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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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젠더퀴어' #2]
여행자 '정숙조신'님 인터뷰
: 2. 논바이너리와 게이와의 관계, 그리고 커뮤니티 운동
1. 논바이너리/트랜스젠더퀴어로의 정체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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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계속)
▲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가 페이스북을 상대로 한 소송 및 여성 폭력 문제 법적 조치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만든 티셔츠.
3. 논바이너리와 게이의 관계맺기
1) 논바이너리가 본 게이커뮤니티의 과잉 성애화 문화
터울 : TERF는 얘기해봤자 답이 안나오기 때문에, 여혐 게이 얘기로 넘어갈 게요. (웃음) 논바이너리와 게이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려고 하는데요, 게이들과 굉장히 친하게 지내는 논바이너리이시기 때문에, 게이들에 대해 많이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 그 여혐 게이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 결국 여혐 게이라고 한다면, 거기에서의 여혐이란 정숙조신님에 대한 혐오도 포함되는 거잖아요.
정숙조신 : 그럴 수도 있는데,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상황에서 저는, 직접 논쟁을 하기 시작하면 크게 답이 안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한 피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조심스럽게 그 사람과는 진지한 얘기를 안한다든가, 그런 식으로 관계의 수위를 조절하는 정도고,
대개 공기처럼 여혐을 하는 게이들이 많이 있구나-라고 느낀 건, 저는 작년 넥슨 성우 사건, 티셔츠 게이트 때 많이 느끼기는 했어요. 그거랑 그 전의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그 일련의 과정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거기에서 굉장히 기득권스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이들을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을 좀 걸러야겠구나”, (웃음) 라고 그냥 생각만 했죠.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라면, 지금도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는 사건인데, 작년 가을과 연말에 있었던 일이에요. 제 집에서 자던 게이 지인들이 제 앞에서 멋대로 섹스를 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특히 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제가 오래 짝사랑하다가 결국 고백해서 차였고, 그 후로도 어찌어찌 친구 관계는 유지하기로 했던 사람이어서 크게 충격을 받았어요. 게이들 사이의 성관계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지는지, 그게 어떻게 합의가 되는지, 성관계를 실제로 (많이) 하는 사람과 (거의) 하지 않는 사람 사이의 정서적 간극이 어떠한지 등의 문제에 대해 많이 혼동스러웠고요. 지금도 거기에 대한 결론은 아직 못 내렸어요.
터울 :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이커뮤니티가 사실은 이성애자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과잉 성애화되어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섹슈얼리티가 너무 앞으로 부각되어 있고,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로맨틱지향성과 섹슈얼지향성(성지향성), 성적 끌림과 성욕이 구별되지 않고 한 덩이로 이해되고, 이런 부분들이 있는데, 그 사이에 게이 친구들과 계시다보면, 어쩌다보니 게이들이 정숙조신님까지 똑같이 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요.
정숙조신 : 똑같이 게이라고 생각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게이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걸 아랑곳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후자의 아주 극단적인 사례가 작년 연말의 사건인 것이고.
터울 : 그럴 경우에 게이의 종족성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 어떤 감상이 드세요?
정숙조신 : 과잉 성애화된 게이 문화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이 크게 두 가지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하나는 게이 남성들 사이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그 성폭력이라는 선을 어디에서 그을 것인지를 당사자들도 제대로 모르고, 성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게 하나가 있고요. 그건 정말 선을 긋기가 힘든 문제죠. 어디까지가 합의한 플러팅 내지는 성관계고, 어디까지가 성폭력인가. 그런 게 하나가 있고.
▲ 무성애 가시화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무:대.
Q. “무성애”라는 단어는 성관계를 하기 싫다는 말을 특별하게 말하는 표현이 아닌가요? A. 전혀 아닙니다. 비성관계와 무성애는 두 개의 다른 개념을 말합니다. 금욕주의는 성관계를 하지 않는 사람을 묘사합니다. 반면에 무성애는 성적끌림(Sexual Attraction)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묘사합니다.
Q. 저는 아직도 그 두 개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어요. 결국 둘 다 어떤 사람이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무성애는 지향성을 가리키지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애자는 자신과 다른 성별에 끌리고, 동성애자는 자신과 같은 성별에 끌리고, 무성애자는 그 어느 성별에도 끌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성적으로 끌리지 않더라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성애자이면서 성관계를 갖기도 하죠. 어떤 조직에서 특정 인물을 내보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 「무성애일지도 몰라 - 3부: 기타 등등」, 무:대 ACEtage 블로그 中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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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애자라는 개념과 처음 마주쳤을 때 '나와 비슷한 것 같아!'보다 '성적 끌림이란 게 있다고?!' 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섹스를 이야기하는 친구들, 혹은 나와 섹스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에게 많은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모든 행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 섹스란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행위일 뿐이었다. 타인에게 성적끌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 후로부터 나를 지나온 많은 사람들과 그동안 무시해왔던 사회적 현상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게 정체화는 소수자로서의 나 자신과 다수자인 유성애자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었고 그것은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 데미,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들」, 무성애자 커뮤니티 '승냥이카페, 에이로그', 『ACE STORY 1』, 2017.7.15.,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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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조신 : 또 하나는, 게이들 중에서도, 무성애 엄브렐러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 이슈가 있을 것 같아요. 남자이고, 남자를 좋아하긴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동성로맨틱인데 에이섹슈얼에 가까운 사람이겠죠. 그렇다고 무성애자 커뮤니티의 모든 사람들이 100% 에이섹슈얼인 것도 아니에요, 그레이에이섹슈얼의 예처럼. 어떤 상황에서 성관계를 할 수 있는지, 그런 요소들이 사람마다 다 다른데,
이게 저는 성적 지향이랑 무성애·유성애와 상관없이, 연애도 그렇고 섹스도 그렇고 하는 사람만 집중적으로 많이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그걸 할 수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이 해요. 그런데 안하는 사람들은 죽 안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의 생활 패턴 사이에는 굉장히 큰 간극이 있어요. 그런데 서로가 서로의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특히 게이 사회에서는 그 횟수가 잦은 사람들 위주로 문화가 짜여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자기가 섹스를 하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대로 남들도 다 그럴 것이라는 걸 기준으로 놓고 생각을 하는데, 게이 커뮤니티가 하는 사람 위주로 짜여져있다보니까, 정말로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세번씩 섹스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식으로 정의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실제로 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터울 : 게이 커뮤니티가 과잉 성애화된 이유를 굳이 찾자면, 이성애 사회에서 성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겠고, 그래서 거기로부터 도망와서 어떤 유토피아적 사회를 찾는 그런 의미가 있을 텐데, 그런데 거기에서도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인식될 단계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석 : 커뮤니티 차원에서는 그럴 수 있고, 또 운동적 차원에서도 성애적 표현을 막 장려하잖아요. 예를 들면 나는 게이인데 항문 섹스는 안하는 깨끗한 게이예요, 이런 걸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무성애자다, 나는 섹스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히려 다른 의미로 읽히게 되는 거죠.
