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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람 사이의 터울 #10 : 이태원, 축제와 일상의 간극
2014-11-28 오후 13: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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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1월 
사람 사이의 터울 #10 : 이태원, 축제와 일상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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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梨泰院을 걷습니다. 그 옛날 외지 사람들이 드나들던 역원이 있던 곳, 현대로 들어와 주한미군이 뿌려놓은 반쪽짜리 미국물이 도리어 문화의 숨구멍 역할을 하던 곳, 각국의 공사관이 즐비한 가운데 해방촌의 빈촌과 한남동의 부촌을 이웃하고 있으며, 경리단길의 정갈함과 해밀턴호텔 앞의 번잡함을 양옆으로 세워둔, 이름 그대로 태胎가 다른 이들이 오래토록 모여들어 터잡던 곳입니다.
 
이 곳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단장된 게이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여성에겐 다섯 배의 요금을 받는 게이 클럽들부터, 거리를 거닐며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는 화장한 남자들, 이성애자들이 주요 고객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트랜스젠더 클럽들이 주말의 이태원을 수놓습니다. 서로 다른 근본을 가진 이들이 모인 자리에, 이들 또한 그들 중 하나의 근본을 자처하며 이 곳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이태원의 주말은 언제나 뜨겁습니다. 이 곳의 대중교통은 늘 신새벽까지 만원을 이룹니다. 마치 평소에 이적진 무언가를 이 곳에서는 다 태워 없애고 돌아가겠다는 듯이. 밤이 깊어지고 해가 뜨는 직전까지 사람들은 하루어치의 멋과 감각을 필사적으로 소진합니다. 새벽이 밝아도 전날밤의 열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네온들의 광경은 장엄합니다. 노인분들과 이웃한 종로가 휘발될 듯한 목숨을 지상으로 내리누르는 묵직함을 닮았다면, 클럽들에 뒤섞인 이태원은 내처 움직이지 못할 인생을 공중으로 솟구쳐 올리려는 호쾌함을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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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근대화와 엄숙주의 사이에서 변변한 축제 문화 하나 벌려오지 못한 우리네 풍토를 생각했을 때, 늘 어딘가 퇴폐적이라고만 치부되어온 이태원은 주말마다 열리는 축제의 장으로서, 어떤 해방의 감각을 지니는 공간임에 분명합니다. 쾌락이 인생에 그토록 유해하지는 않으며, 쾌락을 짓쳐올린 자리엔 그에 값하는 윤리가 쌓이기 마련이고, 그 쾌락의 윤리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이태원은 몸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이런 날 듯한 쾌락을 하나 끼워두고 사는 것이 타박받을 일이긴 커녕 어떤 '전위'의 위치일 수 있음을 확신하는 낯빛들이, 한껏 꾸민 복장들 사이로 구슬처럼 번들거리는 광경을 여기서는 매 주말마다 볼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깃을 세우고 비비를 바른 일군의 게이들은, 흡사 공작새의 형상을 연상케도 합니다. 이 곳에 내가 왔다는 식의 기갈에 찬 발걸음은, 무슨 자기 과시고 허영이기 이전에 게이로서의 나를 사랑하고 그런 자신을 드러낼 것을 확신하는 어떤 의식ritual에 가깝습니다. 자기를 확신하지 못하는 적지 않은 게이들과 비교할 때, 유독 이태원에 들르는 게이들에게선 자기애가 부족한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 곳에서만큼은 완성된 모습이고 싶다는 그들의 강단이 빚어낸 아우라일 것입니다.
 
