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94호][커버스토리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2] 공동체의 내일 :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기간 |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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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호]
[커버스토리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2]
공동체의 내일 :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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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암스테르담 월드프라이드에 다녀왔다. 세계 각지의 성소수자 활동가와 정치인, 오래된 조직과 새로운 세대, 그리고 성소수자의 삶을 도시의 일상으로 만들어온 현장을 만나며 우리가 계속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우리의 다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였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그 질문을 세 개의 시선으로 나누어 담았다. 80년을 버틴 조직 앞에서 친구사이의 내일을, 새로운 세대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내일을, 그리고 성소수자의 자유를 떠받치는 제도와 정치 속에서 서울의 내일을 묻는다. 어쩌면 암스테르담에서 발견한 실마리는 완성된 답이라기보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장면들이었다.
※ 이번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참가는 RUN/OUT 프로젝트는 Global Equality Caucus와 LGBTQ+ Victory Institute의 초청과 지원으로, 친구사이 한윤하 대표는 네덜란드 외교부(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Netherlands)와 COC Nederland가 함께하는 Building Bridge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2001년 4월에 동성혼이 합법화된 나라가 있다.
그리고 2001년의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있다.
...나다.
그러니까 네덜란드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될 때 나는 아직 태아였던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낙원
무럭무럭 커서 (만)스물 넷이 된 올해 8월, 바로 그 나라로 생애 첫 출장을 떠났다.

시립도서관의 한 층이 LGBTQ+ 관련 도서와 영상물로 가득해 있었고 도로에는 1946년에 설립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수자 인권단체, COC, 그러니까 네덜란드의 친구사이를 설립한 Niek Engelschman이 “성소수자 자긍심의 길”에 새겨져 있는 곳.

이 길은 암스테르담 중심부인 담 광장 - 서울로 치면 시청 광장 - 에서 시작해 1987년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성소수자 추모비인 호모모뉴먼트까지 이어져 있고, Niek Engelschman 외에도 네덜란드 최초로 커밍아웃한 연예인 알베르트 몰(Albert Mol)을 포함해 총 53명의 LGBTQIA+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시청 광장부터 경복궁까지는 몇 걸음이나 될까. 광화문 광장 걸음마다 연예인 최초로 커밍아웃한 홍석천 님, 최초로 커밍아웃하고 총선에 출마한 최현숙 님, 첫 성소수자 선출직 정치인 차해영 의원님, 그리고 이곳에 공개적으로 기록할 수 없는, 지난 32년간 친구사이를 가꾸어 온 언니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간다.

올해로 99년이 된 레즈비언 바가 있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밤마다 무지개 조명을 쏘는 곳.
시청 민원실에 세계 최초의 동성혼 기념 명패가 있고 그걸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
이 때까지, 네덜란드는 참으로 '소문의 낙원' 같은 곳이었다.
떠나야지만 알 수 있는 사실 :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암스테르담 프라이드 재단은 네덜란드의 비영리 재단으로, 이사회와 디렉터, 약 15개의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위원회들은 재단이 임명한 프로그램 매니저와 함께 각 대상층을 위한 행사를 기획 및 운영하고 재단 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한다.
여성 프라이드(Women & Pride),트랜스 프라이드(Trans Pride), 간성 프라이드(Intersex Pride)와 같은 정체성/지향성을 기반으로 한 위원회부터 시니어 프라이드(Senior Pride), 유스 프라이드(Youth Pride)처럼 세대를 기반으로 한 위원회, 페티쉬 프라이드(Fetish Pride)나 기업 프라이드(Corporate Pride) 등 각 사회 집단의 특성, 관심사 등을 반영한 위원회들이 활동하고 있다.

