라에서 만나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
비온뒤무지개재단 (2023.2.4. 22:36)
임보라 목사님은 2018년부터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나는 앨라이입니다." 캠페인의 앨라이 모델로 활동하셨습니다. 다수의 퀴어문화축제와 연대의 자리에 종교인이자 앨라이로서 함께하셨고, 기독교가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종교가 되길 바라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셨습니다. |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상근활동가 소주 (2023.2.4. 23:06)
나는 당신을 만나 지금까지 살아있습니다. 사랑하고, 고맙고, 존경하며, 당신의 영원하고 평안한 안식을 진심으로 머리숙여 기도하며 바라고,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마소서. 지켜봐주세요, 잘 살아가는 모습 지켜봐주세요. |
정의당 서울시당 종로구지역위원회 배복주 위원장 (2023.2.4. 23:16)
든든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못해 마음 아프고 죄송합니다. 임보라 목사님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부디 평안하게 안식하시길 바랍니다. |
언니네트워크 (2023.2.4. 23:30)
차별과 혐오 가장 앞에 맞서서 평등을 이야기하고 소수자의 삶을 품으로 마음으로 안아주셨던 그 힘과 따뜻함 덕분에 많은 날을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2023.2.4. 23:56)
2012년 제 7회 무지개인권상 수상자이시기도 하셨던 임보라 목사님의 수상 소감을 나눕니다. 목사님 편히 쉬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7회 무지개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저도 모르게 ‘이건 아니지!’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 종교, 특히 기독교계가 그간 성소수자에게 행한 온갖 일들이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는 더디기는 해도 인권조례와 같은 성과물들이 하나씩 쌓여가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종교계는 아직도 침묵 아니면 혐오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공헌을 했다는 말이 민망스러울 뿐 아니라,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기에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3.2.4. 23:59)
故 임보라 목사님은 성소수자들의 벗이자 품이었습니다. 행성인의 오랜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육우당 추모기도회를 조직하시고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앞장서 왔습니다. 이단이라는 보수기독교의 공격에도 아랑곳 않고 성소수자 혐오에 단호히 맞서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목소리 내어온 분이기도 합니다. 혐오와 차별, 불평등에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늘 먼저 나와 곁이 되어 주신 덕분으로 우리 세상이 조금 더 따뜻했습니다. 때문에 떠난 자리가 오래 시릴 것도 같습니다. |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2023.2.5.)
임보라님께서는 “2010 제11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현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연대발언으로 참여하셨습니다. “2013 제13회 서울LGBT영화제(현 한국퀴어영화제)”에는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셨으며, “2014 제15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서는 행진 시작 전 참여자분들을 위한 축복식을 진행하시기도 하셨습니다. “2015 제16회 퀴어문화축제(현 서울퀴어문화축제) 개막식”에도 연대발언으로 참여하셨고, 그 직후에는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혐오와 차별 행위에 대응하는 범종교계의 “평화의 인간 띠 잇기(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 주최)”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셨습니다. 2015년 말에는 조직위의 소송 비용 마련을 위한 “사랑으로 혐오를 갚으리라~108명의 의인을 기다립니다” 행사에 많은 도움을 주시는 등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많은 부분에 함께해 주셨습니다. |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2023.2.5.)
혐오의 언어에 맞서 포용과 사랑을 말씀하셨던 고인의 행보는 이 땅의 모든 성소수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차별에 마음 아파하며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함께 걷고자 하셨던 발걸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이 보내주셨던 연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대구퀴어문화축제 배진교 조직위원장 (2023.2.5.)
2013년. 임보라 목사님을 처음 뵈었다. 제5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무대 위였다. "혐오는 하나님의 언어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무대 아래에서 고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너는 사탄이야.” 당장 내려오라며 삿대질과 욕설이 난무하는데도 의연함을 유지하시며 축제를 축하하고 참가자들에게 연대와 사랑을 건네셨다. 옆에서 가만 듣고있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종교란 이런 게 아닐까…’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2023.2.5.)
