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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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호][활동스케치]
「구멍을 기록하기 — 퀴어 커뮤니티의 신체와 정동 아카이브」 아티스트 토크 후기
: 예술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삶

2026년 5월 28일 목요일 오후 6시, 아트선재센터에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연계 토크 프로그램 「구멍을 기록하기 — 퀴어 커뮤니티의 신체와 정동 아카이브」가 열렸다. 이날 토크에는 역사학자이자 친구사이 소식지팀원인 김대현, 작가이자 친구사이 상근활동가인 박민영이 발표자로 참여했고, 문학평론가 오혜진이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제목의 ‘구멍’은 역사의 빈틈과 기록의 빈틈을 가리키는 말이자, 게이 커뮤니티의 성적 활력과 신체성을 떠올리게 하는 중의적인 은유이기도 하다. 이번 자리는 성소수자인권운동단체가 지속적으로 생산해 온 소식지를 조형적 기록물이자 퀴어 정동을 축적하는 아카이브로 바라보며, 구술 인터뷰와 글,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질료가 어떻게 퀴어 공동체의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몸을 이루는 토대가 되는지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또한 ‘퀴어’, ‘인권운동’, ‘공동체’, ‘아카이브’라는 키워드를 통해 소수자의 신체와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의 정치적·미학적 의미를 함께 질문했다. 글의 시작에 앞서 프로그램의 제목을 정하고, 이야기가 풍성해질 수 있도록 질문을 구성해주신 오혜진 문학평론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번 소식지에서는 당시 토크의 내용을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서술한다. 박민영의 경우,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에 참여하며 갖게 된 전시에 대한 정동과 생각을 지난 소식지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밝힌 바 있어, Spectro Citizen 네모 안에서만 존재하던 신체들: 장영해님, 박민영님 인터뷰 (링크)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토크 현장에서 소개했던 발표 자료의 일부 페이지와 스크립트를 공유하여, 친구사이 소식지 아카이브가 전시장 안에서 어떤 경로로 설명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김대현의 발표는 현장 사진과 함께, 발표 전체를 관통하던 문제의식과 의무감을 짧은 글로 축약해 소개한다. 퀴어와 관련된 무언가가 거나하게 재현되는 장면을 반가워하면서도, 그 재현이 어떤 위계와 편향을 품는지 되짚어야 한다는 감각, 그리고 운동의 현장과 자료를 다루는 사람이 예술과 연구의 자리 앞에서 가져야 할 책임에 관한 생각이 그 글 안에 담겨 있다. 아래 두 글은 이날 토크를 그대로 옮긴 기록이라기보다, 토크가 남긴 질문을 소식지의 형식 안에서 다시 공유하기 위해 정리된 글이다.

Ⅰ. 박민영
안녕하세요. 오늘 토크에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오혜진 선생님, 김대현 선생님, 그리고 박민영이라니… 명품 좋아하는 제 친구가 “찐 두 개 사이에 짭 하나를 들면 티가 덜 난다”고 했는데요. 오늘 제 처지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발표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이번 전시 3층에서, 여기 계신 터울님과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친구사이 소식지 아카이브 섹션을 구성한 박민영 작가입니다. 현재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고, 그래서 3층에 놓인 자료들과 조금 더 긴밀하게 붙어 있는 위치에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친구사이가 무엇인지, 초동회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단체가 지금도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아주 짧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초동회는 1993년에 만들어진, 한인으로 구성된 최초의 동성애자인권단체였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에서 이름을 가져왔고, 레즈비언과 게이가 함께 출발했던 단체였습니다. 이후 활동의 방향과 조건이 달라지면서 친구사이와 끼리끼리, 지금의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이어지는 단체로 분리 발족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해체라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운동을 이어가기 위한 분화였다는 점입니다.
친구사이는 1994년에 시작되었고, 초동회 소식지를 이어받으면서 친구사이 소식지도 2호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오늘 제가 다룰 소식지 아카이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단체의 소식지가 단순한 홍보물이나 활동 보고서가 아니라, 게이 커뮤니티가 자신을 설명하고, 서로를 부르고, 싸우고 설득하며 남겨온 언어의 축적이라는 점에서요. 친구사이는 지금도 종로3가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종로3가는 오랫동안 게이 커뮤니티의 중요한 장소였고, 친구사이는 그곳에서 문화의 다양성과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일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24년은 친구사이 30주년이었고, 저는 그 무렵 상근활동가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활동가가 된 뒤 소식지를 가지고 전시를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소식지 30주년을 다루는 전시 프로젝트는 그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2024년 겨울부터 2025년까지는 내란범 윤석열 탄핵과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는 광장이 열렸습니다. 그 안에서 친구사이 역시 무지개 깃발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당시 폭주하는 남성성의 정치가 많이 이야기되었는데, 저희는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게이/퀴어 남성들이 어떤 연대의 몸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은 이후 성소수자 정치인의 가능성을 견인하기 위한 프로젝트 〈런아웃〉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출마해 나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run/out, 더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커뮤니티는 정치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금토일은 친구사이〉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이라는 해방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문화행사와 만남, 말하기의 자리를 친구사이는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이 전시에 참여한 것도 넓게 보면 같은 맥락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사이 안에는 성소수자 자살예방센터 〈마음연결〉도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가 가득한 사회에서, 또 때로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받은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함께 살아갈 힘을 만드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사이를 마른 식물이나 깨진 타일처럼 남아 있는 죽은 역사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친구사이는 여전히 광장에 나가고, 커뮤니티의 시간을 조직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연결하는 생기 있는 단체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단체가 30년 동안 남겨온 말과 이미지와 정동이 친구사이 소식지 안에 쌓여 있습니다.

