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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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는 다시 새로 시작하는 친구사이 구성원 인터뷰입니다. (기획의도 등은 https://chingusai.net/xe/index.php?mid=newsletter&page=2&document_srl=620205 참고) 인터뷰 대상은 친구사이나 그 주변(소모임, 사업팀 등)에서 활동 중이거나 활동했던 퀴어 당사자 모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께서는 언제든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 인터뷰 신청 링크: https://forms.gle/h2BsEmMNBsoQko2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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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2
: 다온(책읽당)
1. 첫 번째 안전기지: 친구사이, 책읽당 |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의 두 번째 주인공은 책읽당(친구사이 내 독서 소모임)에서 올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다온’이다. 다온은 올해 책읽당에 처음 나와서 모든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하였다. 한두 번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많은 친구사이에서, 발을 붙이고 꾸준히 활동하는 다온의 마음과 생각이 궁금하여 인터뷰를 요청했다. |
1. 첫 번째 안전기지: 친구사이, 책읽당
플로우(질문자, interviewer)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온(답변자, interviewee) 네 안녕하세요. 제 닉네임은 다온이고요. 친구사이는 제가 책읽당(친구사이 내 독서 소모임-작성자 주)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나이는 27살이고요, 현재 인권 관련 업무를 하는 NGO(비정부기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플로우 닉네임 ‘다온’은 무슨 뜻인가요?
다온 다온은 순우리말 이름인데요. 좋은 일, 기쁜 일이 다가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요. 처음 책읽당에 나오게 되면서 저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었어요.
플로우 친구사이에 올해 초부터 나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친구사이를 알게 되셨고, 나오게 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다온 친구사이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었어요. 사실 피부로 좀 와 닿게 된 거는 유튜브에서 자주 언급이 되면서였어요. (유튜브) ‘채널 김철수’ 영상을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서 친구사이에 대해서 자세히 나오는 걸 보게 됐죠. 그 뒤에 위켄즈(친구사이 합창단 ‘지보이스’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작성자 주) 영화도 찾아보면서 좀 더 자세히 알게 됐고요.
알게 된 이후 나올까 말까 고민을 했어요. 저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고해지고, 또 주변 사람들한테 알릴 만큼 용기도 생긴 그런 상태가 된 뒤에 나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족들,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시기를 거친 후에 여기에 나오게 됐어요.
플로우 처음 여기를 나와야겠다고 생각하신 시점이 언제쯤이세요?
다온 한 2년 전쯤(2020년 초)에 딱 한 번 딱 나온 적은 있어요. 처음이어서 그때는 이쪽 문화가 너무 생경했어요.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들었고, 바쁜 일에 치이고 이래서 그 이후로 잘 못 나왔었죠. 그러다 올해 들어서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느꼈어요.
나도 이렇게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쪽 사람들, 게이들 많이 만나서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제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내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성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제 미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잘 그려지지 않았어요.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날까, 나이 들면 어떤 모습일까 이런 거요. 그런데 여기 나와서 형들을 많이 보면서 확실히 그런 게 그려지고 한 것 같아요.
플로우 그렇군요. 알고 나서도 한참 고민하다 나오신 편인데, 이쪽에 나오기 전에 개인적인 영역에서 커밍아웃도 하고 정리를 해 놓아야 커뮤니티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다온 그런 것도 있지만, (나오게 된) 제일 큰 계기는 대학 졸업이었어요. 올해 2월에 졸업했는데, 작년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하던 시점부터 ‘나는 이제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를 계속 고민했어요. 일적인 고민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건 소속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었어요. (일반) 친구들도 졸업하고 다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 그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또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데, 저는 그 면에서 어떻게 보면 벽이 하나 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꼈고, 내 미래에 나랑 같은 사람들끼리 함께 앉아서 막 웃고 떠돌고 하는 그런 모습을 그려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나왔던 것 같습니다.
플로우 사회인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직장과 친구사이를 한꺼번에 나오시게 된 거군요.
