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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커버스토리 '게이커뮤니티의 마케팅' #1] 2000~2010년대 커뮤니티의 성장 : Jay Lee님 인터뷰
2022-05-02 오전 11: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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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 

 

[커버스토리 '게이커뮤니티의 마케팅' #1]

2000~2010년대 커뮤니티의 성장

: Jay Lee님 인터뷰

 

1. 처음 가본 이태원 게이클럽
2. 2002년 머라이어 캐리 프리챌 팬클럽 활동
3. 성적 지향 관련 가족과의 일화
4. 2006년, 게이로의 정체화
5. 2007년 싸이월드 84년생 모임 가입
6. 2008년 중국 어학연수 경험
7. 처음 접한 페이스북
8. 2011년 컨텐츠 마케터로의 첫 취업
9. 2013년 SPIKE, 2015년 Glow Kitchen 홍보 활동 
10. 2014년 신촌, 2015년 서울시청광장 퀴어퍼레이드
11. 2015년 RED PARTY 홍보기획

12. 2015년 퀴어문화축제 파티기획팀 'Private Beach' 결성
13. Private Beach 파티기획팀원 섭외 과정​
14. 게이스북 SNS 플랫폼의 활용
15. 파티기획팀 내 레즈비언 크루와 LGBT 파티 기획의 난점
16. 2015년 Private Beach, 이태원 클럽 S-cube
17. 2016년 Private Beach, 세빛섬에 뜬 달
18. 2017년 Private Beach, 이태원 클럽 Pulse
19. 성별별 입장료 차등부과 사건, 이후 파티기획팀의 불명예 사퇴
20.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 Qmore KPOP 커버 영상 상영
21. 향후 게이커뮤니티 행사 마케팅·홍보 전략의 전망
22. 활동가와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꿈, 그 다음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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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당일, 2022.4.10. (촬영 : 터울)

 

 

 

1. 2002년경 접한 이태원 게이클럽

 


터울 :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는 '게이커뮤니티의 마케팅'이라는 주제로 잡아봤고요. Jay Lee님을 모셨습니다. 간단히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Jay Lee : 네, Jay라고 합니다. 영어 이름을 쓰는 게 일반적인 환경에서 활동을 시작해서 이 활동명을 계속 쓰고 있고, 빠른 84년생이라서 2002년에 대학을 들어간 02학번이고, 2011년부터 지금까지 12년차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터울 : 오래 전부터 모시고 싶었던 분이고, 몇 번 인터뷰를 한다고만 했다가 못했었는데, (웃음) 드디어 하게 되네요. 첫번째 질문으로 들어가서, 남성으로서 남성이 끌린다는 성적 지향을 인지하신 게 언제쯤이셨는지, 

 

Jay Lee : 성적으로 끌린다, 관심있다고 몸으로 느낀 건 초등학교 고학년이랑 중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고, 그걸 실제로 실현하고 연애라든가 게이를 만난다든가 했던 건 고등학교 때부터인 것 같아요. 

 

터울 : 어떠셨어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편이셨는지, 

 

Jay Lee : 전혀 힘들지 않았고, 그 때 여자친구도 있었는데 (남성에)관심이 간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 그 때는 별로 고민을 안하고 그 상태를 받아들인 것 같아요. 

 

터울 : 엄청 고민을 하는 저같은 분도 있지만 별로 고민을 안하는 분들도 많이들 계시더라고요. 전에 사전 인터뷰에서 잠깐 얘기 나눴지만 여성이랑 연애 경험이 어느 정도 있으신데, 게이들 중에는 그런 경험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잖아요. 

 

Jay Lee : 그렇죠. 상상도 못하는 경우도 많고. 

 

터울 : 어쨌든 그 때는 여성과의 관계에도 특별히 위화감이 없으셨다는 거죠?

 

Jay Lee : 네. 

 

터울 : 그럼 어떤 의미에서 그 때는 게이로 정체화했다고 보기는 힘든 거겠네요. 남성에게 끌리긴 하는데, 

 

Jay Lee : 나는 뭘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게이라는 것에 대해 찾아보고 하면서, 나는 여자도 좋은데 나는 뭘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또 여성이랑 연애를 한다든가 하는 걸 상상하기 어려워서, 그렇게 보면 지금은 게이로 정체화를 한 것 같네요. 

 

터울 :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 남자를 처음 만났다고 하셨는데 어떤 루트로 만나셨어요? 

 

Jay Lee : 관계를 가지게 됐던 경우들은 대부분 같은 반 친구였어요. 호기심이 많을 때니까. 그리고 그들이 지금 게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그런 애들이 어쩌다 한두명 정도 있었죠. 

 

터울 : 2002년에 대학에 진학하셨고,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에 들르셨다고 들었거든요. 컴투게더는 엄연한 성소수자 동아리라서, 내가 보통 성소수자라고 정체화를 한 상태로 들어가는 경우들이 많잖아요. 어떠셨어요, 처음 들어가셨을 때? 

 

Jay Lee : 지난 번 Ethan형 인터뷰에도 나왔지만, 나는 1학년 때도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웃음) 그 때는 바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얘기하면 모두가 너무나 깔깔깔 웃겠지만, 나도 믿기지 않지만, 

 

터울 : 그럴 수 있죠. 

 

Jay Lee : 그렇게 생각해야 내가 마음이 편하니까, 여자친구도 있고 걔를 좋아하는데, 그런데 또 남자랑 만나기도 하니까. 그런 생각으로 들어갔던 것 같고, 그래서 들어가는 데 별로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가입할 때 인터뷰를 사전에 해요. 그 당시만 해도 컴투게더 가입 과정이 약간 비밀스러웠어요. 가입 신청을 이메일 같은 걸로 하면 한 분이 나와서 인터뷰를 해요. 그렇게 들어가는 과정이 조심스럽긴 했지만, 거기에 가입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크게 안했던 것 같아요. 궁금해서 가입했던 거죠. 

 

터울 : 고민보다는 호기심에 행동하는 스타일이셨던 거군요.

 

Jay Lee : 네. 

 

터울 : 저랑 참 반대인 사람이라서 되게 경이롭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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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퀴어문화축제 무지개2003, 2003.6.21. (촬영 : 흑장미)

 

 

 

터울 : 2002년 그해 이태원에서 열렸던 퀴어퍼레이드에 처음 가셨다고 들었는데요, 궁금해요. 어떤 풍경이었는지. 

 

Jay Lee : 퀴어퍼레이드는 그 때가 처음이라, 얼굴 내놓고 그런 퍼레이드에 간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잘 몰랐으니까요. 사람들이 쭉 있고 거기에 게이도 있고 레즈비언도 있고 한데, 나도 그 중의 일원이라는 게 어색하고 무섭기도 하고. 이태원의 큰 길가에 무대가 있고, 거기에 레즈 가수분이 나와서 공연하시던 게 기억나고. 그 때 약간 행인이 구경하는 것처럼 멀리서 봤던 기억이 나요. 

 

터울 : 참가 반 구경 반 느낌으로, 

 

Jay Lee : 그렇죠. 아마 퀴어퍼레이드를 처음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네요. 

 

터울 : 그 때 좀 많은 수의 퀴어들을 본 경험이 됐겠네요. 

 

Jay Lee : 그렇죠, 내가 모르는 퀴어들. 물론 그 전에 종로·이태원 가면 보긴 하는데, 그렇게 완전히 드러내놓고 밖에서 본 건 처음이었죠. 그 때는 종로 이쪽 술집들도 거의 구석에 간판도 없이 있었고, 이태원도 그랬고 했으니까. 

 

터울 : 종로·이태원은 그럼 언제 처음 나오셨어요? 

 

Jay Lee : 확실히 기억에 남는, 어느 가게인지도 기억나는 건 2002년이고, 고등학교 때도 간 적이 있었죠. 갔는데 잘 기억이 안 나요. 어디 가게였고 뭐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고, 몇 번 갔던 기억만 있어요.

