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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호][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1 : 놀이의 책임
2022-11-07 오전 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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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0월 

 

[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1

: 놀이의 책임

 

 

 

2022년 10월 29일, 그 전날 이태원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하루종일 밖에서 허우적대다 밤 10시쯤 집에 들어왔다. 토요일 이태원 할로윈은 본래 사람 많기로 유명하고, 좀더 쾌적히 놀고 싶은 사람은 그 전날 미리 노는 것이 상책이다. 마치 불꽃축제나 제야의 종 타종 때 가급적 거리에 나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팁이다. 금요일에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이태원에 있었던 나는, 술이 깨가는 짐짓 지혜로운 몸으로 트위터를 켰다. 모자이크 하나 없이 올려놓은, 화장과 분장이 채 지워지지 않은 채 널부러진 빈사의 몸 위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몇십 명이 찍힌 영상들이 눈앞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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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일 그 짧은 몇 시간동안, 유언비어로 몇천 알티를 받고 계정 삭제하는 서너 케이스를 눈으로 직접 보았다. 대개 어느 유명 유튜버 VJ를 따르는 무리들이 대열을 밀어 처음 사고가 났다거나, 무작위로 배포된 펜타닐 사탕을 먹고 불특정 다수가 가사 상태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실제로 참사 전날 용산구청은 모 방송사와 더불어 행사 당일 드러날 시민의식의 부재를 골자로 한 구정 홍보 프로그램을 계획했고,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은 청내 마약범죄수사대를 투입해 이태원 관내 마약 단속에 골몰하는 과정에서 정작 현장을 통제할 경찰 인력은 적게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압사 사고의 원인을 굳이 저기 가서 놀고 앉았는 정신나간 사람 전체로 돌리는 트윗도 여러 차례 올라왔다. '자식 이태원 가는 걸 못 막았다'며 참사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공인의 언사도 뒤따랐다. 참사 이전 이태원 할로윈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한국은 노는 일, 혹은 폭력과 위계가 전제되지 않은 형태의 쾌락에 대해 실로 무시무시한 수준의 사회적 낙인을 갖고 있다. 노는 걸 공연한 일로 보고 모든 사회활동의 최후순위로 놓는 것은 소위 ‘사회적 합의’가 완연해보이는 한국의 대중심리다. 게이힐을 포함한 할로윈의 모든 축제 의례는 바로 저 낙인에 대한 되받아침 위에 그 나름의 의미를 축적해왔다. 근본이 없어보이는 것 위에, 혹은 근본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뜻이 있고, 찧고 노는 일 안에 없을 것 같은 삶의 또다른 중핵이 있으며, 그것을 애써 말하고 지켜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그런 놀이 문화 하나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신경과 인내가 요구되는지에 대해,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고 평가하는 일에 참으로 인색하다. 정부는 참사 이튿날 일방적으로 일주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해당 기간 내 계획된 모든 문화·유흥 관련 행사는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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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에 정부 책임이 당연히 있다. 할로윈 파티문화가 관이 아니라 여지껏 민간이 알아서 해온 관행이라 해도, 모두가 매해 그날 뭐하는지 뻔히 아는 입장에서 정부와 지자체는 현장의 안전을 통제할 책임이 당연히 있다. 가령 일본군 '위안부'가 당시 성행하던 여성 인신매매 관행에 기댔고 거기에 중간매개업자들이 관계했어도, 조선총독부는 그 '위안부'의 징모와 이송에 관여했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형제복지원은 정부가 아니라 사립 복지재단이 운영 주체였지만, 거기에 아이들을 잡아넣는 데에 경찰과 구청이 협조한 이상 그곳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에 대해 정부의 책임이 당연히 있다. 마찬가지로 사태의 책임 소재가 정부가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말하는 일은, 설령 그것이 일정 부분 사실을 담고 있다 해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사회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거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이번 사태에는 사회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건이 있은 시각 전후, 혹은 앞뒷날 할로윈을 즐기고 그 모습을 SNS에 올려 전시하던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 죄는 사회 단체와 외신들이 지적하는 대로 현장 통솔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의 핵심 관계자들에게 있고, 그들의 죄를 추궁하는 것은 몹시 필요하다. 