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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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11
: 타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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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만 개의 삶과 사랑, 아픔과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매력에 빠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겨봅니다. 특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주인공들의 삶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느낌은 배가 되죠. 영화로 만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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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편의 퀴어영화라...내게 있어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일이다. 하여, 지금 가장 힘을 주는 퀴어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했다. 조나단 카우에트의 2003년작 <타네이션>이다.
처음 이 영화를 만났던 걸 기억한다. 홍대에 있는 시네마 상상마당이었고, 정식 개봉하진 못했고 여러 영화들이 하는 작은 영화제에 속해 상영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에 대한 소식은 그 전에 접해서 매우 흥분해 있었다. 게이인 감독 스스로에 대한 다큐이고 혼자서 촬영, 편집을 다 한 원맨밴드 영화이며, 구스 반 산트와 존 카메론 미첼이 제작을 했다는 사실. 거기에 『씨네21』에서 읽은, '칸 영화제'에서 관람한 심영섭 평론가의 추천도 한 몫 했다. ‘타네이션’이라는 처음 접하는 단어는 생소했고, 막상 뜻을 찾아보니 '젠장, 빌어먹을' 같은 감탄사라고 한다. 그래서 <totally fucked up> 같은 영화제목이 연상되었고, 스틸로 본 감독의 얼굴이 매우 잘생겨서 영화를 기대하고 보는 당시는 거의 광분상태였던 것 같다. 데릭 저먼과 요나스 매커스의 '8mm카메라' 다이어리를 상기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영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강렬했다. 아니 데릭 저먼과 요나스 매커스가 찍지 못한 걸 찍고 있었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뿐 아니라 가족사의 치부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노골적인 솔직함과 종종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자극적인 편집, 사운드가 압도적이었다.
감독의 가족과 친구, 애인들은 춤을 추고 상체를 벗고 담배를 피고 욕을 하고 말 그대로 삶을 살며! 삶을 사는 그들 자신을 다소 부끄러워하며 혹은 신경쓰지 않고 자연스레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었고, 영화의 편집효과는 간혹 공포영화처럼 펼쳐지고 왜곡된 색깔의 비디오화면 앞에서 감독은 여성캐릭터 연기를 하고 뮤직비디오 주인공이 되었다
아픈 어머니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역시나 이원증이라는 병을 앓는 감독 본인의 아픈 사연이 묶여 영화의 주 내러티브가 되고 마침내 영화 마지막 소파 위에 잠든 어머니의 천사가 키스한 흔적이라고 영화에서 언급된 인중에 감독이 손가락을 갖다 대고 옆에 누울 때는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또 오픈리 게이로 친구와 가족과 애인과 어울리며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관계 섞으며 살면서 바로 곁에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애인이 있다는 게, 어머니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부러웠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식 또한 사실이었다. 영화의 요란한 편집효과와 아방가르드해보이려는 욕망이 나와 맞지 않았다. 눈이 너무 아팠다. 꼭 이렇게 노골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다시 볼 수 없음에 애써 나와 맞지 않는다고 스스로 설득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존에서 DVD를 구입했다는 지인들 얘기를 들으며 가끔 조나단 카우에트를 imdb나 구글, 유투브에서 검색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몇 편의 실습영화와 단편영화를 찍으며 실수와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작년쯤 역시나 검색 중에 우연히 한국에 DVD가 발매됐다는 걸 알게 됐다. 정식 발매가 아닌 래핑판이라는 걸 알면서, 그래서 화면사이즈나 화질, 자막이 엉망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가지면서도 그저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로 DVD를 마침내 손에 쥔 날 나는 <타네이션>을 두 번째로 만났다.
DVD는 사이즈도 화질도 자막도 온전했다. 그리고 나는 <타네이션>과 제대로 만났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두 번 본다는 것, 두 번 만날 수 있다는 것. 재회한다는 것.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는 어디로 이동한 걸까?
두 번째로 봐도 영화는 눈이 아팠다. 그런데 누구보다 감독 본인이 가장 눈이 아팠을 것이다. 자극적이고 번쩍번쩍 요란한 효과들이 즐비하게 사용되어서 잠시 보기만 해도 눈이 아픈데 그는 편집하면서 시신경이 수차례 파괴됐을 것 같다. 본인의 눈건강을 생각하면 이럴 수가 없다. 그리고 사생활의 노골적인 노출은 보는 이의 불편함을 걱정하기보다 만든 이의 두려움을 뛰어넘는 게 중요하게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간과했지만 두 번째로 보니 그 절박함이, 표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와 감독의 밀접한 관계도 다시 보였다. 그러면서 그의 고독이 보였다. 카메라를 든다는 건 결국 외로워지는 것이다. 사태에서 한발 벗어나 응시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어머니를, 세상을 그는 한발 벗어나 지치지 않고 기록했고 그 기록한 걸 끌어안고 컴퓨터 앞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자신만의 시간에서 편집을 한다.
그렇게 누적된 게 바로 이 영화다. 누적된 시간의 압도성. 그 압도성에 부끄러워졌다.
나는 흉내만 내고 있었구나..영화를 찍는 시늉만 하고 있었구나..
그가 기록한 매 순간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편집에 들인 공을 생각해보았다. 90분짜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보고 또 보며 붙이고 뒤섞고 바꾸고 다듬는 그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저예산에서 미학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보았다. 포기하고 싶진 않았을까? 영화도 어머니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두려움, 불안, 아무것도 안될 것 같은 절망, 점점 안 좋아지는 어머니. 모든 걸 다 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영화를 찍으면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시나리오를 쓸 때, 촬영을 할 때, 편집을 할 때 포기하고 싶다. 이게 최선이 아닌 걸 알지만 체력이 떨어져 지쳐서, 계속 찍는 게 미안해서, 설득하는 게 확신이 없어서, 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손을 놓고 포기하고 싶고 포기한다. 시나리오를 열 번 스무 번 고쳤다는 말은, 한 숏을 40테이크까지 찍었다는 말은, 편집에 6개월 1년이 걸렸다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포기를 부추기는 외부도 있다. 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집에 돈은 많은지, 아는 사람은 많은지 물어보며 영화를 찍을 자격을 묻는다. 그들이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학력도 돈도 인맥도 없으면서 무슨 영화인가. 그나마 어렵게 꾸려서 만들어낸 몇 되지 않은 기회의 실수와 실패를 떠올리며 자학한다. 가장 사랑하는 영화에의 열망을 잃어가며 삶에 대한 포기로 이어진다.
그때, 영화를 다시 본다. 우연을 계기로 우연을 가장해 영화라는 운명을 끌어당긴다. 간과했던 결과 틈, 과정이 보인다.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그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다시 힘이 난다. 포기하지 않았던 조나단 카우에트의 집요함을 본다. 학력과 돈과 인맥과 상관없는 영화의 아름다움을 본다. 몇백억이 투자된 상업영화는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이 영화만의 장점을 본다. 실수와 실패를 떠올리고 자책하지 않고 배움으로 삼으리라 다짐한다. 하루하루를 되돌아본다.
<타네이션>, 이 영화는 내게 재회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다시!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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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 / 박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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