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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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Seoul For All> #3
: 달에서 온 편지, 월인공방 사장 송진경씨 인터뷰
(이어서)그렇다면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사업의 간극 사이에서는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속에서 소수 그룹에 대한 혐오는 도대체 어떠한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2017년 12월 28일 저녁, 종로3가역 5번 출구 근처 게이바 ‘프렌즈’에서 만난 월인공방 사장 송진경씨는 10월의 작업실 이전에 연이은 11월의 사무실 철수로 다소 지친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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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01.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사이 소식지에서 2018년 1월에 실릴 '모두를 위한 서울' 제3편을 위해 월인공방 사장 송진경씨를 모셨습니다. 다양한 SNS를 통해 세간에 화제가 된 ‘사과문(전문보기;2019년 7월 31일 링크 수정)'을 작성하여 본 기획의 계기를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친구사이 소식지를 읽는 분들에게 인사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월인공방 사장 송진경입니다. 귀금속과 보석 그 외 다양한 소재로 장신구를 비롯한 소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Q 02. 월인공방은 LGBTQ 친화적인 귀금속 상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손님 중에 성소수자가 찾아온 경험이 많으신가요?
A 꽤 있습니다. 동성 손님 둘이 방문하면 기본적으로 애인 사이를 전제하고 상담하는 편인데, 대부분 커플링을 의도한 방문이 맞았습니다. 간혹 이성애자 우정반지를 커플링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문제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고객의 의뢰를 진지한 방향으로 잠시 오해하는 것은 사소한 실수입니다.
[그림 1] 퀴어 퍼레이드가 있는 여름에는 공방의 주요 고객층인 LGBTQ를 위해 6색 무지개를 달았다.
Q 03. 그렇군요. 귀금속을 보는 취향에 있어 LGBTQ와 헤테로 간의 차이가 존재하나요?
A 한정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취향은 성적 지향보다는 예산과 목적에 영향 받습니다. 드랙퀸의 일상에 필요한 것이 간결한 주얼리일 수 있습니다. 고객의 성적 취향에 따른 유의미한 경향성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해도 누군가를 미리 짐작하는 것은 거래에 불리합니다.
Q 04. 월인공방 사장님께서 처음 익선동에 자리잡으실 때부터 LGBTQ 친화적인 부분을 내세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예물 산업이 여전히 중요한 현재, LGBTQ 친화적인 것이 특기할만한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희에게는 성긴 안전망으로 더 의미 있었습니다. 젊은 여성들끼리 사무실을 지키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도 같은 마음이셨는지 먹을 거리를 주거나 휴대폰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며 안부를 물어주시고는 했습니다.
거래를 위한 정보를 안내하고 대화를 나누기 적절한 고객을 찾는 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악의를 숨긴 방문자가 있을까 두렵지만, 눈치 챘다 해도 공간에 발 들인 이를 쉽게 몰아내기도 힘듭니다. 애초에 조준하듯 안전한 고객만을 유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동료 시민을 비이성적으로 혐오하지 않는 사람’은 저희가 제시한 일종의 상식인 기준이었습니다.
Q 05. 그럼 LGBTQ 친화적인 귀금속 가게를 게이문화지역으로 유명한 종로3가에 여신 것은 처음부터 의도가 있으셨다고 볼 수 있겠어요.
A 아닙니다. 익선동에 오게 된 것은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동네 취미반 선생님이 종로로 가라 했을 때 솔직히 통학 거리가 멀어지는 것부터 싫었습니다. 종로에서 학원식으로 세공을 배우던 중 함께 수학하던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해 고발했으나, 보복 당하듯 익선동 작업실로 추방당한 것은 피해자인 저였습니다. 2015년 이후 갑작스러운 홍보 마케팅을 통해 카페 거리로 익선동을 알게 되신 분들에게는 어색한 사연일 수 있습니다.
[그림 2] 2015년 칠월 칠석에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작업실 옆에 사무실 겸 쇼룸을 개업하고 간판을 달았다.
당시만 해도 익선동은 넉넉하지 않은 고령자들이 모여 사는 한옥 사이로 종로3가 국악기상에 납품하는 한복 재봉틀과 귀금속 하청 공장의 망치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매력적인 날것이라 찬양하는 궁색한 환경이 제가 버려진 이유였습니다.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서 살았는데, 신상인들을 대견해 하는 기사들에는 낙후 지역의 못 볼 꼴로 묘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사무실을 개업하며 응원도 받아보고, 나름의 소박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Q 06. 그렇다면 브랜드 월인공방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자세히 듣고 싶어요.
