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
[인터뷰] 우리들의 종로이모 이야기 #1
: 만OO 이모 김양순님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소중한 추억의 장소, 늘 가까운 거기에 계시지만
잘 몰랐던 종로의 이모들.
그 목소리를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첫 순서로 어느 토요일 오후,
인기 뒤풀이 장소 중 하나인 만○○을 찾았습니다.
# 잘 알지.
크리스 : 이모, 안녕하세요. 우선 이렇게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저희 소개를 먼저 드릴게요. 혹시 아세요, 어떤 아이들인지? 잘 모르시죠?
이모 : 잘 알아.
크리스 : 저희는 한국, 게이(무척 조심스레 강조),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에요.
이모 : 내가 처음에 근무하던 데, ◇술집, 거기 사장님도 그거잖아.
크리스 : ◇술집이요?
이모 : 거기 찬모로 있었어.
순재 : 아, 정말요?
이모 : 이 동네엔 근 30년 있었구.
크리스 : 헐~ 대박!
순재 : 그 정도이실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이모 : 우리 아저씨(남편)가 상패, 트로피 공장 했던 자리야, 여기가. 그런 걸 하다가, 우리 아저씨가 위암 수술하고 기운 없고 그래서 못 한다고 해가지고… 그리고 우리 아들이 지금 현수막 공장 하고 있어. 여기 골목에 □□종합상사라고.
순재 : 종로 터줏대감이셨네! 아드님까지 가족이 전부 다~ 혹시 고향도 서울이세요?
이모 : 천안.
크리스 : 그럼 지금 이 가게는 아저씨랑 두 분이 같이 하시는 거예요?
이모 : 응. 가게는 또, 딸 앞으로 돼 있고. 여기 첨엔 우리 딸이 운영하다가 ◎◎은행 들어갔어.
순재 : 문 연 지 얼마나 됐죠?
이모 : 인제 8월달이면 5년.
순재 : 그럼 따님이 같이 하시던 게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니겠네요.
이모 : 은행 들어간 지가… 한 2년?
크리스 : 따님은 못 뵌 것 같은데.
이모 : 요새 안 나오니까. 우리 딸이 @@@ 애들하고 참 친했어.
크리스 : 이쪽 모임 말씀이시죠? 공무원들. 가끔 와요?
이모 : 우리 집 O째주 X요일에는 다른 손님약속 안 잡잖아. 걔네들이 완전히 여기 다 모이거든.
순재 : 우와, 이모가 우리(친구사이)한테만 이모가 아니구나. 게이들하고 되게 친숙하고 오래되셨네요. 정작 우린 여기 출입한 지 얼마 안 됐죠?
크리스 : 우리도 한 2년은 됐을 거야.
이모 : 응, 2년쯤.
순재 : 놀랐어요. 저 뿐 아니라 몰랐던 회원들이 많을 거예요. 이모가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들 가까이 계셔 왔고, 잘 아시고, 따님도 그러신 거. 근데 우린 소개를 그리 비장하게… (웃음)
이모 : 나는 저기, ◇술집, 거기 있을 때부터 친구들을 잘 알았지. 거기 서빙 하는 애들도 다 그거여서.
크리스 : 그땐 언제였어요?
이모 : 이거 하기 전에. 한 2년 있었지.
크리스 : 그럼 만○○이 5년 됐으니까 7~8년 전이네요.
순재 : 그 전에 또 다른 일도 하셨어요?
이모 : 그냥 상패 공장 쭉 같이 했어.
순재 : 그러면 요리는 그냥 주부로서만 해 오시다가 본격적으로 주방, 식당 일 시작하신 건 ◇술집이 처음이셨군요.
이모 : 처음엔 거기를 설거지로 들어갔어. 근데 원래 음식 하시던 분이 나가면서 사장님이 “이모가 한 번 해 봐.” 했던 게…
순재 : 맛있었구나. (웃음) 이거 그런 성공스토리네! 선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모 : 거긴 부장도 있었어.
크리스 : 찬모도 있구, 부장도 있구요?
이모 : 왜냐면 메뉴가 한 삼십 가지 됐잖아. 그때 금요일 토요일 매출이 ₩만원씩 나오고, 일주일에 쓸 김치를 열무고 뭐고 하루에 10단씩 담갔으니까.