월드프라이드 인권 컨퍼런스 첫 날, 네덜란드의 게이 총리인 롭 예텐(Rob Jetten)의 축사로 시작한 오프닝 세션은 유스 프라이드의 주관으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청년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총리, 재무부 장관 등 각자의 나라에서 고위직에 오른 성소수자 정치인들 앞에 앉아 무엇이 중요하고 시급한지 훈수(?)를 두는 세션으로 마무리되었다.
세션을 주관한 네덜란드 유스 프라이드는 성인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프라이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13세에서 23세 사이의 LGBTQ+ 청년들,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포용적인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된 위원회다. 유스 프라이드가 성장한 이후, 미취학 아동과 어린이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주니어 프라이드(Junior Pride)와 LGBTIQ+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스튜던트 프라이드(Student Pride)가 생겨났다.
유스 프라이드는 주로 폰델파크, 프라이드파크와 같은 도심 속 공원에서 정체성 확립과 자존감을 주제로 한 자기수용 워크샵, 그리고 자유롭고 안전하게 자신 있는 그대로 춤추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파티들을 기획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촌공원, 케이팝 아이돌 댄스 공연, 일일찻집 문화, 한때 무지개행동에 있었던 10대팀, 청소년성소수자커뮤니티 라틴 등 크고 작은 많은 모임과 행사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제도적 변화가 앞선 곳이라고 해서 우리는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행사들과 대단히 행복한 순간들을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우리만의 공간,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본질은 같구나. 그저 더 공식적이고, 더 큰 규모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활동하는 것 뿐.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이다.
어쩌면 난 게이가 조금은 미울지도 몰라
컨퍼런스 마지막 날, 네덜란드의 국회가 있는 헤이그에 초대받아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 그리고 몇몇의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앉았다.

왼쪽부터 Global Equality Cacus의 아론 르파브르(Aron le Fèvre) , 런아웃 재훈, 태민, 전직 캐나다 연방 하원의원이자 전 내각 장관 랜디 부아소노(Randy Boissonnault), 영국의 연방상원의원 닉 허버트 경(Lord Nick Herbert), 태국 최초로 커밍아웃한 게이 상원의원 폰차이 위타얄러드판(Pornchai Witayalerdpan), 친구사이 대표 윤하.
각국 활동가들이 모여 자국 상황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자, 너도나도 말하고 싶어 했다. 정치인들은 말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라 놀랍지 않았지만, 이상한 건 마이크가 매번 같은 곳으로 갔다는 사실이다. 여러 번 당선된 정치인, 이미 어느 정도 제도적 성취를 이룬 나라에서 온 정치인들에게로. '영향력이 있어서', '다선이라서', '고위직이라서' 와 같은 간편한 핑계로 발언권이 나눠진다면,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국회의원이 아직 한 명도 없는 한국은 이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야자타임을 했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발언권을 누구에게 얼마나 줄지부터 내가 결정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마이크를 손에 넣은 나의 모습
손을 40분 내내 들고 있었나 하는데 재훈이 옆에서 마이크 못 받으면 어떡할 거야? 하고 속삭였다. MZ가 누구냐. 학창시절을 프로듀스 101과 함께 자라온 세대다. '소혜야, 가수가 하고 싶어?' 처럼 '태민아, 인권운동이 하고 싶어?' 이 말이 귓가에 스쳤다. 이 순간을 나중에 내 뒤에 올 누군가가 본다면, 네덜란드까지 가서, 전 세계의 성소수자 정치인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안 시켜줬다고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말하지 않고 오는 내 모습을 너무 멋 없게 볼 것 같았다. 재훈에게 뭐 어떡해… 마이크를 안 주면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해야지 뭐. 라고 대답하며 정말 그래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망설임 없이 타이밍을 잡아야지,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데 갑자기 서글퍼지면서 눈에 힘이 들어갔다. 나의 살기가 느껴진 걸까? 결국 마이크를 받았고 뭐 할 말은 하고 왔으니 그걸로 됐다.