정숙조신 : 네, 왜 빼냐, 엄숙주의냐, 이런 말을 듣게 되죠.
터울 : 섹슈얼리티가 언급되고 가시화되는 게 너무 중요한 것이긴 한데,
정숙조신 : 그것이 성소수자 정체성에 되게 중요한 게 맞죠.
터울 : 그러다보니 원리적으로 앞과 같은 문제가 생기게 되는,
석 : 거기에 비순응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게 되는 거죠.
정숙조신 : 그래서 이게 양립할 수 없는 걸까-라는 고민도 들고 그래요. 다들 어디에선가는 이미 있는 이야기일 테니까.
터울 : 그렇게 따지면, 가령 논바이너리와 분리주의 페미니스트처럼, 무성애자와 게이커뮤니티가 그런 식으로 분리될 수도 있는 거죠. 물론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할 텐데,
▲ 무성애자 깃발.
정숙조신 : 실제로 게이로 정체화한 사람 중에 무성애 엄브렐러에 있는 사람을 최소한 세 명은 알고 있고요. 그 중에 한 명은 그냥 게이 커뮤니티를 나왔어요, 아예. 그런 성애적인 걸 자기는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무성애 커뮤니티 쪽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요.
터울 : 물론 섹슈얼리티가 논쟁되어야 하기 때문에 1차적으로 가시화될 필요가 있는데, 그 안에서 각자가 겪는 섹슈얼리티 자체가 사실 다종다양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가령 게이라고 해도 20대 중심이 아니라 30-40대로 넘어가면, 섹스 안하고 지내는 게이들이 많거든요. 정체화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동성로맨틱 그레이에이섹슈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섹슈얼리티의 표현 자체가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 까발리고 유성애적으로 가야 돼, 욕망을 인정해, 보여줘, 이것 이상의 패러다임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석 : 그런 것 때문에 퀴어퍼레이드에서 무성애자 배제적이라는 얘기도 나오는 것 같아요.
터울 : 정숙조신님은 논바이너리이자 남성애자이시잖아요. 그 입장에서 게이와 이성애자 남성 간의 차이를 말씀하셨던 부분이 있어요. 그걸 보고 실제로 관계 형성이 가능한 쪽을 꼽자면 이성애자 남성 쪽이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정숙조신 : 굳이 꼽자면 그랬어요. 뭔가 ‘남성’이랑 썸 이상의 관계가 됐거나 상대방이 그렇게 다가왔을 때는 상대가 100% 이성애자였거든요. 그럴 경우에 서로가 그 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른다거나, 아니면 육체 관계로 넘어갔을 때 한번 또 막힌다거나. 그래서 서로 혼돈으로 빠지고, 안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많았어요.
터울 :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정숙조신님 입장에서 게이와 섹슈얼·로맨틱한 관계가 맺어지기가 사실상 매우 어렵다는 뜻으로 들리거든요.
정숙조신 : 경험적으로는 그래요. 여러 해 전에 친구사이에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 때 굉장히 기묘한 ‘편안함’이 느껴졌던 기억이 있어요. 이성애자 남자들하고 있을 때보다도 성적 긴장감이 없는 거예요. ‘게이’라 스스로를 부르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끌림의 대상으로서 ‘남자’라는 범주로 보고 있지 않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고요, 이 느낌은 친구사이 엠티에 따라갔을 때 ‘이상형 월드컵’ 같은 놀이에서 확실해졌어요. 차라리 저는 놀이에서 빼 주면 좋았을 걸, (웃음)
그래서 게이들이랑 있을 때의 저는, 좋게 말하면 특별 손님이고, 나쁘게 말하면 식 안되는 반쪽짜리 게이인 셈이죠.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게 편할 리는 없고, 그런 느낌을 죽 받아왔던 것 같아요.
터울 : 게이 커뮤니티는 흔히 일틱하다고 하는, 남성으로 완전 패싱이 잘 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사회적 자본이 많은 구조잖아요.