다온 그렇죠. 어떻게 보면 정말 터놓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필요한데, 이성애자 친구들한테는 커밍아웃을 해도 그 친구들이 저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성 지향성이 누구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또 되게 중요한 일일 수도 있고요. 사실 얘기를 하다 보면 누군가를 좋아하고 만나고 그런 얘기들이,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많이 나오게 되잖아요. 근데 그런 얘기를 나도 좀 편하게 하고 싶다. 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친구사이에) 나오게 된 거죠. 그리고 나왔을 때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또 깊은 얘기들도 할 수 있고 이런 기회가 있어서, 진짜 처음으로 편안한 기분을 느껴본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플로우 친구사이 소모임으로 책읽당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여러 개 소모임 중에 책읽당에 나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다온 저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를 굉장히 좋아해요. 책읽당은 책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니까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겠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영화나 드라마나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오게 됐고, 나와보니까 정말로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이야기와 글에 관심이 깊은 분들로부터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플로우 책 중에는 소설 같은 장르를 좋아하시겠네요?
다온 네. 에세이보다는 소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플로우 올해 책읽당에서 읽었던 책 중에서 감명 깊게 읽은 책 있으세요?
다온 저는 박상영 작가님 소설이 재밌었어요. 글이 통쾌하기도 하고, 어떻게 저렇게 재밌게 글을 쓰실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스스로를 약간 블랙 코미디처럼 저렇게 쾌활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싶었어요. 소설 중에서 특히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고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플로우 저도 ‘1차원이 되고 싶어’ 할 때 모임 나왔었어요. ‘도윤도(소설 중 게이인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인물-작성자 주) 개XX’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나요.
다온 아 그날 재밌었어요.
플로우 책읽당에 있으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은 좀 어떠셨어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다온 처음 어려웠던 거는 사실 대화 중에 사용하는 용어였어요. 저는 궁금한 걸 못 참아서 몇 번 물어보긴 하는데, 예를 들면 ‘기갈’이 무슨 뜻이냐, 라던가. ‘끼’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으로 쓰이고 있어서 정확히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좋았던 건 커플로 함께 오래 지내신 분들이 살아가는 얘기들이었어요.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까 더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진짜 이게 현실이구나, 이렇게 다 살아가고 있구나, 꽤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부분이 되게 재밌었죠. 그리고 책읽당 분들은 워낙 또 말을 조심하게 하는 편이고, 배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했어요. 적응하는 데 무척 편했어요.
2. 두 번째 안전기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일터
다온의 두 번째 안전기지는 그의 일터다. 그의 일터는 여러 인권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NGO다. 다온은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
플로우 다온님이 하고 계신 일 이야기를 좀 할까 해요. 아까 말씀하실 때, 본인의 일과 관련해서는 어떤 그림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 인권 문제를 다루는 NGO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어떤 계기로 이쪽 진로를 생각하시게 된 건가요?
다온 저는 어릴 때부터 차별받는 상황에 대해서 굉장히 부당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상황을 보면 뭔가 그 감정이 오래 남아요.
한편으로는 제가 영화랑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영상 콘텐츠 제작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어요. 콘텐츠 마케팅 쪽으로 일을 찾아보는데, 좋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더라고요. NGO도 그런 곳이었고, 그렇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플로우 원래부터 ‘나는 인권 단체에 가야지’라고 생각하셨던 거는 아닌 거군요?
다온 네 그건 아니에요. 어쨌든 뭔가 가치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원래 대학교 때 처음 관심 있던 건 ‘건강한 관광’ 이었어요. 에코 관광, 쓰레기 나오지 않는 관광 같은 걸 어떻게 수익성 있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배워보고 싶었죠.
그러다 원래 마음이 있었던 인권 문제, 차별을 철폐하는 일 전반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런 게 반드시 비상업적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런 게 돈과 연결되는 게 더 자연스러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꼭 인권 단체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다만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곳들 위주로 지원하다 보니까 지금의 회사로 오게 된 것이죠.
플로우 어떻게 보면 주류 매체에서 잘 다루지 않는 메시지들을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도 학교 다니시면서부터 준비를 하셨었나요?
다온 (대학교에서) 복수 전공으로 영상콘텐츠를 했어요. 신문방송학과에서 이름을 바꾼 과였는데, 그 과에서 좋은 교수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거기서 미디어가 해야 하는 역할들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어릴 때부터 차별당하는 상황에 민감했다고 아까 말씀드렸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어요. 그런데 그 주체가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죠. 미디어 관련된 걸 (대학에서) 배우면서 내가 이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더해서 그런 일을 (이미)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그런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게 통쾌한 일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플로우 이미 나와 있는 콘텐츠 중에 특별히 꽂혔던 영상이나 메시지가 있으셨어요?