임보라 목사님의 든든한 지지가 없었다면 띵동은 설립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먼저 떠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손 잡아주셨던 그 따뜻함을 기억하겠습니다. 누구보다 청소년 성소수자 겪는 차별에 아파하셨고, 이들에게 큰 힘이 되 주고자 노력하셨습니다. 띵동 설립 준비위원으로, 운영위원으로 함께하면서도 교회가 아닌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단체를 이끌어야 한다고, 늘 주변에 있겠다고 자처하셨습니다. |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2023.2.5.)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자리에 항상 함께하며 따듯한 웃음과 말을 건네주셨던 임보라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차별받는 이들과 약자에게 한없이 따듯한 온기를 나눠주셨던 임보라 목사님, 차별과 혐오, 폭력에 그 어떤 모습보다 단단하고 단호히, 앞장서 맞서셨던 임보라 목사님, 교회안으로 성소수자와 HIV감염인과 억압받고 차별에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초대해주신 임보라 목사님을 기억하겠습니다. |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2023.2.5.)
임보라 목사님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쏟아질 때 항상 성소수자의 편이 되어 자리를 지켜주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2023.2.5.)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의 성소수자들에게, 평등한 세상을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차별금지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임보라 목사님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무지개를 휘감고 연대가 필요한 어디에서나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시던 당신의 미소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2023.2.5.)
임보라 목사님은 가장 최근까지도 기독교 내 반성폭력 운동을 다지고, 조력자로 설 이들을 함께 모아 양성하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목사님이 계셨기에 부당한 세상에 홀로 부딪히며 싸우던 이들, 지쳐 눈물 흘리며 믿음의 마음과 갈등하던 많은 이들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고, 자신의 기회를 바탕으로 삼아 힘든 친구들, 동지들 곁에 설 수 있었습니다. |
한백교회 이상철 목사 (2023.2.5.)
나는 평소에 그가 지구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했었다. 지구와는 다른 감수성과 공감능력을 지닌 어느 별에서 잠시 지구로 내려와 성소수자와 동물과 장애인과 생명일반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인간들에게 보여주고는 본인의 소명을 다했다, 판단하여 다시 원래 있었던 곳으로 귀환했다고 마음을 다독이지만... 그것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 |
사회적 소수자 선교 센터 무지개센터 황용연 대표 (2023.2.5.)
어떤 사람에게는 임보라 목사님이 그리스도교가, 국가가 하지 말라는 것에 대놓고 반기를 드는 강인한 성향을 지닌 분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위 보수 신앙을 갖고 있다는 사람들은 임 목사님을 보며 펄펄 뛰었고, 때로는 이단을 운운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제가 섬돌향린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봤던 임 목사님은 그 자리에 계신 모든 분에게 마음으로 편안하게 다가가는 부드러운 분이었습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하나였던 분,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있었던 분, 이것이 임보라 목사님의 참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 (2023.2.5.)
큐앤에이 사무실 한 켠에는 임보라 목사님께서 입주선물로 주신 몬스테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을 주면 주는대로 잘큰다고 큐앤에이도 그렇게 뻗어나가길 바란다시면서요. 잘키워서 본인에게도 분양해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채 나누지 못하였네요. |
평화교회연구소 (2023.2.5.)
한국 교회가 더욱 평화로 나아가는 데 힘써오셨던 故 임보라 목사님을 마음 깊이 추모합니다. 목사님의 가족들, 그리고 함께 해오셨던 모든 이들에게도 위로가 있기를 빕니다. 혐오와 차별의 경계를 허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루어오신 목사님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캐나다연합교회 무지개 연대 Korean Rainbow United (2023.2.5.)
우리 모임은 임보라 목사님을 통해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귀중한 씨앗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존재만으로도 빛이 났고 큰 희망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진정한 사랑과 용기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그 곳에서는 평안하시길 소망합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IT노동조합 (2023.2.5.)
목사님은 늘 투쟁하는 성소수자, 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있을 때면 먼저 달려와 함께 목소리 내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IT노동자들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목사님께 큰 힘을 얻었을 성소수자 동지들에게 위로와 연대를 보냅니다. IT노조도 목사님의 삶을 기억하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평등한 일터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2023.2.5.)