정숙조신 : 네, 과다 성애화와 관련이 있는 건데, 특정 사람들에게 욕망이 몰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 자존감이 없어 괴로워하고, 그런 현상이 많이 보이는 것도 굉장히 심한 사회죠. (웃음) 그런 점에서 게이 집단은 ‘욕망을 표준화’하는 것에 너무 잘 얽매인 한 가지 사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물론 다른 섹슈얼리티의 집단도 대단히 표준화/획일화된 욕망 체계를 제각기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게이의 경우, 표준화된 외모 기준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뭔가 대안을 제시하면, 그 대안 안에서도 이상적인 외모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그걸 기준으로 또 다른 표준적인 등급 체계가 고착되고, 거기에 비끄러지는 또 다른 제안이 등장하고, 그런 계열들이 몇 가지 종류의 ‘식’으로 정리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뭔가 계속 배제됐던 사람들을 틈새시장 같은 느낌으로 체계화, 등급화하는 느낌이랄까요. 가령 ‘베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할 때는 ‘새끈한 스타일링의 도시 게이만 있는 게 아니고 대충 살찐 아저씨 게이들도 사랑하고 욕망을 가질 수 있다’ 같은 취지였다고 알고 있거든요. 근데 뭐 지금은… 하나의 배타적인 세계가 되어 버렸죠.
미쿠 : 사람 만날 때, 자기는 남자를 좋아해서 여길 나온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나 우리나라 같이 남녀가 아예 다른 사회에서 자라다시피 하는 곳에서, 그런 "남자 좋아해서 나왔다"는 친구들한테 여성성을 대놓고 갖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가 될까... 만나던 남자 형들도 그런 말을 했었어요, "나는 남자를 좋아해", 그런 말.
- 「[커버스토리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2] 게이의 여성성, '끼'와 '여성성'의 간극 : 미쿠님 인터뷰」, 『친구사이 소식지』 81, 2017.3. (전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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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바이너리가 본 ‘끼순이’
터울 : 궁금했던 것이, 끼순이 게이가 있잖아요. 그들을 만나셨을 때 어떠셨어요?
정숙조신 : 끼를 떤다랑, 끼순이인 거랑 좀 다르게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끼를 떤다는 건 명백한 ‘수행’이고, 퍼포먼스예요. 평소에는 끼를 안 떨 수도 있는데, 특정 상황과 공간에서, 특히 게이들이 자주 모이는 종로 같은 공간에서 여러 목적을 가지고 특정 양식의 행동을 일부러 만들어내는, 공연을 하는 느낌이에요. 그런 면에서 제가 하는 것과 되게 다르다는 걸 거기서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끼순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갑자기 생각이 정리가 안되네요.
석 :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되게 끼순이가 있었어요.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넌 왜 게이 하냐”고 물어봤대요. 왜 트랜스라고 안하고 게이라고 하느냐는 거죠. 그 때 들었던 생각이, 그러면 그 경계는 뭘까,
정숙조신 : 부치보고 왜 트랜스 안하는 거냐는 얘기랑 비슷하죠. (웃음)
석 : 일단 그 질문 자체가 이상한 질문이긴 했었는데, (웃음)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자기가 정체화를 할 때, 나는 게이야, 혹은 나는 여성으로서의 젠더 표현이 더 좋은 존재야, 그런 걸 생각할 때 어떤 지점에서 정체화의 결정이 되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 끼순이에게 물어봤는데, 정작 당사자는 거기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고 답하더라고요. 그냥 사람들이 게이라고 하니까 게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정숙조신 : 정리되는 대로 얘기해 볼게요. 끼순이는, 게이들이 그런 끼를 떠는 퍼포먼스의 원본을 제공하는 존재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게이들이 끼를 떤다는 건, 말하자면 여자 흉내를 낸다기보다는, 끼순이의 행위를 좀더 증폭해서 보여주는 행동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고요. 끼순이라는 존재들은 그런 속성의 행동을 어느 정도 평소에도 하고 있는 사람들, 아니면 끼를 떠는 행동을 보고서 거기에서 영향을 받아 그 행동의 일부를 평소에도 수행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생활 속에서랑, 과장해서 보여주는 거랑,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도 흐려지면서 서로 상호 참조를 하는 듯한 그런 관계?
터울 : 그러니까 끼를 떤다, 내지는 끼순이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게, 젠더 표현이나 이해를 넓히는 데 활용될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의미에서는 마치 그 모든 것들이 게이 헤게모니의 안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이 두 갈래가 있는 것 같아요.
정숙조신 : 저는 끼라든가 끼순이는, (흔히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으로 상징되는)여성이란 개념이랑은 다소 독립적인 개념처럼 보였어요. 여자 사람의 실존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고, 남자에게 허용되지 않는 성별 표현과, 드랙의 과잉 여성성, 허상처럼 존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이 아마도 합쳐져서 만들어진, 그런 외형과 행동과 표현과 정체성의 패키지로 만들어진 게 끼순이가 아닐까,
터울 : 서두에 얘기했듯이, 어떤 정체성이 있든지 그 사람의 젠더 표현의 폭은 굉장히 넓을 수 있는 거잖아요. 논바이너리가 바이너리한 젠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게이도 그런 것 같은데, 그 안에서의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성별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곧바로 직결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게이가 끼를 떤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 정체성, 내지는 논바이너리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직결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정숙조신 : 그러니까 그런 것 같아요. 끼순이는 어쩌면 여자 흉내도 아니고 논바이너리 흉내도 아니고, 제4의 성, 제5의 성일 수도 있어요. 완전히 독립된 성별 정체성, 내지는 성별 수행성? 물론 실질적으로는 끼순이가 게이의 하위 범주로 여겨지지만요.
