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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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식(食’) #1]
- 톡톡(Talk-Talk)! LGBT커플들의 먹고 사는 이야기
전기밥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 中
먹고 사는 데에는 장사없다는 말이 있죠. 누구나 먹고 사는 건 공평하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것조차 해내기 힘겨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럴수록 더 먹방과 쿡방이 유행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번호 소식지에서는 커버스토리 기획으로 ‘식(食)’, 즉 먹고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LGBT커플 몇 분을 모시고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토닥토닥 살림살이부터 오순도순 모여 집 꾸미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 한번 들어보실까요?
참가자
더지&인디 - 레즈비언 커플. 동거 2.5년차
디오 - 게이. 연인과 동거 5년차
이감독 - 레즈비언. 연인과 동거 1년차
터울&석 - 게이 커플. 동거 2년차
크리스 우선 이렇게 ‘LGBT커플들의 먹고 사는 이야기’ 관련 간담회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밥벌이’라는 말이 있듯이 먹고 사는 게 기본 생활인만큼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한테. 그래서 좀 더 커플들의 먹고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구요. 왜 ‘가족은 곧 식구’라는 말도 있잖아요. 여러분에게 같이 살고 있는 연인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석 저 같은 경우는 혼자 살 땐 절대 밥을 안 차려먹어요. 그냥 밥에다 간장 꺼내서 비벼먹고. 근데 옆에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걸 해먹든 아님 시켜먹더라도 아무튼 밥다운 걸 먹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집에서 반찬 사서 해 먹고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생활비는 좀 더 들긴 하지만.
터울 저는 좀 반대로 그래도 어쨌든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집에서 요리를 해 먹게 된 이유가 그게 좀 컸어요. 같이 있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돈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싸고 맛있으면서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인터넷에 여러 가지 레시피들이 있고 해서 만들어보면 생각보다 꽤 맛있더라구요. 만든 음식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꽤 올렸는데 그걸 보고 제가 ‘늘’ 건실하게 잘 해먹고 사는 걸로 착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웃음) 만 오천원 정도 하면 2인분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죠. 돈이 없더라도 가끔 사치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거. 암튼 살림을 잘 하는 이미지가 있어서 이번 기회에 좀 얘기를 하고자…
이감독 저와 애인은 우선 외식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둘 다 집밥 좋아해서 웬만하면 집에서 만들어 먹는 편이고 하루 한 끼는 같이 먹으려고 하고요. 애인이 도시락 싸서 다니는데 도시락 반찬 같은 거 만들어주고. 제가 요리하는 거 좋아해서 거의 다 하고 애인은 설거지 쪽을 담당하고 있어요. 집에서 해 먹는 게 속도 편하고 돈도 훨씬 안 들고, 조미료 같은 거 많이 안 먹게 되는 것도 좋은 것 같고. 같이 밥 먹을 땐 일부러 둘 다 좋아하는 TV프로그램 틀어놓고 보면서 수다 떨기도 하면서 가끔 술 반주도 하죠.
더지 저는 엄마랑 사는 거 아니면 애인들이랑 살았거든요. (웃음) 엄마랑 살 때야 엄마가 해주는 밥 먹긴 했는데 집밥보다는 밖에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지금 애인이랑 같이 살면서 같이 뭐 해 먹고 소꿉장난 하는 재미를 보고 싶잖아요. 근데 이제 애인은 술안주 욕망은 있는데 밥을 먹는 ‘끼니’에 대한 욕망이 없어서 주말에 모처럼 같이 일어나면 먹을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초반에 너무 그게 힘들었어요. ‘왜 먹을 생각을 안 할까?’ 그러다가 이젠 좀 특별식 느낌으로 해 먹기도 하고 그 외엔 다 배달음식으로 때우죠. 재료를 사와서 먹는 게 싸다고는 하는데 어쩌다 한 번 해먹으면 돈이 더 들더라구요.
크리스 커플마다 좀 다른 면이 있네요. 혹시 같이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는 건 아닌지요?
