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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성애자들은 왜 억압받을까. 이는 쉬워보이지만 좀체 생각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억압이란 본래 '왜'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한창 억압받고 있을 때 '왜'라는 질문은 대개 소용이 없다. 억압은 이미 주어진 현실이므로, 보통은 그걸 안고 어떻게 당장 살 것이냐가 문제로 된다.

 

억압을 한번 당하면, 그것이 내게서부터 왔는지 남에게로부터 왔는지 흐려지기 십상이다. 어쨌든 억압을 안고 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그 때부터, 내 선택 또한 그 억압을 이미 염두에 놓게 되는 까닭이다. 그 과정에서 억압은 어느새 내가 승인하고, 적응하고, 때로는 창조적으로 그것을 뒤트는 방식으로 삶 속에 자리잡는다. 억압은 굳건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창조적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굳건한 억압 또한 어쨌든 내 안에 있으므로, 끝내는 내 것이 된다.

 

시간이 지나고, 무언가에 옥죈 상태에서도 그럭저럭 살아갈 길이 있음을 깨닫고 나면, 처음에 나를 옥죄었다고 생각했던 그 억압에도 무언가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창조적으로 살고 싶어하므로, 자신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억압과,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은 내 허약함 또한, 그 속에 어떤 섭리가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른다. 결국엔 내 약함에도 다 뜻이 있던 것이며, 그렇게 살아오는 가운데 나는 내 억압과 내 인생을 비로소 한 몸으로 겪어내는 법을 찾아온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랐을 때, 내가 겪은 억압과 비슷한 억압을 함께 겪던 사람이, 어느날 그 억압을 공공연하게 입에 올리며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그것을 타개해야 한다고 외친다면, 그 사람은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런 소릴 하는 것처럼 들리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그 사람을 비롯해 나한테 자리잡은 그 억압에 대해서라면,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걸 몰라서 당신처럼 나서서 떠들지 않은 줄 아는가. 억압은 그렇게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뭘 잘 모르는 모양인데,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이 굳건하고 기대할 것 없는 세상에서 최선의 길은, 억압 가운데 그나마 내 삶을 창조적으로 꾸릴 길을 찾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따낼 것은 얼마든지 있고, 이 상태도 그런대로 살 만하다. 이 구럭의 창발과 구체를 저들은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들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큰 소리들을 치는 것이다. 그건 여기 이렇게 옥죈 한가운데를 몸소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제대로 안 살아봤으니까 저리 철없는 소리들을 외쳐대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 억압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섣불리 세상의 노여움을 사면 안된다.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들도 얼마간은 이유가 있어서 우리 같은 소수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게이들끼리 있으면서 게이가 진절머리났던 경험, 한번씩은 있잖은가? 일반 사람들은 자연히 더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심기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원하는 억압을 잘 걷어낼 수 있는,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미로 같은 대답이 준비되어야 한다. 나는 그걸 할 자신이 없었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지만.

 

헌데, 그것보다 한참 덜 떨어진 거친 대답을 내놓고서는, 감히 내 억압을 대변하겠다는 것인가? 가당치 않은 짓이다. 하물며 그 성긴 구호를 그렇게 시끄럽게 외쳐대고, 그것으로 세상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일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소수자 전체의 이미지와 인권을 해치는 일에 다름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지금 내가 겪는 억압이 뭔지를 몰라서 당신처럼 나서서 떠들지 않은 줄 아는가.

 

-

 

자신이 약자라는 인식은 종종 중독적이다. 그렇기에 '왜' 억압받느냐는 질문은 때로 전복적이다. '왜'를 캐묻는 순간, 내 삶과 으밀아밀하게 협착돼 있던 억압의 형태를 다시 배치해야 하고, 그것은 퍽 낯설고 고통스런 일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왜'를 묻지 않는다면, 현실 가운데 어떻게든 몸 맞춰온 모든 삶의 형태는 그저 그 자체로 옳다. 모든 것은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고, 거기에 나도 부역했으며, 이제와 큰 것을 따져 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삶은 때로, 그 삶의 관성을 바꾸는 질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대체 '왜' 우리가 살던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하는지, 그 사는 모습은 과연 누가 조형해낸 것인지,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소수자가 그저 이대로 쉬쉬거리고 사는 모습을 원했던 것인지, 살면서 한번쯤은 따져물어야 할 때가 있다. 그 때가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이 굳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러해야 할 때가 온다. 스스로를 오래 미워하고 미뤄두기에, 사람은 너무도 영악하고 또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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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허프포스트코리아 http://www.huffingtonpost.kr/2017/04/26/story_n_16250498.html)

 

 

 

2.

 

 

2017년 4월 25일, JTBC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는 "동성애 때문에 한국에 에이즈가 창궐한다"면서,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를 반대하느냐"고 물었다. 문재인 후보는 이에 "반대한다"고 답했고, 또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이 없다"고도 언급했다.

 

이튿날인 2017년 4월 26일 11시 30분경,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 현장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은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에게 다가가 무지개빛 깃발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 후 활동가들은 강제 연행됐고, 이에 무지개행동을 비롯,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민변,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노동자연대, 알바노조 등 각 사회단체들은 연행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이 시위가 언론에 보도된 당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는 문재인 지지자로 추정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위를 비난하는 글과 댓글을 남겼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국회 앞에서 문재인 후보를 향해 무지개 깃발을 들고 다가간 일은 "불법행위"이자 "백색테러"이며 "기습무력시위"였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들 중 대다수는, 더 극렬한 발언을 했던 홍준표 후보를 찾아가지 않고 당선이 유력한 문재인 후보에게 찾아간 것을 문제삼았는데, 이들은 그 이유를 "문재인이 만만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지난 9년간 대체 뭐했냐"고 물었고, "10년 만에 자유가 보장될 마당에 멱살잡이라니"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나아가 성소수자를 "이번 일을 계기로 혐오하게 되었다"는 언급도 많았다. 따라서 혐오를 당하더라도 그것은 "당신들이 자처한 것"이며, 이번 기회를 통해 "차별을 둬도 되는 집단"임이 굳어졌고, "보호나 권리를 더 챙겨주면" "호구"로 보고 "더 지랄을 할"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더불어 "퀴어축제"의 "노출" 등이 "혐오스럽다"면서, 문재인 후보에게 활동가들이 시위한 것처럼 "퀴어축제 때 우리도 난입하겠다"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반응도 엿보였다.

