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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둔 사이의 터울 #3 : 불가능한 게이
2016-10-25 오후 17: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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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0월 

1.

 

목욕탕 남탕, 속칭 '일반 사우나'에도 게이들은 있다. 그 일반 사우나의 수면실에도 물론 게이들은 있다. 그리고 그 수면실에서는 종종 남자와 남자끼리의 가볍고 진한 섹스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거기서 섹스하는 그들은 게이일까? 아니면 호모? 치한? 변태새끼? MSM? 성추행 가해자?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남자 몸을 만지거나 스스로 만져지기 위해 일반 사우나에 다녔던 적이 있다. 여기서 될성부른 게이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구태여 찜방에 가지 않고 일반들이 득시글대는 일반 사우나에 가느냐고. 훨 맘편히 제대로 섹스할 수 있는 찜방을 놔두고, 왜 하필 위험하기도 하고 공치기도 쉽고 여차하면 개망신당하는 수면실에 굳이 찾아들어가냐고. 맞는 말이다, 게이들에겐 찜방이라는 개명된 장소가 있다. 소정의 비용을 내고 들어가면 그곳의 사람들과 자유로이 섹스할 수 있는. 일반들에게도 이런 곳이 있다면 어떤 참신한 반향이 나올까 궁금해지는, 나름 꽤 앞서나가는 성문화라 부를 만하다. 헌데 그런 좋은 데를 놔두고 왜 하필 사우나 수면실일까?

 

먼저 그런 데가 있다는 걸 아예 모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게이란 걸 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들같이, 찜방도 그러한 것이다. 또는 그런 곳을 알았다 해도, 무섭거나 썩 내키지 않았을 수 있다. 나같은 경우, 처음엔 그런 데가 있는 줄 몰랐고, 안 다음에는 거길 가는 게 무서웠다. 왜냐하면, 거기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빼도박도 못할 게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회의도 의심도 없이 보무도 당당히 찜방으로 걸어들어가기에, 내 성욕은 그렇게까지 미덥지 못했다. 나는 내 성욕이 얼마간 곤란했고, 그것이 곧바로 '게이'라든가 다른 무서운 언어로 딱 부러지게 고정되는 것이 싫었다. 나는 어떤 행위로 인해 무언가가 되어버리고 마는 무서운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왠지 일반 사우나 수면실에 누워있다보면, 이 곳에서 혹시 있을 행위들은 그저 행위로만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것을 찾는 남자를 발견하거나 기다리기에 적합한 장소는 수면실 안에서 몇 군데 정해져있었다. 두 명이 나란히 눕기 좋은 공간에 혼자 누워 옆자리를 비워둔 데라든가, 내가 그렇게 누워있기 좋은 곳, 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으슥한 곳이 적합했다. 속옷을 구태여 입지 않고 누운 것, 옆 침상으로 손이나 발을 작위적으로 걸쳐논 것 또한 좋은 신호가 되었다. 그런 곳을 찾아 처음에는 한 칸 옆에 눕고, 몇 분 뒤에 바로 옆 자리에 아무렇지 않은 듯 눕는다. 그 다음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치 우연히 그렇게 된 것마냥, 밖으로 걸쳐진 몸에 내 몸이 서서히 닿도록 한다. 몸이 닿아도 제 몸을 거두지 않으면 그 땐 거의 된 것이다. 그렇게 만짐당할 의사가 있는 몸임을 확인하기 위한 길고 지난한 과정 끝에, 비로소 나는 누군가에게 내 몸을 조심스레 주물러질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이 행위는 어디까지나 우연히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무려 게이가 되어 제발로 찜방에 들어간 것보단 조금도 나을 것이 없으니까. 

 

그 곳에서 내 손길에 응하는 것 같던 그들, 그리고 살갗으로 습자지처럼 천천히 젖어오는 그들의 손길에 공들여 응하던 나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 곳에서 다가가는 사람과 다가가길 기다리는 사람은, 엄밀히 말해 일반도 이반도 아니었고, 나아가 아니어야 했을지 모른다. 자칫하면 치한으로 몰려 손찌검을 당할 공간에서 한껏 위험해진 살들을 용케 쓰담는 일들은, 애초에 모든 것이 불가능한 가운데 마치 요행처럼, 우연한 선물처럼 무언가 가능해지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남자가 그립지만 게이가 아니어도 되는 세계, 세상 모른 듯 잠든 코골음들 아래 오래 참아오던, 그러나 마지못해 응할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불면의 밤들과, 그 곳에 안개같이 자욱하던 밭은 침묵들은 꼭 그 때의 나와 닮아있었다. 그 때 나는 필사적으로 모호하고 싶었고, 전력을 다해 그 누구도 아니고 싶었다.

 

 

 

보릿자루 35 - 사우나범죄.jpg

 

▲ 2000년 활동한 사우나 공갈 협박 조직. (「사우나에서 생긴 일」, 『보릿자루』 35, 2002.5.1., 47쪽.)

