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5월 |
|---|
게이머즈 게임
#6

내 전애인은 우주폭군!
(스포일러가 있으니 혹여나 이 게임을 하실 분은 주의하세요.)
이번 달에 살펴볼 게임의 제목은 <내 전애인은 우주폭군! (My Ex-boyfriend the Space Tyrant)>야. '게이를 테마로 한 어드벤쳐 게임'인데. Steam과 자체 사이트를 통해 판매되고 있어. 사실 2014년 7월에 출시되었으니, 나온지 꽤 된 게임이야. 왜 이걸 이제 와서 보려 하냐면... 별로 안 땡겼거든. 재미 없어보여서. 안했어.
재미 없어?
음... 재미 없는 건 아닌데... 음... 없다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차근차근 뜯어봅시다.
이 게임은 게이인 우주선 선장 '타이코 미노그'가 우주 폭군이 된 전애인의 세계 침공에서 사람들을 구해내고, 전애인을 막으러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야.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스테레오타입 게이들이 주인공을 반겨주고요. 내러티브 자체는 전혀 퀴어하지 않아. 마초적이지.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암시되기로는 우주의 모든 남자들)이 게이라는 상황은. 음. 좀 복잡한 의미로 퀴어적이군. 게이 스테레오타입을 나열하는 소품들과 대사들 덕에 '게이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임이 되겠어.
장르를 봅시다. 이 게임은 고전적인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야. 배경에 숨어있는 온갖 도구들을 찾아내서, 그것들의 사용법을 생각해내서 조합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게임이지. PC가 그래픽을 표현하기 시작했던 무렵부터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죽은 장르라고 할 수 있어. 어드벤쳐 게임이라는 장르 전체가 죽어가던 무렵, 텔테일 게임즈(Telltale Games)에서 <워킹 데드>를 만들어 내어 화려하게 어드벤쳐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 올렸어. "스스로 선택하는 모험"이라는 어드벤쳐 게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야. 하지만 덕분에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는 메인 스트림으로 올라오기 더 어려워졌어. 왜냐고? 느리고 지루하거든.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와 퍼즐이 강점인 장르였는데, 이제는 훌륭한 대체 장르가 생겼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매니아들은 남아 있고, 저자본으로 개발하기 좋은 장르이기 때문에 인디 쪽에서는 적지 않은 수요가 있어. 고전적인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를 계승해서 만든, 직관적이고, 아름답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임들이 종종 호평을 받고 있어. Machinarium, Deponia, Gemini rue 등이 당장 떠오르는 게임이네.
이 게임은 그럼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로서 어때?
으음... 노잼. 굉장히 못만들었어. 버그도 많고, 90년에 출시된 <원숭이 섬의 비밀>보다도 조작감이 안 좋아. 심지어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가 사장된 가장 큰 이유인 "픽셀 헌팅"(필요한 도구나 길을 찾기 위해 화면상을 한 픽셀씩 더듬거리는 것)이 필요한 구간도 있어. 미국 카툰 스타일의 캐릭터 아트는 훌륭하지만, 애니메이션이 영 부족해. 특히 주인공이 걷는 모습... 내내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게 괴로운 지경. 게다가 화면 한 구석을 잘못 클릭하기라도 하면, 그 죄로 주인공이 절뚝거리며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손 놓고 지켜봐야 돼. "못 만든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라고 할까?
사실 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를 나름 좋아하는 편이야. '상황에 기반한 퍼즐'이라는게 잘 만들어졌을 경우 상당히 재미있거든. <원숭이 섬> 퍼즐은 풀고 나면 무릎을 치게 만들어. 황당하지만, 유쾌하거든. 그런 건 좋단 말이지. 그런데 여기에서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가 망한 두번째 이유가 나와. 말도 안되는 퍼즐. 어느 정도의 황당함은 퍼즐을 풀었을 때 재미를 주지만, 복선도 없고 상식도 없고 재미도 없는 퍼즐은... 한숨만 나오지. 어드벤쳐 게임이 범람하던 시절, 게임을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해 이런 퍼즐이 마구 등장했었어. 결과는? 공멸.
