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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94호][커버스토리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3] 서울의 내일 : 가라앉는 세상을 떠받치는 것들
2026-09-04 오후 16:30:36
기간 8월 

 

 

[194호]

[커버스토리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3]

서울의 내일 : 가라앉는 세상을 떠받치는 것들

 

 

2026년 8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암스테르담 월드프라이드에 다녀왔다. 세계 각지의 성소수자 활동가와 정치인, 오래된 조직과 새로운 세대, 그리고 성소수자의 삶을 도시의 일상으로 만들어온 현장을 만나며 우리가 계속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우리의 다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였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그 질문을 세 개의 시선으로 나누어 담았다. 80년을 버틴 조직 앞에서 친구사이의 내일을, 새로운 세대와 함께하는 공동체의 내일을, 그리고 성소수자의 자유를 떠받치는 제도와 정치 속에서 서울의 내일을 묻는다. 어쩌면 암스테르담에서 발견한 실마리는 완성된 답이라기보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장면들이었다.

 

※ 이번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 참가는 RUN/OUT 프로젝트는 Global Equality Caucus와 LGBTQ+ Victory Institute의 초청과 지원으로, 친구사이 한윤하 대표는 네덜란드 외교부(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Netherlands)와 COC Nederland가 함께하는 Building Bridge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chingusai_logo.png 가라앉고 있는 도시, 암스테르담

 

올해로 혼인평등 25주년을 맞은 나라, 공개적으로 게이인 롭 예튼(Rob Jetten) 총리가 이끄는 네덜란드. 그 수도 암스테르담에는 약 94만 명이 산다. 서울 인구의 10분의 1 남짓한 도시다. 우리가 이곳을 찾았던 여름, 암스테르담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였다.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열린 2026 월드프라이드 암스테르담(WorldPride Amsterdam 2026) 기간에는 최대 100만 명의 방문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도시 인구와 맞먹는 사람들이 프라이드를 찾아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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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압권은 운하 퍼레이드(Canal Parade)였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운하를 따라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배 80여 척이 4시간에 걸쳐 천천히 지나갔다. 운하 양쪽에는 사람들이 몇 겹씩 늘어섰고, 다리 위와 건물 창가까지 사람으로 가득했다. 암스테르담이 원래도 조금씩 가라앉는 도시라는데, 이번에는 우리도 제법 기여하는 것 아닌지 괜히 웃긴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도시가 가라앉는 이유가 관광객의 체중 때문일 리 없다. 그래도 물과 운하 사이에 세워진 오래된 도시를 수많은 사람이 뒤덮은 모습을 보며 하기에는 꽤 그럴듯한 농담이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며칠 뒤에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계속 같은 질문을 하게 될 줄을.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예상대로 무지개였다. 상점에도, 거리에도, 공공기관에도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운하에는 프라이드 보트가 지나갔고 거리에서는 손을 잡은 커플과 가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026년은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 부부가 법적으로 결혼한 지 25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롭 예튼 총리는 월드프라이드 인권 컨퍼런스 개막연설에서 25년 전 바로 이 도시에서 세계 최초의 동성 부부들이 결혼했던 순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평등의 완성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조금 엉뚱한 티셔츠 한 장이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린제이 로한, 패리스 힐튼의 얼굴이 나란히 박혀 있고 그 위에는 미국 정치에서 너무 익숙해진 ‘MAGA’를 패러디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때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세 사람을 다시 불러낸 농담이었다. 웃고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브리트니와 린제이와 패리스가 세상의 중심에 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 무렵에는 또 하나의 믿음도 꽤 자연스럽게 통용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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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사회는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믿음.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조금 더 관대해지고, 커밍아웃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한번 얻은 권리는 쉽게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결국 역사는 조금씩 앞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성소수자 운동의 시간도 오랫동안 그렇게 읽혔다. 동성애를 범죄로 다루던 법이 사라지고, 차별을 막는 제도가 생기고, 동성 커플에게 결혼이 열리고, 공개적으로 성소수자임을 밝힌 정치인들이 의회와 정부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 다음 시대가 언제나 더 나은 시대일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워졌다.