A 월급을 받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동네 취미반으로 세공을 할 때에도 구직을 시도하고 있었고, 개업에 큰 의욕은 없었습니다. 브랜드의 존재 가치는 종종 창업자의 자아실현 욕구와 같이 이야기 되지만 동의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럴듯한 상표가 지어졌을 뿐인 경우도 많습니다. 유통사로 선망하던 펀샵에 제출한 제안서에 답변을 받지 못했다면 개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성품 출시는 유통과 판매에 특화된 전문가 의견 반영의 연속입니다. 제품에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제작자보다 경험 있는 유통업체의 상품성 판단을 신뢰하는 편입니다. 물질의 한계와 익숙한 미감을 존중하며 적정 상품가를 책정해야 하는 일에서 참신함을 발견해 준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자영업자를 건강하고도 위험하게 만드는 존재 가치 자문을 외주하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기성품 제작과 병행한 개인 주문 제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간간이 허락되는 집중력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주문자가 스스로를 비추어 자신을 찾도록 돕는 것 뿐이었습니다. 개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실패와 절망으로 우울증을 겪으며 보게 된 틈새와 결들이 경청을 도왔습니다. 이 곳을 거울이라 이름지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내밀한 심상을 그려내는 여정에 초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Q 07. 이야기를 이렇게 듣고 나니, 궁금해지네요. 사장님에게 익선동은 어떤 곳이었나요?
A 공방 운영 안팎으로 극적인 일들이 많았기에 개인적인 감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관된 이들이 있기에 공공연한 지면에 풀 일은 아니고,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대해 배운 시간라고만 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저 자신을 포함해 견고하지 못한 삶이었기에 머물렀고, 또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조악한 것들에게조차 취약했습니다.
예술가님들은 왜 동네에 와서 스티커를 붙이고 그래피티를 하고 침을 뱉고 오줌을 싸고 토를 하지요? 얼마 전 떠나신 할머니께서 동네 분들과 술 하시고 취해서 공방 오셔서 "우리가 인터넷을 몰라서 그렇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대체 우리에게 왜 그런대…" pic.twitter.com/DBPAZOEolq — 학생 (@wol_in_) 2017년 1월 10일 |
동 끊고 큰 기계 쓰러 을지로 갈 때마다도 느낀다. 일 하다가 사고도 나고 납기에 큰소리도 치고 일 끝나면 술도 하며 사는건데, 예술가님들이 와서 잘린 손가락 찍어가 전시하고 자기네를 무슨 불쌍하지만 진짜 삶을 사는 기름때 역군처럼 포장하니 역겹다고. — 학생 (@wol_in_) 2017년 1월 10일 |
Q 08. 그렇다면, 월인공방 사장님이 정의하는 익선동이라는 ‘핫플레이스(세간에서 논의되는 용어 그대로)’란 무엇일가요?
A 어디선가 본 나른한 공간? 잇-템의 다른 말? 스스로에게 관대한 판매자와 허술함에 눈감기로 결심한 구매자가 만나 서로를 평가하는 곳? ‘유행’이라는 단어를 ‘취향’, ‘분위기’, '트렌드'로 바꾸어 말하기로 약속된 장소? 단편적인 일개인의 감상일 뿐 유의미한 정의로 기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방문객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도 이런 공간 하나 열어 볼까’ 감상을 남긴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옛것의 정취를 찾아 왔다는 분들이 ‘여기가 핫플이래’, ‘누가 그러는데 뜬대'를 시끌벅적 연발하며 지대와 DIY 인테리어비를 가늠했습니다. 다음 핫플이라 이름 붙일 입지도 훤히 보이므로 필요한 것은 대출 뿐임을 모두 알고 있다는 고백이 아니었을는지요.