▲ Ladybeard. (인물 소개 링크)
▲ Pavel Petel. : 석, 「[칼럼] 주관적 게이용어사전 #8 : 걸커」, 『친구사이 소식지』 50, 2014.8.27.
(전문 링크)
석 : 끼가 여성의 젠더 표현에 대한 모사가 아닐 수도 있는 거죠.
터울 : 그래서 실제 게이 커뮤니티 안에도, (일틱한)오소독스한 게이 정체성이 아니라, 다양한 논바이너리의 잠재태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 맥락에서.
정숙조신 : 네. 그걸 좀 느낀 게, 제가 시스젠더 이성애자 친구들에게, ‘기갈’이란 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설명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게 예를 들어 센 언니가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모습을 게이들이 하는 것, 이런 식으로 설명해도 잘 안 와닿더라고요.
석 : 게이들 자신이 모사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모습과, 실제로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은 다른 거죠.
터울 : 그러니까 그 모사의 대상이 되는 여성성은 결국 원본이 없는 셈이고,
석 : 그리고 게이의 경우에도, 그 말이 만들어질 시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이반, 보갈이란 말과 이어진 것이긴 한데, 보갈이란 말 자체도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이런 식으로 쓰이던 말이었잖아요. 그러다보니 거기에 빗대 게이란 말도 그 당시엔 엄브렐러 텀이 아니었을지,
정숙조신 : 실제로 70년대 서양에서는 퍼레이드할 때 ‘게이 프라이드’라 불렀는데, 그 당시의 게이는 엄브렐러 텀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더라고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까지 포함한 개념의, 성소수자 전체를 포괄하는 느낌으로.
터울 : 그런데 한국은 그 이후 ‘게이’라는 말이 다른 맥락으로 구성되었던 것 같아요.
▲ 논바이너리 깃발.
3) 게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
터울 : 그럼 굉장히 게이 중심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일동 웃음) 첫번째는,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게이들을 만나고 계시잖아요. 내가 그래도 게이들을 만났을 때 좋은 게 1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은데, 게이를 만나면 어떤 게 좋은지 궁금해요.
정숙조신 : 음… 저한테 게이 친구들은, 뭐랄까 고양이와 집사 관계? (웃음) 같이 놀면서 친해지면 배를 긁어도 좋다고 내어 주는 고양이님 같은 존재? (일동 웃음)
터울 : 수습할 기회를 드리도록 할게요. (웃음)
정숙조신 : 앞에서 제가 ‘특별 손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수도권 게이들 사이에 고도로 발달한 관계 네트워크, 관계 자본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 제가 얹혀 가는 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몇몇 게이와 사적으로 친해진 다음에, 그들이 잘 가는 술집을 소개받고, 그들이 잘 가는 클럽에도 같이 가고, 물론 가끔 입장이 힘들기도 하지만요.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으면서 네트워크가 넓어지고, 그 과정에서 단골 가게가 생긴다거나 마음이 잘 맞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식으로요. 지금 수도권 게이의 친교 네트워킹이 이런 친밀감을 확대하기 아주 적당한 규모죠.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은. 그리고 저랑 만나는 분들 입장에서는, 글쎄요, 저를 만나는 게 ‘게이로 정체화하지 않은 성소수자’를 만나는 기회가 되는 것도 같고요. 어쩌면 뭔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게이의 여자친구… 같은 관계의 변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긴 있어요.
하나 아쉬운 점은, 처음 네트워킹이 20-30대 친구들 위주로 만들어지다 보니까 거기서 고정된 감이 있다는 점이에요. 40-5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 여러 형태로 만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당장 종로의 게이 바만 해도 ‘아저씨 술집’이 엄청 많잖아요. 뭔가 처음 연결고리가 잘 안 만들어져 있으니까 혼자서 시작하기가 많이 힘들더라고요. 혼자서 ‘중년 바’에 들어가는 건 너무 무모한 모험 같고, 같이 갈 친구 구하기도 쉽지 않고, 들어갔을 때 ‘저 사람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라는 시선도 만만찮은 장벽이고… 겉보기 나이 면에서도, 겉보기 성별 면에서도 의심스러울 수 있겠죠. 뭐 이런 부분은 얘기하다 보면 금방 풀어지기는 하지만요.
터울 : 그러면 게이들에게 정말 이것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싶은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웃음)
정숙조신 : 게이들이 좀 알았으면 하는 부분이, 욕망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커뮤니티의 결속력이 굉장히 버프된다는 점이에요. 그게 알게 모르게 공기처럼 남아서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성 지향성을 기준으로 모이지 않은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버프가 없어요. 결정적인 순간에서 그 버프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고요. 물론 그걸 바탕으로 끔찍하게 얽히는 치정 관계를 만들 수도 있지만, (웃음)
터울 : 성 지향성이 얽힌 커뮤니티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은 게이 커뮤니티의 소중한 자원이지만, 그것이 애초에 누굴 배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 분명 있고, 무엇보다 사실 그 과잉 성애화된 문화는 게이 커뮤니티 구성원 안에서도 굉장히 한정적인 연령대와, 한정적인 건강 상태와, 한정적인 비장애 상태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그걸 누릴 수 있는 계층들이 실은 꽤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자각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정숙조신 : 네, 물론 그렇다고 그 강력한 버프를 함부로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려운 숙제인 것 같아요.