 

터울 : 심야영업이 전적으로 합법화된 게 1999년도니까, 숨어서 영업했던 것도 그런 경험들 때문일 텐데, 그때쯤이면 슬슬 바깥으로 나오던 시점일 때겠네요. 이태원 클럽 처음 가셨던 것도 2002년이었어요?

 

Jay Lee : 명확히 기억나는 건 2002년이고, 그 전에는 번개같은 거 할 때, (웃음) 어디로 오세요 하면 거기로 가는데, 그 분들이 이태원으로 부를 때가 있었죠. 그런데 잘 기억이 안 나요.  

 

터울 : 그 때가 이태원에 지하철이 뚫려있을 때였나요?

 

Jay Lee : 없었어요.

 

터울 : 이태원역이 2001년 3월에 개통했으니 그 전이었겠네요.

 

Jay Lee : 버스 타고 찾아서 가고, 택시 타고 집에 오고 했었던 것 같아요. 

 

터울 : 처음 기억나는 이태원 게이클럽의 모습은 어땠어요?

 

Jay Lee : 바나나2라고, 지금은 재개발된 구역에 있던 조그마한 데였는데, 약간 뉴욕 브루클린같은 느낌으로 조그만 철제 계단 올라가면 있는 작은 클럽이었고,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어요. 플로어가 있고, 무대랑 춤추는 분들도 있고. 그 때 음악은 팝이 많이 나왔던 것 같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노래가 나왔어요. 그 때 저도 만취해서 올라가서 춤추고 그랬죠. 

 

터울 : 그 때 이태원이면 지금보다는 훨씬 외국인들이 많고, 미군들이 많았을 때였겠네요.

 

Jay Lee : 맞아요. 클럽에도 외국인들이, 약간 지금의 Queen 정도로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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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Y』 20, 도서출판 해울, 2002.4, 42쪽.

 

 

 

 

2. 2002년 머라이어 캐리 프리챌 팬클럽 활동

 


터울 : 그러다가 2002년에 머라이어 캐리 프리챌 팬클럽에 활동하시게 되는데요. 거기서 동료 게이들을 많이 만나셨다고 들었고, 

 

Jay Lee : 커뮤니티명이 Friends Of Mariah였죠. 

 

터울 : 저도 거기에 가입했었거든요. (웃음) 언제부터 머라이어를 좋아하셨어요? 

 

Jay Lee : 중학교 때부터요. 사실 다른 제 동갑 팬들보단 늦게 좋아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1's>(1998) 베스트 앨범부터 시작했으니까. 그 전에도 당연히 유명한 가수였고, 부모님도 아시니까 노래도 알고 했지만, 제대로 들어보고 와 대단하다 했던 건 그때였던 것 같아요. 

 

터울 : 저도 'When You Believe' 때 처음 좋아했어요. (웃음) 

 

Jay Lee : 똑같잖아요. (웃음) 

 

터울 : 팬클럽 활동을 그냥 온라인에서 끝낼 수도 있는데 정모를 해서 실제로 사람을 만나는 경험까지 하신 거잖아요. 그것도 호기심으로 나가게 되신 건지,

 

Jay Lee : 그렇죠, 물론 팬클럽은 뭐 이쪽 사람들이 많아서 간 건 아니고, 모임에 가서도 그 중에 이쪽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 그 전에 천리안에서도 팬클럽 가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긴 했었는데, 그 때는 그렇게 막 눈에 띄지 않았어요. 그런데 프리챌의 팬클럽은 그 당시에 이쪽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나를 알아봐줬기 때문에, 사적으로 만나는 자리에 부르고 하다보니까 같이 놀게 되었죠. 

 

터울 : 궁금한 게, 그 때 어떤 코드로 서로를 식별한 거였을까요? 남성에 끌리는 남성을 알아보는 포인트가 어떤 거였을 지 궁금하거든요. 

 

Jay Lee : 그 때 저를 알아봤던 건, 2002년 겨울에 공항에 머라이어 캐리가 내한을 왔을 때, 제가 그 때 만나던 남자친구와 같이 갔는데, 

 

터울 : 아, 그 땐 남자친구랑 사귀셨군요.

 

Jay Lee : 그렇죠, 있었어요. 그 때가 첫 남자친구였던 것 같아요. 갔을 때 나는 그렇게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약간 눈빛이 오다가, 끝나고 나서 쪽지가 왔었죠. 누구누구님 하면서. 

 

터울 : 처음에 그럼 그분들이랑 만났을 때 뭐하고 노셨어요? 

 

Jay Lee : 팬클럽으로 모임했을 때는 당연히 그냥 밥먹고 술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 언니들이 나를 불렀을 때는 밥먹고 노래방을 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노래방에서 자기들 신고식이라고 나를 가운데 앉혀놓고 'The Boy Is Mine'을 부르면서 유혹하는 형태로, (웃음) 그렇게 장난을 치면서 놀았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디바들에게는 게이 팬들이 많으니까, 그 안에서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티를 내지는 않더라도, 디바들의 과장된 여성성에 대해 흥미로워하는 것, 음악적으로도 그렇지만 어떤 과장된 태도에 대해 경멸하면서 되게 좋아하는 그런 게 있거든요. (웃음) 

 

터울 : 디바에 스스로를 감정이입하고 그것을 서로 즐기는, 게이 문화 특유의 여성성 실천이 있죠. (웃음) 

 

Jay Lee : 네, 그런 코드가 있었죠. 

 

터울 : 간단한 질문인데 머라이어 캐리 노래 중에 어떤 곡을 제일 좋아해요? 

 

Jay Lee : 너무 어려워요, 그건 진짜. 절대 못 골라요.

 

터울 : 세 곡만 골라봐요. (웃음)

 

Jay Lee : 아 진짜 어려운데, 너무 어렵지 않나? 진짜 불가능해요.

 

터울 : 그럼 인생에서, 음악적인 성취를 떠나서 Jay님 인생에서 뜻깊은 곡이 있다면 어떤 곡이 있을까요?

 

Jay Lee : 대학교 1학년 때, 전 집에서 부모님에게 여러 번 (성적 지향을)걸렸는데, 대학교 1학년 말에 걸렸던 게 좀 큰 사건이 됐었어요. 그 때 나온 노래가 'Through the Rain'이었는데, 그 가사가 사실 그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큰 힘이 됐어요. 그건 그 노래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망했고 잘됐고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곡인 것 같아요.

 

터울 : 머라이어 개인의 커리어에서도 의미가 있는 곡이었죠. 직전 앨범의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느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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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4. LA (제공 : Jay Lee)

 

 

 

 

 

 

3. 성적 지향 관련 가족과의 일화

 


터울 : 집에 걸렸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경험이 이쪽 활동은 물론이고 심리적으로도 타격이 있으셨을 것 같거든요. 그랬기에 프리챌 팬클럽 모임이 그 시기에 더 큰 의미가 있으셨다고 들었는데요.

 

Jay Lee : 맞아요, 그 때 집에서 컴투게더에 나간 걸로 걸린 거였기 때문에, 그 모임에 대해 집에서도 알게 됐고, 그래서 컴투게더 형들과도 연락을 다 일절 끊었었죠. 그런데 팬클럽 모임은 명목상 게이와는 상관없고 어떤 클럽이라는 우산이 있으니까, 안전하게 거짓말하지 않고 나갈 수 있었죠. 그 때는 만날 수 있던 이쪽 사람이 그들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몇 명과만 친하게 지냈죠, 2000년대 초반에는. 