익선동의 익 자만 쳐도 나오는 까페 투자자?동업자?가 대학동기라 인스타 친구인데 을지로에도 까페를 하는 듯하고 힙의 ㅎ도 없는 나는 너무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여따.. ㅅㅁ도 안가봄 사실.. 그러고도 자꾸 어디 자리 찾는듯하더만 그런거시엇니..ㅉㅉ — 탁흐 (@tackh) 2016년 11월 29일 |
식당들의 기사형 광고를 보면 상승세를 타는 (권리금 없는) 저렴한 부동산 광고로 끝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식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외국은 인건비가, 한국은 지대 영향이 크다고들 하는데 ‘지대가 저렴한 곳’에서 구조를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 비를 아꼈다는’ 많은 익선동의 한옥 식당들의 가격에 핫플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후기 또한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예술적 다다이즘 정신을 기반으로 익선동1920, 열두달, 틈(구 익동다방), 거북이슈퍼, 만홧가게, 낙원장, 동남아, 르블란서, 별천지 그 외 다양한 요식업장을 기획하거나 운영하며 자타공인 ‘익선동 핫플' 제조자로 불리는 (주)익선다다가 문제 된 사과문으로 인해 ‘권리금 생성 목적 기획 부동산 집단’ 내지는 ‘조직적 젠트리피케이션 유발 집단'으로 대중의 오해를 받았다며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 (소장과 답변서 전문보기)
Q 09. 제가 익선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월인공방 사장님께서 익선동 상인들의 혐오 분위기에 대해 SNS에 올려주신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시, 친구사이를 비롯한 게이커뮤니티에 계신 많은 분들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었습니다.
A 대표적인 퀴어 공간으로 언급되는 이태원은 사업가로서 탁월한 홍석천씨를 비롯하여 과장된 드랙쇼와 게이클럽 등으로 LGBTQ의 존재감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한편, 종로3가 익선동을 비롯한 서울 내 여러 퀴어 공간들은 그러한 발산의 장소라기보다는 안식처입니다. 내밀함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면 비가시성은 미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빌미가 되는 순간 논의는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시의 일방적인 공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친구사이를 통해 퀴어의 목소리로 이야기(종로 도시재생에서 삭제되는 '퀴어의 역사', 친절한 원순씨의 서울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은 '퀴어'뿐일까)된 지난해는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종로3가 일대에 현수막을 걸고, 공청회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등 2017년 벌어졌던 여러 행동은 전에 비하여 고무적이었습니다. 화두를 던져 건강한 긴장을 만드는 것이 인권운동단체의 일입니다.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정무를 보는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그림 3] 2017년 10월 소식지 [이달의 사진] ■소수자를 지우지 말라!
Q 10. 어떻게 보면 그런 사건들은 모두 월인공방 사장님의 SNS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아요. 그런데 궁금해지는 건 사실, 세상에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었잖아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A 처음에는 익선동 주민모임이 있다기에 말 그대로 실제 거주민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모임인 줄 알고 ‘왜 주민들은 이 모임을 모르’는지 카톡방에 질문했습니다. 사실상 상인 모임이라면 왜 한 동네로 여겨왔던 풍년집, 고창집 등 돈의동 고기골목 상인들과 함께 하지 않는지, 행정구역상 익선동만을 위한 모임이라면 오래 영업해 온 게이 골목은 왜 아무 연락을 못 받았다고 하는지 등도 궁금했습니다. ‘힙한 신상인 모임’에 초대받은 것이었는데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찜찜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으나 생업으로 낮 시간이 바쁜 동네 거주자들과 주변 세공인들의 목소리를 모아 전달하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특정 부동산 중개업자가 서울시 지원금이 투입되는 마을공동체 사업의 대표를 맡는 것이 직업윤리적으로 부적절함을 지적하였습니다. 과거 익선동 한옥을 철거하는 방식의 재개발을 추진했던 인물이 도리어 그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에서 '구도심 재생 전문'이라는 타이틀 하에 서울시 엠블럼이 인쇄된 명함을 부동산 거래의 영업 도구로 삼는 것은 거론할만한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림 4] LX 한국국토정보공사 발간물 땅과 사람들 2016.12 vol.155 「국토에 가치를 더하다」 p.32-33. 중 일부.
그러나 공동체를 위해서 동분서주 노력하는 착한 아저씨에게 젊은 여자가 무슨 막말이냐며 상인 분들에게 언성 높은 질책을 들었습니다. 당시 자리에 있던 모두가 비난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침묵하는 분위기에 크게 위축 되었습니다. 이후 논의된 ‘더러운 골목길’, ‘모텔에서 나오는 게이○○들’, ‘문란한 거리의 정화’ 등의 혐오 발언들에 실은 잘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반박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혐오 발언이 여과 없이 나올 수 있고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자리에서 '다양한 의견 1'로 기록된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레 체념하였습니다. 이후 소심하게 SNS에서 익선동의 변화에 대해 꿍얼거린 게 신상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주)익선다다의 강요에 굴종하여 사과문을 쓰고도 괘씸죄로 소송에까지 이르게 되고 종로 LGBTQ 문제와 함께 묶여 여론의 주목을 받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Q 11. 요즘 도시재생이나 마을공동체하시는 분들은 공동체가 마치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무형의 가치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공동체만큼 무서운 것도 없죠.
