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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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휴가' #2]
게이의 여행에 섹스는 무슨
태풍도 비껴간 올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습니다.
친구사이 회원님들의 피서계획은 어떠신지요?
이번호에서는 여행과 관련된 내용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게이들이 성적으로 활발하다는 통념이 있고,
여행 가서도 많이들 섹스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다만,
모든 게이들이 거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여행에도 실패(?)할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글입니다.
#1. 여행이 싫다 (황이)
나는 여행이 싫다. 어렸을 때는 동네를 벗어나 한정 없이 이 길 저 길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었는데, 그래서인지 길을 자주 잃어버렸다. 길을 잃고 그렇게 서럽게 울던 나를 파출소에서 찾아가던 날이면 엄마는 누나에게 동생을 돌보지 않았다고 매질을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인가 반복되고 나는 길을 헤맬까봐 멀리 나서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새로움보다 익숙함을 사랑했다. 한 번은 나의 연애가 길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어쩌면 내가 어떤 이의 나쁜 점에 익숙해져 그마저도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뭐든지 내 곁에 오래 둘 만한 것들이 좋다. 내 곁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소중한 것들도 많다. 그래서 난 내가 사는 동네를 사랑하고, 익숙한 가게를 사랑하고, 익숙한 친구들을 사랑한다. 이런 내게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이 넘쳐나는 여행이란 그다지 달가운 취미는 아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나는 아직 비행기조차 타보지 못 했다. 나이가 계란 한판을 훌쩍 넘길 때까지 제주도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친구는 나의 이 ‘욕심없음’에 너는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와야 한다고 충고했고, 어떤 친구는 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지원을 해주고서라도 어딘가 여행을 시켜주고는 했다. 여행이 즐거운 예외가 있는데,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어디라도 좋다. 어딜 가도 그 사람들에게 마음 붙이고 모든 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여행이라도 내겐 그저 익숙한 사람과의 다른 추억이었을 뿐 여행 자체가 내게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런 내게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남자가 여행을 가자고 했다. 어쩌다 보니 함께 급한 스케줄을 꾸리고 여행을 떠났고, 열차 안에서 서로 기대어 잠들었던 순간이나, 자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웃음을 참았던 순간은 설레었지만, 나는 뭔가 불안했었다.
'여수 밤바다.'
그 남자는 이 노래를 여행하는 내내 입에 달고 있었다. 맞다. 우리는 여수로 여행을 떠났다. 지금은 왜 하필 여수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남자라면 그저 저 노래 때문에 느닷없이 그곳에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함께 따라 부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낀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뭔가 불안했다.
형편에 맞지 않는 조금 비싼 숙소에 머무르면서 우리는 2박 3일 동안 오동도나 엑스포 같은 관광명소를 돌아봤다. 그가 혹시 누가 우리를 게이라고 알아볼까 신경 쓰지 않는 점은 나와 같았지만, 그의 식습관은 나와 많이 달랐다. 그는 나 때문에 못 먹는 회를 먹었고, 알러지 때문에 갑각류를 먹지 못하는 나 때문에 그도 그렇게 좋아하는 게장을 먹지 못했다. 그런 마음과 행동이 분명 감동적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때도 뭔가 불안했다.
여수에는 서울보다 더 일찍 대여할 수 있는 자전거가 있었다. 이 생경한 자전거 대여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은 색다른 재미가 있었지만, 가끔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가는 위태로운 그의 등을 보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장난기 가득하고 익살스런 그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더 불안해졌다.
내겐 그다지 편치 않았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많이 아끼던 모자를 놓고 내렸다. 그는 피곤한 몸으로 나와 함께 버스를 기다려 결국 모자를 찾았고 제법 낭만적으로 헤어진 후 서로의 집으로 향했지만, 집에 돌아와서야 겨우 나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불안감이 설레는 맘을 혼동한 건 아닌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그때 바로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하지만 사귀는 동안은 모든 게 낯설어 그게 무엇이었는지 고민해볼 틈도 없었고, 우리가 함께하는 여행도 두 번 다시는 없었다. 그는 혼자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왔고 나는 그동안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것 때문에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사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보다는 여행을 싫어하는 내 취향이 더 문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도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리고 그는 우리가 서로 너무 많이 다르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아갔다. 그리고 사상 최악의 이별 경험을 남기고 그 남자는 나를 떠났다.
사실, 그 남자가 그나마 연애처럼 사귀었던 첫 남자였다. 항상 하루, 한두 번 만나고 서로 연락 없이 흩어졌던 다른 인연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첫 남자였다. 어쩌면 그 연애 자체가 내게 새롭고 달갑지 않은 경험을 준 "여행"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꼈던 불안함은 우리가 서로 너무 달라서 오래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었고,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결국 길을 잃고 울었던 거다.
나는 여전히 여행이 싫다.
#2. 속초 (터울)
1.
서울을 떠나게 되는 날이 있다. 계기야 여러 가지다. 대개는 당면한 짜증과 묵었던 상처가 겹친 결과다. 이유야 어쨌든 서울을 떠날 때의 심경을 요약하면, "인간들이 꼴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 인간들에서 한 치라도 떨어지고자 나는 종종 동해안의 도시로 간다.