다온 예전에 닷페이스(소수자 인권 등을 주로 다룬 뉴미디어 플랫폼-작성자 주)에서 만든 영상인데, 퀴어문화축제 때 부스를 조그맣게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의 메시지를) 촬영한 게 있었어요. (관련 영상: "엄마 나 사실 놀러 간다 하고 퀴퍼 왔어" https://youtu.be/J-QN4pF8vX0) 그때 저는 사실 퀴어문화축제를 한 번도 안 가봤을 때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퀴어문화축제 때 캠페인을 했어요.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남기는 걸 보면서, 사람들 마음에 있는 장벽을 허무는 일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이 LGBTQ+(성소수자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영어 약칭-작성자 주)를 누군가한테 알리는 일은 항상 사람들 의 거부감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하는데, 행사와 콘텐츠를 통해 그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게 좋아요.
플로우 인권 NGO는 성소수자 인권만 집중하는 단체는 아니고 다른 여러 당사자들의 인권 문제도 다룰 텐데, 다온님이 특별히 중점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주제나 당사자가 있나요?
다온 저는 일단 모든 이슈와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권 전반에 관련된 뉴스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고, 영상이나 SNS용 콘텐츠들도 계속 만들고 있어요. 그런 콘텐츠를 만들 때 느끼는 감정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누군가가 억압을 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마음이 들어요. 근데 이 감정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플로우 그렇다면 성소수자 이야기 이외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꼭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나요? 다른 집단이나 피해 당사자 중에서요.
다온 최근에 미국에서 임신중지 관련 문제*를 보면서 좀 마음이 아팠어요. (미국 연방대법원의 최근 판결이) 여성에게 모든 짐이 다 전가되는 그런 판결이라는 생각이 들죠. 실제로 법으로 다시 (임신중지 금지를) 제정한다고 해도 임신중지는 계속 일어날 텐데, 이걸 법제화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계속 불법적으로 수술을 하게 될 거고 위험에 처하게 될 거예요. 이 판결이 수십 년 만에 번복이 됐다고 들었어요. 다시 험난한 길을 걸어가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어요.
*올해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했던 1973년 판결(‘로 대 웨이드(Roe v. Wade)’)을 뒤집고, 주(州)별로 임신중단을 불법화할 수 있도록 판결을 내림.
플로우 일하면서 다른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다온 요즘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많다보니 야근이 많아요. 팀원들이랑 친해지는 건 좋고, 또 제가 보통의 신입사원이 할 수 없는 일들도 하고 있어서 신나기도 하지만 몸이 힘들죠. 어제도 10시까지 야근했어요.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정말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특히 저희 회사가 퀴어분들과 협업을 많이 하다 보니까, 다른 세상을 하나 더 알게 되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플로우 평소 퇴근 시간 자체가 10시 정도인 건가요?
다온 아뇨. 원래는 7시쯤 퇴근해요. 최근에 일이 많아져서 늦게 가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에 행사 하나 끝나고 다음 날 미용실을 갔는데 미용사 분이 제 얼굴을 보면서 저번보다 얼굴이 너무 좋아졌다고 하셨어요. 행사 당일 몸이 좀 고달프긴 했어도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그런 게 표정에 드러날 만큼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플로우 회사에 들어가면서 여러 새로운 자극에 많이 노출되고, 그걸 즐겁게 소화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그러면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이런 게 있으신가요?
다온 좋은 콘텐츠는 꾸준히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웃음과 재미를 줘도, 그게 차별이나 비하를 통한 재미가 아니라 그런 서로를 배려하는 그런 재미가 담긴 거요.
또 요즘 드는 생각은, 콘텐츠를 만드는 건 어려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관리자가 되면, 열린 귀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새로 들어오는 분들이 내는 의견에 대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열린 귀를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플로우 그러네요. 젊은 감각이라는 게 희소한 자원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면 아직 젊은 지금, 꼭 회사와 관련된 것 말고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으세요? 모든 자원을 다 동원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요.