순재 : 이모가 그 집 오픈의 주역이셨구만! 이제는 경쟁관계인가요?
이모 : 경쟁은 무슨, 저 그림도 그 사장님이 갖다 걸어 준 거야. (주: 벽에 멋진 그림이 있어요.) 지금도 지나가면 "이모오!#♬" 하고 불러. 애인 데리고 와서 "맛있는 거 해 줘!" 그러구. 막 둘이 뽀뽀하구~ 그니까 나는 친구들을 오래 전부터 알고, 많이 접하고… 서빙하던 애들도 오면 "이모오!#♥" 막 어쩌구 저쩌구~ @@@ 애들도 오면 막 껴안구 난리야.
# 지금도 보러 와.
크리스 : 그렇죠. 그나저나 이모, 이렇게 친구사이 애들이나 @@@ 애들이 와서 막 뽀뽀하고 껴안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우리 아이들 오면은?
이모 : 그냥 아들 같아서 좋아.
순재 : 지금이야 이미 몇 년 새 익숙해지셨을 테고, 기억을 되돌려서 처음 만났을 땐요?
크리스 : 7~8년 전 ◇술집에서요.
이모 : 처음 거기 들어갔을 때, 내가 인터넷으로 들어가 봤어. 게이 사이트… 뭐 그렇게 해서. 첨엔 좀 이상하게도 생각했지.
크리스 : 인터넷 보니까 이상했어요?
순재 : 나쁜 정보가 더 많이 나왔을 거야.
이모 : 처음이니까, 나는. 근데 그 사장님하고 친해지다 보니까, 거기서 1년 지나고 나서부턴 그게 없구 다른 세상, 다른 저것도 있구나, 그냥 그런…. 결혼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사람도 많잖아, 남자든 여자든. 어떻게 보면 더 편할 것도 같구. 결혼해서 애들 낳아 놓구 이혼하고 그러는 것보다는 더 편하게 살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크리스 : 아하, 이모가 거기서 1년 정도 일하고 나시니까 딱 생각이 바뀌신 거네요.
이모 : 그리고 막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사실. 서빙하는 애들도 다 그런 애들이니까 '이모, 이러구 저러구…'라고 얘기도 많이 해 줬지.
순재 : 그 아이들이 되게 예쁘셨나 봐요?
이모 : 응.
크리스 : 얼마나 또 싹싹하고 애교가 많았겠어. 막 안기고.
이모 : 맞어.
순재 : 이모 맘을 다 녹여 줬구나.
이모 : 그땐 애들한테 밥, 라면 이상은 잘 안 해 주는 분위기였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난 그냥 막 해 줬어, 음식을. 사장하고 싸워 가면서. 먹고 싶어하는 데 왜 못 해 주게 하냐고, 먹고 나면 그 애들이 더 잘하지 않겠냐고, 그러니까 해 주자고 막 그랬어. 그럼 사장이 그냥 해 주라고 그랬지.
순재 : 이모가 되게 사랑이 많으시네.
이모 : 애들이 쉴 때, 그냥 지나가면서도 "이모오!#♥" 하면 "야, 야, 들어와 라면 먹구 가. 너 떡 좋아하지?" 떡도 팍 넣어 줘 버리고. 그때 걔들이 지금도 와. 신촌에 있어 걔네들. 하나는 호주에 있고.
크리스 :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세요?
이모 : 응. 가끔 와. 이거 하면서도 처음에 힘들 때, 그 서빙하던 애가 와서 한 달 동안 도와줬어. "이모, 내가 금요일 토요일에 친구들 끌고 올게"라고 했었어. 걘 지금 미용일 해. 나도 한 번 가서 머리 하구 왔어.
순재 : 저희가 정작 우리 친 이모하고는 솔직한 모습으로도 사랑받고, 이렇게 터놓고 지내는 일이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근데 종로 이모들하고는 오래 어울리면서 그런 사이가 되기도 한다는 게 참 좋네요.
