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이번 주 이화여대 대학원 신문에 송고한 글입니다. 허락받고 여기에 올립니다.
이송희일(독립영화 감독)
어떤 불안
99년 한국동성애자연합 발족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필자는 당시 친구사이(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 단체)의 회장이었다. 필자의 발제문 제목부터가 발칙했고, 당시 꽤 많은 소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한국에서 동성애자 운동이 불가능한 다섯 가지 이유'라는 내용이었으니, 인권 운동을 잘해보자고 모인 행사에서 이에 대한 마뜩찮은 눈총과 손가락질은 당연했을 것이다.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점점 더 분화되고 발전하고 있는데 인권운동한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70년대식 주문, 즉 동성애자가 해방되기 위해선 자본주의 먼저 척결되어야 한다는 먼지 풀풀이는 강령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개인적인 비판이 그 안에 담겨 있기도 했지만 점점 증대하고 있는 사이버 이반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그 속에 적잖은 무게로 탑재되어 있었다.
단말기에 접속만 하면 말초신경 반응보다 더 빠른 속도로 쉽게 성적 쾌락과 만남의 기회를 얻어낼 수 있는 사이버 이반 공간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인권에 관련한 일을 함께 공모하고 섹슈얼리티에 관한 대안적인 담론을 창출할 대면對面 커뮤니티는 그만큼 축소될 거라는 의구심이 팽배해 있었다. 요컨대 사이버 공간에서 점점 그 외연만 확대되고 있는 이반 리비도는 현실 원칙과 괴뢰된, 추상화된 'id'의 난립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당시의 생각이 외려 온라인의 세계를 오프라인의 그림자나 부실한 상부구조쯤으로 도착시킨, 대단히 권력화된 질의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다.
정체성 학교
98년부터 시작된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얻은 교훈과 경험은 놀라운 거였다. 98년 애면글면 오프라인 상에서 만난 청소년들과 학교를 꾸린 것과 달리, 99년 학교가 열렸을 때 학교에 참여한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온라인 상의 커뮤니티 회원들이었다. 자기네들끼리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커뮤니티의 양적-질적 성장은 사이버 공간의 이반 문화 내에 이미 자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음을 예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인터넷이 준 예상치 못한 선물로 인해 금기와 오욕으로 점철된 3, 40년의 동성애자 역사를 가볍게 압축하고 있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각은 언어로부터 비롯된다. 호모섹슈얼리티에 관한 언어가 주어져 있지 않거나 습득할 기회가 없는 문화 속에서 섹슈얼리티에 관한 성찰의 가능성은 금기의 영역으로 추방되기 마련이다. 동성애자들에게 정체성의 언어들은, 마치 '우리는 동성애자지, 동성연애자가 아니에요!'라는 90년대 어법에서 풍겨져 나오는 심각한 자기 방어 기제의 견고함 만큼이나 중요한 접속 키워드인 것이다.
인터넷이 발전하기 전까지 한국의 다양한 퀴어들은 언론이 유포하고 가부장제 지식인들이 한몫 거든, 트랜스섹슈얼과 트랜스젠더만을 지칭하는 'gay'라는 게토화된 담론 속에서 살아왔고, 90년대 중초반에 등장한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동성애'라는 표현을 쟁취하기 위해 무던히도 자폐적인 운동을 벌여왔던 게 사실이다. 90년대 이전의 동성애자들은 파고다 극장이나 남산 공원을 전전긍긍 돌아다니며 '보갈('갈보'를 뒤집은 말)'이라는 피해망상적인 은어를 습득하는데도 몇 달씩 걸려야 했으며, 게이 문화보다 훨씬 더 상징언어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레즈비언들은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시인 사포의 전설이나 70년대 한국의 여운회(여성운전사회)에 관한 전설 한귀퉁이를 자기 정체성을 진단하는 데 소중한 담보물로 제시하곤 했다. 이것이 60년대 이후 한국 근대사 그늘에서 자생하기 시작해서 90년대까지 흘러온 한국 퀴어들의 실존적 풍경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출현한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96, 97년쯤부터 시작된 사이버 이반 문화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왔고, 리좀처럼 촘촘히 엮어져 얼기설기 늘어서 있는 수많은 '검색어'의 링크를 타고 흘러흘러 동성애 언어에 쉽사리 접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동성애자 인권 운동 이후 조금씩 공개화된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언어들을 접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훨씬 더 빠르게 깨닫기 시작했으며, 눈물과 통곡으로 범벅되어야 비로소 구걸이 인정되었던 '커밍아웃'의 이미지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그들은 커밍아웃을 쉽게 한다. 비록 커밍아웃 이후에 벌어질 사태들, 가출과 왕따의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비교적 쉽게 커밍아웃을 하고 청보법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이 신촌 공원 등지에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에게 보갈, 꽃띠, 바지씨 등에 관한 기존 세대의 은어들은 낡은 주문의 웅얼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은어에 스며들어 있는 통시성은, 그 은어를 체득하기 위해 기존 세대가 감내해야 했던 오프라인 상의 두려움과 발품 따위는 게시판 하나를 클릭함으로써 쉽게 떨쳐내고 있는 것이다.