 

2025년 헝가리에서는 프라이드를 금지하고 참가자를 식별하는 데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까지 등장했다. 유럽 성소수자 인권단체 ILGA-Europe의 평가에서 헝가리는 크게 순위가 떨어졌고, 한때 유럽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영국 역시 빠르게 내려왔다. ILGA-Europe은 이러한 후퇴를 성소수자 권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회와 표현, 정치적 반대의 자유가 함께 약화되는 민주주의의 문제로 바라본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고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와 의료, 학교와 스포츠 참여를 제한하려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여러 주에서도 수많은 반성소수자 법안이 등장했고, 공격은 특히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이러한 정치의 언어와 전략은 다시 세계 곳곳의 반젠더 정치와 연결되고 있다.

 

한때 나의 10대와 20대를 책임진 게이 디바들이었던 브리트니와 린제이와 패리스가 어느새 ‘그 시절’의 상징이 되어버렸듯, 시간만 흐르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시대 역시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만약 진보라는 것이 저절로 계속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가 얻은 자유와 해방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chingusai_logo.png 파티에서는 천장을, 테이블에서는 바닥을

 

이번 암스테르담에서 내게 무지개 깃발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성소수자가 정치인이었고, 의원이었고, 공무원이었고, 보좌진이었고,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월드프라이드 인권 컨퍼런스의 공개된 무대에서는 그 정치적 대표성이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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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빅토리 인스티튜트(LGBTQ+ Victory Institute)와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카-라이언 센터(Carr-Ryan Center)가 마련한 ‘무지개 천장 깨기(Breaking the Rainbow Ceiling)’ 세션에서는 네덜란드 총리 롭 예튼, 두 차례 아일랜드 총리를 지낸 레오 바라드카르(Leo Varadkar), 산마리노 전 국가수반 파올로 론델리(Paolo Rondelli)가 한 무대에 섰다.  공개적인 성소수자 정치인이 국가와 정부의 최고위직까지 올라가는 일은 이제 단지 미래의 가능성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공개적인 게이 총리가 나올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 단계가 아니라, 공개적인 게이 총리가 직접 국가를 대표해 월드프라이드 인권 컨퍼런스의 문을 열고 있었다. 

 

인권 컨퍼런스 내 의회정치를 다룬 세션 프로그램에서는 미국 연방하원의원 마크 타카노(Mark Takano)를 만났다.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밝힌 아시아계 정치인인 그는 미국 의회 내 성소수자 의원 모임인 Congressional Equality Caucus를 이끌며 포괄적인 성소수자 시민권법인 Equality Act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성소수자 정치인이 의회 안에 들어간 다음에는 그 대표성을 어떻게 실제 법과 정책으로 바꾸고, 다시 거세지는 백래시를 막는 정치적 힘으로 만들 것인가를 묻는 자리였다. 또 하루는 GEC 구성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헤이그로 향했다. 네덜란드 상원에서 만난 보리스 디트리히(Boris Dittrich)는 또 다른 경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1990년대부터 의회에서 동성혼 법제화를 추진했고, 이후 국제 인권운동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가 다시 네덜란드 정치로 돌아왔다. 한 나라에서 만든 정치적 경험을 국제운동으로 가져갔다가 다시 정치로 돌려보낸 셈이다.

 

며칠 동안 공개된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어놓고 보니 ‘대표성’도 하나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롭 예튼과 레오 바라드카르가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면, 마크 타카노와 보리스 디트리히는 그다음 질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올라간 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다음 사람에게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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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table Discussion on Building Sustainable LGBTQ+ Political Participation

(당일 회의에는, RUN/OUT, Taiwan Equality Campaign, Japan Alliance for LGBT Legislation, Rainbow Action Korea, Harvard Kennedy School, CHEVS, LEGABIBO, Global Equality Caucus, LGBTQ+ Victory Institute, PRISM Lab이 함께했다.)

 

그런데 공개된 무대에서 몇 걸음 떨어진 내부 토론회에서 논의된 토의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8월 4일, 월드프라이드의 공개 인권 컨퍼런스와는 별도로 LGBTQ+ Victory Institute와 PRISM Lab이 마련한 초청자 중심의 비공개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한국과 일본, 대만, 아프리카 등 서로 다른 정치적 조건에서 성소수자 정치참여를 만들어가는 실무자와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였다.