바쁘게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하버드 카라이언 인권센터(Harvard Carr-ryan Human Rights Center)와 미국 빅토리 재단(LGBTQ+ Victory Fund and Institute)이 주관한 Breaking the Rainbow Ceiling 대담에 참석했다. 패널 세 명과 두 명의 진행자, 무대 위 다섯 명 중 여성은 단 한 명, 신잉(Ying Xin) 님이었다. 그리고 그는 행사 시작 자기소개 이후로 50분 내내 그 어떠한 발언 없이 남성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 클로징 멘트만 맡았다. 그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베이징 LGBT 센터 상임이사로 있으면서, 중국 최초의 트랜스젠더 위기 핫라인을 열고 정신 건강 전문가들을 위한 LGBT 친화적 교육을 도입한 사람이다.
하지만 센터는 2023년 5월, 정부의 검열과 단속이 강화되며 문을 닫았고, 그렇게 그는 현재 하버드 카라이언 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건 오픈리 게이 총리가 있고 게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나라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경험이다. 말 그대로 한 나라를 움직이던 사람들을 눈앞에 앉혀놓고, 국가 차원의 탄압을 버텨낸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경험이 얼마나 많았을까.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물어야 했을까, 또 무엇이 궁금했을까. 그 입장 근처에 가본 적 없는 나조차 이렇게 많은 질문이 떠오르는데, 정작 그 자리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컨퍼런스 기간 중 며칠 밤은 비공개 만찬에 초대받았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매번, 테이블에 둘러앉은 얼굴들이 비슷했다.
중년의, 게이 남성들.
성소수자 공동체 안에도 세대, 젠더, 경험에 따라 발언권의 차이가 존재하고 누군가에게 또 우리는 더 좋은 입장일 수 있다. 10대, 20대보다는 30,40대가. 여성보다는 남성이, 트랜스젠더보다는 시스젠더가.
사람이 모이면, 권력과 위계는 생길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한날 한시에 태어나 다 같은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지고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진짜 문제는 이를 얼마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기회라는 자원을 분배할 때 그 사실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반영하는가다. 내가 유리하면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려 하는 습성이 인간의 본능이다. 유리한 상태로 계속 나를 지키기 위해 낯선 사람, 이제 막 등장한 뉴페이스,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서 온 사람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결국 우리를 무너트리는 일이다.
마이크가 다선 정치인에게만 가는 것, 패널 중 유일한 여성이 클로징만 맡는 것, 만찬 테이블이 매번 보던 같은 얼굴들로만 채워지는 것. 이건 서로 다른 세 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다. 이 위계들에 대해서 어쩔 수 없다라고 받아들이는 태도 아래 생긴 구조. 이 구조를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는 건, 우리를 향한 백래시 앞에서 누군가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그 논리를 우리 스스로에게 허락한다면, 밖에서는 같은 논리로 우리를 지울 것이다.
나이가 깡패다
어리다는 것도 자본이다. 그 자본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자본이며, 누군가는 그리워하고, 누군가는 다시 갖고 싶어하지 않는 자본이기도 한다.

어리기 때문에,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 "언제까지 어릴 거니?"라는 질문을 듣는다.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영원히 어리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을 하는 쪽보다는 받는 쪽이 평생 영원히 어릴 것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어린 사람들이 "나는 영원히 어리겠지"라는 그 어린 생각으로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아이디어와 사회의 거친 풍파를 맞지 않아 삐죽삐죽 모나 있는 의견들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암스테르담에서 돌아온 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내 의견을 더 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큼 되돌아오는 더 강한 피드백도 견디려고 하고 있다. 내 목소리가 커질수록 상대의 목소리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제는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이가 깡패니까. 깡패인 지금 이 순간을 맘껏 즐길 것이다.
나도 언젠가 경력이 쌓이고 기성세대가 될 거다. 우리를 천천히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때문에(밈이다). 그때가 되면 십수년간 경험이 쌓여서 내가 그거 해봤는데 ~ 어쩌고 하면서 짬으로 모든 걸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을 나를 지금보다 더 쉽게, 패기있고 따끔하게 지적할 수 있는 다음 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 뼈 때리는 이야기를 듣고 아파하며 과거에 이런 글을 남겼던 어린 나를 다시 떠올리고 싶다.
우리는 이미 약자이고 소수다. 도끼눈을 뜨고 서로를 적대적으로 대해봤자 얻는 건 없고, 잃는 것만 있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와 함께 운동을 하지 않을 건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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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리드 박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