이모 : 근데 전에 한 번 게이 술집들 주류 많이 대주는 △△상회 언니랑 그 옆에 ◇◇집이랑 싸움이 났었거든. 그때 ◇◇집 언니가 △△상회 언니한테 게이 애들 많이 끼고 산다면서 게이 욕을 막 하는 걸 지나가는 게이 애들이 들었어. 그래서 그 이후로 지금은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하더라고.
크리스 : 이쪽 소문이 엄청 빠르잖아요. 그리고 그런 거에 조금 예민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순재 : 상처가 많고 또 이모 같은 분들도 계시는데 비교가 되겠죠. 음 그런 일도 있었구나. 사실 종로에 한 분 한 분 다 게이들을 보는 시각과 경험이 다르시고, 또 게이 손님들 중에도 유별난 진상 많잖아요.
이모 : 많지.
순재 : ◇◇집에 그런 손님들이 잘못을 많이 한 걸 수도 있고... 혹시 이모한테도 안 좋은 기억 남긴 게이 손님이 있었나요?
이모 : 에이, 장사하다 보면 그런 거 다 맘에 담아 두고 어떻게 일해. 힘들었던 건 다 잊어 버리고 누가 나쁜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하는 거지.
▲2014년 퀴어퍼레이드 뒤풀이 때 만OO 앞 낙시스의 공연 모습 (원본사진: 터울)
# 친구사이 건물도 갔었어.
이모 : 참, 거기 친구사이 사무실 밑에 침 맞는 데 있잖아, 침술원. 나 거기 갔다가 한 번 계단 올라가 봤어. 거기 사무실 안에는 안 들어가고... 계단에 막 사진들 붙어 있던데? 외국사람들 사진도 있구.
순재 : 와 보신 적 있으세요? 세상에~ 이모가 우리도 모르게 우리한테 관심이 되게 많으셨네.
크리스 : 그러시구나. 그래서 그런지 저희 친구사이 애들 오면 엄청 잘해주시잖아요. 서비스도 많이 해주시고.
이모 : 요즘은 행사 같은 거 안 해? 저번에 여기 앞에 와서 춤춰서 사람들 막 구경하고 그랬잖아.
크리스 : 와, 이모 그때 기억하시는구나! 낙시스 애들이 와서 막 춤추고 그랬었는데. 엄청 기분 좋으셨군요? (웃음) 친구사이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친구는 없으세요?
이모 : 그때 그 춤추던 애들 중에 키 크고 날씬한 애 있던데. 눈에 확 띠는 게 이뻐 보이더라고. 요새는 안 보이길래 어디 갔나 한 번 물어보려고 했지.
크리스 : 아, 그 친구는 왁킹이라는 친구인데 공부하느라 바빠서요. 안부 전해줄게요.
순재 : 맞다, 이모, 저 항상 궁금했어요. 저희에게 가끔 과일 주실 때마다 저는 매번 감동 받거든요. 혼자 사니까 과일 잘 안 사 먹는데 여기서 진짜 많이 먹었어요. 이모 혹시 주변에 누가 과일가게 하세요?
이모 : 일부러 사지. 예약하고 오면 준비해 놨다가 주는 거지. 디저트도 줘야 또 먹고 올 거 아녀.
크리스 : 매번 이렇게 준비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저희는. 저희가 또 한 두명이 오는 게 아니잖아요. 와 가지고 막 정신없이 시끄럽게 떠들고, 가끔은 막 술도 흘리거나 술병도 깨고 그러는데...
이모 : 괜찮아 나는. 아들하고 같은데 뭐... 우리 아들이 지금 서른 여섯 살이야.
크리스 : 우와, 저랑 나이 거의 비슷하네요. 그럼 이모, 5년 전부터 이 가게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얘기가 좀 궁금해서요. 처음에 남편분이랑 상패 공장일 하시다가, ◇술집에서 일 해보신 경험도 있고 해서 여기 차리신 거죠?
이모 : 원래는 식당 차릴 생각은 안 하고 ◇술집에서 일했었는데, 우리 아저씨가 위암 수술 후에 ‘아, 나 이거 접어야겠다.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거기서 찬모로 일하면서 돈 좀 받은 것도 있고 해서 내가 한번 가게 해보겠다고 하고 시작한 거지. 그랬는데 처음엔 잘 안 되더라구. 그러니까 아까 말한 지금은 미용하는 애가 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그랬지.