 

이러한 글과 댓글들 가운데는, 성소수자 혹은 게이 당사자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즉 "여러분은 모든 LGBT들을 대표하는 분들이 아니"며, 문재인 앞에서의 시위는 "홍석천·하리수가 앞당겨놓은 인권"을 "10년 뒤로 후퇴"시켰다고 언급하는 댓글이 그것이다. 또한 이번 시위가 "조용히 각자의 삶에서 LGBT로서 열심히 살아가려는 저같은 사람들에겐 자칫 큰 부담과 위협이 될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그 중 게이임이 분명한 한 사람이 강한 논조로 작성한 댓글들을 보면, 그는 인권활동가들의 이번 시위가 "자기 말고 남은 다 못난 년 취급"한, "이쁜이들의 이쁜 척"에 불과한 행동이라 비난했다. 또한 자신이 볼 때 성소수자에 대한 "포비아"는 "이유없는 사회적인 기형적 발생이 절대로 아니"며, "포비아에게는 당신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보다 더 맹렬한 이유들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2017년 5월 9일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는 동성애자들이 "문재인 앞에서 패악질을 했으니" "동성애 합법화 추진은 무산될 것"이라 말하고는, 새 대통령에게 "98% 국민의 동성애 반대의 뜻에 따라 더욱 강력히 동성애 반대 정책을 수립해" 줄 것을 간청하는 글을 올렸다.

 

시위가 있은 지 일주일 후, 친구사이의 후원회원 중 몇 명은 후원을 취소했고, 취소한 인원에 준하는 새 후원회원들이 들어왔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글 도배는 사흘간 유지됐고, 이후 게시판은 예전으로 돌아왔다. 2017년 퀴어문화축제는 작년과 같이 혐오세력들의 방해가 있었으나, 예년대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퀴어퍼레이드 때 예고되었던 문재인 지지자들의 항의 시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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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3년 4월 26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故 육우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생전에 기독교 단체의 호모포비아 발언을 격렬히 비판했고, 청소년보호법의 동성애 유해 지정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유서를 통해 그는 "동성애자의 차별을 없애는 데 힘써달라"고 밝혔다.

 

한편 1999년 개장하여 남성동성애자 최대 포털 사이트로 거듭난 '이반시티'에는 당시 다양한 게시판이 있었는데, 그중 '백일장' 게시판에는 게이들의 문재를 뽐낸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이 게시판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데, 섹스어필을 다룬 글이 대다수인 최근과는 달리, 2003년 당시에는 비교적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게시판을 채웠다. 이 게시판에 故 육우당 사망 직후 그를 추모하는 시 한편이 올라와 눈길을 끈다.

 

이 시가 故 육우당을 추모하는 방식은, 인권운동을 통해 공식화된 추모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故 육우당을 가리키는 "검은 꽃"은, "어둠" 속에서라면 잘 살 수 있었을 것을, "햇살 걸린 벼랑 같은 베란다"의 "눈부신 햇살"에 내놓았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시는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고인을 가리켜 "검은 꽃의 검은 향기 무겁게 피었어도", "어둠에서 어둠으로 있었어도 너는 꽃이었"을 것이라며 그의 죽음에 대해 아쉬워하고, 또 "누가 어둠을 걷는다고 햇살 드리워 창백한 오후 속에 누가 너를 갖다놓았"느냐는 싯귀를 통해, 당시 운동단체에 대한 원망을 토로한다. 나아가 이 시는 커밍아웃 등 운동단체를 통한 성소수자의 삶의 방식 뿐만 아니라, 공공연하지 못한 존재방식 자체에도 그 나름의 역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대도 분명 거기 있어서 / 어둠에서 어둠으로 이어지는 밤의 시간 속에서 / 너를 잇고 나를 이어서 우리에게로 / 그렇게 다시 살아나서".

 

그러나 그 시절을 겪은 다른 누군가들은, 결코 그 "어둠에서 어둠으로 이어지는 밤의 시간"에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화분의 검은 꽃"처럼, 죽음과 어둠이 내 안에서 서로 뒤섞여 혼동될 때조차, 그들은 머리 위로 햇살이 내려쬐도 좋은, 그 빛을 버틸 수 있을 만한 사람과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故 육우당이 좀더 오래 살았다면, 어느날 그 어둠이 자라고 자라 비로소 빛이 되었다는 내용의 시를 언젠가는 쓸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빛이 되고서도, 기나긴 과거의 어둠을 감싸안을 줄 아는 그런 빛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가 살았었다면 생전에 눈으로 보고, 또 몸소 실천하고 살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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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경 2017.09.01 16:00
    마지막이 인상이 깊은 글이네
    내가 좋아하는 시가 ㅎㅎㅎㅎ
    깊은 산은 골이 깊다지요
    대신 수 많은 생명들이 제 빛깔대로 숨을 쉬겠지요

    내가 할 일은 무기력해지거나 외롭거나 혹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순간에도
    내 마음 속에 모순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려주고, 흘려 보내는 작업을 잃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서 그 생명과 그 산이 이쁘지도 밉지도 않게 보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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