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문제를 더 생각해보자면 이런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식 안되는 사람을 공기처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경계를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깥 세상’이 아니라 종로나 이태원 같은 곳에서 게이들끼리 만날 때는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행동 양식이 그렇게 깔끔하게 모드 전환이 되는지가 저는 좀 의심스럽고요. 식이 되는 사람에게만 나의 한정된 에너지를 쏟겠다는 태도가 결국에는 사람을 욕망을 위해 대상화하는 가치관 같거든요. 그게 커뮤니티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게 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있지 않은가, 혹여나 그 태도가 ‘바깥 세상’에까지 배어 나가기라도 하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숨쉬듯 하는 여혐’처럼, 표준화된 욕망을 따르지 않거나 유성애중심주의적이지 않은 그 밖의 다른 집단에 대한 무시로 이어지겠죠.
▲ 석, 「[칼럼] Gaymer's Gayme #2 - Sims」, 『친구사이 소식지』 54, 2014.12. (전문 링크)
심즈4는 이후 옷과 외모에서 성별제약을 푸는 기능이 삽입된 업데이트를 배포했다.
토큰 게이(Token Gay) : 영화나 드라마, 게임의 게이 캐릭터들 중에, 게이임에도 극중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캐릭터를 일컫는 말.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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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게임 속의 논바이너리
1) 게임 속에서의 논바이너리 재현 시도와 좌절
터울 : 다음으로는 게임 속의 논바이너리 재현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현재 게임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계시고, 게임이란 미디어 안에서 계속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시잖아요.
정숙조신 : 계속까진 아니고, 이제 겨우 시작 단계죠. (웃음)
석 : 요즘 게임 산업에서 대두되는 게, 게임 속에서의 소수자 재현이잖아요. 미국에서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그런데 그만큼 많이 비판도 뒤따르는 것 같아요. 가령 그냥 소수자라는 토큰(Token)으로서만 존재한다든가, 아니면 당사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서 오히려 당사자들에게 욕을 먹는다든가, 또 이 상황에서 포비아들은 애초에 왜 이런 걸 다뤄서 분란을 일으키냐는 ‘혐오’ 반응을 하기도 하고, 되게 복잡한 상황이 있는 것 같아요. 그 가운데 게임 안에서 정체성을 재현하고, 소수자의 대표성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게임 일을 하면서 많이 신경쓰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어떤 중요성을 갖고, 어떤 어려움이 수반되는지에 대해 듣고 싶어요.
정숙조신 : 별로인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어쨌든 넣기는 넣어야 한다고 보고요. 넣다보면 결국 노하우가 쌓여서 더 좋아질 거라고 보거든요. 게임이라는 매체가 역사가 오래된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까 시행착오는 앞으로도 많을 거라고 봐요. 예를 들면 성소수자가 미국 드라마에서 재현되기 시작한 게 2000년대 정도부터고, 90년대에는 다인종 이슈들이 나왔죠. 그런 주제들이 처음 들어갈 때도 토큰 흑인 넣고, 토큰 게이 캐릭터 들어가고, 장난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단계를 거쳐야지 나중에 더 표현이 세련되는 것 같기도 해요. 노하우도 쌓여서. 기존 서사와 잘 어울리게 하는 테크닉도 생기고. 그래서 그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 같고요.
석 : 앞으로 게임 내에서 성소수자 재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게 좋을까요?
터울 : 예를 들어주시도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성소수자 캐릭터나, 논바이너리 캐릭터가 나왔으면 좋겠다든지,
정숙조신 : 예를 들면, 성소수자와 관련된 몇몇 기능들은 구현이 오히려 쉬운 것들도 많이 있어요. 심즈1을 만든 사람들의 인터뷰에 있던 이야기인데, 원래는 동성커플을 만들 생각이 딱히 없었나 봐요. 그런데 그러려다 보니, 오히려 심에 남자 속성이 있고 여자 속성이 있고, 그런 걸 체크한 다음에, 결혼할 수 있는가를 체크할 때 성별이 뭔지를 한번 더 체크하는 부분이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너무 번거롭지 않냐, 차라리 이거 다 빼버리고 다 커플링할 수 있게 하는 게… 그러니까 성별의 제약을 없애니까 프로그램상으로는 오히려 예외조건이 하나 빠져서 간단해지는 거죠, 일이.
보통 이런 다양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논리 중의 하나가, 그러면 프로그램이 더 복잡해져서 일정과 예산이 더 많이 든다고 핑계를 대는데, 오히려 이렇게 더 편해질 수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뭐 이걸 집어넣어서 복잡해진다고 해도, 그걸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고요.
석 : 비슷한 맥락에서 심즈4에서는 젠더 표현에 대한 제약을 다 풀었죠.
정숙조신 : 네, 남자 머리, 여자 머리 그런 거 없고, 목소리도 성별과 상관없이 맞출 수 있고.
터울 : 고무적인 일이네요.
석 : 그리고 요즘 많이 하는 걸로는 성별 대명사, he, she 말고 they를 쓴다든가, 그런 식으로 고를 수 있게끔 하는 것도 있더라고요.
정숙조신 : 그런 측면에서 되게 구린 짓을 하고 있는, 반대 축에 놓여있는 대표적인 게임이 마비노기인데, 결혼 시스템이 있는데 동성결혼이 안돼요. 그런데 이 게임은 환생이라고 하는 시스템이 있어요. 일정 기간 동안 플레이를 하면, 내가 플레이했던 데이터를 고스란히 가지고, 몇 가지 리셋되는 게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스란히 가지고 새로운 나이와, 새로운 외형과, 새로운 성별, 이름·종족을 제외하고 나이, 외형, 성별을 마음대로 바꾼 채로 1레벨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거든요. 그런데 동성혼이 막혀있다 보니까, 일단 결혼하고 나면 환생할 때 성전환이 안돼요. 그러니까 굉장히 인위적으로 새로운 부분을 넣어서 그걸 막은 거죠.
