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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5 : 바다
2022-12-30 오후 14:03:35
136 0
기간 12월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는 다시 새로 시작하는 친구사이 구성원 인터뷰입니다.

(기획의도 등은 https://chingusai.net/xe/index.php?mid=newsletter&page=2&document_srl=620205 참고)

인터뷰 대상은 친구사이(소모임, 사업팀 등 모두 포함)에서 활동 중이거나 활동했던 퀴어 당사자 모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께서는 언제든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 인터뷰 신청 링크: https://forms.gle/h2BsEmMNBsoQko2e7

 

 

 

[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5

: 바다(책읽당)

 

 

1. 들어가며: 책읽당 홍보 타임
2. 어린 바다: 마음을 메워가며 쓴 논문
3. 게이 바다: 너 만난다는 사람, 위에 달렸어 아래 달렸어?
4. 상담사 바다: 일 좋은데, 돈 좀 더 주세요
5. 마무리

 

 

        바다는 지난 2022년 동안 친구사이 내 독서 소모임인 책읽당에서 홍보를 담당해왔다. 올해 책읽당에 문의 메일을 보내본 적이 있다면, 바다가 보낸 답장을 받았을 것이다. 책읽당에 처음 발을 내딛기 위해 메일을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다는 그런 복잡한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며 소통해왔다. 그의 메일을 보면, 정중한 환영과 책읽당에 대한 정확한 소개가 함께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덕분인지 2022년 한 해동안 두 자릿수가 넘는 신입 회원들이 책읽당에 들어와 꾸준히 모이고 있다. 바다에게 소식지 인터뷰 나와서 책읽당 홍보라도 한 번 하라는 제안을 가볍게 한 적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그 제안을 기억하고 있다가 어느 날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1. 들어가며: 책읽당 홍보 타임

 

플로우(질문자, interviewer)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바다(답변자, interviewee) 중간에 목이 많이 막힐 수 있어요. 감기 걸렸거든요.

 

플로우 (ㅎ) 감기 들린 목소리로 오늘 바다 님의 인터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원래 친구여서 그냥 반말로 할까 하다가, 친구끼리 나누는 수다와는 좀 다른 포맷으로 대화를 나눠본다는 의미로 저는 경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바다님은 본인이 편하신대로 하면 돼요.

 

바다 (고상하게) 알겠어용. 

 

플로우 어우 어쩜 이렇게 끼스러운지 몰라.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바다 저는 바다라고 합니다. 친구사이 산하 독서모임인 책읽당에서 운영진을 하고 있고, 역할은 홍보 담당입니다. 책읽당에는 아마 2018년, 2019년쯤에 나왔던 것 같아요. 좀 헷갈리네요. 최근에는 책읽당에서 왈가닥이 되어 가는 중이에요. 

 

플로우 그렇더라고요(웃음). 닉네임을 ‘바다’로 쓰고 계세요. 예전에 책읽당에서 하셨던 인터뷰를 보니까, ‘내 고향의 바다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라고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바다라는 닉네임을 쓰고 계신 건가요?

 

바다 네. 아무래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많이 봤어요. 그래서 바다를 보면 좀 마음의 위안을 얻어요. 특히 노을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닉네임을 (‘노을’이랑 ‘바다’중에) 뭘로 할까 하다가 바다로 했습니다. SES 바다는 아니에요.

 

플로우 SES 좋아하시나요? 

 

바다 아뇨, 그분들이랑 연관시키지 말아주세요. 끼스러운 바다가 아니에요.

 

플로우 바다 별로 안 끼스럽지 않나요? 메인 보컬인데... 어쨌든, 친구사이는 어떻게 알게 되셨고, 그중에서도 책읽당에 꾸준히 나오고 계신 건 어떤 이유 때문이신가요?

 

바다 글쎄요, 친구사이는 검색하다가 그냥 알게 된 것 같아요. 2016년쯤에 사실 토요일에 먹을 거 싸 와서 같이 얘기하는 모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한 번 와서 그렇게 밥만 먹고 나왔던 적이 있는데 기억은 별로 없어요. 다음 해에 다시 나가보려고 보니까 친구사이 소모임들이 있고, 책읽당이 뭔가 안전해보였어요. 책 읽는 사람들이니까 좀 괜찮지 않을까? 

 

플로우 그렇다니까요. 지보이스 가면 감당 안 될 것 같아서 이쪽(책읽당) 오는 사람들 많아요.

 

바다 지보이스는 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마린보이는 내가 수영을 못하고. 

 

플로우 그쵸. 수영복도 사야 되고. 어머. 그러고 보니 초면에 탈의실도 같이 쓸 거 아냐! 

 

바다 (...)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플로우 그렇구나. 그래요. 

 

바다 무튼 책 읽는 모임이 제일 만만해 보였어요. 책만 읽고 가면 되니까. 

 

플로우 책읽당에서는 뭐 썸 좀 없었어요? 처음엔 애인 만나러 나오셨다고 알고 있는데,

 

바다 (눈을 흘기며) 아쉽게도 없었어요. 그때도 약간 제가 많이 긴장했던 때였어요. 누굴 사귀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니까 더 긴장했던 것도 있고, 친구들은 제발 그냥 마음 편히 가라고 하는데,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또 1년 가까이 쉬었어요. 대학원 공부가 바쁘기도 했고, 그러다 오히려 밖에서 연애를 시작하면서 여유가 생겨서 편하게 다시 책읽당에 나왔어요. 좀 더 내가 편하게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플로우 책읽당에서 다루는 책들이 평소 좋아하는 책들이랑 좀 맞는 것 같으세요?

 

바다 사실 그 전에는 책을 많이 안 읽긴 했어요(웃음). 그래서 오히려 책읽당 덕분에 한국 소설도 읽게 되고 사회적인 책들도 읽게 되어서 좋아요. 나랑 뭔가 호흡이 잘 맞다고 느껴지는 책은 박상영 작가의 책이에요. 

 

플로우 올해 책읽당에서 박상영 3부작 다 했잖아요.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 그리고 ‘믿음의 대하여’요. 그 세 개 중에는 뭐가 제일 좋았어요?

 

바다 각자 다른 포인트에서 다 좋긴 했는데, 종합적으로는 ‘1차원이 되고 싶어’가 좋았어요. 10대 얘기고, 또 장편이고 그래서 스토리에 빠져들 시간을 확실히 주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거기 괴롭힘당하는 친구가 나오잖아요. 태리라고. 그 친구한테 좀 몰입이 된 것 같아요.

 

플로우 올해 책읽당 운영진에서 홍보를 맡으셨는데, 일하면서 힘든 건 없었어요?

 

바다 힘들다는 느낌은 없고, 신경은 좀 쓰는 것 같아요. 우선 외부 분들이 책읽당 공식 메일로 문의를 해오면 그 답변을 제가 보내요. 모임이 어떻게 진행되냐, 정회원은 어떻게 되는거냐, 이런 물음들이죠. 어느 순간 ‘내 답신 메일이 이 사람한테는 책읽당 첫 이미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친절하고 따뜻하게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또 어쨌든 단체의 공식 메일이니까 오피셜한 느낌도 줘야 할 것 같고. 그렇게 메일의 톤을 신경쓰면서 보내고 있죠. 또 공지를 올릴 때는 이게 외부에도 나가는 거니까, 한 글자라도 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좀 신경쓰였어요. 처음 공지 올릴 때는 5시간쯤 걸렸던 것 같아요. 

 

플로우 그렇게 공들인 공지인지 몰랐어요. 새삼 반성이 되네요.

 

바다 처음엔 너무 불안해서 그랬죠.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금방 올려버려요. 그래도 오타 날까봐 신경은 여전히 쓰이죠. 
       그리고 다른 운영진들이랑은... (긴 침묵)

 

플로우 (웃음) 왜요? 막내라서 고생해요? 시원하게 다 욕하고 오프 더 레코드 해도 돼요. 

 

바다 아유 진짜 X빠지게 하고 있어요. 뭐 농담이고... 그러니까 제 조급함 때문에, 멤버들한테 공지해야 하지 않나 싶은 것들을 저는 미리 사전에 다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최대한 빠르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다른 운영진들이 딱히 그렇지 않다면 저는 기다려야 되는 거죠. 나는 급해서 ‘이거 미리 해야 되지 않아요?’라고 생각하는데, 형들은 그렇게 안 해도 다 때 돼서 하면 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플로우 남의 속도 모르고 형들이 참 느긋하구나.

 

바다 뭐 사실, 남의 속 몰라도 되죠. 나 혼자 급한 거니까. 나는 계획적으로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니까, 그러다 보면 왜 안 하지 막 이렇게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거예요. 근데 다시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 나중엔 굳이 뭐 말 안 해도 형들이 잘 알아서 해준다는 믿음이 생겼죠.