하지만 죄를 지적한다고 책임이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그날, 혹은 평소에 이태원에서 놀아난 것을 누가 죄삼을 때 거기에 누구보다 힘있게 반박할 필요가 있지만, 그 반박이 끝난다고 참담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놀이와 이태원의 죄악시를 맞받아치는 것과 별개로, 그날을 전후해 거기 주위에서 놀았던 사람들은 그곳 경사로에서 벌어진 사고와 어떻게든 연결되어있고, 따라서 뭐라도 했어야 했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날 그 시각 코스튬을 하고 영문도 모른 채 놀았던 사람들, 또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그것이 죄가 아님에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이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에겐 죄가 없다. 그리고 정작 뭐라도 했어야 할 그 뭔가가 무엇이며 내가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짐작컨대 긴 숙제가 될 것 같다. 1980년 5.18이 발생했을 때,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 시각에 등산 간 일을 평생의 부끄러움과 한으로 안고 살던 몇몇 선배들이 떠오른다. 이태원과 할로윈과 클럽에 대해 온갖 죄받는 개소리를 모조리 반박하고 난 다음에도, 나에게는 그 날 일에 대해 무언가 해야 할 무거운 책임이 남는다. 그리고 그건 나뿐 아니라 이태원 안팎의 모든 사람들, 이 축제 문화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그리고 ‘균등하게’ 나눠져야만 할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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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다를까 참사 희생자의 피, 소방관과 의료진의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어떤 도사가 나와서는, 이 사태의 책임이 모두에게 있으니 어느 누구도 단죄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가공할 말을 했다. 미안하지만 틀렸다. 사건에 대한 죄를 묻지 않은 채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은, 곧 아무 책임도 지지 말고 다 잊고 넘어가자는 말과 동일하다. 어떤 일에 얽힌 책임이 균등해지는 것은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리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우리 모두의 책임이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태연히 수행되던 현장의 안전 관리가 올해 유독 지켜지지 않은 것을 추궁하고 단죄하는 일 또한 엄연한 사회적 책임의 일부다. 즉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거침없이 묻는 일은 너무나 필요하고 또 기본적인 일이다. 다만 거기에'만' 그쳐서는 곤란하다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과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일일 것이다. 이제껏 애써 지켜왔던 놀이 문화를 앞으로도 굳건히 지키는 것, 놀이의 낙인에 대항하는 더 많은 종류의 놀이를 창안하는 것, 놀이의 계보와 의미를 더욱 단단히 만드는 것, 앞으로 관련 행사가 있을 때 치안 당국과의 역할 분담 및 담론 투쟁을 더욱 대담하고 당당하게 협상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진행되었을 때 그때서야 생각해볼 수 있을 비교적 협소한 의미에서의 습속 개선, 가령 코스튬 분장 의복을 좀더 적절한 형태의 파격으로 다듬는 등의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일은 진실로 한 사람의 많은 것들을 흔들어놓는다. 그런 점에서 애도는 단 한순간도 정치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또한 한가로이 할로윈 코스튬에서 어떤 의복은 부적절했고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따위의 말은, 흡사 식민 지배 아래 이광수가 무슨 대단한 걸 말하는 듯 민족개조론을 들먹인 것과 비슷하다. 이 모든 정치를 놓아두고 습속 따위를 건드는 것이 얼핏 합당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만큼 우리가 누군가의 신민, 노예 상태에 가깝다는 증거다. 돔섭질은 충분한 합의 하에 침대 위에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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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더 많이 놀고, 더 보란듯이 놀 것이고, 내가 경험하는 놀이 문화의 맥락을 충분히 음미하고 그것의 의미를 발신하며 살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혹은 이 참담한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가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일이 부디 코로나로 다 죽어가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싶었던, 그 낙인섞인 놀이 문화를 힘겹게 떠받치는 분들의 의기를 꺾지 않는 방향으로 흘렀으면 좋겠다. 이태원과 할로윈과 놀이를 폄하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거기서 때로 몸소 노는 우리들 역시, 놀고 있는 그 순간에서조차 그 놀이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채 다 알지 못한다. 

 


* 죄와 책임에 대한 개념은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다음 세 저서를 참고했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 김도균·조국 역, 『차이의 정치와 정의』, 모티브북, 2017[1990].
아이리스 매리언 영, 김희강·나상원 역, 『포용과 민주주의』, 박영사, 2020[2000].
아이리스 메리언 영, 허라금·김양희·천수정 역, 『정의를 위한 정치적 책임』,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문화원, 201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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