석 : 굳이 루틴을 더 집어넣어서, (웃음)
정숙조신 : 성전환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임에서, 규범적 결혼을 위해 성전환을 막고, 어이가 없었어요. 내년에 마비노기 모바일 버전이 새로 나오는데, 거기서는 제발 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실은 이게 미국과 일본 서버에서는 몇 년 전에 풀렸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 안 풀렸어요.
석 : 재밌는 게, 단순히 제약을 푸는 것일 뿐인데 또 그걸로 인해서, 예를 들면 “PC충이다”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런 점들도 있을 텐데요.
정숙조신 : 그러니까 큰 회사들은 그런 것 때문에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되게 몸을 사리죠. 그런 케이스가 많이 있어요.
석 : 재현에 대한 비판이랑 꼭 엮이는 게 어떤 PC주의, 이런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큰 게임회사에서 주저하는 부분이 있고,
터울 : 긁어부스럼이 될까 봐,
석 : 괜히 안해도 되는 짓 하다가 욕먹는, 이런 식으로 인식이 되는 게 있어요.
정숙조신 : 네, 심즈4도 의상이나 외형에서 성별 제약을 다 없앴는데, 비슷한 걸 또 한 게 파이널 판타지 14도 모든 종족과 모든 성별의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같은 옷을 공유하게 되어 있고요, 그리고 그 옷의 디자인을 최대한 똑같이 맞추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초반 레벨부터 떡대 남캐 종족들이 비키니 팬티 갑옷을 입고 다닌다든지, 그런 장관이 연출되고요. (웃음)
석 : 제가 잘 입고 다녔습니다. (웃음)
▲ 파이널 판타지 14에서 팬티갑옷을 입은 루가딘(Roegadyn).
2) 논바이너리 게이머와 게임 속 논바이너리의 미래
석 : 아까 말씀드린 것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게임을 주로 소비하는 계층으로 여겨지는 게 이성애자 남성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최근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라든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임이 많이 나오고 있고, 이성애자 남성들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충분히 몰입을 하고 있는데, 반면에 퀴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임이라든가 퀴어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은 정말 인디씬에서 머무르거나 포르노로 남거나, 거의 그 정도인 것 같아요.
현실이 그렇다는 것은, 퀴어라는 게 그렇게 대중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분석이 들어간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만약에 퀴어가 대중성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그러할 수 있을까가 궁금해요.
터울 : 이건 게임을 통한 논바이너리 표현의 확장으로도 연결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숙조신 : 실제로 젠더 디스포리아(dysphoria)가 있는 사람에게, 그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매체가 게임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이 세계에 묶여있는 육체와 다른 육체로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터울 : 소식지에서 젠더 위화감을 다루는 “Dys·4·ia”란 게임을 다룬 적이 있어요.
▲ 석, 「[칼럼] Gaymer's Gayme #7 - Dys·4·ia」, 『친구사이 소식지』 60, 2015.6. (전문 링크)
석 : 그건 트랜지션 과정을 다룬 게임이었고, 여기서의 맥락은 그것과는 좀 다른, 가상에서의 정체감이나 해소감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정숙조신 : 어쨌든 가상 캐릭터를 움직이는 거니까, 현재의 나와는 다른 내용을 가진 캐릭터를 움직이면서, 젠더 위화감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젠더 마커를 적극적으로 없앤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니(Journey)’라는 게임이 있거든요, 플레이스테이션(PS) 3과 4 용으로 나온. 망토 뒤집어쓰고 사막 걸어가는.
석 : 네, 그것도 있고 언더테일(Undertale)도 있죠.
정숙조신 : 그렇죠. 일단 사람으로 보이는 캐릭터이긴 한데 성별을 특정할 수 있는 표지를 적극적으로 뺐어요, 기획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해서 누구나 다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고, 몰입하기 좋게 만든 게임들도 있고. 비인간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이 사회는 비인간 캐릭터에게도 너무나 성별화를 많이 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건 쉬운 선택은 아니죠.
퀴어 표현을 게임에서 대중화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웃음)
▲ 'Journey' 게임 화면.
석 : 그게, 사실 저도 고민이 되거든요. (웃음) 계속 틈새시장이라는 것으로만 남아있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정숙조신 : 일단 게임에서 플레이하는 상황 자체가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성이랑 상관없는 게임 메커니즘이 많이 있거든요. 대표적인 게 활질, 총질, 아무 상관없잖아요. 주인공의 성별이 뭐냐는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만 행위 자체는 기본적으로 상관이 없잖아요. 아니면 건설 시뮬레이션이라든지, 마을 경영 시뮬레이션이라든지, 테트리스처럼 추상적인 퍼즐 게임이라든지. 이런 것도 그다지 상관이 없고.
젠더적인 면이 중요하게 부각되려면, 나의 캐릭터가 NPC들이랑 인터랙션을 많이 해야 되는 게임이라든가, 온라인에서 다른 게이머의 캐릭터랑 인터랙션을 해야 되는 그런 종류의 게임에서만, 캐릭터의 성별 정체성이나 성 지향성 같은 이슈가 나올 수 있거든요, 대부분의 경우에는요.
