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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94호][커버스토리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1] 친구사이의 내일 : 80년을 버틴 조직의 질문
2026-09-04 오후 16:31:00
기간 8월 

 

 

[194호]

[커버스토리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1]

친구사이의 내일 : 80년을 버틴 조직의 질문

— 암스테르담 월드프라이드, 그리고 COC

 

 

 

2026년 8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암스테르담 월드프라이드에 다녀왔다. 세계 각지의 성소수자 활동가와 정치인, 오래된 조직과 새로운 세대, 그리고 성소수자의 삶을 도시의 일상으로 만들어온 현장을 만나며 우리가 계속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우리의 다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였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그 질문을 세 개의 시선으로 나누어 담았다. 80년을 버틴 조직 앞에서 친구사이의 내일을, 새로운 세대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내일을, 그리고 성소수자의 자유를 떠받치는 제도와 정치 속에서 서울의 내일을 묻는다. 어쩌면 암스테르담에서 발견한 실마리는 완성된 답이라기보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장면들이었다.

 

※ 이번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참가는 RUN/OUT 프로젝트는 Global Equality Caucus와 LGBTQ+ Victory Institute의 초청과 지원으로, 친구사이 한윤하 대표는 네덜란드 외교부(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Netherlands)와 COC Nederland가 함께하는 Building Bridge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프라이드 깃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내려 가장 먼저 본 것이었다. 아, 내가 세계 최초로 동성혼이 법제화된 도시, 우리에게는 올림픽과도 같은 월드프라이드가 열리는 도시에 왔구나. 그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RUN/OUT을 통해 1월에 만난 정치인들과 "올해 암스테르담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는데, 정말 그곳에 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설렜다.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무엇을 느끼게 될까. 그런 생각과 함께 일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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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적응을 한 것인지, 밥은 소화가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지붕 없는 배에 올라 암스테르담 시내를 누비며 수만 명의 시민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넘쳐나는 아드레날린을 그대로 맞으면서. 다음 날에는 앞으로 만날 재단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 준비하는 한편,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그들 앞에서 발표할 성명을 다듬었다. 그다음 날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네덜란드 인권대사와 LGBTQ+ 관련 재단들을 만나 성명을 발표했고, 오후에는 여러 단체와 소개팅(speed dating) 시간을 가진 뒤 암스테르담시가 주관하는 리셉션에 참가했다. 하루하루가 세션으로 가득했다. (역시 남의 돈으로 가는 것이 공짜는 아니었다.)

 

월드프라이드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정말 전 세계의 활동가와 앨라이와 관계자와 당사자들이 모여 있었다. 1월에 만났던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건너 들었던 대만과 일본의 활동가들, 최근 활동을 통해 이메일을 주고받은 Good Ageing Yells의 마쓰나카 곤(松中ゴン), 아일랜드 전 총리 레오 버라드커도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심지어는 다섯 번은 더 돌려본 넷플릭스 「하트스토퍼」의 주연 배우 조 로크까지. 정신없는 시간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함께 나아갈 방도를 찾고 있었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역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그것대로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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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로 가면서는 마음 한켠에 이런 생각이 있었다. '아, 다 이룬 나라.' '여기서는 퀴어라서 소수자라는 생각도 안 들겠지.' 그런데 도착해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지난 2월 최초의 오픈리 게이 총리 로프 예턴이 취임했고 세계에서 가장 긴 혼인평등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전환치료의 전면적 불법화가 입법된 것은 올해가 되어서였다. 온 도시에 프라이드 깃발이 가득했지만 중앙역 한켠에서는 찬송가를 틀어놓고 주님께 돌아오라 하고 있었고, 이곳의 친구사이와 같은 COC 사무실에 출입할 때는 보안에 유의해 달라는 주의가 있었다. 3,000곳이 넘는 학교가 LGBTQ+와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교과 과정에도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포함되어 있지만, 일부 학교와 학부모는 COC가 진행하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SOGI) 교육을 원치 않는다. 역시 세상은 넓고 이상한 것은 언제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모멘텀을 잃지 않고, 중앙 조직과 그 아래 지역 조직들이 각자의 사회적·지리적·단계적 위치에 따라 아주 느슨하고도 체계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한 명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역할이 모여 큰 조직을 이룬 모습이었다. 사실 네덜란드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니 서울로 돌아와 활동을 돌아보기 전까지 나는 COC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필자는 겪으며 배우는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그리 부지런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뒤늦게 찾아보았다.

 

 


chingusai_logo.png 셰익스피어 클럽에서 시작해서

 