외려 회원 수가 수 만명이나 이르는 청소년 사이트들에서의 싸움은 소위 '유행 분'들과 벌어지고 있다. '유행 분'은 유행에 휩쓸려 동성애적 코드로 가장하는 이성애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팬픽이 그렇고, 동성애 이미지를 선호하는 '헷갈리는 십대'가 그렇다. 십대 퀴어들은 이런 사이트들에서 그들을 견제하고 배척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또다른 젠더 전쟁을 감행하고 있다. 또 이 격전지에서 살아남은 10대 퀴어들은 종로 피막골 근처의 외진 술집들을 통해, 주민등록증과 유행 분과 성인 동성애자들, 혹은 인권 운동 담론으로부터 분리된 그들만의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과 함께 등장한 이 무서운 10대 퀴어들은 인터넷이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미친 가장 괄목할만한 파장의 상징일 것이다. 아울러 납작하게 압축된 한국의 근대화 과정만큼이나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 동성애자 역사의 궤적에 관한 지도 작성이 난맥에 처해 있음을 적시해주는 예이기도 할 것이다.
단말기 앞의 어떤 가능성
커뮤니티를 '만남의 공간'으로 한정해서 정의한다면, 이반 커뮤니티는 인터넷 등장 이후 단말기 앞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채팅을 하고, 이메일과 사진을 주고 받고, 집단 벙개나 개인적인 벙개를 해서 파트너를 구하는 이 일련의 행동들은 분명 커뮤니티로서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토요일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이태원과 종로의 게이 커뮤니티, 신촌 레즈비언 커뮤니티보다 외려 단말기 앞의 커뮤니티가 실제적으로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말기 앞의 커뮤니티는 인터넷이 주는 신속성(신속하고 빠른 만남)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고 있기도 하지만, 익명성이 그 성장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이미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잘 발달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단말기 앞의 익명성은 몇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익명을 전제로 하는 섹스 때문에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이 해체되고 있으며 때로는 이것이 barebacking(콘돔 없이 하는 성행위)처럼 에이즈 시대의 경직된 도덕성을 의도적으로 침해하려는 실존의 권리에까지 확장되고 있는 현상이 그 한 축이라면, 익명을 통해 파트너를 구하거나 섹스가 용이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굳이 스스로 정체시키려하거나 밖으로 표현하려는 행동들을 점차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현상이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외려 기백 년의 세월을 통과한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게이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역사가 부재한 한국의 상황에서 단말기 앞의 익명성은 기존 체제의 금기에 의해 강요된 익명성이 아니라 ‘선택되는’ 익명성으로 변화되었다. 이는 강제적 이성애주의에 굴복해 이성과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동성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 는 어정쩡한 상황에 안주할 기회와 변명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가 99년에 발표한 발제문에 담겨 있던, 막 등장하기 시작한 사이버 이반 문화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이다. 이미 10대 퀴어 문화를 지적하면서 언급했다시피, 한국에서의 이반 사이트들은 교육 프로그램, 즉 섹슈얼리티에 관한 다양한 언어를 체득하는 학교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게시판을 통해 막 걸음마 단계인 동성 커플의 동거 모델에 대해 배우고, 캠프 미학의 정치성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만 해도 다분히 정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견실하게 구성된 후에 온라인 문화가 등장한 서구 사회와 달리, 공개적인 동성애자 오프라인 커뮤니티과 온라인 커뮤니티가 거의 동시에 출발한 한국적 상황, 그 기묘한 퀴어 모더니티에 기인한 것이다. 현재 로드맵은 없으며, 한국의 사이버 이반 문화는 여전히 불투명한 윤곽을 그리며 진화 중이며, 꼭히 서구적 모델을 따라야 된다는 만연된 당위성을 충분히 희석시키는 요인을 제공한다. 그것은 어떤 가능성이다.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