A 보수적인 업계에서 고지식한 일을 하는 입장으로서, 계승 과정이 불분명하고 인습과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쉽게 전통으로 불리는 게 아직도 어색합니다. 아무데나 활용할 절대선이기 위해 공동체라는 단어의 해상도 또한 매우 낮아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근래 접한 ‘공동체'라는 단어를 맥락에 맞게 번역한다면 ‘community’일 지 ‘cartel’일지 고민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나이든 남성들의 친목에 봉사하는 이미지로 대표되곤 하는 근대의 공동체를 벗어나 개개인의 존엄을 추구해 온 노력의 결과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아니었나요.
Q 12. 월인공방 사장님의 행동 이후 익선동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과언이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익선동 상인들이 성소수자를 혐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궁금해요.
A 혐오를 포함하여 어떤 표현이든 전달을 전제로 합니다. 환경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이 익선동의 변화를 논하는 협의체에서 배제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게이같은 게이’들은 애초에 상인회에 초대받지 못하고 ‘헤테로같은 게이’들도 본래의 정체성으로 초대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수자 문제는 공간에 존재하는 소수자의 비율 문제가 아니라 순응을 강요하는 지배적인 분위기를 누가 어떻게 주도하는가의 문제일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LGBTQ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전제하거나, 정화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과장된 성범죄의 주범으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해 보였습니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풍기문란이나 엽기행각이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면 됩니다. 혹자는 거리의 변화에 발맞춰 게이들이 또 다른 음지를 찾아 자연스럽게 이동할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남의 성적 지향을 꼬투리 잡아 험담하는 방식으로 성급하게 몰아낼 궁리를 하는 대신 보이지 않는 손을 계속 믿으면 됩니다.
[그림 5] 서울시 「2016 한옥마을 가꾸기」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익선포럼 발간 자료 p.27.
지인을 통해 듣게 된 '요리사가 오픈리 게이라는 이유로 한옥 중개를 거부당했다'는 소식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탐탁치 않은 누군가 퇴거하는 것은 사회 현상이지만 입주는 모호한 이유로 거부해야 한다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공간의 역사라고 이야기 될 수 있을런지 의문입니다. 하자 없는 사회인이 시장 거래에서 배제될 정도의 혐오와 멸시는 헌법을 뛰어넘는 상관행일 수 없습니다.
돈의동과 낙원동에 걸쳐 있어 익선동도 아닌 포장마차 거리가 못마땅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이 종로구의 관리 하에 밤마다 게이들의 보금자리로 성황을 이루고도 새벽마다 씻은듯이 청소되어 온 매일매일은 객관적으로 존재해온 역사입니다. 전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20세기 초의 역사를 작위적으로 상품화하기 위해 가까운 과거와 현재를 사는 이들을 지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배제는 비단 성소수자 대상 업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항상성 있는 공간에서 관성적인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일상적으로 능동적이기 어렵습니다. 아마 정치인조차도 자기네 동네에 ‘급조된 마을 공동체’라는 게 생겨서 ‘낮 시간에 참석’하여 ‘뭐라도 발언해야 한다’면 어쩌라고 싶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일상을 매물로 어필하고 작위적인 축제와 부가가치를 겨루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무례합니다.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했다는 것은 사안에 따라서는 안일한 관료주의의 자백이며 변명입니다. 아담한 한옥섬이라는 익선동 홍보 문구는 바꾸어 말하면 심도 있는 전수조사가 가능했던 규모라는 말입니다. 서민 주거 공간에 누적된 미시사를 주목할 지역 가치로 내세우면서도 굳이 표본조사를 하거나 객관식의 유도 설문을 실시한다면 이미 상정된 결론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3년 간 300여 명이 이주한 것은 경악할만한 도심 한복판 취약계층의 증발입니다.
Q 13. 친구사이에서 우려하는 부분도 같습니다.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 기고글을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월인공방 사장님께서는 익선동의 상인들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퀴어 상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신건가요?