다온 단편 영화를 한번 찍어보고 싶어요. 사회에서 겪는 부당함, 그리고 그걸 극복해 나가는 스토리로요. 저는 제 안에 있는 순정만화 서사와 드라마틱한 서사 사이의 괴리를 항상 느끼는데, 제가 세상을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세상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공존하고 있고, 그런 세상을 그냥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괴리가 극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고요.
플로우 굳이 두 세상을 분리하지 않고.
다온 세상은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둘 모두를 다 끌어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것까지 끌어안을 힘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특히나 요즘에는 혐오가 너무 일상화되어 있잖아요. 서로 그냥 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서로 그만 싫어하고, ‘나는 이런데 너는 그렇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3. 세 번째 안전기지: 가족과 친구들
다온의 세 번째 안전기지는 그의 주변 사람들이다. 직장과 친구사이를 찾기 이전, 그는 이미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성 지향성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다온의 삶을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전에 어떻게 스스로 게이임을 자각하게 되었는지를 함께 들어보자. |
플로우 사회적인 차별에 민감하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해주셨어요. 이런 성향이 다온 님이 게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게이인 걸 자각했기 때문에 그런 차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셨던 걸까요?
다온 우선 게이인 걸 처음 느꼈던 건 중학교 때부터였어요. 이것과도 아예 연관성이 없진 않겠지만, (차별에 민감해지기 시작한 건) 게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적인 격차를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게 더 큰 원인인 것 같아요. 어릴 때 저는 사실 그렇게 부유한 환경은 아니었고,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싶어서 학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학원에서 점점 반이 올라가는데, 그러면서 더 잘 살고 더 편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게 됐어요. 사회의 불평등을 몸소 느꼈던 거죠.
시작은 그렇게 되었는데,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면서는 제가 게이로서 정체화가 점점 되다 보니까 성소수자들이 겪는 부당함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경제적인 부분을 벗어나서 보다 포괄적으로 차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바꿔야겠다는 생각까진 못했지만, 그냥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화가 나고,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을 꾸준히 했던 거죠. 그런 마음을 계속 갖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플로우 중학교 때부터 게이인 걸 처음 느꼈다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받아들이셨나요?
다온 디나이얼 기간이 조금 있긴 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친구가 있었어요. 그냥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감정이 오는 거예요. 여태까지 저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감정이 와서, 내가 게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가, 또 어느 날은 꼭 그렇진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가, 좀 오락가락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거의 (게이가) 맞다는 판단을 했음에도, 이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교에서도 편하게 연애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편하게 연애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게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과정들을 거치다가, 스물한 살 될 때쯤에 ‘아 이거는 뭐 내가 거스를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라는 게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하나둘씩 친구들한테 말하기 시작했어요.
플로우 커밍아웃 얘기로 들어가기 전에 청소년기의 디나이얼에 대해서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볼까 해요. 중학교 2학년 때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서 자각했고, 중고등학교부터 스무살 때까지 6년 정도를 디나이얼로 보내셨던 건데, 그때의 감정이 좀 어떠셨나요?
다온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좋아했던 애는 평소에 별말 없이 친하게 지내던 같은 반 친구였어요. 기억이 순정만화처럼 미화된 것 같긴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수업을 듣다가 그 친구를 딱 봤는데, 갑자기 그 친구 얼굴에 햇빛이 확 들어오는 거예요. 처음 느끼는 강렬함이었고, ‘왜 이런 감정이 들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전부터 사실 남자애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긴 했는데, 그날 결정적으로 남자한테 설레는 느낌을 처음 받았죠. 그치만 좋은 결말로 끝나지는 않았고, 그냥 혼자만 좋아하다가 그렇게 됐고......
플로우 그렇게 된 게 뭐죠? (웃음) 그 친구한테 고백했어요?
다온 아니요. 안 했어요. 고등학교도 같이 갔고, 대학교 올라가서도 몇 번 만나기는 했는데 결국 얘기는 안 했어요. 그때 그런 큰 감정을 느끼고 나서, 사실 그 뒤로도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는 또 남고를 갔는데, 친구들 중에 약간 이쪽 같다는 느낌을 받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플로우 첫사랑 친구는 이쪽이 아니었어요?