인디 얘기한대로 저는 살면서 밥 먹고 이런 거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해야 되나? 먹는 거에 대한 관심은 오직 술 밖에 없어요. (웃음) 예를 들면 출근할 때 아침을 안 먹고 나오면 그냥 점심도 패스하고, 저녁도 만약에 일이 너무 바쁘다 그러면 그냥 안 먹는 건데 마치고 술 한 잔은 꼭 먹어야 되는 거죠. 같이 살면서도 먹는 거에 대한 중요성을 몰랐던 거예요. 근데 어느 순간 보니까 이게 아니구나. 그래서 주말 같은 데는 이제 가끔 해 먹죠. 주말에 같이 집에 있으면 하루에 한 끼 정도? 요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같이 살면서 요리도 쪼끔 하게 됐고. 연인을 위해 해준다기보다는 가끔씩 ‘이게 이렇게 만들어지네’ 하는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 요즘 같은 경우는 TV에 집밥 만드는 프로그램 같은 거 많이 나오잖아요.
디오 초반에 애인이 로스쿨 학생이었을 때는 오히려 좀 해먹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같이 집에 있는 시간도 많았고 해서요. 근데 요즘은 애인이 거의 매일 야근이라 보통 집보다는 밖에서 밥 사 먹고 까페 같은 데에서 야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거의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는데 주말에 같이 있을 때도 거하게 뭘 해 먹기보다는 간단하게 고기를 구워먹는 정도? 저는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으니까 집 주변에 혼자 갈 수 있는 모든 식당을 매일 나눠가면서 가고 있어요. 초반에만 해도 애인이 변호사 되면 같이 해 먹을 수 있는 게 좋아지겠지 했는데. (웃음) 하고 싶어도 이젠 시간이 별로 없고 피곤해 해서 아쉽죠.
터울 저희는 너무 잘 해먹어서 살도 찌고 저녁도 두 끼 먹고 그러기도 해요. (웃음) 요리를 같이 하는데 저는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을 하고, 애인은 한 끼를 거하게 먹을 수 있는 메인 요리를 보통 해요. 다만 부엌세간이나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는 요리할 마음이 좀체 안 나는데, 다행히 7년 전에 서울에서 엄마랑 같이 살았을 때 부엌세간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 이사 갈 때도 부엌 갖춰진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또 주방일 하다 보면 느끼는 게, 시어머니랑 며느리랑 부엌에 같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싸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설거지의 정도라든지 식기가 정리되어 있는 정도 등이 다르면 되게 스트레스 받을 수 있거든요.
이감독 혼자 살 때도 저는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분리형 주방인지 따져보고 그랬어요. 요리는 하고 싶은데 또 옷에 음식 냄새 배는 건 싫으니까. 지금 사는 집 가스렌지가 3구인데 조리대가 좀 작아서 재료를 정리해서 넣지 못하는 게 아쉽죠. 잘 꾸며진 데 가서 요리하는 게 로망이라 칼 종류별로 꽂을 수 있는 칼집을 몇 년 전에 샀는데 자리가 좁아 아직도 못 쓰고 있네요. 무쇠로 된 유명한 르**제 냄비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요리해 보는 것도 꿈인데, 돈도 비싸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니까 설령 돈이 있더라도 참…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내 조리기구, 내 주방, 내가 이 자리에 뭘 놨고 그런 게 있어서요.
▲2년 반 동안 같이 살면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더지’&‘인디’ 커플.
“요리 한 번 하는 게 일처럼 되는 거죠.
부엌 구조가 된다면 좀 더 요리를 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크리스 그럼 요즘 일명 ‘쿡방’ 열풍이 여러분의 살림살이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요? 한편에서는 ‘쿡방’을 소위 ‘푸드 포르노’라고 해서 단순함에 중독되어 중요한 걸 놓치는 실태를 꼬집기도 하는데.