A 짧은 시간 동안 주변 상황이 급격히 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외식을 줄이고 금주하게 되면서 게이 대상 업소인지 여부와 상관 없이 음식점에 잘 가지 못했습니다. 한편, 홍대 부근과 제주 애월 등지에 이어 엄선한 요식업 부동산 포트폴리오로 익선동에 투자한 신상인들은 헤테로 호모 상관 없이 불편해 한 것으로 압니다. 이 때문에 을지로와 창신, 홍제 등 다음 매물을 알아보는 행보를 재촉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를 괴롭게 한 신상인들도 성적 지향을 불문했습니다. 간곡하게 부탁해도 계속되는 가해에 참다 못해 서울시 환경재정까지 신청하게 되었으나, 사과는 커녕 ‘돈이 필요하셨냐’ 모욕하던 이가 게이라고 해서 저희가 호모포비아가 될 일은 아닙니다. 피해자로서 마주하는 상대방에 대한 호오는 시민으로서 LGBTQ의 정주권을 위한 발언과는 상관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은 떠나간 주민들 또한 특별히 고상하거나 보호받을만한 자격을 따져 시혜적으로 대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인들은 (주)익선다다의 박한아 박지현 사장을 ‘○질한 돈으로 동네를 다 들쑤시는 ○들’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불법적인 가해와는 별개로 또래 여성으로서 당하는 모욕과 위협으로부터는 지켜주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월인공방 사장이 이러한 위선을 통해 이미지를 고양하는 이익을 얻었다고 비난하며 정신적 피해를 주장하였지만, 다시 돌아간대도 또 다시 그들의 여성으로서의 소수자성을 보호하고 위선의 죄로 피소될 것입니다. 피곤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14. 그렇다면 이제 익선동을 떠나신 시점에서, 익선동의 상인들에게, 계획가들에게, 행정가들에게, 혹은 이들 모두를 포함하는 ‘익선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A 저희 세공 작업실이 쫓겨날 때, 본래의 천장을 두고 원칙대로 한옥을 쓰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옥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나 요즘 사람들은 서까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니 다 부숴야 한다고. 괴롭게 시달리다 갑자기 퇴거 당하는 입장이 되어서까지 보존과 재생을 외치는 분들께 붙잡혀서 그런 충고를 들으려니 난처했습니다. 변화의 목격자에서 증거가 된 저희 앞에서 진정하시고 적당히만 속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림 6] 스승이자 동료로 작업장을 공유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뎠던 원영환 기능장의 세공 책상과 공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미안했습니다. 죽은 동네를 살린다는 등 모두 나름의 선의가 있었을 겁니다.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입장에서 절대 기껍지 않았습니다. 앙심이 무서운데 누가 싫은 소리를 하고 싶겠습니까. 저희가 나약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크게 질렀습니다. 빈티지 스타일의 필라멘트 모양 LED를 원했던 분들에게 살아서 타오르는 화염처럼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익선동의 상점들은 제각기 개성 넘친다지만 사실 모아 보면 엇비슷합니다. 고만고만한 취향의 상징처럼 가게마다 열대 식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정집이었던 한옥들이 불과 몇 년 새 조명과 화기가 가득한 유리 온실로 바뀌었습니다. 그 위에서 노출 천장의 오리엔탈 버젼인 서까래가 장작처럼 잘 마르고 있습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지키고자 했던 한옥의 가치를 빠르게 훼손시킨 결과들이 다닥다닥 붙어 화재에 취약해 졌습니다.
[그림 7] 작업실 짐을 다 빼기 전부터 식당이 되기 위해 천장과 벽을 헐었다. 짐을 급하게 빼야 하다보니 다른 이주민들이 그러했듯 세간 일부는 잔해에 깔리고 버려졌다.
횡으로 확장될 수 없는 골목상권의 특성 상 종으로 불법 증축한 한옥은 소방법을 농락하는 탈법입니다. 이 모든 위험을 알면서도 성공의 지분을 챙기기 위해 침묵한 건축 역사 학계, 언론, 관련 기관은 이 도화선에 단 한 번, 작은 불씨라도 붙는다면 함께 초래한 인재로 주목받을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황학동이나 인사동의 한옥이 얼마나 빠르게 전소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두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익선동에서 옛골목의 매력이라 홍보되는 좁은 길은 화재 진압에 매우 불리합니다.
불을 다루는 저희는 정들었던 공간이 문자 그대로 부서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렇게라도 무섭게 웅크린 화마로부터 멀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림 8] 은을 녹여 붓는 주물 작업으로 아침을 시작하던 작업실
Q 15. 익선동 공동체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 잘 전해졌으면 하네요. 그럼 쫓겨났다라는 표현을 해주셨으니까, 여쭤보도록 할게요. 월인공방 사장님께서 정의하고 계신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무엇일까요?