 

 

 

 

 

2.

 

1998년 게이업소 정보지를 표방하여 창간된 『보릿자루』는, 당시 게이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여러 흉한 일들을 가감없이 실어 화제가 되었고, 안팎으로 많은 논란을 낳았다.1) 이 가운데 자주 다뤄진 것이 바로 일반 사우나에서 뭇사람을 만지다가 문제가 불거진 경우였다. 이런 사건은 당시 『보릿자루』 측으로부터 한 달에 한 건 꼴로 상담이 들어왔다.2)

 

사우나를 색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던 사람들은, 당시 『보릿자루』 지면을 통해 수면실에서 일반과 이반을 가려내는 노하우를 언급하였는데, 가령 "접근했는데 고추가 발기가 안되면" "100% 일반"이므로 빨리 포기하라는 것이었다.3) 한편 어떤 사람들은, 굳이 일반사우나에 가는 이유가 "이반들보다 일반들하고 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그 일반들도 결국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반"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뒤따랐다.4)

 

이러한 일들은 무사히 넘겨지기도 했지만, 때로 복잡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 일을 당한 일반 남성이 "성추행에 대한 모멸감"으로 폭행을 하는가 하면, 이들을 표적으로 하는 조직폭력배의 공갈 협박과 폭행, 합의금 갈취 등의 범죄도 발생했다.5) 갈취 액수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렀으며, 행동대원들 중에는 숫제 "성기 성형"을 하고 수면실에서 성기를 발기시켜 만지도록 유도한 후, 협박과 감금, 폭행을 일삼는 경우도 있었다.6) 이러한 조직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보릿자루』에는 검거에 협조해달라는 전언과 경찰서 형사의 연락처가 실렸다.7)

 

그러나 조직원들이 막상 검거가 되었더라도 기소로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남의 몸을 만지다 이런 식으로 걸려든 사람들은, 그것의 범죄 유무를 떠나 "일반들 앞에서 자신이 커밍아웃 당하는 수치심"을 힘겨워했고,8) 이들의 사건 진술이 미약해 조직원들이 풀려나기도 했다.9) 나아가 풀려난 조직원들이 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돈을 뜯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보릿자루』의 발행인은 사건을 겪은 당사자에게, 부디 자신의 성욕을 "이반 소사이어티"에서 해결할 것을 당부했다.10)

 

 

 

 

3. 

 

내가 마지막으로 일반 사우나에서 겪은 일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조차 못할 나쁜 기억은 정말로 깨끗이 잊혀지는 경우가 있으니까. 

 

평소 하던대로 여러 테크닉을 동원해 수면실의 옆몸을 만졌고, 그 옆몸은 큰 소리로 정색한 뒤 나를 바깥으로 불러내었다. 우락부락하고 어려보이는, 으레 이런 미션을 받는다는 새끼조폭쯤으로 짐작되었다. 합의금을 내놓지 않으면 이 사실을 널리 알리겠다는 말에, 나는 내 모든 능력을 다해 그에게 읍소했다. 상경해서 힘들게 살았고 집안이 어려우며 양친 얘기를 꺼내고 종국에는 눈물까지 찍어보였다. 조금 마음이 녹은 듯 그는 나중에 연락하겠으니 내 번호를 가르쳐달라 했고, 나는 정중히 틀린 번호를 가르쳐주고는 그 길로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후로 예전처럼 일반 사우나에서 뭇몸을 기다리거나 손대어 만지는 일은 없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1) 터울, 「1990년대 말 이반업소 정보지 『보릿자루』를 통해 본 게이 커뮤니티의 형성 : 기혼이반 논쟁과 섹슈얼리티 검열을 중심으로」, 『퀴어인문잡지 삐라』 3, 2016 참조.
2) 『보릿자루』 15, 2002.2.5., 51쪽.
3) 「이반패트롤 : 일반 사우나 가실 분들은」, 『보릿자루』 18, 2000.6.1., 59쪽.
4) 「당신이 모르는 다섯 개의 화장실(1)」, 『보릿자루』 22, 2000.11.2., 24쪽.
5) 「사우나에서 생긴 일」, 『보릿자루』 28, 2001.7.1., 93쪽.
6) 「당신이 모르는 다섯 개의 화장실(2)」, 『보릿자루』 23, 2000.12.11., 24쪽.
7) 「사우나범죄 피해신고 요망」, 『보릿자루』 25, 2001.2.29., 77쪽.
8) 『보릿자루』 15, 2002.2.5., 51쪽.
9) 「사우나에서 생긴 일」, 『보릿자루』 35, 2002.5.1., 47쪽.
10) 「이반패트롤 : 일반 사우나 가실 분들은」, 『보릿자루』 18, 2000.6.1.,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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