다온 네 걔는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이쪽이) 좀 있었던 건데, 제 레이더로 감지한 친구들이 나중에 어플에서 보이는 거 보고 좀 웃기기도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친했다가 고등학교 때 외국을 간 친구가 있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친구한테 처음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 친구는 처음에 그 감정이 한때일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저도 그때는 디나이얼 기간이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크면, 스무 살 넘으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막상 21살이 되니까 너무 확실해지는 것 같았어요. 외국 사는 그래서 그 친구한테도 나는 남자 좋아하는 게 확실한 것 같다고 했어요. 물론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그 이후로 그 친구가 더 저에게 많은 용기를 주고 응원해줬어요. 그 무렵부터 완전히 (성 지향성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대학교 친구들한테는 커밍아웃이 좀 더 자연스러워졌어요. 제가 완전히 정체화가 된 상태에서 말을 한 것 같아요. 나 남자 좋아한다고 얘기하니까, 친구들도 (별 거부감 없이) ‘그래서 그게 누구냐’, 이런 식으로 반응해줬어요.
플로우 커밍아웃할 때 사람을 보는 기준 같은 게 있으세요?
다온 제 MBTI가 ENFP이에요. 어디서 봤는데 ENFP는 마을을 만들게 되면 주변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가서 만드는데, 다 만들면 정말 친한 사람 몇 명만 데리고 또 동굴로 들어가는 성격이라는 거예요. 저는 나이나 성별 이런 거 상관없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 정말 친한 몇 명 친구들은 몇 년씩 알고 지내면서 나를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에요. 이런 친구들을 좀 골라서 커밍아웃을 했던 것 같아요.
플로우 친구들 반응이 어땠어요?
다온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네가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한 친구들도 있었고요. ‘혹시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라고 한 친구도 있었어요.
플로우 아, 짜증 나. 자의식 과잉.
다온 그때는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어요. 21살 때였고 그 친구도 어렸으니까 그랬겠지만...... 지금의 저라면 내가 널 왜 좋아하냐고 한 마디 해줬을 것 같아요.
플로우 나도 눈이 있어 미친 X아! 내가 니를 왜 좋아해! (웃음)
다온 그러게요.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수용을 해주는 분위기였어요.
플로우 설득하려고 한다거나, 앞으로 너랑은 못 보겠다거나 이런 친구는 없었던 거죠?
다온 네 없었어요. 아마 그런 성향이었으면 제가 말도 안 했을 것 같아요.
플로우 사람이 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게 되긴 하죠.
다온 알고 지내다 보면 스치듯이 퀴어 얘기가 나오기도 하잖아요. 게이나 성소수자를 함부로 농담거리로 삼는 애들한테는 얘기 안 했어요.
플로우 부모님께도 다 커밍아웃을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어떠셨어요?
다온 친구들한테 얘기하는 것보다 가족들한테 얘기하는 게 더 큰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미안할 일이 아닌데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가족들한테는 꼭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긴 했는데, 언제 말을 할까 고민만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한 번 인간관계에 치이게 된 시점이 있어요. 24살 때니까 3년 전쯤인데, 당시에도 제가 커밍아웃한 친구들이 많지는 않아서 그 친구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 특히 대학 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했어요. 저 포함해서 3명이었어요. 그런데 친구 둘이서 어떤 계기로 서로 싸우게 됐고 관계가 틀어지게 됐어요. 두 친구를 다시 잘 지내게 해보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결국은 안되더라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이 터지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다온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오니까, 정말 힘들고 다 때려치우고 싶어지니까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가족이 안전한 요새 같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전에도 사실 부모님을 몇 번 떠보듯 물어보긴 했어요. 예를 들어서 중학교 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주인공이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가 된 뒤 겪는 내용의 소설-작성자 주) 같은 소설을 읽었는데, 엄마 아빠한테 갑자기 ‘내가 그 다음 날 일어나서 바퀴벌레로 변해 있으면 어떨 것 같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 비유를 했던 걸 보면 당시에는 제게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있었던 거죠. 그런 걸 물어봐도 (부모님에게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던 적이 있어서, 커밍아웃할 때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플로우 호의적인 반응이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이었어요?
