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1월 |
---|
커밍아웃 인터뷰(2003~) - 솔직하게 그리고 발칙하게
원고 부탁을 받고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커밍아웃 인터뷰들을 살펴봤어요. 벌써 서른아홉 분이 얘기하기 힘들었을, 자신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셨더라구요. 그 중에 제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정리한 분들은 여덟 분이에요. 그러니 사실 이 원고는 전에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희일이 형(커밍아웃 인터뷰 기획자 및 초대 담당자)이나 재우 형(현 지_보이스 음악감독)이 써 주시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미약하나마 제가 진행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볼게요.
우선 인터뷰를 덥석 진행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제가 예전 인터뷰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고 그 용기를 더 업 시켜서 친구사이까지 나오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 때는 새로운 인터뷰들이 올라오길 기다리다가 업데이트가 되면 몇 번씩 정독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나중에 기갈이 좀 성숙(?)해지면 나도 한번 담당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억지를 붙이자면 전공도 살짝 관련이 있었구요. 또 전에 인터뷰를 담당하셨던 두 분은 부모님이나 주변에 두루두루 커밍아웃을 하신 상태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 때 친구 몇 명에게만 살짝 알리거나 들킨(?)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준비하거나 커밍아웃을 하는 데에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분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구요.
그래서 초반에는 좀 친하다고 생각했던 갈라 형, 광수 형을 꼬시거나 반 협박(?)해서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요, 참 친하고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도 모르는 면이 많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웃으면서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죠. 내공은 절대 쉽게 생기는 게 아니구나 싶은. 하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음 녹취 푸는 거요. 흑흑. 뭐 시간 투자해서 지면으로 옮기는 건 할 만 했지만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분들 말고 제 목소리를 계속 듣는 게 좀 고역이더라구요. 하하. 사실 힘들었던 점은 인터뷰를 지면으로 옮길 때 어느 정도의 변화(?)를 주어야하는지, 감이 안 잡히더라구요. 날 것 그대로 옮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제 어투로 만들어서 옮길 수도 없고.. 그래서 그 당시 유명하다는 인터뷰 책자들을 찾아서 읽어도 봤는데 역시나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인터뷰의 주제가 ‘커밍아웃’이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역사나 특성에 맞게 이야기의 중심을 잘 잡아야하는데 그게 좀 힘들었어요.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몇 명을 거치고 나니까 대답이 길어지면 녹취 풀고 정리할 생각이 막 떠오르며 긴장 타게 되고.. 하하
그리고 인터뷰를 하고 난 후 홈페이지에 올라가게 되면 주인공에게 먼저 연락을 하거든요, 감사하다고, 읽어보시라구요. 그 때 얼마나 심장이 쿵하는지 몰라요. 힘들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질문은 적절했는지.. 또 말씀들을 잘 정리하긴 했는지... 혹여나 이상한 리플들이 달리는 건 아닌지 며칠은 조마조마했죠. 또 섭외도 만만치는 않았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커밍아웃하지 않은 건 독자들의 눈높이(?)를 위해선 뭐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쳐도... 막상 섭외를 하려는데 제가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를 해 주십사 부탁드리기가 죄송스럽더라구요. 그래서 주변 분들을 좀 괴롭혔죠. 섭외해 달라구요.
더 해보고 싶었던 거는 레즈비언의 인터뷰였는데요, 사실 엄두도 안 나고 해서 미루었었는데 재우 형이 나중에 잘 해 주셨구요, 그룹 인터뷰도 해보고 싶었어요. 커플이라든지 룸메이트라든지 아님 커밍아웃 한 부모님과 같이 하는 인터뷰 같은 거요. 근데 이것도 저의 게으름 때문에 결국 하지 못했죠. 아 인터뷰를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자는 의견도 있었구요.
