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에 들이닥친 형사
어느 정신병원 원장님으로부터 들었던 그분의 경험담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분은 경기도 인근에서 정신병원 원장을 맡고 계셨는데 어느 날 그 지역에서 한 여성이 밤에 귀가를 하다가 심하게 상해를 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찰은 바로 수사에 나섰으나, 한밤중에 인적이 없던 시각에 발생하였던 사건이라서 피해자가 범인의 인상착의도 기억할 수 없었고, 이를 목격한 증인도 없어 자칫 미궁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러던 차에 담당형사는 정신병원으로 원장님을 찾아와서 대뜸 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명단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담당 형사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정신병자들이니 이러한 범행을 범할 충분한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그 명단을 받아 한 명, 한 명 조사를 해 보면 무언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병원 원장님은 담당형사의 계속적인 회유와 협박조의 말투에도 단호히 영장을 가지고 오지 않는 한 명단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셨다. 담당 형사는 이후로도 수 차례 병원을 찾아와 환자 명단을 요구하였지만 이를 거절하니, 마침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여 받아 와 결국 명단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위 사례에서 범인을 검거하여 사회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중요한 공익이 분명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명백한 범죄 혐의가 있어서 이를 수사할 필요성이 존재하여 이를 근거로 하여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에 의하지 않는 한 개인의 프라이버시 내지 자기정보에 관한 관리·통제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적법절차의 원칙도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개인의 인권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에 어떠한 이익 내지 권리를 우선시하여야 하는가?
외과수술 거부하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정신장애인과 관련한 또다른 경험을 소개한다. 모 정신보건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는 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정신장애인이 있었다. 그는 정신병원에의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무연고자로 돌보아 줄 가족이 없고, 의료급여 대상으로 국가가 전액 의료비 지원을 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과거에 칼에 찔려서 다친 부위가 잘 봉합이 되지 않아 수술을 하지 않은 채로 방치하다가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어서 수술을 바로 하려고 하는데 그 장애인이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계속 거부하는 상황이었다. 자문을 구하는 요지는 정신분열 증상 때문에 수술을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 그 장애인의 건강을 위해 강제로라도 수술을 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신분열 증세를 가진 정신장애인의 건강권이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수술을 거부한다고 하는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하는가?
정신장애에 대한 뿌리 깊은 낙인
위 2가지 사례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내용이 있다. 이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너무도 뿌리 깊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편견, 정신장애인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본인 개인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편견, 즉 소위 정상인의 기준으로 정신장애인은 비정상이라는 편견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문제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우울증 역시 정신질환의 일종이고, 장애인복지법에서 정신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인구가 전 국민의 14.4%로 약 46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가벼운 우울증을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실로 어림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질 것이다. 흔하다고 하면 이처럼 흔한 병이 정신질환임에도 사회에서 정신질환자 내지 정신장애인으로 낙인 찍히게 되면 어느 누구도 위와 같은 편견의 대상이 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벼운 우울증이 있어서 지역에 있는 정신과 의원에서 약이라도 한 번 타먹는 날에는 의료기록에 F 코드가 날인되어 어디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고,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듯이, 정신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우리 사회는 이를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상 이데올로기’ 지양해야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 전체를 몰개성적으로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선이 아니라 개개인의 개성과 의사가 보다 존중되어야 한다. 개인의 개성과 의견은 무시된 채 통일성과 도구적 합리성만을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그와 다른 이질적인 사람은 받아들일 틈이 없다.
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이든 다른 사람과 얼굴 생김새에서부터 기호, 생활방식, 사고방식, 지향점 등이 모두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차이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어느 한 기준(소위 ‘정상’)에 의해 획일화되고 표준화된다면 우리 사회에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2부류 밖에 없게 된다. 공부를 못하면 비정상인가, 혹은 얼굴이 못생기면 비정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