크리스 : 그렇구나. 지금은 어떠세요? 잘 되세요?
이모 : 잘 되지. 그래도 다른 집보다는 많이 팔지.
크리스 : 주로 어떤 손님들이 와요?
이모 : 이제 뭐 금요일이나 토요일엔 게이 손님들이 많이 오고, 평일엔 일반 금은방 손님들이 좀 오지.
순재 : 그럼 혹시 일반 손님들 중에도 이모가 많이 애착을 갖고 친해지신 손님이 있어요?
이모 : 있지. 이 근처에 OOO에 딴따라들 있잖아. 오면 막 ‘이모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얘기하는 데 재밌더라고.
순재 : 게이 손님이랑 일반 손님들 비율은 어느 정도 돼요?
이모 : 아무래도 일반 손님들이 좀 더 많지. 여기는 부동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와서 ‘십억이 어쨌네, 이십억이 어쨌네’ 하면서 막 먹다가, ‘이모, 부동산 하는 놈들은 다 도둑놈들이니까 조심해’ 이러면서 가. (다들 웃음)
순재 : 그나저나 이모, 게이 손님들 막 좋은 점만 얘기해주셨지만 사실 흉 볼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웃음) 어떠세요?
이모 : 근데 나는 노인네들보다 더 나아. 왜냐면 일반 손님들 중에 특히 노인네들은 그냥 막 와서 만지고 막 대하는데, 너네들은 그런 게 없잖아.
크리스 : 막 만진다구요?
이모 : 노인네들이 얼마나 막 심한지 몰라. 주방에 들어와 가지고 막 전화번호 적어달라고 그러고, 핸드폰 전화해서 막 만나자고 그러고. 손도 만지려고 하고 그래.
순재 : 여기가 종로라 더 심한가?
이모 : 그럼 그냥 ‘아 좀 기다려. 좋은 날 잡아가지고 만날 테니까.’ 라고 그냥 받아쳐. (다들 웃음)
순재 : 근데 이모, 같이 일하시는 그 삼촌이 남편분 맞으시죠? 근데도 그래요? 세상에... 너무 나쁘다 남편인 줄 몰라서 그러나?
이모 : 그리고 막 술 주고 술 마시라고 그러는데....
순재 : 그걸 옆에서 보고 있는 삼촌 맘이 너무 안 좋겠네요. 머리로는 알더래도 속상하시겠죠.
이모 : 근데 처음에 이거 시작할 때, 손님들한테서 절대 술 주는 거 받아 마시고 뭐 하면 문 닫기로 아들 딸 며느리하고 약속했는데.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실 때도 있고 또 단골 손님들하고 한 잔 할 수 있는 거지 뭐.
크리스 : 일반 손님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다는 얘기는 또 처음 들었네요.
이모 : 우리 아저씨도 그러더라고. 너네는 그냥 예쁘다고. 일반 손님들 중엔 내가 말은 못하지만 그냥 가고나면 어휴... 그래도 다 넘겨야지 별 수 있겠나. 아저씨를 좋아하는 손님도 있고 막 그래. (웃음)
순재 : 설마 할아버지 게이들이? 많이 오세요?
이모 : 응 많이 와.
크리스 : 일하시다가 좀 힘든 일도 있지 않으셨어요?
이모 : 힘든 건 별로 없어. 근데 내 동생들이 나한테 ‘누나, 식당 한 번 해봐’라고는 했는데 막상 하다보니까 형제들하고 만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
순재 : 아예 안 여는 날이 있어요 혹시?
이모 : 거진 매일 열지 뭐. 주말에도. 쉬고 싶은 날은 쉬는데, 주일에도 교회 갔다 와서 3시쯤 문 열면 9시쯤 문 닫는 거지. 왜냐면 주로 금은방에 등산 갔다 온 사람들이 예약을 하고 가거든. 그럼 이제 문 열어서 잠깐 하는 거지.
순재 : 그러시구나. 근데 계속 좋은 말씀만 해주시니까 사실 오히려 게이 손님들한테 속상했던 거나 하시고 싶은 얘기가 많이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얘기도 있겠지만 저희가 놓치고 있거나 실수하는 부분들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걸 알면 저희가 고칠 수도 있는 거구요.