 

이곳에서는 국가수반의 성공담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질문은 훨씬 아래쪽을 향했다. 정치적 공간이 닫혀 있을 때 무엇을 만들어두어야 하는가. 누가 정치에 들어갈 수 있는가. 돈과 학력, 네트워크와 안전을 이미 가진 사람에게만 정치적 기회가 집중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아직 당선자가 나오지 않는 곳에서는 무엇을 정치적 진전이라고 부를 것인가. 후보가 선거에서 떨어지면 누가 받아줄 것인가. 정치인이 제도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공동체와 어떻게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공개된 무대에서는 화려한 무지개 쇼케이스처럼 이미 천장을 깬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내부자들이 모인 토론에서는 그 천장을 계속 깨뜨릴 사람들이 올라설 바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며칠 뒤 라운드테이블 참가자들에게 공유된 회고에는 이런 취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유리천장을 깨는 것만큼이나, 그 아래에 바닥을 만드는 일에도 주목해야 한다. Perhaps we need to pay as much attention to building the floor as breaking the ceiling."

 

생각해보니 우리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RUN/OUT에서 우리가 해온 일도 천장을 직접 깨는 일보다는 그 아래에 바닥을 까는 일에 가까웠다. 정치에 관심 있는 성소수자를 만나고, 국회와 정당에서 일하는 사람을 연결하고,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함께 배우고, 보좌진과 당직자, 선거캠프와 지방정치를 이전보다 현실적인 선택지로 만드는 일.

 

첫 커밍아웃 선출직 국회의원은 물론 RUN/OUT 프로젝트에게 그리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한 사람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면, 어쩌면 그 한 사람 주변에 누가 있느냐였다. 보좌진은 있는가. 당직자는 있는가. 지역에서 정치 경험을 쌓는 사람은 있는가. 선거를 치러본 사람은 있는가. 떨어진 후보가 다시 돌아올 공동체는 있는가. 먼저 들어간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길을 알려줄 관계는 있는가. 천장을 깨는 한 사람만으로 정치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chingusai_logo.png 공동체가 함께하는 권리, 그리고 정치

 

한편, 바닥을 만든다는 것은 정치에 들어갈 사람의 수를 늘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유럽의 정치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서 한 가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 권리를 어느 한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도록 만드는 정치적 기반이었다. 단순히 성소수자가 진보정당 밖에서도 정치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이끄는 알리스 바이델(Alice Weidel)은 공개적인 레즈비언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가 정당의 정상에 있다는 사실이 그 정당이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존재는 중요한 기준 하나를 보여준다. 성소수자가 권력의 높은 자리에 존재하는 것과, 그 정치세력 안에 성소수자의 권리가 자리 잡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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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세 번째 인물, 닉 허버트(Nick Herbert)
(영국 보수당 출신 정치인이자 현 상원의원. 전 하원의원·장관으로, 영국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서 보수당 내부의 지지를 조직했고, 전세계 선출직 성소수자 정치인 모임 Global Equality Caucus 설립에 참여해 현재 의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게 더 흥미롭게 보였던 사람은 영국 보수당 출신의 닉 허버트(Nick Herbert)였다. 그 역시 공개적인 게이 보수정치인이다. 하지만 그의 의미는 단순히 ‘영국 보수당에도 게이가 있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서 보수당 내부의 지지를 조직했고, 이후 여러 나라의 서로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을 연결하는 글로벌 이퀄리티 코커스(Global Equality Caucus)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성소수자 권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의 보수주의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결혼을 안정적인 관계와 가족, 책임과 헌신의 제도로 본다면 동성 커플에게도 결혼을 개방하는 것이 보수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성소수자 권리를 자기 정치의 언어 안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닉 허버트 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럽 중도우파에는 각국 보수·기독교민주 계열 정당 내부의 성소수자 조직들을 연결하는 EPPride라는 네트워크가 있다. 국가 단위 중앙 정치뿐 아니라 지방의원과 당원, 지역조직의 사례를 발굴하고 서로 활발히 연결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 명의 스타 정치인이 아니었다. 높은 곳에는 정치인이 있고, 그 아래에는 정당 내부의 성소수자 조직이 있고, 지방의원과 당원이 있고, 다른 나라의 동료들과 이어지는 네트워크가 있었다. 물론 이것을 마냥 낭만적으로 볼 수는 없다. 중·동유럽의 보수와 급진우파에서는 여전히 성소수자 권리 자체를 공격하는 경우가 존재하고, 서유럽의 일부 우파가 게이 권리를 이민자나 무슬림을 배제하는 논리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트랜스젠더 권리에 대해서는 유럽의 중도우파 역시 훨씬 덜 우호적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일부 유럽 중도우파 안에는 성소수자 권리가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남의 의제’로만 남지 않도록 자기 진영 내부에서 번역하고 조직하려는 정치적 기반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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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5월 13일 청와대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접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출처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링크)

