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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호][인터뷰] Spectro Citizen 네모 안에서만 존재하던 신체들: 장영해님, 박민영님 인터뷰
2026-05-08 오후 17: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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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 

 

 

[190호][인터뷰] 

Spectro Citizen 네모 안에서만 존재하던 신체들

: 장영해님, 박민영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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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반기, 아트선재센터와 핸들매거진은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전시 기간에 맞추어 장영해, 박민영 두 작가를 인터뷰했습니다. 잡지사의 허락을 받아, 「Spectro Citizen: 네모 안에서만 존재하던 신체들」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해당 인터뷰를 함께 소개합니다. 친구사이 소식지에 실린 글은 매체와 지면의 차이를 고려하여, 기존 인터뷰에 다 담기지 못했던 원문 일부와 이미지를 편집·조정한 버전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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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아트선재센터 전관에서 열렸다. 74명(팀)의 작가, 즉 한국 기관 전시로는 전례 없는 규모의 퀴어 미술전이다. 이번 핸들 다이얼로그는 장영해와 박민영을 만났다. 장영해는 딥페이크와 AI 보간 기술로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되는 신체의 구조를 드러내고, 박민영은 한국 게이·퀴어 커뮤니티의 아카이브를 조각과 비디오 설치로 재발화한다. 두 작업은 같은 건물, 서로 다른 층에 놓여 있지만 같은 질문을 공유한다. 이미지는 어떻게 신체가 되고, 기록은 어떻게 장소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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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해 

Q1. 작가님의 작업은 '폴 댄스'와 같은 강렬한 장르를 차용해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하며, 억압되거나 규정되지 않은 '신체성'을 깊이 있게 탐구해 왔습니다. 기억과 장소, 감각으로 읽는LGBTQ+ 미술의 다층적 스펙트럼을 탐구하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님이 프레임 안에 담아낸 요동치는 신체는 동시대 관객들에게 어떤 사회적, 혹은 개인적 저항의 메시지로 가닿기를 바라시나요?

 

저의 이번 영상 <blur,blur>는 디지털 합성과 딥페이크 영상이 가진 비현실적인 느낌에 주목하여 만든 작업입니다.


특정한 신체 부위나 표정을 선택적으로 생성하고 대체하는 방식은 3차원 원본에 2차원의 이미지를 덧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촬영된 유기적인 신체 위의 합성 이미지는 특유의 부자연스러움과 미끌거림이 동반됩니다. <blur, blur> 작업에서는 그런 영상 합성의 방식의 구조를 보여주어 누군가에게 리비도일 이 언캐니함을 극대화 합니다.


자세히 말해보자면, 작업에서는 강한 감정이나 긴장을 내포한 몸짓이 드러나는 실사 영상들의 프레임수(Frame Rate)를 극단적으로 낮추어 스탑모션으로 만든 뒤, 그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를 생성형 AI 이미지 보간 기술로 채웠는데요. 영상의 내용은 또 전시장의 영상 설치 환경과도 연결됩니다. 아트선재센터 통창 앞에 반투명한 led에 설치되어, 뭉개지는 이미지의 픽셀은 길거리의 선명한 풍경과도 대조되어 보입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지금 인터넷 환경에서 신체가 소비되는 양상을 구조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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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영상 속 움직이는 신체가 정지된 사진 이미지로, 그리고 다시 관객의 망막에 맺히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작가님이 궁극적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찰나의 '본질'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스탑모션의 불연속성과 생성형 이미지 합성 기술의 매끄러운 시뮬레이션이 충돌하며 만드는 기이한 운동성은 저에게 동시대 인터넷 환경 속에서 신체가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구조적인 은유입니다. 저는 오늘날 인터넷 환경에서 욕망이 신체를 어떻게 왜곡하고 재조립하는지 그 이미지의 양상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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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참여 작가
미술가 / 장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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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박민영

Q1. 작가이자 기획자, 그리고 비평가로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경계를 횡단하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번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과 같은 대규모 퀴어 미술 전시에 참여함에 있어, 이러한 다층적인 정체성과 시선이 작가님의 작업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또 영감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창작하는 자와 그것을 읽어내는 자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가님이 가장 예민하게 감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불가피한 단조로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74명의 작가에게 74가지의 삶이 있다는 말은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쉽게 상황을 정리해버리는 문장이기도 하니까요. 이때 무엇이 드러나는지보다, 무엇이 흐려지는지를 더 오래 보게 됩니다. 작가이면서 동시에 성소수자인권운동 활동가로 불리는 사람에게는 흔히 윤리나 대표성에 대한 정돈된 입장을 기대하겠지만, 내심 거친 질문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자원이 있다는 이유로만 모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호출한 기회에 흘러들면 그만인지, 그렇다면 예술의 독립성은 어디에 남아 있는지 같은 질문들입니다.

