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게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인권의 길을 찾다' 토론회 열려
"동성애자가 존재가 아닌 성행위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군대 내 인권침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동성애자 같은 행위'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일 것이다. 즉 섹슈얼리티가 삭제된 동성애자의 '끔찍한' 인권 침해 경험이 동성애 혐오가 팽배한 사회에서 그나마 '구제와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키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지난 2006년 2월 군 당국이 남성 동성애자(게이) 병사에 대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라'며 성관계 장면을 찍은 사진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던 바 있다. 이 사건으로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이슈화되었고, 당시 군 당국은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이라는 것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침해는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남아있다.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대강의실에서는 '군대와 게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인권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동성애자인권연대'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를 모색해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로맨스'부터 '인권침해'까지.. 군대 내 경험 다양해"
이날 첫 발제를 맡은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군대 내 '로맨스', 즉 '성적 욕망'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정욜 활동가는 군대에서 게이들의 경험이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끔찍한' 인권침해의 경험도 있지만, '짜릿한' 로맨스까지 그 경험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는 게 정욜 활동가의 지적이다.
그는 한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등을 언급하며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군대는 게이들의 로맨스 공간으로도 자주 얘기된다"며 "성적지향과 무관하게 적지 않은 남성들이 군대에서 동성과의 성 접촉을 다양한 형태로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개인의 성정체성을 허용하지 않는 군대에서 로맨스는 늘 존재를 숨기며 쌓을 수밖에 없다"며 "합의 하에 로맨스를 키워갔어도, 법 제도 앞에선 처벌받아야 할 행위로서 인식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욜 활동가는 이어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에서는 로맨스와 두려움이 함께 공존할 수 있지만, 정체성이 오픈 된 이후부터는 많은 인권침해 당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군형법 추행죄, 호모포비아에 대한 법적 근거로 기능"
게이들이 경험하는 군대가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한다면, 그 반대로 한국의 군대는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에 대해 기즈베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프로젝트팀' 활동가는 "동성애자를 다른 병사와 동등한 군대의 일원으로 징집하면서도, 정작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매우 저조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행 군형법 제92조는 '계간(鷄姦)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해 동성애에 대한 처벌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기즈베 활동가는 발제를 통해 "계간이란 남자끼리의 성행위를 의미하며, 실무상 남성간의 항문성교로 해석하고 있다"며 "항문성교에 해당하지 않는 애무 등 성적 행위는 '기타 추행'에 해당해 동성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이라고 군형법 상 추행죄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군형법 제92조는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해도 처벌을 하게 되어 있다"며 "이 규정은 군인 사이의 행위에만 적용되며, 민간인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기즈베 활동가는 "추행죄는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 실질적인 규범력을 지닌 규정으로 존재해왔으며, 군대 내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에 대한 법적 근거가 되어 왔다"며 "추행죄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부대 및 사건 관계자들에 의해 호모포비아가 아무런 제한 없이 표출된다는 점에서 추행죄의 존재는 군대 내 동성애자의 현실을 대변하는 한 척도라 할 수 있다"고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군형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섹스하는 동성애자의 '인권침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그동안 군대 내 '로맨스'는 항상 존재해왔지만, 군대가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로맨스'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침해 문제와 같은 선상에서 드러내 논의될 수 없었다.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인권단체들은 그 당사자가 얼마나 '끔찍한'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또 보호가 얼마나 시급한지를 부각하기에 바빴다. 거기에는 '로맨스'와 '성적욕망'이 개입할 여지도 없고, 드러내서도 안 되는 일종의 '금기'와도 같았다.
토론회에 참석한 키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군대 내에서 연애하고, 섹스하는 동성애자가 인권침해 경험을 호소했을 때 사회는 그 인권침해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인권침해 경험의 진정성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키라 활동가는 "개인의 삶에서는 인권침해 피해자로서의 정체성과 로맨스를 경험하는 순간이 모순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며 "동성애자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것이 동성애자 인권침해를 증언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게이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통념이자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 통념과 편견을 깨는 방법은 인권침해 이슈와 게이 섹슈얼리티 이슈가 개인의 삶에서는 사실 통합된 것이고, 성소수자 역시 모순으로 점철된 경험이 축적된 몸 자체임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 관점에서 군대 인권 문제 제기해야"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오가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는 "군대 내 성소수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뿐만이 아니라 군대 자체의 폭력성과 열악한 환경 등 일반적으로 낮은 군대의 인권 상황에서도 기인한다"며 "성소수자의 관점에서 군의 전반적인 인권 문제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만약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주장을 주로 편다면, 성소수자라는 '특수한 존재'가 '특수한 상황'에 겪게 되는 문제에 국한되기 쉽다"며 "그렇게 되면 군대에서 대부분의 게이들이 경험하는 일상의 차별과 어려움 역시 묻히게 되고, 특수한 경우의 문제 역시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가람 대표는 성소수자 관점에서의 군대 인권문제 제기의 필요성 강조하면서도 "군대가 전쟁을 대비한 기구로서 본질적으로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문제를 축소시킬 수 있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삼권 기자 quanny@jin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