 

 

미국은 그 반대편을 비교해보기 좋은 사례였다. 미국에서도 'A-GAYS'라 불리는 공개적인 게이 보수 엘리트 그룹은 이미 국가권력의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있다.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는 미국 재무장관이고, 리처드 그레넬(Richard Grenell)은 트럼프 1기에서 주독일 대사와 국가정보국장 대행을 지냈다. 공화당 안에도 오랜 역사를 가진 성소수자 조직인 Log Cabin Republicans가 있다. 문제는 대표성의 높이와 정치생태계의 깊이는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정치에서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의 권리는 점점 더 정당 간 문화전쟁의 중심에 놓이고 있다. 성소수자의 권리가 어느 한 정치진영의 정체성과 지나치게 강하게 결합될수록 정권교체와 정당 간 대립은 곧 권리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해 보였다. 성소수자 권리가 ‘진보진영의 의제’로만 인식되면 상대 정당에게 그것을 공격하는 일은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니라 상대편을 공격하는 정치적 수단이 되기 쉽다. 반대로 다른 정치진영 안에도 그 권리를 자기 정치의 언어로 지지하는 사람과 조직이 있다면 정치적 방어선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곳에 생긴다. 진보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보수정당 안에서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되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이것은 진보의 가치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지켜야 하는 시민의 자유라고. 어쩌면 가장 튼튼한 바닥은 우리 편이 계속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우리 편이 선거에서 져도 사라지지 않는 공동체 모두의 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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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시장의 관저에서 개최된 Global Equality Caucus의 성소수자 정치인 Welcome Reception

 

 

때때로 사람들이 묻는다. “RUN/OUT의 성공지표(KPI)는 뭐예요?” 숫자 하나로 대답하기는 아직 어렵다. 다만 RUN/OUT이 정말 잘 자리 잡는다면 언젠가는 꽤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다. 

 

우선, 성소수자 정치인끼리 싸우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 아주 심하게 싸울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성소수자가 같은 정당을 선택할 리 없다. 누군가는 진보정당으로 가고, 누군가는 중도로 가고, 누군가는 보수정당으로 갈 것이다. 서울에 집을 얼마나 지어야 하는지, 재개발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세금을 얼마나 걷을지, 복지를 얼마나 확대할지, 기업을 어떻게 규제할지, 이민과 외교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놓고 전혀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같은 선거구에 서로 다른 정당의 성소수자 후보 두 명이 출마하는 날도 올지 모른다. 한 명은 이기고 한 명은 질 것이다. 서로를 지독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 역시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특정한 정당과 이념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완전한 정치적 자유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도 다른 시민들처럼 보수일 수도, 중도일 수도, 진보일 수도 있어야 한다. 서로 틀렸다고 말하고, 설득하고, 경쟁하고,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일까지 가능해야 한다.

 

그러면 훨씬 어려운 질문이 남는다. 서로 달라진 뒤에도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될 것인가. Victory Institute와 PRISM Lab의 비공개 라운드테이블에서도 결국 비슷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정치인이 제도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공동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공동체와 다른 이념이나 정당을 선택한 성소수자 정치인을 운동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커밍아웃은 한 번의 공개선언인가, 아니면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책임을 나누는 계속되는 과정인가.