얼마 전 친구사이 20주년을 맞아 퍼레이드도 하고 뜻 깊은 시간을 보냈잖아요? 사람들도 많이 바뀌었고 바뀌어가고 있고, 점점 긴 글 읽기 싫어하고 홈페이지보단 SNS, 스마트폰 어플 등으로 소통을 하구요. 사실 친구사이 홈페이지도 한참 활성화될 때에 비해선 좀 이용률이 줄어든 측면도 있구요. 그런데 커밍아웃 인터뷰는 아직까지 조회수가 상당하거든요. 예전이야 떡하니 얼굴, 몸매, 끼 떠는 (이건 아닌가?) 사진이 올라오니 물(?)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사진만 봤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다른 데서도 사진 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잖아요? 하하. 그런데도 아직 많은 분들이 찾아 읽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초창기 기획이 ‘커밍아웃 100인 프로젝트’, 이런 비스무리한 거였어요. 그런데 벌써 39분의 이야기를 들어봤고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100명이 가능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야 뭐 고작 여덟 분의 이야기를 진행했을 뿐이지만 100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좀 더 달라져 있지 않을까요? 네? 뭐라구요? 막연한 소리 그만하고 나와서 일 좀 하라구요? 읔, 죄송.. 하하.
커밍아웃 가이드(2007) - 얘기하세요. 이제, 시작입니다.
2007년의 기억이라 좀 어렴풋하다. 우선 당시 사무국장인 가람과 대표였던 내가 중심으로 커밍아웃 관련 프로젝트를 친구사이 내 사업으로 해보자는 것으로 출발했다. 가이드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당시 상근간사였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돌멩이 형과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하기 위해 단기로 인턴을 모집해서 함께 했던 NJ, 이 가이드북의 많은 도움이 되었던 미국 Human Rights Campaign이 제작한 커밍아웃 프로젝트 자료집을 번역해준 대미지 형, 그리고 여기에 같이 직접 일을 하기는 처음이었던 재경 형이 모여 ‘커밍아웃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커밍아웃에 대해 조금씩 서로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무작정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커밍아웃에 대한 우리들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정리된 모델로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성소수자가 스스로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화하는 것부터 우리는 커밍아웃으로 잡았다. 이것이 성소수자의 핵심이고, 시작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커밍아웃은 시작했고, 점점 그 대상이 친구, 가족, 직장 그리고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 준비해야할 것, 숙지하면 좋은 내용 등에 대해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커밍아웃 가이드북이 나오기 전에 이런 작업에 대해 커뮤니티와도 공유하기 위해 친구사이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통해 ‘그것이 알고 싶어요. 당신의 커밍아웃’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오프라인 회원 및 온라인 회원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도 했다. 이야기 방식은 2가지였다. 하나는 '커밍아웃 성공사례 VS 실패사례'라는 코너로 커밍아웃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이야기하고 커밍아웃의 노하우를 공유했고, 다른 하나는 웹 공간을 빌려 스스로 커밍아웃하는 ‘컴in 셀프인터뷰 – 커밍아웃’이었다.
책의 구성은 이 가이드북을 보는 대상에 맞추어 2단계로 나누어 ‘커밍아웃을 생각하는 당신에게’와 ‘커밍아웃을 하려는 당신에게’로 구성하였다. 첫 단계에서는 커밍아웃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위험한 것은 없는지 그리고 커밍아웃은 어떠한지에 대한 내용을 수록했다. 두 번째는 친구, 형제, 자매, 부모님, 직장 그리고 인터넷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커밍아웃이 유의점 또는 필요한 점 등을 기록했고 또한 커밍아웃할 때에 필요한 성소수자 관련 지식이나 정보도 함께 담았다.
시간이 지난 뒤 이 가이드북을 다시 보면서 느꼈던 것은 커밍아웃에 대한 생각들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이었다. 가이드북은 무엇인가 정리하여 잘 설명해주고, 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어야 했는데 이 정도의 설명으로 가능한 것이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글뿐만 아니라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그림이나 삽화가 있었다면, 그리고 커밍아웃 이후의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글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당시의 예산 부족으로 책을 많이 찍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커밍아웃 가이드 개정판을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림도 있고,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들에 대해 좀 더 몸소 체감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도 있겠다. 책이 아닌 영상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아 또 일인가 싶지만, 커밍아웃에 대해 함께 치열하게 토론하고 싸우는 순간을 생각하면 짜릿한 기분도 든다. 이 짜릿한 기분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연락주세요. 언제나 환영입니다. 하하!!
(커밍아웃 가이드 : http://chingusai.net/xe/Coming_guide/116461)
영화 <종로의 기적>(2010~) - 미래의 후배들에게 무엇을 남길까?
