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105분 짜리 야한 영화 참아내야 시민권 준다"
[한국일보 2006-03-16 18:57]
‘공원에서 남성 동성애자 두 명이 진한 키스를 나눈다. 조금 뒤 가슴을 완전히 드러낸 젊은 여성이 바다에서 나와 인파 속 해변으로 걸어간다.’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하려는 외국인은 이런 ‘음란한’ 장면이 나오는 105분 짜리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15일 이민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전세계 138개국에 주재한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이 영화 관람을 포함한 ‘국적 취득 시험’을 처음으로 치렀다. 이란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이 불법이어서 동성애와 누드 장면이 없는 영화로 대체됐다.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스위스 국적자와 정치적 망명 희망자, 연 5만 4,000달러 이상 소득을 올리는 고액 기술자 등에게는 이 영화 관람을 면제하고 30분간의 필기시험만 치르게 했다. 필기시험에는 네덜란드가 몇 개 주로 이뤄졌는지, 영국왕 윌리엄 3세로 즉위한 오렌지공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국적 취득 시험에는 450달러(44만원)라는 적잖은 돈이 든다. 여기에는 시험 전형료에다 동성애 장면 등이 나오는 영화 관람료, 유명 네덜란드인의 그림 앨범 구입비 등이 포함돼 있다.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하려는 외국인의 대다수가 무슬림이라는 점을 볼 때 혐오스러운 영화 관람을 금기시하는 무슬림이 수치감을 느껴 스스로 시험을 포기하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극우정책을 주도하는 리타 페어동크 이민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네덜란드에서 살려는 사람은 네덜란드인과 동질감을 갖기 위해 이 영화를 반드시 관람해야 한다”며 “시험에 통과하면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공공안전을 이유로 무슬림의 부르카 착용 금지를 제안하는 등 ‘반이슬람 정서’를 드러내 ‘철의 리타’로 조롱받고 있다. 그는 살해 위협을 느껴 방탄조끼를 입고 경호원 4명을 대동한 채 이동하고 있다.
네덜란드 회교단체인 ‘이슬람과 시민권’의 모하메드 시니 회장은 “동성애는 현실”이라며 “이민자들은 이런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고 새 시험을 옹호했다.
하지만 반대여론도 거세다. ‘네덜란드 국제 결혼자들을 위한 모임’ 회원인 뷰이텐란트세 파트너는 “국제결혼을 하는 네덜란드인에게 오늘은 ‘참담한 날’”이라고 말했다. 우트레크트 대학 스틴브링크 교수는 “네덜란드인이 되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방법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방과 관용의 문화를 지닌 네덜란드가 이처럼 폐쇄적으로 된 것은 2004년 11월 이슬람에 비판적인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의 피살사건이 뿌리다.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후손인 고흐 감독은 네덜란드의 좋은 환경에서 자란 모로코 출신의 이민 2세의 총탄에 살해됐다.
네덜란드 인구 1,650만 명 중 80만 명 정도인 이슬람 이주민은 암스테르담 등 대도시 주변에 살고 있다. 이들의 실업률은 비 이민자보다 2~3배 높은 20%를 넘는다.
유럽 각국은 2003년 마드리드 열차 테러, 지난해 런던 7ㆍ7 테러와 10월 파리 무슬림 방화사건 등으로 인해 비 유럽인들에게 이민의 문을 닫고 있다고 프랑스 르 피가로는 보도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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