이 게임은 어떤데?
대부분은 아주 안정적이야. 심심할 정도로 상식적이고. 그런데 '나름 꼬았다'는 부분이... 짜증나게 황당해. 예를 들어줄게. 어떤 장치가 녹이 껴서 안 움직여. 그러면 윤활유가 필요하겠지? 마침 나한테는 스펀지가 있어. 그리고 저쪽 방에 윤활유가 새고 있는 파이프가 있어. 음, 그러면 스펀지로 저 기름을 바르면 되겠군. 여기까지가 상식이야. 그런데 그걸 시도하려는 순간, 주인공이 이렇게 말해. "이 기름은 너무 질이 낮아서 아무데도 못 쓰겠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좀 전에 윤활유라면서... 좋아. 여기까지는 이해하기로 했고, 멋진 반전을 준비해놨기를 바랐어. 이 상황의 답이 뭐였을까? 어항속에 들어있는 오징어를 놀래켜서 오징어가 먹물을 쏘게 만들어. 그 먹물이 윤활유래. 이 전혀 맥락없고 비상식적인 답을 찾기 위해 한시간 넘도록 모든 공간의 모든 물체에 모든 아이템을 쓰고 다녔어. 응. 이 게임은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가 망한 바로 그 이유를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너무 까는 거 아니야?
아, 내가 까는 이유를 말해줄게. 이 말을 하려고 내내 이 게임을 비판한 거야. 이 게임의 가격은 15달러야. 게임의 만듦새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싸. 즉, 게이를 소재로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을 거야. 이 게임은 분명 게이 소재를 위트있게 사용하고 있어. 게이 스테레오타입 농담, 화장실 유머, 전애인을 향한 애증에 대한 우화... 나름 게이들에게 어필할만한 B급 감성을 담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 게임 자체가, 만들다 말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면, 이건 당연히 못 파는 물건인거야. 그런데 이게 버젓이 팔리고 있어. 게이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수요는 풍부한 상황을 악용한 거야.
비단 게임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야. 기준 미달의 콘텐츠들이 '게이', '퀴어'등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주목받고, 소비되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야. 자정이 필요하지. 하지만 자정을 위해서는 결국 콘텐츠의 양이 늘어나야 해.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야. 많은 성소수자 창작자들이 SNS와 Kickstarter나 Paetron등의 소셜 펀딩을 이용해서 창작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어. 여유를 좀 가져 봐야겠지.
그럼 다시 이 게임 이야기를 마무리 해 줘.
응. 이 게임의 결말을 스포일러 하면서 리뷰를 마치도록 할게.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우주 폭군이 된 전애인은 알고보니 그냥 자고 있었고, 폭군의 정체는 전애인의 현 애인이라는, 아주 한심한 반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애인의 현애인은 주인공을 죽이려고 총을 쏘죠. 전애인이 막고 대신 죽습니다. 죽어가는 전애인은 주인공에게 묻습니다. "내가 널 찼던가 네가 날 찼던가..." 주인공은 전애인의 요청으로 작별의 키스를 해줍니다. 전애인의 현애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있습니다. 주인공은 둘을 버리고 떠납니다. 세상을 구한 주인공 앞에는 예쁜 금발 꽃돌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피 엔딩.
어머 구질구질하기가 그지없군요! ......이런 애들이 있긴 있...지... 내 얘기는 아니고...
아, 칭찬하고 싶은 점이 하나 있어. 이렇게 완성도가 개판임에도, 청각 장애인을 위한 효과음 자막. 시각 장애인을 위한 하이 콘트라스트 모드 등의 접근성 요소들을 넣은 점. 저예산 게임들이 포기하거나 간과하기 쉬운 부분인데. 잘 챙겨줘서 좋았지. 근데 그럼 뭐해... 게임이 재미 없는데...(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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