차별없는 세상,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항상 청소년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 곁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목소리 내주신 故임보라 목사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도 목사님의 삶을 잊지 않고 항상 앞서서 행동하겠습니다. |
전국청소년진보연대 소명 (2023.2.5.)
성소수자들의 엘라이로 기독교 내부의 혐오를 온몸으로 맞서 싸우셨던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임보라 목사님께서 걸어가셨던 성소수자 및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의 해방의 길을 소명이 함께 걷겠습니다. |
노동·정치·사람 (2023.2.5.)
故 임보라 목사는 가장 낮은 곳에서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십자가에 무지개를 휘감고, 기도와 구호를 함께 외치며 위로와 연대를 건넸습니다. 그 덕에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외된 이웃들은 광야 같이 외로운 곳에서도, 다른 눈으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
믿는페미 (2023.2.5.)
차별과 혐오 속에서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 임보라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
라이오네시스 (2023.2.5.)
가장 낮은 곳에서 언제나 힘이 필요한 이웃을 제 몸처럼 보살피시던 故 임보라 목사님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합니다. |
정의당 심상정 의원 (2023.2.5.)
당신께서는 숱한 공격과 모함, 그리고 혐오와 낙인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차별에 맞서 오셨습니다. 한결같이 꿋꿋한 당신이 계셨기에 우리는 차별 없는 사랑의 세계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종교의 역할은 사랑이며, 사랑의 얼굴엔 배제의 표정이 있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몸소 실천해 보여주셨습니다. 혐오를 극복하고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일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던 목사님의 외침을 만날 때면, 저는 신의 너른 품 안에서 충만함을 느꼈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 (2023.2.5.)
임보라 목사님은 한 평생 성경말씀으로, 행동으로 우리 사회 약자들과 함께 해주신 분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께 기대고 위로를 받았는데, 애석한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
인권운동사랑방 (2023.2.6.)
애도의 마음을 담아 공유합니다. 마지막 떠나보내는 시간이 따뜻하면 좋겠습니다.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2023.2.6.)
성소수자를 비롯해 모든 소외받고 낙인찍힌 이들의 곁에 섰던 임보라 목사님의 삶을 기억합니다. 혐오와 차별에 언제나 단호히 맞서는 그 모습에 많은 이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목사님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당신이 꿈꾸셨던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세상 함께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남웅 활동가 (2023.2.6.)
20년 전 청소년 성소수자 육우당이 교회의 혐오를 지탄하며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난 즈음, 목사님은 다른 종교인들을 모아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를 기리는 추모기도회를 진행하면서 애도받지 못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사람을 모았다. 2012년 학생인권조례를 사수하기 위한 농성에서는 성소수자를 면전에서 비난하는 이들에 일선에서 맞섰다. 집회를 하면 행진 선두에서 축하기도를 열며 당신 가는 길에 빛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제주 강정마을, 철거투쟁 현장을 비롯하여 사회에서 이름을 지우고 자리를 박탈하는 데 저항하고 싸우는 자리에 목사님이 있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도 목사님은 혐오로 점철된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야를 틔워주었다. 따로 부르지 않아도 목사님은 집회와 농성장에 조용히 찾아와 응원을 건넸다. 때로는 격한 방식으로 변화와 평등을 주장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당신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감각하게 했다. 눈물을 쏟아내던 퀴어 친구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는 사회에 믿을 구석 없는 이들에게 언제라도 자리를 내어줄 그루터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비온뒤무지개재단 신필규 상임활동가 (2023.2.6.)
이제는 물을 수 없게 되었지만 목사님께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목사님, 찹쌀이가 만든 근본 없는 드롭 더 비트가 하나도 웃기지 않으셨나요? 저는 죽어라 참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진지하고 태연하게 인터뷰를 하셨어요?'라는 질문이요. 하지만 어제 문득 답이 떠올랐어요. 목사님은 완전히 몰입해 계셨던 거죠. 그 소리가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처음 만난, 단체에서 활동한지 1년도 되지 않은 활동가의 질문에 저보다도 더 진지하고 진중하셨으니까요. 저는 그것이 목사님이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께 벽을 허물고 의지하고 목사님이 책임감 있게 그분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냈던 건 그래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2023.2.6.)
