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투데이 정혜원 기자] 현재 ‘부녀’로 한정하고 있는 강간 피해 대상을 ‘사람’으로 확대해 남성이나 성전환자도 강간 피해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추진된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26일, 이같은 내용의 형법 및 군형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최근 성범죄 피해자 중 남성 피해자는 2004년 468명에서 2007년 1047명으로, 이 중 20세 이하의 남성 아동·청소년 피해자는 2004년 97명에서 2007년 242명으로 3년새 2.5배 이상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강간’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형법 제297조에서는 그 대상을 ‘부녀’로 한정하고 있어, 남성을 강간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아닌 그보다 법정형이 낮은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군대내 성폭력실태 조사결과, 응답자인 사병 671명 중 15.8%에 해당하는 106명이 군대내에서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적이 있다며 군대내 성폭력은 ‘성군기’라는 차원에서 다뤄져 은폐하기 쉬우므로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성전환을 한 남성도 강간 피해자로 보호받을 수 있다. 현재 법원은 여성의 외모를 갖춘 성전환자가 강간피해를 당하더라도 호적정정을 하지 않는 한 강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강제추행 피해자로 인정해 왔다.
최 의원은 "강간죄 대상을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것은 그동안 성범죄를 잔인한 ‘인권유린’이 아닌 ‘부녀에 대한 정조권 침해’로 인식해왔던 구시대적인 형법 규정을 개정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부합시켰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법률안에서는 폭행 또는 위협이 있었으면 그 정도와 관계없이 강간죄를 인정하도록 개정했다.
현재 법원에서는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필요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강간을 당했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강간피해로 인정받을 수도 없는 상황. 이는 여성이 저항하면 강간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왜곡된 논리로서 피해자에게 오히려 강간유발의 책임을 지게 하는 악습일 뿐 아니라 극도의 위험에 처해있는 피해자에게 목숨을 건 저항을 요구하는 매우 부당한 해석이라는 게 최 의원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법안에는 친고죄도 폐지도 포함돼 있다. 최 의원은 "성범죄피해자의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존재하는 친고죄가 오히려 가해자와의 합의를 종용 혹은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분명한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사조차도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제도로서, 결과적으로 성폭력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친고죄를 폐지하려 한다"고 표명했다.
이어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외에도 성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해'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등을 개정할 예정"이라며 "이 개정안들이 이번 정기국회 내에 조속히 통과되어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지원 뿐 아니라 가해자 처벌과 치료 등이 제대로 이루어져 재범방지 효과도 커질 수 있기를 바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