 

플로우 저는 그냥 평당원으로서 생각했을 때, 올해 책읽당이 큰 행사도 잘 치렀고, 문제없이 굵직한 일들을 지나왔다는 느낌을 받아서 되게 좋았어요. 운영진 팀워크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고요. 

 

바다 아, 물론 친목으로는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저에게 팀워크의 기준은 소통을 미리 해놓고 계획을 나누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서, 팀워크가 좋았는지까지는 모르겠고요(웃음).

 

플로우 (웃음) 선을 확실하게 그으시네요. 냉정하게 팀워크는 별로였다.

 

바다 네. 다만 각자가 각자의 일을 잘 해낸 건 확실해요. 또 뒤에서 제가 모르는 일들을 형들이 많이 한 것 같아요. 사람들을 잘 챙겼던 것 같고, 그래서 잘 되지 않았나 싶어요.

 

플로우 임기가 얼마 안 남은 홍보팀장이지만, 책읽당 홍보 한 번 부탁드릴게요. 책읽당에 나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은둔 게이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바다 우선, 책읽당은 잘생기고 예쁜 게이들이 많고요.

 

플로우 ? 허위광고해도 되는 거예요? 어디서 그짓말을...

 

바다 (웃음) 아니 좀 가만있어봐. 사실 누가 책 보러 오겠어요.

 

플로우 (웃음) 그건 그래. 

 

바다 아무튼 그리고 게이들이 커뮤니티 입문하기에 책읽당이 괜찮은 이유는, 일단 사람들이 수용적이에요.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 수용적이고요. 물론 저도 가끔씩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지만, 그냥 잘 받아주는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아요. 함부로 다른 사람한테 잣대를 대고 판단을 하지는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비난하지도 않고 좀 이해해 보려고 하는 그런 공간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처음에 오면 따뜻한 뭔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플로우 친구사이에서 해보고 싶은 다른 활동이 있나요?

 

바다 책읽당 안에서 소소하게 놀러 가는 모임 만들고 싶긴 해요. 친구사이에도 놀러와 프로그램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책읽당 안에서도 해보고 싶어요. 뭐 예를 들어 환경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하면, 같이 쓰레기를 주우러 가는 자원봉사를 가본다든지, 이런 거 해보면 좋겠어요.

 

플로우 그런 프로젝트를 하려면 내년 총재를 하셔야겠네요. 방금 말씀을 총재 출마의 변으로 알고, 총회 때 바다님을 적극 추천하겠습니다.

 

바다 닥치세요. 

 

 

인터뷰 2주 뒤에 책읽당은 총회를 통해 2023년 새 총재를 선출했다(ㅎ). 나의 기대와 달리 바다는 출마하지 않았다. 새로운 총재가 누군지 별로 안 궁금하겠지만, 혹 궁금하다면 새해부터 책읽당에 나와보실 수도 있겠다. 참고로 2023년 첫 모임은 1월 14일 토요일 오후 4시 종로3가 근처로 예정되어 있다. 기타 상세 문의는 변함없이 아래 메일 주소로 하면 되지만, 이제 바다가 메일에 답장하지는 않는다.
 (책읽당 대표메일: 7942bookparty@gmail.com)

 

 

2. 어린 바다: 마음을 메워가며 쓴 논문

 

 

플로우 바다님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참고해볼 만한 자료가 없을까 하다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쓰신 논문을 찾게 됐어요. 내러티브 방식을 채택한 연구여서 논문에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인터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귀한 자료였는데요. 어린 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렸을 때 받은 충격을 어떻게 소화하고 흡수해서 지금의 바다가 되었는지를 볼 수 있었어요. 

 

바다 네, 맞아요. 

 

플로우 그래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조금 물어보려고 해요. 논문을 읽고 이해한 바로는, 크게 두 가지 충격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이고, 다른 하나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간 것이었어요. 우선 부모님의 이혼 전후로 본인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장면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를 하셨어요. 무섭고 떨리는 기억이었을 것 같은데, 이 기억을 말로 옮기기까지 굉장히 마음에 힘이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바다 일단 논문의 서문이 제 이야기로 시작되잖아요. 서문이 순서는 제일 앞인데, 논문 쓸 때는 제일 마지막에 썼어요. (본론에 나오는) 다른 연구참여자들의 이야기와 관련된 논의, 결론을 다 쓰고 나서 제 이야기를 쓴 거죠.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쓰면서, 내러티브적으로 글을 쓴다는 게 어떤 건지를 먼저 배웠던 것 같아요. 각 사람들의 경험이 무엇이고, 그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갖고 퍼져나가는지, 참여자들을 만나서 묻고 답하면서 연습하다 보니까 이야기를 푸는 힘이 생긴 거죠. 제가 실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제 이야기를 쓸 때쯤엔 표현력이 잘 길러졌던 것 같아요. 그 글이 사실 굉장히 감정적으로 쓰여졌어요. 쓰면서 계속 울었거든요. 사실 지도교수님은 그 글에서 감정을 좀 빼라고 했었어요. 근데 제가 막판에 수정을 많이는 못 한 바람에 그만... 좀 감정적인 글이 그대로 (논문에) 실리게 된 거죠.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 간 것도 어린 시절의 저에겐 큰일이었어요. 5학년 때까지는 날뛰고 왈가닥이었던 제가 전학을 가면서 갑자기 훅 기죽고 의기소침해졌어요.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됐어요. 그때 친구 관계를 맺었던 경험들이, 저의 청소년기에도 좀 영향을 미치기도 했거든요.초등학교 2학년 때의 경험 초등학교 6학년 때 경험 굉장히 큰 발자국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플로우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지도 중요하지만, 이 기억을 글로든 말로든 언어로 옮기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억을 떠올리는 게 너무 괴로워서, 감정이 마음을 압도해버리면 오히려 글로 잘 안 맺혀질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용기를 내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바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려면 제가 성장하기 이전에, 대담하지 못하고 나를 지키기에는 아직 어려웠던 그 시기의 경험들이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상담을 공부하면서 저를 드러내는 연습을 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도, (대학원) 동기들과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꾸준히 나를 탐색하고 돌아봐야 하고, 나를 공개해야 되니까, 그런 일을 반복하다보니 (내 과거를) ‘조금 보여주면 어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나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좀 이렇게 힘들게 살았어’ 라고 말하면서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렇게 쓰기도 했어요.

 

플로우 쓰고 나니 스스로한테 위로가 많이 됐나요? 쓰는 과정에서나, 쓰고 난 뒤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었다거나.

 

바다 일단 쓰면서 굉장히 많이 울었으니까, 그게 위로라면 위로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경험에 다시 좀 흠뻑 빠졌다고 해야 하나. 흠뻑 빠지면서 충분히 슬퍼할 수 있었어요. 

 

논문 쓰면서 울었다는 대학원생은 여럿 봤지만, 바다의 울음은 그 성분이 여느 대학원생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아팠던 나를 위해 진심으로 충분히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이 된 나뿐이라고 생각한다. 바다는 어린 바다를 위해 기꺼이 울었고 어린 바다를 위로했다. 

 

 

플로우 여러 글을 보면 바다님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던 화두가 ‘아버지의 부재’였던 것으로 보여요. 논문에서 제가 좀 인상 깊게 봤던 건, 서두에 있는 ‘감사의 말’에 친아버지를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었어요. 오히려 어머니와 지금 함께하고 계시는 아저씨께는 감사 표시를 하셨고요. 논문을 쓰던 시점에 여전히 친부에 대한 원망이 있으셨다고 간접적으로 추론을 해볼 수 있었는데요. 지금 시점에서 아버지를 떠올려보시면 어떠세요? 그때와 감정이 다른가요?

 

바다 여전히 원망은 해요. 그 감정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랑 지금이랑은 또 마음이 달라요. 돌아가신 이후 한동안 ‘좀 더 용기를 내서 아빠랑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걸’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좀 더 얘기를 해봤어야 했나 싶었죠. 제 마음에 빈 유리잔이 있는데, 아빠로부터 채워져야 하는 유리잔인데, 밑바닥에 자갈만 조금 깔려 있는 거예요. 난 아빠의 사랑을 이것밖에 받지 못했는데, 이 빈 유리잔은 이만큼이나 많이 남아 있는데, 이 공간을 채워나가야 갈까 이런 생각도 좀 들었어요. 
상담을 받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그렇게 내가 용기를 내서 대화를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그런 대화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플로우 아버지가 만일 다시 살아오신다고 해도, 그런 대화는 어려울 것이다.

 

바다 그렇죠. 본인이 지금껏 왜 그렇게 살아왔었는지 저에게 얘기하고, 제가 원하는 만큼 서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거죠. 그렇게 조금 객관적으로 보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아빠가 돌아가셨지만 내가 살아갈 만하네’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밑에 자갈만 조금 깔려 있는 유리잔이지만, 여전히 비어 있지만 이 잔 갖고 나는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연히 원망은 들지만, 이 원망 갖고 잘 살아가야죠. 그리고 아빠는 대체 왜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하고 도박을 하고 계속 자신한테 해로운 선택을 했을까도 의문이 컸거든요.