 

우스운 상상으로는 74명의 퀴어 작가를 소개할 수 있다면, 왜 천 명의 퀴어 작가는 아닌지도 궁금해집니다. 전시가 ‘다양해서 다양하다’를 넘어선 기획일 때서야 비로소 호명되지 못했던 작가들에 대해서도 말할 면목이 생긴다고 생각하니까요. 참여작가들 역시 전시에 온순하게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만도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중요하기도 합니다. 저는 본 전시가 퀴어 레거시에 대한 존중이 있는지 혹은 ‘다양성’이라는 상투적인 문장 안에 머문 일인지 여전히 의심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반대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충돌과 협상, 뒤엉킴 끝에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흩어져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 점이야말로 전시를 단순하게 읽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선 비평의 상상력은 창작의 상상력과 다를 수 있겠지만, 제 안에서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1994년부터 시작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소식지를 통해 성소수자 공동체의 역사와 감각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것은 오롯이 제가 만든 역사도 아니며, 철저히 분리된 독자도 아닙니다. 조각, 비디오, 사진, 아카이브를 만지작거리며 순진하게 성소수자인권운동의 역사를 들추기보다, 그것이 주변 환경과 얼마나 어우러질 것인지 등을 빠르게 독해하고 판단하는 일이 퀴어 아카이브를 모셔온 저의 책임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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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아트선재센터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작가님의 작품이 관객과 맺고자 하는 관계성은 무엇인지, 사진 너머 실제 공간에서 관객들이 놓치지 않고 경험했으면 하는 감각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 퀴어를 둘러싼 이야기에 있어 아트선재센터는 낯선 장소라기보다, 이미 성소수자 문화와 운동의 장면들이 축적된 공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8년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를 시작으로, 2004년 당시 ‘서울아트시네마’였을 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10주년 기념식이 열렸고, 2008년에는 게이 합창단인 지보이스의 제3회 정기공연도 이곳에서 진행됐습니다. 앞선 시간을 떠올리면 전시장은 이미 퀴어씬의 기억을 받아온 장소라고 느껴집니다. 이번 작업이 그 위에 덧입혀지기를 바랐습니다.

 

우리에게 역사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젠 어느정도 진부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고, 또 그 ‘역사’가 정말 우리의 역사인지에 대해서도 반문해볼 수 있을 정도로 자의식이 쌓인 지금. 미술관에서 퀴어 아카이브를 공유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아카이브 테이블, 32편의 글〉(2025)은 역사학자 김대현과 성소수자인권운동 활동가 심기용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240편의 글 중 32편의 글을 선별-분류하는 과정부터가 비선형적이고 주관적인 목소리, 한 공동체의 형성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으로 해당 아카이브가 향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자신의 역사로 동화할 수 있을 테고, 아니라면 자기자신을 구성하는 역사에 한 편 두 편을 끼워둬도 좋을 겁니다. 예술과 역사는 잘못 들어선 길에서 낙담만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삶의 경로를 만나게 하기도 합니다. 저는 관객이 소식지의 글 한 편을 그렇게 읽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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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작가님께서 참여하시는 두 번째 파트 이라는 축을 통해 서울의 퀴어적 장소성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3층에 자리한 작가님의 작업은 이 거대한 도시의 궤적 속에서
어떤 특정한 기억이나 공간의 층위를 다루고 있나요? 장소에 얽힌 서사가 작가님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로 어떻게 발현되어 관객과 만나게 될지 궁금합니다.

 

비슷한 질문으로, 한 지인이 이번 전시에서 제 역할이 ‘종로3가’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종로3가의 수맥이 제 피에도 흐르고 있긴 하지만, 제가 다루고 싶은 것은 특정한 지명을 재현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도시 안에서 게이·퀴어 커뮤니티가 남겨온 말투와 형식, 그리고 그것이 품고 있는 생생한 감정이 어떻게 전해지고 자라나는지를 더 붙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장소성은 어떤 장소를 복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공동체의 생기를 다시 드러내는 일에 가깝습니다. 결국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그 안에 축적된 관계와 역사니까요.