임보라 목사님은 성소수자들의 벗으로 알려져 있으시지만 열악한 노동자들에게도 벗이셨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잊혀가는 노동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읊어주시는 목사님의 기도를 다시 들으며 우리 열악한 노동자들에게도 긍흉한 마음을 가지셨던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
친구사이 소모임 게이코러스 지보이스 (2023.2.6.)
지보이스에게도 든든한 언덕이셨고, 따뜻한 스승이자 오랜 친구였던 임보라 목사님에게 작별인사 드립니다. 언젠가 꼭 한번 손잡고 같이 무대에 올라 불러보고 싶었던 노래,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를 가시는 걸음 앞에 드립니다. 부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
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 (2023.2.6.)
임보라, 우리들의 초록나무. 무엇보다 그는 당신과 나의 숨구멍이었고, 우리 각자의 어두움과 상처 그리고 아픈 이야기를 품어 준 비밀 창고였습니다. |
뉴스앤조이 (2023.2.6.)
최전선에서 성소수자와 함께 하던 임보라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
대전신학대학교 허호익 퇴임교수 (2023.2.6.)
2017년 예장 합동 총회는 퀴어성경주석 번역 발간과 관련된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담임,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소속)에 대해 “집회 참석 금지”로 결의했으나, 예장 합신 총회와 백석 대신 총회는 이단으로 결의했다. 2018년 예장 통합 총회에서도 조차 임보라 목사를 ‘이단성이 높으며’, 퀴어신학은 ‘이단성이 높은 신학’이라고 결의하였다. 지난 3일 임보라 목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고, 그 분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예장통합의 동성애 옹호 이단 결의의 내용을 중심으로 그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살펴보려고 한다. |
모두를 위한 열린 쉼터 라틴 (2023.2.6.)
항상 최전선에서 앞서고 싸워주셨던 목사님 모습을 저희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이제 하늘의 별이 되어서 저희를 위하여 축복해주세요. |
한국성폭력상담소 (2023.2.6.)
임보라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후원자이자 31기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수료자로 함께 해오셨습니다. 임보라님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섬돌향린교회 담임목회자로 성소수자 차별반대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오셨으며, 목사안수를 받은 후 20여년 간 다수의 성폭력 사건에서 교회 내 피해생존자 지원과 해결과정에 활동하셨습니다. 교단 내 성윤리 강령 제정과 성폭력 예방과 사건 처리 매뉴얼 작업 등을 하셨고, 보다 전문적으로 기독교계 성희롱, 성폭력 근절 활동을 하고자 했습니다.
최근까지도 기독교 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지지하고, 방청과 진술, 연구를 지속해오셨습니다. 2023년에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와 함께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 내 ‘바이스텐더 양성과정 By-Stander Trainings Program’을 준비하여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지지하고 사건 해결과 회복을 조력하는 사람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기독교 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 피해자 돌봄에 대한 훈련’을 마련하고자 하셨습니다. 본 상담소 활동가들도 이 과정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
한국여성민우회 (2023.2.6.)
2013년, 차별금지법 제정이 또다시 무산됐던 해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라는 강의로 민우회 회원들과 목사님을 만나 뵈었던 날을 기억합니다. 차별 그리고 종교라는 두 글자 속에 담긴 혐오와 폭력이 수많은 소수자들의 삶에 주는 상처를 살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던 날이었습니다. 종교계 내 성폭력 피해자들과의 연대의 자리에서, 차별없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한 수많은 자리에서 함께 했던 故 임보라 목사님의 힘 있고 따뜻했던 말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목사님의 삶의 궤적을 떠올리며 한국여성민우회도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
기독교 반성폭력센터 (2023.2.6.)
임보라 목사님은 교회성폭력 사건 해결과 지원에 앞장 선 우리의 든든한 동료였고, 선배였고, 조력자였습니다. 사건에 대해 의논할 때마다 늘 눈시울이 붉어지는 울보 연대인이자 피해자와 재판에 함께가는 동행인, 필요하다면 기자회견, 피켓팅을 마다하지 않았고 전화기를 놓지 않았던 열정적인 활동가였습니다. 교단 내에서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안마련과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화에 힘썼고 목사후보생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가 된 이후로는 센터와 함께 정기적인 목회자 성폭력 예방교육을 만들어왔습니다. 최근에는 교단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 돌봄을 위한 조력자 양성과정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
정의당 (2023.2.6.)