A 사전적인 정의가 있으므로 제가 사용하는 개념 또한 같습니다. 다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젠트리화하다(고급주택화하다)’는 단어가 지금의 한국에서 ‘둥지 내몰림’이나 ‘축출'로 번역되는 시의성에는 주목합니다. 상대적 약자의 입장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착한 둥지 내몰림', ‘좋은 축출' 등을 말씀하시는 분들은 채신머리 없다는 자백임을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경복궁 주변이 상업화 되던 2000년대 초반에는 학술 용어정도로나 쓰이던 것이 2010년 전후 상수 망원 연남을 설명하는 입말로 널리 퍼져서 다양한 매체에 두루 쓰이는 것 같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유입용 인기 검색어로 곁들여 공허한 통찰력을 과시하는 블로그 포스팅이나 기고문들도 많이 봅니다. 단어의 오염 빈도를 보며 키워드로서의 인기를 실감합니다.
Q 16. 최근 익선동에 대해서 다루는 기사는 많아졌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부분을 명확하게 다루는 기사는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잘나가신다는 건축가분들도 이 지역에 대해서 한옥을 잘 꾸며놨다. 힙하다 정도의 이야기만 나눌 뿐, 앞서 말씀해주셨던 현실적인 안전 문제나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관점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알쓸신잡에서 익선동의 다양성을 다루면서도 퀴어는 여전히 지워져있더라구요. 다양한 입장을 조명해야 할 언론의 본분을 잊은 것은 아닌지...
[그림 9] 알쓸신잡2 서울 종로·중구 편. 2017.12.15.
A 밀고 들어오기로 작정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준비 없이 쓸려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양비론을 펼치거나, 다들 나쁘다고 하는데, 나는 큰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식의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유명인을 보면 부끄럽습니다. 학교 폭력도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점이 많습니다. 엄석대 같은 학생이 교실 분위기 잡아주면 내심 좋아할 교육자도 있겠지만,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떠드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1900년도 초반부터 존재해왔던 익선동을 2010년대 후반 들어 갑자기 자발성을 가장한 홍보쇼로 호들갑스럽게 다룬 영향력 있는 매체 생산자들은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호화롭지 않은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범죄의 타겟으로 노출시키는 쇼들이 인기 있다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셨는지요. 얼굴과 실명, 소속을 걸고 죽어서 말이 없는 정세권을 소환하여 쉽게 쓰여진 모든 글줄이 언젠가 여러분을 시험에 들게 할 것입니다.
Q 17. 그렇다면 서울시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책(프렌차이즈 금지 등) 등에 대해 시민으로서 그리고 상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관 주도처럼 보이지 않는 핫플 제조’가 서울시 재생사업 성과 보고서의 꽃이 될 것입니다. 시중의 공실을 다 채우고도 추가 상업시설이 필요한데, 기존에 있던 건물을 잘 활용해 보자는 취지라면 ‘재생’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임대가 붙은 상가 건물이 넘쳐나는데 굳이 누군가의 생활터전이었던 곳을 신속하게 감상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에 ‘재生’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야비합니다.
변화를 자의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개인 혹은 사업체의 권력에는, 그 변화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부작용을 은폐하고 윤색하는 힘도 포함됩니다. 공존을 부르짖는 진정성의 경쟁장에서 방금 탈락한 입장에서, ‘재생’이라는 단어는 더 약하고 만만한 상대를 찾아 낮은 곳으로 흐르는 힘에 그럴듯한 작명을 해 준 것 이상의 의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 중론으로는 대형 프랜차이즈라는 것이 강력한 선점의 주체이거나 망조라기보다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의 한 주기가 끝나고 무언가 소진되었다는 흔적입니다. 반감을 의식하는 대형 업체들 또한 냉소적인 풍경의 조성자로 비난받기 보다는 내실 있는 지방 소도시 지점을 늘리는 추세로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재미난 말장난. 이미 익선다다 같은 곳이 그 동네 가게를 몇개를 열고 프렌차이즈화 했는데.. 단지 커피빈 스타벅스 맥도날드 안들어온다고 소규모, 비 프렌차이즈라고 생각하는건지 제대로 동네 조사들은 하셨는지. 이러니 젠트리피케이션을 못막지. https://t.co/ZlYGYRt8s8 — 케이채 (K. Chae) (@kchae) 2018년 1월 7일 |
공정위에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등록된 '(주)창화당', ‘(주)망원동티라미수' 익선동 지점을 비롯한 ‘(주)○○○ 익선동 지점’이 이미 넘쳐납니다. (주)익선다다가 다품종 유흥업의 전시장으로 구획 하나의 작업을 마쳤는데, 이들을 영세한 자영업자이자 예술가로서 보호하기 위해 진입을 막겠다는 프랜차이즈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눈 감기로 작정한 청와대와 서울 시청을 코앞에 두고 한옥마을 지정이라는 도시계획으로 보호받는 카르텔 형성을 목표로 보호 가치 있는 건축물을 신속하게 불법 훼손하는 속도전을 감행했습니다. 애초에 관은 진화를 거듭하는 민간 자본의 속도전에서 이길 수도 없거니와, 자영업자이면서 시민이기도 한 자들과 대립 구도로 갈 수도 없습니다.