더지 그냥 별 볼 거 없으면 계속 틀어놓고 자주 봐요.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 같은 거 보면서 ‘저런 식재료도 있구나, 어쩜 저 사람은 저렇게 깔끔하게 요리를 잘 할까’하는 생각하며 작품 만드는 거 보듯이 보는 거죠. 볼 때마다 어떤 요리가 나왔는데 해 먹을 만하다 하면 인터넷 레시피 스크랩도 해 놓기는 해요. ‘한식대첩’ 같은 프로그램 보면 내가 저걸 평생 다 못 먹어보고 죽을 수 있다는 게 좀 슬프긴 한데 기분이 좋은 건 거기에 모든 재료가 다 있다는 거.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나도 맨날 해먹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이감독 저도 먹방이나 요리 프로 보는 거 되게 좋아하고 집에서 대부분 올리브 채널 틀어놓거든요. ‘맛있는 녀석들(먹방 프로그램)’이라고 있는데 보면서 ‘그래 내가 먹고 있다고 생각하자’라고 위로를 받는 거죠. 근데 먹방이든 쿡방이든 셰프들은 다 남자고. 여자가 요리하면 다 어머니라 그러고 남자가 요리하면 다 셰프라고 그러고. 그러면 약간 열받긴 하는데 그래도 프로그램 자체는 재밌게 봐요. 조리기구 보면 사서 요리하고 싶어서 막 번뇌에 휩싸이지만요.
터울 가끔씩 헬스하면서 계속 틀어놓고 보는 게 먹방이나 쿡방인데, 요즘 뉴스 같은 거 보면 너무 시끄럽고 속이 타잖아요. 반면에 먹는 거는 웬만하면 즐겁게 볼 수 있는 거라서. 대리만족이 확실히 있어요.
근데 사실 쿡방 이전에도 인터넷에 레시피는 워낙 많았었어요. 정말 인터넷에 감사해 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온라인에 있는 레시피인데, 그것들 그대로 따라하면 거진 맛있게 나오더라구요.
석 저는 사실 레시피 거의 안 보는데. (웃음) 레시피 보고 하려면 집에 없는 게 너무 많아요. 그런데 레시피 보고 없는 재료로 하면 또 절대 요리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냥 있는 걸로 하려다 보니까 실패도 많이 해서 혼자 간신히 한 다음 그냥 먹고 치울 때도 있구요. 가끔 영어 구글링으로 레시피 보는데 일단 외국 재료이기 때문에 거의 반절이 없어요. 보면서 이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집밥 백선생’처럼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이미지 작업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또 꾸역꾸역 먹게 될 때도 있고 아님 잘 될 때도 있고.
크리스 대단하네요. 저는 요리하려고 해도 뭐부터 해야 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감독 요리하는 게 약간 DNA(?)가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있잖아요 누구는 책상 정리를 하는데 누구한테는 그게 전혀 정리를 하지 않은 걸로 느껴지는 거. 그런 것처럼 요리가 좀 센스가 있어야 되는 거죠. 어디 가서 음식을 딱 먹고 나서는 요리하려면 뭐를 넣고 어느 정도 끓이면 딱 이 맛이 나오겠다 하는 느낌. 재료끼리 뭐가 잘 어울리고 이 재료는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해야 되는 거에 대한 감이 있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하게 되죠. 집에서 해 먹게 되면 밖에서 사 먹기 힘들어요. 그 돈이면 집에서 진짜 괜찮게 먹을 수 있는데.
터울 파스타는 진짜 집에서 해 먹는 게 압도적으로 맛있어요. 애인이 파스타를 잘 하는데, 먹다 보면 그냥 시판 소스가 있고 토마토홀이나 올리브로 직접 만든 소스가 있어요. 그게 맛이 확연히 달라서 밖에서 먹을 때 이게 어떻게 만든 소스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거죠. 인도 음식 같은 경우도 향신료 등 사서 해 먹으면 굉장히 저렴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연인 ‘가람’과 5년째 같이 살고 있는 ‘디오’.
“냉부(냉장고를 부탁해)는 저도 자주 봐요. 보고 있으면 재밌더라구요.
그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는데 보다가 배고파서 야식을 시켜먹기도 해요.“
크리스 이제 주제인 ‘식’을 포함 좀 더 확대해서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해요. 요리를 포함한 가사분담, 가사노동이나 살림살이에 대해서요. 처음 살림을 합쳤을 때 어떠셨나요?