 

제가 마주한 기록들에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30년 전 커밍아웃의 조건들, 남들이 무심히 지나가는 일상조차 버거웠던 시간들, 남자를 만나러 게이 단체에 왔다가 어느새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서게 된 장면들, 미래에는 달라질 것이라고 믿으며 적어 내려간 문장들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아카이브를 과잉된 정서로 재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나 비장함만으로는 그 기록이 현재와 다시 연결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가 관심을 두는 것은 과거를 기념하는 방식이라기보다, 그 기록이 지금의 관객 앞에서 다시 말을 걸 수 있도록 형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아트선재센터와 선프라이드 재단의 커미션으로 제작한 〈글레이즈드 사각 언니 ver.2〉(2026)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작업입니다. 제가 비디오 설치를 선호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을 모든 순간에 데려다줄 수 없고, 모든 순간을 모든 사람 앞에 펼쳐놓을 수도 없다는 조건을 잠시 잊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친구사이 소식지의 인터뷰와 22년 전부터 이어져 온 커밍아웃 인터뷰의 주인공들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언니’들에게 과거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읽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전한 문제의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다른 궤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떨리는 입술로 자신의 옛 문장을 다시 발화해주었습니다. 저에게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를 알려주던 언니들은 늘 종이 잡지의 네모, 웹진 화면의 네모 같은 사각의 매체 안에서만 존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실제로 내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경험을 관객과도 나누고 싶었고, 조각적 스크린을 활용한 비디오 설치라는 형식을 택했습니다.

 

위 작업을 지탱하는 조각 〈벗은 얼굴이 누적된 어둑서니〉(2025)는 그러한 만남이 불완전한 역사와 관계 위에서 겨우 성립한다는 점을 함께 드러냅니다. 인터뷰이의 크레딧을 영상 말미나 전시장 캡션이 아니라 이 조각에 새긴 것도 그래서입니다. 〈어둑서니〉 연작은 단절된 듯 보이는 역사와 경험이 사실은 어둑한 관계망 속에 놓여 있으며, 공동체의 삶이 불연속적인 시간으로나마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려는 작업입니다. ‘어둑서니’가 어두운 밤중에 보이는 헛것이자, 계속 보고 있지 않으면 사라지는 존재라는 점도 이 작업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총 다섯 점으로 구성된 조각들은 한국 성소수자 삶의 서로 다른 국면들, 이를테면 자신을 정체화하는 지난한 과정, 넘치는 성적 활력을 꺾어야 했던 과정, 뿌리를 찾으려 해도 단절만 느끼는 과정, 자긍심을 말하면서도 끝내 자기 몫의 공백을 마주하는 과정, 그리고 먼저 커밍아웃한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는 과정을 형상화합니다. 그중 〈벗은 얼굴이 누적된 어둑서니〉는 커밍아웃하고 인터뷰했던 사람들의 얼굴 이미지를 새긴 조각으로, 기록 속 인물들이 추상적인 사례가 아니라 실제로 얼굴을 가진 존재였음을 상기시킵니다.

 

결국 이번 전시에서 제가 다루는 장소는 서울이나 종로라는 이름으로 고정된 장소라기보다, 누군가의 입과 몸, 종이와 화면, 관계와 기억을 거쳐 간신히 이어져 온 퀴어 공동체의 감각적 장소에 더 가깝습니다. 관객이 그 앞에서 ‘내가 낄 틈 없는’ 완결된 서사를 전달받기보다,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잘 만져진 기억들을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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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핸들 매거진의 공식 질문입니다. 전시장을 벗어나 다방면의 예술적 실천을 이어가는 치열한 일상 속에서, '개인 박민영'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축은 무엇인가요? 수많은 담론과 텍스트 사이에서 온전한 나 자신으로 숨을 고르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궁금합니다.

 

저를 지탱하는 힘은,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주변에 말해두는 일로부터 오는 듯합니다. 예술에 관한 일이든, 어떤 공동의 실천에 관한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혼자 결심해서 밀어붙이는 사람이라기보다, 주변과 협력하고 협의하면서 일의 규모를 키워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마음과 몸이 지칠 때는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전부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데, 한 번 말을 해둔 이상 주변 사람들이 목표 방향을 쉽게 놓아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관계 덕분에 부지런한 창작과 윤리적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퀴어 작가라고 해서 삶의 모든 면이 늘 전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퀴어도 다를 것 같고 예술가도 다를 것 같지만, 사람의 인생은 모든 면에서 퀴어할 필요도, 모든 면에서 특별할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 삶 안에 안정 요소와 평범한 기쁨을 잘 만들어두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 안정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하고 싶은 일을 함께 기념하고, 요리도 잘 못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분투 끝에 밥을 차려 먹는 시간에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결국 다시 작업으로, 또 광장으로 돌아갈 힘을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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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참여 작가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미술가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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