이제 제 설명을 조금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는 미술작가 박민영입니다. 다시 한 번 안녕하세요. 경력이 길지는 않기 때문에, 작업의 초점이 어떻게 이동해왔는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부터 “성소수자 만세”를 외치던 사람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아카이브에 대한 문제의식이 뚜렷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는 작업들끼리 서로의 빈자리, 이를테면 의미적인 빈자리, 물리적인 빈자리, 시청각적인 빈자리를 채워주거나 반응하는 오케스트라 같은 형식을 상상하며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그때 관심을 두었던 것은 생활동반자법, 생활공동체, 시민결합처럼 혼인이나 혈육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돌보는 관계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말들을 영상과 도서, 조각의 형태로 옮기면서 복잡한 이야기가 한 공간 안에 모여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개인전 《우리의 미래가 협소하지 않기를 바라며》에서는 좌측 천장 스크린에 게이 친구들의 무리가, 우측 천장 스크린에 저의 원가족인 엄마, 아빠, 형이 등장했습니다. 아래쪽 스크리닝 조각에서는 이 두 관계를 부러워하는 병간호 중인 4인 가족이 등장했고요.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욕망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고, 미래의 형태를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게이 친구들과 함께 겪은 시간이 조금 더 응축적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팬데믹 시기에 게이클럽이 감염병 확산의 주범처럼 지목되며 벌어진 고립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버텼는지에 관한 인터뷰와 글이 함께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인터뷰이와의 관계를 이전처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터뷰이 중 한 분이 산재사고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저는 누군가의 말을 작업 안으로 옮긴다는 일이 어떤 무게를 가져야 하는지 훨씬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유족과의 거리와 협의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염치를 다하기 위해 제 일상의 시간을 어떻게 유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지 같은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고민이라기보다, 실제로 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경험들이 이후 친구사이 소식지 자료와 그 안에 살아 있는 관계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관한 가장 구체적인 행동강령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몇 명의 친구들 이야기만 따라가도 원가족에서 게이 친구들로 중심적인 공동체가 이동하는 과정이 이렇게 자세히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오래되고, 더 근본감 있는 공동체의 기록을 만나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구사이 소식지 30년을 다루는 전시 《흘리는 연습》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은 유독 여러 기업, 단체, 공간에서 10주년, 20주년, 30주년 같은 기념 행사가 많았던 해로 기억합니다. 영세한 인권단체 역시 축하받아 마땅하지만, 사실 그럴 만한 자원과 시간은 늘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퀴어가 늘 비규범적이고, 불응하고, 형식을 거부하는 존재처럼 이야기될 때가 많지만, 저는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라면 오히려 아주 우아한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의 30년을 가져와서는 “요리조리 간단하게 해봤어”라고 말하는 건 조금 무례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는 저도 모르게 '싸가지 없다'는 표현을 썼지만, 스크립트는 '무례하다'고 적어두긴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저 혼자 끌고 가기보다 김대현, 이경민, 남선미, 심기용, 이종걸 님과 함께 협력 기획의 방식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의미적으로는 영웅서사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역사가 있었습니다”라는 식으로 단체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방식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공식화되지 못한 정보들이 공식적인 서사에 맞춰 자기 자신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일도 꽤 불쾌한 경험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혁처럼 필요한 정리는 하되, 망각과 선별, 복제와 바깥의 요인까지 함께 끌어안는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드디어 작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아카이브 테이블, 32편의 글〉입니다. 지금 보시는 이미지는 지난 《흘리는 연습》 전시 때의 모습이라, 이번 전시와 형태가 조금 다릅니다. 당시 소식지 자료를 선별할 때 전체 글이 2,240건 정도 있었습니다. 우선 저는 이것을 다 읽는 데 실패했습니다. 절반도 못 읽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 세상에 거의 유일할 것 같은데요, 김대현 선생님이 그중 145편의 글을 추려주셨고, 이후 제가 그 글들을 읽고, 동료 활동가인 심기용 님도 함께 읽으면서 최종적으로 32편의 글로 한 번 더 줄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32편은 친구사이의 정수를 뽑은 목록이라기보다, 하나의 경로에 가깝습니다. 올라가서 제목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그다지 영웅적이지 않은 서사들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종로3가에 꽃을 심는 게이들의 이야기, 애널 섹스처럼 은밀하고 비규범적인 행위로 여겨지지만 반성폭력 운동의 최소값이 되는 면밀한 합의와 친밀성의 구축을 다루는 글, 또 윤석열 탄핵 광장에 대한 전시 당시의 시의성 있는 글도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업은 “이것이 성소수자 역사의 딴딴한 지반이다, 이것이 근본이다”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서 뻗어나간 귀한 역사들이 있으니, 그 흐릿한 연결감을 잠시 가져가보시라는 제안에 가까웠습니다.