 

플로우 그 의문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건가요? 

 

바다 아뇨. 아버지 장례식에서 들었던 의문이에요. 빈소를 지키느라 며칠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아빠가 왜 그랬을까’ 생각이 계속 맴돌더라고요. 발인 마치고 화장터에서 큰아빠들이랑 고모랑 기다리는데, 제가 그분들께 물어봤어요.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돌아오는 말이 ‘착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 말 잘 듣는 사람이었다’라고만 하는 거예요. 뭘 제대로 알 수가 없었어요. 
여전히 왜 그렇게 살았는지 알 수 없는 게 너무 답답했어요. 알 수 없는 일을 붙들어봤자 달라질 겐 없다고 생각했죠. 그 이유는 아빠만 알고 있겠구나, 어쩌면 아빠 자신도 모를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조금 의문을 놓게 됐어요.

 

플로우 그렇군요. 

 

바다 그리고 아까 (아빠 살아있을 때) 좀 더 용기 내서 대화해볼걸, 하면서 후회했다고 했잖아요. 근데 제가 시도를 안 한 게 아니더라고요. 군대에서 전역하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때 해 봤어요. 그때 상담을 받은 이유는 제가 나중에 사회복지사나 상담사가 되었을 때 아빠의 빈자리 때문에 역전이(counter transference, 상담자 개인의 미해결된 무의식적 갈등과 발달상의 고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바다 주, '정신분석으로 상담하기(장정은, 학지사(2021))' 참고)를 일으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였어요. 이를테면 저처럼 아버지의 부재를 겪는 내담자를 봤을 때 뭔가 더 마음이 쏠리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때 상담 선생님이 설정해줬던 목표 중 하나가, 아빠한테 ‘나 섭섭했다’라고 말을 하는 거였어요. 
다행히 제가 상담이 종결되기 전에 그걸 하고 왔어요. 어느 날 아빠랑 밥을 먹는데,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아빠한테 ‘그때 아빠 왜 그랬어. 우리 몇 년 동안 만나지 않았을 때 좀 섭섭했어’라고 말했어요.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도 좀 힘들었다.’고 하는 거예요. 말은 사과한 건데, 사실 그게 사과처럼 안 느껴졌어요. ‘아빠도 힘들었다는 걸 좀 봐줘라’ 라는 느낌이었거든요. 

 

플로우 그렇군요. 변명하고 핑계대는 것 같고. 

 

바다 네. 그리고는 분위기가 싸해져서 아무 말 없이 서로 밥만 먹다가, 아빠가 이제 그만 가라고 했었나, 그래서 어색하게 아빠를 식당에 남겨두고 나왔거든요. 기분이 이상하긴 했는데, 어쨌든 상담의 목표는 이루었던 거였으니까, 난 아빠한테 그래도 한 번 용기 내서 말을 해봤던 거니까, 내가 막 그렇게 후회할 필요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플로우 역전이 말씀하시니까 생각난 다른 에피소드가 있어요. 이것도 바다님이 논문에 적어 주신 내용인데요. 대학생이 되신 뒤에 본인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청소년 자활지원관에서 봉사자로 일을 하다가, 비슷한 환경에 있던 멘티에게 굉장히 잘해줬다고 하셨어요. 바다님은 그 친구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어서 다가갔는데, 그 멘티는 이제 바다 님을 스멀스멀 피했다는 이야기였어요. 바다님이 어느 순간 ‘내가 얘한테 잘해주는 게 아니라 과거의 나에게 잘해주고 있는 거구나’라고 깨달으셨다고 했는데, 저는 이게 큰 통찰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그 멘티와의 이야기가 좀 궁금합니다.

 

바다 일단 그 아이도 아버지가 살아계시긴 했지만 사실상 없는 상황이었고, 그 아이가 혼자 살아내야 하는 시기였어요.
저는 멘토가 되면서 막 밥도 사주고 싶고 영화도 보여주고 싶고 그랬어요. 근데 이런 친절도 그 아이가 필요로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냥 어린 시절에 저한테 제가 받고 싶었던 걸 막 그 애한테 해줬던 거죠. 걔는 그런 친절이 굉장히 부담스러웠겠죠. 그게 친절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요. 비유하자면 저에겐 그 사랑이 저한테는 동그라미였고, 그 아이에게 사랑은 네모였던 것 같아요. 저는 계속 동그라미를 준 거죠. 당연히 그 애는 왜 이렇게 이 멘토 형은 선을 넘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연히 저한테 거리를 뒀을 거고요. 
시간이 흘러서 제가 대학원에 합격하면서 청소년 자활지원관 봉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서울로 가게 됐는데, 떠나기 전에 그 친구랑 얘기는 한번 하고 싶더라고요. 이것도 제 욕심이었을 수도 있죠. 그래도 그때 그 친구한테 그대로 말했던 것 같아요. 제가 저희 아빠 얘기를 하면서, ‘사실 내가 내 욕심 때문에 너한테 그렇게 잘해줬던 것 같다’라고 말을 했어요. 그 친구도 그 말을 잘 받아들이면서 이해한다는 반응이었고요. 

 

플로우 개운하셨을 것 같아요. 예비 상담사로서 좌절감을 느꼈을 수도 있는데, 그걸 매듭을 잘 짓고 오셨네요.

 

바다 정말로 매듭을 지은 느낌이긴 했어요.

 

바다는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생겨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까지 감추지 않고 직면하고 있다.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남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상담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과 언어를 훈련했음을 알 수 있었다.

 

 

플로우 어린 시절 두 번의 충격 사이에 시간차가 있잖아요. 부모님의 이혼은 2학년이고, 전학은 6학년이었는데. 전학 가기 전 5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계속 명랑하게 살았다고 하셨어요. 수련회 장기자랑도 나가시고. 무슨 노래로 장기자랑 하셨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넘어가고요(웃음).
어쨌든 부모님의 이혼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수 있는데, 그 충격이 곧바로 학교생활까지 번져온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 시간을 밝게 보내셨을 수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바다 일단 그때는 돌아보면 이혼을 지금처럼 드러내도 괜찮은 때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 아무한테도 얘기를 못 했어요.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도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학교에선 평소처럼 발랄하게 지낸 거죠.
근데 또 제가 이게 불행한 일이라는 건 아니까, 좀 동정을 받고 싶었나봐요.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인가, 반에서 인기 많은 여자애가 있었거든요. 걔랑 걔 친구들한테 처음으로 얘기를 했어요. 그때는 그 친구들이 위로를 해줬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 그룹 중 한 명이 반장 선거를 나가서 자기를 뽑아달라고 하면서, 안 뽑아주면 (너희) 부모님이 이혼한 거 말할 거라고 하는 거예요. 

 

플로우 초등학교 4학년 때요? 못 됐다 못 됐어. 

 

바다 그때 저는 확실히 각인됐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이혼은 말하면 안 되는 거구나. 사람들이 수근대는구나. 그러면서 더 숨긴 것도 있고, 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외가 쪽 친척들이 많이 챙겨줬어요. 여름 되면 외삼촌이랑 외숙모가 외사촌들이랑 저까지 데리고 바다에 놀러갔던 게 기억나요. 한 번은 제가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엄마한테 말을 했는데, 첫달 학원비를 큰외삼촌이 내주기도 했고요. 액수도 기억 나요. 10만 원. 그렇게 외삼촌들이 아버지 자리를 좀 메꿔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논문 나와서 드릴 때도 ‘아버지 역할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면서 드렸고요. 그런 것 때문에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 같고요.또, 엄마가 어쨌든 힘든 와중에 저를 챙기려고 했던 기억도 있어요. 친형이 저랑 4살 터울이어서 형이 좀 늦게 들어오거나 학원 가 있으면, 저를 데리고 양식 레스토랑 갔던 게 기억이 나요. 엄마랑 되게 맛있게 돈가스를 먹었던 그런 기억들. 이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좀 5학년 때까지 그렇게 잘 버티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플로우 그러셨군요. 그러다 6학년 때 전학을 가서, 중3 때 청소년자활지원관을 만나기 전까지는 굉장히 학교 생활도 힘드셨던 것 같아요. 그때 학교가 어땠는지, 도움을 요청할 선생님은 없었던 건지, 그때를 지금 떠올려보면 어떠신가요?