 

터울 : 예민한 질문이긴 한데요. 집에 걸리는 문제로 트라우마를 겪는 게이들이 되게 많잖아요.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그것 때문에 데뷔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고, 가출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응이 되게 다양할 수 있는데, 그 때의 심리랄까, 그 때의 경험을 지금도 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자세히 풀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Jay Lee : 여러 번 걸렸었다고 했잖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걸렸었고, 그 때는 아버지만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채팅으로 사람을 만난 것, 그것도 미성년자가 성인을 만난 거죠. 그게 걸렸던 건데, 그러다보니까 아버지는 또 얘가 '원조교제'하듯이, 용돈이 모자라서 그렇게 한 건가 생각하셨을 것이고, 그래서 나 스스로 이건 내 자연스런 성적 지향이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되게 안좋은 맥락으로 알려진 거였죠. 사실 그건 뭐, 만약에 여자인 제 동생이 남자를 그렇게 만났다고 해도 똑같이 혼났을 거예요. 그러니까 되게 안좋게 일단 첫 시작이 되었죠. 그 때 맞기도 하고. 

 

대학교 1학년 때 걸렸을 때는, 학교 모임으로 걸린 거였기 때문에 사실은 건전한 곳이라는 명분을 내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게 있었고, 그 당시에는 내가 찾아보고 공부한 게 있었기 때문에 이게 이상한 게 아니다-라고 설득도 했는데, 그 때 어머니가 되게 충격이 크셨어요. 제가 어떻게 설득을 하기가 어려울 만큼 어머니가 힘들어하셨기 때문에, 일단은 죄송하다 안 그러겠다-라고 하고, 실제로 저도 관계를 거의 쳐냈었죠. 

 

그랬다가 나중에 2007년에 한번 걸리고, 2011년에 한번 걸렸는데, 왜 이렇게 잘 걸리는지 몰라. (웃음) 저희 어머니가 젊었을 때 경찰에서 일을 하셨어요. 지문감식단 같은 걸로. 눈치가 되게 빠르세요. 컴퓨터도 저보다 잘 하시고. (웃음) 그러니까 여러 번 기록이 남았다 걸렸는데, 나중에 20대 때 걸렸을 때는 많이 싸우기도 했죠. 별 말도 다 하고, 충격요법으로 사적이고 섹슈얼한 이야기들을 막 꺼내면서 하기도 했었는데 설득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도 그게 트라우마가 돼요, 사실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 된다는 게. 물론 맨처음 혼났을 때만큼 힘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부모님한테 거짓말을 계속 해야 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나를 절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더 슬픈 건 그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거잖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도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 때문에. 또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일을 통해 가족에게서 나를 분리하는 연습이 됐던 것일 수도 있고, 그런 경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실은 한국에 살았던 내내 그런 트라우마를 겪었어요. 꿈에서도 나오고, 부모님에게 또 걸려서 어떻게 된다든가, 혹은 어머니가 날 인정해서 안아준다든가, 이런 꿈을 꾸는 거예요, 가끔씩.

 

터울 : 너무 마음아프다, 

 

Jay Lee : 그게 되게 트라우마인 거죠.

 

터울 : 저도 사실 부모님이 아직 제 성적 지향을 모르시거든요. 커밍아웃하고 강의하는 사람이 그렇다는 게 너무 황당할 수 있지만,

 

Jay Lee : 그러니까. (웃음)

 

터울 : 그런 게 그야말로 성소수자가 겪는 낙인의 경험이겠죠. 어려운 질문에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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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제10회 퀴어문화축제, 2009.6.13. (촬영 : 흑장미)

 

 

 

4. 2006년, 게이로의 정체화

 


터울 : 2006년 즈음에 마지막 여자친구를 사귀시고, 헤어진 다음에 게이로 정체화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때 얘기를 좀 여쭤볼게요.

 

Jay Lee : 물론 그 전에도 여자친구들이 적지 않게 있었고, 종로·이태원도 생각보다 자주 나갔어요. 그리고 마지막 연애를 했을 때 그 친구에게는 그런 얘기도 했고, 그래서 내가 남자도 좋아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 때까지 저와 반복적으로 사귀었다가 헤어졌다가 한 애였기 때문에, 그 친구가 놀랐겠지만 그 당시는 티를 별로 내지 않았고, 괜찮다, 자기는 내가 남자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했었어요. 다만 반농담으로 했던 말이, 다른 여자애들은 다른 여자애 만나는 것만 질투하고 신경을 쓸 텐데, 자기는 그 2배의 신경을 써야 되니까 피곤하겠구나, 이러고 넘어갔었어요. 생각해보면 되게 신기한 케이스죠. 그 친구랑은 지금도 가끔 연락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어학연수를 2006년 즈음에 갔는데, 저도 그 당시에 여자친구가 당장 옆에 없으니까 더 자주 나가서 놀게 되고, 그 중에 호감이 생긴 사람도 생기고 이러니까, 고민을 좀 했죠. 앞으로 이렇게 죽 살아도 되는 것일까, 그게 맞나, 이런 생각을 하던 차였고. 또 그 친구는 그 당시에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일도 하고 있었고, 저나 그 친구나 가족까지 다 아는 사이인데, 그 다음 단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진짜 이렇게 (이성애 결혼에)발을 들이는 게 맞을까,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고 고민하던 차에, 이쪽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물론 걔네들도 웃기겠죠, 나와서 놀 거 다 놀고, 

 

터울 : 그분들 입장에선 사실 그럴 수 있죠.

 

Jay Lee : 네, 그런데 여자친구는 있고. 심지어 그 여자친구랑 걔네랑 만나기도 하고 했으니까. 얼마나 꼴사나웠겠어요. (웃음) 그래서 내가 진짜 나중에 결혼하면 자기들은 나 안 만날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얘기에 약간 충격을 받고, 이건 아닌 것 같다, 이게 어느 쪽에도 행복하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 친구랑 어쩌다 헤어지게 됐고, 그 후로 (여성이랑은)다시는 안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터울 : 그러니까 인맥과 인맥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이걸 같이 갖고 갈 수가 없다고 판단되셨던 거군요.

 

Jay Lee : 네, 그 때까진 그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냥 뭉개거나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분명해지는 시점이 왔던 거군요. 저도 2009년에 마지막으로 여자친구랑 사귀었었는데, 저도 그 친구를 가끔 봐요. 생각해보면 저도 그 때까지는 그렇게 이반시티로 많은 게이를 만났으면서, (웃음) 나는 게이는 아니고 언젠간 결혼할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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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07년 싸이월드 84년생 모임 가입

 


터울 : 싸이월드 84년생 모임 얘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종로·이태원에서 84년생분들은 너무나 유명한, (웃음)

 

Jay Lee : 옛날 일이죠 그것도 이제, (웃음)

 

터울 : 지금도 현역이신 것 같은데, (웃음)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Jay Lee : 그 때 머라이어 캐리 팬클럽에서 알았던 그 그룹 친구들, 그 중에 한 명이 84년생 어떤 애를 소개시켜줘서, 아마 싸이월드에서 알았던 것 같아요. 일촌신청하고 그렇게 해서, 그 때는 그렇게 친구들 그룹이 커지는 단계였으니까.

 

터울 :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프리챌에서 싸이월드로 사람들이 확 빠졌었죠.

 

Jay Lee : 네, 그렇게 해서 알던 84 친구 한 명이 자기가 모임을 하는데 가입하지 않을래? 해서 들어갔었어요, 2007년 3월에. 아직도 기억나네요. 

 

터울 : 기억나는 게 저도 그 때쯤 싸이월드를 한창 했었는데, 미니홈피에 게이라고 티는 안내지만, 조금만 파다보면 아, (웃음) 이렇게 알게 되잖아요.

 

Jay Lee : 저는 그 당시에도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에 레인보우 해놓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웃음) 

 

터울 : 84 싸이월드 클럽 모임은 어떠셨어요? 