석 : 반면 작년에는 게임 내에서 아예 성별 정체성이 필요없는 데에서도 남성으로 읽혀야 된다는, 가령 마리오의 주인공을 마리오가 아니라 여성으로, 마리아로 바꾼다, 그러면 이제 또 난리나겠죠.
정숙조신 : 피치가 주인공인 비슷한 게임이 있었죠, 사실.
석 : 피치가 주인공이다, 이러면 이건 여성을 겨냥한 게임, 이런 식으로 되겠죠.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숙조신 : 그렇죠.
▲ 슈퍼 프린세스 피치(2005) (게임 정보 링크)
터울 : 논바이너리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나와도 좋을 것 같아요.
정숙조신 : 인디씬에서는 있을 거예요.
석 : ‘어이쿠! 왕자님’ 같은 게임을 보면 남성 캐릭터가 되게 여성스럽게 자라기도 하는 요소가 존재하죠.
터울 : 사실은 그게 임의적이잖아요. 내가 이성애자로 이렇게 육성시켰다고 해서 이성애자로 자라는 것도 아니고, 논바이너리로 육성시킨다고 해서 논바이너리로 자라는 게 아닌 것이기도 하고, (웃음) 게임으로 그런 걸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해법일 것 같고,
정숙조신 : 아무튼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얘기들이 전면에 드러나기 쉬운 장르들이 있거든요. 그런 장르들에서 적극적인 시도를 많이 하면, 다른 종류의 게임에서도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제가 이번에 비주얼 노블을 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그런 의도가 있어요. 특히 연애 게임이라면 정말 젠더나 섹슈얼리티가 게임 메카닉의 핵심이기 때문에.
▲ 퀴어문화축제 서울광장 사용승인 "무지개 줄서기" 이벤트 : 2015.5.28., @남대문경찰서
5.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활동
1) 논바이너리 커뮤니티 운동 단체
터울 : 이제 여행자 얘기로 넘어갈 게요. 여행자는 너무 신기한 게, 커뮤니티 운동단체잖아요. 그전의 트랜스젠더 단체로는 아니마, 지렁이가 있었고, 현재는 조각보가 유지 중인데, 실은 이 단체들이 ‘커뮤니티’ 단체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 같거든요. 2년만에 이렇게 회원이 늘고 약진하게 된 비결이 되게 궁금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만큼 이원젠더/이성애중심주의에 대한 반감이 도저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또 청소년들이 젠더퀴어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지고 있잖아요. 이런 흐름이나, 2년만에 단체가 이렇게 커온 것을 목도하면서 느꼈던 소회가 궁금해요.
정숙조신 : 저도 사실 놀랐고요, 비결 뭔지 알고 싶고요. (웃음) 그냥 이 판 전체가 폭발적으로 커지는 와중이라, 그 버프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정말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눈을 돌리면 어쨌든 여행자가 있을 수 있는 셈이고,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직전에 이 단체가 생겼다는 게, 그 타이밍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새로 나타난 사람들을 유입시키기도 되게 쉬웠고. 그리고 여행자 활동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서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정체화하는 사람도 또 늘어나고, 그래서 커뮤니티와 단체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달까요. 여태까지 커온 것은 그 점이 제일 컸을 것 같아요. 다른 요인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터울 : 2015년 남대문서에서 퀴어문화축제 서울광장 사용을 승인해달라고 모였을 때, 그 때를 계기로 여행자가 결성되었다는 것도 상징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여행자 회원들끼리 어떻게 친해지냐고 했을 때, “동질감에 의존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읽히기에 따라서는 어떤 의미에선 다소 규범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되게 멋있긴 한데 실제로 저렇게 돌아가나? (웃음) 이런 생각도 들고요.
커뮤니티 운동단체라는 것은 친구사이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거든요. 운동으로만 나가는 게 아니라, 일정한 회원과 자조모임의 성격을 유지해나가면서 운동을 해나가자는 건 친구사이도 사랑하는 조직원리 중의 하나인데, 그 방식이 게이가 아니라 논바이너리에서는 어떻게 구현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든요.
▲ 여행자가 주관한 2016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임보라 목사님이 발언 중이다. : 2016.11.20., @경의선숲길공원, 연남
사실 소수자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젠더 이분법 규범에 내 삶 자체로 의문을 제기한다'는 일종의 '부심'이라도 부리는 게 도움이 된다. 그 부심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지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 정숙조신, 「여행자를 만난 뒤의 삶」,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뜻밖의 여행 : 여행자 종합책자』, 2017.7.15.,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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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조신 : 저는 역설적으로 친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웃음) 개인적인 감정이 안 생기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대신에, 뭔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동지의식에 많이 의존하는 것 같아요. 사적으로 더 마음에 들어하고, 공통점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도 있긴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마음들을 가지기 시작하고 그걸 대놓고 보이기 시작하면, 모임을 끌어가는 면에서는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만이라도 최대한 그걸 자제하려는 편이에요. 막 끼리끼리 모여서 친목질하는 건 막자는 느낌으로.
그리고 여행자 사람들을 묶어주는 힘이 무언가를 돌이켜보면, 다른 데서 하기 힘든 얘기를 할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지금까지는 가장 큰 동력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거기에 계속 나오게 만드는.
터울 : 책을 보니까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억눌려있던 서사가 터져나오는 느낌이었어요.