더지 합의 같은 건 없었구요. (웃음) 인디가 제가 다니던 대학원 근처에 살아서 자연스럽게 들어앉은 거죠. (인디: 어느 날 보니 옆에 이렇게 있더라구요.) 박도 타고 학교도 다음날 가야되니까 굳이 집에 돌아가지 않는 나날이 지속되다가 집에서 옷 같은 것도 가져오게 된 거고. 이거는 거의 이제 살림을 합쳤다고 보긴 어렵고 제가 그냥 들어간 거고 동시에 살림이 는 거죠 이 좁은 집에. 그래서 인디가 되게 스트레스 많이 받아했어요. 그래도 웬만하면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 사람이라 다행이에요. 속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같이 사는 게 너무 좋아요. 같이 자는 게.
인디 저도 좋은데 집이 좀 더 컸으면 좋긴 해요. 좀 외롭던 시점에 애인이 갑자기 예고 없이 어느 날 들어온 거라 자연스레 짐이나 옷이 막 늘잖아요. 지금 좀 공간이 많이 좁아진 상황이고 둘이 한 번씩 그런 얘기하죠 이 공간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그래서 이사를 가려고 좀 알아봤는데 일단 갈 데가 마땅치가 않아요 비싸니까. 아까 얘기했던 주방 같은 것도 한 번씩은 정말 요리를 해주고 싶은데. 전날 술 마시고 눈 떴다 하면 온 방이 술폭탄으로 막 그냥 난리니까 힘든 거죠. 우선은 짐과 사람이 좀 분리됐으면 좋겠다는 거.
디오 더지네 커플이랑 저희랑 비슷해요. 가람형이 학교 근처에 방을 잡는다고 이사한다길래 도와주러 가서 이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 눌러 앉은 거죠. (웃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장소가 중요한 일도 아니고 아무래도 앤이랑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 외롭지도 않고 밥도 계속 같이 먹고 그렇게 하니까 좋더라구요. 처음엔 그냥 가서 가람형 옷도 좀 입었는데, 살다보니 옷이 부족한 것 같아 본가에서 좀 가져와서 입고. 지금은 짐을 다 옮겨와서 완전 합쳤어요. 고양이를 2마리 키우는데, 투룸이고 짐이 많지 않아서 괜찮아요.
터울 아까 얘기했듯이 부엌살림을 계속 갖고 있어서 냉장고가 큰데다가 전공 특성상 책이 너무 많아요. 이사할 때 아주머니 한 분이 이건 학생 짐이 아니라 거의 신혼부부 살림 같다고. (웃음) 그 전엔 연구실 숙소에서 전전하다가, 이 친구랑 사귀고 나서 마침 이사한다기에 그럼 같이 살자고 해서 우발적으로 살림을 합쳤죠. 이사한 곳이 재개발 지역이라 평수에 비해 굉장히 싸게 나온 곳이었어요. 집이 굉장히 크다보니까 이런저런 세간 채우는 재미도 있고 해서 좋은 추억이 많죠. 그러다 이제 재개발이 시작될 즈음 퇴거 명령을 받고 서로 학교가 가까우면서도 종태원이 가까운 지금 집으로 이사했는데, 집이 2분의 1로 좁아져서 가구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 싸매면서 고민했던 기억이 있네요.
크리스 같이 살림 차리면서 서로 부딪히거나 어려웠던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석 아버지께서 워낙 깔끔하셔서 저는 그 반동으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집안일이 있어도 발에 걸리적거릴 때까지 안 해요. 그러다 맘먹을 때 빡세게 딱 깔끔하게 만들어놓고 그래도 하루 만에 지저분해지죠. 다행히 애인도 썩 깔끔한 편은 아니에요. 설거지는 좀 익숙해져서 잘 하는 것 같은데 다른 건 전혀 신경 안 쓰거든요. 제가 이 사람이 화장실 청소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아무리 변기가 더러워도 전혀 안 하고. 살아보니까 그거를 못 견뎌하는 사람이 하게 돼 있더라구요.
