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김재욱(왼쪽) '소년, 소년을 만나다' 김혜성 <사진출처=영화스틸>
최근 '소년, 소년을 만나다''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쌍화점' 등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동성애 영화가 주류로 올라오기까지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그린 영화는 1996년 '내일로 흐르는 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은 2부 '가족'에서 동성애를 다뤘다. 관객들은 정민(이대연 분)이 동성애자 승걸(이인철 분)과 사랑을 깨달아갈 때, 이 것이 변태 성욕이 아니라 아버지의 부재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감독은 바랐다.
1996년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2'와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침대'가 할리우드 대작을 따돌리고 많은 관객들 동원했다. 배창호 감독의 '러브스토리',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 장선우 감독의 '꽃잎' 등 작가주의 감독의 영화들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당시 '내일로 흐르는 강'은 이 같은 흐름에서 동성애를 논쟁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이후 한국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는 직접적이지 않고 우회적으로 다뤄줬다. 2000년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는 사랑하던 여인이 남학생으로 환생했다는 설정과 톱스타 이병헌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지만 서인우(이병헌 분)의 영혼에 각인된 애절하면서 절실한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운명적 사랑 앞에서 이병헌의 애수에 젖은 눈빛은 여성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당시 '번지점프를 하다'는 동성애를 다루고 주인공들이 동반 자살하는 파격적인 결말이었지만 흥행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이와 비교해 2002년 황정민 정찬 주연의 '로드무비'는 동성애 섹스신을 그리는 등 파격적인 접근을 했지만 전국 관객 2만명을 넘지 못했다. 이는 한국에서 동성애 영화가 주류로 올라서기 위한 지향점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것은 동성애 코드 영화의 공략층은 '여심'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입증하듯 장국영이 출연한 '해피투게더' '패왕별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토탈 이클립스' 등은 화제와 함께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화 '후회하지 않아'를 제작하고 '소년, 소년을 만나다'를 연출한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는 "해외 톱스타들이 출연한 동성애 영화는 판타지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여성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꽃미남을 만나는 것에 너그러웠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작품은 2005년 '왕의 남자'였다. '왕의 남자'는 비주류 장르였던 사극과 동성애라는 위험요소를 모두 갖춘 영화였다. 광대 장생(감우성 분)과 공길(이준기 분), 연산군(정재영 분)의 사랑과 질투, 욕망은 조선시대의 광대놀이와 맞물려 1000만 관객 돌파란 기록을 세웠다.
'왕의 남자'의 동성애 코드는 제작진에게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극장판에서는 장생과 공길이 우연찮게 점을 보다가 갈라서라는 충고를 듣고, 이것만 안 달렸으면 왕과 붙어먹을 팔자라는 말을 듣는 장면 등이 이 같은 이유로 삭제됐다.
인식의 변화와 함께 접근법도 바뀌었다. 최근작 '소년, 소년을 만나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등의 공통점은 밝다는 것이다. '로드무비' '후회하지 않아'가 동성애의 어두운 면을 그렸고 '여고괴담2' '가면' '주홍글씨' 등이 현실에서 사랑을 인정받지 못하는 점을 공포와 스릴러 장르 영화로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작은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사랑의 한 단면이고, 그들도 행복하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췄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달콤한 케이크를 경쾌한 음악과 발랄한 댄스의 뮤지컬 형식을 도입해 그렸고, '소년, 소년을 만나다'는 꽃미남 김혜성과 이현진의 풋풋한 모습이 여심을 설레게 한다.
김조광수 대표는 "'왕의 남자'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관객들과 영화 산업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무조건 하지말자였지만 관객과 투자 배급 등이 모두 너그러워졌다. 또 '섹스 앤 더 시티'와 '퀴어 애즈 포크' 등의 미국 프로그램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미국 드라마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는 주인공 캐리의 게이친구인 스탠포드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동성친구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충고를 해줘 '나도 게이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줬다.
이 같은 변화는 소재 고갈에 목말라하는 충무로에 하나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동성애는 신선함과 재미를 추구라는 숙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었다.
김조광수 대표는 "최근 동성애 소재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소재를 찾던 중에 발견하게 된 것 같다. 레즈비언이 아니라 꽃미남 게이가 등장하는 것은 결국 공략층이 여성관객임을 이야기한다. 게이 영화를 이성애자 남성들이 불편해하는 것처럼 레즈비언 영화는 여성 관객들에게 한계가 있다. 최근 인식의 변화와 꽃미남이란 특성이 여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동성애 영화는 잘 다듬어지지 않은 조각품 같은 존재다. 관객들의 개방되어가는 사랑관과 함께 이를 바라보고 제작하는 충무로의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바뀌어가고 있다. 2002년 '로드무비'는 참패했지만 2006년 '후회하지 않아'가 조용히 관객몰이를 했듯이 새로운 시도는 제작비와 상관없이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한발자국을 더 내딛는 작품을 기대해본다.
김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