이모 : 글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번개팀도 오고, 또 농구하는 애들도 오고 그러더라고. 와서 막 ‘이모~ 뭐 좀 해주세요.’ 이러지. 그럼 기분 좋아. 조카들이 많이 생기는 거지.
▲만OO에서의 친구사이 정모 뒤풀이 모습 (원본사진: 터울)
# 원래 결혼 안 하려고 했어.
크리스 : 이모 그리고 아까 잠깐 아드님, 따님 얘기도 하셨잖아요. 그래도 많이 응원하고 도와주기도 하나요?
이모 : 그건 아냐. 그리고 또 애들(손주들)이 어렸을 땐 오면 그냥 가라고 그랬어 아저씨가. 왜냐면 여기 손님들 중에 옛날에는 안에서 담배도 피우고 그래서 못 들어오게 했지. 손님 없으면 밥 먹고 가는데 손님 좀 들어오면 그냥 가.
순재 : 음 그런 걸 떠나서 혹시 이모가 일하시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엄청 힘든 일이고 육체노동이니까 부모님이 계속 장사하시는 게. 그래서 장사 오래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이런 얘기도 해요?
이모 : 그냥 뭐 엄마 하고 싶을 때까지만 하라고 하더라고. 처음엔 점심장사를 안 했는데, 주방 이모 오면서 점심장사 하니까 좀 힘들지. 더 일찍 문 열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애들이 점심장사 그만 하라고 하더라고. 사실 주방 이모도 예전에 같이 ◇술집에서 일했던 이모인데, 돈 벌려고 좀 일찍 출근하거든. 그러다 보니까 점심장사를 하게 되긴 했는데 적자야. 예전엔 닭계장이랑 육개장을 했었는데 3천원 내고 우르르 몰려와서 먹고 간 할아버지들도 있었어. 원래는 5천원인데 말도 못하고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 메뉴는 더 이상 안 하지. 그래도 그 중엔 돈 없으신 분들도 있었을 거야. 암튼 점심은 잘 안 돼도 대신 저녁엔 잘 되니까 좋지.
크리스 : 그럼 이모 아예 이쪽에서 상패 공장 일 하시기 전에는 어떤 거 하셨었어요? 이모가 원래 하시고 싶었던 꿈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해서요.
이모 : 나는 다른 거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 시댁에서 막내였는데도 우리 집에서 8년 동안 치매 걸린 시어머니 모셨고, 또 우리 시아주버니가 어렵게 결혼해서 낳은 자식이 있는데 시아주버니가 이혼하는 바람에 내가 그 4살짜리 애 데려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키웠지. 정신지체가 있어서 키우기가 엄청 어렵더라고. 그러다보니까 나 하고 싶은 걸 다 잊어버렸어.
크리스 : 아이고. 장사하시랴, 애기 키우시랴 힘드셨겠네요.
이모 : 그래도 우리 애들이 시어머니가 막 욕하고 냄새 풍겨도 싫은 말 한 마디 안 했어.
순재 : 그렇군요. 결혼 생활은 어떠셨어요?
이모 : 우리는 중매해서 결혼했어. 사실 나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시집도 29살에 아주 늦게 했지. 원래 결혼 안 하려고 한 게, 속옷 만드는 회사 다니면서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그런 게 재밌었어. 그리고 옛날 시골에 살 때 아버지가 술을 엄청 좋아하셨는데 술만 먹었다 하면 마을 입구에서부터 온 동네에 다 들리게 가족들 이름을 부르며 난리쳤거든. 그 모습 보면서 ‘내가 시집을 가면 성(姓)을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야. 그랬는데 내가 또 큰딸이니까 어떻게든 시집가라고 극성을 부리셔서 결국 결혼하게 됐지. 지금 아저씨는 술 한 모금도 안 해. 내가 술 먹는 사람은 싫어했거든. 근데 우리 아저씨는 술은 안 먹는데 너무 꼼꼼하니까 좀 싫어. (웃음)
순재 : 그러시구나. 직장 생활은 얼마나 하셨어요?
