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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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중독' #2]
중독에 대한 짧은 생각
음주와 알콜중독, 흡연과 니코틴중독, 성관계와 성중독은 다릅니다. 마약복용과 마약중독 역시 다르지요. 다르다는 것은 어떤 중독성 물질을 복용하고, 어떤 행위를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중독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술을 마신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알콜중독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마약을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마약중독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요.
이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떤 특정 물질을 사용하는 것과 어떤 특정 물질에 중독된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무엇에 몰입하거나 탐닉하면 '중독'이라고 표현하지요. 밀가루 음식을 너무 좋아하면 '탄수화물 중독', 쇼핑을 즐기면 '쇼핑 중독', 인터넷을 오래하면 '인터넷 중독' 등. 즉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몰입해서 하면 '중독'이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그러나 정신병리에서 중독으로 규정하는 항목은 광범위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정신병리(장애)체계인 DSM-5에서는, 중독과 관련해서 '물질-관련 및 중독장애'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 장애는 특정 물질을 사용하거나, 혹은 특정 행위에 몰두함으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사회적, 개인적, 심리적 부적응적 증상을 포함합니다. 이 장애의 하위 범주는 물질 관련 장애와 비물질 관련 장애입니다. 물질-관련 장애에서 이야기하는 물질은 알콜, 담배류, 카페인, 환각제, 흡입제, 대마, 아편류, 진정제, 수면제, 항불안제 등이고, 비물질 관련 장애는 도박 장애를 주로 다룹니다. 중독이라고 하면 흔하게 이야기되는 섹스중독, 인터넷중독, 쇼핑중독, 관계중독 등은, 정신장애 분류체계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요.
중독과 중독 아닌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려면, '중독'이라고 진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DSM-5의 알코올 중독에 대한 진단기준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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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Alcohol Intoxication) 진단기준
A. 최근의 알코올 섭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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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Alcohol Intoxication) 진단적 특징
알코올 중독의 필수적인 특징은 임상적으로 심각한 문제적 행동 변화 및 심리적 변화(예, 부적절한 성적 혹은 공격적 행동, 기분 가변성, 판단력 손상)가 알코올을 섭취하는 동안 혹은 직후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기능 손상, 판단력 손상의 증거들과 동반되고, 만약 중독이 심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혼수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 증상들은 다른 의학적 상태(예, 당뇨병성 산증) 때문이어서는 안되고, 섬망과 같은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다른 진정 작용이 있는 약물의 중독과 연관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운동 실조의 정도는 운전 기능 수행과 일상 생활 수행을 방해해서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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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독과 중독 아닌 것의 가장 큰 차이는 '통제 혹은 자기조절'이 가능한가-입니다. 즉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을 수 있느냐-입니다. 중독은 하고 싶을 때도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마음과는 달리 물질을 사용하거나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중독과 관련해서 내성과 금단 현상이 있는데요. 내성은 약물을 사용하였을 때 효과가 점차적으로 감소하여,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 용량을 계속 증가시켜야 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소주 한 병의 효과가 나중에는 열 병을 먹어야 이전의 한 병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금단현상은 약물의 사용을 중단하거나 사용량을 줄였을 때, 여러 가지 부적응적 증상(예, 불안, 초조, 식욕부진, 수면장애, 환각, 발작 등)이 나타나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중독은 물질의 강박적 사용, 조절 능력의 실패, 나쁜 결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Adam Ciesielski, freeimages.com)
사람은 왜 중독에 빠질까요? 다양한 원인, 설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 이야기할 능력은 안되구요. 한가지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addict'(중독자)의 어원은 라틴어 'ad'('향하다' 혹은 '좋다')와 'dict'(말하다)의 결합이라고 합니다. 즉 중독자는 '항상 좋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 혹은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중독은 '항상 좋은 상태(행복, 평화, 사랑, 충만, 황홀감 등)를 유지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합니다.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며 인위적으로라도 '항상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할 때 중독은 시작됩니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연속입니다. 기쁜 일도 있고, 화나는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즐거운 일도 있습니다. 유쾌할 때도 있고 불쾌할 때도 있습니다. 하늘을 날듯한 행복을 누릴 때도 있지만, 끝이 안보이는 구덩이로 빠지는 듯한 불행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은 늘 변합니다. 우리는 늘 좋은 기분, 행복한 상태, 즐거운 감정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추구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유쾌한 만큼 불쾌하고, 기쁜 만큼 슬프지요.
그런데 중독은 이 변화를 견디지 못합니다. 늘 행복해야만 한다는 사람, 그 어떤 불쾌함도 견딜 수 없다는 사람에게 중독은 매력적인 친구가 됩니다. 중독은 '늘, 항상 좋을 수 있다'고 약속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중독은 행복에 대한 강박적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정상적으로는' 행복(좋은 기분?)이 늘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물질 혹은 어떤 행위에 몰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동안 어떤 물질, 행위에 몰두하면 '행복'이 찾아온 것 같지만, 그것은 몸을 속이는 것입니다. 실제는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것처럼 스스로 속는 것이지요.
중독자들끼리 '마약을 한다'는 것을 은어로 'fix'라는 단어를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fix'에는 '고친다'는 뜻도 있습니다. 무엇을 고친다는 것일까요? '불쾌한 감정, 스트레스로 인한 짜증, 화, 분노 등'을 고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쾌한 감정, 사건, 상황, 스트레스를 피하지 말고 견디어 보는 삶도, 중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늘 행복한 상태' 이상으로 매혹적인 삶이 아닐까요?
* 참고한 책
미국심리학회(APA), 권준수 역, 『DSM-5 :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 학지사, 2015.
권석만, 『현대이상심리학 2판』, 학지사, 2013.
크레이그 네켄, 오혜경 역, 『중독의 심리학』, 웅진지식하우스, 2008.
패트릭 레인 외, 이은선 역, 『중독』, 홍익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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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AP 센터 상담실장 / 홍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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