그런 그들은 게이 클럽이나 게이힐에 가서 자기를 뽐내며 춤을 춥니다. 그곳에서 매혹에 이끌려 실제 매칭으로 이어지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저 시선을 즐기거나 남 눈치 안 보고 춤을 추며 노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클럽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그곳에서 미친 척 남에게 지분거리는 이들은 생각보다 드물다는 것을. 클럽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몸이 부딪치고 비좁은 공간 속에서 오가는 예의들이 생각보다 탄실하다는 것을. 빼곡한 사람들 속에서 자기 본위로 즐거울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윤리가 필요하고, 그것들이 포함된 제대로된 매혹과 멋있음들과, 그것을 발산하는 저마다의 의식들이 그로부터 완성됩니다. 이렇게 이태원의 클럽들은 절정으로 치달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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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이태원과 그곳을 확신에 차 즐기는 게이들에게 별다른 문제는 없어보입니다. 물론 그들에게 특별히 잘못된 점은 없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지요. 이태원에서 푸지게 놀고 온 다음날, 혹은 퀴어퍼레이드나 여타의 행사에서 신나게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돌아온 다음날, 게이들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이태원에서 느끼지 못했던, 혹은 잠시 잊을 수 있었던 일상의 적대감을 다시금 느껴야 하는 때가 조용히 찾아옵니다. 그것들은 그냥 잠깐의 축제일 뿐이었다고, 이제는 돌아와 자신을 반쯤 가려야 하는 생활에 또다시 익숙해져야 한다는 목소리와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어제 퍼질러놓은 끼와 기갈들이, 돌이켜보면 부끄러움을 넘어 대책없이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이태원을 다녀온 다음 날이 무언가 얼떨떨해지는 이유는, 그곳에서 경험한 축제와, 이곳에서 경험하는 일상 사이의 '낙차' 때문입니다. 그 높이를 새로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한번 크게 열리고 난 다음에, 그것이 다시 오므라드는 시간을 버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아닌 여기를 버텨야 하기에, 그곳에서의 기억이 차라리 가짜같고 맛보아선 안되는 느낌도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시적인 것들에 속으면 안된다고, 앞으로 버텨야 할 것들이 많다고, 그러면서 또 그 버팀을 위해 이태원에서 치르는 의식ritual같은 놀이들도, 결국은 그것이 이곳에서의 '일상'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역설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별 근거도 없는 눈먼 염려들과는 다르게, 이태원은 거기에 존재해도 좋고, 게이들 또한 그렇게 놀아도 무방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즐김이 아니라, 그 즐김을 그토록 각별한 것으로 만드는 그들의 '일상'에 있습니다. 삶을 버티기 위한 즐김을 넘어서, 즐김을 버티기 위한 삶들이 여전히 그들에게 적대적인 것이, 게이들에게 이태원을 더욱 절박한 곳으로 만들게 합니다. 특정 장소에서 유독 특정 방식으로 몰입하는 게이들의 놀이 문화에서, 도리어 그들의 노력을 '비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상의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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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근자의 이태원에서는 게이들의 놀이 문화를 어떤 일회성이 아닌 방식으로, 지속적인 커뮤니티 안에서 일상과 보다 가깝게 호흡하는 움직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킹나이트에서 클럽, 번개의 연쇄에서 친목 그룹들로 나아가는 움직임들은, 이태원에서 시작했으되 이태원으로만 머물지 않는 게이들의 '일상'을 창안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것은, 주말 이태원에서의 '축제'와 특별히 구분되지 않는 게이의 삶을 보다 튼실히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처럼 크게 부푼 자아들이 이후에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공중으로 솟을 것처럼 신나던 기억들이 그리 유별스런 것이 아닐 수 있도록, 게이들이 마음놓고 자기 자신을 즐기고 확신할 수 있을 만한 사회적 축적이, 여기 우리 손으로 길러지고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즐거움은 생각보다 존엄하고, 일상은 생각보다 강고합니다. 이태원의 화려들 앞에 우리의 일상이 낯설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의 즐거움이 굳이 게토화된 공간 안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도록, 축제의 공간이 보다 넓은 일상의 축제 속으로 맞춤하게 자리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보다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이 마침내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 "사람 사이의 터울"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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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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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14-11-29 오전 01:47

형의 글은 어쩐지 나의 온 존재를 관통하는 기분을 들게 해서, 매번 숨죽이고 읽었음을 이제 고백해요....ㅎㅎ
이번 글에는 더 품이 많이 들었는지 유난히 담백하네. 가끔 형의 글이 그랬던것처럼 너무 서늘하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아서 더 좋다.

그동안 좋은 글 나누어주어서 참 감사해요.
많은 위안이 되었네..!

"저와 여러분이 마침내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저의 바람도 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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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2014-11-29 오전 04:56

매번 잘 읽어줘서 고마워. 나름 신경을 기울여 썼다고 생각되는데, 나에게도 꽤 의미가 컸던 연재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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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2014-11-30 오전 02:51

헉 요 연재도 이번이 끝이구나~~ 매번 고생 많았어~ 이번 칼럼 마지막 문단이 특히 명문이다! 터울도 새로운 글로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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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2014-12-03 오전 05:27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 연재도 힘내서 준비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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