 

Jay Lee : 제가 2002년에도 다음 까페에 83 모임을 했었는데, 제가 빠른 84이다보니까. 그 당시엔 진짜 한두번 나갔나, 그래서 못 친해지고, 그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다음에 제가 있었던 84모임은 소모임, 작은 모임을 지향했어요. 그 때는 동갑모임이 되게 유행이었는데, 84모임이 여러 개가 있었어요. 그 중에 여기는 되게 소수, 그 때 한 50명, 많아봤자 100명 정도의 소수를 유지하되, 

 

터울 : 그게 소수예요? (웃음)

 

Jay Lee : 그게 소수였죠. 다른 모임은 300명씩 하고 그랬으니까. 그리고 회원관리가 좀 엄격했어요. 정모 같은 거 자꾸 안나오면 탈퇴시키고, 글도 잘 안쓰고 그러면 자르고. 그렇게 좀 친목을 다지자는 코드의 모임이었어서, 애들끼리 좀더 친했었던 것 같아요. 자주 보게 되고. 

 

터울 : 동갑모임이라는 걸 저는 사실 한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어떤 특색이 있을까요? 되게 궁금해요, 그 분위기가. 

 

Jay Lee : 일단은 동갑이니까 당연히 반말 모드로 시작하고, 그리고 그 때가 20대였기 때문에, 30대와 40대를 지나면서는 좀 달라지긴 하는데, 동갑에 대한 애착이 좀 있어요. 학교 문화가 아직 남아있을 때라서, 정말 동갑 친구들이라고 하면, 

 

터울 : 동기같은 거군요.

 

Jay Lee : 그렇죠, 그 때는 나이가 한 살 아래거나 위면 형동생이지 친구로 생각 안하는데, 친구고 동갑이기 때문에 좀더 끈끈할 수 있는 게 있었죠. 그리고 되게 다양한, 내 환경과 다르게 살고 있는 동갑들을 볼 수 있는 것? 어떤 친구들은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학생인 친구들도 많고 그랬죠. 

 

터울 : 그때쯤이면 슬슬 취업을 할 때니까, 

 

Jay Lee : 그렇죠.

 

터울 : 저는 그 전에 비슷한 모임을 했던 게, 게이스북 이전에는 다음 카페 오렌지동밖에 없거든요. 거기에는 지금의 어플 비슷하게 자기 사진들 올리는 게 있었는데, 이쪽 동갑모임은 그런 사진첩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궁금해요. 

 

Jay Lee : 자기 얼굴을 올리는 게시판이 있었죠. 그런데 모임마다 약간 다르겠지만, 우리는 거의 오프라인 모임이 많았던 편이어서, 

 

터울 :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군요.

 

Jay Lee : 뭐 개인 사진도 많이 올렸죠. 그 와중에 연애하는 애들도 있으니까, 나도 그랬지만. 오프라인 모임 사진을 올리는 사진첩도 따로 있었고. 클럽이 등급제여서 모임을 한번이라도 나왔어야 그 모임 사진을 볼 수 있었고, 그런 식으로 운영했어요. 사진을 올릴 때는 물론 잘 나온 걸 골라 올리지만, 어플처럼 누굴 만나야겠다는 목적을 가진 경우는 처음 가입했을 때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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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회 RED PARTY, 앤쵸비님 공연, 2019.11.30. (촬영 : 터울)

 

 

 

터울 : 여기서 유명한 앤쵸비님을 만나게 되는데요. 쵸비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궁금해요.

 

Jay Lee : 제가 2007년에 가입해서 나름 주축 멤버로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가, 그런 분위기가 저한테는 프리챌 때와는 다른 첫 이쪽 모임이어서 되게 열심히 나갔거든요. 그러다가 1년만에 어학연수를 가면서, 싸이클럽을 인터넷으로만 보고, 그 당시에는 저의 향수를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이니까 계속 게시판 보고, 애들 어떻게 노나, 

 

터울 : 중국에서요?

 

Jay Lee : 네, 그렇게 지내다가, 2008년 봄 즈음에 그 친구가 들어왔어요. 눈에 확 튀더라고요. 게시물을 써도 그렇고 사진을 봐도 그렇고 되게 재밌길래, 얘는 어떤 애일까, 그러고 있다가 여름에 잠깐 한국 왔을 때 처음 봤죠. 너구나, 그러면서. 

 

터울 : 한국에 돌아오셔서 같이 일을 동갑모임에서 하셨다고 들었어요.

 

Jay Lee : 네, 오자마자 전에 클럽장하던 친구가 넘겨주면서, 약간 임기같이, 정해진 건 아닌데 한 사람이 너무 오래 하면 힘드니까, 돌아가면서 했어요. 그래서 저랑 쵸비랑 같이 했죠. 

 

터울 : 일하면서 합이 잘 맞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Jay Lee : 그 친구가 워낙 사교적이고 말을 재밌게 하기 때문에, 모임을 하면 항상, 그 때만 해도 클럽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타입이었고, 저는 이제 행사 사전·사후에 준비를 한다거나, 계획을 짜거나 예약을 하거나 정산을 하거나, 누가 오네 안 오네를 계속 알아본다거나 이런 역할들을 꼼꼼하게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런 것들을 하고, 모임이 시작되면 저는 조용히 있는 거예요. 난 편하게 좀 쉬고, 그러면 그 친구가 MC를 보면서 확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그렇게 한 거죠.

 

그 모임 회원이 50~100명이었는데, 출석율이 되게 높았어요. 안 나오면 자르니까. (웃음) 그래서 70~80%, 지방에 있는 애들까지 포함해서 나오고 했으니까, 모임이 꽤 커서 어딜 빌려서 뭘 하는 것도 일이었고. 어느 날은 2차로 가라오케 레떼를 갔다가, 우리 인원이 너무 많으니까 한두 테이블 빼고 다 우리 애들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약이 끊이지 않고 쏟아지고, 우리만 노래 계속 부르고 이러니까 다음날 이반시티에 컴플레인이 올라와서, (웃음) 어제 레떼에 누구냐, 진상이더라, (웃음) 그런 얘기도 있고 그랬죠. 

 

터울 : 84의 전설이 그 때부터, (웃음) 생각해보면 그렇겠네요, 그 정도 인원이면 레떼가 가득 차겠네요. 레떼 말고는 주로 어디에 많이 가셨어요?

 

Jay Lee : 자리가 커야 되니까, 그 당시에는 컸으면 다 뚫었죠.

 

터울 : 지금도 딱히 많은 인원이 수용될 만한 곳이 종로에 많지 않잖아요. 

 

Jay Lee : 네. 진짜 많이 올 것 같을 때는 아예 종로에 리하우스 이런 델 가야 됐을 때도 있었고. 큰 모임을 많이 하는 오래된 술집이었어요. 원래 이번가 하시던 분들이 열었던 술집이라고 들었던 것 같아요.

 

터울 : 요새도 그런 문화가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Jay Lee : 요새도 뭐 누구누구 술번개 이런 거 크게 하지 않나요?

 

터울 : 하긴 코로나 때문에 그런 대인원 모임이 너무 옛날 일같이 느껴지는데, 코로나가 풀렸으니 이제부터 많이 하겠죠. 그럼 2010년에 홍대 명월관 클럽을 통으로 빌려서 84·86·87 동갑모임을 하셨던 게, 그 전에도 그렇게 대관하고 행사 진행하고 했던 경험의 연장이었겠군요. 

 

Jay Lee : 그 때가, 제가 빠른 84이기 때문에 83 모임에도 들어가 있었고, 84모임끼리 모이다 보면 조그만 모임이다보니까 좀 지겹잖아요. 그래서 한번 조인트를 해보자, 83형들이랑, 그런 얘기가 나왔고. 난 속으로 83도 다 언니들인데 해서 뭐하나, (웃음) 그러다가 아무튼 83이랑 같이 한번 모임을 했었고, 그렇게 모임끼리 서로 알아가는 행사를 가끔 했었어요. 그러다가 86·87이랑 명월관에서 했던 건, 아마 86들이 자기 모임 행사 하니까 형들 오라고 초대했던 것 같아요. 알던 인연이 있으니 구경하시라고 해서 갔던 것 같아요, 84모임 중 몇 명이. 