이모 : 난 직장 생활 오래했어. 원래는 시집 안 가려고 했으니까. 근데 지금은 이렇게 살어. 우리 여동생도 서른넷에 선 보고 두 달 만에 결혼했어. 언니는 시집 안 갔고. 살다보니 그냥 사는 거지 뭐. 그때 단추를 잘못 낀 거야.
# 기죽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어.
크리스 : 감사해요. 이렇게 삶의 이야기까지 들려주시고.
이모 : 내 일이 밀렸어. 언넝 빨리 마무리해. (웃음)
크리스 : 네 이제 거의 끝나가요 이모. 이모가 생각하시는 여기 종로 바닥의 느낌은 어떠세요?
이모 : 여기 종로 바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좀 드세고 텃세가 쎄. 타향 사람들 들어와서는 버티기 힘들 거야. 처음에 문 열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6개월도 못 넘길 거라고 했지. 근데 지금은 우리 집이 손님들도 제일 많고 그러니까. 우리집 음식 먹어보고 가기도 하고, 음식이 푸짐하는 것도 눈여겨 보더라고. 그냥 나는 나대로 사는 거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사는 거지 뭐.
순재 : 그러시구나. 혹시 손님들 중에 게이에 대해 막 욕하거나 하는 손님들은 없었어요?
이모 : 우리집에 50대로 보이는 게이 손님이 한 명 온 적 있거든. 그 사람이 앉은 테이블 옆에 또 6명 정도 게이 애들이 와서 앉았는데,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거니까 뭐 ‘이 년아, 저 년아’ 그러면서 놀더라고. 근데 그걸 옆에서 본 그 50대 손님이 그 애들한테 ‘너네들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남자애들끼리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해야지 이 년, 저 년이 뭐냐’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 손님 보고 ‘가세요. 옆 테이블인데 이 년 저 년이라고 하든말든 그걸 왜 상관 하세요. 그러시려면 가세요.’ 그랬지. 그랬더니 그 손님이 왜 손님을 가라고 햐냐고 그러기에 ‘여기도 손님이고 저기도 손님인데, 똑같은 손님이니까 여기서 말하는 소리를 듣지 마세요.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을 왜 관여하세요.’라고 했지. 후에 아저씨(남편)가 나한테 하는 말이 ‘야 너 이상하다. 왜 그 손님 보고 그러냐’고 하길래 ‘여기 와서 이 년, 저 년 하든지 뭔 새끼라고 하든지 그게 뭣이 중요하냐’고 그랬지. (웃음)
순재 : 이모, 이제 인터뷰 끝에 살짝, 가게 홍보겸 가장 자신 있으신 메뉴 좀 추천해주세요!
이모 : 뭐 다 맛있는데. 지금 계절엔 동태찜 같은 게 많이 나가지. 닭볶음탕도 많이 시키더라고.
순재 : 일하시는 입장에서 메뉴는 골고루 시키는 게 좋으세요, 아님 하나 통일해서 시키는 게 좋으세요?
이모 : 골고루 시키는 게 좋지. 전 시키면 내가 가게 앞에서 하고, 주방에서는 또 다른 메뉴 할 수 있으니까.
크리스 : 앞으로 참고하겠습니다. (웃음)
크리스 : 이모 이제 마무리할게요. 긴 인터뷰 정말 감사드리구요. 마지막으로 저희 친구사이 회원들이나 종로에 주로 오는 게이 손님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이모 : 그냥. 기죽지 말고 살라고 하고 싶어. 게이라고 해서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이렇게.
크리스 : 와, 정말 멋진 한마디네요. 자주 또 놀러올게요 이모. 감사합니다! 진짜 마지막! 저희가 항상 ‘이모, 이모’라고만 부르는데, 이모도 이름이 있으시잖아요. 이모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모 : 내 이름? 김양순이야.
* 소식지에 관한 의견이나 글에 관한 피드백, 기타 문의 사항 등은 7942newsletter@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 소식지 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해당 게시판에서 신청해주세요. ☞ 신청게시판 바로가기
*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친구사이의 활동을 후원해주세요. 후원참여 바로가기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뭉클한...
이 기획 너~~~무 죠아요!!!
인터뷰하는 크리스 순재님 음성지원도 막 되고 ㅋㅋ
앞으로 계속 기대될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