다온 벌레가 돼도 너는 내 아들이지, 이렇게 얘기해 주셨어요.
플로우 존재 자체를 수용해 주신 거네요. 커밍아웃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어떻게 말하셨어요? 얼굴 보고 직접 말하셨어요?
다온 얼굴 보고 말했어요. 가족들을 모아놓고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들을 다 모아놓고 맥주 한잔을 하자고 해서 얘기를 꺼냈어요. 나중에 엄마가 말해줬는데, 그 말하기 전부터 애가 너무 사색이 돼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다고.
플로우 (내 딴에는)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했는데.
다온 그렇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 사실 남자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얘기하자마자 엄마가 ‘괜찮아 뭐 어때.’ 그러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막 (제가) 엉엉 울었어요. 그 자리에서 그 말이 정말 듣고 싶었나 봐요. 한참을 울고, 처음으로 내가 게이로서 지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했어요. 그 이후로 부모님도 저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좀 있었던 게, 처음에는 엄마가 제가 여자가 되고 싶은 줄 아셨던 것 같아요.
플로우 아.......
다온 어느 날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자꾸 ‘여자로 태어나서 엄마랑 같이 목욕탕 갔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형제가 형하고 저 둘뿐이고 전부 남자기도 하고, 기왕 그럴 거 딸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하신 거죠. 그걸 듣고 제가 짜증이 나서, 그런거 아니라고, 나는 이 상태로 남자가 좋은 거라고 얘기했어요. ‘그런 거였구나’. 이러시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게이가 무엇이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게 되신 것 같아요. 초창기에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은 굉장히 잘 받아주고 계세요.
플로우 아버지나 형은 또 반응이 어땠어요?
다온 형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전에 들킨 에피소드가 있기도 했고요. 아버지는 무뚝뚝하신 편인데, 제가 그 말을 했을 때 ‘네 마음대로 살아’ 이러고 마시더라고요. 아빠도 표현은 안 하는데 계속 뭔가 (관련된 정보를) 좀 알아보려고 하셨나 봐요. 얼마 전에 퀴어퍼레이드 갔다 온 거 얘기했는데, 본인도 뉴스 보셨다면서 ‘거기에 혐오 세력들 와 있는 거 봤다. 하루만이라도 그냥 내버려두지 그걸 뭘 또......’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이쪽 관련 뉴스 보시고, 조용히 혼자서 공부하고 계신 것 같아요.
플로우 ‘하루만이라도 좀 내버려두지’ 같은 말이 그냥 툭 던지는 말씀 같은데, 곰곰이 생각할수록 아버님이 다온님 편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말인 것 같네요.
4. 안전기지 안팎의 일상: 즐겁고 때로 피곤하고
20대에 걸쳐 자신의 안전기지를 훌륭하게 구축한 다온은, 그 안팎을 넘나들며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일상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콘텐츠, 일상의 행복, 게이로서 때때로 겪는 불편함에 대해서도 들어보았다. |
플로우 본인이 콘텐츠 생산자로도 일을 하고 계시긴 한데, 소비자로서는 최근에 보고 있는 재밌는 콘텐츠가 있었나요?
다온 풍자님 나오는 콘텐츠를 너무 재밌게 보고 있어요. 또간집이라고, 풍자님이 나와서 맛집 돌아다니는 콘텐츠인데, 얘기를 너무 재미있게 하세요. 풍자님이 트랜스젠더긴 한데, (등장인물이) 성소수자냐 아니냐를 굳이 따지지 않고 재밌는 것들 위주로 좀 많이 보긴 해요.
플로우 특별히 좋아하는 형식이나 소재가 있나요? 영화나 드라마가 좋다든지, 어떤 장르가 특별히 끌린다던지.
다온 처음에는 고상 떤다고 영화 많이 봤고, 특히 작품성 좋은 거 위주로 보고 그랬어요. 나중엔 영화뿐 아니라 그냥 유튜브를 너무 달고 사는 사람이 됐어요. 영화 한창 좋아할 때는 SNS 달고 살면서 거기에 리뷰도 많이 올렸어요.
플로우 구독하고 있는 OTT 서비스나 유튜브 채널은 어떤 게 있어요?