1946년, COC가 처음 쓴 이름은 '셰익스피어 클럽'이었다. 동성애 잡지를 함께 읽는 모임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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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초에도 비슷한 모임이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와해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모였다. 초대 회장 닉 엥엘스만은 '밥 안젤로'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1949년에는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는데, COC는 '문화·레저 센터'라는 뜻이다. 무슨 단체인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든 이름이었다. 단체의 이름 자체가 그 시대를 말해준다. 그 뒤로 네덜란드 전역에 COC가 생겨났다. 1960~70년대 베노 프렘셀라 회장이 커밍아웃한 상태로 공영방송에 출연하면서, 가면을 쓰고 있던 조직이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71년에는 형법 248bis가 폐지된다. 동성 간의 접촉에만 21세라는 동의연령을 요구하던 차별 조항이 사라지고 16세로 일원화되었다. 1980~90년대 HIV/AIDS 위기를 지나며 정부와의 협력이 본격화되었고, 1994년 일반평등대우법이 통과된다. 그리고 2001년 4월 1일, 세계 최초의 동성혼 법제화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사실. COC는 원래 혼인에 반대하는 단체였다. 혼인이라는 지위에 묶여 있던 권리들을 개인 단위로 재편하고, 관계는 당사자가 필요에 따라 구성하게 하자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혼인을 여는 대신 혼인을 없애자는 쪽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1995년에야 혼인평등 운동에 합류한다. 지금 우리가 아는 '세계 최초의 동성혼'은 그 노선 전환으로부터 6년 만의 결과다. COC는 스스로의 역사를 3단계로 설명한다. 1단계 비범죄화, 2단계 혼인평등, 그리고 3단계 사회적 인식 개선. 2012년 초등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교에서 성적 다양성 교육이 의무화되었고, 2014년에는 성별정정에 수술과 불임을 요구하던 요건이 폐지되었다. 그리고 올해, 80주년을 맞은 COC는 월드프라이드에서 열린 국제프라이드어워즈에서 'movement building' 부문을 수상했다. 전환치료 전면 금지 입법에 기여한 활동, 국제 연대 활동, 학내 인식 개선 활동이 함께 평가받았다.

 


chingusai_logo.png 20개의 지부와 중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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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COC는 암스테르담의 COC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20개 지역 지부가 연방처럼 묶여 있는 구조다. COC 네덜란드의 상근 직원은 30명 남짓. 지부마다 편차는 크다. 자기 건물을 가진 곳도 있고, 건물도 상근자도 없이 굴러가는 곳도 있다. 상근 조직이 없는 지부는 COC 네덜란드가 행정을 지원한다. 각 지부는 지역의 다른 성소수자 단체들과 협력하면서 커뮤니티 활동, 정치 애드보커시, 프라이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네덜란드 인구가 1,800만, 암스테르담이 92만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조가 굴러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의사결정자가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COC 사람들을 만나며 놀랐던 게, 인사를 나눈 분들 중 정말 많은 수가 전현직 이사회 멤버였다는 점이다. 각 지부마다 6인 내외의 이사회가 있고, 이사는 2년 임기의 선출직이다. 그중에서 회장, 총무, 서기를 선출한다. 20개 지부에서 2년마다 이사진이 새로 꾸려지니, 매년 새로운 의사결정자가 배출되는 셈이다. 리더십이 한 사람에게 쌓이지 않고 계속 순환한다. 그래서 누군가 한 명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회원 구분이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회원은 참여 멤버와 자원활동단으로 나뉘고, 자원활동단이 각 소모임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한다. 그런데 그 모임들이 무조건 다 열려 있지는 않았다. 나이와 배경에 따라 구분이 꽤 분명했다. 만 30세 이상은 청년 조직에 참여할 수 없고, 만 50세 미만은 중장년 그룹에 참여할 수 없다. 물론 총회 같은 연례 행사에는 모든 회원이 함께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배제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연령에 따라 겪는 생애주기의 차이는 분명하고, 모두가 안전하고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 구분은 오히려 구성원을 위한 안전장치에 가깝다. 개방성이 아니라 편안함을 기준으로 설계된 구조인 셈이다. 각각의 구분선에 집중하기보다, 촘촘한 공간 구성의 중요성이 돋보였다. 큰 우산 하나 아래에 각자가 안심할 수 있는 자리가 계속 늘어나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부담은 줄어든다.

 

 

 

chingusai_logo.png 두 가지가 남았다

 

물론 며칠 본 것으로 80년을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현지에서 받은 인상과 돌아와 정리한 내용을 겹쳐놓고 보니 크게 두 가지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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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들에게도 억겁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 1946년에 이름을 숨기고 시작해서 1971년에 차별 조항 하나를 지웠고, 1994년에야 평등대우법을 만들었고, 2001년에 혼인을 열었고, 전환치료를 완전히 불법화한 것은 올해다. 80년이다. 밖에서 보면 '다 이룬 나라'로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한 단계씩 밀어 올린 80년의 축적이었다. 둘째, 그 긴 시간 동안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순환의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2년마다 이사가 바뀌고, 20개 지부에서 계속 새로운 사람이 의사결정의 자리로 들어온다. 한 사람의 소진이 조직의 소진이 되지 않는다. 한 세대의 퇴장이 운동의 단절이 되지 않는다. 80년을 버틴 조직의 답은 특별한 개인이 아니라 구조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돌아왔다. 친구사이는 지금 어디에 와 있나. 우리는 32년이고 COC는 80년이다. 그 사이의 48년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지금 우리의 의사결정은 몇 명이 하고 있고, 10년 뒤에는 몇 명이 하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다음 세대에 남기게 되는가. 사람인가, 문화인가, 아니면 그들이 딛고 설 구조인가. 하나의 큰 축제가 커지는 것과, 서울 곳곳과 지역에서 각자의 프라이드와 공동체가 생겨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후자를 상상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답을 갖고 돌아온 것은 아니다. 다만 질문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겪으며 배우는 스타일이라 했으니, 이 질문들도 앞으로 겪으며 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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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 
한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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