정숙조신 : 네, 억눌려있던 것도 그렇지만, 이미 알려져 있는 다음에도 바깥에선 함부로 얘기를 못하는데, 여기서는 괜찮다는 느낌이 있어요. 특히 트위터에서 이런 얘기들이 많이 재생산되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한 사람과 안한 사람들 간에 이 이슈에 대해 아는 수준이나 배경지식의 차이가 엄청나게 많이 벌어졌잖아요. 그래서 점점 내부에서 강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안에서의 얘기는 바깥에서는 할 수 없다-라는 느낌.
▲ 성지향성과 로맨틱지향성의 다양한 갈래. (마성의 게이 블로그 링크)
터울 : 여행자 안에서는 무성애자분들도 꽤 많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게이커뮤니티처럼 유성애와 결부되어 만들어지는 멤버쉽이 아닌 형태로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신 것 같아요, 여행자는.
그리고 여행자의 논의를 보면서, 우리가 흔히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나눈 다음에 섹슈얼리티 안에서도 또 분화되고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이를테면 젠더정체성의 분화는 가령 남성과 여성, 그리고 논바이너리, 이렇게 된다면, 섹슈얼리티 안에서의 분화도 새롭게 나타나서 로맨틱지향성, 섹슈얼지향성(성지향성), 그 다음에 성적 끌림과 성욕을 나눠서 성적 끌림이 없는 사람을 무성애자로 칭하는 어떤 방향이 있는데요.
한 가지 궁금한 건, 그렇게 로맨틱/섹슈얼(성욕/끌림)의 스펙트럼을 세분해서 본인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으신데, 그 분들과 관계맺을 때의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보통 그런 분들과 그런 개념을 접하기 전엔 그걸 하나로 뭉뚱그려서 생각하게 되니까요.
정숙조신 : 그렇죠, 한 뭉텅이로 생각하죠. 그런데 이미 예전에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개념을 한번 접했으니까, 거기서 로맨틱지향성이 또 갈라져나온 것 정도는 그것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 같거든요.
터울 : 오히려 자연스럽다?
정숙조신 : 네, 그래서 별로 어렵지는 않았어요. 아, 그런 게 있을 수 있구나, 정도의 느낌.
터울 : 저는 이 정체성의 구분들을 보면서, 게이커뮤니티 안에서도 이런 용어들이 사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되면, 게이 정체성이 갖는 규범성들이 있잖아요. 과잉 성애화되어 있다든지, 일틱 남성이 표준적인 욕망 대상이라든지. 그런 규범 자체가 허상이라는 게 밝혀질 수 있을 것 같고, 또 본인들이 좀더 자기를 정확히 알게 되면 이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게 좀더 쉬워지지 않을까, 그를 위한 유의미한 도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게이 커뮤니티가 논바이너리나 다른 정체성, 혹은 그 내부의 구성원들을 억압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정숙조신 : 좋은 지적인 것 같아요. (웃음)
▲ 성소수자 촛불문화제 "나, 트랜스젠더", 2017.3.31. @보신각
* 여러 논모노 지향들 - 바이 지향 - 폴리 지향 - 팬 지향 - 플루이드 지향 이 모두를 통틀어서 '논모노 지향'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외국에서는 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논모노로그 팜플렛 中. |
2) 젠더와 섹슈얼리티, 그 이후
터울 :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정숙조신님에게 젠더란? (일동 웃음)
석 : 라디오스타 공식 질문입니다. (웃음)
정숙조신 : 사람의 경험의 종류를 가르고 분류하는 첫번째 틀인데, 그렇게 분류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것?
터울 : 저는 논바이너리 정체성 안에서 ‘젠더리스’라는 말을 듣고 흥미로웠어요. 내 바깥에 있는 젠더의 레짐(regime)은 사실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에 저항하는 방식이 내 안에서 아예 젠더를 없애는, 젠더를 실천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젠더없음을 실천하는, 그런 부분이 어떤 의미에선 저항적이란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젠더를 레짐으로 설명할 때 조심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젠더가 외적으로 존재합니다, 너무나, 라고 했을 때 젠더리스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설명되지 않고 배제되는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어쩌면 페미니스트와 퀴어페미니스트 ‘사이’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고, 여성과 논바이너리 사이의 전선을 긋는 어떤 것 같기도 해요. 명징한 젠더를 공격하기 위해 젠더를 더 명징하게 상정하는 것과, 명징한 젠더를 깨부수기 위해 내 안에서라도 젠더를 무화시키는 것. 그렇게 다양한 전략이 있을 수 있는 거고, 그런데 또 그 몸들에게 다가오는 억압의 형태는 의외로 비슷한 얼굴을 갖고 있기도 한 것 같아요.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숙조신님에게 섹슈얼리티란? (웃음)
정숙조신 : 젠더도 그렇고 섹슈얼리티도 그렇고, 남녀 두 개가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그리고 그것의 존재가 생물학적인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역할도 아니고 심지어 끌림의 기준조차도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일단 ‘남자’와 ‘여자’로 뭘 단순하게 설명하기는 다 틀렸고요. (웃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많이 증명됐기 때문에, 그런 시대는 다 지나가버렸고, 어차피 복잡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정보기술 사회이기 때문에, (웃음) 그것의 이점을 이용해서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사람들이 적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사회가 진화했으면 좋겠어요.
터울 : 복잡함을 직면해달라,
정숙조신 : 네.
터울 : 그건 게이들에게도 이성애자에게도 통용될 말씀인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웃음)
정숙조신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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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사이 소식지 인터뷰, 2017.7.26.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커뮤니티의 양적 질적 변화가 더 많이 이루어지게 더 활발한 활동 부탁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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