한편 이 글들을 분류하는 여섯 가지 체계도 있었습니다. 감정의 아카이브, 일상을 유지하는 힘, 사랑을 둘러싼 정념, 세상에 선보이기, 얼떨결에 어울리기, 미래에 대한 열병. 저는 이 여섯 가지 분류를 김대현 선생님이 현장에서 촬영해온 사진들과 함께 길잡이 별처럼 배치하는 〈별 별 별 별 별 별〉 작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학자의 사진이 제가 찍은 것보다 좋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있지만, 아키비스트가 자료를 읽고 분류하고 매만진 노고가 전시장 안에서 시각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습니다.

다음은 〈글레이즈드 사각 언니〉입니다. 이 작업은 소식지의 글 한 편을 가져오는 대신, 단체에 손때를 묻혀주신 사람들의 인터뷰를 다시 발화하는 비디오 설치 작업이었습니다.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들은 주로 웹 검색을 통해 성소수자 관련 정보를 처음 접하게 되곤 합니다. 친구사이 소식지의 인터뷰와 커밍아웃 인터뷰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시작점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역사를 알려주고 삶의 지혜를 먼저 건네준 언니들은 종이 소식지의 네모난 형태, 웹 소식지의 네모난 형태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을 실제로 만나 “제가 당신의 말을 통해 처음 커뮤니티를 배웠고, 어떤 말에서 용기를 얻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20년도 더 지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지금의 목소리로 다시 말해보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흘리는 연습》 당시의 〈글레이즈드 사각 언니〉는 친구사이 회원들이 과거 인터뷰를 낭독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전시 3층에 배치된 버전2 신작은 당시의 인터뷰이 본인을 찾아가 촬영한 작업입니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했던 때에 MTF 트랜스젠더 활동가 박에디 님, 이태원 게이클럽 사장이었던 MTF 트랜스젠더 차세빈 님,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나기 님처럼 친구사이와 함께하거나 연대했던 분들도 이 작업 안에서 다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상 작업을 업고 있는 얇고 거대한 조각이 있습니다. 〈어둑서니〉 연작이라는 금속 조각 작업입니다. 총 다섯 종류가 있고, 그중 하나가 이번 전시에 소개되었습니다. 이 조각의 마디마디에는 영상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난 인터뷰들이 정체 없는 말이 아니라, 실제 얼굴과 책임, 관계망 안에 놓인 이들의 말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조각 시리즈는 연표에서 형태를 가져왔습니다. 다만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인 역사라기보다는, 너무 많이 망각해서 느슨하고, 순서가 엉켜 얼기설기 이어지고, 중간에서 끊어지기도 하는 연표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런 감각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진심을 다해 기록하고 기념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잊고, 놓치고, 잘못 잇고, 뒤늦게 알아차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망각을 다루지 않는 아카이브가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을 조금 덜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빠르게 설명드렸는데 충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작품은 제가 설명하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져주지 못할 것 같아서, 조금 빠르게라도 말씀드렸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서 생긴 의문들은 아마 곧 이어질 김대현 선생님의 휘황찬란한 발표가 상쇄해주지 않을까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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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참여 작가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미술가 박민영