 

바다 그때는 정말 많이 위축됐어요. 왕따도 당했고, 누가 나한테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데 대항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거든요. 그때는 좀 제가 순진했던 것 같아요. 순진하다는 게 맑고 순수하다가 아니라, 또래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친구한테 500원인가 1천 원을 빌려줬었는데 다음 날 제가 학교에서 만나자마자 ‘돈 언제 줄 거야’라고 얘기했었거든요. 그 친구는 ‘이따 줄게’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거예요. 그 상황을 생각해 보면, 물론 제가 요구할 수 있는 거긴 했지만, 다음 날 다짜고짜 너 돈 언제 줄 거야라고 하는 그 행동 자체가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걸 몰랐고 관계가 서툴렀던 거죠. 상대방이 어떤 감정일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많이 몰랐던 것도 있고요. 그렇게 위축된 상태에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남중을 가게 됐어요. 혈기 왕성해지는 시기니까 저같이 뭐랄까, ‘여성스러운’ 느낌이 나는 애들은 놀림 대상이 되는 거예요. 어떤 애 한 명이 저보고 ‘비키니’라고 놀렸었거든요. 

 

플로우 비키니는 처음 들어봐요. 애들이 참 창의적이네요.

 

바다 (웃음) 아니 지금 남 괴롭힘 당한 얘기에.

 

플로우 (웃음) 그러네. 미안해요. 계속 해주세요.

 

바다 무튼 그게 너무 싫어서, 근데 그거에 대해서 ‘너 하지 마’ 하지 못했어요. 제가 저항을 하면 맞을 것 같고 무서워서,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한테 몇 번 말했었는데,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고요.중학교 1학년 때 같이 밥 먹는 애가 있긴 했는데 걔한테도 그렇게 마음을 안 열었던 것 같아요. 그냥 밥 먹는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플로우 전반적으로 가드를 올리고 있었네요.

 

바다 그렇죠. 굉장히 방어적인 시기였죠. 물론 수다스럽게 얘기를 나눈 적도 있긴 했는데, 제 깊은 마음을 나누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도 몇 번의 괴롭힘은 있었어요. 집단적인 건 아니고 일진 애들이 지나가다 건드리는 식으로. 
그래도 중2 때는 조금 괜찮았던 게, 착한 친구 두어 명 정도를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됐어요. 그때도 가드를 올렸다 내렸다 하긴 했어요. 밀쳐내기도 하고 친구가 말을 붙이거나 그러면 ‘됐어’ 하면서 까칠하게 굴기도 하고, ‘얘도 언젠가는 사라질 거니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죠.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아졌어요.

 

플로우 그리고 이제 중학교 3학년 때는, 바다 님 청소년기의 안전기지가 되어 주었던 청소년 자활지원관을 찾아가게 됩니다. 줄여서 ‘청자’라고 하시더라고요. 

 

바다 맞아요. 청자라고 해요.

 

플로우 어떻게 가게 된 거예요? 또 그런 데 간다고 누구나 적응을 잘 하는 건 아닌데, 어떤 게 잘 맞아서 잘 적응했나요?

 

바다 사실 처음에는 싫어했어요. 제가 워낙 공부를 안 하다 보니까, 엄마가 공부시키려고 보냈어요. 거기서 무료로 공부 가르쳐준다는 정보를 누구한테 받았던 것 같아요. 저는 그 당시에 뭐 학원도 가기 싫었고, 그냥 억지로 갔어요. 한 달 다니다가 다시 나와야지 생각하고 갔었거든요.첫인상도 별로 안 좋았어요. 청소년 자활지원관이 그렇게 예산이 많은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허름한 건물에 임대를 해서 있는 상황이었고. 거기 복도가 지금도 기억나요. 초록색 계단을 올라가는데, 주황색 형광등이 켜 있는데 침침하고, 무튼 굉장히 허름해 보였어요. 그래서 이거 뭐야, 여기 이상한 데 아니냐면서.

 

플로우 그러게요. 사짜들인가? 아님 이단 종교인들인가?

 

바다 첫인상은 안 좋았고, 언제 그만둘까 하면서 몇 번 갔어요. 마음을 열게 된 건 거기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덕분이었어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사회복지사 선생님 한두 분 계시고 나머지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었거든요. 대학생을 그전까지는 만날 일이 없었죠. 그 당시에 거기 왔던 대학생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대부분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재학생들이었어요. 선생님들이 잘해주니까 너무 따뜻하고 좋은 거예요. 그전까지는 어른이 나한테 잘해주는 경험이 많지 않았잖아요. 학교가 저한테 그렇게 안전한 곳도 아니었고, 선생님들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신뢰감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환경에서 (청자에서) 새로운 멘토들을 만난 건데, 말도 잘 걸어주고 장난도 쳐주고, 제가 만나보지 못했던 선생님들의 모습들인 거죠. 그 선생님들한테 사랑도 받고 싶고 관심도 받고 싶고 그러면서, 좀 더 다녀볼까라는 마음이 좀 생겨났던 것 같아요.그리고 거기서는 제 여성스러운 모습들이 공격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플로우 그거 진짜 중요하네요.

 

바다 학생들은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후배들이 그런 제 모습을 재밌게 봐주는 거예요. 놀리지 않고. 그래서 제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하루는 제가 낮에 학교가 일찍 끝나서 청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같은 학년 여자애 두 명이 신난 표정으로 따라오라고 그러는 거예요. 근처에 시장이 있고 떡볶이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친구가 자기 돈 주웠다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거예요. 그냥 자기들끼리 갈 수도 있던 건데 저를 데려가는 게 너무 좋았어요. 

 

플로우 그러니까요. 진짜 친구들이 하는 행동이네요.

 

바다 걔네들이 나를 정말 친구로 받아들여준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또 저의 왈가닥 같은 모습을 재밌어하고, 좋아해줘서 고마웠어요.
또 거기서 난생 처음으로 대표를 맡게 됐어요. 스승의 날 행사 같은 걸 하면 후배들이 ‘오빠 어떻게 할까’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책임감이 꽤 컸어요. 누군가 나한테 의지하고 나를 중심으로 일이 돌아가게 되는 게 좋았어요. 그러면서 저를 편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공간이 된 거죠. 

 

플로우 그래서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봉사도 나갔던 거군요. 그러다가 대학원을 서울로 오는 시점과 맞물려서 그곳이 없어진다는 통보를 받으신 건데, 없어진다고 했을 때 마음이 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만약 그 공간이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쭉 있었더라면 어떠셨을 것 같은지도요.

 

바다 한편으로는, 저를 위해서는 청자가 없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정말 그 곳이 안전기지였어요. 그리고 누구나 안전기지가 필요하죠. 고등학교도 남고여서 조금 숨막혔거든요. 제가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청자였던 건 분명해요. 그렇지만 졸업을 하고 대학생이 되고 나면 성인으로 앞으로 나가야 하잖아요. 근데 저는 거기를 계속 안전 기지로 삼고 머물렀던 것 같아요. 물론 자원봉사자로, 실무자로 신분을 바꾸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안전 기지를 계속 떠나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크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한 거죠. 대학교 때는 동아리 아니면 학과 활동을 통해서 내 또래들, 선배들과 더 어울렸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 청자가 없는 게 내가 나를 더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플로우 없어질 거라는 얘기를 들었은 직후에는 어땠어요? 

 

바다 일단 상실감이 컸죠. 제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였는데 그게 없어져 버린다고 하니까. 내가 안전하게,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공간이었는데, 그런 장소가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그래서 제가 논문을 청자를 경험했던 저소득층 청소년들 대상으로 썼던 거거든요. 그 논문이 저한테는 애도 과정이었어요. 

 

플로우 그러네요.

 

바다 청소년 자활지원관이, 정말 소수의 청소년들이긴 하지만 그 청소년들에게는 굉장히 깊은 안전 기지였고 지지대였는데, 이게 없어지면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저의 아련한 마음도 녹여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논문을 다 쓰고 나서, 친하던 청자 후배한테 난 이제 여기 끝났어. 이제 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후배들도 안 만날거야. 이렇게 괜히 말했어요. 난 이곳을 떠나보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상실과 애도의 경험이었던 거죠

 

플로우 그 당시에 청자에 있던 청소년 친구들은 그 뒤로 어떻게 됐어요? 

 

바다 저희 지원관이랑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던 지역아동센터가 있었어요. 거기로 들어가게 된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도 원래 있던 친구들이 있을텐데, 청자에 있던 한 그룹의 친구들이 한꺼번에 들어가니까 갈등이 좀 생겼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애들이랑 가끔 개인적으로 만나서 얘기 들어주는 것밖엔 없었어요. 마음이 좀 아팠어요. 그 애들한테도 청자가 안전 기지였을 건데, 어쩌면 그 애들은 상실감이 더 컸겠죠. 저는 그래도 성인이 돼서 거기를 두고 애도한 건데, 걔네들은 다니고 있는 당시에 없어졌던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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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제주도의 바다. 여러 방식으로 어린 시절을 잘 떠나보냈지만, 바다는 여전히 '제주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3. 게이 바다: 너 만난다는 사람, 위에 달렸어 아래 달렸어?

