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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4호][칼럼] 내 불필요한 경험들 #3 : 아나키스트의 이불킥
기간 12월 

 

 

[칼럼]

내 불필요한 경험들 #3

: 아나키스트의 이불킥

 

 

이불킥하는 기억을 몇 개 갖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민망한 순간들이 장기기억으로 자리 잡지 않도록 할 요령을 고민한다. 민망한 말실수를 했을 땐 적당히 스스로를 탓하며 웃어넘기자. 헐 나 바본가봐. 와 씨, 나 진짜 쓰레긴가. 하는 식으로. 당황해서 ‘내 말은 그게 아니라’로 변명을 시작하면, 듣는 입장에서 오히려 아닌 게 아닌 게 되는 듯하다.

 

요셉이는 깜짝 결혼발표를 했고, 짓궂은 상우는 성관계는 했냐, 고 물었다. 난, 요셉이는 혼전순결이야, 라며 키득댔다. 역시 일반들이란. 속으로 생각하는데, 분위기가 싸해졌다. 머리로 세운 계획은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다. 성관계가 아니라 상견례였음을 알아차리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헐-나-쓰레긴가봐-작전을 떠올렸을 땐 이미 늦었다. 나는, 아니, 그게 아니라, 왜 요셉이 어렸을 때 교회에서 혼전순결서약식 하고 우리한테 반지 자랑했었잖아, 라며 엉뚱한 소리나 뻥뻥 하고 있었다. 오늘도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되는 데엔 실패했고, 그 대가로 이불킥할 기억만 하나 더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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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이야기 좀 한 것쯤이야 문제될 게 없었다. 

 

요셉이랑 상우로 말할 것 같으면, 얘네랑 보낸 학창시절동안 난 섹스나 꼬추 같은 말을 듣지 않고 온전히 하루를 보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졸업을 기념해 어머니들과 함께 떠난 일본여행 크루즈 안에서도 요셉이랑 상우는 꼬추타령을 했다. ‘당연하지’ 게임을 한답시고, 백 명이 족히 넘는 사람이 줄줄이 누운 마룻바닥에 누워, 너 꼬추는 63빌딩보다 크지, 당연하지, 너 꼬추는 KTX보다 길지, 당연하지, 난리를 친 거였다. 당연하게 다음 날 아침 요셉이와 상우는 각자 어머니께 혼쭐이 났다.

 

난 주로 이야기를 들으며 따라 웃는 편이었다. 상우가 처음 중학교에 가서 오줌을 싸는데 옆 반 여자애가 문틈으로 상우를 가리키며 큰 목소리로 “야! 싼다! 싼다!”를 외친 이야기도, 요셉이가 공중목욕탕에 가서 보고 온 귀두가 왕방울만한 아저씨 꼬추 얘기도, 나는 실실거리면서 웃기만 했다. 요셉이어머니와 상우어머니는 달호처럼 어른스럽게 굴라고 하셨지만, 내 눈엔 어쩐지 야한 농담도 할 줄 아는 요셉이랑 상우가 어른 같이 느껴졌다.

 

뒤늦게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아무리 늦어도) 이십대가 다 저물어갈 때 들을 말은 아닌데. 커밍아웃을 하고 나니, 내 인생에는 엄마의 자랑일 것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결혼, 자녀계획 등-이 가까워져 올 때, 나는 점점 더 미숙한 사람이 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동아리에 들어가고, 사람 여럿 모인 술자리에 간다. 여태 재미와 소속감을 찾는다. 요셉이의 결혼소식에 조바심이 났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섹스(성관계)’만큼 얘네를 쫓아왔더니, 얘넨 또 ‘상견례’만치 앞서 가버렸다. 쓰레긴가봐, 라고 말할 타이밍만 놓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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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타이밍 좀 놓쳤다고 그렇게 당황할 건 없었다.