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하시고 인권, 평화운동에 앞장서셨던 故 임보라 목사님이셨습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언덕이셨던 임보라 목사님의 별세 소식에 정의당도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혐오는 주님의 언어가 아니라며’ 차별과 혐오에 가장 앞서 맞서며 사랑의 말씀을 전하셨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정의당은 차별없는 세상을 이 땅에 만들어가고자 하신 고인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큰 추모라 생각하고, 다시금 차별금지법 제정에 모든 노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
진보당 인권위원회 (2023.2.6.)
성소수자 차별 반대와 여성 인권, 평화 운동에 앞장서며 언제나 혐오와 차별에 맞서 행동해 오신 임보라 목사님의 삶을 기억합니다. 임보라 목사님은 기독교 내의 공격에도 아랑곳 않고 성소수자 혐오없는 사회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어오신 분이었고, 소외된 자들이 기댈 수 있었던 큰 언덕이었습니다. |
녹색당 (2023.2.6.)
한국의 일부 대형 교단은 임 목사의 이런 활동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임 목사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유무형의 폭력을 자행했다. 하지만 임 목사는 꿋꿋했다. 어디서나 “성소수자는 성경적으로도 죄인이 아니며 당연히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당당하게 밝혔다. 임 목사가 자신의 몫으로 짊어졌던 일은 단지 기독교 내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기득권 정치가 부추긴 불의와 혐오의 화살을, 임 목사는 맨 앞에서 온 몸으로 맞았던 것이다. 우리는 그 화살을 막아주지도, 함께 맞아주지도 못했던 것이다.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2023.2.6.)
억압과 차별을 조장하는 종교인들이 많은 현실에서 차별에 맞서 함께 목소리 내시던 임보라 목사님은 소중한 동료였습니다.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이 가로막히고,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논의되는 현실에서 비보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
강정친구들 (2023.2.6.)
생명과 평화를 위해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임보라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
마음충전소 결 (2023.2.6.)
임보라 목사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시고 가셨으니, 이제는 남은 이들이 한걸음씩 더 걸어가겠습니다. 그 분의 품 안에서 편안하시길 기도합니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2023.2.6.)
소수자에게 희망과 연대를 전해주셨고,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투쟁에 항상 함께해주셨습니다. 목사님의 헌신을 기억하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도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더하겠습니다. |
경향신문 손제민 논설위원 (2023.2.6)
임 목사는 “‘그냥 그대로 너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좋아. 너도 하느님의 모습이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저 또한 살기 좋은 사회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한 교인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난받으며 죽으려던 중 목사님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임 목사는 2014년 15회 퀴어문화축제를 ‘혐오의 세력화’가 현실화되기 시작한 때로 보았다. 축복 기도 현장에서 혐오 발화를 접했다. 그는 의연했다. ‘성서에 금지돼 있다’며 여성 목사 안수에 반대하던 교회였지만, 1995년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까지 방침을 바꾼 것처럼 성소수자 문제도 결국 바뀔 것으로 봤다. 하지만 종교인도 감정과 두려움이 있는 인간이다. |
가족구성권연구소 (2023.2.7.)
임보라 목사님은 성소수자를 비롯해 혐오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쫓겨나 존재를 부정당하는 소수자들에게 위로와 쉼터가 되었고, 때론 살아갈 이유를 깨닫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온갖 혐오가 사람들을 괴롭힐때 맨 앞에서 왜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맨 앞에서 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임보라 목사님께 얼마나 고마웠는지,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또한 우리가 얼마나 목사님을 사랑했는지를 듣는 애도의 자리는 없을 듯합니다.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정민석 대표 (2023.2.7.)
무엇보다 임 목사님과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0년 전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설립을 함께 기획하며 교회 공동체의 역할과 책임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든든하고 힘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없었다면, 그리고 섬돌향린교회 교인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지금의 띵동은 없었을 겁니다. 특별 기부금을 모아주는 것부터, 청소년 상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시는 것까지 목사님이 다 해주셨으니까요. 모든 것이 막연했던 그 시기, 잘 될 거라 격려해주고 늘 곁에 있겠다 약속했던 그 말 덕분에 잘 버텨왔습니다. |
군인권센터 (2023.2.7.)