토할 것 같은 일정들을 버티고 저녁이 되어 속초로 도착했다. 조막만한 백사장에 그보다 거대한 술집과 펜션과 호객꾼들이 매달려 있다. 해변은 온갖 종류의 폭죽 소리로 가득하다. 인간을 피하러 온 바닷가엔 또다른 종류의 꼴보기 싫은 인간이 있다. 최대한 사람이 없는 바닷길을 골라 걷는다. 봄밤의 해풍이 을씨년스레 불어온다.
인간과 어떠한 교류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민박은 집어치우고 24시간 사우나로 향한다. 오랜 버릇대로 남성 수면실에 누워서는, 나와 같이 어떠한 교류도 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 베풀어줄 무언가를 습관처럼 기다린다. 그러나 주말 속초의 사우나는 부모들이 풀어놓은 애새끼들이 꺅꺅대는 소리로 가득하다. 수면실 밖으로 나와 암수 서로 정다운 찜질방들을 휘적휘적 지나친다.
마음이 지옥같을 땐 SNS에 뜨는 모든 인간의 사연이 마치 매연굴 같다. 숨을 쉴 수가 없어 페북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앱을 지운 뒤 속초행 버스에 오른 터였다. 도착하고 나니, 새삼 내가 어떤 심정이고 여러분들의 몸냄새가 얼마나 추악한지 자분자분 말하고 싶어진다. 비활을 푼 페북은 전과 같이 멀쩡하다. 멀쩡한 위에 나는 멀쩡하지 않은 글을 끼얹는다.
서울을 떠나온 도시에선 꼭 한번쯤 잭디를 새로 깔아본다. 낯선 남자가 걸린 썸네일 하나하나를 훑어보곤, 그 중 하나에게 쓸데없이 어떤 사람 찾냐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도 사람이 싫어 도망온 주제에 나는 또 무슨 인간이 그리 그리운 것일까. 쓸데없는 문자엔 주로 쓸데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람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 치이고 치여 그 사람들에게 사람 아닌 것들을 찾으려는 공간의 예의란 그런 것이니까. 상대가 보낸 잭디 문자를 보고 내 안부가 정말 궁금해 보낸 것이라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2.
사우나에서 자는둥 마는둥 하다 새벽에 그곳을 나온다. 내리던 비가 막 그친 속초의 새벽은 고적하다. 새벽 5시, 일출 시간을 한시간 남짓 앞둔 시각이다. 한껏 젖은 공기를 마시며 속초의 해변으로 향했다. 아까의 폭죽지X이 모두 사라진 텅빈 바다가 나를 맞는다.
칠흙같이 어두운 수평선 위로 비를 뿌린 구름과 텅빈 하늘이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편서풍을 타고 그것들 모두가 서서히 멀어지다가, 그 중 한 쪽이 먼 빛으로 회색이 된 후에야 나는 그것이 구름임을 알아보았다. 해변을 치던 파도가 잦아들고, 나는 해변에 붙박아서서 비로소 혼자가 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그리워 서울을, 사람을 떠나온 것이구나.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된 내 앞섶 안의 살을 조용히 쓰다듬는다.
서울은 사람을 혼자로 놔두지 않는다. 온갖 단톡방과 SNS에는 24시간 내내 무엇인가 올라온다. 물론 그 연결망들은 즐겁고, 재미있고, 중독적이다. 오죽하면 사람 싫다고 떠나온 도시에서 거듭 잭디를 켜보겠나.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사람을 대할 마음의 힘이 모두 소진되고 난 후에, 그 살갑고 유쾌하던 사람들의 목록은 순식간에 구더기굴로 변한다. 그 우글거리는 구더기에는 모두 눈이 달려있어, 그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어디로 어떻게 조각날지는 차마 짐작도 되지 않는다. 한때 내가 기댔던 인간들의 시선이 되레 나를 찢어발기는 느낌은 몹시 절망적이다. 그럴 때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일출을 기다리며 멍하니 젖은 구름과 하늘과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사람에게 위로받을 수 없는 마음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 모든 시선과 기대와 부응의 의무를 전폐한 자리에 태연히 남아서 머무는 내 안의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그것을 알아보고 그것을 가만히 만져보는 순간, 사람에게 기대고는 그 사람이 싫어 여기까지 도망온 내 스스로에게 아무런 죄가 없었음을 깨닫는다. 사람이 어쨌든 나는 나대로 돌보아야 할 것이 있었고, 이렇게 청회색 하늘이 점점이 밝아오는 바다 앞에서 비로소 그것을 꺼내어 알았을 뿐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립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여러분들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여기 감물빛으로 홀로 출렁이고 있는 바다만큼이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분간되지 않던 하늘과 구름의 경계가 점차 뚜렷해지고, 텅빈 하늘이 검은 구름 위로 발갛게 물들어오른다. 눈들이 박힌 구더기 모양으로 우글거리던 것들이 하나둘씩 죄없는 사람의 얼굴로 바뀌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에 대한 순정한 그리움이 마른 허기처럼 속으로 차오른다. 나는 점점이 밝아지는 속초 해변을 등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내가 언제나 그리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아무 짝에도 도움 안되는, 그 구더기같은 사람의 숲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서울이 가고 싶었다. - 2017.4.2. 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