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뉴델리의 한 고급 주택가에서 두 명의 남자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한 명은 전직 고위공무원의 아들이자 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38살의 푸슈킨 찬드라고, 다른 한 명은 쿨딥 싱이란 20대 남자였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다.
사건이 일어난 날 밤, 이들은 푸슈킨의 친구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사건은 이들이 파티에서 돌아온 뒤의 늦은 밤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푸슈킨은 나체 상태로 손발이 묶여 배와 목 등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욕실에서 발견됐다. 침실에서 발견된 쿨딥 역시 반라 상태에서 손발이 묶인 채 흉기에 찔려 숨져 있었다. 이들이 살해된 장소에서는 남성 동성애 포르노그래피, 속칭 ‘게이 포르노’ VCD와 남성들 간의 성교 장면을 찍은 수백장의 폴라로이드 사진, 그리고 빈 술병 등이 발견되었다.
푸슈킨 사건 흥미 위주로 보도
범인이 검거되기까지 2주 동안 이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대부분은 푸슈킨의 성적 취향과 관련, 삼각관계를 모티브로 삼은 복수극이었다. 인도의 여러 언론매체들은 이 ‘흥미진진’한 배경을 추리함과 동시에 동성애자들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동성애자 간의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동성애 매매춘, ‘게이 파티’ 등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언론매체가 그려낸 ‘어둡고, 위험하고, 무모한’ 동성애자들의 세계는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실컷 부채질했다. 푸슈킨의 동성애 관계가 죽음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인 양 추측 기사를 써댔고,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든 죽음을 당할지도 모를 ‘위험한 놀이’에 빠져 있는 것처럼 확대 해석되었다.
심지어 사건 현장에서 술병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사건에 마약이 연관되었을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전에 없이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들이 TV에 출연해 성적 취향의 자유를 외치기도 했지만, 이들 역시 시청자 편에서는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지만 아직도 보수적 전통이 사회 전반에 강하게 남아 있는 인도 사회는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전통’은, 따지고 보면 영국 식민지배의 잔재에 지나지 않는다.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인도 형법 조항도 영국 식민통치 아래에 있던 1886년에 인도 형법에 추가되었다. 인도 형법 제377조는 ‘모든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형태의 성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해 최장 10년까지의 징역형과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성(性) 도덕’을 반영한 것으로, 지금까지의 판례에 의하면 동성애, 수간(獸姦)은 물론이고 구강성교까지도 ‘불법’으로 보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독립한 지 반세기가 넘었는데도 19세기에 제정된 식민지 시대 형법을 준수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위 조항은 다른 영국 식민지에서는 물론이요, 영국 본국에서도 이미 폐지된 지 오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에서 동성애자 인권보호와 에이즈 확산 방지 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 개의 비정부기구(NGO)가 연대해 델리 고등법원에 청원을 제출했다.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는 인도 형법이 성 차이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법 앞에서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배치되므로 형법은 위헌이라는 것이 청원 내용이다.
경찰 협박과 구타 금품 갈취
NGO들은 동성애 금지조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첫째, 원론적인 차원에서, 모든 사람은 성적 취향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와 자유·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다수의 사람들과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진부한 형법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좀더 실질적인 차원의 인권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많은 동성애자들, 특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동성애자일수록 이 법 조항을 미끼로 한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협박을 하는 사람은 경찰관인 경우가 많다. 동성애가 불법임을 잘 알고, 공소권도 갖고 있는 경찰관이 협박과 구타를 일삼으며 금품을 갈취해가는 것이다.
둘째, 에이즈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가 세계 제1의 에이즈 국가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다. 최근 ‘국제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기금’(GFFATM) 피켐 사무총장은 “전 세계에서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니라 인도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 형법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정부 대책이나 적절한 교육 없이 에이즈 감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다. 에이즈 관련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NGO 활동가들에 따르면, 인도인들은 ‘에이즈는 이성간 성교로만 전염될 뿐 동성간 관계에서는 안전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에이즈 확산 저지를 위해 더욱 적극적인 홍보와 정부 정책이 필요한데, 동성애를 불법으로만 취급하고 있어 동성애자들이 점점 지하로만 숨어들고 정부도 에이즈 대책 마련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델리 고등법원은 NGO 청원에 대해 ‘이 법 조항에 의해 직접 영향을 받은 사람이 청원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사건 발생 2주 후 피의자들이 검거됐다. 그들은 푸슈킨이 과거에 만났던 성적 파트너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살해 동기는 동성애 자체도, 삼각관계로 인한 복수극도 아니었다. 푸슈킨이 피의자의 성행위 장면을 강제로 사진 찍었다는 게 살해 동기였다.
결국 전모가 밝혀지면서 살해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이로 인해 동성애 이슈는 일파만파 확대되어 한동안 계속되었다. 과거에도 영화 개봉 등을 계기로 동성애 이슈가 불거진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언론이 총동원되어 동성애를 도마에 올린 적은 없었다. 이번을 계기로 동성애 인권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일부나마 주류 언론에 소개되어 동성애자들의 취약한 법적, 사회적 지위 등이 지적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행태와 일반 대중의 호기심 어린 관심이 동성애자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인권문제까지도 단순한 가십거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결국 인도의 동성애자들은 사회적인 차별과 배척, 법률적으로는 ‘범죄자’라는 이중고에 당분간 더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사제공 : 주간동아