이감독 사실 20살 때부터 혼자 살았고 해서 그게 제일 편하긴 해요.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에 대한 약간의 압박감이 있었죠. 같이 살다 헤어지고 하다보면 그 빈 공간이 주는 건 한 달이면 극복될 게 거의 6개월을 가는 느낌? 왜냐하면 막 다 똑같은데 그 사람만 없는 그런 슬픔이 있더라구요. 지금 애인이랑도 처음엔 서로 가까이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넘어가다 더 이상 반지하에서 못 살 것 같아 같이 집을 옮기게 됐죠. 같이 살면 물론 장단점이 있죠.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더지 저는 제가 절대적으로 더러워요. (웃음) 그래서 인디가 고생이 많아요. 진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거든요. 불만족도 잘 얘기 안 하고. 근데 말 하면 이거예요. “좀 치워라.”
인디 사실 요리는 많이 안 하니까 설거지는 한 번씩 쌓여도 가끔 하고. 저도 실은 빨래 중독이에요. 색깔별로 널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딱 그 널었을 때 그 상쾌함! 집안 청소 같은 경우에는 예전엔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 쓸고 닦고 그랬는데 이제 같이 살다보니까 어느 순간 이제 절대적으로 더러움에 약간 동조돼 가지고… 굳이 그렇게 안 해도 같이 사니까 쓸고 닦고는 거의 이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나? 사실 처음엔 저도 같이 살면서 좀 이해가 안 됐던 게 일단 옷도 벗으면 막 던져놓고 하더라구요. 전 한 번 입은 옷은 그날 빨고 놓아야 하는 스타일이라… 처음엔 약간 ‘어 뭐지 왜…’ 그랬는데 이젠 서로 그냥 적응하게 된 것 같아요. 집안일로 크게 서로 싸우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리고 절대 안 고쳐질 거란 걸 알기 때문에.
디오 저희는 둘 다 집안일을 잘 안 해요. 거의 대청소도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워낙 둘 다 바쁘고 저는 집에 있는 시간은 많은데 청소할 시간은 없어요. (웃음) 애인이 먼지 정도만 한 달에 한 번 쓰는 정도. 그 시간이면 내가 쉬고 싶지 청소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거예요. 여유가 없는 삶을 살다 보니 참. 어떻게든 그래도 시간을 내서 청소하고 싶어서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청소를 하자.”고 얘기했는데 오히려 그런 시간을 정해 놓으면 불편하다고 해서 흐지부지 됐네요. 대신 본인이 틈틈이 하니까 그거 하는 게 좋지 딱 시간 정해서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화장실 청소는 그래도 가끔 하고 제가 정리정돈은 하는 편이고. 빨래 같은 건 제가 좀 하구요. 이 집은 약간은 그냥 포기하고 있어요.
▲근 2년 동안 함께 살며 집을 꾸려나가는 ‘석’&‘터울’ 커플.
“진짜 별 생각 없었는데 그냥 같이 살게 된 것 같아요. 상황이 좀 맞았던 거죠.“
우측 문구는 두 사람의 집에 붙어있는 단호박 같은 집밥 결의문.
크리스 함께 살면서 ‘그래도 내가 누군가와 같이 살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 땐 언제인지요? 그냥 애인 있는 거랑 동거하는 사람이 있는 건 또 다르잖아요.
더지 우리는 이제 귀가할 때 꼭 체크하는 사항이 '집에 술이 있는가'예요. (웃음) 없으면 제가 사 오고 이런 거. 그리고 이 분이 집에 있으면 정리정돈을 좀 하는 편인데 올해 한 번 같이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액자를 세워놓는 짓을 하더라구요 평생 그런 거 안했는데. 그게 좀 좋아 보였어요. 나랑 같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이런 거. 장 볼 때는 기분이 항상 좋죠.
이감독 그냥 빈 집 들어가는 것보다 애인이랑 강아지 있으면 더 좋고. 저희는 같이 장을 근처 시장으로 보러 가는데 같이 장 보고 도시락 반찬 뭐 살까 이런 거 얘기하고요. 같이 사니까 친척들이 보내준 채소들 어떻게 해 먹을지 말하고. 애인이 가끔은 저한테 말 안하고 몰래 세계맥주를 막 사 와요. 맛있는 거랑 사서 술 땡긴다고 하면 “잠깐 기다려 봐” 하면서 서프라이즈로 막 사 온 맥주를 내올 때 고맙죠. 같이 강아지 얘기할 때도 그렇고. 집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강아지 사진 찍어서 보내주기도 하구요.