 

터울 : 지금까지 활동하는 뮤직세이가 86 동갑모임 소모임에서 시작했다고 들었거든요. 

 

Jay Lee : 맞아요. 그래서 그 전에 86이랑 조인트 행사하고 나서 가끔 연락하며 지내다가, 자기들이 이런 공연을 하니까 오시라, 해서 갔었던 것 같아요.

 

터울 : 이 동갑모임이 게이커뮤니티의 중요한 단위로 활동했던 게 새삼 참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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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어학연수 당시 (제공 : Jay Lee) 

 

 

 

 

6. 2008년 중국 어학연수 경험

 


터울 : 어학연수 얘기로 넘어가볼 게요. 2008년에 가셨던 거죠, 1년간?

 

Jay Lee : 네. 

 

터울 : 중국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이 있으셨어요?

 

Jay Lee : 막 큰 관심이 있던 건 아니고, 고등학교 때 제3외국어가 중국어였어요. 한자가 너무 싫어서 처음엔 하기 싫었는데, 하다보니 재밌더라고요. 성조가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리고 2002년 대학교 1학년 때 제가 처음 해외여행을 간 곳이 중국 북경이었어요. 고등학교 동창이 거기서 공부하고 있어서, 걔 구경이나 가자, 해외여행도 해볼 겸해서 처음 갔는데, 첫 해외여행이니 얼마나 에피소드가 많겠어요. 신기한 것도 많았고, 그것도 혼자 갔어요, 말도 안 통하는데. 그래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되게 재밌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2000년대만 해도 중국이 워낙 커나가는 때였고, 한국과의 관계도 되게 좋았고, 중국어만 하면 먹고 사는 데 문제없다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중국어 붐이 일었고 해서, 나도 어학연수를 가보고 싶은데 어딜 갈까 하다가, 미국 이런 덴 비싸니까, 그 때 중국 어학연수 값이 미국이나 유럽의 반이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갔던 거죠. 그래서 딱히 중국어로 뭘 해야겠다는 것보다는, 해외 경험도 해보고 싶었고, 중국에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게 됐죠. 

 

터울 : 그 1년동안 현지에서 만났던 사람과의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 때 갔던 현지 게이업소라든지,

 

Jay Lee : 있죠. 그 때도 북경에 클럽 Destination이 있었어요. 2006년에도 있었던 것 같고. 되게 오래된 클럽인데, 그 당시에는 클럽이 지금같이 이렇게 크진 않았어요. 한국이랑 비슷한 수준이거나 좀더 별로였는데,

 

터울 : 그 자리가 아니었어요?

 

Jay Lee : 같은 자리예요. 그 때는 건물 한 층만 쓰고 있었죠.

 

터울 : 아, 그게 늘어난 거군요.

 

Jay Lee : 지금은 건물 전체를 다 쓰죠. 그리고 그 때는 시설도 그냥 그랬고, 

 

터울 : 그건 지금도, (웃음)

 

Jay Lee :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화장실도 완전 고급으로 바뀌고. 

 

터울 : 제가 갔던 때가 2018년이었는데, 그 때보단 많이 좋아졌군요. (웃음) 

 

Jay Lee : 그 때보단 많이 좋아졌어요. (웃음) 거기서 특별히 뭐가 다른 점이 있었다기보단, 그냥 중국애들도 이러고 노는구나 생각했고. 그 때는 스마트폰이 없을 때고, 중국에서도 몇 명이 좀 쓰기 시작할 때였는데, 그러니 사람들을 따로 만나고 연락하는 걸 앱으로 할 수 없었으니까 클럽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는 거죠. 거기서 인사하고 친구로 지내고, 그런 경우가 있었고. 그리고 그 때 한국에 애인이 있었는데 그 친구랑 가을 즈음에 헤어지면서, 이제 싱글이 됐다, 열심히 만나야지, 이러고 상해로 건너가서 놀고. 그 땐 상해 클럽이 되게 좋았어요. 

 

터울 :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다고 들었어요.

 

Jay Lee : 북경보다 상해가 훨씬 좋았고, 음악도 괜찮았고 분위기도 괜찮았고, 깔끔했고. 그래서 자주 갔었죠. 거의 매주 가다시피했죠. 돈이 없었을 땐데, 밥은 진짜 사흘 내내 맨밥에 김만 먹고 살아도 클럽은 가는 거예요. 열심히 나갔죠. 그리고 중국은 그 당시에,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놀이문화 말고는 딱히 눈에 띄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특별히 느낀 게 있다기보다는 중국이 되게 물이 좋구나, 놀기도 좋구나, 이런 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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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어학연수 당시 (제공 : Jay Lee) 

 

 

 

 

 

7. 처음 접한 페이스북

 

 

터울 : 중국에서 처음 페이스북을 접하셨다고 들었거든요. 페이스북의 위상이 그 때 당시에 어땠는지 회고해주시면, 

 

Jay Lee : 어학연수할 때 상해에서 다른 나라 애들이랑 연락을 주고받는 SNS를 하고 싶은데, 걔네가 싸이월드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 당시에 서양권 애들은 다 페이스북을 쓰더라고요. 그걸 하라 그래가지고 가입을 하고, 그래서 처음에 올라왔던 사진들은 어학연수 때 사진들이에요. 그 때 같은 반 애들이랑 술먹는 사진들. 그러다 한국에 와서는 거의 안 쓰고, 몇몇 해외 친구들 있는 애들이 쓰는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2009~2010년 넘어가면서 슬슬 많이 쓰더라고요. 페이스북이 모바일 적응을 잘한 앱이니까, PC보다 모바일이 훨씬 사용성이 좋고. 그러면서 한국 애들이 막 들어오는데, 싸이월드 때는 일촌이 있어서 전체공개와 일촌공개를 구별할 수 있었잖아요. 그리고 일촌 안에서도 그룹을 나눠서 이쪽 애들만 볼 수 있는 폴더를 만들 수 있었고. 그런데 당시 페이스북은 그런 것들이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었어요. 나중에는 그루핑이 가능하게 바뀌었지만. 그렇게 해서 이쪽 애들이 아닌 페친용 계정을 따로 만들어 분리하고, 그런 과정이 있었죠. 처음에는 섞여있었어요, 다. 

 

터울 : 그러면 게이스북을 따로 만든 게 아니라 지금 현재 계정이, 

 

Jay Lee : 지금 현재 계정이 게이스북으로 바뀐 거죠. 

 

터울 : 언제쯤 그렇게 정리하신 거예요?

 

Jay Lee : 2010~2011년 그 때 취업하면서? 취업할 때 애들이 스터디 있거나 그러면 자꾸 페이스북을 물어보니까요. 그런데 슬슬 이쪽 애들이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몽글몽글 시작되는 거예요. 물론 지금도 제 게이스북엔 앨라이가 일부지만 몇명 있는데, 그들에게 너무 튀게 하지 말아달라고, 애들이 불편해할 수 있으니, 이런 얘기도 하기는 했었어요.

 

터울 : 지금도 마찬가지죠.

 

Jay Lee : 네. 그래서 일반들이 볼 수 있는 계정을 만들었다가, 그 계정은 결국 방치됐죠. 

 

터울 : 재미가 없죠. (웃음)

 

Jay Lee : 재미가 없죠. 두 개 하는 것도 너무 피곤하고. 

 

터울 : 저는 일북과 게북 계정을 둘다 돌리는데, 이쪽 게이스북의 리젠율이 한 10배는 높아요. 

 

Jay Lee : 그렇죠. 그래서 일북은 아예 손을 떼게 되더라고요. 일반들한텐 나 SNS 안해, 이러고. 

 

터울 : 그러면 그 때는 취업할 때 SNS 운영 여부를 물어보는 문화가 있었나요? 지금은 그런 게 있잖아요. 