 

 

플로우 이제 바다님이 게이로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얘기해볼까 해요. 일단은 스스로가 게이라는 걸 느낀 건 언제인가요? 

 

바다 중학교 2학년 때요. 첫사랑이 있었어요. 

 

플로우 이거 길게 좀 얘기해주세요(웃음). 

 

바다 (민망) 아니, 그래서... 그 애는 저랑 너무 다른 애였어요. 저는 그 당시에 공부도 못했고, 평균 50점 이렇게 나왔을 때였으니까요. 애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애도 아니었고. 근데 걔는 반에서 거의 1, 2등을 다투는 애였어요. 공부 잘하고, 키도 컸고. 

 

플로우 어머. 왜 내가 설레는 거야.

 

바다 그러니까요. 왜 난리에요? (웃음) 사실 그땐 그 친구가 저랑 접점이 사실 없을 때였어요. 같은 반이긴 했는데 얘기할 일은 딱히 없는. 어느 날 담임선생님 너희들 앉고 싶은 대로 한번 앉아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일진들이 왼쪽 뒷자리를 다 차지한 거예요. 일진들하고 걔네 심부름하는 애들하고요. 할 수 없이 오른쪽 앞자리에 앉았는데, 짝사랑했던 그 친구가 제 뒤에 앉았어요. 전 공부도 못하는데 앞에 앉았거든요.

 

플로우 공부랑 무슨 상관? 짝사랑 근처에 앉으면 됐지.

 

바다 저랑 친하던 친구 두 명도 근처에 앉았고, 그렇게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면서 말을 좀 텄어요. (잠시 침묵) 멋있잖아요. 공부 잘하고 키도 크고.

 

플로우 잘생겼어요? 

 

바다 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얼굴이거든요. 근데 제가 평범한 얼굴을 좋아해서...(웃음)

 

플로우 그렇군요. 평범식.

 

바다 그래도 피부도 하얗고, 여드름은 있긴 했지만... (문득 생각남) 아 근데 그게 통했다. 그 당시에 후르츠 바스켓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거든요. 순정만화인데, 걔도 그걸 알고 저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말이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그때 캐릭터 명찰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거 프린트해서 나눠주고 그러면서 친해졌죠. 

 

플로우 그런 거 중요하죠. 만화 같이 보고.

 

바다 아 맞다. 어느 날은 제가 등교를 하고 있는데, 걔가 뒤에서 제 눈을 딱 가리는 거예요.

 

플로우 (!!!) 어우 어머 유죄야 유죄. 이거 진짜.

 

바다 (빵 터짐) 무슨 유죄야.

 

플로우 X나 유죄야. 당장 구속시켜.

 

바다 그래서 저는 모르는 척 했죠. 누구야? 누구야? 이러면서. 

 

플로우 야 너도 보통 아니다. 끼부려 아주.

 

바다 저보다 키 큰 애가 이렇게 제 눈을 뒤에서 가리는데 얼마나 설레겠어요. 그렇게 장난치면서 같이 등하교도 같이 하고. 이제 제가 용기 내서 같이 집에 가려고 그 친구를 부르면, 예를 들어 이름이 철수라고 하면, ‘철수야’ 한 다음에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철수가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는, 얼굴을 들이면서 왜? 왜? 하는데 그런 것도 너무 설렜죠.

 

플로우 철수 이XX 아주 상습범이네. 원래 짝사랑이 하는 모든 짓은 다 유죄야. 

 

바다 그 친구(철수)를 생각하면서, 이게 일반적인 친구를 바라보는 마음하고 좀 다른 로맨틱한 거라는 거를 감지했었어요. 책을 보다 보면 걔만 생각나더라고요. 공부에 집중도 안 되고, 걔 뭐하고 있을지 생각만 나고.

 

플로우 청소년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 같아요. 그 친구는 언제까지 좋아했어요? 

 

바다 1년 넘게요. 중3 올라가서는 다른 반이긴 했지만, 그때도 좀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플로우 3학년 때는 걔만한 애가 없었나보다. 

 

바다 없었어요. 중2때 거의 유일한 좋은 기억이었죠. 그 친구 덕분에 위축된 상태에서 좀 마음도 훈훈해지고 여유도 생긴 것 같고요. 어쨌든 그 친구 때문에 한 사람을 놓고 찐하게 그런 감정을 느껴봤으니까요. 

 

플로우 바로 그냥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셨어요? 아니면 소위 말하는 디나이얼(denial,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부인하는 상태-작성자 주) 기간이 있었나요? 

 

바다 부인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긴 했어요. ‘나는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날 거야’ 이런 식으로,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들이 은근히 있었던 것 같아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릴 때, ‘옆에 아무도 없을 거야. 나 혼자 살아가게 될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했었어요. 

 

플로우 아예 여자든 남자든 누구도 내 옆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요? 

 

바다 누군가 있다면 그게 남자일거란 생각은 당연히 했죠. 근데 그땐 게이 커뮤니티 활동을 해본 것도 아니었고, 대학생 때도 어플로 몇 번 만나보긴 했지만, 누군가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플로우 게이로서의 연애가 되게 막연했군요.

 

바다 게이로서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연애하는 모습이 상상도 잘 안 됐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저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기도 하고 불쌍하게 여기기도 했던 것 같아요. 동정의 대상으로만 본 거죠. 

 

플로우 그러면 지금까지 누구한테 커밍아웃을 했어요? 첫 커밍아웃이 기억나나요?

 

바다 조금 헷갈리는데 2명한테 비슷한 시기에 했어요.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한 명, 그리고 청소년 자활지원관 다닐 때 거기서 만났던 선생님이요. 여자 선생님이었어요. 누가 먼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고요. 

 

플로우 그때가 언제였어요?

 

바다 고등학교 때요. 고3 때, 수능 다가오는 시기에 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한테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 아마 수능 며칠 안 남기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할 얘기가 있다고, 따로 교실에서 얘기하자고 했는데, 막상 선생님 앞에 두고 입 밖으로 잘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이 먼저 질문을 몇 개 던졌어요. 전부 헛다리만 짚으시다가, 또 묵묵부답으로 제가 가만히 있다가, 겨우 얘기를 꺼냈어요. 근데 그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근데 선생님이 같이 울면서 안아줬어요. 그분이 ‘OO아(본명), 울지 마’하면서 이렇게 달래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플로우 따뜻하네요. 

 

바다 그때 왜 울었을까, 서러웠나봐요. 알게 모르게 엄청 힘들었나봐요.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때... (왈칵) 또 눈물 나려고 해. 

 

플로우 참지 마요. 참지 말고 우세요.

 

바다 네. 그래서... 정말 감사해요. 그 선생님께 지금까지도 1년에 한 번 정도씩은 꼭 연락드려요. 확실히 같이 나이가 들면서 이제 서로 친구가 되는 느낌이에요. 선생님들도 저더러 이제 마냥 학생 같지 않게 느껴진다고 얘기하거든요. 선생님과 제자가 아니라, 같이 남자 얘기도 하는 친구처럼 된 거죠.

 

플로우 근데 애초에 왜 하필 수능을 며칠 앞두고 얘기를 한 거예요? 그때도 누구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바다 누군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거랑은 크게 상관 없었던 것 같고, 그 시기에 뭔가 답답하다는 감정은 느꼈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수능 끝나면 이제 청소년 자활지원관을 학생으로서는 그만 나오기로 했었거든요. 친구랑 같이 수능 끝나고 일주일 정도 뒤부터는 이제 그만 나오자고 했어요. 떠나는 김에 후련하게 선생님한테 말하고 싶었나봐요. 만약 안 받아주면 이제 어차피 안 나올 거니까, 좀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네요.

 

플로우 앞으로 선생님 못 볼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전에는 말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거군요.

 

바다 그렇죠. 또 친구한테 커밍아웃한 건, 좀 겁 없이 했어요. 그래 뭐, 친구 관계 끊어지면 그만이지 하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나요. 그때는 이걸로 친구관계가 끊어지면 끊어지는 거지라고 그냥 무식하게 용기를 냈던 것도 같아요. 그 친구는 그래도 이해를 해줬어요.

 

플로우 다행이네요. 그 친구도 고3 때? 

 

바다 네. 아마 수능 끝나고 붕 떠 있는 그 시기였던 것 같아요.

 

플로우 그러면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누구한테 커밍아웃을 했어요? 

 

바다 우선 청자에서 만난 친한 후배들, 전부 여자애들인데, 세 명한테는 했어요. 우리끼리 시스터즈라고 부르는데, 걔네도 근데 한꺼번에 안 하고 한 명 한 명 좀 시간을 두고 했어요. 군대 휴가 나와서 커밍아웃한 적도 있고, 한 명은 전역하고 했고, 뭐 그런 식이었죠. 