선출직 공무원의 짧은 재임 기간 내에 완성되는 변화는 무엇이 되었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쉬고 잠들 수 있는 개개인 일상의 보호와 개선, 그리고 휘말릴 수밖에 없는 변화에 대비한 안전망 확충을 가장 중심 목표로 잡지 않으면 어떤 정책이든 보여지는 성과를 위한 또 하나의 전시행정에 불과할 것입니다.
Q 18. 한편,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위해 익선다다가 ‘모범적인 도시재생 스타트업’으로 떠오르면서 이러한 도시재생기업(CRC)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 주목받을 예정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유물 파괴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청년창업, 스토리텔링, 혁신, 퓨전 등 좋은 말들과 선한 의도를 끌어오는 (주)익선다다로 인해 고초를 겪는 와중에도, 불법건조물을 축조하기 위해 얼마나 큰 돈을 들였는데 철거하게 만들었는지 아냐며 도리어 가해자들에게 원망 받고 끝내는 제소 당해야만 했습니다. 도시재생 스타트업 기업 내부의 위기 관리 실패로 보복당하는 피고 입장에서 문재인 변호사와 박원순 변호사가 무어라도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림 10] 주민들의 항의로 철거된 줄 알았던 (주)익선다다 별천지의 2층 불법증축물은 좁은 골목길의 시야로 보이지 않는 낮은 발코니로 개조되어 영업했다.
자격 미달의 이웃이었지만 그들의 세속적 성공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왕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실험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면, 자성하는 마음가짐으로 경각심을 잃지 않는 경영을 바랄 뿐입니다. 이제까지 (주)익선다다가 면죄부를 예정해 두고 악의와 구분하기 힘든 무능에서 비롯된 범죄를 저질렀다면, 앞으로는 선의와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유능함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회사는 위기를 겪고 극복해나가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소식지의 ‘이 구역에 수혈되는 젊은 피’라는 표현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합리적인 이해관계를 통한 공생을 도표로 제시한 게 귀사의 비즈니스 모델일 것입니다. 인간을 낙관하고 싶은 이들의 확증편향을 충족시키는 매력적인 서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혈'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도움받는 당사자를 위한 은유여야 합니다. 증여자가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면 ‘감염’이, 제3자가 열광한다면 ‘실험’이 더 합당한 단어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한편 진공의 이론이 아닌 현실적인 마찰을 감지하고 부작용을 예견하는 활동가와 학자들께서는 적극적이고 발빠른 경고의 목소리를 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도시재생 스타트업의 육성이 지역 상권 독과점을 묵과하는 방식의 소극적인 전시행정이라고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면, 약간의 권위일지라도 활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Q 19. 길고 긴 인터뷰가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네요. 이제 마지막 몇가지 질문을 드리고 마치도록 할게요.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월인공방’의 가치란 무엇일까요?
A 부족한 게 많은 볼품 없는 회사라는 생각 뿐입니다. 고객과 동료들에게 했던 실수로 항상 주눅들어 있습니다. 특히 월인공방 11번째 기성품인 삼인검을 1년 째 기다리고 계시는 유통사 담당자께는 정말이지 면목이 없습니다. 마지막 공정인 제품 설명서와 함께 며칠 뒤에 돌아오겠다던 인사가 해를 넘긴 유배가 되었습니다. 피로에 의한 안전사고가 두려워 대부분의 기성품도 품절 상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거듭 사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Q 20. 사소하게라도 남다르다 생각하시는 영업방침이나 제품 특징 등이 전혀 없으신지요.