 

Jay Lee : 몇 군데? 한두 군데? 있긴 했는데 저는 안 썼어요. 

 

터울 : 그 때만 하더라도 SNS가 생겨날 때였는데, 지금은 취업할 때 그런 게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난 열심히 이쪽 SNS를 썼는데 면접에서 SNS를 써내라고 하니까, 졸지에 SNS 관련 활동을 안해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게 뭔가 평가에 영향을 주는 그런 문제들, 

 

Jay Lee : 그렇죠. 저도 이쪽에서 열심히 해온 것들을, 거기서 배운 것도 많으니까 나의 경력이라든가 내 인생의 커리어에 넣어놓고 싶은데, 이걸 공개하기는 약간 애매하고, 그런 게 아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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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11년 컨텐츠 마케터로의 첫 취업

 


터울 : 취업 얘기를 할 텐데요. 첫 직장으로 컨텐츠 마케팅 일을 하시게 됐는데, 일단 궁금한 게 정치외교학과 공부를 하셨다가 마케터로 진로를 정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Jay Lee : 정외과 진학은 중학교 때부터 결정을 한 거였어요. 우리집이 되게 FM이었던 게, 중학교 때 일찌감치 부모님이랑 진로 고민 얘기를 하면서 외교관을 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고등학교도 외고를 간 거고, 이게 다 하나의 플랜이었던 거죠, 처음부터. 그리고 외무고시를 보려고 정외과에 지원했고. 대학 입시 때 썼던 학과가 둘다 정외과였어요.

 

터울 : 외시 보려고 하셨군요.

 

Jay Lee : 네, 외시 보려고 간 거였고. 그런데 들어가서 선배들을 보니, 이게 만만하지가 않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나는 과외하고 알바하고 하면서 등록금을 보태야 되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나같이 활동하고 나가 놀기 좋아하는 애가, 몇년동안 집안의 빵빵한 지원을 업고서 그걸 준비하는 애들과 경쟁한다는 게,

 

터울 : 등록금을 벌면서 다니셨었구나,

 

Jay Lee : 기여를 좀 했죠. 그래서 이게 안되겠는 거예요. 부모님한테는 얘기 안하고, 또 말하면 속상해하실 테니까. 그래서 다른 꿈이 생긴 것처럼 얘기하고 나는 뭘 할지를 찾다가, 2006~2007년 즈음에 매거진 쪽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에디터가 되고 싶었어요. 매거진 에디터가 되는 게 꿈이다, 그게 잡혀서 그 업계를 동경하다가, 어쩌다 VOGUE에서 하는 탤런트 콘테스트라고, 글쓰기 유망주를 찾아내는 것에 지원해서 10명 중에 한 명으로 선정됐었어요. 선정된 사람들 중에는 되게 어린 편이었던 것 같아요, 20대 중반이었으니까. 그래서 너무 방방 뛰다가, 그걸 눈여겨본 분이 추천을 해줘서 GQ의 온라인 리포터라고, 주로 대학생이거나 에디터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기사를 쓰는 걸 1년인가 했었어요. GQ가 그 당시에 국내 매거진 중 탑이었기 때문에 되게 가고 싶은 데였고.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재밌다, 꼭 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꿈을 키웠죠.

 

그러다 점점 또 다른 데 관심이 생겨서 방송국 PD를 해야지, 그러고 또 PD일을 알아보려고 어떤 대학교에서 하는 아카데미도 가보고. 그랬는데 PD 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웃음) 준비를 많이 해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원을 몇번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안했으니까 안되고. 그러다가 어쩌다 미디어사에 가게 됐죠. 그래서 처음에는 원래 마케팅 지원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당시에 GQ 다니면서 했던 것들이 마케팅과 밀접하게 연관된 글쓰기였기 때문에, 그걸 보고 인사팀에서 직무 배치 전에 마케팅으로 옮겨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었어요. 마케팅에 대해서는 배운 적도 없고 하나도 몰랐지만,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터울 : 어찌보면 우연이 개입한 거네요. 해왔던 것이 바탕이 되기도 했지만요. 

 

Jay Lee : 대학교 때 경영학을 해야 마케팅을 배우는데 저는 전혀 배운 적이 없었고, 그런데 인사팀 쪽에서 되게 잘하실 것 같다, 당신이 해온 일들을 보니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셔서,

 

터울 : 보통 마케팅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있는 컨텐츠를 어떻게 포장을 잘 해서 광고를 하고, 어떻게 잘 보이게 할까-라는 개념이잖아요. 그런데 방송사에 들어가셔서 실제로 했던 일은 그것과는 굉장히 다른 일이었다고 들었는데요. 

 

Jay Lee : 회사에서 취업을 하고 마케팅 직무를 하는 사람들은 따로 교육을 몇주 받아요. 마케팅 교육을 받는데, 그 당시에 배운 건 되게 원론적인 이야기들이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마케팅은 포장을 잘하는 일? 어떤 게 나왔을 때 이걸 예쁘게 잘 꾸며서 사람들이 그걸 사고 싶게 만드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일이 그 정도가 아니었던 거죠. 

 

실제로 회사에서 하게 된 마케팅 일은 프로그램을 포함한 채널의 마케팅이었고, 방송 채널의 전반적인 기조와 브랜딩, 개별 프로그램 마케팅, 그리고 방송에 얽혀 있는 수많은 유관 부서들과의 협업을 다 커뮤니케이션해야 되는 거였었어요.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이 채널에서는 어떤 포트폴리오의 프로그램들을 짜서 내보내야 되는지부터 시작해서, 제작할 때의 협찬팀이라든가 제작진이라든가, 홍보팀이라든가, 그 모든 팀들과의 중심잡기까지를 포함한 일이었죠.

 

왜냐하면 제가 일한 곳은 제작팀이나 홍보팀이나 협찬팀이 채널 소속이 아니었어요. 다 따로 소속이 있고, 채널의 중심은 마케팅과 편성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잡고 가야 되는 거였죠. 편성은 편성 일을 하는 거고. 그래서 마케팅팀이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챙겨야 됐어요. 요청하고 받고 요청하고 받고, 이런 것들을 다 주도해야 되는 일이었다보니까 되게 잡일이 많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프로그램 색깔이 우리랑 안 맞는 거 아니냐, 이런 것에 대한 챌린지를 항상 마케팅팀이 받고, 그럼 마케팅팀이 정리해서 제작진에게 피드백을 보내고, 이런 시스템이었어요, 그 채널은. 이게 채널마다 다를 거고 방송 회사마다 다 다른데, 제가 있었던 채널은 그랬었죠. 

 

터울 : 그러니까 사실상 채널 자체의 책임 PD의 역할을 한 것 같거든요, 제가 보니까. 

 

Jay Lee : 네, 물론 PD란 직함은 안 붙는데, 롤로 따지면 그렇게 되죠. 

 

터울 : 굉장한 격무에 시달렸을 것 같은데, 

 

Jay Lee : 정말 쓰잘데기 없는 일들이 많았어요. 이걸 왜 내가 하지? 싶은 일들. 

 

터울 : 그래도 뭔가 본업에 임하시면서 재밌었던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아요.

 

Jay Lee : 제가 일하던 채널이 그 당시에 되게 이쪽 사람들이 좋아하던 채널이었어요. 거의 백색 소음처럼 틀어놓고 지내는, 내가 밥을 먹든 뭐하든 틀어놓고 사는 정도였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너무 좋아하는 채널이었고, 그래서 그 당시에 그 채널에서 했던 해외 수급물 리얼리티가 있었는데, 거기에 제가 너무 좋아했던 호스트 MC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그 프로그램 시리즈의 한국편을 찍으러 한국에 온 거예요. 당시에 제가 그 채널에 있었기 때문에 어레인지를 제가 운좋게 담당했었어요. 제가 워낙 그런 걸 좋아하는 걸 팀장님도 아니까 저한테 시켰던 거죠.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날 일이 생긴 거예요. 내가 20대 때 너무 좋아했고, 그 사람이 했던 말들 몇 가지는 지금도 기억하면서 따라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을 만나서 사진을 찍고 하는 게 너무, 개인적으로는 아 난 다 이루었다, 여길 떠나도 되겠다, 싶은 그런 경험이 있었죠. 너무 복이었어요, 진짜. 

