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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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추천 도서
윤태근, 『성미산 마을 사람들—우리가 꿈꾸는 마을, 내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을』, 북 노마드, 2011.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 활동에서 ‘퀴어 커뮤니티(이반 공동체)’에 대한 얘기를 듣기 쉽다. 이런 공동체의 예를 들면 가상 공간에는 ‘이반 시티’와 ‘티지넷’ 등 대형 포털뿐 아니라 다양한 카페와 블로그가 있고, 실제 공간에는 서울의 경우 종로, 이태원, 신촌·홍대 일대가 유명하다. 특히 주말과 휴일 밤에 낙원 상가 일대의 거리와 포장 마차를 메우며 ‘어머, 얘~!’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게이들을 보면 한국에 동성애자가 이리 많았나 싶다. 다들 평소에는 가정, 학교, 직장에서 ‘일반 코스프레(이성애자 연기)’ 하다 비로소 가면을 내려놓고 자신을 맘껏 드러내고 긍정하며 동류의 사람들을 사귀고 놀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 점에서 이런 ‘이반 동네’는 쉼터 노릇을 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 공동체는 주로 술집, 클럽 등 상업적 유흥의 공간이기 때문에 주중과 낮에는 ‘일반화(이성애자화)’되거나 공동화된다는 특징이 있다. 게이바가 50여 곳 있는 것으로 알려진 종로도 엄밀히는 게이들이 일시적 또는 잠재적으로 ‘점령’할 뿐, 항시적으로 ‘거주’하거나 ‘소유’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가령 잘 알려진 미국 샌프란시스코처럼 성소수자가 실제로 현지에 집단으로 살며 노동, 여가, 교류 등 일상을 꾸려가는 생활 밀착형 지역 공동체라고는 하기 어렵다.
물론 예외는 있다. 작년 12월부터 마포구청의 성소수자 현수막 게시 거부로 언론에도 보도됐을 뿐 아니라 이미 그 전부터 유권자로서 활동을 펼친 ‘마포 레인보우 주민 연대(마레연)’이 두드러진다. 비록 같은 집이나 동네에 살진 않더라도 비교적 근거리에 거주하며 왕래하고 정기적으로 모여 식사하는 등 ‘이웃 사촌’으로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2011년 3월에 시작해 간담회도 열고 ‘퀴어 문화 축제’에도 선보인 친구 사이의 ‘퀴어 타운’ 기획은 비록 실현 이전이지만 일종의 청사진이기에 좋은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친구 사이 비공식 친목 모임인 ‘북아현동 부녀회’ 등 성소수자들의 소소한 지역 공동체는 이미 곳곳에 있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이런 여러 실험은 매우 뜻 깊다. 특히 한국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1세대가 중년으로 들어서고, 비혼이 이성애자들 사이에도 낯설지 않은 선택이 됐으며, 사회 다변화로 ‘이성 부모 + 미혼 자녀’라는 핵 가족을 더 이상 ‘정상’ 가족으로 보기 어렵게 된 지금,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란 청장년층에는 무시 못할 질문이 된 듯하다. 평생 동반자의 있고 없음을 떠나 내가 어떤 사람(들)과 어디서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상을 좌우하며, 내 욕망과 인생 목표를 직접 반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나만의 ‘맞춤형 가족’을 만들고 제도적으로 보호 받을 권리인 가족 구성권, 그리고 돈이 넉넉지 않아도 시민으로서 원하는 주택과 지역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권과도 연결된다.
그 점에서 윤태근의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주로 자녀 있는 이성애자들의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비록 이 공동체는 멀쩡한 초중고교를 굳이 산을 깎아가며 여기로 이전해오겠다는 홍익 재단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지고 말았지만, 구성원이기도 한 저자는 성미산과 그 주변의 ‘마을’을 가꾸고 지키기 위한 노력과 성과를 가슴 뭉클하게 보여준다.