신의 이름을 빙자해 변희수와 성소수자 군인들에게 칼날 같은 말이 쏟아질 때, 혐오는 신의 언어가 아니라는 당당한 위로로 꿈을 이어갈 수 있었던 수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비수로 꽂히던 시간을 나누어 아파해주셨던 분, 기꺼이 위로의 기도로 안아주셨던 분. 임보라 목사님의 별세가 아프고 황망합니다. 여전히 많은 소수자들이 군대를 두려워합니다. 시간은 인권의 편이고, 군대도 조금씩 변해간다지만 한편으로 더딘 변화를 감당해야 할 수많은 두려움을 돌보는 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그 가르침을 이어가기 위해 늘 고민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 장예정 공동집행위원장 (2023.2.7.)
목사님, 저희가 잘하는지 지켜봐 달라거나, 당신이 떠나서 슬픈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거나 하는 말씀은 안 드리려고요. 발언 요청, 농성장 방문, 기도회 집전 같은 연락만 드렸던 것 같아서,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려서 이제 아무 부탁도 안 드릴 거예요. 이렇게 목사님 이름을 여러 번 부르는 것도 마지막일 겁니다. 아, 그러나 딱 한 번은 꼭 당신 이름을 부르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마침내 차별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순간이요. 그때 딱 한 번만 저희를 내다봐 주세요. 저희가 차별금지법을 만들고 당신 이름을 부르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
노동당 충남도당 (2023.2.7.)
목사님께서는 보수 기독교계가 배척하는 성소수자의 편에 서주셨으며, 그들과 고난을 함께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 연대’ 활동과 ‘퀴어성서주석’ 번역 작업 참여 등 보수 기독교계의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환대와 평등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데 평생을 바치셨으며, 혐오와 차별로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하고 낮은 곳이 병들고 있는 지금, 벌써부터 목사님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다가옵니다.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2023.2.7.)
오늘 성소수자인권, 여성인권을 비롯하여 소수자인권, 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비롯한 평화운동에서 헌신하였던 임보라 목사님이 땅에 묻힙니다. 고인이 생전에 헌신했던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평등과 존엄의 세상을 향한 당당하고 따뜻했던 그 마음과 실천 잊지 않겠습니다. |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조년 명예교수 (2023.2.7.)
그는 차별하는 것 없이 모두가 다 평등하고 자유롭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손을 마주 잡는 사회를 아주 치열하게 꿈꾸고 실천하던 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는 그를 직접 만나고 그가 추진하는 일에 참여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이 알려지고 보도될 때마다 맘으로 적극 지지하고 찬성하며 밀어주었었다.
장애, 나이, 성별, 인종, 출신신분, 성적지향, 성정체성에 관계없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법이 제안되고 제기된 지 15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제정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어떻게 나오고 생겼든 있는 그대로 똑같이 존귀한 존재라고 여겨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또 차별을 받거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
장애여성공감 (2023.2.8.)
임보라 목사님, 그동안 목사님과 함께여서 수많은 소수자들이 살아갈 힘을 얻었고 서로를 지키며 일상과 세상의 변화를 같이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성평등한 세상,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 우리 모두가 오기를 희망했던 봄. 앞으로 반드시 맞이해야 할 봄을 위해 세상의 부정의에 맞서서 외면하지 않고 싸우셨던 임보라 목사님이 걸어오신 길을 늘 떠올리겠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의 후원회원으로 장애여성 운동을 지지해 주신 임보라 목사님의 뜻을 기억하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현장에 장애여성 운동이 더 힘 있게 발딛고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
섬돌향린교회 (2023.2.8.)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무지개 다리 건너의 벗들에게 가는 임보라 목사님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임보라 목사님이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낯설고 두렵지만, 항상 그러했듯이 기운으로, 함께 했던 추억으로 우리 옆에 있을 임보라 목사님을 기억하며 섬돌을 놓겠습니다.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성정의위원회 남인석 활동가 (2023.2.8.)