Ⅱ. 김대현
사실 성소수자 입장에서 퀴어와 관련된 무엇이라도 거나하게 재현되는 것은 내심 기쁜 일이다. 아트선재센터 지하와 3층 전부를 채운 퀴어 관련 전시를 '퀴어 바벨탑'같다고 돌려까긴 했지만, 그런 소리조차 그런 전시가 비로소 열렸기에 가능한 품평임을 인정한다. 뭐든 있어야 까도 까는 거고, 까일 만한 것이라도 그게 없는 것보단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이 퀴어 기록활동가의 감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렇게 재현된 바의 위계와 편향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남들 보기에 엑조틱하고 진귀한 퀴어의 재현이 과거에 바로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프릭쇼로 전시하는 문법과 뭐가 다른지를 심문해야 했고, 성소수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전부 자동적으로 의미가 따라붙는 것이 과연 당사자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일인지를 재차 물어야 했다. 아트선재의 모든 전시들이 그 모든 요목에 그릇되었기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되짚을 바를 되짚은 것이다.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커뮤니티는 게이와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를 당사자가 나서서 비병리적으로 호명한 그 순간부터 거기에 자기-정의와 직결되는 짐짓 규범적인 입장과 해명을 요구받았고, 그 중 적잖은 것은 돌이키건대 마땅히 그래야만 할 것이었다. 게이와 레즈끼리,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끼리 교유할 때 무슨 예의를 어떻게 갖춰야 하는지를 가급적 빨리 학습할 의무는, 광장의 가시화와 프라이드의 빛나는 기표 가운데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양 재빨리 갖춰야 했을 연대노동이자 존재-노동이었다.
그 경험이 과연 뭐였는지에 대해 서구권 퀴어 이론이 좀처럼 뭘 용의주도하게 말해 봤다는 바를 들은 적이 드물다. 원래 이론이란 현장의 뒷꼭두를 따르기 바쁜 법이고, 내가 기억하는 예술은 그 미끄러짐을 기리고 기억하는 덜 패권적인 방식의 무언가를 추구해왔다.

내 삶이 예술이 되지 않아도 좋고, 예술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세월이 길다.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그 의문이 단순히 예술에 문외한이라서 가진 의문은 아닐 거라는 희미한 믿음이 있다. 희미한 것을 올바른 맥락 위에 하나의 개체로서 숨쉬게끔 재현하는 것이 예술의 특장이라 배웠다. 운동하고 학술하는 나로서는 다다르기 힘든 경지다. 전시에 참여한 모든 작가분들이 그에 대한 나름의 대답 가운데 이 모든 재현을 어렵사리 감행하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예술과 아티스트의 말석에 서서, 운동의 현장과 자료를 착취하고 튀는 여러 예술가와 연구자들을 닮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애쓴 시간들과, 내 몸을 잘 흘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간의 활동을 벌여왔음을 가급적 소상히 말할 수 있어 뿌듯했다. 이렇게까지 거나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거듭 만날 수 있는 자리가 금명간에 만들어지기를 내심 기원한다.

[191호][활동스케치 #2]「구멍을 기록하기 — 퀴어 커뮤니티의 신체와 정동 아카이브」아티스트 토크 후기: 예술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삶
기간 : 5월
2026-06-10 10:02
[190호][커버스토리 "레즈비언 가시화의 날" #1] 일본 제50회 중의원 오츠지 가나코 인터뷰 : 우리가 당연한 풍경이 될 수 있도록
기간 : 4월
2026-05-08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