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교제로 고민하는 한 여학생이 있다. 고민 끝에 담임교사와 상담을 했다. 그러나 담임교사가 동료교사와 이야기하는 것을 다른 학생이 엿듣고, 학교에 동성애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결국 이 학생은 강제 전학 처분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학생의 자살에 학교 측은 책임이 있을까, 없을까.
‘전국 고교생·대학생 모의재판 경연대회’가 17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렸다. 법무부가 주최한 이번 경연대회에는 고등부에서 총 110개의 팀이 참여해 대본심사를 통해 6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특히 서울외국어고등학교의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는 동성애를 소재로 다뤄 눈길을 끌었다. 고등학생들이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최근 군사법원이 군대 내 동성애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상태라 더욱 관심을 끌었다.
서울외고 학생들은 “지금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나요? 있다면 그 누군가는 이성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모의재판을 시작했다. 원고는 자살한 학생의 부모, 피고는 담임교사와 해당 학교의 교장이었다. 대본부터 역할 선정까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였다.
모의재판은 원고와 피고의 소송대리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또 동성교제를 한 당사자와 담임교사, 소문을 퍼뜨린 학생, 동성교제에 반대하는 학부모 등이 증인으로 출석해 책임공방을 벌였다. 거기에 소문이 퍼지게 된 상황을 재연해 참관인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들은 사건의 쟁점을 ▲동성애가 위법한 것인가 ▲위법하지 않다면 학칙에 의해 강제전학 처분의 대상이 될 정도로 부도덕한 사유인가 ▲언행 등에서 담임교사가 책임을 다 했나 ▲학교장의 교사들에 대한 지도 관리의 책임이 어디까지인가 ▲부모의 가정교육과 자녀관리 소홀 등 과실은 존재하는가 ▲ 자살과 강제전학 조치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가 등으로 정리, 법리논쟁을 펼쳤다.
모의재판의 하이라이트는 최종변론 시간. 학생들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또박또박 내세웠다.
원고 측은 “담임교사는 수업 중이라 해도 학생의 출입 가능성이 있음에 주의하지 않고 학생 실명까지 거론, 학교 측의 책임이 있다”면서 “동성애는 현행법상 절대로 위법한 행동이 아니다. 사랑은 그 상대방이 이성이건 동성이건 숭고하고 보호되어야 할 가치이지 징계의 대상은 아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강제전학 처분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정면으로 침해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이에 맞서 피고 측은 “담임교사는 성실히 상담에 임했고, 동성애 사실이 교내에 확산된 것은 피고 잘못이 아니다”면서 “이들의 동성연애는 자칫 많은 학생들의 성 정체성을 뒤흔들고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결과로 원인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동성연애자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
재판부의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피고측 행위와 학생의 자살에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는 학생의 지극히 개인적인 동성애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아야 할 비밀 엄수 의무가 있다. 또 평소 교사에게 상담수칙 등을 교육하지 않은 교장의 관리자 책임이 인정된다”며 “동성간 사랑으로 고민과 갈등에 빠져있던 학생이 교사의 잘못으로 친구들이 그 사실을 전부 알게 됐고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는 강제전학 처분이 내려져 극한 감정이 최정상에 다다르게 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부모의 책임도 인정해 피고측의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이번 모의재판에서 판사 역을 맡은 김진양(18)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주제를 생각하다가 동성애를 선택했다”며 “원고측의 손을 들어준 것은 이들이 적어도 법 앞에서는 평등하고 자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말했다.
원고 측 대리인을 맡은 황재승군(18)은 “동성애를 하는 사람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동성을 사랑하느냐 이성을 사랑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며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인식과 주변 시선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