 

플로우 그 친구들 반응은 어땠어요?

 

바다 군대 있을 때 제가 또 좋아하는 동기가 있었거든요. 휴가 나와서 커밍아웃할 때 ‘나 그 동기 좋아해’라는 식으로 말했어요. 친구가 처음엔 조금 놀랐는데 ‘그렇구나’ 하면서 받아줬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한테는 말하기 전에 약간 떠봤어요. 레즈비언 배우 누구에 대해서 말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는데, 그 친구가 ‘멋있지 뭐’하면서 쿨하게 반응하길래 용기를 얻어서 말했었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밍아웃한 친구한테는, 제가 말을 제대로 못하고 더듬더듬하니까, 그 친구는 ‘이 오빠가 나를 좋아하나’라고 잠깐 생각했대요. ‘아 이 오빠 왜 이러지. 안 되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제가 계속 말을 못하니까 이미 알고 있는 친구 둘이서 답답해하다가 ‘이 오빠 게이래’ 라고 결국 대신 말해줬어요. 

 

플로우 마지막은 커밍아웃 아니고 아웃팅 아니에요? (웃음)

 

바다 그러게요. 듣더니 걔가 ‘아 라이벌 한 명 더 생겼다’ 이러는 거예요. 내 남자만 가져가지 말라고. 그렇게 커밍아웃을 완성해서 우린 시스터즈가 됐어요. 또 대학원 동기들한테도 얘기를 했는데, 지금까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는 OO 쌤이라고 있어요. OO 쌤은 저한테 먼저 (게이라고) ‘말을 해도 된다’라고 던졌었어요. 

 

플로우 갑자기요? 

 

바다 그러니까요. 막 자기 친구 중에 레즈비언도 있다고 하고, 성적 지향에 대해서도 얘기하고요. 동성애 이성애 딱 나뉘는 게 아니고 스펙트럼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이성애자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성애자에 가까운 어떤 위치에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는 몰랐죠. 내가 그렇게 게이 티가 나는지.

 

플로우 아 그러니까요. 본인만 몰라. 남들은 이미 다 알아. 내가 이렇게 걸커(걸어다니는 커밍아웃)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 

 

바다 OO 쌤도 약간 눈치를 챘었고, 또 친하던 분 중에 ㅁㅁ 쌤이라고 있는데 그분도 약간 눈치를 챘대요. 그 둘이 얘기하면서 그렇게 얘기를 좀 했었나 봐요한번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된 게, 제가 그 당시에 첫 썸을 탄 남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랑) 데이트하는 날 옷을 좀 잘 입어보려고, 가기 전에 그 동기들한테 ‘저 이 옷 어때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옷 예쁜데 누구 만나러 가냐고 물으니까, 그냥 친구 만나러 간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바로 ‘남자친구?’ 이러는 거예요. (플로우: 아하하하) ‘그냥 남자인 친구에요. 저 대학원 아니어도 친구 있거든요?’ 하면서. 근데 그 사람들이 봤을 때 내가 서울에 인맥이 없거든. 제주도에서 혼자 올라온 거 알고 있으니까, 대학원 친구 아니면 없다고 알고 있었던 거지. 

 

플로우 아니 친구고 인맥이고의 문제가 아니고. 누가 남자인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주변 여사친한테 옷 어떠냐고 물어보냐고. 애초에 들켰네.

 

바다 아무튼 그냥 처음에는 그렇게 둘러댔고, 또 다른 날엔가 또 다른 쌤들도 섞여 있는 자리에서 연애 얘기하다가, 나 얼마 전에 어플로 누구 만났다고 했어요. 여자 만났다고 둘러댔는데. 이미 눈치를 챈 OO 쌤이랑 ㅁㅁ 쌤이, 저한테 나중에 따로 막 추궁하는 거예요. (만난다는 사람) 그 사람 ‘위에 달렸어? 아래 달렸어?’

 

플로우 (빵 터짐) 아니 상담 쌤들이 화끈하시네. 

 

바다 더 이상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뭐, 아래 달렸다고.

 

플로우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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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화면 조정. 마음 힘들 때 휴가 내고 풍경 좋은 카페에서 직접 찍은 사진. 다음엔 아래 달린 훈훈한 분이랑 같이 와야지.

 

 

플로우 이런 커밍아웃 처음 들어봐. 진짜 대박이다. 

 

바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죠. 저의 문을 계속 열려고 했던 거죠. 

 

플로우 이쯤 되면 벽장 문 잡고 노크한 거 아니에요? ‘거기 사람 있어요? 빨리 나오세요!’ 이러면서. 

 

바다 그게 커밍아웃이 점점 시기가 빨라졌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몇 년동안 사람을 지켜보고, 엄청 신중하게 커밍아웃했는데, 대학원 동기 쌤들한테는 아마 3년도 안 걸렸을 거예요. 내가 거리 두고 재지 않아도 커밍아웃을 해도 괜찮다라는 걸 알게 해줬어요. 커밍아웃을 하고 난 이후에 정말 친해졌거든요.

 

플로우 맞아요. 커밍아웃한 친구들이랑은 확 가까워지는 게 있죠.

 

바다 그전까지는 내가 이만큼 거리 두면서 한 발짝 한 발짝 완전 소심하게 다가가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확 온 거지. 내가 그렇게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렇게 하지 않아도 나는 사람들이랑 친해질 수 있구나, 그런 걸 알게 해준 경험이긴 했죠.

 

플로우 정말 좋은 분들이네요. 혹시 가족한테는 아직이신가요?

 

바다 가족한테는 안 했어요.

 

플로우 혹시 할 생각 있어요? 

 

바다 지금 막 할 생각은 없어요. 일단 엄마가 이제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세요. 기독교인이시고. 

 

플로우 형은 어때요? 너 언제 결혼할 거냐 이런 얘기 안 하나요?

 

바다 오히려 형은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하면 엄마를 말리는 것 같아요. 형수님 얘기 들어보면, 형이 엄마한테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더라고요. 

 

플로우 형님은 (바다가 게이라는 걸) 눈치를 챈 게 아닐까요? 

 

바다 아닐 거에요. 우리 형이 사회적으로 대처하는 기술이 없지는 않은데, 사람을 파악하는 데는 좀 둔감해요. 

 

플로우 그러니까 형이 어머니한테 바다 결혼 얘기 꺼내지 말라고 했던 게 그냥 부담 주지 말라는 수준의 말인 거네요. ‘내 동생 게이니까 배려해야겠다’는 아니고.

 

바다 네. 나한테 그 정도로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울음으로 시작해서 웃음으로 끝난 커밍아웃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커밍아웃도 비슷했던 것 같다. 첫 커밍아웃을 생각하면 나 혼자 세상 심각했고, 게이의 기역 자도 못 꺼내고 상대방을 멀뚱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꽤나 발랄하게 오픈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래 달린 사람 좋다’는 유쾌한 커밍아웃은 또 바다한테서 처음 들어보았다. 말이 나온 김에, 아래 달린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좋은지 물어보았다.

 

 

플로우 연애 상대로는 어떤 사람이 좋아요? 

 

바다 좀 듬직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뭐 약간 끼스러운 건 괜찮은데, 기본적으로는 일틱한(일반적인 남성 느낌이 나는-작성자 주)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요.일틱한 성격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저는 자기 인생을 잘 책임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꼭 돈이 많을 필요는 없지만, 착실하게 자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제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요즘은 다시 생각해 보니까, 내가 내 인생을 착실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착실한 사람을 만나야 안정된다는 것도 결국 내가 불안하니까 안정되고 싶은 마음을 그 사람을 통해서 충족시키려고 했던 거잖아요. 물론 그게 꼭 나쁜 건 아니겠지만. 

 

플로우 그렇죠. 연인 관계에서 충분히 그런 걸 원할 수 있죠. 

 

바다 그렇죠. 물론 관계는 당연히 서로 만들어가는 거니까 내가 불안해도 상대방을 통해 안정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내가 애인이 있든 없든 안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꼭 내가 원하는 그 이상형의 사람이 아니어도 만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죠.

 

플로우 실제로 그런 안정감을 주는 사람과 썸을 타보거나 연애를 해본 적이 있나요? 

 

바다 처음 썸 탔던 사람은, 외적으로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키가 183이 넘고, 처음에 만났을 때 굉장히 잘해주는 거예요. 저한테 눈웃음 너무 예쁘다면서, 막 그러니까 좋긴 하더라고요. 그 사람은 저처럼 체격이 작고 여성스러운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플로우 아, 잡았어야 했는데. 뭐가 맘에 안 들어서 썸이 끝났어요? 