 

때문에 닉 허버트의 사례는 단순히 ‘게이도 보수정치인이 될 수 있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달라질 자유를 가지면서도 자신이 속한 정치세력 안에서 공동체가 살아갈 공간을 넓히고, 다시 공동체와 정치권을 연결할 수 있는가. 어쩌면 성숙한 성소수자 정치생태계에는 세 가지가 동시에 필요한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정치를 할 자유. 정치에 들어간 뒤에도 공동체와 연결될 관계. 그리고 아무리 정치적으로 달라도 누구도 기본적인 권리의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 바닥까지.

 

 

 

chingusai_logo.png PROTECT PRIDE, PROTECT DEMOCRACY.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 암스테르담을 생각했다. 관광객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운하와 좁고 긴 집들, 자전거와 광장, 오래된 건물들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만으로 이 도시가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물을 관리하고 건물을 지탱하며 도시가 계속 작동하도록 만드는 수많은 구조가 그 아래에 있다. 며칠 동안 암스테르담에서 보았던 성소수자의 자유도 어쩌면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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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프라이드 인권 컨퍼런스에서 개최된 "공격받는 프라이드: 키이우와 베를린의 이야기(Pride under Attack, stories from Kyiv and Berlin)" 세션에서 사회자를 맡고 있는 독일 좌파당 Maik Brueckner 연방하원 의원

 

 

처음에는 무지개가 보였다. 조금 더 내려가 보니 그 아래에는 도시의 정책과 제도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의원과 공무원, 보좌진과 당직자처럼 제도를 직접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 내려가면 다음 사람이 계속 정치에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교육과 경험, 정당 내부의 조직과 네트워크, 실패한 사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에는 정당이 바뀌어도 남아 있는 정치적 기반이 필요했다. 진보정당 안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 보수정당 안에서 자기 정치의 언어로 같은 권리를 설명하는 사람. 서로 다른 정당에 있으면서도 성소수자가 동등한 시민이라는 최소한의 선만큼은 함께 지키는 사람. 가장 아래에는 결국 하나의 약속이 있었다. 아무리 서로 다른 정치를 하더라도, 서로가 동등한 시민이라는 사실만큼은 선거 때마다 다시 처음부터 싸우지 않겠다는 민주주의의 약속.

 

월드프라이드에서 여러 차례 마주친 문구가 있었다.

PROTECT PRIDE, PROTECT DEMOCRACY(프라이드를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처음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는 프라이드를 지키려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읽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을 떠날 때쯤에는 다른 방향으로도 이해됐다. 바로 성소수자가 숨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도시. 성소수자의 권리가 법률의 문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거와 복지, 안전과 돌봄이라는 일상으로 번역되는 도시. 정책의 보호를 받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직접 도시를 결정할 수 있는 도시. 성소수자도 보수와 중도와 진보로 나뉘어 도시의 미래를 놓고 경쟁할 수 있는 도시. 그러면서도 선거에서 누가 이기고 지든 서로가 동등한 시민이라는 사실만큼은 다시 처음부터 싸우지 않아도 되는 도시. 그런 도시를 만드는 일 자체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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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결국 암스테르담에서 계속 고민했던 것은 결국 지금의 서울이었다. 성소수자가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서울은 모두가 같은 정치를 하는 서울이 아닐 것이다. 성소수자도 서울의 주택 문제를 두고 싸우고, 개발과 복지를 두고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서로 다른 정당에서 같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평범한 서울.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때로는 서로를 지독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이 도시의 동등한 시민이라는 사실만큼은 선거 때마다 다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서울. 

 

누군가 성소수자 정치인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천장을 바라보곤 한다. 천장을 깨는 사람은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다음 사람이 계속 올라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도시를 뒤덮은 무지개의 화려함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그 무지개 아래에 있는 것들을 조금 보게 된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이 계속 들어와 정치할 수 있게 만드는 도시와 제도.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사람들. 서로 다른 정치세력 안에서 우리의 권리를 설명하는 정치인들. 그들을 공동체와 다시 연결하는 관계. 그리고 우리 편이 선거에서 지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넓게 깔린 정치적 바닥. 

 

어쩌면 프라이드를 오래 지키는 일이란,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민주주의의 바닥을 오래 떠받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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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프로젝트 리드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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