터울 같이 살면서 좋은 건 살림을 하게 됐다는 거예요. 혼자 있으면 하기 힘든 것도 함께 먹으니 하게 되고. 집에서 그래도 사치 부리는 느낌으로 위스키를 사먹거나 모히토를 만들어서 마시면 참 좋더라구요. 다 혼자 살면 못 하는 건데.
디오 애인이 집을 어떻게 꾸밀지 얘기하는 거 좋아해서 조만간 이사할 집도 같이 마련하는 느낌이 재밌었어요. 그리고 명절 때 각자 집에 선물 좀 챙기자고 해서 준비하는데 그런 것들이 좀 ‘같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크리스 이건 좀 다른 얘기긴 한데, 아직 가사노동 자체가 ‘전업주부의 무상노동’이라는 인식이 강하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사노동이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어요.
터울 가끔 먹는 걸 SNS에 올리면 예전엔 좀 희한한 시선이 있었어요. 남자가 요리한 음식 올리는 거에 대해 부럽다+유별나다는 느낌? 그런 느낌을 2년 전에 좀 받다가 쿡방 열풍이 불고 나서는 좀 덜한 것 같아요. 주위 남자들이 요리를 많이들 하더라구요. 진짜 남자들은 요리를 해보거나 집안일을 해보면 뭔가 시각이 달라지는 것도 같고. 그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은 좀 다른 느낌이에요. 저는 제가 사귀는 사람은 웬만하면 살림과 요리에 식견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지 L쪽에서는 ‘살림 부치’라는 말이 있어요. 약간 편견을 깨는 말인 게 부치는 남자 같고 팸은 여자 같고 하는데, 오히려 부치들이 살림도 잘 하고 깔끔하고 그렇다는 인식에서 오는 말이죠. 가사노동하면 애 키우는 게 제일 큰 일인 것 같아요 보통 일반인들에게는. 만약 둘 다 완전 바쁜 상태인데 집안일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가사노동 인정에 대한 얘기가 안 나올 수 없겠죠. 저희는 뭐 있는 대로 살고 하니까.
게이들이 자기 전업주부 한다면서 요리 잘 하는 거 보면 정말 좋아 보이거든요 사실. 사람들이 이런 존재들을 알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하고. 오히려 그냥 일반 여자친구들이 집안 얘기하면 진짜 듣기 싫거든요.
이감독 저도 한 친구가 집들이 대비 요리에 대해서 물어보길래 “그냥 시켜먹어. 뭘 요리를 니가 하고 있냐”라고 했더니 남편이 간단한 안주 만드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 가지고 절대 요리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죠. 저는 막상 애인 친구들 온다고 하면 내가 먼저 고민하고 해주려고 하면서. 내 친구는 이성애자 규범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좀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너 집안에서 쟁취해야 돼, 싸워야 돼 이런 거. (웃음)
크리스 슬슬 마무리하기 전에, 잠깐 ‘집’ 얘기도 좀 할까 해요. 요즘 전세대란이다 뭐다 말이 많은데, 집 구하거나 이것저것 꾸미는 거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요?
더지 당연히 있죠. 집이 좁긴 해도 천이라도 좀 사서 붙여놓고 그랬었어요. 수납장도 사서 뭘 하려 해도 우리는 곧 이사를 갈거니 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웃음) 사실 지금 전세금이 종잣돈인 건데 미래 구상을 하려니 쉽지 않은 거죠. 나중에는 전세든 월세든 분담할 생각은 있어요. 거기에 대한 계획도 나중에 세워야겠죠.
인디 그래도 꼭 서울, 그것도 시내에서 살고 싶은 게 워낙 집에 늦게 가고 그러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나머지는 좀 더 얘기를 해 봐야겠죠 가진 한도 내에서. 좁은 환경에서 꾸민다고 했는데, 저는 혼자 살면 수납장을 사면 그게 끝인데 그걸 좀 더 깔끔하게 보이게 하려고 천을 덮는다거나 그렇게 하더라구요. 그래서 집이 좀 깔끔해진 면이 있죠. 반면에 집에 작은 쇼파랑 좌식 의자 같은 게 있는데 그건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건데 공간이 좁으니 자꾸 갖다 버리라고 하니까 난감하더라구요.