 

바다 (웃음) 근데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었다기보단, 그땐 제가 서툴러서 한 달만에 썸이 끝났어요. 그 사람을 만나면서 불안한 거예요. 그 사람한테 거절당할까봐요. 제가 책읽당에 있을 때나, 지금 플로우 님이랑 얘기할 때는 되게 편한 모습이 나오잖아요. 장난도 막 치고. 그 사람이랑 있을 땐 이런 모습이 하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플로우 긴장했구나. 잘 보이고 싶고.

 

바다 이런 불안한 마음이 제가 대인관계를 맺는 고정된 패턴이었던 것 같아요. 어디서 시작됐는지 보면 결국 엄마죠. 저희 엄마가 감정이 양극단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거든요. 잘해줄 땐 하염없이 잘해주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해주지만, 내가 엄마의 기대에 따라주지 않거나 엄마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또는 그냥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언제 엄마가 돌변할지 몰라’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엄마한테 거리를 뒀던 것 같아요. 편한 내 모습을 언젠가부터 안 보여주기 시작했고, 엄마한테 살갑게 대하던 모습들을 안 보여주기 시작했고, 왜냐하면 엄마는 또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까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만날 때도, 얘가 날 좋아할까, 얘가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불안감에 긴장된 모습이나 솔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아요. 그 첫 썸을 타던 사람도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까, 저도 계속 뭔가 긴장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상대방도 그걸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쾌활한 모습이 있는데 많이 안 보여주니까, ‘내가 마음에 안 드나’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어색하게 느꼈겠죠. 그렇게 긴장된 상태에서 거리를 두다 보니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실 다가가지도 않았어. 다가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얼어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잘 안 맞는다고 했던가, 그러면서 그만 보는 게 좋겠다고 했죠.

 

플로우 연애는요? 전 애인하고는 좀 편안했나요? 

 

바다 그때는 훨씬 편했어요. 첫 썸을 탈 때 제가 불안해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거든요. 어쨌든 나에 대한 좀 더 이해도를 높인 몇 년 뒤에 만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그 사람 앞에서는 좀 덜 긴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형한테 알아가보고 싶다고 먼저 표현도 했고요. 좀 더 편하게 저의 왈가닥거리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잘 받아주더라고요. 그렇게 남성스러운 느낌이 강하진 않았어요.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이었고, 그러면서 그분하고 만나게 됐죠. 

 

플로우 어쩌다가 헤어졌어요?

 

바다 일단 그분이 직장에서 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었고, 저한테도 하소연을 많이 했어요. 저도 그때 청소년 상담사 시험을 준비할 때였는데, 일단 애인이 힘들다니까 나름 격려도 많이 해줬어요. 그러다가 제가 시험 준비하느라 2주 동안 못 보고, 시험 끝나고 보자고 했어요. 형은 (직장 일 때문에) 요즘 계속 지친다면서 집에서 데이트하자고 하고요. 저는 시험 끝난 뒤라서 저 한강 가고 싶어요, 하면서 밖으로 놀러 가자고 했는데, 그 형은 계속 거절을 하는 거죠. 그럼 형 여기는 어때요, 저기 어때요, 이러는데, 다 싫다고 하니까, 나중에는 저도 ‘내 의견을 왜 하나도 안 받아주는 거지’싶은 생각이 들면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죠. 
제가 형한테 일단 먼저 연락을 했어요. ‘형이 내 의견을 너무 안 받아주는데,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형의 마음을 좀 다시 돌아보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헤어지자고 한 말은 아니었고, 다만 ‘나는 계속 의견을 내는데 형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형이 형 마음을 좀 돌아봤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한 거죠. 
근데 어쨌든 그분은 힘든 시기를 계속 겪고 있었던 거고, 이미 지친 거예요. 제가 계속 투정을 부리고 이런 얘기까지 하니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못 만나겠다고 하더라고요. 제 잘못은 아니라는데... 

 

플로우 그분이 혼자 뭔가 부담을 엄청 느꼈던 것 같네요. 

 

바다 그랬던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좀 더 마음을 표현해주기를 원했는데 형은 그걸 또 어려워했어요. 직장 생활이 힘든 와중에 내가 투정을 부리니까 형은 좀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고, 그래서 형은 혼자 있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결국 형이 헤어지자고 말을 했고, 나중에 조금 돌아보니까 형이 물론 내 투정 때문에 힘들기도 했겠지만, 본인의 힘든 상황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 자체가 힘들었구나 싶기도 했어요. 친한 친구도 한 명밖에 없다고 얘기를 했었거든요. 근데 그 친구도 연락이 조금 뜸한 상태였고,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만큼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기회도 많이 없었을 것 같고, 자기 힘든 걸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기 짐을 혼자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좀 안타까워요. 그런데 사실 화도 나요. 일단 저한테 헤어지자고 했으니까요. 

 

플로우 사실 바다 님이 뭐 어려운 걸 요구한 것도 아닌데. 연인 사이에는 응당 해야 할 표현을 좀 해달라고 한 것뿐인데.

 

바다 그건 그 사람이 줄 수 없었던 거기 때문에, 그런 좀 다정한 표현은 애초에 그 사람이 할 수 없었던 거라서 어쩌면 굉장히 무리한 요구였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근데 또 화가 나는 건, 형이 그때 나한테 마음을 좀 더 열었더라면, 형 힘든 걸 우리가 같이 공유했다면 그 시간이 좀 더 돈독해졌을 수도 있을 건데 왜 안 했냐고요. 

 

플로우 그러게요. 혼자만 꽁꽁 싸매고 있다가 마지막에 통보하듯이 그렇게 헤어지자고.

 

바다 뭔가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형은 원래 사람들이랑 얘기 안 나누잖아.’ 이러면서.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요.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고요. 모르겠어요. 앞으로 또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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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 쪽의 이야기' 포스터. 여주인공이 '사랑은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는 그 대사를 듣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꼭 용기내겠다는 다짐을 했다.

 

 

 

4. 상담사 바다: 일 좋은데, 돈 좀 더 주세요

 

 

플로우 일 얘기로 좀 넘어가볼까 합니다. 지금 상담사로 일을 하고 계세요. 하고 계신 일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바다 네. 저는 원래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사회복지사와 상담사로 일을 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자살을 시도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사후 관리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플로우 바다님이 논문에서 쓴 표현대로라면, ‘마음을 메우는 시간’을 거치면서 상담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것 같아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는데요. 그런데 이런 직업 선택이 과거에 매여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예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바다 20대 때는 없었고, 작년부터 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30대가 넘어가면서 저의 노후를 생각하게 됐어요. 개인으로서의 노후는 어떨지, 그 불안정성은 얼마나 클지에 대해서요. 사회복지 쪽은 다른 데보다 급여가 낮거든요. 심리 상담도 그렇고요. 물론 자기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해도, 내가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해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은 했어요. 사회복지가 아니어도 연봉을 좀 더 준다면 나랑 안 맞는 일이어도 견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해요. 직업을 바꾼 건 아니지만, 돈을 더 벌어보려고 일을 늘리기도 하고 있고요. 

 

플로우 상담 일에 대한 만족도는 어때요?  

 

바다 이 일은 좋아요. 잘 맞고. 돈만 좀 많이 주면 좋겠어요(웃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서, 저한테는 정말 맞는 것 같긴 해요.

 

플로우 과거 책읽당 인터뷰를 보니까, 상담사로서의 윤리의식을 얘기한 적이 있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윤리적인 기준이 있나요? 그리고 상담사로서의 일반 원칙 외에도, 바다님이 개인적으로 좀 더 철저하게 지키려는 개인적인 원칙이 있나요?

 

바다 일단 상담사들의 기본은 비밀 보장이에요. 그리고 내담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나와 상담을 할지 말지, 이 서비스를 이용할지 말지는 오롯이 내담자의 선택이에요. 예전에 일하던 지역아동센터에서 이런 윤리적인 딜레마 때문에 마찰이 좀 있었어요. 제가 담당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센터를 그만두면 그 아이를 위한 지원 체계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버지가 그 아이를 완전히 방치했거든요. 그 아이가 센터에 무단으로 안 나오고 어디 놀러 가고, 그러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어요. 저도 담당자로서 감정이 많이 상했어요. 마음과 자원을 정말 많이 쏟았거든요. 그 아이랑 만나서 센터를 계속 다니고 싶은 건지를 물어봤어요. 다니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고, 근데 제가 봐도, 같이 일했던 동료 선생님들이 봐도 그 아이는 센터가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진지하게 설득했는데, 안 나오겠다는 거예요. 결국 전 그걸 따라줄 수밖에 없었고요.