다온 OTT는 넷플릭스랑 디즈니 플러스, 왓챠, 티빙, 지금 이렇게 4개 구독하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들은 요즘에는 인기 급상승 동영상이 뜨는 것 중에 재밌어 보이는 것들을 봐요. 사람들이 어떤 걸 많이 찾아보는지 감도 잡고요.
플로우 게이나 퀴어 쪽을 다룬 콘텐츠도 꾸준히 챙겨보는 게 있으신가요?
다온 채널 김철수를 너무 좋아해요. 그분 영상은 단편 영화 같아요. 영상 만드는 감각이나, 그 안에 메시지를 담는 방식이 정말 좋아요. 일상을 담아내면서도 메시지를 가볍게 담아낼 줄 안다는 느낌이에요. 시인 같은 분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죠. 그래서 예전부터 열심히, 꼬박꼬박 챙겨봤어요.
플로우 콘텐츠에 일상을 담아낸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다온님의 일상도 궁금한데요. 평소에 좀 바쁜 거를 즐기는 편이세요? 아니면 여유가 꼭 필요한 편이세요?
다온 그런 면에서 제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바쁘면 쉬고 싶고, 막상 또 틈이 생기면 뭔가를 또 해보고 싶어져요. 쉴 때도 재밌게 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항상 주말에 집 밖에 나갔었는데, 요즘은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집에서 혼자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에요. 재밌는 콘텐츠를 챙겨본다거나, 혼자 노래 들으면서 청소를 하기도 하고요
플로우 나만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있나요?
다온 확실히 전 먹는 게 낙이에요. 치킨을 제일 좋아하는데, 이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저 어릴 때 이모들 가족이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이모들 어린 시절에 함께 모여 사시면서 각자 월급날이 되면 꼭 모여서 치킨을 먹었대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 낳으시고 나서도 종종 모이시면 치킨을 시키셨어요.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커서도 내가 뭔가 수고를 많이 한 날, ‘오늘 나 진짜 고생했다’ 싶은 날에는 꼭 치킨을 찾게 돼요. 근본 후라이드로. 옛날 느낌 나는 치킨을 좋아합니다.
플로우 디저트류도 좋아하시는 게 있나요?
다온 빵을 정말 좋아해요. 예전에는 세 끼를 빵으로 먹을 수 있었어요. 친구가 저한테 빵과 고기 둘 중에 하나를 무조건 포기해야 되냐면 뭘 포기하겠냐고 하길래, 저는 고기를 포기하겠다고 했어요. 종류를 안 가리고 다 너무 좋아하는데, 특히 좋아하는 건 예전에 엄마랑 장보러 갈 때 한두 개씩 사 먹는 꽈배기나 찹쌀도너츠 같은 거였어요. 기름 튀기는 소리 자글자글 나고, 종이봉투에다 한두 개씩 담아주는 그런 빵들.
플로우 음료는 술과 커피 중 하나만 고르라면?
다온 제가 건강상 이유로 술을 안 먹어요. 사실 제가 최근 3-4년 동안 35kg 정도를 뺐어요.
플로우 (놀람) 35kg요?
다온 네, 3-4년 전쯤에 편도염에 걸려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다른 선생님께 간 진단을 받았는데, 그분이 저의 몸무게랑 이런 걸 물어보시더니 내일 당장 죽고 싶냐고 하더라고요.
플로우 헐, 아무리 그래도 말을 그렇게.......
다온 그때부터 관리하고 살을 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나는 불평등하게 태어났다, 나는 체질이 원래 남들에 비해 먹는 거에 영향을 잘 받는 사람이니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밥도 현미밥으로 바꾸고, 양도 줄여나가면서 그렇게 살을 뺐던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로 술도 끊었고요.
플로우 식단은 어떻게 하고 계신 건가요? 힘들지는 않으세요?
다온 요새는 철저하게는 못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직장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일이 많아서요. 아침 안 먹고 그냥 두 끼를 8시간 안에 해결하는 정도로 하고 있어요. 간헐적 단식 할 때 16시간 공복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패턴만 유지하고, 식사량은 적당히 조절하는 정도로 하고 있죠.
플로우 게이로서의 일상도 좀 여쭤볼게요. 다온님 가족이나 직장이 퀴어 프렌들리한(퀴어들에게 우호적인) 편이신 것 같아서 조금 다행스럽긴 해요. 게이로 살면서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요?