디오 아까 얘기했듯이 애인이 집에 대한 욕망이 좀 큰 편이에요. 곧 공동주택에 들어갈 예정인데 저는 넓을 필요 없이 빛이 좀 잘 들고 창문 밖으로 경치가 보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양이 좀 놀 수 있게 고층으로 선택했어요.
석 재개발 시작하기 전까지 계속 버티다가 급하게 구하러 돌아다녔는데 사실 그 집을 떠나기 싫었어요 정도 많이 붙었고. 집을 보러 다니는데 정은 잘 안 붙고 집값은 엄청 비싼데 고민할 힘도 없고 이 사태를 빨리 끝내고 싶은 철거민의 마음이랄까. 좀 급하게 계약한 것도 있긴 한데 지금 집이 전에 살던 집보다 좀 좁고 불편하긴 해도 음… 괜찮나?
터울 예전 집보다 월세가 20만원 올랐어요. 그럼에도 선택한 건 통풍과 채광이 좋고 새로 리모델링한 투룸이거든요. 입지도 괜찮고 각 방에 에어컨 달려 있고 테라스도 있어서, 사실 무리를 한 건 있는데 그래도 이 집에서 뭔가를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집에 투자를 좀 한 편이에요.
크리스 정말 이제 마무리할게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소감 한 마디 부탁드려요.
더지 사실 좀 전망이 어두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올 때 부모님이 챙겨주는 보증금 아니면 월급으로 돈 모아서 집 산다는 게 불가능하니까. 애인이랑 같이 집을 넓히려면 나도 뭔가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그게 전혀 안 보이고.
이감독 저도 처음 집을 택했을 때 이유는 싼 거 밖에 없었거든요. 제가 알아서 해야 돼서 반지하에 살았는데, 솔직히 누가 살고 싶겠어요. 대안이 없는 거예요 서울 집값이 고향이랑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살면서 딱 다짐한 게 2년 동안 열심히 돈 모아서 꼭 햇볕 드는 데로 가야지 했죠. 빨래 진짜 좋아하는데 아무리 빨아도 마르면 막 한 빨래 느낌이 아니고. 그래서 열심히 돈 모았는데 그 집 전세값 오른 걸 못 따라가는 거예요. 환경을 유지하는 거 자체가 버거워 결국 7년을 살았죠. 희망이 안 보인다고나 할까. 너무 그게 암담하더라구요. 커플이면 돈 합쳐서 어떻게든 살 텐데 1인 가구 같은 경우는 더 힘들 것 같은 거예요. 정말 비싸요 진짜. 그렇다고 지방에 살자니 친구들도 다 여기 있고 교통도 불편할 텐데 참.
터울 대학원 다니느라 학자금 대출이 꽤 있어요. 알바하면서 꽤 갚았는데 그래도 돈을 모아서 집을 사겠다는 게 너무나 비현실적인 거죠. 그래서 오로지 목적이 오늘 하루 내가 맛있게 먹고 살자 이렇게 되더라구요 사람이. 그래서 내가 어떻게 맛있게 먹고 이런 거에 좀 더 집착하게 되는 거 같아요 애인이랑 이렇게.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재미 같은 거.
석 주거 문제나 먹고 사는 문제가 점점 더 힘들어지잖아요. 20년 정도만 일찍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난 왜 이리 힘든 시기에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디오 집 문제는 뭔가 해답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흠… 경제가 뒤집어져야 하나. (웃음) 공동주택 같은 것도 사실 그런 과정에서 좀 나온 것 같거든요. 주거안정이나 사회적 주택에 대한 관심들이 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잘 발전해서 조금 더 대안이 있겠다 싶고 그 외엔 바랄 게 없네요. 우리가 알아서 해야죠 뭐.
사진 / 터울
글,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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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19:08
기간 :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