 

플로우 그렇군요. 머리로는 쉬운데 막상 그 상황을 보면 그렇게 보내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바다 센터장님과 다른 선생님들은, ‘그 아이는 어떻게든 센터에 나와야 한다. 걔한테 선택권을 주지 말고, 계속 권유하라’라는 식으로 저에게 조언했어요. 근데 저는 그럴 수는 없는 거예요. 심지어 그런 오해도 받았어요. 바다 선생님이 기분 상해서 그 아이 그만두게 하고 싶은 거 아니냐고. 괜히 선택권 주는 척하면서 아이를 그만 오게 한 거 아니냐는 오해였죠. 전 억울했어도, ‘얘가 안 오겠다고 했는데 어쩌냐’고 항변했고요. 어쨌든 상담사에겐 내담자의 최종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가 꼭 필요해요. 
청소년 상담 쪽에서는 특히, 부모님이 떠밀어서 상담 받으러 온 청소년들이 많아요. 그러면 저는 꼭 그 친구한테 직접 물어봐요. 네가 받을 생각이 있는 거냐고. 네가 원하지 않으면 우리 상담은 진행할 수 없다고 했어요. 거부가 그 당시의 그 친구에게는 최선이었을 수도 있고, 그 친구의 한계였을 수도 있죠. 이 모든 걸 존중해야 해요. 

 

플로우 상담사의 전문성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태도나 마음 자세 같은 건 떠올려볼 수 있을텐데, 측정이 가능한 지표도 있을까요?

 

바다 일단 자격증으로 전문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국가자격증만 갖고 있는데, 상담 쪽은 사실 학회(한국상담심리학회 등)에서 인정한 민간자격증을 더 높게 쳐주긴 해요. 사설 상담센터 채용 공고 같은 데는 아예 ‘저희는 학회 자격증이 있는 분만 받습니다’라고 하는 데도 많고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전문성으로는 그런 자격증이 있겠고, 그 외에는 자기가 관심 있는 상담 분야에 얼마큼 교육받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플로우 지금 병원에서 일하시면서 주로 자살 시도하신 분들에 대해 사후 사례관리를 진행하고 계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쪽으로 계속 교육을 받고 계신 건가요? 

 

바다 그렇죠. 자살을 이미 시도하신 분들이나, 자살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어떤 상담 기법을 쓸 수 있는지를 꾸준히 배우고 있어요. 그 기법을 얼마만큼 잘 활용하고 있는지도 중요하고요. 예를 들면 자살 시도자들을 상담하려면 일단은 긴급 상황 대처 매뉴얼을 알아야 해요. 감정적으로 우울이나 불안이 고조되어 있기 때문에, 자살 충동이 올라왔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스스로 감정 조절할 수 있는 대처 교육들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이런 것들도 저는 중요한 것 같아요.

 

플로우 원래는 사회복지사를 하다가 이쪽으로 분야를 옮기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바다 지역아동센터에서 4년 일을 했는데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어요. 그러면서 자리를 알아본 거죠. 사회복지나 심리상담 분야면 다 지원했는데, 우연히 심리부검에 관한 채용 공고를 봤거든요. 심리부검은 이미 자살을 한 분의 사례를 놓고 이 사람이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등을 조사하는 일이에요. 그때가 저에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였어요. 아버지는 극단적 선택을 하신 건 아니었지만 가족의 죽음 이후 상실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때죠. 자살로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그 이후에도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단 마음이 들었어요. 자기소개서에 그런 진심을 담아서 지원했죠. 

 

플로우 지금이랑 청소년 일 할 때랑 비교하면 어때요? 

 

바다 청소년 일 할 때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역할이 훨씬 컸던 것 같아요. 사업을 운영하고, 회계를 편성하고, 프로그램 돌리고, 강사들 컨택하고. 아이들을 직접 만날 일이 많지는 않고 뒤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아이들한테 얻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병원 안에서는 상담사로서의 역할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다시 자살을 시도하지 않도록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많이 알려드리는 데 집중하고 있죠.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저한테 잘 맞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있어요. 

 

플로우 상담을 하는 분이다보니 친구사이 마음연결 프로그램에도 참여를 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했었나요? 

 

바다 마음연결은 제가 상담사 자격증 취득하기 전에 이직하는 과정에서 찾게 됐어요. 자살예방교육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할 필요가 있었고, 찾다가 마침 이제 친구사이에 마음 연결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플로우 무지개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한 거죠? 보건복지부 인증 프로그램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바다 맞아요. 그래서 이거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계속 청소년 쪽에서만 일을 했었으니까, 순전히 커리어적인 이유로 찾았던 거죠. 2020년 말쯤에 프로그램을 한 번 이수했어요. 그리고 작년에 재교육이 한 번 더 있다고 해서 갔었고요. 

 

플로우 마음연결에서 실제로 상담을 하지는 않았던 거죠? 

 

바다 네 그렇죠. 무지개돌봄 프로그램을 이수를 한 거죠. 

 

플로우 혹시 나중에 이런 여유가 생기면 성소수자 상담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혹시 있나요? 

 

바다 예전에는 그쪽 상담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성소수자 당사자 대상으로도 하고,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나 성 지향성에 대한 교육들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요즘은 자살 시도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자살 시도자들의 통계를 보았을 때 성소수자 집단에서 자살 시도율이 유의미하게 높아요. 그만큼 성소수자들이 애도할 일도 많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애도 상담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플로우 애도 상담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주변인들을 위한 상담인 거죠? 

 

바다 사실 애도 상담은 사인을 따지지 않고, 자살이든 병사든 여러 요인에 의해서 돌아가신 분들의 주변인들을 상담하는 거예요. 성소수자들이 자살도 많이 하지만 여러 질병이나 사회적 요인으로 돌아가시는 경우도 더 많은 것 같아서, 어쨌든 애도 상담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별도의 애도 상담이 필요 없어지는 게 제일 좋겠죠.

 

 

5. 마무리

 

 

플로우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어요. 이렇게 오래 할 생각이 없었는데.

 

바다 출연료 더블로 주세요. 

 

플로우 내가 이거 원고료라도 받으면 말을 안 해. 아무튼 혹시 못 한 말이 있었다면 해 주시고, 오늘 인터뷰에 대한 소감 한 말씀 해 주세요.

 

바다 못다한 말은... 아, 책읽당 운영진 형들한테 올해 투정을 많이 부렸어요. ‘우리가 무슨 자원봉사자냐. 운영진 형들은 다 여기서 연애하면서 난 연애 못 하고 있다. 솔로인 운영진을 위해서 빨리 남자를 소개시켜 달라. 막 그랬죠. 근데 사실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사실 쟤 왜 저래? 이랬을 수도 있는데. 

 

플로우 근데 형들은 그냥 바다님이 그럴 때만 잘 달래주고 그 뒤론 별 생각 안 했을 수도 있어요. 

 

바다 그랬을 것 같긴 해요. 어쨌든 막 그렇게 투정을 부린 점에 대해 미안하다고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

 

플로우 아 미안하다고요? 난 또 마지막까지 형들 비난하는 줄 알았네. 왜 남자 안 소개시켜주냐고. 

 

바다 사실 뭐 (형들이) 약속도 안 했어요. 

 

플로우 바다님 착하네요. 마지막을 그래도 사과로 훈훈하게. 인터뷰는 어떠셨어요? 마지막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바다 일단 인터뷰를 하게 된 건, 그냥 플로우랑 같이 밥 먹는다 생각하고 가볍게 해볼 생각이었어요. 근데 뜻하지 않게 뭔가 나를 확 개방한 듯한 느낌이에요. 심지어 중간에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어. 

 

플로우 그러게요(웃음). 그런데 뭐, 울 땐 울어야죠.

 

바다 이렇게 점점 개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읽당에서도 그렇고, 저의 솔직한 모습을 개방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진솔하게 관계를 맺게 되는 느낌이 좋고, 이 인터뷰도 새로운 연결고리가 된 것 같아서 좋네요. 

 

 

    처음 바다를 책읽당에서 만났을 때는 우리 둘 모두 꽤 닫혀 있었다. 정중하지만 겉도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겉도는 이야기였으므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다는 꾸준히 책읽당에 나왔고, 특히 올해 운영진으로서 성의 있게 회원들을 챙겼다. 나는 꾸준하지도 않았고 성의도 없었지만, 바다의 성실함과 호의 덕에 자연스럽게 그와 친구가 되었다. 늘 빚진 마음이 있었는데 지면을 빌어(...) 감사를 표해본다.

    인터뷰를 하고 느낀 것은 바다가 그동안 조금씩, 꾸준하게 자기 자신을 열어왔다는 것이다. 걱정도 많고 자주 불안해지는 사람이지만, 불안에만 파묻혀 있지 않고 끊임없이 용기를 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자기의 과거와 현재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 바탕 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느낀다. 그 이야기를 공유받았다는 점에서 인터뷰는 의미가 컸다. 알던 친구 사이에 대화하기에는 새삼스럽고 민망한 방식이었으나, 각 잡고 앉아 인터뷰랍시고 존댓말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해 보니 오히려 그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부디 그가 아래에 (훌륭한 게) 달린, 자상하고 일틱한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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