친구사이는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개선하고 성소수자들의 사회적인 가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일찍이 커밍아웃에 주목해 왔다. 단체 차원에서 커밍아웃을 격려하고 지지하기 위해서, 커밍아웃 100인 프로젝트를 기획하였고, 2003년 천정남의 ‘다시 시작’이란 인터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http://chingusai.net/xe/index.php?mid=comingout&page=2&document_srl=127553)
친구사이 뒤풀이는 일상적인 수다도 있지만, 단체에 대한 걱정과 회의 시간에 나오지 않던 활동들에 대한 상상으로 항상 새벽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된다.
“우리 커밍아웃 100인 프로젝트를 영상물로 만들면 어때.”
사진과 글로만 성소수자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2% 부족한 목마름이 있었다. 당시 총무였던 나로서는 “18, 예산을 어떻게 마련하라고”라며 푸념했지만, 결국 예산을 탈탈 털어내어 200만원을 마련했다.
제작과 촬영에 성적소수자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가 의기투합해 주었다. 5명의 게이들이 주인공으로 섭외되었고, 촬영은 그렇게 순조로운 듯했다. 어느 날 주인공 중 한 명이 다큐멘터리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많은 이슈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라서 그 말을 들었을 당시, 사정전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편집을 위한 내부 시사회는 창작자들과 제작자로서 입장이 달라 신경전이 팽팽했다. 여러 가지의 버전의 <종로의 기적>을 보다보니 다음 장면과 주인공 대사를 외울 지경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너는 무엇을 남길래?”
“먼 미래 후배들이 현재 우리를 보고 알아야 되지 않겠니, 우리가 바로 영웅들이라고 말이야.” 주인공은 아니지만 얼굴 노출을 해야 하는 지_보이스 단원들도 설득해야 했다.
결국 <종로의 기적>은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대상(피프메세나상) 수상에 이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독립영화로 선정되었고, 인천 인권영화제 초청,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작 선정, 독일 베를린에도 초청되었다.
(http://chingusai.net/xe/index.php?mid=freeboard&search_target=title&search_keyword=%EC%A2%85%EB%A1%9C%EC%9D%98+%EA%B8%B0%EC%A0%81&document_srl=112672)
한 명이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주인공 4명과 감독, 지_보이스는 2011년 6월 극장 개봉 이후 정신없는 행보를 이어나갔다.
“지_보이스도 이제 매니저를 두어야 하는 거 아니야” 고되지만 즐거움이 담긴 푸념이다.
제주도와 강원도까지, 최근에도 극장에 걸리면서 <종로의 기적>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모든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고 일부 보수 집단들의 혐오가 과거유물로 취급되는 미래시대에, 만약 미래 성소수자들이 고전영화로서 이 영화를 본다면, 그들은 영화 속의 우리들을 과연 무엇이라 부를까? 나는 그들이 우리를 고마워했으면 좋겠고,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DVD로 만들어져서 학교 교재용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종로의 기적>은 성소수자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졌고 시장에서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성소수자들의 협력이 우리 사회와 커뮤니티에 불러 올 변화의 물결을 상상해보면 가끔 짜릿짜릿해진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젊은 청춘으로 살아있는 우리의 영원한 친구 스파게티나 故 최영수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네가 지상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때 더 많이 못해 준 말이 있어.”
“돼지 같은 년아 사랑한다.”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연재 순서
#01 성소수자 인권운동, 문을 열다 - 1994~1997 친구사이 발족 및 초기 활동
#02 당연한 권리를 위한 운동 - 2007~ 차별금지법 투쟁, 아이다호 캠페인
#03 자긍심의 절정을 보여주다 - 2000~ 퀴어문화축제
#05 이들이 있었기에 빛난 20년 - 역대 대표 인터뷰 및 설문조사
#06 챠밍한 게이 커뮤니티로 거듭나기 - 2003~ 챠밍스쿨, 게이컬쳐스쿨
#07 문화소모임, 느낌 아니까 - 친구사이 소모임 변천사
(커밍아웃 인터뷰 글) 친구사이 회원 / 라이카
(커밍아웃 가이드북 글) 친구사이 사무국장 / 이종걸
(영화 <종로의 기적> 글) T/F팀 팀장 / 재경
* 소식지에 관한 의견이나 글에 관한 피드백, 기타 문의 사항 등은
7942newsletter@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