 

터울 : 그럼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잡무가 많고 광범위한 업무 분장, 업무 영역을 갖고 있으면서 그 일이 적성이 안맞으면 굉장히 괴로웠을 수 있는데, 나름대로 업무를 잘 수행하신 것 같거든요. 그 일이 어떤 의미에서는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한다는 차원도 있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 일이 Jay님 적성에 맞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거든요. 

 

Jay Lee : 사실 저는 회사가 사람을 만드는 면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 회사 때문에, 회사에서 그렇게 일을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일하는 건지, 아니면 적성이 원래 그런 천성인 건지는 대답하기 애매하지만, 일을 하나부터 끝까지 마이크로하게 챙기는 경향은 있어요. 그게 처음에 그렇게 일을 배운 것도 있고, 지금도 그렇게 일을 하는 편이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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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IKE 공연, 2015년 퀴어문화축제 애프터파티 PRIVATE BEACH, 2015.6.14. (촬영 : 터울)

 

 

 

 

9. 2013년 SPIKE, 2015년 Glow Kitchen 홍보 활동

 


터울 : 그런 역량들이 게이커뮤니티에 쏟아지기 시작한 게 2013~2014년부터인 것 같은데요. 처음으로 이쪽 바닥의 행사에서 홍보나 기획을 했던 경험이, 거슬러 올라가면 아까 얘기해주셨던 동갑모임에서의 행사 진행도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배웠던 것들을 이 바닥에서 써먹었다고 평가되는 첫번째 행사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Jay Lee : 사실은 동갑모임 정모에서도 포스터를 만들어요. 그것부터가 브랜딩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때는 몰랐지만. 그래서 우리 모임의 성격과 이 포스터의 컬러가 맞는 건지, 이런 문구가 맞는 건지를 고민하는 것도 그런 일의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을 이쪽 일에 처음 적용했던 건 2015년 Private Beach였을 거예요. 그 전에 SPIKE라는 팀의 공연 홍보를 맡아서 잠깐 도와줬을 때는, 물론 그 때는 급하게 맡아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고, 포스터 만들고 현장을 챙기는 것, 공연팀이 바쁘니까, 그런 것들을 했었는데 그 때는 뭘 적용했다기보다 도와주는 스탭 정도였던 것 같고. Private Beach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적용하게 됐죠.

 

터울 : 네, Private Beach에 대해서는 잠시 후 집중적으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고요. SPIKE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Jay Lee : 앤쵸비랑 워낙 친한 친구였고, 그리고 Ethan형도 학교 모임 때 알던 선배고, 물론 그 뒤에 연락을 자주 하거나 친하게 지낸 건 아니었지만, 자주는 아니더라도 지나가며 보게 되거나 혹은 학교 선배가 하는 바, 이스케이프라고 종로에 있던 칵테일 바인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그 바에 가서 학교 선배들 만나면 반가우니까 인사하고 서로 안부 나누고, 그러던 선배 중의 한명이었는데 어떻게 그 둘이 알게 돼서 같이 팀을 한다는 거예요. 이건 또 뭔일이야 이러고. (웃음) 앤쵸비가 워낙 친하고 재밌기 때문에 관심있게 보고 있었고, 공연을 한다 그래서 공연 보러가야지 그러다가, Ethan형이 일이 바쁘니까 와서 좀 도와달라고, 아마 그 형이 처음에는 디자인 일을 맡기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포스터 디자인을 얘기하는데, 나는 포토샵도 못하고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니까, 와서 어영부영 했죠. 그 때는 PPT로 만들어서, 디자인하는 다른 친구들한테 부탁해서 이거 좀 이거대로 만들어줘-라고 요청하고, 받아서 피드백 보내고, 그렇게 했죠. 그리고 현장 챙기는 것 좀 도와주고 했는데, 괜찮았나봐요. (웃음) 

 

그래서 Private Beach 같이 할 때도 그 형 만나서 따로 얘기했던 것 같아요. 퀴어문화축제 애프터파티를 자기가 맡아서 하려고 하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 그래서 흔쾌히 하게 됐죠. 

 

터울 : SPIKE가 재밌었던 게, 고고보이와 드랙퀸이 같은 크루 안에서 뭔가를 하는 게 새로운 시도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SPIKE란 팀이 공연을 하게 되면 홍보물에 얼굴을 내보이게 되고, 그게 자연스레 커밍아웃으로 연결되잖아요. 그런 흐름이 일견 자연스런 이행같아 보이지만, 그런 행사를 통해 얼굴을 까는 사람이 나타난 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친구사이도 2002년부터 커밍아웃 인터뷰를 해왔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더욱 얼굴 까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더더욱 운동적 카리스마로 작용했던 거죠. 그런 단계에서 이제는 운동적인 색채가 덜한 행사에서도 게이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문화가 자리잡은 건 중요한 이행이라고 생각되거든요. 

 

Jay Lee :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만 해도, SPIKE 때면 사실상 싸이월드가 접히고 페이스북이 막 뜰 때인데, 게북이 폐쇄적이잖아요. 그 안에서 SPIKE 공연 홍보물이 돌고 내가 거기에 스탭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내가 얼굴을 깐다는 생각은 안했었던 때예요. 우리들끼리의 모임에서 우리들끼리, 친구들끼리 하는 행사에 가는 것에 가까웠고, 이쪽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걸 통해 나를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때여서, 그런 부담은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래도 무대에 올라가는 SPIKE 크루 4~5명들은, 

 

Jay Lee : 모르겠어요, 쵸비같은 경우는 변장을 하기 때문에, (웃음) 본인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런 홍보물이 올라가거나, 이쪽 업소 앞에 사진이 박힌 포토월이 크게 걸린다고 해도, 그걸 그렇게 막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우리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이런 것에 되게 큰 부담을 안고 나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터울 : 이런 게 참 따지고 들면 한도끝도 없이 깐깐해질 수 있는 건데, 아우팅 방지와 커밍아웃 사이의 회색지대 가운데 점점 얼굴을 까는 시도들이 많아지는 흐름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아요. 왜냐하면 2000년대만 하더라도 퀴어퍼레이드 하면 자기를 찍지 말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행진하곤 했는데 그게 2009년에 없어지잖아요. 그게 어떻게 없어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는 되게 어렵고 애매한데, 어쨌든 그렇게 변화해온 흐름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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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w Kitchen, 2017.11.13. (촬영 : 터울)

 

 

 

터울 : 게이스북 얘기가 잠깐 나와서 말인데, 게이스북은 그 안에서 게이들 얼굴이 찍힌 사진을 올려서 페친들을 태그하고 노는 문화가 홍보·마케팅의 측면에서 중요했다고 생각되거든요. 싸이월드 사진첩과는 또다른 맥락이었던 것 같고요. SPIKE 때도 게이스북을 활용한 마케팅이나 홍보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Jay Lee : 그 때는 진짜 거의 공연 직전에 들어가서 포스터 만들고 그런 정도였기 때문에, 홍보를 어떤 작전을 가지고 해야겠다는 건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그 때 SPIKE의 흥행은 거의 쵸비가 이끌었고 사실, 솔직히 말해서, (웃음) 걔 아는 친구들만 가도 흥행이 보장되는 거였기 때문에.

 

터울 : 워낙 인맥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지금도 그렇고. 

 

Jay Lee : 그 때는 뭐 어떤 방향을 갖고 이렇게 해서 홍보해야겠다는 고민은 별로 없었어요.

 

터울 : Glow Kitchen 홍보는 어떻게 맡게 되셨어요? 