다온 게이라서 좋은 점은 세상을 한 겹 더 보게 된다는 것 같아요. 일반인이면 우리처럼 관심을 가지기 힘든 부분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다양한 사회적 이유로, 누군가는 정서적인 이유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숨어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게 좋은 점인 것 같아요.
불편한 점은... 사실 제가 오늘 조카 돌잔치를 다녀왔는데, 친척들 만난 자리가 어렵긴 하더라고요. 또 다른 어려움은, 저랑 친한 여자 사람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남자친구가 ‘혹시 다온이 게이야?’ 하고 물어봤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있을 때, ‘아, 이런 건 내가 계속 겪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부터는 그런 말 들으면 그냥 잘 모른다고 하라고 하고, 정 궁금하면 다온이한테 직접 물어보라 하라고 친구한테 얘기했어요. 또 혹시나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한테는 굳이 전달해 주지 말라고도 했고요.
플로우 잘하셨네요. 네 남친 궁금증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다온 그렇죠. 친구 관계에서도, 특히나 남자친구 있는 여자애들은, 남자 사람 친구의 존재가 부담일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친한 여사친들한테는 남자친구 생기면 그냥 (내가 게이인 거) 말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요새는 몇몇 친구 남친들도 제가 게이인 걸 알고 있기도 해요.
플로우 저도 커밍아웃을 한 친한 여사친들이 있는데, 간혹 그들의 남자친구가 저를 의심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게이로 의심한다기보다는 너무 친해 보이니까 경계하는 거죠. 그건 어차피 연인들끼리의 문제니까 제가 더 뭘 억지로 하진 않는데, 걱정은 들더라고요. ‘내 여사친들이 남자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내가 게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굳이 따진 적은 없고 기본적으로는 친구들을 믿지만, 모르는 일이니까요.
다온 저도 친구들한테 얘기하면서, 다른 친구한테 말하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한 적이 있어요. 요새는 약간 세 명 이상 아는 건 비밀이 아니라고 하니까, 하면서 포기한 상태긴 해요.
5. 마무리
플로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갔네요. 이제 마무리를 좀 해볼까 합니다. 오늘 어떠셨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남겨주세요.
다온 정말 편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저인 게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게이인 게 아무렇지 않은 건 당연하겠죠. 그런데 사실 우리 안에서도 차별이 또 있잖아요. 예를 들어 비선호(항문성교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작성자 주)나 에이섹슈얼(무성애자)에 대한 시선처럼요. 퀴어끼리도 서로 포용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희 안에서 조금 더 서로를 받아들여서,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은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소수자들이 굳이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면 좋겠어요.
플로우 맞아요. 내가 난데, 왜 내가 그걸 용기까지 내야 하냐는 말이죠. 용기를 내는 게 훌륭한 일이긴 하지만요.
다온 저도 부모님께 커밍아웃하고 나서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친구들이 ‘야 너 진짜 부모님 잘 만났다. 그런 거 축복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점점 생각해보니까 어떻게 보면 이게 축복이 아니라 당연해야 할 일인데, 아직은 이게 축복인 세상이구나 싶더라고요.
플로우 그렇죠. 그렇게 받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것과는 별개로,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용납과 환대인 거죠.
다온 맞아요.
플로우 이만 마치겠습니다. 오늘 감사합니다.
성소수자로 사는 것은 불편하다. 불필요하게 자신을 설명하거나 입증하거나 아끼는 주변 사람을 속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일을 오롯이 각자 알아서 잘 해내야 한다면, 우리의 일상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다온의 20대는 이 안전기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물론 모두가 다온과 꼭 같은 안전기지를 만들 필요는 없다. 모두가 인권 단체에서 일할 필요도 없고, 모두가 수용적인 가족과 친구들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친구사이를 찾아올 필요도 당연히 없다. 다온이 인터뷰 말미에 말한 ‘내가 나인 게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은 이런 안전기지들이 사회 곳곳에 생겨야 가능하다. 그런 세상을 꿈꾸며 누군가는 거리에 나가고, 누군가는 책을 쓰고, 누군가는 관계의 단절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한다. 이 인터뷰도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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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