남기고 가신 뜻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저희들이 힘모아 이어갈게요. 부디 편히 쉬세요. 목사님 같은 스승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섀도우캐비닛 김경미 대표 (2023.2.8.)
그의 사진 앞에 꽃을 놓고 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그를 왜 데려가셨을까' 대신 '어떻게 하면 그가 달려온 길을 잘 이어 달릴 수 있을까'를 묻기로 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전 생애를 걸며 달릴 수는 없겠지만, 이어달리기하다 나의 안온한 삶이 흔들릴까 주저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질문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것이 남은 자의 몫이고, 그와 동료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
전 섬돌향린교회 정유현 전도사 (2023.2.9.)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기어이 감당해내는 그를 보면서 나는 때때로 물었다. “목사님 괜찮으세요?” 그럼 그는 늘 “예,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라고 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는 “괜찮아지겠지요. 쉽지 않지요”라는 말도 들으면서, 나마저 그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함께 일구는 목회 활동에서 각자 버티느라 쓸쓸하기도 했으나, 그의 단단한 등을 보고 의지하며 나아갔다. 나뿐만 아니라 정말 모두가 그랬다. |
강동 반려견순찰대 키움 (2023.2.9.)
지난 2월 4일 밤늦게 반려견 모임 밴드에 갑자기 부고장이 떴다. 찹쌀이 보호자가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찹쌀이는 그녀의 반려견이다. 그녀는 우리 모임의 기둥이자 지주 역할을 하였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찹쏴리 또는 찹쌀쓰라고 불렀기에 그냥 찹쌀로 통했다. 다시 그녀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애통하여 장례식장에 가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더 놀란 것은 찹쌀쓰가 임보라 목사였다는 것이다. 우리 회원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그녀는 알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
비온뒤무지개재단 선영 사무국장 (2023.2.10.)
임보라 목사님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 아주 새삼, 그의 기도 속에 얼마나 많은 이름이 담겼을지 떠올렸다. 작지 않은 장례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계속해서 밀려들던 조기와 조화와 사람들. 그리고 울음소리. 크고 번듯한 교회 건물도 없고, TV에 나와 웅장한 설교를 하는 것도 아닌, 출석 교인 100명을 넘지 않는 작은 교회 목회자의 장례가 이렇게 번잡하려면, 그는 얼마나 많은 것은 베풀고 살았다는 뜻일까.
나는 그 자리의 많은 이가 나처럼 그에게 기도 빚을 졌으리라 짐작해 봤다. 어디 나뿐일까. 그의 존재에 기대어 교회 공동체에 남을 수 있었던 성소수자 교인들이, 구럼비를 지키던 제주 사람들이, 철탑 위의 노동자들이, 낙인찍힌 신학생들, 쫓겨난 상인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 여성과 장애인들, 이주민과 난민들이, 유기된 동물들이 모두 그의 기도 속에 있었을 것이다.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엄기호 교수 (2023.2.11.)
그는 어디에서나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개신교의 활동가 오수경씨가 알려준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임보라 목사는 오키나와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했다. 사실 오키나와에서는 일본어만 할 줄 알아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오키나와어를 배웠다. 한국인과 함께 오키나와를 방문하면 그들의 말로 통역하며 방문자와 현지인을 연결했다. […]
임보라 목사는 이처럼 언제 어디서나 소수자의 언어로 듣고 말함으로써 소수자가 존재 증명을 하지 않아도 됨을 증명한 사람이다. 그의 주변에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많은 소수자가 모여들어 위로받았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배우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며 소수자들의 친구가 됐다. |
강정평화네트워크 호수 활동가 (2023.2.20.)
임보라 님을 처음 알게 된 건 강정 투쟁 개신교대책위원회를 만났을 때였다. 교회를 다니다 그만 둔 나는 당시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컸고 개신교 그룹이 방문할 때면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다 개신교대책위의 꾸준한 연대와 방문으로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때 남성 사역자들 사이에 유일한 여성 목사인 임보라 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후 모임에서 본 임보라 님은 먹을 것을 챙기고 지킴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하려고 하기 보다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답했다. […] |
정리 /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