A 고객의 주문을 잘 해석하기 위해 사훈처럼 내세우는 단어 세 개가 있긴 합니다. 사랑, 보석, 복수. 사랑은 발산하고 이동하는 선, 보석은 수렴하여 고정된 점, 복수는 회귀하여 시작점에서 닫힌 도형이라고 설명합니다. 앙갚음이라기 보다는 응보 개념인데, 복수라는 단어가 더 인기 있어서 그만... 무엇이 왜 필요한지 주문자의 마음을 함께 그려보는 도구 삼은 단어들입니다.
[그림 11] 만화경 마감 작업을 하고 있는 송진경 월인공방 사장
우리는 저마다 마음 한 쪽이 크게 허물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스로를 돌이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월인공방을 찾아왔습니다. 불행 때문이든 행복 때문이든 날뛰는 사랑의 끄트머리를 잡아 어떻게든 지혈해야 했습니다. 선 끝을 흐리는 용서나 망각이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마음 속의 뱀을 매듭짓기 위해 부적이나 시술, 학벌 등 강력한 마침표를 찾는 것이 아닌지요.
인간의 깜냥을 인정하고 마음을 고정할 상징을 찾아 자기 자신을 잘 다루기로 하는 시도를 그냥 다 복수라고 불렀습니다. 사치품을 팔았지만 판매자도 구매자도 대개는 생필품으로 여겼습니다. 보석과 귀금속은 매우 비싸지만, 제가 명품업자는 아니기에 지옥같은 몇 년의 시간보다는 저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인 주문은 체력이 달리고 인건비 책정도 곤란해서 계속 할 수 있을지 자신 없습니다.
Q 21. 그렇다면 사장님은 앞으로는 어떤 꿈을 꾸고 계시나요?
A 냉혈한이 되어 수익성이 두드러지는 사업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인상적일만큼 단단한 결속은 분명한 목표의 공유에 기반합니다. 지금보다 더 무명일 때 이미 VC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상을 탄 사업계획서가 몇 년 간 길 위에서 성숙해 졌습니다. 초기 투자처를 찾으시는 투자자이시거나 연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부담 없이 가벼운 티타임을 제안 주십시오. mail@wol-in.com 별천지라는 요지경을 걷어내고 저희의 이타카에 대해 들어보셔야 합니다. 분명 흥미로울 겁니다.
Q 22. 마지막으로 사장님에게 본 기고 글의 주제인 ‘모두를 위한 서울’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A 지방 공장 기숙사로 상품을 보내며 나 따위가 뭐 그리 잘났다고 서울 안의 서울이라는 종로에서 푸념을 하나, 회의감이 든 적이 많았습니다.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채용이 취소되던 시절 살던 산동네 판자촌으로 다시 밀려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내 일상에 매일 균열이 진행되는데 도대체 내가 모르는 누가 그리도 합판과 시트지로 급조한 축제를 필요로 한단 말인가 환멸이 났습니다.
‘모두를 위한 서울’에서 ‘모두’가 누구인지, ‘위한’이 어떤 뜻인지, ‘서울’이 어디까지인지 얼버무리지 말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평등이 너무나 당연해서 종로와 이태원, 홍대·합정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아질 때까지, 단 한 명의 청소년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이유로 자살을 고려하지 않을 때까지, 모든 혼수 가전 예물 업체들이 LGBTQ 약혼자들을 의식하고 신경쓸 때까지, 그리하여 LGBTQ 내부로부터 퀴어 퍼레이드의 효용과 존폐를 논쟁할 때까지. 그 전에 제가 먼저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된다면 퀴어 퍼레이드에 가장 화려한 퍼레이드카와 큰 차양막을 보내고 싶습니다.
종로를 피난처로 삼은 적이 있는 게이로서 이 인터뷰가 인상적인 분이 있다면, 남성 게이 뿐만 아니라 여성, 특히 여성 성소수자들의 처우가 바로 나의 문제로 연결됨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상관 없어 보이는 사람이 당하는 취급을 대접으로 바꾸기 위해 발언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설혹 대선 후보가 되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천금같은 단 1분일지라도. 그것만이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갑자기 푹 꺼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도시연구자 / 제니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단단한 사랑과 성찰 ^^ 놀랍네요.
난 언제쯤 저리 단단해 질 수 있을까
항상 건강하시고 평화가 함께 하는 삶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