 

Jay Lee : 마찬가지예요, 그 때도. 둘이 댄스팀을 한다더니 이번엔 가게를 차린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뭔 가게요? 라고 물었죠. (웃음) 그런데 그 때 가게의 성격에 대해 Ethan형이 고민을 많이 하던 때였어요. 게이 장사와 일반 장사의 믹스 정도를 형도 고민하고 있었고, 위치도 몇 군데 후보가 있었고, 가게 이름도 아직 안 나왔던 때였어요. 그 때 형이 같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한다고 했죠.

 

터울 : 그렇게 나중에 Private Beach로 이어지는 인연이 차곡차곡 쌓이게 됐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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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제15회 퀴어문화축제, 2014.6.7. (촬영 : 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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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제15회 퀴어문화축제, 2014.6.7. (촬영 : 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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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서울시청로비 점거농성, 2014.12.11. (촬영 : 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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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제16회 퀴어문화축제, 2015.6.28. (촬영 : 터울)

 

 

 

10. 2014년 신촌 퀴어퍼레이드, 2015년 서울시청광장 퀴어퍼레이드

 


터울 : 2014~2015년이 중요한 해잖아요. 2014년 신촌 퀴어퍼레이드 때 혐오세력들이 막아서서 야간에 행진을 하게 됐고, 그해 겨울에 시청농성이 있었고, 그 다음 해에 시청광장에서 첫 퀴어퍼레이드가 열렸죠. 이 때 게이스북 게시물들을 죽 보면 모두가 고양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2000년대 초반부터 이 바닥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게 되게 새로웠을 것 같아요.

 

Jay Lee : 네, 2000년대 초반에는 퀴어퍼레이드를 한두번 갔었고, 2007년, 2009년, 그 때서부터는 거의 매년 갔었어요. 동갑모임 할 때니까 그 때도 애들한테 같이 가자고 했었고, 정모도 그 때 잡아서 같이 가려고 하고. 그 때만 해도 대부분의 애들은 퀴어퍼레이드를 어려워하고, 지금같지 않았어요. 그래도 몇명 모아서 같이 가기도 하고, 아마 그 때 쵸비도 우리끼리 간 게 처음 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때도 처음보다 많이 커진 규모에 신기했었어요, 행진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러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2014년 신촌이 진짜 아이코닉했죠. 그때 쵸비가, 우리 친한 친구가 어쩌다가 참여를 해서 행진의 무리에, 공연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선두에 서 있다가 대열이 막힌 거예요. 내 친구가 앞에 서서 사람들한테 욕을 먹고, 날아오는 걸 맞고, 그걸 또 실시간으로 다른 친구들이 다 알게 되고, 그리고 또 밤에 결국 그걸 뚫고 행진을 하고, 이런 경험을 친구들이 동시에 하게 된 거죠. 이게 의미가 있었던 게, 그걸 당한 사람이 내가 모르는 어떤 활동가나 운동가가 아닌 내 친구였다는 것, 그것에 대해서 많은 충격과 분노가 있었어요.

 

그게 말씀하신 것처럼 2014년 말 시청농성에서의 응원 분위기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뭔가 분노의 에너지가 커져가는 걸 눈으로 보면서, 이게 가능성이 있겠다, 희망이 있구나,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가겠다는 분위기가 있었죠. 

 

터울 : 그 때를 기점으로 2010년대의 게이커뮤니티 친구들이, 그 전에 데뷔를 안하거나 종태원을 안나온 사람이더라도, 퀴어 관련 행사에 많이 유입되게 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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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RED PARTY, 2015.12.5. (촬영 : 터울)

 

 


 

11. 2015년 RED PARTY 홍보기획

 


터울 : RED PARTY 얘기로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2015년 Private Beach가 열렸던 그 장소에서 그해 말에 RED PARTY를 열었던 것 같거든요. HIV/AIDS 감염인을 위한 펀드레이징 파티였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어요? 

 

Jay Lee : 일단 RED PARTY라는 게 있다는 게 흥미로웠죠. 2013년에 이태원에서 처음 했을 때 잠깐 들렀었던 것 같고. 2014년에 종로에서 했을 때도 일을 돕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참석은 했고, 되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HIV/AIDS는 어려운 문제지만 그 당시에는 저도 답을 못 찾고, 모르는 게 많은 주제였는데, 좀 궁금하기도 했고 이걸 어떻게 접근해야 좀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와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죠. 그 때 재성이가 제안을 했었는지, 누군가가 홍보 일을 같이 좀 도와달라고 해서 2015년에 참여했었죠.  그 때가 Private Beach 하고 난 다음이었고, 그 때도 네, 이러고 아무 생각없이 하게 됐어요. (웃음)

 

터울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으셨어요?

 

Jay Lee : 그야말로 홍보죠. Private Beach는 사실 기획부터 같이 했던, 보다 깊이 들어간 행사였는데, RED PARTY는 일단 이미 기획이 되어있는 게 있었고, 그걸 건드리는 것보단 이 행사를 알리는 것, 많이 참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롤이었어요. 그래서 그 때 레드셀카 캠페인, 지금도 페이스북에서 #레드셀카 치면 꽤 많이 나와요. 약간 그 때 유행했던 게 아이스 버킷 챌린지, 그게 엄청 유행했던 때였어요. 그런 식으로 사람들한테 뭔가를 알리는 기법이 있었고, 그걸 RED PARTY 때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아마 (SPIKE의)날두가 냈던 걸로 기억해요. 날두가 그런 얘기를 해서 그러면 이걸 촘촘히 짜가지고 해보자 해서, 제가 진행을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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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레드셀카 캠페인 (제공 : Jay Lee)

 

 

 

Jay Lee : 레드셀카 캠페인은, 셀카를 찍는데 붉은 아이템이 같이 찍히면 된다, 그렇게 올리고 3명을 지목해라, 그렇게 해서 홍보가 퍼지는 식이었는데, 

 

터울 : 바이럴이군요.

 

Jay Lee : 네, 바이럴이죠, 완전. 그리고 텍스트에는 좀 어렵더라도 RED PARTY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게, 우리는 이러이러한 파티고, 언제 한다는 걸 같이 넣었죠. 굉장히 잘 됐던 걸로 기억해요. 왜냐하면 게북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를 파는 공간이라는 건데, 레드 아이템을 걸고 셀카를 찍을 때 내가 어떻게 더 기발하게, 어떻게 더 멋있어보이게, 또는 재밌게 찍어올리느냐가 자기를 포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이따 Private Beach 얘기할 때도 나오겠지만, SNS의 성장은 사실상 자기가 셀럽이 되는 것에 힘입은 측면이 있고, 그게 그 시대의 변화의 흐름 중 하나였어요. 그런 것과 잘 맞다고 생각해서 진행한 거였죠. 

 

그래서 사실 어떤 면에서는 반감이나 반발도 있었던 게, 그냥 자기 잘 나온 사진, 다 벗고 빨간 팬티 입은 사진을 올리는 게 파티의 의미와 무슨 상관이 있냐, 진정성이 없다,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요. 사실 저의 목적은 바이럴이었고, 기존의 풀 안에서 5명이 알고 5명이 오는 파티를 하기 싫었고, 이걸 해서 100명이 알고 그중 10명이 오는 파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그 캠페인이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터울 : 그런 게 어떻게 보면 마케팅의 본질일 수도 있고, 그것도 활동의 굉장히 중요한 일부인 거죠. 인권운동단체에서도 어떤 행사를 알리고 모객하는 것이 활동의 근본적인 부분 중 하나니까요. 그리고 이런 게 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마케팅의 내용일 텐데, 이제 Private Beach로 넘어가면 마케팅이라기보다는 본업에서처럼 그야말로 수많은 일을 하시게 되는데, (웃음) 그 얘기로 이제 넘어가볼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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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RED PARTY, 2015.12.5. (촬영 : 터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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