애초 공동 육아를 위해 모인 이 ‘마을’ 사람들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며 자연스레 어떻게 더 좋은 부모, 이웃, 인간이 될지 고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린이집과 그 연장인 대안 학교뿐 아니라 생산자 직접 연결 친환경 식료품 매장인 생협(생활 협동 조합), 역시 친환경인 식당과 반찬 가게, 아담한 각종 공방, 상설 마을 극장, 축제, 운동회 등 다채로운 노동, 교육, 문화, 생활 공간과 행사를 만들어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구별과 경쟁보다 공생과 공유를 생각하며, 당장의 편익보다 사회적·환경적 선(善)을 고려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건물 하나에 마음 맞는 가족 여럿이 사는 공동 주거도 일부 실현했다. 가족 이기주의가 만연한 지금의 한국에선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성미산 공동체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반말을 할 뿐더러 어른 모두 별명으로 불린다는 점이다. 아직도 ‘나이가 벼슬’인 한국에서 파격적인 이 실험은 어려도 일방적 훈육과 질책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돼야 하는 독립적 인격체라는 생각을 반영한다. 실제로 이곳 생활은 아이들, 어른과 아이, 그리고 어른들 사이의 부단한 대화로 이뤄진다. 이 공동체의 또 다른 의의는 도시에서 ‘마을 공동체’를 이뤘다는 점이다. 익명성과 고립이 특징인 도회지에서 이웃을 속속들이 알 뿐 아니라 아이까지 편히 맡길 만큼 가깝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마을’ 아이라면 자기 자식이 아니어도 누구든 안아주고 다정하게 얘기 나누는 대목은 참된 어른과 이웃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바로 이런 공동체의 붕괴와 서로에 대한 책임 의식의 부재로 인한 파편화와 개인적·집단적 이기주의 탓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심장하다.
물론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 공동체에도 고민은 있다. 점점 알려지다 보니 거주 희망자는 늘어나지만, 재개발 대상이 아닌 이 지역은 이미 공간이 차버린데다 입주 경쟁도 있어 비용이 생각보다 드는 탓에 누구나 들어올 순 없다. 또한 소위 ‘주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난 이 ‘마을’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에 적응하려면 가족 모두 적극 참여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진 않다. 한편 이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기존 지역 주민은 ‘유별난 사람들’이라며 곱지만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성미산 공동체는 마치 손수 수고롭게 노동해야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채소와도 같다. 결실은 더 없이 달고 맛나지만, 그만큼 품이 든다는 말이다.
성미산 공동체의 예가 성소수자 공동체에 1:1로 적용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워낙 개발 지상주의와 부동산 투기가 판치다 보니 한국에서 집은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기’ 위한 것이 돼버렸으며, ‘건축’은 간 데 없고 ‘건설’만 남았다. 즉 생활의 터전이어야 할 땅과 건물이 사람을 타고 누르며 옥죄는 꼴이 된 것이다. 그래서 특히 싱글일 경우 ‘독신 가구’로서 ‘기혼 가구’에 비해 여러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동반자가 있더라도 법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에게 단독 또는 공동의 주택 구매란 그림의 떡이기 쉽다. 또한 비혼자의 출산, 입양, 양육이 법적·경제적으로 어려운 한국에서 공동 육아는 당장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수 년전 개봉한 일본 영화 <메종 드 히미코>에 나온 게이 양로원과 같은 공동 주거와 돌봄은 가능하고 머지 않아 필요해 보인다. 중요한 건 형태를 베끼는 게 아니라 정신을 받아들이고 응용하는 것일 테니까.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아니, 그래서 더더욱—우리는 개인이자 집단으로서 감히 행복을 꿈꿔야 한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뿐 아니라 소수자·약자를 위한 모든 운동은 결국 누구나 있는 그대로 존중 받으며 자기 꿈을 펼치고 함께 돕고 나누며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일 테니까. 남들과 다르더라도 자기만의 지도로 삶을 개척하며 다양한 사람과 평화롭고 따뜻하게 공존하기를 바라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한다. 역시 이 공동체의 일원이자 부부인 강필석 감독, 홍형숙 PD가 만든 다큐 <춤추는 숲>이 최근 개봉했는데, 함께 보면 더 감동적이고 얻는 바가 많을 것이다.
데미지 / 친구사이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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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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