 

누구는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떡을 칠 것도 아니면서 뭔 놈의 권리를 더 부르짖느냐고 하던데. 쿨함을 위장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그 말은 거기까지 유효하다. 나도 대단한 욕심을 부리겠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라고 하면 레이디가가가 막차 탄 촌스런 미국 캠페인처럼 들릴 것 같고. 거짓말을 하기 싫다는 게, 꼭 옷장 밖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겠다거나, 자신에게 정직하겠다는 대단한 사명감 때문인 건 아니다. 거짓말은 순전히 노동이다. 거짓말을 한다는 건, 머리를 더 써야 한다는 거고, 혹여 그게 들키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에너지를 더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셉이와 상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난 내가 오랜만에 다시 소득 없는 노동의 장에 소환되었음을 알았다. 제대 후로 커밍아웃하지 않은 친구를 만난 지가 오래 되었음에도, 숨김을 위한 노동의 감각은 즉시 회복되었다. 싸해진 분위기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전환되었다. 내 말실수와 함께 새어나왔을지 모를 ‘숨겨야할 나’를 검토하느라 바빠졌다. 말실수 하나에 주말마다 이쪽 사람들을 만나 주고받던 철없는 농담을 다 들켜버린 것 같았다. 내 과도한 긴장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해가 안 간다. 이 거짓말은 성공의 대가는 쥐뿔도 없는 게, 실패의 대가만 한가득이다. 제때 긴장하거나 당황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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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긴장이 다 무슨 소용일까.

 

요셉이는 곧 내게, 달호는 여자친구 없냐고 물었다. 나는 뭘 그렇게 아등바등 숨기려했고, 얘는 날 어디까지 몰라도 되는 걸까. 요셉이는 우리 집에서 놀다 내 컴퓨터를 뒤진 적이 있다. 한참 폴더를 뒤지더니, 퀴어영화가 뭐냐고 묻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학교숙제라고 둘러댔지만, 요셉인 기어이 야동폴더까지 찾아냈다. 게이!? 나는 황급히 마우스를 뺏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쪽친구가 얘기해주기를. 친구들에게 야동을 들키고 몇 달 고민을 하다, 이미 다 알겠거니, 포기하는 마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더니 친구들이 깜짝 놀라며 몰랐다고 했다고. 자기들은 그저 놀리기 바빴다고. 한순간에 인생이 참 카와이해졌다. 

 

게이들이 밖에서 볼 때나 특이한 사람들이지, 안에 있으면 사실 게이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평범함을 쫓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가끔 특이함을 가꾸는 스트레잇들을 보면 저게 진짜 퀴어가 아닌가 싶다. 요셉이가 그런 애다. 초등학교 때 단발로 머리를 기르고 다니던 요셉이는 일본여행 때 온천에서 여탕을 안내받기도 했고, 돈을 모으더니 외발자전거를 사서 온 동네를 쏘다니며 관종짓을 하기도 했다. 머리를 단발로 기르고 외발자전거를 타며 연을 날리던 모습을 기억하면 거의 경외심이 든다. 그런데도 요셉이의 삶은 아주 평범한 삶이다. 전도사님 여자친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복된 삶을 살 거니까.

 

헐 나 쓰레기인가봐, 하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뱉으려면, 내 자신이 쓰레기가 아니라는 확신이 전제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 천진한 친구들에게, ‘문란함’ 그러니까 ‘쓰레기같음’ 말고는 딱히 이쪽의 평범한 내 일상을 설명하기도 참 애매했다. 뭘 얼마만큼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고사하고, (개그 소재로서가 아닌) 실존하는 사람으로의 ‘게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지도 확신이 안 섰다. 요셉이는 혼전순결을 서약하고 죄를 범해도 주님의 성전에서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할 텐데. 난 오늘도 박권사님께, 혹여나 어디 가서 드러내고 다니지 말라는 당부를 듣는다. 형 결혼할 때 본인이 상대측 부모라면 게이동생 둔 집에 딸을 시집보낼 일은 없을 거라며. 요셉이는 본인을 지탱하는 평범하고 행복한 삶이 내친 것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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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대기업에 취직한 상우는 20년 가까이 본 친구이니만큼 축의금을 두둑하게 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요셉이는 원래 진짜 친한 친구들은 축의금을 따로 챙겨 주는 거라고 같은 말을 몇 번이고 했다. 뭘 그렇게 또 오바를 하냐는 말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상우는, 못 본 새에 달호가 아나키스트 다 됐다고 했다. 아나키스트가 뭔 줄은 아냐고 물었으면, 그걸 또 진지하게 받냐며, 넌 정말 아나키스트다, 했을 거다. 오랜만에 만나 자기 얘기는 하지도 않고, 삐딱하게 구는 게 못마땅하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앞에서, 왜 내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지, 왜 이러고 삐딱하게 구는지, 뭣 하나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어떻게 이 불편한 상황을 모면해 나를 들키지 않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진짜 친한 20년지기 친구들' 사이에서 내 몫이다. 돌려받지 못할 아까운 축의금은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이 20년지기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지, 혹 무슨 이야기라도 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할지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집에 돌아와 20년지기 친구들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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